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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환경과조경

월간 환경과조경
[웅크린 이야기들] 북쪽의 초록빛
  • 신영재
  • 환경과조경 2026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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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의 봄비가 겨울 동안 잠든 이끼를 깨우고 난 다음 날, 북쪽에서 이 엄나무들을 바라보면 나무줄기와 그 주변으로 뻗은 이끼를 선명히 볼 수 있다. 마치 나무로부터 시작한 초록빛이 땅으로 천천히 퍼져나가는 듯하다. 2023년 3월 기록. 37°32′43.29″N, 127°02′18.41″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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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반구의 숲에서 사물의 북쪽은 남쪽보다 그늘이 더 오래 머문다. 그늘과 함께 습기도 오래 남다 보니 북쪽에서는 이끼가 더 잘 자란다. 그래서 숲을 지나는 탐험가는 이끼가 나무나 바위의 한쪽 면에만 자란 것을 보며 방향을 짐작하기도 한다. 깊고 큰 야생의 숲이 아니더라도 도시공원 한 자리에서 수십 년을 자란 나무들을 보면 비슷한 상황을 종종 볼 수 있다. 20년 넘게 서울숲에서 살아온 이 거대한 엄나무들에서도 이끼는 대부분 줄기의 북쪽 응달에서 자란다. 3월의 봄비가 겨울 동안 잠든 이끼를 깨우고 난 다음 날, 북쪽에서 이 나무들을 바라보면 나무줄기와 그 주변으로 뻗은 이끼를 선명히 볼 수 있다. 마치 나무로부터 시작한 초록빛이 땅으로 천천히 퍼져나가는 듯하다. 한 자리에서 오랜 세월 묵묵히 자라온 것들이 또렷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의 풍경. 날씨가 더 따뜻해져 풀들이 낙엽 위로 자라는 4월이 되면, 이끼들이 보내는 신호도 곧 다른 초록의 일부가 되어 눈에 잘 띄지 않게 될 것이다.

 

 

 

신영재는 스위스 취리히 연방공과대학교(ETH) 건축학부 조경학 석사 과정에 재학 중이며, 조경설계사무소 초신성의 소장이다.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 아름답고 쓸쓸한 것에 관심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