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 작가의 예술에 자연스럽게 스며든다면 어떨까. 작품을 사유의 결과물이 아니라 작가의 행위로 재해석할 수 있을까. 백순실 작가는 40여 년간 차와 음악을 감각적 심상으로 표현한 추상 회화를 선보였다. 축음기에서 음악이 흘러나오는 집과 언제든 흙을 만질 수 있는 과수원에서 살았던 유년 시절의 경험은 그의 삶과 예술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클래식 음악과 차는 그에게 친근한 벗이자 안식처였고, 예술의 영감이 됐다.
백순실은 일상의 소재를 바탕으로 다양한 재료와 색채, 조형에 대한 탐구를 지속적으로 해왔다. 한지, 화산석 등 다양한 재료를 결합해 입체감을 형성하는 회화를 선보였다. 특히 한국 차의 기본 경전으로 불리는 동다송東茶頌에서 모티프를 얻은 동명의 연작을 통해 차를 노래하는 작가로 알려졌다. 우리 고유의 소리를 형상화한 ‘한국의 소리’ 연작을 시작으로 클래식 작곡가들의 음악을 형상화하는 작품을 선보였다. 또한 그는 정원을 돌보는 정원사이기도 하다. 때론 붓 대신 호미를 들고 정원을 일구는 시간을 가진다.
블루메미술관의 기획 전시로 10월 31일까지 열리는 ‘정원일과 그리기’ 전은 백순실의 일상에 스며든 정원일의 언어를 바탕으로 작품 세계를 조명한다. 흙을 일구고, 씨앗을 심고, 가지를 다듬고, 때로는 기다리는 일. 이처럼 정원 일은 느리고 반복적이며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행위다. 그렇다면 그림을 그리는 일은 어떨까. 캔버스 더미 속에서 그리고, 긁고, 칠하며 그림의 완성을 기다리는 과정은 또 다른 정원 일이 될 수 있을까. 전시는 정원과 그림을 만들어가는 행위 속에서 발견되는 공통적 감각과 몸의 언어를 통해 백순실의 추상 회화를 재해석한다. 대표작 동다송을 비롯한 다양한 작품을 ‘일구다’, ‘가꾸다’, ‘기다리다’, ‘덮다’라는 네 개의 정원 일의 언어로 조망한다.
* 환경과조경 458호(2026년 6월호) 수록본 일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