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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환경과조경

월간 환경과조경
[우먼스케이프] 케테 콜비츠의 자화상
  • 환경과조경 2026년 3월호

독일 민중 화가로 널리 알려진 케테 콜비츠(Käthe Kollwitz)(1867~1945)는 ‘직조공 봉기’라는 판화 연작으로 베를린 화단에 혜성처럼 등장했다. 이후로도 콜비츠는 독일 표현주의를 대표하며 인간의 고통과 사회적 모순을 표현한 외길 화가로 유명하다. 주로 판화와 조소로 가난, 죽음, 전쟁, 모성을 깎거나 빚어서 표현했으며 검은 숯으로 고통, 슬픔, 때로는 분노를 직설적으로 묘사했다.

 

그러나 콜비츠는 빈곤하지도 않았고 노동자 농민층의 딸도 아니었다. 유복한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이해심 많은 부모 밑에서 행복한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를 보냈다. 의사 카를 콜비츠(Karl Kollwitz)와의 결혼 생활도 사랑과 신뢰로 가득하여 극히 조화로웠다. 뛰어난 예술적 재능이 일찌감치 발견되어 화가로서도 충족된 삶을 누렸다. 콜비츠가 20대 초반에 그린 자화상을 보면 자신감, 장난기, 반항심과 고집이 여지없이 드러난다. 높은 자의식만 보이고 그늘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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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조공 봉기 연작 중 1판, 분필과 석판화, 1893~1897 ⒸKäthe Kollwitz Museum Köln

 

 

균열

그러나 삶의 후반부에 들어서며 균열이 생겼다. 전반부가 평화로웠던 만큼 후반부의 균열도 커서 지진과 여진의 연속이었다. 콜비츠가 47세 되던 해에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고 그해 둘째 아들이 전사했다. 60대의 콜비츠가 최고의 명성을 누릴 때 등장한 나치는 그의 예술을 빼앗고 사랑스러운 손자를 유혹했다. 곧이어 터진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콜비츠는 거의 모든 것을 잃었다. 오랜 동지였던 남편의 죽음. 손자의 전사. 그리고 집과 아틀리에의 완전 파괴로 50년 삶의 터전이었던 베를린도 잃었다. 1945년 케테 콜비츠는 낯선 도시 드레스덴에서 향년 77세로 눈을 감았다. 전쟁이 끝나기 불과 3주 전이었다.

 

전후 독일은 빠르게 회복했다.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루어 1950~1960년대에 번영을 누렸다. 이 시기에 사람들은 케테 콜비츠를 잠시 잊었다. 아니, 그의 예술 세계를 점철했던 고통의 테마를 외면했다.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1967년, 이 걸출한 예술가의 100세 탄생일을 맞고 보니 더 이상의 외면은 불가했다. 수많은 전시회와 기념행사가 열렸다. 그 뒤로 20년간의 준비 끝에 베를린과 쾰른에 각각 케테 콜비츠 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1993년에는 그의 대표작 ‘피에타’ 청동상이 통일된 베를린 중심가에 영원히 자리 잡았다. 19세기 초 카를 프리드리히 싱켈(Karl Friedrich Schinkel)이 설계한 고대 신전 풍의 건물 안에 홀로 자리 잡은 피에타는 눈부신 웰빙 시대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고통, 슬픔, 빈곤과 죽음을 오늘도 지키고 있다.

 

환경과조경 455(2026년 3월호수록본 일부

 

고정희는 1957년 서울에서 태어나 어머니가 손수 가꾼 아름다운 정원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어느 순간 그 정원은 사라지고 말았지만, 유년의 경험이 인연이 되었는지 조경을 평생의 업으로 알고 살아가고 있다. 『식물, 세상의 은밀한 지배자』, 『신의 정원, 나의 천국』, 『고정희의 바로크 정원 이야기』, 『고정희의 독일 정원 이야기』, 『100장면으로 읽는 조경의 역사』를 펴냈고, 칼 푀르스터와 그의 외동딸 마리안네가 쓴 책을 동시에 번역 출간하기도 했다. 베를린 공과대학교 조경학과에서 20세기 유럽 조경사를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현재 베를린에 거주하며 써드스페이스 베를린 환경 아카데미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