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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환경과조경

월간 환경과조경
[스러지는 것들의 아름다움] 시간이 만드는 공간의 서사
  • 원종호
  • 환경과조경 2026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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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우란문화재단. 대상지 곳곳에 풍화의 흔적이 보인다. Ⓒ주민수

 

 

종종 설계부터 시공까지 프로젝트 전반을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있었다. 2019년 준공한 성수동 우란문화재단이 그랬다. 성수동이 본격적으로 뜨기 시작하던 시기, 이 건물의 공개공지, 테라스, 옥상 정원의 설계와 시공을 진행했다. 그나마 대중에게 좀 알려진 우리 회사의 대표작 중 하나다.

 

설계는 아주 간단했다. 자작나무숲과 억새풀, 그 사이의 작은 길과 잠시 앉아 쉴 수 있는 몇 개의 벤치가 전부다. 대부분 조경가가 그렇듯, 설계 당시에는 ‘전성기의 공간’, ‘청년으로서의 공간’을 주로 상상했던 것 같다. 생명력 넘치는 싱싱한 식물과 정교한 디테일의 포장 및 시설물이 조화를 이루는 짜임새 있는 공간 말이다. 생애주기에 따른 물성의 변화와 그 효과를 염두에 두긴 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예측의 영역인지라 미래에 대한 공간적 기대감은 다소 흐릿했다.

 

준공 당시 깨끗하게 정리된 시설물과 포장, 싱그러운 녹음을 뿜어내는 식물들이 만들어내는 조화가 썩 괜찮았다. 흰 자작나무 수피를 배경으로, 늦은 여름이면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억새풀 사이로 목재 벤치에 앉아 잠시 쉬는 사람들의 모습을 목격하는 것은 설계자만이 만끽할 수 있는 큰 즐거움이었다.

 

7년이 지난 현재의 모습은 어떨까. 공개공지의 상징과도 같던 자작나무의 3분의 1 정도가 고사해 원형 탈모마냥 공개공지 중간이 훤히 비어 햇살이 안쪽까지 쏟아져 들어온다. 준공 당시 공들여 심었던 수많은 관목과 야생화는 그동안 치열한 생존 게임을 치르며 강한 놈들만 승리를 쟁취했다. 하드우드로 정교하게 제작한 목재 벤치는 중간중간 패이고 썩었지만 백골처럼 풍화되며 목재 특유의 원숙미를 풍긴다. 오일 스테인을 절대 바르면 안 된다는 설계자의 협박에 못 이겨 관리자가 그냥 방치한 덕이다.

 

환경과조경 457(2026년 5월호수록본 일


원종호는 서울대학교에서 조경학을 전공했다. knl 환경디자인스튜디오와 현대건설에서 설계와 시공 실무를 경험한 뒤 2017년부터 제이더블유랜드스케이프(JWL)에서 파트너로 활동하고 있다. 크고 화려하며 눈에 띄는 조경보다는 보이지 않는 조경, 하지 않은 듯한 조경, 원래 있던 듯한 조경을 통해 완성도 높은 공간을 만들고자 한다. 조용하지만 묵직하고 내공 있는 조경가로 기억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