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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환경과조경

월간 환경과조경
[스러지는 것들의 아름다움] 흙이 들려준 소멸의 이야기
  • 윤혜린
  • 환경과조경 2026년 5월호

“경작자 대모집”. 2025년 12월, 국립현대미술관 홈페이지에 독특한 공고가 게시됐다. 도시 한복판에 있는 미술관에서 갑자기 경작자를 모집한다니 텃밭이라도 가꿀 요량인가. 살펴보니, 2026년 1월 30일부터 5월 3일까지 열릴 ‘소멸의 시학: 삭는 미술에 대하여’(이하 소멸의 시학) 전시 중 아사드 라자(Asad Raza)의 ‘흡수(Absorption)’를 함께 구현할 이들을 구한다는 이야기였다. ‘흡수’는 현지에서 구한 폐기물과 재료를 활용해 비옥한 흙, 네오소일(neosoil)을 만들고 원하는 관객에게 나누어주는 작품이다. 흙에는 커피 찌꺼기, 택배 상자, 닭 뼈, 은행, 이면지 등 도시의 단면을 보여주는 쓰레기가 섞여 있다. 쓰레기는 전시 기간 동안 천천히 흙 속 미생물과 상호작용하며 토양에 새로운 에너지를 불어넣는다.

 

경작자의 임무는 3개월간 흙을 돌보며 관람객과 상호작용하는 것이다. 방법은 다음과 같다. 1. 갈퀴나 괭이로 토양을 부드럽게 한다. 2. 새로운 재료를 흙에 삽이나 손으로 첨가한다. 3. 삽으로 흙을 깊이 뒤집는다. 4. 분무 도구를 사용해 흙으로 일어나는 먼지를 줄인다. 5. 현장 측정과 결과 기록을 수행한다. 6. 관람객은 작품 안으로 들어올 수 있다.


경작자는 토양을 돌보고 관리하는 한편, 관객들과 흙 그리고 작품에 관한 대화를 나눈다. 참여는 아사드 라자가 만드는 작업의 핵심 키워드다. 그는 경작자들이 흙을 돌보고 분석하며 관객과 흙에 대한 앎을 나누길 바랐다. 또한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필요한 만큼의 흙을 가져갈 수 있게 해, 재생된 흙이 자유로이 흩어지게 했다. 이는 땅과 흙이 누군가의 전유물이 아니라 우리 모두와 관련된 것임을 보여준다.

 

스스로 분해되는 작품을 통해 사라지지 않는 예술에 대해 물은 ‘소멸의 시학’은 이번 특집 ‘스러지는 것들의 아름다움’을 기획하는 데 단초를 제공해준 전시이기도 하다. 그중에서도 아사드 라자의 ‘흡수’는 흙이 인간과 비인간 생명체를 아우르는 생의 기반이자 복잡다단한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네트워크라는 걸 일깨우는 작품이다. 생명의 기원이 땅에 있으며, 여러 생명체 중 특히 인간이 흙에 기대어 살아왔음을 다시 느끼게 했다. “아사드 라자는 왜 경작자와 함께하는 방식을 택했을까.” 전시를 보며 떠올린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를 기대하며, 3개월간 ‘흡수’의 토양을 일궈온 경작자들을 지면에 초대했다. 경작자 중 한 명인 윤혜린(낙엽)의 주도 아래, 여섯 명의 경작자가 약 두 달 만에 한자리에 모였다. 오랜만의 만남이 주는 반가움 속에서, 각자의 경험을 나누며 경작의 의미를 되짚어보는 시간이 진행됐다. 김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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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드 라자의 ‘흡수’를 구현하기 위해 토양을 돌보는 경작자

 

경작자가 된 계기

낙엽(조경학과 석사과정 대학원생) 사람과 환경이 관계 맺는 장으로서 흙에 관심이 있었는데, 마침 SNS에 경작자 모집 공고가 떠서 설레는 마음으로 지원했어요.

의자(프리랜서 개발자) 대학원에서 지질학을 공부했던 제게는 흙과 돌이 학술적이고 의무적으로 공부해야 하는 것들이었어요. 경작 활동을 하면 다른 사람들의 시점이나 새로운 영감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지원했습니다.

괭이(물류 회사 직장인) 10년 가까이 계속 같은 사람들만 만나고, 매번 같은 상황에만 놓여 있는 게 싫었어요. 새로운 것들을 경험하고 싶은 마음이 컸죠. 하지만 경작자가 되기로 마음먹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건 미술관 안에 흙이 있다는 신기한 광경이었어요. “이거 진짜 해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지원했습니다.

사람 평소 국립현대미술관 뉴스레터를 받아보는데, 전시 소식을 보고 흥미롭다고 느꼈어요. 어렸을 때 농사를 오래 지은 경험도 있어 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산성(토양 미생물을 연구하는 박사과정 대학원생) 대학원 지도교수님이 이 작품에 과학 자문위원으로 참여해서 전시와 경작자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됐어요. 학부 시절 복수전공으로 미술을 공부했는데, 과학과 미술을 엮어볼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에 경작자 지원을 결심했습니다.

항상 미술관에서 무슨 재미있는 일이 안 일어나나 궁금해서 홈페이지를 자주 보거든요. 경작자 모집 공고도 그렇게 보게 됐어요. 제 고향이 시골이고, 서울에 올라온 뒤에도 부모님과 함께 주말농장을 일궈왔어요. 초등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흙에 관심을 두기도 했고, 대학교에서 미술을 전공했거든요. “어떻게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함께 엮여있을 수 있지!” 감탄하면서 지원서를 작성했죠.

 

반지 실종 사건

낙엽 저는 그 현장에 없었지만, 경작자들 사이에서 반지 사건이 유명하잖아요.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까요?

괭이 그날은 오전 경작을 끝내고 좀 오래 남아 있었어요. 다른 경작자와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거든요. 야간 근무하러 온 사람님을 만나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눴죠. 사람님이 교대할 시간이 되어서 전시실에 들어가보니, 오후 근무 중인 흙님이 엄청 열심히 손으로 경작하고 있는 거예요(웃음).

사람그 모습이 너무 웃겨서, 땀을 뻘뻘 흘리는데도 사진을 찍어서 흙님께 보내야지 하고 있었어요.

괭이 옆으로 쓱 다가가서 “왜 이렇게 열심히 하세요?” 물어보니까, “저 관람객분이 반지 잃어버렸대요”라고 설명해 주었어요. 그 순간 저도 그 자리에 똑같은 자세로 주저앉아서 찾기 시작했어요. 사람님, 흙님, 저까지 세 사람이 같이 찾는데, 도저히 못 찾을 것 같은 거예요. CCTV를 확인하기 위해 부른 경찰이 미술관에 오기 전까지, 세 명의 경작자가 필사적으로 반지를 찾았고 그 모습이 뜻하지 않게 퍼포먼스처럼 연출됐죠. 다른 관람객들이 이 모습이 신기했는지 사진을 엄청 찍더라고요. 나중에 CCTV로 반지가 떨어진 위치를 확인하고, 경찰분들이 가지고 온 금속 탐지기도 사용해봤는데 도무지 나오질 않았어요. 미술관 매니저가 “이게 왜 안 나오지?” 하면서 갖고 있던 동전을 흙속에 던져보기도 했는데, 그 동전도 없어졌어요(웃음). 그로부터 일주일 뒤에 다시 제가 경작할 순서가 왔을 때, 한 시간쯤 경작했을 무렵에 갈퀴에 쨍그랑 하면서 반지가 걸려 나왔어요.

산성 대박이다!

괭이 진짜 신기하긴 했어요. 전시장 곳곳에 계신 안내 스태프들이 표정이 없고 말이 없는 줄 알았는데, 반지를 찾는 순간에 몰려들어 “우와” 하고 감탄하며 구경한 기억이 있어요. 제 기억에 가장 강한 인상을 남긴 일화에요. 참고로 미술관 매니저가 던졌던 동전은 아직도 못 찾았어요. 

낙엽 흙이 진짜 블랙홀 같네요.


흙과 교감하는 사람들 

의자 한 관람객은 맨발로 큰 창이 있는 구석 쪽에서 테라피하듯 발을 흙 속에 넣어놓고, 거의 드러누운 모습으로 한두 시간 머물다 갔어요. 그분의 모습을 본 다른 관람객이 다른 구석에서 그 행동을 똑같이 따라 하기도 했고요. 

색다른 오라를 풍긴 관람객도 있었는데, 흙바닥에 쪼그려 앉아 주섬 주섬 모래 산을 만들고 그 산 위에 뭔가를 그리더라고요. 마침 전시장에 들어선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는데, 너덧 명이 그 그림에 관심을 갖고 지켜봤죠. 그림을 그리던 관람객은 그 학생들을 보더니 “너희도 빨리 와서 이쪽 그림을 만들라”고 말했어요. 그렇게 그 자리에 서 즉흥적으로 여섯 명이 함께 모래산을 만들고 그림을 그리다 갔죠. 신기한 경험이었어요. 

낙엽 저도 가끔 맨발로 걷는 관람객을 만났어요. 한 사람이 시작하면 여러 명이 함께하게 되더라고요. 관람객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게 만든 다는 점도 ‘흡수’의 흥미로운 지점입니다. 어르신 관람객 여러 명은 다들 들어서자마자 발밑에서 피어오르는 냄새를 맡고는 옛날 생각이 난다고 하더라고요. 나뭇잎을 경작하고 있던 어떤 날에 흙냄새를 맡는 신사 같 은 할아버지 한 분을 만났어요. 한 번 뿌려보시라고 나뭇잎 한 줌을 드렸더니, “아, 이거 오랜만에 만지니까 어렸을 때 여동생이랑 같이 길거리에 떨어진 나뭇잎 주웠던 기억이 난다”고 했습니다. 요즘에는 길에 떨어진 나뭇잎을 바로 치워버리잖아요. 나뭇잎을 줍거나 뿌리며 장난을 치 는 일이 좀처럼 경험하기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더라고요. 

의자 어르신 이야기를 연이어 듣다보니 웃긴 일화가 생각났어요. 한창 경작을 하고 있는데 어르신이 흙을 밟고 가면서 “이게 뭔가” 하고 묻더 라고요. ‘흡수’에 대해 설명해드렸더니 “이거 내가 묻힐 곳을 미리 밟고 있다” 하고 유쾌하게 말씀하고 가셨어요(웃음). 

산성 전 사람보다 주로 흙과 교감했습니다. “나는 땅 파야 하는데, 오늘 다 엎을 건데” 이런 생각을 하면서요. 관람객과 대화를 적당히 하고 마무리짓는 스타일이었죠. 제가 흙을 만지고 쳐다보고 있으면 사람들이 사진을 많이 찍고 가더라고요. 한 번은 일직선으로 밭 일구듯 리듬을 타면서 “나 오늘 삽질 좀 된다”고 생각하면서 땅을 꼼꼼하게 파고 있었 어요. 그리고선 고개를 딱 들었는데 사람들이 제 앞에 쫙 서서 절 찍고 있더라고요. 너무 당황스러웠어요(웃음). 땀도 잔뜩 흘렸고 얼굴도 상기 되어 붉은 상태라 더 부끄러웠습니다. 저는 흙의 상태에 관심이 많았는데, 똑같이 수분을 머금고 있더라도 흙의 색이 조금씩 다르더라고요. 계단 쪽에 있는 흙이 되게 까맣거든요. 그런 걸 관찰하면서 왜 이쪽만 색이 더 짙을까 생각하며 만지고 있으면, 관람객들이 그런 저를 신기하게 봤던 기억들이 많아요.


근사한 우연의 만남 

흙을 경작하는 것 자체도 재미있지만, 재미있는 대화를 나눈 날이 기 억에 항상 남아요. 피상적인 대화를 나누다 끝날 때도 있고, 어떤 관람 객과는 말이 잘 통한다는 느낌을 받으며 이야기가 계속 이어질 때도 있 었습니다. 하루는 본격적으로 사진을 찍을 작정을 하고선 DSLR 카메라를 멘 관람객을 만났어요. 처음에는 저와 대화를 하지 않고 멀리서 사 진만 찍기에, “이제 저랑 대화 안 하시면 제 사진 못 찍는다”고 장난스레 말했어요. 그렇게 대화의 물꼬를 텄는데, 그분이 저와 이야기를 나누기 전과 후의 작품이 진짜 다르게 느껴진다고 말하더라고요. 

사람 한 어르신이 제 옆에 와서 “흙냄새가 참 좋네요”라고 말했던 게 기억나요. 그러더니 왜 삽질을 하는지 묻더라고요. 재료를 섞으면 흙에서 조금씩 분해가 된다고 설명해드리니, 이 흙냄새가 미생물이 싸고 먹고 자고 죽어서 나는 시체의 냄새라고 도리어 설명을 덧붙여주더라고요. 그 내용이 심상치 않더라니, 알고 보니 미생물 박사학위까지 취득하신 분이었어요. 어르신은 우리가 흙을 더럽다고 여기지만, 사실 우리 입술에서도 미생물이 썩고 죽고 배설물을 배출한다고 설명하셨어요. 그럼에 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자신은 흙이나 자연과 달리 깨끗한 척, 고귀한 척 한다고 참 겸손하고 점잖게 꼬집어 말하셨죠. 제가 과학에 무지해서 그런지 이런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그래서 입술 위에 미생물이 산다는 걸 배웠을 때 어떻게 밥을 먹고 연애를 했는지 역으로 물어보기도 했죠. 그 물음에 들려준 답변이 참 인상 깊었어요.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잊어버리니까 우리가 먹을 수 있고 사랑하는 사람이랑 입도 맞출 수 있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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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작자의 임무 중 하나는 관람객과 상호작용하는 것이다.

 

흙과 소멸에 대하여 

“흙은______다. 소멸은______다.” 

낙엽 “흙은 움직인다.” 사람님 이야기를 들으니, 한 관람객이 다가와 땀 흘리는 ‘더러운’ 모습이 멋지다고 말해준 게 생각났어요. 경작 일이 더러움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된 계기였죠. 경작자들의 역할 중 하나 가 틈틈이 계단이나 입구에 떨어진 흙을 치우는 것이었거든요. 전시실을 벗어난 흙은 더러운 존재로 여겨지니까요. 문 하나를 가운데 두고 흙이 더러운 것과 신비로운 것의 경계를 넘나든다는 게 흥미로웠습니다. 흡수는 미생물도, 흙도, 인간이 어떤 것을 꺼리는 이유는 결국 인간이 만든 어떤 틀에서 기인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들게 했어요. 흙은 움직인다고 쓴 까닭은, 흙은 계속 있어야 할 곳을 벗어난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흙과 땅을 정적인 존재로 생각했는데, 경작을 하다 보니 미세한 규모로 계속 움직이더라고요. 그 움직임 덕분에 흙을 신비롭고 살아 있는 존재로 인식할 수 있었습니다. 

산성 “흙은 우주의 반대다.” 제게 우주는 텅 빈 느낌이에요. 찾아보니 우주의 5%는 인간이 보고 느낄 수 있는 물질로, 95%는 알려지지 않은 암흑 물질로 구성된다고 하더라고요. 그 알 수 없는 부분들 때문에 우주를 굉장히 무섭다고 느껴요. 흙은 그와 반대에요. 흙은 많은 것들로 가득 차 있고, 입자 하나하나에 많은 미생물이 살고 있잖아요. 꼭 포근한 형태의 우주가 인간의 곁에 머무는 것 같다고 느꼈어요. 흙은 유(有)의 공간인 것 같아요.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라는 말은 부담스러운데, 흙은 그 자체로 유여서 주는 안정감이 있어요. 손으로 흙을 쥐었을 때 그 입자들이 흐트러지는 걸 보면서 내가 만질 수 있는 우주 같다고 느끼곤 했어요. 공포감이 아닌 편안함을 주는 우주요. 

“소멸은 안심”이다. 지금보다 어린 시절 친구에게 “죽는 거 진짜 무섭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어요. 그때 친구가 “왜? 나는 언젠가 내가 죽을 걸 알아서 마음이 편해”라고 답하더군요. 당시에는 이해하지 못했는데, 천천히 그 말의 의미를 알게 됐어요. 지금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살거나 존재하고 있어도, 결국 모든 존재는 죽음을 향해서 간다는 사실이 누군가에게는 안심되는 일로 느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경작 일을 하면서도 소멸에 대해 자주 생각했어요. 흙과 뒤섞은 재료도 결국 미생물에 의해 분해되어 사라지게 돼요. 어떤 관점에서 보면 재생인 동시에 소멸인 셈이죠. 그렇게 소멸되는 과정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는지 모르고 있는 것보다, 결국에는 흙속으로 돌아갈 거라는 사실이 주는 안정감과 비슷한 감정이 있어요. 

의자 “소멸은 완성이다.” 최근에 무언가를 만들다 채 완성을 하지 못하고 다른 작업으로 전환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완벽을 기하다가 완성을 하지 못할 바에야, 완벽하지 않더라도 완성을 하는 게 낫다는 말이 있잖아요. 경작을 하면서 그런 제 작업에 대해 생각하다보니, 소멸 다음 단계는 무엇일지 생각하게 됐어요. 소멸 이후에는 변화가 있을 수 없잖아요. 소멸은 더 이상 변하지도 않고, 바꿀 수도 없는, 사실 영원해지는 단계인 거죠. 단편적으로 보면 완성된 상태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소멸되어 완성된 상태가 좋을지 안 좋을지 여부를 떠나서요. 

괭이 “흙(네오소일) 은 연결이다.” 흡수를 통해서 저와 평소 관계 맺을 일 없는 사람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됐어요. 흙이라는 매개체를 통해서요. 흙과 뒤섞는 재료 역시 모두 사실 아무런 연관이 없는 것들인데, 흙에 들어가 삭고 변하면서 흙이랑 연결되잖아요. 그런 사실이 재미있고 흥미로웠어요. 모르는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도 새로운 연결이고요. 경작 일을 하면서 제게 알레르기가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몰랐던 걸 알게 되고, 새로운 것과 연결되는 기분이 무척 좋았습니다. 흙보다는 네 오소일이라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아요. 흙을 통해 만나는 사람과 시간이 소중했습니다. 지금, 이 순간도 마찬가지에요.

 

윤혜린은 영어영문학과 조경학을 전공하고 설계사무소에서의 실무 경험을 바탕으로, 공간을 설계하는 일과 그 의미를 함께 고민하고 있다. 최근에는 추하다고 여겨지는 것들과 경관에 관심을 갖고 탐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