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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주 중문대포해안 주상절리대 Columnar Jointing Area, Jeju
    수평적 깊이와 트멍경관 상부 공원은 덮개가 아니다. 현재 공원 부지를 덮고 있는 흙을 걷어내면 응고된 지구의 속살이 수평적으로 드러난다. 고고학자의 자세로 섬세하게 표토를 걷어내어 수직 경관으로만 바라보던 주상절리를 맨발로 걷는 일은 대자연과 내가 만나는 가장 친밀하고 근원적인 경험이 될 것이다. 수직은 수평과 관계 속에서 극적으로 경험된다. 우리가 제안하는 ‘수평적 깊이’로서 상부 공원은 주상절리의 수직성을 만나는 조형 언어이자 대지의 존재 방식이다. 인간의 고유한 자세를 특징짓는직립 보행으로 수평선에 직각으로 선 인간은 비로소 세계와 관계에서 새로운 지위를 획득한다. 그러나 거대한 수직 경관을 마주한 인간은 집단적으로 또 다른 수평선을 이루며 지질학적 숭고미를 생성한다. 주상절리는 하나의 액체 상태의 덩어리가 고체로 성상이 바뀌면서 발생하는 틈의 경관이다. 틈은 빈 공간을 만들고 빈 공간은 새로운 생명이 점유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든다. 우리는 지질학적 시간이 만든 틈새를 서서히 메꿔가는 생태계와 문명의 시간을 수평적 공간으로 번역하고자 한다(설계공모 당선작 ‘수평적 깊이와 트멍경관’ 작품설명서 일부). 수평선에 가장 가까운 절벽 끝에 다시 선다. 설계공모를 시작하며 방문한 지 꼭 5년만이다. 설계공모를 관통했던 생각이 얼마나 유효했으며 어느 정도 살아남았는 지 돌이키는 마음이 쓸쓸하다. 공모 당선안과 비교하면 절반의 완성이라 부르기도 부끄럽지만, 지질 유산을 대하는 태도의 변화를 시작하는 첫걸음이라는 믿음에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고민을 대표해 그 과정을 짧게 기록하고 공유한다. 자연으로 되돌리는 7년 여정의 기록 제주도 기념물 제50호 중문대포해안 주상절리대는 2005년 1월 6일 국가지정문화재인 천연기념물 제443호로 승격됐다. 주상절리대 경관 개선 사업의 시작은 재단법인 아름지기가 2012년 제주도의 문화재 안내판을 전수 조사하는 과정에서 제주도 문화재의 실태와 문제점을 파악하는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6년 제주에서 개최된 국제 학술 심포지엄에 초대된 건축, 조경, 디자인 분야의 전문가들은 주상절리대를 방문해 혼잡한 상부 공원과 관람 데크를 돌아보고 문화재와 유리된 디자인의 문제점을 공유하고 토론했다. 2017년 아름지기는 제주특별자치도와 자연 및 문화유산 공공디자인 개선 업무협약을 맺고, 자연유산과 문화유산에 관련된 주요 보존 및 정비 사업, 디자인 관련 사업을 추진함에 있어 상호 협력을 약속하고 첫 대상지로 주상절리대를 선정한다. 주상절리대가 가장 개선이 시급한 문화재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같은 해 ‘중문 주상절리대 관람로 개선 및 주변환경 정비사업 종합계획’을 수립하며, 분야 책임을 맡았던 정욱주 교수(서울대학교)와 이민아 소장(건축사사무소협동원)을 이후 과정의 MP로 위촉한다. 종합계획을 통해 아름지기와 연구진은 주상절리 상부 공원의 구성과 시설이 지질 유산의 잠재력을 오히려 저해하고 있다고 진단하고 공원의 방향성을 재설정하는 태도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단언한다. 이에 기초해 국제설계공모를 실시하고, 2018년 11월 30일 당선작인 ‘수평적 깊이와 트멍경관’을 선정한다. 2019년 4월 본격적으로 설계를 시작, 2021년 2월 1일 문화재심의를 조건부 통과하며, 2021년 11월 실시설계를 완료한다. 다음해 2022년 10월 1단계 사업에 대한 공사를 시작해 2023년 9월 개장했다. 주상절리대는 중문관광단지 2단계(동부) 조성 사업 부지에 속한 유원지로서 ‘씨가든’이라는 이름으로 지정된 곳이었다. 이 사실이 나중에 어떠한 파장을 일으킬지에 대해 과업을 시작할 당시 전혀 알지 못했다. 디자인의 초점과 방법론 과업의 목표는 제주 고유의 원경관을 회복하고, 자연 유산의 가치를 강화할 수 있는 관람 환경을 조성하고 시설물을 개선하며, 유사한 문제를 가지고 있는 제주도 천연기념물 일대 경관 개선 사업의 선례를 만드는 것이다. 설계 팀은 당선 직후 앞으로 펼쳐질 지난한 과정을 예상하며 앞으로 겪게 될 수많은 수정 요청에 대처하며 설계의 본질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다짐하는 다섯 개의 계획 방향과 15개의 설계 원칙을 수립했다. 계획 방향: 첫째, 열린 박물관 구현. 하나의 열린 박물관으로서 지질 경관의 공감각적 체험과 정보의 습득, 그리고 주체적인 탐구가 전역에서 펼쳐질 수 있도록 핵심 기반 시설을 제공한다. 둘째, 시간성의 공간화, 원경관의 회복. 지질학적 시간성과 용암의 흐름, 응고 등 주상절리대의 형성 과정을 극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원시적 지질 경관을 회복한다. 셋째, 제주 고유 경관의 중첩과 전개. 대자연과 지질경관의 바탕 위에 주상절리대 기반의 지역 문화 경관과 자연 발생적 식생 천이 과정 등 생태 경관을 조화롭게 재구성하여 전개한다. 넷째, 인공과 자연의 대비와 조화. 인공 구조물은 주상절리대의 체험과 감상의 차원을 높일 수 있도록 지질 경관에 보다 적극적이고 수평적이며 가역적인 방식으로 개입한다. 다섯째, 공공성 강화. 유료 구간을 재편해 주상절리대의 공공성을 확대하고 유산으로서의 가치를 강화하며 구역 간 시각적·공간적 단절을 최소화한다. 원칙의 구현: 원칙을 지키는 과정에서 뿔소라, 돌고래, 테우 조형물과 각종 포토스폿 시설물이 사라지고, 올레길과 주상절리를 가르는 담장이 낮아졌다. 외래 식물을 제거했고, 복잡한 포장과 휴게 시설이 단순하게 정비됐다. 기존 110m 길이의 관람 데크는 140m로 연장되며 주상절리대의 다채로운 모습을 내려다볼 수 있는 조망점이 추가됐다. 비로소 몽돌해안을 관람 데크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되면서 용암이 만들어낸 다양한 제주 해안 경관의 지질학적 일체성을 시각적으로 연결하게 됐다. 진입하면서 마주하는 첫인상은 용암이 만들어낸 제주의 돌들과 해안 식생이 대경관으로 자리 잡는 시간의 풍경으로 대체되었다. 관람 데크와 펜스는 경관의 수직성을 훼손하지 않고, 주상절리와 재료적 대비를 통해 원래의 고유한 것과 인공적으로 덧댄 것을 명확히 구분했다. 각종 시설물에 압도당해 있던 지질 경관의 품격을 서서히 되찾아가는 과정을 시작한 것이다. 지질 탐사와 설계: 가장 큰 설계 개념은 이질적인 상부 공원의 덮개를 없애 주상절리로 이어지는 용암 덩어리의 속살을 수평적으로 드러내는 것이었다. 불가피하게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암반층에 대한 정보를 필요로 했고, 통상적인 레벨 측량과 더불어 지질 탐사를 시작했다. 암반 측량을 위해 처음 채택한 방법은 굴절법 탄성파 탐사다. 굴절법 탄성파 탐사는 탄성파를 인공적으로 발생시켜 각 수신점에 도달하는 직접파와 선두파의 초동주시를 통해 작성된 주시곡선에 나타나는 직선들의 기울기로부터 지층의 속도를 결정해 지층경계면까지 깊이를 계산하는 원리를 적용한다. 이를 토대로 노출 구역에 대한 중간 설계안을 도출해 문화재 심의에 접수했다. 허가 조건으로 노출 구간에 대한 추가 탐사가 요청되어, 실시설계 과정에서 지표투과레이더(Ground Penetrating Radar)(이하 GPR) 탐사를 추가적으로 수행한다. GPR은 10~100cm 파장의 극초단파를 물체에 발사시켜 반사되는 전자기파를 수신해 물체와의 거리, 방향, 고도 등을 알아내는 레이더를 이용하여 지표, 지반상태, 매설물 등을 탐사하는 것이다. GPR 탐사로 추정한 암반의 깊이가 더 낮은 것으로 나타났는데, 탄성파와 GPR 탐사 결과의 차이를 설계 과정에서 냉철하게 검토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공사 과정에서 표토를 제거하고 암반을 노출하는 과정에서 암반이 매우 깊어 관람로 레벨과의 차이를 현장에서 해결하기 어렵다는 서귀포시의 의견이 있었다. 일부 노출된 암반을 활용하고 레벨 차이를 이용한 굴곡 있는 지형으로 연출할 수 있다는 설계팀의 입장과 달리, 지역 전문가들의 자문을 근거로 다시 복토해 평탄 지형을 만들고 암석 경관을 연출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주상절리 덩어리를 수평적으로 노출시키는 개념은 희석됐지만 화산 활동으로 만들어진 현무암과 그 사이를 점유하며 천이를 진행할 해안 식생 경관의 대경관을 처음 상상에 가깝게 조성하기 위해 힘을 합쳤다. 검은돌밭은 이렇게 탄생했다. 설계의 전개와 변형: 설계 초기, 기념물과 유적의 보존 및 복원에 관한 국제 헌장인 ‘베니스헌장’을 탐독했다. 자연유산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지만, 복원의 태도에 대한 시사점이 컸다. 한편으로 문화재 현상 변경의 5대 경관 지표인 장소성, 일체성, 조망성, 마루선, 왜소화의 관점에서 우리의 과업을 되짚어보았다. 원경관을 회복하여 장소성을 강화하고, 주상절리대를 왜소화시킨 불필요한 시설을 제거해 지질 경관을 극대화한다. 다양한 주상절리 유형과 해안 식생대를 조망하도록 시선을 다각화하고, 현 건축물들의 불규칙한 마루선을 상부 공원의 수평적 경관과 조화되도록 간결하게 만든다. 그리고 용암의 흐름을 가시화하고 마을과의 연계성을 존중해 문화재의 맥락과 일체성을 제고한다. 주상절리대에서 지켜야 할 원칙들을 도출했고 이 원칙이 디테일까지 연결되도록 노력했다. 그중 가역적 구조와 재료의 구분, 주상절리의 수직성과 해안 경관의 수평성은 디테일까지 가져가야 할 중요한 원칙 중 하나였다. 원칙을 디테일까지 가져가는 5년이라는 기간 동안 수많은 논의와 쟁점이 노출됐으며 상충되는 의견들 사이에서 대안을 선별하는 작업은 갈등을 초래했다. 현장에서의 의사결정은 긴박했고 모두의 상황이 절박했다. 제주도이니 건축물과 관람 데크에 현무암을 써야 하는 것 아니냐는 자문 의견이 많았다. 중간 설계까지 데크재 대안으로 검토했던 프리캐스트 콘크리트는 예산과 시공성의 문제로 무산되었다. 강두훈 주무관이 대안으로 시멘트를 주 성분으로 쓰는 관급 자재를 제안했는데, 기성품으로는 색과 마감이 현장과 맞지 않았다. 다행히 주상절리대의 중요성을 공감한 해당 업체가 우리가 원하는 색, 마감, 규격을 커스텀 제작해줄 수 있다고 해 공장 테스트를 거쳐 현장에 설치했다. 펜스 역시 골칫거리였다. 펜스 디자인의 원칙은 최소한의 디자인을 통해 주상절리의 수직성과 대경관을 훼손하지 않는 것이었다. 염분에 의한 부식 때문에 철재에 대한 우려가 컸다. 다시 목재로 가자는 의견이 제시됐다. 그러나 기존 관람 데크에서 경험한 것처럼 목재를 쓰면 부재가 두꺼워져 경관을 압도하기 때문에 좋은 대안이 아니었다. 유지·관리의 어려움을 서귀포시가 기꺼이 받아들여 철재로 결정하고 변경된 데크재와 하부 구조에 맞는 디테일로 변경 설치했다. 올레길과 검은돌밭을 가르는 낮은 콘크리트 담장은 검은돌밭의 간결한 바탕이자 대비를 위해 도입된 것이지만 지역 전문가의 의견에 의해 돌담으로 수정됐다. 건축물의 상실: 설계안의 핵심은 지질 유산을 대하는 새로운 태도와 체험의 방식을 디자인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건축물은 설계안의 핵심이었다. 설계 과정에서 방문자센터와 판매동의 2개 신축 건축물이 사라졌다. 1차 실시설계까지 완료된 상황이었다. 문화재심의 과정에서 건축물이 해안선에서 후퇴하고 규모는 축소됐지만 주상절리로 나아가는 체험의 시퀀스와 살아있는 지질학적 풍경을 건축물 내부로 가져오는 방법은 살아남아 있었다. 경관적, 교육적, 운영적 차원에서 건축물이 갖는 중요성은 더할 나위 없이 중요했다. 문화재심의 조건부 통과 후 인허가 절차를 밟는 동안 서귀포시로부터 절망스러운 연락을 받았다. 중문관광단지 개발사업시행승인(변경) 검토 협의 과정에서 ‘씨가든’으로 지정된 대상지가 중문관광단지 2단계(동부) 지역에 대한 환경영향평가 협의에 의한 환경보전방안 검토서의 적용을 받는다는 것이었다. 1996년에 작성된 환경보전방안 검토서는 주상절리층의 균열 또는 붕괴를 방지하기 위해 해안선에서 100m 이내 시설을 제한한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었다. 협의를 통해 변경의 여지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위원들의 불가 의견에 따라 건축물 없는 설계 대안을 다시 마련해야 했다. 대상지 대부분 영역이 해안선 100m 이내였기 때문이다. 실시설계 마감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성찰적 경관과 성찰적 과제 돌이켜보면 정말 많은 고비를 넘어왔다. 이 지난한 과정이 앞으로의 과정, 비단 주상절리대의 2단계 사업뿐만 아니라 제주의 수많은 관광지와 문화재 정비, 나아가 한국 국토의 자연 및 문화 유산을 복원하고 보존하는 일에 기여한 바가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개장 이후 뿔소라 조형물을 왜 없앴느냐, 아직 검은돌밭은 왜 흙밭이냐, 관람로가 짧다 등 여러 민원에 현장을 지키는 여러 분들이 힘들어한다. 대중의 인식과 태도가 변화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앞으로 유지·관리의 원칙을 가지고 변화에 대처하는 것도 중요할 것이다. 현장의 부산스러움에서 한걸음 물러나 밟아온 과정을 성찰하고 성과와 한계를 숙고해 과장 없이 기록하는 일이 자연유산을 다루는 다른 과업에 참조점이 될 수 있다는 마음으로 글을 마무리한다. 아름다운 주상절리대를 바라보며 가졌던 첫 마음으로 돌아가 제주 고유의 아름다움, 국토의 품격을 향상하는 데 작은 디딤돌이 되었다는 자부심을 가져 봐도 좋지 않을까. 이 과정에 동참해준 모든 분에게 감사드린다. 진행 김모아 디자인 팽선민 김봉찬·김아연·송민원·신준호·안형주 인터뷰 덜어내는 설계와 회복하는 경관 컨소시엄이 다양한 사람으로 구성되었다. 어떤 역할을 기대하며 구성했나. 김아연(이하 연) ‘제주 중문대포해안 주상절리대 경관설계 공모’(이하 주상절리대 공모)의 독특한 요구사항 중 하나가 디자인 감독이라는 특별한 포지션을 지정해 팀을 꾸리라는 것이었다. 디자인 감독으로서 자연과 지질유산을 철학적으로 다루고 싶었고,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와 지향과 태도를 공유할 수 있는 팀을 꾸리고 싶어 아뜰리에나무와 엠디엘을 초대했다. 건축가 김종규 교수(한국예술종합학교)가 먼저 연락을 주어서 설레고 감사했던 기억이 난다. 최종훈 소장(NIA건축)은 이 지난한 과정을 함께해준 동지다. 제주의 일인 만큼 제주의 경관과 문화를 잘 알고 있는 지역 전문가와 함께하는 게 핵심이겠다는 생각에 김봉찬 대표에게 전화를 했고 흔쾌히 수락해주어 팀을 완성할 수 있었다. 설계의 기본 방향이 묻혀 있던 것을 꺼내 보여주는 것이었다. 보이지 않는 발밑 공간에 대한 확신이 있었나. 연 초반 아이디어 회의 때 김봉찬 대표가 제주도는 조금만 땅을 걷어내면 암반이 잘 드러나고 이 대상지도 그런 상황일 거라고 의견을 던져주었다. 그 순간 팀원 모두가 ‘아 이거다’라는 생각을 했다는 걸 서로의 표정을 보는 것만으로 알 수 있었다. 당시 상부 공원을 비롯해 중문대포해안 주상절리대(이하 주상절리대)를 뚜껑처럼 덮고 있는 모든 것들이 주상절리대와 이질적이었다. 이를 걷어내 가려져 있던 암반을 드러내고, 용암의 흐름을 일체성 있게 보여주는 것을 설계 핵심 개념으로 삼게 되었다. 김봉찬(이하 찬) 제주에서 여러 프 로젝트를 하며 제주 토양과 용암 지대에 대한 경험이 쌓인 상태였다. 주상 절리대가 있다면 반드시 어딘가에 용암이 흘러나온 모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어찌 보면 가벼운 추정에 불과할 수 있는 의견인데도 김아연 교수를 비롯해 팀원들이 보내준 지지에 감동했었다. 신준호(이하 호) 스누피가든의 암석정원을 만들며 비슷한 작업을 했던 터라 걱정을 덜했다. 설계 과정에서 이 암석정원의 시공 사례를 보여주며 토양을 걷어낼 때 암반이 손상되는 걸 걱정하는 문화재위원들을 설득하기도 했다. 연 현장에서 작업을 하다보니 생각보다 암반이 더 깊이 있어 대책 회의를 한 적이 있다. 더 깊게 흙을 파내다보니 예상보다 주동선과 레벨 차이가 커진 상황이었다. 설계팀은 오히려 드라마틱한 경관이 연출될 수 있다고 판단했는데, 서귀포시는 암반을 다시 흙으로 덮기를 원했다. 찬 제주도에서 흙을 파내 암반을 드러내는 조경설계를 할 수 있는 이유는 토양 특성 때문이다. 반도인 국내 육지 지역에서는 흙을 파내면 물이 고여 진흙탕이 되는 경우가 많은데, 제주도의 경우 화산 활동으로 만들어진 토양이라 일반적으로 배수가 잘된다. 이번 프로젝트에 더 많은 암반을 드러내지 못한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무난하게 오갈 수 있는 평지를 만드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에 아마 가파른 암반 지형을 만드는 데 다들 낯섦을 느낀 것 같다. 결국 기존 레벨로 흙을 덮게 되었는데, 만약 원래 의도대로 흙을 더 파서 일부 암반을 노출했다면 지금보다 극적이고 사면의 풀밭과 극명한 대비를 이루어 신비스러운 공간이 연출됐을 것이다. 주상절리대 공모에 제출한 작품 이름이 ‘수평적 깊이와 트멍경관’이다. 서정적인 느낌이지만, 달리 보면 희미하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송민원(이하 원) 보여주고자 한 것이 명확했기에 다른 작품명 후보는 없었다. 현장 설명회와 답사를 다니며 주상절리대는 물론이고 바다 가까운 곳까지 내려가 볼 기회가 있었는데, 수직 기둥이 주는 깊이감이 예상한 것보다 더 크고 압도적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저 먼 바다에서는 그러한 기둥도 수평적으로 보이고 바다의 수평선과 평행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 경험을 통해 수평적 깊이와 틈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설계 개념이 잡힌 뒤에는 땅을 걷어내고 만들어진 틈을 어떻게 잘 채워 나가고 그 틈을 어떻게 잘 보여줄 것인지 고민했다. 한창 고민을 하던 중 신준호 소장이 제주어로 틈이 트멍이라는 걸 알려주었다. 틈보다는 트멍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게 더 제주스럽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 트멍은 실제로 제주도에서 많이 쓰는 말이다. 트멍 국수처럼 가게 이름에서도 쉽게 볼 수 있고 골목시장을 트멍장이라 일컫기도 한다. 틈을 트멍으로 바꾸는 것만으로 제목이 주는 효과가 극대화될 것이라 예상했다. 연 주상절리는 용암이 공기와 바다를 만나며 틈이 생긴 결과물이니 트멍은 중요한 키워드였다. 그 용암이 수직 형태로 굳기 전까지는 수평으로 흐르게 된다. 따라서 수평과 수직, 이 두 개의 관계를 제목에서 표현하는 것 역시 중요했다. 설계설명서는 심사위원을 설득하는 매체이기도 한데, ‘이소케팔리’를 비롯해 철학 용어를 많이 사용했더라. 설계 의도가 잘 전달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부담감은 없었나. 원 철학적 표현과 글이 중요했지만 현장 사진을 비롯해 심사위원을 쉽게 이해시킬 수 있는 콜라주, 투시도 등을 많이 사용했다. 연 이 프로젝트에서는 무언가를 주장하는 것보다 땅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보여주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감사하게도 심사위원들이 그 의도를 읽어준 것 같다. 호 주상절리대 공모의 특성 중 하나는 대규모 문화재를 대상으로 하는 경관 설계공모였다는 점이다. 따라서 개별 시설이나 구조물을 강조하기보다 대상지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경관이 더 잘 드러나도록 무언가를 덜어내는 데 초점을 맞췄다. 설계설명서 역시 그런 태도를 담고 있는 문서이고, 팀원들도 모두 동의해 이견이 없었다. 오히려 나중에 다른 팀의 작품들을 보며 “저렇게 과감할 수도 있구나” 하고 놀랐다. 대상지에서 색이 주는 느낌이 강하다고 느꼈다. 까만 바닥과 파란 바다. 설계팀이 대상지를 처음 마주했을 때 느낀 감각이 궁금하다. 무엇을 보강하고 무엇을 덜어냈나. 안형주(이하 주) 처음 현장에 간 날 바람이 강하게 불고 비도 좀 왔었다. 밑에서 치는 파도가 상부 공원까지 넘어오는 것을 보면서, 주상절리는 이미 고형화됐지만 그틈 사이에서 일어나는 자연의 현상들, 변형과 침식, 풍화 작용 등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자연의 현상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대자연이 주는 숭고함도 중요하지만, 주상절리대라는 거대한 자연이 한순간이 아니라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졌다는 걸 잘 풀어내고 싶었다. 원 나는 붉은 바닥 포장과 각종 조형물에 시선을 빼앗겼다. 주상절리와 상관없는 야자수, 돌고래와 뿔소라 조형물 등이 오히려 이 공간의 주인공 같았다. 이때의 충격이 뭔가를 더하기보다 덜어내는 설계를 해야 된다는 생각으로 이어진 것 같다. 설계 주안점 중 하나가 원 경관과 그 가치 회복이다. 누군가는 종려나무와 야자수가 자라고 다양한 조형물이 있던 주상절리를 원 경관이라 여길 것 같은데, 이 회복의 기준 시점을 어떻게 설정했는가. 우리는 흔히 관광지하면 그늘이 있고 앉아서 무언가를 먹고 마실 수 있고 기념사진을 남길 수 있는 곳을 떠올리는데, 이런 요소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찬 사실 주상절리뿐 아니라 한국 관광지 대부분이 대상지의 본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감동을 끌어내기보다는 대상지와 아무 연관 없는 요소를 둔다. 바꿔야 한다. 기존의 종려나무와 야자수, 포토존 역할을 하던 시설물이 없어지며 많은 민원이 들어오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하지만 크게 소리 내지 않을 뿐 새롭게 바뀐 주상절리대의 모습을 바람직하게 여기는 사람도 많다. 부정적인 민원만 고려하는 것은 종합적인 평가라고 볼 수 없다. 원 체험은 주상절리대에서 제법 떨어져 있는 주차장에 들어선 시점부터 시작된다. 따라서 주차장에서부터 주상절리대를 직접 감상할 수 있는 관람 데크까지 이어지는 체험의 과정이 중요하다. 관람 데크까지 가는 길 중간에 매점이 하나 있는데, 매출 향상을 위해 사람들이 오래 머무르도록 유도하는 장치가 여기저기 놓여있는 상황이었다. 결국 사람들은 주상절리대가 언뜻 보이는 관람 데크에 다다르고 나서야 극적 경험을 하게 된다. 우리는 관람 데크에 도달하기 전까지의 경험이 좀 더 연속성을 갖기를 바랐다. 주상절리대까지 걸으며 용암이 흘러 바다에 이르러 주상절리가 되었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느끼기를 바란 것이다. 종려나무, 야자수, 여러 조형물이 이 체험에 집중하지 못하게 만드는 방해 요소이기 때문에 없앤 것이지 싫다거나 한 게 아니다. 지금도 전체 경관과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 남아 있다. 이곳의 변화가 좋은 반응을 얻게 된다면, 2단계 사업 부지에서도 경험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는 요소를 제거하자고 설득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체험이 중요한 곳인 만큼 스토리텔링이 큰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원 처음 현장 답사를 갔을 때 주차장에서 팀원들을 만났는데, 우리가 밟고 있는 주차장도 사실 주상절리라는 대화를 나눴다. 보이지 않지만 발 딛고 있는 땅부터 먼 바다가 보이는 곳까지 하나의 커다란 주상절리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주차장에서부터 주상절리대를 향한 기대감이 점차 커지게 만들고 싶었다. 검은돌밭이나 결국 실현하지는 못한 건축물도 이런 경험의 확장을 생각하며 계획한 것이다. 주상절리가 대경관인 만큼 하나하나의 요소에 집중하기보다 전체적으로 잘 어우지게 만들고 수평적 경관과 그 가치를 드러내는 데 집중했다. 주 새로운 경험과 시퀀스에 초점을 맞춰 설계를 했다. 만약 이곳이 공원이었다면 전망대나 관람 데크 디자인에 더 신경 썼겠지만, 주상절리대라는 천연기념물을 바라보는 곳이기에 입구에서 주상절리대에 이르는 과정과 몰입을 위한 배경과 장치에 주안점을 두고 설계를 했다. 연 결국 주상절리는 용암이 흘러 바다로 가는 여정이다. 용암이 흐르는 방향에 맞춰 사람들도 흘러가기를 바랐다. 콘크리트를 주요 재료로 쓰고 싶었던 이유도, 액체 상태가 굳어 단단해진다는 물성이 액체로서 용암이 굳어 고체인 주상절리가 되는 점과 같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디자인 전략 중 하나가 오래된 것과 새로 생긴 것, 수평과 수직, 어둠과 빛, 가까운 곳과 먼 곳, 높음과 낮음, 밀폐와 개방, 부분과 전체, 작은 것과 큰 것 등의 대비와 반전이었다. 이 대비와 반전이 가장 잘 드러나는 곳이 어디라고 생각하나. 호 지금 당장 가장 강한 대비를 느낄 수 있는 곳은 관람 데크라고 생각한다. 검고 거친 질감의 현무암 위를 가로지르는 관람 데크의 날카로운 선이 만드는 시각적 대비감이 뚜렷하다. 새로 조성한 진입 공간 또한 시간이 지나 식물이 자라나면 단단하고 묵직한 콘크리트 포장과 부드럽게 흔들리는 녹지의 대비감이 더욱 선명해질 것이다. 해안의 식생을 더 가까이에서 관찰할 수 있도록 검은돌밭에 암대극(Euphorbia jolkinii)을 주로 심었는데, 일반적인 식물과 달리 여름철에 휴면을 하고 겨울철 생장과 개화를 하기 때문에 그 존재가 아직 드러나지 않고 있다. 바위틈 식재를 위해 작은 규격의 식물들을 충분한 간격을 두고 식재했기에 당장은 다소 비어보일 수 있지만, 2년 정도 시간이 흐르면 지금과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질 것이다. 원 설계를 하면서 베니스헌장을 자주 읽고 참고했다. 헌장에 따르면 새로 덧댄 것은 기존의 것과 대비되어야 한다. 그렇기에 인공적인 것은 더 인공적으로 표현해야 기존의 것들이 드러날 수 있다는 점을 되새기며 설계했기에 좀 더 명쾌한 대비가 가능했다고 본다. 주 소나무숲이 떠오른다. 소나무숲을 통과하는 산책로를 길고 구불구불하게 만들어 전망대를 향해 빠져나왔을 때 느끼는 개방감이 더욱 커지게 계획했다. 실제로는 계획했던 것만큼 긴 선형의 산책로를 만들지는 못했지만, 실현되었다면 숲의 안과 밖의 대비감이 더 크게 느껴졌을 것이다. 관람 데크의 높이나 너비, 폭, 색상 등을 어떻게 정했는지 궁금하다. 연 우선 설계공모안에서 매우 많이 바뀌었다. 기존 관람 데크를 철거하고 나니 예상과 다른 부분이 많았다. 시공 팀이 정밀하게 현황을 측량하면서 설계안을 다시 다듬었고, 그때그때 현장에 맞게 결정한 부분도 있다. 많은 고민을 하며 설계했지만 시공을 할 때서야 드러나는 밑의 지형이나 시공의 문제는 예측할 수가 없다. 현장에서 발주처와 시공 팀이 노력해준 덕분에 관람 데크를 무사히 완성할 수 있었다. 원 주상절리로 통칭해 부르고 있지만, 이곳에서 볼 수 있는 주상절리의 종류를 서너 개 정도로 나눌 수 있다. 검은돌밭에서 시작해 몽돌해안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종류를 순서대로 다 볼 수 있도록 경로를 설계하면서 길이가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시공하면서 실제 길이가 줄어들기는 했지만. 관람 데크가 주상절리를 감상하는 데 방해 요소가 되지 않기를 바랐지만, 단체 관광객이 한번에 몰릴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폭이 넓고 많은 사람이 머무를 수 있는 넓은 장소도 계획해야 했다. 그래도 기존의 관광 형태처럼 최단거리로 주상절리를 보고 기념사진을 찍고 바로 돌아 나오는 식의 체험이 이루어지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설계를 해나갔다. 새로운 데크를 설계하는 과정에서 난간을 철거하고 바닥만 남아 있던 관람 데크의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수평의 경관을 아무 방해 없이 바라볼 수 있어 좋았지만, 안전 문제를 고려하면 난간을 세우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소재의 경우 주상절리를 잘 볼 수 있게 하는 것만큼 해안가에서 얼마나 오래 잘 버티고 서 있을 수 있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수용할 수 있는지도 중요했다. 한꺼번에 여러 학교 학생들이 단체 방문하는 경우도 있으니 관람 데크의 하중과 경도를 고려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연 목재가 무게는 가볍지만 시각적으로 두꺼운 느낌이 드는 소재라 되도록 쓰지 않으려 했다. 원 소재는 물론 설계 측면에서 최대한 데크가 가볍고 얇아 보이게 하는 데 신경을 썼다. 색도 주상절리와 이질적으로 느껴지지 않도록 무채색을 사용했다. 특정 각도에서는 관람 데크 난간이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특정 각도에서는 관람 데크 난간이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원 난간의 형태와 모양에 대한 시뮬레이션을 아주 많이 했다. 기존 관람 데크의 난간 살이 두꺼워서 주상절리를 온전히 바라볼 수 없었기에 더 세심하게 설계했다. 열 가지가 넘는 대안을 실험했다. 3D 모델링을 한 후 여러 각도에서 바라보며 난간 살이 서로 겹쳐지며 마치 없는 것처럼 보이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폭과 간격을 조정했다. 난간의 구조가 어느 정도 완성됐을 즈음에는 손에 닿는 부분에 별도의 소재를 올릴 것인지, 소재를 올린다면 어떤 형태로 손에 쥐어지게 할 건지 고민했다. 최종적으로는 단축이 길지 않은 반타원 형태의 목재를 난간에 덧대 손잡이로 삼았다. 주상절리대 공모 당선작이 발표된 뒤 ‘조경이상, 조경 난상’이라는 토크쇼가 열렸었다. 그때 아무것도 하지 않고 두는 조경에 대한 논의가 있었는데, 당시 김아연 교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더 큰 용기가 필요하다”는 답변을 남겼다. 그때의 관점은 지금도 유효한가. 연 여전히 유효하다. 건축이 무언가를 만들고 세워 증명해야 한다면 조경은 본래 있던 것을 덜어내면서도 전문성이나 가치를 증명할 수 있는 디자인 분야다. 특히 주상절리대나 문화재, 천연기념물 같은 자연 유산을 다룰 때, 원래의 아름다움을 드러내기 위해 무엇을 없애야 하는지, 인공적인 것을 어떻게 덧대야 하는지는 디자이너만이 고민할 수 있다. 이 프로젝트를 하며 도면에서 새로운 무언가를 증명하려고 하지 말자고 계속 되뇌었다. 이건 나뿐만 아니라 팀원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가치이자 철학이라고 생각한다. 찬 지구는 원래 아름답다. 주상절리는 특히 세계적인 지질 유산에 속할 정도의 핵심 경관이다. 무언가를 붙이는 순간 군더더기가 된다는 건 모두가 너무 잘 알고 있는 사실인데, 욕심 때문에 자꾸 세우고 눕히는 일들을 벌여온 게 아닐까. 본질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것, 그것이 중요하다. ‘경관’ 설계공모라는 점이 참 독특했다. 일반적으로 주상절리를 대상으로 한 공간을 설계할 경우 ‘지질공원 설계공모’를 열 테니 말이다. 공원 설계와 경관 설계는 어떻게 다른가? 주 공간을 설계한다기보다는 원래 있던 것들을 더 잘 보이도록 만드는 일이다. 원 설계를 할 때 타이틀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설계 과정에 큰 차이는 없었지만 공원 설계를 할 때 사람들이 어떻게 쉬게 하고 놀게 할지를 고민한다면, 이 프로젝트에서는 어떤 장면을 보여주고 그 장면을 통해 사람들이 무엇을 느끼게 할 것인지 더 고민했다. 호 공원 설계와 경관 설계를 구분지어 생각하지는 않았다. 공원에서는 사람들의 행위와 프로그램을 어떻게 이끌어낼지 설계한다면, 경관 설계는 땅과 하늘 등 자연이 얼마나 아름답고 신비로운지 설명하고 풀어내는 과정 같았다. 주상절리대 공모는 2년여의 준비 기간을 거쳐 열렸다. 그 과정이 설계를 하는 데 도움이 됐나. 가장 도움이 된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 연 기본계획을 수립한 연구팀이 주상절리를 어떻게 바라보고 다뤄야 하는지 원칙을 잘 정리해 공모지침서에 실어주어 큰 도움이 되었다. 그 연구 성과를 우리가 구현한 거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아름지기의 역할도 중요했다. 이 프로젝트의 시작을 추적하다보면 아름지기와 만나게 된다. 아름지기는 전통 문화의 아름다움을 지키고자 하는 비영리 문화재단인데, 주요 사업 중 하나가 궁궐 안내판 디자인 개선 사업이다. 이 사업의 영향으로 궁궐의 안내판이 문화재의 품격에 맞는 디자인을 갖추게 되었다. 문화재를 방문한 사람들을 통해 그 효과가 증명되자 많은 지자체가 벤치마킹을 하기도 했다. 제주도도 이에 관심을 가진 곳 중 하나였고, 제주도 문화재의 안내판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로 출발한 사업이 공공 디자인 영역까지 확대되면서 그 첫 번째 대상지로 주상절리대를 다루게 된 것이다. 아름지기의 노력과 역할이 우리가 이 주상절리를 떠난 뒤에도 계속 이어지길 바란다. 디자인 팽선민 글 김아연 서울시립대학교 교수 사진 연수당, 유다연, 황덕우(이내) 현장 설계 및 지원 디자인 감독: 김아연(서울시립대학교) 엠디엘(송민원, 안형주), 연수당(신준호, 나양현), 더가든(김봉찬) 설계공모 및 1차 실시설계 디자인 감독: 김아연 조경설계: 아뜰리에나무, 엠디엘, 더가든 건축설계: 김종규(한국예술종합학교)+M.A.R.U, NIA건축(최종훈) 발주 서귀포시청 관광지관리소 기획 및 코디네이션 재단법인 아름지기(신지혜, 전수현, 이은정) MP 정욱주(서울대학교), 이민아(건축사사무소협동원) 시공 세운(박성주, 강주현, 공재복), 일일종합건설(최잠석) 김아연은 서울대학교 조경학과와 동대학원, 미국 버지니아대학교건축대학원 조경학과를 졸업했다. 조경설계 실무와 설계 교육을 넘나드는 중간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제주 중문대포해안 주상절리대 경관 개선사업 설계팀의 디자인 감독을 맡았다. 자연과 문화의 접합 방식과 자연의 변화가 드러내는 시학을 표현하고 사회적으로 실천하는 일을 중요시 한다. 김봉찬은 제주대학교에서 식물생태학을 전공하고, 제주여미지식물원 식물과장을 거쳐 평강식물원 연구소장으로 일했다. 2007년 더가든을 설립해 생태학을 바탕으로 한 암석원, 고층습원 조성 분야에서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식물원 기획, 설계, 시공 및 유지·관리와 관련된 다양한 경력을 쌓아 왔다. 이번 인터뷰에는 줌 화상 회의로 참여했다. 송민원은 동아대학교와 서울시립대학교 대학원에서 조경을 공부했다. 시공과 설계를 아우르며 작은 공간부터 큰 경관까지 다양한 스케일을 다루는 데 흥미를 가지고 2015년부터 엠디엘(MDL)을 이끌고 있다. 신준호는 서울시립대학교와 동대학원에서 조경을 전공했다. 6년간더가든에 근무하며 김봉찬과 베케, 아모레성수, 모노하한남, 피크닉 어반포레스트가든 등 다수의 정원 작업을 했고, 『베케, 일곱 계절을 품은 아홉 정원』을 공동저술했다. 2021년 연수당(然樹堂)을 설립해 나양현과 함께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안형주는 서울시립대학교에서 조경을 전공했다. 스튜디오테라 인턴으로 시작해 제주 중문대포해안 주상절리대 경관 설계공모 당선과 함께 스튜디오테라의 소장이 됐다.
    • 김아연
  • 겐부도 공원 Genbudo Park
    거친 암석 표면은 수많은 잔물결로 이루어진 거대한 파도 같은 패턴을 선보인다. 단단한 벽은 육각형의 암석 단면이 층층이 쌓인 모습으로 드러난다. 일본 효고현 서쪽 도요오카(Toyooka)에 자리 잡은 겐부도 공원(Genbudo Park)은 약 160만년 전 마그마가 식으며 굳어지면서 형성된 주상절리를 볼 수 있는 자연 공원이다. 이 프로젝트는 오랜 세월 명승지였던 공원을 유료 시스템으로 전환하며 재개발 계획을 수립하는 것이었다. 설계의 주안점은 자연의 조각품이라 불리는 주상절리 경관을 방문객들이 입체적으로 체감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었다. 기존 요소들을 그대로 유지해야 하는 영역과 새로운 추가 요소 사이에서 디자인의 균형을 찾고자 했다. 콘크리트 스테이지 설계의 핵심은 특히 거대한 주상절리가 있는 겐부도, 세이류도(Seiryudo) 동굴 앞에 대형 콘크리트 스테이지를 만드는 것이었다. 각 스테이지 앞에는 벤치를 배치하여 방문객들이 눈앞의 동굴을 올려다보며 자연과 마주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플랫폼과 벤치의 표면을 샌드블라스트로 마감해 주변의 자연과 어우러지게 했다. 공원 산책로에도 동일한 재료와 마감 방식을 사용했고, 자연의 유기적인 선과 대비를 이룰 수 있도록 곡선과 직선을 활용했다. 시각적 개선 설계를 진행하며 기존 공원이 가진 몇 가지 문제를 발 견했다. 우선 동굴을 관람할 때 눈에 띄는 색상의 문제였다. 기존의 포장 일부는 노란색 톤으로 유지되었는데, 부드러운 색상임에도 불구하고 자연을 감상할 때 다소 집중을 방해하는 면이 있었다. 또한 방문객들이 동굴에 들어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설치된 울타리가 문제 요소로 작용했다. 방문객의 안전을 위해 낙석 위험 지역 출입 통제 울타리를 설치했는데, 안전 예방 효과는 있었지만 자연을 감상할 때 시각적 방해 요소가 됐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플랫폼을 도입 했다. 기존의 울타리를 철거하고 필요한 곳에 철봉 펜스를 새로 설치했다. 각 스테이지와 조화를 꾀하고 시각적 방해 요소가 되지 않도록 낮은 높이의 강철봉을 배치해 구조물의 존재감을 최소화했다. 또한 구조물들의 색상, 재료, 형태 등을 검토해 동굴과 관람자 사이의 공간적 거리감을 줄이는 동시에 관람자가 자연의 힘을 있는 그대로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색상과 디스플레이 기존 시설물 외벽을 노란색에서 회색으로 변경하고, 계단은 기존 기둥을 유지하며 난간 손잡이의 색상을 주황색에서 회색으로 변경했다. 새로 만든 매표소는 최소한의 규모로 만들어 자연이 메인 무대가 될 수 있게 했다. 매표소 외벽과 새롭게 설치되는 안내판에 동일한 인산염 처리된 금속 재료를 사용해 디자인 통일성을 꾀했으며, 콘크리트 스테이지와 마찬가지로 시간이 지나더라도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룰 수 있게 했다. 공원 내에서 휴식을 위한 건물에는 겐부도의 역사와 지질학적 배경을 설명해주기 위한 디스플레이 패널이 설치돼 있었는데, 이러한 패널들은 공간의 규모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정보를 담고 있었다. 전문가들의 도움을 얻어 패널에 필수적으로 담아야 하는 정보를 재구성하 였고, 그래픽을 통해 가독성을 높였다. 재편집 전반적으로 대상지에 대한 대대적이고 포괄적인 혁신 을 시도하지는 않았다. 활용할 수 있는 것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문제가 있는 부분에는 필요한 업데이트를 진행했다. 목표는 과거의 좋은 환경과 분위기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장소를 재편집하여 다음 세대의 방문자들 이 이 장소를 기억할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 Design Development CASE-REAL/Koichi Futatsumata, Koichi Shimohira, Ritsu Shibata Detail Design Kitai Sekkei, Matsuda Architect Office Construction Civil Works: Nakagawa Building Works: Seiwa Construction Supervision: Shinei Lighting Plan Tatsuki Nakamura(BRANCH LIGHTING DESIGN) Sign and Graphic Design BOOTLEG/Fumikazu Ohara, Takuma Fukuda Client Toyooka City Location Hyogo, Japan Area 1.47ha Completion 2022 Photograph Hiroshi Mizusaki 코이치 후타츠마타(Koichi Futatsumata)가 이끄는 케이스–리얼(CASEREAL)은 인테리어 및 건축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대상지의 고유한 환경, 목표, 과제를 바탕으로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기술적인 연구를 통해 각 공간의 분위기에 알맞은 본질적인 솔루션을 모색한다.
    • CASE-REAL
  • 에핑겐 수변 공원 Weiherpark Eppingen
    2022년 여름, 독일 크라이히가우(Kraichgau)에 위치한 목가적인 마을 에핑겐에서 바덴–뷔르템베르크 가든쇼(Baden-Württemberg Garden Show)가 개최됐다. 가든쇼 개최를 계기로 녹색 인프라를 조성하는 시도가 시작됐다. 시민과 방문객을 위해 도심에 인접한 현대식 공원이 조성되었는데, 모든 연령층의 요구를 만족시키는 다채로운 디자인과 공간 활용성이 특징이다. 지역 주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사회적 환경과 녹색 인프라를 구축하고, 도시 기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지속가능한 솔루션을 추구했다. 성벽과 하천 과거의 성벽을 따라 형성된 산책로는 대상지의 역사적 맥락을 드러낸다. 옛 에핑겐의 전형적 모습을 엿볼 수 있는 구 시가지의 범람원과 채마밭을 다시금 구현했다. 넓게 펼쳐진 지역들을 연결함으로써 구 시가지를 따라 연속적인 녹지축을 구축했고, 이는 엘젠츠 강(Elsenz River)의 복원된 하천으로 이어진다. 넓은 휴게 공간을 조성하는 동시에 하천을 가까이에서 감상하거나 가로지르며 오갈 수 있게 했다. 엘젠츠와 힐스바흐 강(Hilsbach River)의 생태계 회복을 꾀하는 생태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새롭게 조성한 오픈스페이스는 기존의 역사 유산을 존중하는 동시에 기후와 지속가능성에 대한 요구를 충족시킨다. 녹색 제방 공원은 크게 세 개의 지역으로 구분된다. 서쪽의 바흐베글레(Bachwegle), 중앙의 수변 공원, 그리고 동쪽의 힐스바흐와 엘젠츠 강 하구 지역 등이다. 이 세 지역은 새로운 무장애 산책로를 통해 서로 연결된다. 바흐베글레는 옛 도시 성벽을 따라 채마밭 등 복원된 정원들을 통해 도시 인근 지역에서 과일과 채소를 공급했던 과거의 도시 모습을 상기시킨다. 드넓은 공원의 잔디마당은 인근의 엘젠츠 강까지 이어지며 강 주변의 녹색 제방을 만들어 낸다. *환경과조경427호(2023년 11월호)수록본 일부 Landscape Architect Planorama Landschaftsarchitektur, Maik Böhmer Design Team Katja Erke, Fabian Karle, Mareen Leek, Halina Hoppe, Pamela Ackermann, Franziska Hofmann, Marion Guichard, Alexander Michl, Dana Synnatschke, Melanie Schlottau, Leon Fell, Franziska Albrecht, Eckhard Siegert, Matteo Basta, Giulia Guerrini, Maria Collender Plan Planorama Landschaftsarchitektur Planing Partner Hydraulic Engineering: Björnsen Beratende Ingenieure GmbH, Koblenz Ecological Construction Monitoring: GÖG Gruppe für Ökologische Gutachten, Stuttgart Archaeological Site Supervision: Bauforschung Klefenz, Rauenberg Explosive Ordnance/Exploration: Hettmannsperger Spezialtiefbau GmbH, Karlsruhe Soil Expertise: Töniges GmbH Beratende Geologen, Sinsheim Structural Design: SFB Saradshow Fischedick Berlin Flood Protection: Wald+Corbe, Hügelsheim Fountain Technology: TH Planungsbüro GmbH Client Stadt Eppingen, Eigenbetrieb Gartenschau 2021 Location Eppingen, Germany Area 5ha Completion 2021 Photograph Nikolai Benner 플라노라마(Planorama Landschaftsarchitektur)는 완성도 높은 도시 환경 디자인을 목표로 조경가, 건축가, 도시 디자이너, 그리고 엔지니어가 함께 하는 설계사무소다. 자연과 경관에 대한 감각적 경험, 디테일, 단순성, 명확성, 실질적 소재에 대한 연결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다년간 쌓은 노하우와 열정을 토대로 조경의 맥락 안에서 정교한 계획을 세우며, 대상지의 장소성을 고려하며 지속가능한 솔루션을 모색한다. 기획자로서 첫 아이디어부터 마지막에 놓는 돌 하나까지 완벽하게 만든다는 사명감을 토대로 프로젝트를 수행해나가고 있다.
    • Planorama Landschaftsarchitektur
  • 하마렌 액티비티 공원 트리톱 워크 Hamaren Activity Park Treetop Walk
    하마렌 액티비티 공원(Hamaren Activity Park)의 트리톱 워크(Treetop Walk)는 나이, 장애. 신체적 제약과 상관없이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15m 높이에서 퓌레스달(Fyresdal) 지역의 소나무 숲을 조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섬과 피오르드로 유명한 노르웨이 텔레마크(Telemark) 지역 중심부에 조성된 트리톱 워크는 새로운 방식의 자연 체험을 제안하는 노르웨이 최초의 캐노피 산책로다. 길이 1km, 폭 2m의 보드워크 산책로는 숲 바닥에서 솟아올라 퓌레스바튼(Fyresvatn) 호수, 나무 꼭대기 사이, 클로크카르하마렌(Klokkarhamaren) 산 능선을 지나 정상까지 이어진다. 산책로 끝에는 직경 50m의 거대한 원형 전망대가 있어 소나무 숲과 맑은 호수, 자연 경관을 이루는 암석층을 360도로 감상할 수 있다. 트리톱 워크가 꼭 해결해야 하는 과제는 사람과 자연을 다시 연결하고 방문객의 경험을 향상시키는 것이었다. 방문객이 숲의 캐노피 사이를 느리고 시적으로 산책하고, 하늘을 배경으로 두고 호수의 수면보다 50m 높은 곳에서 전망을 감상하며 극적인 감정을 느끼게 하고자 했다. EFFEKT의 대표인 투 헤셀베르크 포게트(Tue Hesselberg Foged)는 “비록 큰 그림에서 보면 작은 움직임에 불과하겠지만, 대상지의 숭고한 본질을 누구나 무료로 보편적으로 경험할 수 있도록 허용한 트리톱 프로젝트가 사람들에게 훌륭한 본보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설명했다. *환경과조경427호(2023년 11월호)수록본 일부 Architect/Landscape Architect EFFEKT Architects Client Consultant(Initiator and Advisor on the Developmentof Hamaren Activity Park) Faun Naturforvaltning Contractor Inge Aamlid Client Fyresdal Municipality Location Fyresdal, Norway Completion 2023 Photograph Rasmus Hjortshøj 이펙트(EFFEKT)는 덴마크 코펜하겐에 본사를 둔 연구 기반 디자인 스튜디오다. 2007년 투 헤셀베르크 포게트(Tue Hesselberg Foged)와 지누스륑게(Sinus Lynge)가 설립해 건축, 어바니즘, 조경, R&D 분야의 디자이너, 사상가, 건축가와 함께 스튜디오를 이끌어나가고 있다. 도시와 생활 공간의 질을 개선하고 인간과 지구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지속적인 사회적, 경제적, 환경적 변화 창출을 목표로 총체적인 디자인 해결책을 찾고 있다.
    • EFFEKT
  • 진주 철도문화공원 Jinju Railway Culture Park
    도시재생 2012년 진주시는 주약동에 있는 진주역사를 가좌동으로 이전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구 역사 주변 지역을 활성화하고 경전선 철도 폐선 유휴 부지를 활용할 방안이 필요했고, 2020년 ‘구 진주역 복합문화공원 조성 설계공모’를 진행하게 됐다. 대상지는 폐선 유휴 부지 전체에 대한 기본계획 중 1단계 복합문화공원 부지에 해당된다. 향후 복합문화공원 부지 옆으로 진주국립박물관이 이전되고, 시민광장과 도시숲, 문화거리가 조성될 예정이므로 대상지뿐 아니라 유휴 부지 전체를 아우르는 접근이 필요했다. 진주역으로 이용된 과거 100년 동안 주약동과 강남동은 철도로 인해 물리적으로 단절되었다. 이로 인해 두 지역은 도시 성장 과정에서 서로 다른 경관을 갖게 됐다. 두 지역을 연결하는 횡적 연결, 앞으로 개발될 부지와 철로가 놓인 대상지와의 종적 연결을 통해 공원의 골격을 형성했다. 또한 진주역의 장소 특성을 보여주는 흔적을 최대한 보전해 지역 주민이 추억을 회상하고 향유할 수 있도록 했다. 새로 조성되는 공간이 오랜 시간의 켜가 쌓인 기존 공간의 흔적과 어우러지도록 배치에 공을 들였는데,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거나 대비를 통해 조화를 이루도록 방향을 잡았다. 설계공모가 진행된 2020년 초봄, 대상지는 잡석과 잡풀이 무성하고 텃밭으로 이용되고 있었다. 철도문화공원으로 새롭게 태어난 대상지는 이제 지역 주민의 문화·휴게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주변 주거지의 모습도 점차 변화하고 있다. 과거 100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앞으로 성장할 100년을 지역 주민과 함께 가꾸는 공원이 되길 기대한다. 장소 가치의 재발견 100년간 철도 시설로 이용된 대상지에는 철도 부지의 흔적뿐 아니라 교통 시설로 대상지를 이용하며 지역 주민들이 그곳에 쌓은 추억이 남아 있다. 진주역은 교통수단이자 물자의 이동 통로였을 뿐 아니라 강철수, 김수정 등 지역 출신 만화가의 작품 속 배경 소재로 활용된 곳이다. 부지 내 차량정비고에 남겨진 한국전쟁 당시 총탄의 흔적은 시대의 상처를 보여준다. 또한 철길의 빠른 흐름은 지역의 동서 흐름을 막고 도시 단절을 가져왔으나, 철도 부지로 이용되기 전 대상지는 세 지역(주약동, 망경동, 강남동) 주민들의 만남과 교류가 활발하던 장소였다. 한 세기의 기억을 간직한 대상지에 새로운 것을 더하기보다 그 자체의 흔적을 찾아 보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진주역사, 차량정비고 외에도 기관차의 방향을 돌려주는 전차대, 여행의 설렘과 기대감을 더하는 철도 승강장, 경계부에 식재된 은행나무,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진주역 뒤편에 중심을 잡고 있는 느티나무 정자목 등은 본연의 기능을 상실했지만 진주 시민의 기억에 남아 있는 곳이다. 이러한 공간의 바탕위에 지역 주민의 문화를 담는 공간의 기능을 부여했다. 진주역 이전 후 10년간 방치되면서 철거된 선로, 승강장 그늘막(셸터) 등을 복원해 산책과 휴식 공간으로 활용했다. 시민들은 일상에서도 과거 대상지의 특성을 직접 느끼며 세대 간 추억을 공유하거나 과거에 대한 향수를 향유할 수 있게 된다. 구 역사와 차량정비고, 플랫폼 공간 등은 과거의 추억을 기억하고 미래의 문화를 담는 전시 및 공연 공간으로 재활용했다. 식재 전략 대상지에 남아 있는 나무들은 다양한 심상을 불러일으킨다. 진주역사 뒤편에 남은 느티나무 정자목에서 우리는 기차를 기다리는 승객에게 그늘을 제공하고 여행에 대한 이야기꽃을 피우는 장소로 이용되었을 나무의 모습을 상상했다. 철도 부지 경계부에는 키 큰 은행나무가 열식되어 있다. 이 나무들은 수벽이 되어 공간을 양분하고 공간의 배경이 되기도 한다. 건물 주변에 심긴 향나무의 굵고 구불구불한 줄기에는 다양한 과거의 이야기가 담겨있을 것만 같다. 최대한 이 수목들을 보존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일부 수종은 이식해 과거의 경관을 유지하도록 방향을 잡았으며, 과거 대상지 주변 지역에 자생한 오동나무, 대추나무, 대나무 등을 추가 식재 수종으로 정했다. 기존 수목을 보존하며 서로 다른 성격의 공간을 조화롭게 연결하기 위한 전략을 세웠다. 첫째, 동선마다 다른 식재 테마를 부여하고, 수종이 다른 수목 군락을 통과하며 방문객이 자연스러운 변화를 감상하도록 한다. 둘째, 수벽 역할을 하는 기존 은행나무가 지역 문화 시설로 활용될 차량정비고와 잔디마당을 둘러싸 위요감을 형성하도록 한다. 이때 열린 잔디마당의 공간감을 해치지 않고 시각적으로도 인상적인 경관을 만드는 데 주안점을 둔다. 대상지 종단으로 배치되는 주 동선은 과거 철로가 놓였던 장소에 약 400m의 커뮤니티 가로로 배치했다. 가로 양쪽에 메타세쿼이아를 열식해 강한 축선을 만듦으로써 옛 철로의 상징성을 강조했다. S자형 보조 동선에는 서부해당화를 식재해 계절의 변화를 느끼게 했다. 이는 추후 조성될 진주국립박물관 및 시민광장과 대상지를 자연스럽게 연계할 것이다. 대상지 중심부에 분리되어 있는 전차대와 잔디마당을 수종의 단순화와 정형적 식재 패턴으로 연결하고자 했다.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 맹꽁이의 대체 서식지로 조성되는 습지원에는 인근 맹꽁이 서식지를 참고하고 생활사를 고려해 갯버들, 물억새, 애기부들, 부처꽃, 꽃창포, 수선화 등을 식재했다. 습지원 남측으로 대상지와 함께 성장하는 백년의 숲에는 편백나무를 식재해 녹음과 그늘을 제공하고 남측의 자전거도로와 연계했다. 이러한 식재 계획을 통해 열린 공간과 닫힌 공간의 공간감을 극대화하고, 초화와 그라스로 계절의 변화와 자연스러운 경관을 연출하고자 했다. 포장과 시설 설계 과거의 흔적, 부분적 복원, 새롭게 조성되는 시설 간의 시간적 깊이의 차이와 이질성을 최소화하는 방안으로 시설물의 배치와 자재, 디테일을 고민했다. 최대한 재료 본연의 물성을 보여줄 수 있는 스틸, 목재, 콘크리트를 주요 소재로 선정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스틸의 부식과 목재의 색상 변화를 통해 기존 흔적과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했다. 전차대는 당초 커뮤니티 지원 시설과 접목한 야외 공연 시설로 계획했으나 차량정비고와 새로운 건축물 간 배치 문제, 전차대 자체의 희귀성을 고려해 최대한 보전하는 방향으로 계획을 수정해야 했다. 주변 환경을 투영하고 감상할 수 있는 미러폰드와 안개분수로 재설계된 전차대는 정적 공간이면서 과거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는 장소다. 철거된 철로와 승강장의 그늘막은 주민들의 기억을 회상하고 추억을 공유하는 데 중요한 시설로 판단해 커뮤니티 가로와 승강장에 복원하는 방향으로 계획했다. 또한 철로를 잘 표현해주는 요소로 선로, 침목(나무, 콘크리트), 자갈 등을 다양하게 변형해 시설과 포장 설계에 반영했다. 커뮤니티 가로에는 철로를 복원하고 레일과 ㄷ형강을 포장 경계재로 활용해 과거의 모습을 보여주려 했다. 복원된 철로에는 작은 정원과 휴게 시설을 결합해 다양한 활용을 모색했다. 포장재는 최대한 단순하게 선정하고, 복잡한 패턴보다 중성적 패턴을 도입해 대상지의 기존 흔적과 조화를 이루도록 했다. 공간의 분위기, 이용도에 따라 포장재를 달리했다. 주로 블록 포장과 콘크리트 포장을 사용하고 대상지의 종적 방향성을 살려 줄무늬 패턴으로 계획했다. 진행 김모아 디자인 팽선민 이상수·고태영·김영덕 인터뷰 변화를 수용하는 유연한 공원 세 설계사무소가 하나의 사무실을 쓰고 있다. 서로 어떤 관계인지, 컨소시엄을 구성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 궁금하다. 이상수(이하 수) 고태영 소장과는 스튜디오일공일에서 함께 일했다. 김영덕 소장과는 대학원에서 만났는데, 나보다 한 살 많지만 동기였기에 같이 공부했었다. 고태영(이하 영) 진주 철도문화공원 프로젝트 전에도 세 사무소가 공동 프로젝트를 꾸준히 진행해왔었다. 특히 건축공모 컨소시엄에 조경 팀으로 참여하면 업무량이 많지도 않고 부담이 적은 편이라 종종 참가했었다. 세 사무소 모두 시간적으로 여유로운 시점에 ‘구 진주역 복합문화공원 조성 설계공모’(이하 진주역공원 공모) 소식을 접했는데, 이 공모를 할지 말지 카카오톡 대화방에서 투표를 진행했었다. 찬성표가 많아 참가를 결정하게 됐고, 규모가 큰 조경 설계공모라 꽤 공을 들여 계획안을 만들었다. 수 우리 셋의 관계를 잘 표현해주는 단어는 ‘협동조합’이라고 본다. 설계사무소를 다니면 일은 바쁜데 월급은 넉넉지 않아 부침을 느끼기 쉽다. 세 소장 모두 개인 사무소를 차리게 됐는데 여러 사무소가 함께 사무실을 운영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무소 운영 경비도 절감이 되고, 이익 일부를 운영에 필요한 공동 자금으로 모을 수도 있다. 후에 사업을 확장하게 되면 이렇게 모은 자금을 이용할 계획이다. 정원 사업을 하고 싶다면 공동 자금으로 농장을 만드는 식으로 말이다. 사실 설계사무소를 다니다 보면 미래가 막막할 때가 있다. 퇴사하지 않고 남아 소장 자리까지 오르는 사람도 있지만, 중간에 견디지 못한 인재가 조경 분야를 이탈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직원들을 자신의 사무실을 차릴 수 있는 인재로 양성하고자 한다. 7년 차가 넘은 직원은 조경기술사를 취득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시스템을 고민 중이다. 현재는 세 개 사무소가 사무실을 함께 쓰고 있지만, 나중에는 네 개 혹은 다섯 개 사무소가 함께할 수도 있다. 그러면 할 수 있는 일의 범위도 커지고, 사무소 규모가 작아 큰 프로젝트에 참여하지 못하는 상황도 사라질 것이다. 영 사실 사무소 개소를 꿈꾸지만 여건이 여의치 않아 포기하는 사람이 많다. 그런 경우 우리처럼 협동조합 체제를 이용하면 비용 부담을 줄일 수 있고, 함께 큰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일을 배울 수도 있다. 개인이 추구하는 방향의 작업도 계속할 수 있다. 변호사가 하나의 법인 아래에서 각자의 일을 수행하는 것과 비슷한 형태라고 보면 된다. 세 소장의 주특기가 다를 것 같다. 공모를 진행하면 이에 따라 특정 부분을 담당하기도 하나. 수나는 설계공모 프로젝트를 주로 해왔다. 그렇다보니 아무래도 실시설계에서 부족함을 느낀다. 고태영 소장의 경우, 정원도 직접 시공하고 현장 설계에 강한 편이다. 김영덕 소장은 설계뿐 아니라 엔지니어링, 인허가 업무를 두루 경험해왔다. 덕분에 서로의 강점이 서로의 부족함을 보완해준다. 세 사무소의 직원들도 궁금한 점이 있으면 경계 없이 묻고 답할 수 있어 좋다. 모두가 배치안을 한 번씩 그려보고 토론을 한다. 이를 취합해 최종 마스터플랜을 만든다. 만약 당선될 경우, PM(프로젝트 매니저)과 메인 디자이너를 정하고 몇몇 직원이 서포트 하는 형식으로 일을 이어나간다. PM을 비롯한 팀의 형태는 각자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의 상황과 개수에 따라 유기적으로 조정함으로써 균형을 맞추고 있다. 영 공모를 진행할 경우, 세 사무소가 하나의 회사가 되어 일을 한다. 사무소의 구분 없이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공유하고 발전시켜 최적의 안을 만드는 데 집중한다. 누구는 마스터플랜을 그리고, 누구는 디테일을 발전시키고 하는 식을 지양하고 있다. 대상지가 철도와 역사라는 강력한 콘텐츠가 있는 땅이다. 이처럼 특성이 강한 대상지를 다룰 때 고려하는 점은 무엇인가. 김영덕(이하 덕) 공모지침 자체에서 어느 정도 대상지 활용 방안과 틀을 정해놓은 상태였다. 의외로 현장에 방문했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부지 경계를 따라 일렬로 늘어선 키 큰 은행나무와 전차 사이의 땅 같은 요소였다. 오랜 시간이 축적되어야만 만들어지는 것들이라 이러한 요소를 살리는 방향으로 계획을 세워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영 발주처가 요구한 조건이 모두 납득이 갔다. 맹꽁이 서식처라는 생태적 요소, 철도 역사와 차량정비고 같은 문화재적 요소 모두 보존 가치가 충분했다. 아쉬운 건 우리가 사는 곳이 서울과 경기권이다 보니 진주라는 대상지의 특성을 잘 알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다행히 진주시 총괄계획가와 도시국장, 공무원이 단기간에 파악할 수 없는 대상지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히 들려주어 큰 도움이 됐다. 대상지의 특성이 강한 곳을 설계할 때 딱히 고려하는 점은 없다. 철도와 같은 역사적 콘텐츠가 아니더라도 어느 대상지든 숨은 콘텐츠가 있기 마련이고, 모든 대상지가 도시 맥락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심도 있게 분석한다. 수 대상지는 워낙 색이 강한 땅이고, 우리 모두 그 땅을 존중해야 한다는 점에 동의했다. 그 생각은 당선 후 더 강해졌다. 사실 대상지를 분석하기는 하지만 그곳에서 살아온 사람은 아니기에 사람들이 그 땅을 어떻게 이용해왔는지 살피기 어렵다. 진주시 총괄계획가와 도시국장을 만나 진주역이 사람들의 생활 통로이자 지역의 작은 역사를 담아왔던 공간이라는 설명을 들으며 대상지의 가치와 그곳을 보존해야 하는 이유를 더 깊게 느끼게 됐다. 현장을 처음 마주했을 때, 보호수나 박물관도 좋았지만 공간 자체에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좋았다. 역사로 들어가면 나타나는 플랫폼, 플랫폼에서 이어지는 얕은 경사로, 기차를 기다릴 때 햇빛을 가려주는 그늘막 같은 것들 말이다. 첫인상에서 느낀 감각이 방문자에게도 전해지도록, 오래된 공간에서만 느낄 수 있는 분위기와 요소가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방향으로 설계를 했다. 짓는 과정에서 사라진 게 많아 역사와 차량정비고 앞 잔디마당이 좀 끊긴 느낌이 들어 좀 아쉽다. 덕 그래도 마스터플랜과 현재 시공된 모습이 크게 다르지는 않다. 진주시가 우리를 믿어준 덕분이다. 대상지가 도심 한가운데를 가로지르고 있다. 관점에 따라 선형으로 느껴지기도 하고 면으로도 읽히는데, 어떤 공간이라고 인식하고 설계했나. 영 철도라는 선적 요소가 가장 크게 느껴졌다. 철도에서 발생하는 소음이나 분진을 막기 위해 경계를 따라 심은 키 큰 은행나무도 선의 느낌을 더 강조해주고 있었다. 조금 끊겨 있기는 하지만 대상지 전체에 열식된 은행나무가 긴 선을 그리고 있었다. 반면 지형에 따라 나뉜 공간들은 면적 느낌이 강하다. 지형이 낮은 공간은 자연스럽게 논밭으로 쓰이며 습지화되어 맹꽁이 서식처로 변한 반면, 높은 단은 과거 대상지가 철도로 이용되었을 때 깔렸던 자갈과 쇄석으로 인해 건조하다. 그로 인해 공간이 크게 구분이 된다. 도시적 맥락에서 바라봤을 땐 선형 공원이 맞지만, 그 속에 배치된 공간들은 면적 특성을 갖는다. 낙후된 원도심 한가운데 있는 공원인 만큼, 지역과 지역을 연결하는 역할이 중요한 곳이다. 동선의 큰 틀은 어떻게 잡았나. 수 지역과 지역을 잇는 방법을 크게 고민하지는 않았다. 이미 대상지에 철도라는 강력한 요소가 있고 본래 사람들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던 공간이라 길을 터주기만 하면 지역과 지역을 이을 수 있는 잠재력을 충분히 가진 곳이었다. 게다가 지구단위계획 차원의 자전거도로가 이 공원을 관통하고 있고, 2단계 사업이 완료되어 대상지 북측에 국립진주박물관이 들어서면 더 많은 사람이 공원을 오가게 될 것이다. 철로라는 물리적 선은 사라졌지만 새로운 프로그램이 사람과 사람, 지역과 지역을 연결하게 되는 것이다. 좀 더 신중하게 접근했던 지점은 100년간 철로에 의해 단절되었던 동쪽과 서쪽 마을을 연결하는 것이었다. 단순히 길을 두어 연결하기보다는 주변 맥락에 어울리는 기능을 공간에 부여하고자 했다. 2단계 사업에 따르면 국립진주박물관뿐 아니라 공원의 경계를 따라 문화 가로가 들어서게 된다. 이러한 가로와의 연결을 고려해 동선을 그리고 다듬어 나갔다. 영 공원 내로 이어지는 자전거도로를 계획할 때 고민이 많았다. 지구단위계획에 따르면 본래 선로가 놓였던 자리에 자전거도로가 들어서게 된다. 하지만 철도문화공원에서는 선로를 보존해 일종의 테마 요소로 사용하고 있다. 기존 자전거도로의 선형을 자연스럽게 받게 되면, 보행자와 자전거 이용자가 길을 공유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오랜 고민 끝에 자전거도로를 바깥으로 조금 우회해서 돌리고 보행자 전용 도로는 따로 두었다. 덕 필지의 경계에 따라 길의 선이 바뀌기도 했다. 공모 당시 제출한 계획안에서는 대상지 동서를 연결하는 동선이 꽤 뚜렷하고 강한 편이었다. 그런데 도시국장이 이곳이 역으로 사용되기 전에는 강남동, 주약동, 망경동이 만나는 지점이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며, 필지선을 따라 마실길을 조성하고 길이 만나는 곳에 마실마당을 조성하면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을 주었다. 수 의견에 따라 동선을 정리했지만, 본래 계획했던 동선의 고즈넉한 느낌이 사라져 좀 아쉽기도 하다. 소재나 수목 선정에서 진주라는 지역 특성이 드러나는 부분이 있다면? 덕 진주에서 생산되는 청석이 있는데, 앉음벽이나 옹벽에 이 소재를 반영하고자 했다. 과거 대상지에서 많이 자랐다던 오동나무와 대나무도 주로 사용했다. 대상지 옆에 망진산이 있는데, 그 산에서 자라나는 수종을 최대한 반영하려 했다. 맹꽁이 서식지가 있는 습지의 경우에는 최대한 보존하되 생태적으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데만 집중했다. 이외에도 서부해당화, 이팝나무, 편백나무처럼 지역 특성을 보여줄 수 있는 수목을 많이 선정했다. 철로의 흔적을 남긴 곳은 그 선형을 강조하듯 수목을 일렬로 심었다. 선을 강조해야 할 때 녹지 폭이나 수 목의 크기와 종류는 어떻게 정하나. 수 질문에 꼭 맞는 답은 아니지만, 정형적 설계는 시공까지 살아남는 경우가 거의 없다. 특히 공공 프로젝트에서 가로수 외의 수목을 선이나 격자 모양으로 심는 것을 상당히 꺼리는 편이다. 여러 프로젝트에서 흔히 트리 캐노피라고 부르는 공간을 설계했었다. 나뭇가지가 서로 겹쳐진 그 아래 공간에서 다양한 활동이 일어나는 모습을 상상하고 설계한 것인데, 실시설계 단계에서 사라지곤 한다. 한국에서 정형적 패턴으로 구성된 숲을 찾기 굉장히 힘들 것이다. 덕 아마 이 프로젝트 역시 대상지에 철로가 없었다면 긴 선형의 식재 계획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영 개인적으로 조경이 하는 여러 일 중 식재 설계가 가장 어렵게 느껴진다. 경력이 10년 이상은 되어야 식재 설계를 좀 알게 되는 것 같다. 설계에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 중 하나가 주변 경관이다. 대상지를 주변 경관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게 만들지 생각하고, 주변 경관이 열려 있는지 닫혀 있는지에 따라 설계로 풀어야 할 숙제가 달라진다. 공간에서 축이 중요하다면 어떻게 강조할지 고민하는데, 수목도 그 방법 중 하나다. 정형적 식재 설계를 하려면 우선 나무의 키가 큰 게 좋다. 등 간격으로 배치할 때 규칙적인 느낌이 나야 하고 수형이 예쁜 게 좋다. 조건에 맞춰 쓸 수 있는 나무를 추리다 보면 그 종류가 많지 않다. 메타세쿼이아, 튤립나무, 은행나무 정도다. 수 이런 대형목의 가격이 비싸기도 하고 공사비나 유지·관리 비용 때문인지 식재 설계에 반영했을 때 원안이 살아남는 경우가 드물다. 특히 예산이 넉넉한 민간 프로젝트가 아닌 공공 프로젝트에서는 더욱 그렇다. 철도문화공원의 경우에도 수목 규격이 기존에 계획한 것보다 작아졌다. 대상지에서 자라고 있던 은행나무를 어떻게든 보존하려고 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오래된 수목이 사라지고 꼬챙이처럼 볼품없는 수목이 심기면 마음이 아플 것 같았다. 마스터플랜에서 전차대를 활용한 원형 전망대가 꽤 중요한 요소로 보였는데, 현장에 가보니 없더라. 수 원형 전망대에 얽힌 사연이 많다. 공모에 참여할 당시에도 전망대를 넣느냐 마느냐로 의견이 갈렸다. 영 선형의 부지에 놓인 원형의 선이 주는 느낌이 꽤 강하다보니 고민이 많았다. 토의 끝에 넣는 걸로 결정이 됐는데, 원형 전망대에 올라 공원 전체와 전차대 내부 모두를 조망할 수 있기를 바랐다. 덕 공모 당시에 제안했던 건, 주변 지형과 전차대 시설의 단차를 활용해 야외 공연장과 커뮤니티 지원 시설을 배치하고 그 둘레를 따라 공연과 공원의 성장을 관찰하는 원형 데크 전망대를 설치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설계안을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커뮤니티 지원 시설의 위치가 차량정비고와 대비를 이루면서도 공원에 들어섰을 때 한눈에 보이지 않는 어울림 마당 쪽으로 옮겨지게 됐다. 커뮤니티 지원 시설이 사라지니 원형 전망대가 가진 의미가 약해졌다. 전차대가 한국에 딱 두 곳 밖에 없는 희소한 시설이라, 최대한 보존하는 방향으로 설계안을 수정했으면 한다는 의견도 더해졌다. 여러 고민 끝에 전차대 구조물 자체를 거의 손대지 않는 선에서 수면에 주변 경관을 담을 수 있는 미러폰드를 조성하기로 결정했다. 열차의 방향을 돌려주던 시설의 선은 미러폰드 위를 건널 수 있는 브리지로 활용했다. 본래 사람들이 모여드는 활기찬 공간에서, 과거의 역사의 모습을 추억하며 조용히 머물다 갈 수 있는 정적인 공간으로 바뀐 셈이다. 수 본래 기획 의도가 사라져 좀 아쉬운 부분이다. 과거의 시설(전차대)과 새로운 시설(커뮤니티 지원 시설)을 연결하는 원형 보행로를 둠으로써, 100년의 과거와 새로운 100년이 만나는 듯한 공간을 조성하고자 했다. 철도문화공원으로 인해 주변 지역이 점차 변화하는 모습을 이 전망대에 올라 지켜보고, 커뮤니티 지원 시설과 연계해 더욱 다양한 프로그램을 펼칠 수 있게 함으로써 공원의 코어 같은 공간이 되기를 바랐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한데 어우러질 수 있도록 배리어 프리 설계도 해두었는데 함께 사라졌다. 미러폰드로 설계를 변경하며 최대한 주변과 자연스럽게 연결되도록 손을 봤지만, 동선 체계나 경관 측면에서 살짝 어색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동선의 경사가 부드럽게 이어지지 않는 부분이 있다. 맹꽁이 서식처를 이전했다가 다시 되돌리기 위해, 공사를 부분적으로 나눠 진행하다 보니 길과 길이 매끄럽게 연결되지 않아 생긴 문제다. 보행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지만 완성도가 조금 낮아 진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설계설명서에 쓰인 “완결된 형태의 공원이 아닌 새로운 시설과 프로그램을 수용하는 공간으로 빈 공간이 있는 공원을 만들고자 한다”는 표현이 인상 깊었다. 공모 당선 후 약 3년이 흘렀는데, 앞으로 이 주변이 어떻게 변해갈 것이라 예상하나. 수 조성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벌써 변화가 조금씩 일어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공원에 건축물이 있는 걸 좋아하는 편이다. 건축물 안에서 일어나는 프로그램이 커뮤니티 활동의 촉진제 역할을 해준다. 지금도 차량정비고에서 열리는 세미나와 행사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공원을 방문하고 있다. 앞서 100년이라는 단위를 많이 썼는데, 그만큼 단기간에 큰 변화가 이루어질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주변 지역에 비어있던 공간들에 사람들과 새로운 콘텐츠가 천천히 들어차길 기대한다. 덕 역사 앞에 광장이 조성되고 도로가 확장되고 주차장이 만들어지면서 작은 변화를 목격하고는 있다. 한산했던 공원에 좀 더 많은 사람이 오가고, 비어있던 건물에 카페가 들어서고 있다. 철도문화공원 주변에 특히 세월의 흔적이 담긴 오래된 건물이 많다. 주약동 옆쪽에서는 도시재생 사업의 일환으로 오래된 목욕탕을 카페로 바꾸는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어, 철도문화공원 주변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싶다. 영 차량정비고와 더불어 야외에도 전시를 할 수 있는 가벽이 마련되어 있다. 이곳이 지역 작가나 학생들의 전시 장소로 쓰일 거라 기대하고 있다. 전시가 개최되면 많은 사람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니, 가벽 앞쪽에 빈 잔디밭을 조성해 놓았다. 도시공원에서 가장 다양한 기능을 담을 수 있는 공간이 잔디밭이라 생각한다. 이곳에서 내가 생각지 못한 여러 활동이 일어나기를 기대하고 있다. 앞으로 국립진주박물관이 들어서면, 이를 중심으로 도시가 또 다시 바뀌어갈 것이다. 어찌 보면 철도문화공원은 박물관을 지원하는 서브 공간 역할을 하게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언제나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는 유연한 공간으로 설계한 것이다. 수 우리가 그린 계획을 마스터플랜이라 부르지만, 사실 우리가 마스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특히 내가 사는 곳이 아닌 공간을 설계하는 경우에는 더욱 더. 대상지에 몇 번 답사 가는 것만으로 그 지역 주민의 생활상이나 그곳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분위기를 파악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늘 완벽한 공간을 설계하기보다 변화를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을 설계한다. 디자인은 다른 이가 손댈 수 없는 창작물이라는 태도를 지양한다. 디자인 팽선민 사진 유청오 글 이상수, 고태영, 김영덕 사진 유청오 조경설계 SDHO Group 건축설계 건축사사무소 소솔 토목·조경 시공 영진건설조경, 하림종합건설 건축 시공 인성산업개발(진주역), 종합건설현범(차량정비고), 만도건설(복합커뮤니티) 전시 설계 및 제작 설치 이담 발주 진주시 위치 경상남도 진주시 강남동 245-110번지 일원 면적 42,077m2 준공 2023. 6. SDHO Group(스튜디오이공일 조경기술사사무소, 디자인가든,조경설계 하운, 오스케이프)은 이상수, 고태영, 김영덕, 오태현이 2020년 공동의 가치와 상생을 목표로 함께 시작했다. 각기 다른 디자인 설계 방안을 협의, 논의, 비평 과정을 거쳐 이상적인 외부 공간의 설계, 시공으로 이어지게 하는 협동조합 형태의 그룹이다. 설계뿐만 아니라 가치와 방향을 함께하는 다른 조경가에게도 열려 있으며, 공동의 이익과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사무실 모델을 찾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이상수는 서울시립대학교에서 건축학과 조경학을 복수전공하고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환경조경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신화컨설팅과 씨토포스를 거쳐 스튜디오일공일을 공동 창립했으며, 2016년부터 스튜디오이공일을 설립해 서남권 국회대로 상부공원, 구 진주역 복합문화공원, 목마·신트리 공원 리모델링 설계공모에 공동 당선되며 조경가로서 자신만의 색깔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고태영은 동국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홍익대학교 건축도시 대학원에서 부동산개발학을 배우는 중이다. 서인조경, 동일기술공사, DSK LA, 씨토포스, 조경설계 이화원 등 국내외 설계사무소에서 다양한 민·관 프로젝트를 수행한 경력을 바탕으로 2014년 디자인가든을 설립했다. 현재 도시공원, 공동주택, 일반 건축 분야 조경설계와 더불어 LH가든쇼, 경기정원박람회 등에서 작가로 활동하며 설계 영역을 넓혀나가고 있다. 김영덕은 단국대학교 식물자원학부와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조경학을 전공했다. 유림조경기술사사무소와 성호엔지니어링, 정엔지니어링에서 실무 경험을 쌓았으며, 2020년부터 조경설계 하운을 운영하고 있다. 경관과 장소의 탐구를 통해 책임감과 균형 있는 디자인으로 환경설계에 접근하고 있으며, 도시, 조경, 건축 등 외부 공간을 대상으로 계획과 설계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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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싼산 힐사이드 공원 Sanshan Hillside Park
    중국 남부 주강 삼각주(Pearl River Delta) 지역 중심에 위치한 싼산 힐사이드 공원(Sanshan Hillside Park)(이하 싼산 공원)은 빠르게 성장하는 도심에서 보기 힘든 도시 숲을 보존하고 있다. 대상지는 도심의 저지대 수변 공간 위에 위치한다. 독특한 지형을 활용해 야생의 자연을 느낄 수 있는 숲 공원을 조성해 공공 오픈스페이스에 대한 시민의 요구를 충족시키고, 지역 주민과 자연환경을 연결하는 생태적 오아시스를 만들었다. 모임과 산책 등 여가 활동을 즐길 수 있는 공원은 도시와 자연에 대한 입체적인 경험을 제공하고 지역 사회를 하나로 이어주는 커뮤니티 공간으로 기능한다. 개발로부터 지켜낸 숲 주강 삼각주 지역의 급속한 도시 개발로부터 보호된 싼산 공원은 도시화가 진행되고 있는 주변 도시에서 찾아보기 힘든 새로운 오픈스페이스의 유형을 보여준다. 포산(Foshan) 중심부의 서쪽에 위치한 싼산 신도시에 만든 146헥타르 규모의 산악 공원은 숲 생태계보다 운하나 해운로에 초점을 두었던 이 지역에 보기 드문 지형적 랜드마크를 만들어 냈다. 이 공간을 도시 개발을 위해서 활용할 수도 있었으나 지방정부가 그 가치를 인식하고, 보호 구역으로 지정해 무분별한 도시 개발로부터 지켜냈다. 세 개의 봉우리와 풍성한 숲으로 둘러싸인 싼산 공원은 도시 안에서 자연을 탐험할 기회를 제공하고, 도시의 평탄한 지형과 대비되는 산 정상에서의 특별한 경험을 제공한다. 이 공원은 싼산 신도시 중앙 공원으로서 이벤트, 관광과 등산 등 다양한 문화 활동을 즐길 수 있는 장소다. 도시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높은 고도의 특징을 활용하는 동시에 지형의 중첩으로 인해 생겨난 공간들은 다양한 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는 테마 공간이 된다. 도시화가 진행되며 자연과 교류할 기회가 적어지는 싼산 도심에서 자연을 즐길 수 있도록 풍부한 야생의 자연이 있는 기존의 생태계를 활용했다. 이용자들의 다양한 연령대와 관심사를 고려해 서로 연결된 산책로, 잔디 광장, 자연 놀이 공간 등을 마련했으며, 계절에 따른 축제와 이벤트를 위한 커뮤니티 공간도 조성했다. 리질리언스 공원은 세 구역으로 나뉘며 자연 언덕 보호 지역, 산을 둘러싸고 있는 저지대 내 도시 개발 지역, 도시의 빗물 유출수와 기존의 산골짜기에서 흘러나오는 물 모두를 집수하고 정화하는 리질리언스 지역(Resilience Zone)이 있다. 리질리언스 지역을 제외한 두 구역은 대상지의 보존과 활용에 초점을 맞춰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리질리언스 지역은 연못, 빗물정원, 생태수로(bioswale) 등을 활용해 민감한 자연 지역을 보호하면서 산 주변으로 확장되는 생태 벨트를 형성한다. 생태계 교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자연 지형에 따라 설계한 리질리언스 에지(Resilience Edge)는 자연과 도시 지역 사이의 취약한 생태계를 안정화하고 산과 주변 도시 개발 구역 모두를 위한 중요한 배수 인프라다. 대규모 굴착을 피하고 인상적인 장소를 만들기 위해 기존의 지형 특성을 활용했다. 이를 통해 공원의 새로운 공간에 내구성을 더하고, 산비탈 환경에서 견고함을 유지하도록 만들었다. 녹색인프라 시스템 등급을 고려하고, 중국의 엄격한 빗물 관리 기준인 ‘스펀지 도시’ 지침에 따라 원활한 우배수와 빗물 재활용 시스템을 구축했다. *환경과조경425호(2023년 9월호)수록본 일부 글 SWA Group Landscape Architect SWA Group Local DesignInstituteShenzhen BLY Landscape & Architecture Planning & Design Institute Client Land Urban Construction and Water Conservancy Bureau of Nanhai District Location Foshan, Guangdong Province, China Area 146ha Completion The 1st Phase: 2020. 7. The 2nd Phase: ongoing Photograph Chill Shine SWA Group은 60년 이상 조경, 기획, 도시설계 등 전문 분야에서 선도적 역할을 해왔다. 소규모 도시공원, 워터프런트, 도시재생 등 다양한 프로젝트에서 인간과 경관이 서로 교류하는 방식을 정의하는 디자인을 선보였다. 장소와 지역적 맥락의 힘을 믿으며 대상지의 본질과 문화를 디자인에 담는다. 대상지의 생태 환경, 전통, 재료를 면밀히 파악하고, 설계를 통해 지속가능한 환경을 구축하고자 한다. 인간과 자연, 예술과 생태 사이에서 교집합을 만들고,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건축과 자연이 결합해온 방식에서 많은 영감을 얻는다. 궁극적으로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 장소와 머물고 싶은 공간을 만들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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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스피디아 본사 수변 공원 Expedia HQ Waterfront Park
    부둣가의 변신 익스피디아 본사(Expedia HQ)는 미국 시애틀 시내에서 북쪽으로 약 1.6km 떨어진 40에이커 규모의 해안 매립지에 위치한다. 캠퍼스는 퓨젓사운드(Puget Sound) 해안, 레이니어 산(Mount Rainier), 그리고 시애틀 도심을 향한 탁 트인 전망을 제공한다. 원래 이곳은 퓨젓사운드를 향해 뻗어 있는 두 개의 부두를 갖춘 바닷가였는데, 1962년부터 1969년까지 7년 동안 흙과 건설 잔해 등을 채워 현재 익스피디아 본사가 위치한 매립지로 거듭났다. 바이오필릭 디자인 설계 목표는 5,000명에 달하는 노스웨스턴(Northwestern) 직원들을 위한 혁신적인 업무 공간을 갖춘 캠퍼스를 구상하는 것이었다. 익스피디아가 설계의 지향점으로 요구한 것은 지속가능하고 자연 친화적인 캠퍼스였다. 이러한 목표를 고려해 바이오필릭 디자인(biophilic design)을 통한 친환경적 경험 기반의 캠퍼스를 만들고자 했다. 공공 인터페이스 캠퍼스를 설계하는 핵심 구성 요소 중 하나는 공공 보행로와 공공 공간이었다. 엘리엇 베이 트레일Elliott Bay Trail 도로는 캠퍼스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으며 시애틀 시내와 스미스 코브(Smith Cove) 유람선 터미널을 연결한다. 기존 자전거도로와 보행로는 해안과 인접한 가장 바깥쪽 가장자리에 위치해 상습적으로 침수가 발생했고, 직선 형태의 보행로 모퉁이는 보행자에게 다소 위험한 사각지대였다. 엘리엇 베이 트레일의 보행 환경을 개선하고, 포인트(The Point)라고 불리는 공공 공간을 만들어 날카로운 모서리 형태의 동선을 자연스러운 곡선으로 다듬었다. 또한 자전거도로와 보행로를 분리해 보행 안전성을 꾀하고, 해수면 상승과 홍수를 고려해서 이전의 위치보다 안쪽에 동선을 만들었다. 다양한 자생종이 식재된 굴곡진 형태의 선형 공원은 웨스턴 스미스 코브(Western Smith Cove) 경계를 따라 계속 이어진다. 사회적 책임과 즐거운 근무 환경 캠퍼스 내 5,000명의 직원을 수용할 수 있는 원형 극장, 사색 정원, 약 1,200㎡ 규모의 캐스케이드, 체리 과수원, 산책로 등을 조성했다. 야생의 자연을 감상하며 걷고 어디서든 자연스럽게 회의를 하거나 휴식을 취 할 수 있게 다양한 공간을 마련했다. 대상지 곳곳에 놓인 바위와 유목은 기존 생태계에 대한 존중인 동시에 공간에 조형적 아름다움을 더한다. 분리된 보행로와 자전거도로와 연결된 곡선형 테라스에서 탁 트인 전망을 감상할 수 있다. 바이오필릭 디자인을 기반으로 만든 수많은 경관은 건강하고 즐거운 근무 환경을 조성한다. 나아가 직원뿐 만 아니라 지역 주민도 이러한 경관을 즐기며 잠시 휴식을 취할 수 있다. 익스피디아는 기업의 사회적 책무 를 다하기 위해 기업의 공간을 지역 주민과 함께할 수 있는 공공의 공간으로 바꿈으로써 조경과 장소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을 제시했다. 글 Surfacedesign Landscape Architect Surfacedesign Design Team James A. Lord, Roderick Wyllie, Michal Kapitulnik,Junyi Li, Matt Bombard, Blythe Price, Tyler Mohr, Heath House Architect ZGF Architects(Main Campus), Aidlin Darling Design(Accessory Building) Contractor GLY, Teufel Landscape(Landscape) Collaborator Stantec(MEP Engineer), RMA(Irrigation),KPFF(Structural and Civil Engineer), CMS(Water Feature), F2 Environmental Design(Soils Consultant), Paladino(Environmental Consultant), Studio SC(Signage) Location Seattle, WA, United States Area The Beach: 2.6ac Campus: 40ac Completion The Beach: 2019 Campus: 2021 Photograph Marion Brenner 서피스디자인(Surfacedesign)은 샌프란시스코에 본사를 둔 조경·도시설계사무소로 제임스 로드(James A. Lord), 로드릭 윌리(Roderick Wyllie), 제프 디 지롤라모(Geoff di Girolamo)가 이끌고 있다. 조경, 도시, 건축 등 다양한 분야 전문가의 협업을 통한 다학제간 디자인을 추구하며, 역동적 경관의 공원, 캠퍼스, 광장, 정원 등 다양한 규모의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건축과 자연의 연결에 초점을 맞추는 디자인을 통해 시민들이 새로운 방식으로 경관과 소통할 수 있도록 돕는다. 대상지의 고유한 맥락과 상상력이 만들어 내는 잠재력을 강조하고 존중하며, 설계 과정에서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대상지와 이용자의 요구에 귀를 기울인다. 이러한 과정을 통한 세련된 매력과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현대적 경관을 만들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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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랭스 프롬나드 재개발 Les Promenades Reims
    18세기 옛 성벽의 해자가 있던 부지에 만들어진 랭스 프롬나드(Reims Promenades)는 유서 깊은 도심과 교외를 연결하고 있다. 점진적으로 형성된 축을 따라 지속적인 추가 작업을 통해 만들어진 이 산책로에는 조각상, 기념물 등이 있다. 철도와 대로, 고속도로 등과 같은 기반 시설에 의해 산책로 일부가 훼손됐지만 밤나무, 단풍나무, 플라타너스로 이루어진 숲 덕분에 오랜 기간 형태를 유지해왔다. 숲의 나무들은 대상지의 주요 자산이지만 재개발 프로젝트의 제약 요소로 작용하기 때문에 나무의 유지·관리를 고려한 섬세한 계획이 필요하다. 프로젝트의 목표는 대상지의 자산을 개선하고 주민을 위한 활력 가득한 장소로 전환하는 것이다. 도시와의 조화를 위해 통일성과 장소의 시인성을 복원하는 동시에 각 공간을 이루는 장면의 분위기와 용도를 섬세하게 드러내는 것을 주요 과제로 삼았다. 수많은 기념물과 깊은 역사를 품은 산림 지대에 위치한 이 산책로는 새로운 숲의 설계법을 통해 도시에 심오한 변화를 가져오고 숲이 우거진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방법을 제시한다. 구조적 연속성과 산책로의 재결합 산책로의 일관성 복원을 위해 모든 시퀀스가 통과하는 축을 중심으로 마스터플랜을 계획했다. 이 축에는 기념물이 위치해 있고 나무 캐노피가 넓은 간격으로 형성되어 있다. 이런 특징을 활용해 산책로에 새로운 시설물을 추가해 유적지와 천연 기념물로 등재된 유산을 볼 수 있는 전시장으로 기능하게 했다. 도시의 시퀀스와 이웃과의 연결 설계는 대상지의 기존 세력선과 수목 네트워크 세력선을 기반으로 진행됐다. 선형의 두 자전거도로와 세 개의 대규모 보행자 산책로가 다양한 시퀀스를 연결하고 개방감을 자아낸다. 2차 그리드를 활용해 가장자리를 다용도로 활용하는 동시에 도심과 역세권을 잇는 연결고리로 만들었다. 공지와 산림 경계의 구조화 나무의 밀도와 햇빛이 내리쬐는 위치로 인해 산림은 대상지 가장자리를 둘러싼 형태를 띠고 있으며, 보행 로에 의해 길 주변으로 일련의 빈 공간이 생겨났다. 이 공터들은 산책로에서 잠시 머무를 수 있는 장소이며 길 찾기를 용이하게 해주는 동시에 조형적 요소로 역할 한다. 빛과 그림자 조각 빛과 그늘, 조명 장치를 활용해 공간의 분위기를 조정 하고 부지의 활용성을 높이고자 했다. 빛이 부족한 곳 에는 조명을 더하고, 빛이 강한 곳은 빛을 덜어냈다. 나 무와 꽃, 바닥재와 시설물을 통해 조명이 적절한 그림 자를 드리우게 했다. 존중을 통한 수목과 기념물의 가치 향상 프로젝트는 나무라는 유산을 존중하는 데서 시작한다. 보행로, 시설물, 구역 등 대상지 구조는 수목이 만든 틀에 의해 결정됐다. 중심축이 되어주는 기념물들을 부각시키기 위해 새로운 맥락으로 기념물이 읽히게 했다. 예를 들어 자동차가 도시적 풍경을 이루던 포르테 드 파리(porte de paris )주변 도로를 산책로로 바꾸어 보행자 공공 공간으로 대체시켰다. 포르테 드 마스(porte de mars )광장은 특별한 행사를 주최하는 동시에 대제국 아래 파리의 웅장함을 마지막으로 목격한 고대 관문을 가진 장엄한 앞마당으로 변모시켰다. 물의 존재감 부각 주요 구성 요소 중 물은 평온함에서 장엄함까지 점진적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미스트 유역에서는 수증기가 피어올라 색다른 분위기를 선사하고, 잔디밭 속 폰드의 수면에 비치는 모습은 유쾌한 도시적 분위기를 연출한다. 포르테 드 마스 광장의 대형 분수는 지면에서 솟아오르는 물줄기로 장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의미와 가치 복원 이 프로젝트는 산책로를 지역과 연계시키면서 도심의 개념을 정립하고 대도시 녹색 네트워크의 일부로 편입시켰다. 재개발을 통해 산책로는 도시가 지닌 역사와 기대를 품은 산책과 만남의 장 그리고 축제의 장소로 탈바꿈됐다. 이질적이고 관광객의 방문이 뜸했던 지역에 통일성을 부여하고 지역의 의미와 가치를 복원했다. 재탄생한 18세기 산책로는 역사적 요소가 어떻게 고유의 특성과 분위기를 잃지 않으면서 현시대의 환경과 기후 문제에 대응하는 한편, 명시적이면서 현대적 장소가 될 수 있는 방법을 보여주는 사례다. 글 Osty et Associés Landscape Architect Osty et Associés Architect Encore Heureux Engineers TPF Ingénierie Fountain Maker OGI Lighting Design Les Éclaireurs Client Reims City Council Location Reims, France Area 12ac Completion 2023 Photograph Martin Argyroglo, Mikaël Mugnier 1983년에 설립된 오스티 앤 어소시스(Osty et Associés)는 재클린 오스티(Jacqueline Osty)와 프로젝트 매니저 로익 보닌(Loci Bonnin), 앙투안 칼릭스(Antoine Cailx), 미카엘 무니에르(Mikael Mugnier)를 필두로 30여 명의 조경가, 건축가, 도시 전문가로 구성된 설계사무소다. 연구와 재개발 프로젝트뿐 아니라 공원, 공공 공간, 워터프런트, 동물원 등 도시를 구성하는 여러 층위의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대표작으로는 셍삐에흐 공원(Saint-Pierre Park in Amiens), 마틴 루터 킹 공원(Parc Martin Luther King Park)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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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인트 캐서린 웨스트 거리와 필립스 광장 Revitalization of Sainte-Catherine West Street and Phillips Square
    몬트리올(Montréal)은 친환경적 도시로의 변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다. 세인트 캐서린 웨스트 거리(Sainte-Catherine West Street) 재설계는 자동차 중심인 몬트리올의 낡은 도로를 상업 중심지의 역사성을 드러내는 보행자 중심 허브로 탈바꿈시켰다. 사차선 도로를 한 차선만 차량이 통행하는 보행자 중심 거리로 변모시키는 재설계 과정을 통해 드 블루 거리(De Bleury Street)부터 맨스필드 거리(Mansfield Street)까지 여섯 블록에 달하는 규모의 자동차와 자전거 이용자, 보행자가 함께 공유하는 산책로가 조성됐다. 이 산책로는 유서 깊은 백화점을 아우르며 주변 지역을 하나로 연결한다. 필립스 광장(Phillips Square)의 규모가 확장되면서 몬트리올에 새로운 친환경 공공 허브가 탄생했다. 새로운 세인트 캐서린 웨스트 거리 세인트 캐서린 웨스트 거리는 동쪽의 카르티에 데 스펙타클(Quartier des Spectacles) 재개발, 서쪽 몇 개 블록에 대한 재개발 계획과 함께 응집력 있고 친환경적인 마을을 만들기 위해 유기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프로젝트는 노상 주차를 없애고 보도를 대폭 넓혀 자동차와 보행자 공간의 비율을 역전시키고 더 많은 보행자를 위한 공간을 창출시켰다. 거리는 이제 분리되어 있던 광장, 기념물, 역사적 건물들을 응집력 있는 도시 경관으로 연결하는 선형 광장 역할을 한다. 거리에 설치된 청동판은 이 지역의 역사 유산인 20세기에 지어진 백화점과 상업용 건물을 식별할 수 있게 해주는 도시 표지판으로 기능한다. 차량과 보행자가 공유하는 거리는 도보와 자전거 이용을 장려함으로써 이동성을 촉진시키고, 이동 수단에 구애받지 않고 누구나 쉽게 원하는 곳으로 접근할 수 있게 한다. 안전하고 응집력 있는 환경 만들기 새 도로는 다양한 공간과 용도를 구분하는 모듈식으로 포장한 것이 특징이다. 짙은 회색부터 옅은 회색까지 아우르는 바닥 색은 차량 전용 차로와 안전한 보행자 구역을 확실히 구분한다. 또한 어디까지가 보행 전용 구역인지, 자동차와 자전거 이용자와 공유되는 구역인지를 보행자에게 명확히 알려주며 응집력 있고 통합된 공공 공간과 안전한 환경을 조성한다. 수목 식재 밀도를 활용해 안전성과 응집력을 더 강화했다. 조용한 지역에는 나무들을 서로 가깝게 배치하고, 상대적으로 활기찬 지역에는 나무 사이에 간격을 두었다. 이런 패턴은 대상지를 하나의 결속력 있는 산책로로 만드는 동시에 부지 전체에 자연스러운 리듬감을 자아낸다. *환경과조경425호(2023년 9월호)수록본 일부 글 Provencher_Roy Design/Architectural/Development Firm Provencher_Roy Landscape Provencher_Roy Civil Engineering CIMA + Structure CIMA + Other Collaborators Ingénieur Fontainier - François Ménard Urban Furniture Michel Dallaire Client Ville de Montréal Location Montréal, Québec, Canada Area 13,000m2 Completion 2022. 5. Photograph Adrien Williams 프로벤처_로이(Provencher_Roy)는 1983년 클로드 프로벤처(Claude Provencher)와 미셸 로이(Michel Roy)가 새로운 건축 비전을 세우기 위해 캐나다 몬트리올에 설립한 건축사무소다. 건축, 도시 디자인, 도시계획, 조경을 하나로 연결하는 접근 방식을 추구한다. 프로젝트의 첫 단계인 철저한 분석과 이해를 중요하게 여긴다. 대상지에 존재하는 물리적·문화적·지리적·역사적·경제적 자원과 유형·무형 유산에서 받은 영감을 토대로 프로젝트에 접근하는 것이 특징이다. 자신들이 기존 도시 구조를 변화시킨다고 믿으며 설계에 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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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타이난 마켓 Tainan Market
    타이난(Tainan)에 새로운 농산물 도매시장이 들어섰다. 대만에서 가장 아름다운 농산물 시장으로 불리는 이 야외 시장은 타이난의 농산물을 유통하는 중요 허브다. 마켓 건물의 지붕에 올라가면 주변 경관을 감상하고, 이웃과 만나 교류할 수 있어 지역 관광을 촉진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지붕 위에서 과일과 채소를 재배할 수도 있다. 타이난 마켓은 과감한 건축적 실험이다. 일반적으로 단순한 철재 창고 형태로 지어지는 도매 시장을 재해석해 시장과 녹지가 결합된 공간으로 변화시켰다. 이러한 디자인은 진부한 식품 산업 공간에 변화를 불러일으키고, 식품을 경험하는 동시에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장소를 만들어냈다. 대상지는 타이난의 동쪽, 도시와 산 사이에 있다. 3번 고속도로와 연결되며 대중교통이 잘 마련되어 있어 주변 농지와 도시의 상인, 구매자, 방문객 모두 편리하게 접근할 수 있는 곳이다. 타이난 마켓은 일련의 구불구불한 언덕으로 구성된 녹색 지붕을 가진 단순한 개방형 구조의 건물이다. 동쪽 모퉁이에는 다채로운 식물과 꽃이 심긴 테라스가 있다. 지붕에서 시작된 이 테라스는 점점 땅으로 내려와 방문객이 건물 꼭대기에 오르도록 유도한다. 타이난 마켓은 방문자가 이 지역의 특징적 경관을 감상할 수 있는 높은 플랫폼 역할을 한다. 한쪽에 관리 사무실과 지역 농산물을 전시할 수 있는 전시 센터가 있는 4층 높이의 건물이 있는데, 이 건물의 각층에 마켓의 지붕과 연결되는 출입구가 있다. *환경과조경425호(2023년 9월호)수록본 일부 글 MVRDV Architect MVRDV Founding Partner in Charge Winy Maas Partner Shi Wenchian Design Team Liao Hui-Hsin, Chen Xiaoting, Liao Chi Yi, Chiara Girolami, Enrico Pintabona, Maria Lopez, Gustavo van Staveren, Emma Rubeillon, Lee Dong Min, Jose Sanmartin, Cai Cheng, Liao Yi Chien Visualisations Antonio Luca Coco, Pavlos Ventouris Strategy and Development Isabel Pagel, Bart Dankers Co-Architect LLJ Architects Contractor Yuh-Tong Construction; Jiuyang Electric And Plumbing Engineering Landscape Architect The Urbanists Collaborative Structural Engineer Columbus Engineering Consultants MEP FRONTIER TECH INSTITUTE Soil and Water Kuo Soil and Water Technicians Green Building Green Building Technology Consultants Client Tainan City Government Agricultural Bureau Location Tainan City, Taiwan Area 12,331m2 Completion 2022 Photograph Shephotoerd MVRDV는 1993년 비니 마스(Winy Maas), 야코프 판레이스(Jacob van Rijs), 나탈리 더프리스(Nathalie de Vries)가 설립한 회사다. 로테르담, 상하이, 파리, 베를린, 뉴욕에 사무소를 두고 전 세계의 건축, 도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설계 초반부터 이해관계자,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와 함께 리서치를 바탕으로 협업을 한다. 이를 통해 더 나은 도시와 경관을 만드는 선진적이고 진솔한 프로젝트를 펼쳐왔다. 현재 로테르담에서 난징과 과야킬의 복합 용도 건물, 아인트호번의 니우 베르헌(Nieuw Bergen), 암스테르담의 웨스터파크 웨스트(Westerpark West)와 더 오스테를링언(De Oosterlingen)의 주택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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