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뚝섬유원지
1936년 봄을 경성에서 지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겠지만,(각주 1) “산으로 물로 꽃구경, 술타령을 떠나는 사람의 홍수를 벗어나 푸른 잔디, 맑은 하늘을 둘이만 즐길 곳을 찾는다면, 전차를 타시오. 동대문에서 내리거든 남쪽에 솟아 있는 2층 양관으로 들어가시오. 이곳이 뚝섬 가는 궤도차의 정거장인데, 10전을 내고 30분에 한 번씩 떠나는 이 차를 타면 25분 만에 뚝섬유원지에 도착합니다. 뚝섬유원지에서 모래밭을 걷다 보면 기름 같이 흐르는 한강, 꽃잎 대신 흰 돛이 손짓을 하고, 버들가지가 인사를 드리고, 봄바람이 웃음을 치오리다.”(각주 2)
위 인용문은 극작가 이서구가 1936년 잡지 『삼천리』에 기고한 “애인 다리고 갈 사랑의 ‘하이킹 코-스’”에서 뚝섬유원지 관련 대목을 추려 현대어로 재구성한 것이다. 동대문 밖, 한강과 중랑천 사이에 자리한 뚝섬 일대는 조선 시대 국마를 기르던 목장과 내농포가 있던 교외 지역이었다. 일제 식민지기, 조선총독부는 잦은 범람을 막기 위해 제방을 쌓아 농지를 조성했고, 그 유실을 방지하고자 강변에 포플러나무를 심었다. 경성 시민들에게 이곳이 행락지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것은 1930년대 중반, 동대문에서 왕십리를 거쳐 뚝섬까지 연결되는 경성궤도주식회사의 교외 철도가 개통되고 유원지가 조성되면서부터다. 당시 신문은 경성을 “살풍경한 도회의 더위”와 “매연에 찌든 소음의 거리”로 묘사하곤 했다. 그런 도시의 삭막함과 대비되는 뚝섬의 전원적 풍경은 매력적인 볼거리로 부각됐다.
1938년 봄, 문학가 임화는 화가 구본웅 등과 함께 뚝섬유원지에 취재 여행을 다녀와 「동아일보」에 ‘경궤연선(京軌沿線)’이란 제목의 산문을 기고했다.(각주 3) 그는 이른 봄, 앙상한 나뭇가지만 남은 나무들이 빽빽이 늘어선 사이로 궤도차 선로가 쭉 뻗어 있는 풍경이, 마치 영화에서 본 산림 철도 같았다고 회상했다.
일요일 오후 세 시, 뚝섬한강공원의 풍경
2026년 봄, C와 함께 뚝섬한강공원을 찾았다. 강변북로와 한강 사이에 쌀눈처럼 붙어 있는 이 ‘섬’에 닿는 경로는 여러 가지겠지만, 각각 서울의 서쪽과 남쪽에 사는 우리는 몇 해 전까지 뚝섬유 원지역으로 불리던 7호선 자양역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건대입구역을 지난 열차가 지하 터널을 빠져나와 청담대교 앞에서 멈췄다. 고가역에서 지상으로 뻗은 계단을 내려가다 보면, 여러 갈래로 흩어졌던 램프들이 청담대교 쪽으로 물갈퀴처럼 합쳐지며 시선을 압도한다. 담쟁이가 가느다란 펜으로 그려 넣은 세밀화처럼 번져 있는 교각 사이로, 매끈한 뚝섬 자벌레가 빠져나간다. (각주 4) 교각 너 머로는 봄볕을 받은 나뭇잎이 연녹색으로 빛나고, 그 뒤에 기름 같이 흐르는 한강이 보인다. 다시 눈앞을 바라보면, 분주한 보행자, 역 앞에서 빌린 자전거를 타는 사람, 벤치에서 누군가를 기다리 는 이, 그리고 울긋불긋한 지붕을 쓴 채 꼬마 손님을 기다리는 회전목마가 차례로 눈에 들어온다. 일요일 오후 세 시, 뚝섬한강공원 앞의 풍경이었다.
야외 수영장과 즐길 거리들
C와 함께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야외 수영장이었다. 푸른 페인트가 칠해진 바닥을 드러낸 채 한적 했지만, 수영장이 개장하는 6월 말부터 8월까지는 발 디딜 틈 없이 붐빈다. 지금이야 인공 풀에 서 수영을 즐기지만, 1980년대 중반 한강 수영이 금지되기 전까지 뚝섬유원지 앞 한강은 서울 시민들의 대표적인 물놀이장이었다. 1930년대에는 관할 경찰서가 한강에서 안전한 구역을 골라 수 영장 경계를 표시하고, 유원지의 운영자인 경성궤도에 구조선 등을 배치하게 했다. 한강의 모래사 장이 남아 있던 시절이었다. 조정래의 소설 『한강』에는 1959~1961년 무렵 뚝섬 일대가 잘 그려져 있다. “뚝섬은 기분만으로도 한결 시원했다. 맑은 강물이 푸르게 넘실거렸고, 넓은 백사장이 눈부 셨으며, 강둑의 수많은 미루나무들은 무성하게 짙푸르렀고, 수영객들의 환성이 물빛처럼 맑게 울 리고 있었다.……남자들은 수영을 하고 여자들은 뱃놀이를 한 다음 한 시간 뒤에 미루나무 아래 서 만나기로 미루나무 하나를 정했다. 남자들은 천막으로 가서 수영복을 빌려 입고 물로 뛰어들 었다.……미루나무 아래로 갔을 때 여자들은 벌써 그 그늘에 수박이며 사이다 같은 것들을 차려 놓고 있었다. 강둑 저편으로는 풋풋한 남새밭이 또 하나의 드넓은 강을 이루고 있었다.” (각주 5)
1980년대 말 한강 둔치가 공원으로 조성되면서 수영장, 캠핑장, 보트 놀이처럼 지난 50년간 뚝섬에서 사랑 받아온 즐길 거리들은 자연스럽게 공원의 일상이 됐다. 물론 새롭게 들어선 시설 들도 많다. C와 함께 공원을 천천히 걸으며 사람 구경을 시작했다. 인공 암벽장부터 씨름장, 농구 장, 축구장, 배드민턴장, 테니스장, 롤러스케이트장, X-게임장, 그리고 어르신들을 위한 게이트볼 장까지. 부족한 시설을 찾기 힘들 정도였다. 화창한 날씨 덕분인지 공간마다 운동을 즐기는 이들 의 활기가 넘쳤다.
어르신들의 아지트
우리는 공원 한쪽 그늘막 옆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한 어르신이 노천에서 머리를 깎고 있었다. 이 발사 할아버지의 자전거 짐받이에는 도구 상자가, 핸들에는 선풍기와 태극기, 성조기가 나란히 매 달려 있었다. 그 옆 그늘막 아래 좁은 공간에는 벤치와 테이블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데, 그마다 바둑 대국을 벌이는 어르신들로 빈틈이 없었다. 대국을 둘러싼 사람들의 표정 또한 사뭇 진지했다.
“탑골공원에서는 이제 바둑을 둘 수 없다더군.”(각주 6) C의 말을 듣자 리노베이션을 마친 오목공원 이 떠올랐다. 당시 담당 공무원은 ‘이곳에서 오랫동안 바둑을 두던 어르신들이 공원이 세련되게 바뀌고 나니, 한동안 자리를 못 잡으시다가 한적한 구석을 찾으신 모양’이라고 귀띔했었다.(각주 7) “이분 들도 아마 서울 곳곳에서 오셨겠네. 공원 안에서도 젊은이들이 붐비는 곳을 피해 이곳에 자리를 잡으신 게 아닐까.”
도시의 편의와 자연이 어우러진 한강공원에서의 피크닉
우리는 정원도 거닐어봤다. 힐링숲이나 장미원 같은 익숙한 공간부터 2024 서울국제정원박람회 때 조성된 정원, 조형물도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 오랜만에 공원을 찾은 C와 나는 시설의 규모와 훌륭한 관리 상태에 감탄했지만, 정작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여 있는 곳은 강과 가까운 잔디밭이었다.
오늘날 한강 양안을 따라 조성된 11개의 한강공원 어디서나 피크닉은 일상이 되었다. 뚝섬한 강공원 역시 예외가 아니다. 그늘막 설치가 허용된 구역에는 열고 닫는 텐트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유원지를 들어가는 길녘에 높다란 방수 제방을 지나면 긴 포플러 숲이 나오는데 이곳이 하 절엔 캠프촌이라 한다. 캠프촌이 되었을 때 풍경이 어떤지 모르겠으나 이날 우리의 행락 중 그중 정취 깊은 곳이 나에겐 이 숲이었다.”(각주 8) 90년 전 임화가 지금 이 풍경을 본다면 어떤 말을 건넬까.
나무 그늘 아래는 저마다의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가족, 친구, 연인 그리고 나 홀로 공원을 찾은 이들까지. 우리는 잔디밭에서 겨우 빈 곳을 찾아 작은 매트를 펴고 앉았다. 강 위에 떠 있는 별다방에서 사 온 커피를 홀짝이며 주변을 힐끔거렸다. 공원 입구와 중간마다 지정된 배 달 존에는 쉼 없이 음식이 도착하고, 사람들은 텐트와 피크닉 매트, 테이블을 대여해 자신만의 구 역을 만든다. 매점에서 직접 끓여 먹는 한강 라면 또한 빼놓을 수 없다. 도시의 편의와 자연이 묘하게 어우러진, 현대적이면서도 한국적인 행락의 풍경이다.
우리도 슬슬 출출해졌다. 1960년대부터 뚝섬 일대 강변에는 선술집이나 장어 요릿집 등 수상 음식점이 하나둘 들어섰는데, 1980년대에는 그 수가 70여 개를 넘길 정도였다고 한다. “한강 기슭에 통배를 묶어놓고 장사를 벌여온 주막들은 옛날부터 한강의 명물이었다. 적게는 한두 집에서 많기는 수십 채씩 몰려있는 강물 위의 이들 선술집들은 즉석 장어구이가 자랑.……구수한 연기가 강바람에 흘러 뽀얗게 감돌아가는 속에서 도회의 압박감을 소주 한잔에 풀어보는 낭만은 강변의 현대식 관광사업계획에서도 살아남아줬으면 하는 게 샐러리맨들의 희망이지만 자갈채취선 등에 서 흘러내린 기름이 고기맛 속에까지 배어들어 탈이다.” (각주 9)
우리는 장어 요리 대신, 수상 식당에서 치킨과 맥주를 시켜 한강 나들이의 기분을 내보기로 했다. 강 위에는 나룻배나 돛단배 대신 오리배들이 한가로이 떠 있었다. 식당의 탁 트인 창밖으로 강 건너편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롯데월드타워와 잠실종합운동장 그리고 빽빽한 아파트 단지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한강 버스가 다가올 때마다 식당이 얹힌 플랫폼이 울렁거려 비로소 우리가 강 위에 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했다. 어느덧 다리 너머로 노을이 지고, 우리는 짧았던 공원 나들이를 마무리하기로 했다.
**각주 정리
1. 이 글의 제목과 첫 문장은 김승옥의 단편 소설 『서울 1964년 겨울』(1965)의 제목과 첫 문장을 변용한 것이다.
2. 이서구, “애인 다리고 갈 사랑의 ‘하이킹 코-스’”, 『삼천리』, 1936년 6월호.
3. 임화 글·구본웅 그림, “경궤연선(京軌沿線) 下”, 「동아일보」 1938년 4월 17일.
4. 뚝섬 자벌레는 한강르네상스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전철역과 공원 을 연결하는 문화 공간으로 계획됐다. 2010년 권문성(아뜰리에17) 의 설계로 완공됐다. 개장 초기에는 전시 공간으로 운영됐으나 현 재는 가족 친화형 한강 문화 테마파크로 운영되고 있다.
5. 조정래, 『한강』, 해냄출판사, 2001, pp.137~138.
6. 2025년 7월 종로구청은 치안 유지를 이유로 탑골공원 내에 바둑, 장기 같은 오락 행위를 전면 금지했다. 이후 노인들은 종로구청이 대안으로 내놓은 서울녹지복지센터 분관 바둑실과 인근 종묘광장 공원으로 옮겨가 활동하고 있다. 김영호, “탑골공원 바둑·장기판 사라진 날…노인들 허탈 ‘우린 애물단지냐’”, 「동아일보」 2025년 9 월 7일.
7. 김정은, “회랑과 의자가 만드는 나의 공원: 오목공원 리노베이션”, 『SPACE(공간)』 2024년 11월호, p.23.
8. 3번 글
9. “서울 새풍속도(9): 한강 놀이터도 현대화 바람”, 「경향신문」 1970 년 10월 17일.
김정은은 성균관대학교에서 건축을,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조경을 공부했다. 2017년 ‘유원지의 수용과 공간문화적 변화 과정: 창경원, 월미도, 뚝섬을 중심으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공역서로 『정원을 말하다: 인간의 조건에 대한 탐구』, 공저로 『한국 조경 50년을 읽는 열다섯 가지 시선』이 있다. 『건축인(POAR)』, 『SPACE(공간)』, 『건축리포트 와이드(WIDE AR)』, 『환경과조경(laK)』에서 기자로 활동했다. 현재 『SPACE(공간)』의 편집장을 맡고 있으며, 건축과 도시, 조경의 경계를 넘나들며 ‘지금 여기’의 건축 문화를 기록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