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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광장] 비평: 설계가의 역사학
    지난 『환경과조경』 지면(2019년 3월호)에서 광장의 정치성에 관해서는 충분히 논의했다. 여러 논객이 말했듯이 광화문광장 디자인을 정치라는 프레임으로 논의하는 것은 우리 조경가에게는 소모적이다. 광장의 탄생이, 그리고 그간 광화문광장의 쓰임새와 그에 따라 만들어진 상징이 결코 무정치적이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광장의 정치성에 관한 논조가 민주주의의 본질과 광장의 기능의 관계와 같은 생산적인 내용이 아니라 특정 정파의 상대편을 공격하기 위한 정치 논리에 봉헌하는 메타포로 사용되는 현실이 아쉽다. 프랑스 정치철학자 자크 랑시에르가 진단하듯, 현재 민주주의의 위기는 우리의 목소리를 대표한다고 여겨진 대의제 시스템의 위기다. 그러므로 광장은 그러한 특정 정치 집단이나 권력의 소유물로서가 아니라 그간 소외되어온 수많은 주체의 목소리가 울릴 수 있는 무대로 기능하면 된다. 설계가의 역사학 새로운 광화문광장은 막 50년을 지나고 있는 한국 조경의 궤적에서 한국의 역사와 정체성의 공간화 방식으로 중요하게 논의할 만한 작품이다. 역사가가 유물, 유적, 문화재를 사료로 간주하고 원형의 보존에 관심을 가진다면, 설계가는 그 사료의 가치를 고려하고 창의적으로 활용해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가는 방안을 탐구한다. 설계가는 제도의 한계에 봉착하더라도 잔존하는 유적, 이제 사라졌지만 분명 존재했던 장소에 대한 대중의 기억을 다양한 방식으로 공간에 불러들인다. 어느 부지에나 역사는 누적되어 있기 마련이지만, 역사가 중심 문제로 제기되는 공모전의 출품작을 들여다보는 것은 무척 흥미롭다. 설계가가 역사를 공간화하는 여러 방식 중에는 현실 제도 아래에서 도저히 실현 불가능한 경우도 있지만, 창의적 아이디어는 우리가 역사를 새롭게 경험하고 대면하는 대안적 방법을 제공한다. 경직된 현실 제도에 균열을 일으켜 세상을 변화시킬 힘이 오히려 설계가의 상상적 역사학에 있다고 믿으며, 그런 미래를 상상하면 즐겁다. 설계가가 역사학을 풀어내는 방법은 다양하다. 누군가는 부지에 잔존하는 구조물이나 지층을 비롯해 역사를 간직한 물질을 이용해 방문객이 과거를 체험하게 한다. 잔존하는 물질이 역사적 가치가 높으면 원상태로 남기고, 상대적으로 가치가 덜하면 창의적으로 변형한다. 적당한 물질이 없을 경우 새로운 구조물과 시설을 만들어 장소가 지닌 상징성이나 대중이 지닌 집합 기억을 상기시키기도 한다. 역사를 공간에 물질화할 때 과거의 형상을 그대로 빌려오기도 하며, 단순한 형태로 추상화하거나 재해석하기도 한다. 눈에 잘 띄지는 않지만 역사적 상징, 옛 조경과 건축 설계의 원리나 구조를 빌려 부지의 얼개를 짜고 생태 시스템을 구축하기도 한다. 한국의 정체성 공간화하기 조경가는 오래 전부터 한국의 정체성을 공간에 구현하는 방식을 탐구했다. 한국성을 늘 과거형으로만 다뤘던 건 아니지만 대체로 조경가는 그것을 역사에서 끄집어내고자 했다. 정체성은 고정된 실체라기보다 어떤 본질을 간직한 채 끊임없이 변화한다.1 어느덧 반세기를 넘어선 한국 조경에서 한국성의 내용과 이를 공간에 구축하는 방법도 부단히 달라졌다. 파리공원(1987)은 예술 작품으로 평가되는 한국 조경의 초기 작품 중 하나로, 한국성을 공간에 투영한 대표적인 작업이다. 대부분의 조경가는 태극무늬를 변형해 얻는 조형적 공간 구성과 패턴이 인상적이라고 상찬했지만, 전통 문양과 전통 정원 요소의 직설적 모방에 대해서는 못마땅하다는 시선이 제기되기도 했다.2 여의도공원(1999)은 조경 설계에서 전통을 이용하는 방식에 대해 회의론을 불러일으켰다. ‘여의도광장 공원화 설계현상공모’(1996) 출품작들은 대체로 전통 사상을 구조와 기능으로 변역하지 않고 그 어휘를 공간을 단순히 분할하는 도구로 차용했다. 장소의 성격을 고려한 재해석 없이 전통 조경 시설을 늘어놓기에 급급했다.3 이후 전통에 대한 현대적 해석의 실험은 한동안 자취를 감추었다(물론 희원(1997)처럼 전통의 정수를 현대적으로 재현하는 좋은 작품은 만들어졌다). 전통 시설물의 외피를 두른 시설이 양산되어 전국 곳곳에 심겨졌지만 정작 우리의 옛 역사를 현대적 어휘로 번역하는 실험은 부족했다. 도리어 전통 요소를 뒤처진 것으로 치부하고터부시한 게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조경가는 전통에 대해 우상파괴자(iconoclast)가 되는 대신 반-전통주의(anti-traditionalism)를 자처한 것 같다. 밀레니엄을 전후로 조경가들은 부지의 먼 역사가 아닌 근대 이후의 역사를 탐닉하기 시작했다. 학계는 지역성과 장소성,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을 탐구했고, 실무에서는 가동을 멈춘 산업 경관을 오픈스페이스로 전환하는 설계가 많아졌다. 폐허의 거친 물성은 조경가의 상상력을 자극했고, 이러한 근현대 산업 역사의 영웅화에 눌려 부지의 오랜 역사는 묻혔다. 현대 조경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선유도공원(2002)에서 조선시대의 기억을 환기시키는 선유정이 공원의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고전통을 직설적으로 흉내 낸 전통 시설물이라는 이유로 비평 대상이 되기도 했다.4 시간은 흘러 전통에 대한 우리의 생각도 진화했다. 대중의 취향이 변했다. 서울 한복판에서 스스럼없이 한복을 입고 활보하는 젊은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조경 설계에서 전통을 다루는 새로운 감수성이 출현했다. 역설적이게도 외부인의 시선을 경유하여 전통의 디자인 요소로서의 가능성이 실험됐다. 외국인의 관점을 오리엔탈리스트의 약탈적 시선으로 낙인찍는 대신 그들에게 없는 한국만의 특성을 보는 하나의 시선으로 받아들일 자신감이 우리에게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용산공원 설계 국제공모’(2012) 당선작 ‘치유의 공원(Healing: The Future Park)’은 한국의 전통 사상을 관념적으로 다루지 않고 자유로운 형태 생성의 디자인 모티브로 이용했다. 일견 클리셰처럼 다룰 가능성이 농후한 오작교를 새 모양의 장식이 달린 아름다운 교각 구조물로 디자인했고, 다목적 오픈스페이스 역할을 했던 전통 요소인 마당을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 적재적소에 배치했다.5 삼천리금수강산 모티브는 지형을 만드는 틀이자, 도시 주변에 산재한 계곡을 비롯해 수려한 경승지를 즐겼던 옛 산수 문화의 현대적 복원에 효과적으로 활용된다. 그간의 문제는 전통이라는 소재가 뒤쳐진 데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 이를 디자인하는 감각이 새롭지 못했던 것에 있었다. ‘새로운 광화문광장 조성 설계공모’(2019) 당선작 ‘깊은 표면(Deep Surface)’은 조경가의 역사학이라는 타임라인에서 이 다음에 위치하는 중요한 작품이다. 깊은 표면의 분위기 깊은 표면은 형용 모순적 어휘로 이루어진 이름이다. 지하 도시와 지상을 연결하는 실체적 행위를 연상시키면서도 다소 형이상학적으로도 들리는 오묘한 언어였다. 깊은 표면이 제안한 광장의 분위기는 ‘역사’와 ‘일상’으로 대표된다.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 동상을 슬며시 밀어내 친근한 조각품처럼 경험할 수 있도록 했다. 동상이 지배하던 광장의 위엄을 누그러뜨리고, 대신 그곳에 조선시대의 상징적 경관을 복원했다. 깊은 표면의 조감도는 북악산-광화문-광화문광장으로 이어지는 축을 강조해 조선시대의 역사성을 강화했다. 북악산을 살짝 비켜 앉힌 광화문의 아름다운 경관, 산세와 추녀선이 그려내는 유려한 하늘선이 막힘없이 드러났다.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광장 양측에 도열한 재질과 형태가 불균질한 거대한 건물군의 파사드를 캔버스 삼아 한양의 내사산을 투영해 한국적 경관을 재구성했다. 동궐도와 경기감영도를 비롯한 옛 산수화와 현재 서울의 색감을 제대로 파악해 묘사한 한 폭의 그림이었다.이 조감도는 West 8이 용산공원 설계 국제공모 당선 이후 선보인 산수화풍 이미지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했다. 치유의 공원의 이미지는 공모전 이후 그린 관념적 그림이다. 깊은 표면의 이미지는 더 나아가 도면으로 구현됐다. 북악산과 광화문이라는 실재하는 경관, 내사산이 투영된 미디어 파사드라는 경관에 둘러싸인 나를 상상했다. 근래 유행하는 몰입형 미디어 아트를 경관 디자인에 활용한 흥미로운 시도로 보였다.6 *환경과조경415호(2022년 11월호)수록본 일부 각주 1. 최정민, “현대 조경에서의 한국성에 관한 연구”, 서울시립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08. 각주 2. 박준서, “기념성과 실용성의 조화”, 『환경과조경』 2005년 1월호, pp.124~125; 배정한, “한국 조경의 변화와 주요 작품”, 『한국조경의 도입과 발전 그리고 비전: 한국조경백서 1972-2008』, 환경조경발전재단, 2008, pp.246~247. 각주 3. 조경진, “패러노이아: 의미과잉 속의 한국현대조경”, 『Locus 2: 조경과 비평』, 조경문화, 2000, pp.131~147. 각주 4. 배정한, “시간의 정원, 발견의 디자인”, 『조경의 시대, 조경을 넘어: 배정한 조경비평집 1』, 도서출판 조경, 2007, p.62 각주 5. Myeong-Jun Lee, “Transforming Post-industrial Landscapes into Urban Parks: Design Strategies and Theory in Seoul, 1998–present”, Habitat International 91. 2019, pp.1~13. 각주 6. Myeong-Jun Lee, “Ecological Design 이명준은 서울대학교 조경학과에서 오랫동안 공부하다가 2020년, 안성으로 이사와 한경대학교 친구들과 즐거운 일상을 보내고 있다. 최근에 코로나에 확진되었다. 이때다 싶어 원고를 썼다. 지루하고 권태로운 격리 생활에서 벗어나 저 문만 박차고 나가면 바로 광장이겠지 상상하면서 원고를 마무리했다.
  • [광화문광장] 비평: 교차하는 표면들의 좌표
    광장에 온 사람들은 모두 다른 방향을 바라보며 걷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도 영원히 만나지 않을 평행한 선들로 구획된 도로였던 곳에 주어진 선택지는 앞으로 나아가거나 반대로 돌아서 가는 것, 오직 두 가지뿐이었다. 역사적인 변화에 대한 평가는 대개 진보나 퇴행으로 수렴되나, 그것은 상대적인 판단이다. 변화의 방향이 아닌 바라보는 주체의 시선이 어느 쪽을 향하고 있는가에 달려있다.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라는 흔한 정치적 수사도 누군가에게는 그와 반대로 여겨질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새로운 광화문광장은 그 이전에 비해 어떤 종류의 진전 혹은 퇴행을 보여주고 있는가. 이 질문은 단순히 자신이 어느 방향을 보고 서 있는지를 묻는 것일 수 있으나, 그에 답하는 것이 쉽지 않은 까닭은 광장의 바라보는 시선이 앞과 뒤, 둘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는다는 데 있다. 킴벌리 크렌쇼(Kimberlé Crenshaw)가 제시한 교차성 이론은 이 같은 다면적 대상을 하나가 아닌 여러 개의 눈으로 분석할 수 있는 하나의 틀을 제공한다. 앞서 그는 한 사람에 대한 차별 혹은 우위를 야기하는 사회적 위치가 단일한 범주로 구성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드러낸 바 있다. 크렌쇼의 말에 따르면, 그것은 인종과 젠더, 계급, 종교, 지역 등 다양한 차원에서 발생하는 소수성과 다수성의 상호 교차 및 중첩의 결과다. 마찬가지로 하나의 장소에 대해서도 그것을 긍정 또는 부정할 수 있는 유일한 잣대란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새로운 광화문광장 위에는 진보 또는 퇴행을 가름하는 복수의 표면들이 서로 맞물리며 교차하고 있기 때문이다. 축: 회복과 파괴 월대 복원은 새로운 광화문광장을 이루는 하나의 축을 암시한다. 그것은 경복궁 남측과 접한 역사광장의 조성, 그리고 궁궐의 축에 따라 편측으로 만들어진 시민광장의 배경과도 연결되어 있으며, 1990년대 시작되어 총독부 철거와 광화문 복원을 거쳐 앞으로도 20년 이상 이어질 문화재청의 경복궁 2차 복원 정비 사업의 한 단계이자 반세기에 걸친 거대한 흐름의 일환이다. 새로운 광화문광장은 적어도 당선안을 기준으로 볼 때 그러한 흐름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었다. 심사평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당선안의 가장 큰 강점은 ‘역사적 축을 강렬히 형성’한 것이었다. 또한 당선안은 북악산으로부터 경복궁으로 이어지는 자연의 흐름을 광장과 주변 건물 옥상으로 연장했으며, 미디어파사드라는 현대 기술을 통해 주변의 도시 경관들을 대신하여 내사산이라는 과거의 풍경을 불러들였다. 여러 계획적 요소를 종합적으로 나타낸 투시도는 설계안이 이 장소에 과거의 어떤 시점을 투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공모 전반을 기획한 것으로 알려진 심사위원장 승효상은 지속적으로 서울이 가진 역사적, 자연적 축의 회복을 강조해왔다. 최근의 사례는 West 8의 ‘용산공원 설계 국제공모’ 당선안일 것이다. 승효상은 여기에서 ‘남산과 세운상가, 종묘와 북악산을 거쳐 백두산으로 흐르는 축의 연결’을 강조했다. 용산공원 당선안의 조감도와 새로운 광화문광장의 투시도는 주변의 현대적 경관을 의도적으로 희석한 반면 저 멀리 뒤편에 그려진 산수화와의 연속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하나로 연결되는 그림처럼 보인다. 1995년 ‘국립중앙박물관 국제설계경기’에 승효상이 민현식과 공동 응모한 작품은 그러한 관점이 드러난 가장 앞선 시기의 프로젝트 중 하나로, 건축가 정기용은 해당 작품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남산과 관악산을 선으로 이음으로써 상승하는 삼각형 마당을 보여주었다. …… 결과가 발표됐을 때 그래도 조그만 기쁨이 있었는데, 그건 이들의 안이 유일하게 ‘서울’이라는 땅을 커다랗게 가늠한 것이었기 때문이다.”1 정기용의 말처럼 기울어진 계획안의 삼각형 마당에서 바라본 남측과 북측 투시도는 주변의 풍광을 가리는 양 옆의 건물군 사이로 각각 관악산과 남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새로운 광화문광장의 이순신 장군 동상 뒤편 광화문역 연결 통로에서 세종문화회관 방향으로 진입하는 경사면, 해치마당에서 바라본 풍경은 승효상과 민현식의 국립중앙박물관 설계안의 ‘상승하는 삼각형 마당’과 일정 부분 닮아있다. 좌우의 광화문 계단과 미디어월은 광장에 진입하기 전, 주변의 건물군을 시야로부터 은폐하고 오직 광장의 수평면 위로 북악산의 모습만을 남겨둠으로써 잠시나마 과거의 경관을 체험케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특정 시점을 도시에 투사하는 경향은 비단 서울뿐 아니라 여러 장소에서 서로 다른 양상으로 나타났다. 예컨대, 통일 뒤 15년간 통독 베를린의 총괄계획가였던 한스 슈팀만(Hans Stimmann)은 장벽이 가르고 있던 포츠담 광장(Potsdamer Platz)을 나치 이전의 도시 구조로 되살리는 ‘비판적 재건’ 기조 아래 만들고자 했다. 당시 ‘포츠담 광장 국제설계경기 심사’에 참여했던 렘 콜하스(Rem Koolhaas)는 사퇴 후 일간지에 다음 내용을 담은 공개서한을 발송했다. “(포츠담 광장) 공모 심사는 나의 건축 활동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경험이었다. 이 같은 자멸적 행위가 국제 설계공모라는 구실을 필요로 함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파렴치함으로 이해될 수밖에 없다.” 광장이 현대 건축의 경연장이 되는 것을 막아낸 한스 슈팀만은 퇴임 후 베를린을 최악과 최고, 모두로부터 구해냈다는 평가를 얻었다. “복원이라 부르는 것은 파괴의 가장 나쁜 수단”이라고 했던 존 러스킨(John Ruski)n의 말이 건물뿐 아니라 도시와 경관에도 해당될 수 있다면, 용산공원과 광화문광장처럼 역사적 아픔을 가진 ‘한 많은 땅’을 치유하는 방법들 가운데 ‘그 사건들 이전과 가장 가까운 모습으로 되돌리는 것’은 현재로서 가장 파괴적인 선택 중 하나일 수 있다. 동상: 탈식민과 근대화 해치마당을 등지고 선 이순신 장군 동상의 존재는 새로운 광화문광장이 바라보고 있는 축의 방향과는 전혀 달랐던 동상 건립 당시의 지향점을 증언하고 있다. 당선안은 광장의 한가운데 서 있던 동상을 그와 조금 더 잘 어울리는 것으로 보이는 역사마당으로 이전하고 광장 전체를 비워둘 것을 제안했으나, 여론의 반대가 기존의 자리를 고수하길 원했다. 그 동상이 언제부터, 왜 거기에 있어야 했는가를 묻는 것은 과거의 광장, 즉 세종로가 무엇을 표상하는 장소였는가를 밝히는 일이기도 하다. 세종로에 이순신 장군 동상을 제작한 애국선열조상건립위원회가 활동을 시작한 것은 반일 정서가 가장 격화됐던 한일협정 이듬해 1966년 광복절이었다. 같은 해 4월과 12월에는 각각 아산 이순신 사당의 성역화 사업과 광화문 복원이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추진되었다. 협정 체결 후 격화됐던 한일협정반대운동은 종료되었으나, 해방 이후 20여 년간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었던 반일 감정의 분출은 일본의 문화와 일상생활에서의 잔재를 청산하고자하는 움직임으로 나타났다. 3공화국의 연속된 행적들은 일제로부터 독립한 탈식민국가의 민족 정체성 확립을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동상의 건립은 근대화를 표상하는 상징거리 경관을 만든 하나의 요소이기도 했다. 당시 중앙청(옛 조선총독부) 앞에 콘크리트로 복원된 광화문의 변경된 건립 위치와 공법, 전면의 현대적인 마천루 양식으로 계획된 두 개의 정부종합청사, 세종로의 차도 확폭은 이순신 장군 동상과 기단 규모의 확대로 이어졌다. 동상 제막식 연설에서 박정희는 위대한 조상 충무공의 정신을 본받는 것은 곧 “조국 근대화의 과업을 성공적으로 완수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앞선 ‘한일회담 타결에 즈음한 특별담화문’에서 일본에 대한 패배주의와 열등의식은 “근대화 작업을 좀먹는 가장 암적인 요소”라며 이를 넘어서야 한다는 극일론을 내세우기도 했다. 반동적인 성격의 정치 주체에 의해 만들어진 이때의 이순신장군 동상과 콘크리트 광화문은 민족 정체성과 더불어 극일과 근대화를 표상하는 모뉴먼트로서 과거로 회귀하려는 현재의 광장과 달리 미래를 지향하는 것이었다. 당시 시인 서정주는 “콘크리트라면 굳이 광화문을 복원한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그건 웃음거리 아닌가?”라며 조롱했던 반면, 중건추진위원 중 한 사람인 건축가 정인국은 이를 복원이 아닌 산업화와 경제 발전을 표상하는 최신의 재료와 기술력을 발휘한 하나의 모뉴먼트로 볼 것을 주문했다. 말하자면 오늘날 광장과 동상은 서로 뒤집힌 채 등을 맞대고 있는 상태로, 그 간극은 목조로 복원된 현재의 광화문과 철거된 콘크리트 광화문 사이의 거리만큼이나 깊다. 때문에 동상이 공공 미술로서 지니는 의미는 더 이상 과거와 같을 수 없다. 발전주의 국가의 경제 성장 모델은 시효를 다해 저성장의 시대로 접어들었고, 도시를 부강하게 만들어줄 혈관이라 믿었던 도로들은 이제 공원과 보행로에 자리를 내주어 도시의 숨길이 되었다. 중앙청과 그 정문 역할을 했던 콘크리트 광화문은 철거되어 서로 다른 박물관의 전시품이 되었고, 정부종합청사는 과천, 대전, 세종 등 지방으로 그 부처와 기능들이 분산되었으며, 맞은편 제2정부종합청사가 계획됐던 의정부지는 복원을 앞두고 있다. 민족이라는 정체성 역시 저출생과 인구 절벽이 추동하는 다문화 공동체에서 점차 구심으로서의 힘을 잃어 갈 것이다. GDP와 임금, 구매력에서 한일의 역전 현상이 나타나는 지금 동상이 그렸던 극일과 근대화라는 미래상은 점차 과거의 것이 되어가고 있으나, 그럼에도 오늘날 탈식민의 과제는 경복궁 복원이라는 회귀적인 방식으로 지속되고 있다. 동대문과 남대문이 일제의 도시 건설 과정에서 파괴되지 않고 보존될 수 있었던 이유가 임진왜란 당시의 왜군 장수의 입성을 기념하려는 목적 때문임을 생각하면, 궁궐의 복원이 곧바로 과거의 극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그것은 극일의 표상으로서의 동상과 더불어 탈식민에 대한 강한 콤플렉스를 드러내는 것에 가깝다. 중세 도시의 모뉴먼트와 광장, 건축물의 유기적 관계를 예찬한 카밀로 지테(Camillo Sitte)는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상 이전을 비판적 사례로 언급한 바 있다. 동상의 크기와 색채에 적합한 스케일과 배경, 그리고 주변의 다른 모뉴먼트와의 관계에 따라 조각가가 선택했던 기존 위치에서 미켈란젤로 광장으로 옮겨진 동상은 환경과 고립된 요소로서 동떨어져 총체적 의미를 발현하지 못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순신 장군 동상은 다비드 상과 반대로 자신을 제외한 주변의 모든 환경이 달라져 오직 홀로 과거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어서 그는 광장 중앙에 모뉴먼트를 세우지 않고 비워야 하는 몇 가지 이유를 제시했다. 먼저 통행에 장애를 초래할 뿐 아니라 같은 축선 상의 건물 혹은 그 입구를 시야에서 감추게 되고, 다양한 방면에서의 접근이 가능해짐에 따라 복수의 배경을 갖게 되는 것 또한 모뉴먼트의 의미를 드러내는 데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순신 장군 동상뿐 아니라 전면에서 광화문을 가로막고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 배경을 달리하는 세종대왕 동상의 위치는 지테가 지적한 것과 동일한 문제를 지닌다. 이는 공공 미술로서 두 동상의 성패를 결정짓는 지점이자 당선안의 제안대로 동상을 이전해야 했던 이유다. *환경과조경415호(2022년 11월호)수록본 일부 각주 1. 정기용, “‘비움’에 대한 근원적 성찰”, 『월간미술』 1999년 9월호. 참고자료 강난형, 송인호, “1960년대 광화문 중건과 광화문 앞길의 변화”, 『건축역사연구』 101, 2015. 염운옥, “‘제국의 심장’에서 ‘시민의 광장’으로: 런던 트래펄가 광장”, 『영미연구』 39, 2017. 염복규, “1960-2000년대 광화문 공간의 재구축에서 ‘전통과 현대’”, 『문화와융합』 44, 2022. 카밀로 지테, 손세욱, 구시온 역, 『도시·건축·미학』, 태림문화사, 2000. 오장근, “광장의 언어 지테(Sitte)의 시선에서 바라본 광장의 구조와 의미 이해하기”, 『기호학 연구』 40, 2014. 서울 의정부지 유구보호시설 조성 설계공모 2단계, 서울시, 2022. 정기용, “‘비움’에 대한 근원적 성찰”, 『월간미술』 1999년 9월호. 이은영, 『우리 시대 엘리트의 몫』, 미술문화, 2001. 존 러스킨, 현미정 역, 『건축의 일곱 등불』, 마로니에북스, 2012. 제공건축, ‘우리의 사적인 광장’, 2019. www.jegong.com/blank-2 안진희, 배정한, “광장에 대한 공론의 생성과 공간적 반영”, 『도시설계』 78, 2016. 정평진은 서울시립대학교에서 건축을 전공했고, 건축전문 잡지에서 기자로 일했다. 여러 매체에 도시와 건축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2020 ‘사회적 건축: 포스트코로나 젊은건축가 공모’에서 대상을, 2022년 『환경과조경』 ‘조경비평상’에서 가작을 수상했다. “도시는 공통재(commons)”라는 믿음으로, 공공 공간의 좀 더 사적인 점유 형식과 공개공지 및 공공 미술 등 사적 영역의 좀 더 공적인 활용 방식을 상상하고 있다.
  • 캇하레이너 운하 Catharijne Singel
    반세기만에 위트레흐트(Utrecht)의 역사적 중심지는 다시 한번 물과 초목으로 완전히 둘러싸이게 됐다. 위트레흐트 구시가지 주변의 운하 복원은 기차역 지역 마스터플랜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50년 전 10차선 고속도로 건설을 위해 메웠던 운하를 다시 파내 역사적으로 유서 깊은 수변을 복원하였다. 대상지는 생태, (수상)레크리에이션, 교통이 정교하게 통합된 녹지와 경사면이다. 자연 친화적인 수변 공간 덕분에 동식물을 위한 더 넓은 장소가 마련되었고, 도시의 녹지가 되살아났다. 역사적 배경 위트레흐트는 로마시대에 세워진 도시다. 수세기 동안 도시는 방어용 성벽과 캇하레이너 운하(Catharijne Singel)로 둘러싸여 있었다. 방어벽은 점차 허물어졌고, 황폐한 상태가 됐다. 조허르J. D. Zocher(1791~1870)가 설계한 공원은 과거의 방어 시설 지역에 대부분 자리를 잡았다. 1958년 캇하레이너 운하는 새로운 순환 도로의 건설로 인해 완전히 사라질 위기에 봉착했다. 수년 간의 논의 끝에 1969년 주요 간선 교통망을 만들기 위해 운하의 물을 빼내는 작업을 진행했다.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결정이었지만, 현대적 도시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필요한 일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1970년대의 다른 도시 개발과 마찬가지로 이 결정은 위트레흐트 도심의 공공 공간에 재앙 같은 결과를 가져왔다. 자동차 교통이 활발해지면서 차량을 통한 접근성이 우선적으로 고려됐다. 지역 주민들은 방문객과 자동차 교통에만 일방적으로 초점이 맞춰지는 것을 보며 소외당하는 느낌을 받았다. 운하 복원을 위한 많은 캠페인이 생겨나는 등 친수 공간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저항의 움직임이 계속됐다. 1980년대 후반 위트레흐트의 기차역 인근 지역 개선을 위한 첫 번째 계획이 수립되었다. 2002년 실시된 국민 투표에서 위트레흐트 주민들은 캇하레이너 운하 복원에 대한 찬성의 목소리를 드러냈다. 이를 바탕으로 우리는 시정부, 주민과 함께 운하 복원을 위한 새로운 디자인을 만드는 공동 프로세스를 시작했다. 개입의 목표 위트레흐트 중앙역(Utrecht Central Station) 지역 재개발은 네덜란드에서 크고 복잡한 프로젝트 중 하나다. 이 프로젝트의 핵심은 역사적인 도시와 기차역을 더 강력하게 연결하여 도심의 차량 통행을 현저히 감소시키고, 자전거 이용자와 보행자를 위한 더 많은 공간을 확보해 공공 공간의 거주성과 보행성을 개선하는 것이었다. 캇하레이너 운하의 마지막 구역 복원이 이뤄졌는데, 이 프로젝트 대상지의 1,100m 정도가 포함됐다. 전체적으로 약 40,000m3의 물이 운하로 되돌아왔고, 그 전체 길이는 약 6km에 이른다. 디자인 원칙 캇하레이너 운하의 위치와 인근 조허르(Zocher) 공원의 확장을 고려해 교통의 흐름과 관련된 선택지들을 신중하게 마련했다. 몇몇 상황을 제외하고 보행자 동선을 최우선순위에 두었다. 운하를 따라 펼쳐진 광범위한 산책로는 여가와 스포츠 활동에 적합하다. 이용자들은 산책로를 거닐며 장소의 역사, 예술 작품 등에 대한 다양한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수많은 좌석 공간에 앉아서 쉴 수 있고, 각기 다른 종류의 초목으로 이루어진 녹지, 그리고 주위를 둘러 싸고 있는 도시의 다양한 전경을 감상할 수 있다. 기존 조허르 공원의 평면도와 조망을 기반으로 조허르의 디자인 요소 중 새롭게 재해석할 수 있는 것에 대해 조사했다. 그 결과 핵심 요소인 수경 시설이 공간에 개방감을 더하고 수면에 비친 경관을 제공한다는 점, 높낮이를 달리하는 여러 식물 군락이 존재한다는 점, 공원에 대칭적 형태의 보행 경로가 없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상록수부터 연중 개화가 풍성하게 이뤄지는 수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수종을 식재에 활용했다. 탁 트인 수공간과 거친 초원, 그리고 식물 군락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경을 선사한다. 조허르의 스타일에서 수변의 선은 공원의 형체가 의도적으로 반사되어 드러나는 세련된 선이다. 기존에 있던 키 큰 식물과 나무가 물에 반사된 모습은 운하와 공원 사이의 시각적 통일성을 만들어 낸다. 포플러, 플라타너스, 자두나무, 느릅나무 등 다양한 수목은 새로운 공원과 기존의 조허르 공원을 연결한다. 나무를 선택할 때 생물학적 다양성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예를 들어 꿀벌과 땅벌을 유인할 수 있도록 단일 수종의 꽃나무를 선정했다. 구운 클링커(옛 라인강 벽돌)와 자갈 같은 재료를 사용해 위트레흐트의 역사적인 도심 내부와의 시각적 연결을 도모했다. 둑 주변에 목재 데크를 설치해 좌석, 무대 등으로 활용하게 했다. 기존의 목재 데크에 하부 구조를 추가하여 레저용 보트뿐 아니라 카누와 노 젓는 배 이용자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환경과조경415호(2022년 11월호)수록본 일부 글 OKRA Landscape Architect OKRA Engineering Witteveen+Bos Contractor D. Van Der Steen BV Client City of Utrecht Location Catharijne Singel, Utrecht, The Netherlands Area 4.2ha Design 2017 Completion 2021 Photograph OKRA, Stijn Poelstra OKRA는 네덜란드에 기반을 둔 설계사무소로 조경과 도시, 지역 계획을 주로 하고 있다. 긴장감 있는 디테일과 예술적 감흥이 짙은 콘셉트를 통해, 역사와 문화의 결이 두텁고 인구 밀도가 높은 유럽 도시에서 강렬한 어바니즘을 제시해왔다. 도시에 현존하는 맥락과 미학을 존중하며, 다양한 시간적 리듬에 유연하게 적응하는 도시의 장소를 디자인한다.
    • OKRA
  • 반포르엘 Banpo LE|EL
    대상지는 서울에서도 번잡하기로 유명한 센트럴시티(서울고속버스터미널)와 신반포로를 경계로 두고 있다. 주변은 신축 아파트 단지와 재건축 예정인 낡은 아파트 단지가 모여 있는 주거 지역으로, 계속해서 변화하고 있다. 반포 한강공원으로 접근이 용이한 북측은 중심 상업지면서 한강이라는 극적인 자연 녹지와 인접한 아이러니한 경관을 가지고 있는 곳이다. 반포르엘은 모든 주거동이 필로티로 되어 있어 건물로 인해 외부 공간이 단절되지 않고, 야외 공간과 반 실내가 반복해서 이어지는 구조다. 비가 오는 날에도 실내에서 바깥의 공기를 느끼고 바라볼 수 있어 단지 전체가 테라스 카페 같은 낭만적인 분위기를 띤다. 이러한 구조적 측면으로 작은 단지의 단점을 극복하고, 평지의 이점을 십분 활용해 공간과 공간을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했다. 각 콘셉트가 있는 공간들이 필로티를 통해 연결되니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이동하며 다양한 경험을 누릴 수 있다. 갤러리, 활동(액티브), 감성(센서리)이라는 세 가지 콘셉트로 길을 나누어 공간을 배치했다. 갤러리 웨이 남측 주출입구에서부터 북측 단지 보행 출입구까지 이어지는 갤러리 웨이는 다채로운 수 경관을 보여준다. 물과 조경이 만들어내는 경관을 갤러리에서 천천히 소유(溯游)하듯 즐길 수 있다. 주출입구에 설치한 라이트닝폰드는 지하주차장 진출입램프 지붕을 활용한 공간으로, 역보(reversed beam) 끝에서 떨어지는 물소리가 정원에 청량감을 더해준다. 지붕면에 적용한 물줄기를 형상화한 디자인 패턴은 커다란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하다. 이 풍경의 진가는 밤에 더욱 드러나는데, 낮 동안 빛을 받아 밤에 은은한 빛을 뿜는 축광석으로 마감되어 진짜 물결이 흐르는 듯한 빛나는 풍경을 선사한다. 단지 중앙의 아쿠아가든은 원형 패턴의 반복과 물줄기는 내뿜는 연못, 분수를 이용해 경쾌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곡선형의 녹지와 잘 어우러지는 원형의 티하우스는 휴게 공간뿐 아니라 연못 위 폭포의 역할까지 하는 하나의 조형물과 같다. 연못 중앙에는 미술 작품이 있는데, 이는 붓놀림을 형상화한 것으로 시원하게 물이 떨어지는 티하우스의 폭포와 같이 경쾌한 움직임을 나타낸다. 작품과 어우러진 휴게 시설물과 녹지를 보면 야외 갤러리에 온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웅장하고 푸른 소나무로 외곽을 둘러싸고 내부 연못 주변으로 붉은색 꽃을 피우는 배롱나무를 심어 선명하고 밝은 단지 중심 공간의 역할을 하게 했다. 커뮤니티 시설과 연결되는 선큰갤러리는 갤러리의 휴게 공간을 연상하게 한다. 옹벽을 자연스럽게 감싸는 미러폰드의 잔잔한 수면은 선큰 공간의 고요하고 아늑한 분위기를 더욱 드러낸다. 폰드 한쪽엔 미술 작품을 두고, 반대편은 키 작은 수목으로 장식해 편안하면서도 지루하지 않은 공간을 만들었다. 단지 북측의 생태연못에는 자연미와 조형미가 어우러지는 루미에가든을 조성했다. 자연의 풍광을 따온 석가산은 다양한 식재와 다층의 수경 시설로 자연 속에 그대로 들어온 느낌을 준다. 곁에 설치한 티하우스에 앉아 작은 계곡의 풍경과 물소리를 감상하면 생생한 작품을 보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환경과조경415호(2022년 11월호)수록본 일부 글 곽가나 윤디자인스케이프 부장, 이한결 롯데건설 조경담당 사원 사진 유청오 조경설계 윤디자인스케이프 시공 롯데건설 조경 시공 정한조경 놀이 시설 원앤티에스 휴게 시설 스페이스톡 위치 서울시 서초구 잠원동 74-1 규모 596세대 대지 면적 23,726.56m2 조경 면적 10,404.25m2 완공 2022. 8.
    • 윤디자인스케이프+정한조경
  • KT 디지코 가든 KT Digico Garden
    신뢰의 바탕 모든 프로젝트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는 발주처와의 신뢰 관계다. 신뢰는 문서화된 화려한 이력에서 시작되지만,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드러나는 깊이 있는 실무 능력과 진정성 있는 자세가 그 근간을 만든다. KT 디지코 가든(KT Digico Garden) 프로젝트에는 색다른 소통 체계가 있었다. 발주처는 KT 내 브랜드 마케팅 부서였고, KT 광고를 대행하는 대홍기획이 이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관리했다. 시작은 KT 브랜드 강화를 위해 건축물 벽면을 이용하는 뮤럴(mural, 벽화) 프로젝트였다. 그런데 콘셉트 디자인이 진행되면서 조경을 중심으로 한 외부 공간 리노베이션 프로젝트로 바뀌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KT 이스트East 빌딩 부지뿐만 아니라 건물 주변을 둘러싼 종로구청 소유의 가로와 남측 공공 보행 통로까지 대상지로 편입됐다. 그러다 보니 프로젝트가 꽤 복잡한 이해관계로 얽히게 됐다. KT와 종로구청의 공통분모가 필요했다. 우리는 광화문광장 숲과 연계한 도시숲 개념을 제안했다. 커다란 공통분모가 생기자 프로젝트는 빠르게 진행됐다. 발주처가 이런 프로젝트에 생소했기 때문에 진행 과정에서 설계사의 역할이 중요했다. 공공 프로젝트 경험이 많고 당시 종로구청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기에, 우리는 앞으로 일어날 상황을 미리 예측하며 구청 담당자들과 소통해 중요한 이슈를 빠르게 해결해 나갔다. 문제는 디자인을 결정하는 데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하는 상황이었다. 대홍기획을 통해서만 계획안을 설명할 수 있었기 때문에 설계 의도를 명확하게 전달하기 어려운 구조였다. 따라서 전문적인 도면과 용어보다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공간 이미지 위주로 보고 자료를 준비했다. 담당자의 조경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사례를 바탕으로 한 설명회를 자주 가졌고, 농장 답사에 동행해 공간 콘셉트에 맞는 수목과 우리가 원하는 수형의 특징을 자세히 알려주기도 했다. 이 과정 속에서 서로에 대한 신뢰가 더욱 견고해졌고, 결과적으로 설계 의도를 프로젝트에 명확히 반영할 수 있었다. 설계 바깥의 세 가지 조건 원하는 수준의 시공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조경가는 설계 이외의 다른 것들도 알아야 한다. 좋은 콘셉트와 디자인, 충실한 설계 도서만으로 완성도 높은 공간을 만들기 쉽지 않다. 2017년 한국으로 돌아와 진행한 첫 프로젝트의 실패가 좋은 밑거름이 되었다. 당시 최저가 입찰로 선정된 시공사는 여러 이유를 들어 디테일들을 바꾸었고, 현장 감리는 설계자의 의도보다는 공기 단축과 익숙한 방식의 시공을 선호했다. 결국 껍데기만 남고 설계자의 의도가 사라진 조잡한 공간이 완성됐다. 이 실패를 경험으로 삼아, KT 디지코 가든 프로젝트에서 좋은 시공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세 가지 조건을 담당자에게 지속적으로 언급하고 설득했다. 첫째, 설계자의 의도를 명확히 구현할 수 있도록 돕는 디자인 감리. 둘째, 저가 입찰 방식이 아닌 시공 능력 평가를 통한 시공사 선정. 셋째, 예비비를 포함한 충분한 예산 확보. 광화문광장 사례를 들어 디자인 의도 구현을 위한 비용을 산정하고 진행 방식을 적용했다. 시공사 선정은 객관적 평가를 할 수 있는 서울형 공공조경가와 KT 내부 전문가를 심사위원으로 선정했다. 기본설계 도서를 바탕으로 예산 책정을 위한 공사비를 산정했다. 이러한 전략을 설계와 함께 입체적으로 진행하고, 설계사가 주도적으로 이 방식을 제안하고 이끌었다. 건축가 렌조 피아노, 그리고 조경가 렌조 피아노(Renzo Piano)의 콘셉트 스케치를 보면 지상층과 옥상층이 매우 흥미롭다. 지상 레벨에는 필로티로 띄운 건물 사이에 작은 언덕과 수목이 채워져 있으며, 이동을 위한 최소한의 계단실, 엘리베이터 코어, 에스컬레이터만 배치됐다. 건축물의 방이 시작되는 로비는 필로티로 띄워져 3층 높이에 위치한다. 옥상에는 지상층의 언덕 형태가 180도로 뒤집혀져, 수목을 심기 위한 식재 토심을 확보하는 동시에 주변으로 열린 평탄한 경관을 제시하고 있다. 가장 인상적인 점은 지상층을 오로지 공공을 위한 공간으로 쓰며 자연 요소로 채운 계획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로비는 지상층에 시공됐고, 포장으로 둘러싸여 분리된 두 개의 언덕은 법적 기준을 준수할 정도의 녹지로 구현됐다. 전정한 회양목, 현무암으로 포장한 산책로, 듬성듬성 놓은 경관석, 휑한 언덕 위에 설치한 등의자, 특색 없는 교목 등 전형적인 오피스 빌딩의 풍경이 연출됐다. 지나는 몇몇 사람이 간헐적으로 잠시 쉬어갈 뿐 이 장소를 즐기는 사람을 볼 수 없었다. 새로운 풍경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렌조 피아노가 제시한 초기 아이디어를 현실 여건에 맞춰 새롭게 각색하고자 했다. 날아갈 듯 가벼운 느낌의 KT 이스트 빌딩이 숲 속 녹지 위에 떠 있는 풍경을 만들고 싶었다. 콘크리트 가장자리에 갇힌 지형을 흐르게 하고 화강석 포장면 대신 두꺼운 녹지를 덧대 너른 자연의 카펫을 만들었다. 자연으로 채워진 공공의 공간, 이것이 설계안의 기초가 됐다. 도심 속 등산 코스 인왕산과 삼각산이 도시를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풍경에 감동받은 렌조 피아노는 서울은 ‘자연의 도시’라고 말했다. KT 디지코 가든은 10분 동안 등산을 즐길 수 있는 작은 산이다. 암석 사이로 축축한 이끼와 고사리가 자라고,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 소리와 새소리를 듣고, 짙은 숲 사이로 산책하고, 언덕을 올라 전망 데크에서 도심 풍경을 즐길 수 있다. KT 디지코 가든에는 두 개의 정원과 세 개의 숲길이 있다. 그늘이 많은 북측 언덕은 음지성 식물을 중심으로 깊은 숲 속 자연을 재현해 바람정원으로 명명했다. 지하주차장 출입구가 있는 남측 정원은 구조적 문제로 토심이 부족하고 일반인의 접근이 허용되지 않았다. 데크 산책로를 주차장 상부까지 연결해 전망대를 설치하고 초지 언덕을 만들어 하늘정원으로 명명했다. 건물 주변을 따라 남측 공공 보행 통로에는 배롱나무 숲길을, 서측 중학천변으로는 버드나무 숲길을 조성하고 길 끝에 정자목이 될 팽나무를 심었다. 동측과 북측에는 이팝나무 숲길을 만들고, 두 길이 만나는 지점에 소사나무를 식재했다. 건물 주변의 녹음이 부족한 가로에는 UHPC(Ultra High Performance Concrete)로 제작한 플랜터를 교호로 배치하고, 줄기가 많은 산딸나무를 식재해 보완했다. 숲을 조성하며 가장 많은 공을 들인 곳이 바람정원이다. KT는 가로에서 필로티 내부의 풍경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나무와 식물을 빽빽이 심기를 원했다. 그런데 정원 산책로에서 가로변 소셜 에지(social edge)까지의 녹지 폭원이 6~7.5m 정도에 불과해 큰 수목만으로는 의도한 풍경을 연출하기 어려웠다. 지형의 이점을 최대한 활용하고자 서로 다른 높이의 꽃산딸나무, 팥배나무, 산딸나무, 산단풍을 3m 간격으로 식재했다. 교목 사이에는 생강나무, 함박꽃나무, 덜꿩나무, 좀작살나무, 낙상홍 등을 배치했다. 또한 가로변 소셜 에지를 따라 중간 키 정도의 귀룽나무, 마가목, 자작나무, 낙상홍 등을 바깥으로 기울여 심었다. 이처럼 지형에 맞춘 세 개의 층위로 나눠 식재해 깊이가 느껴지는 숲을 만들고자 했다. 또 하나의 식재 전략으로, 식물의 가지나 잎사귀가 신체에 최대한 접촉할 수 있게 수목을 산책로 가까이에 배치했다. 도심 속 휴게 공간에서 잎사귀에 뺨을 맞는 경험을 주고 싶었다. 어른 키 높이의 가지가 산책로를 덮을 수 있도록 배식했다. 예를 들어 정문 북측 언덕을 오르려면 신나무의 가지를 피하기 위해 허리를 숙여야 한다. 0.6m 폭원의 좁은 산책로를 따라 걸으면 산딸나무와 마가목 가지를 눈높이에서 만날 수 있다. 작은 관목과 지피초화류를 산책로 포장면을 덮도록 식재했다. 이런 의도들은 설계 도서만으로는 전달하기 어럽다. 그래서 방성식 시공 현장 소장과 원하는 수형의 수목을 찾으러 여러 농장을 다녔고, 그 과정에서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듯 원하는 느낌의 수목을 농장의 나무들과 비교하며 반복적으로 방 소장에게 설명했다. 덕분에 원하는 수형의 나무를 가져올 수 있었다. 그리고 식재 공사 때마다 현장에 방문해 일일이 수목의 위치와 방향을 결정했다. 다른 프로젝트를 병행하는 상황에서 고된 일이었지만 꼭 필요한 작업이었다. 숲 아래 풍경들 하부 식재 연출에 대한 고민이 깊었는데, 이 부분은 전적으로 김수린 팀장에게 맡겼다. 좁은 면적이지만 공간이 깊어 보일 수 있는 속임수가 필요했고, 회화 기법에서 해답을 찾았다. 사용한 식재 기법은 크게 두 가지다. 근경과 원경을 강하게 대비시키는 방법과 그 사이에 중경을 추가하는 방법이다. 근경에는 잎의 채도가 낮고 질감이 거친 식물 관중과 모로위사초 ‘아이스댄스’를 심어 상이 오래 맺히도록 만들었다. 원경에는 잎의 채도가 높고 질감이 부드러운 긴산꼬리풀과 감동사초를 심어 대비시켰다. 그 사이에 경계를 뿌옇게 만들어주는 솔정향풀로 중경을 만들어 공간감이 한층 더 깊어지도록 했다. 남쪽의 하늘정원에는 단조롭지만 강한 인상을 줄 수 있는 경관을 연출했다. 필로티 하부 공간에는 내음성이 강하고 생육성이 강한 수국을 군식했다. 주차장 상부 전망데크 주변에는 브라키트리차 새풀을 대량으로 식재해 넓은 들판에 올라가는 듯한 경험을 하게 했다. 바람정원 숲 하부에는 암석원이 있는데, 시공 경험이 많은 안기수 소장(공간시공 에이원)에게 맡겼다. 돌을 놓고 그 사에 식물을 심는 일에는 도면보다 현장의 감각이 더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도심 속 골바람으로 만든 풍경 바람정원 안에는 폭원 6m의 환기구 시설 2개소가 있다. 경관 가치가 높은 장소 앞뒤에 있어 해결책이 필요했다. 특히 최상단의 환기구는 휴게 공간과 인접하게 놓여 있어 수목으로 가리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를 해결하고자 미디어 커튼을 제안했는데, 예산 문제로 수경 요소를 접목한 이슬 스크린으로 변경되었다. 하지만 이마저 유지·관리의 어려움 때문에 포기해야 했고, 최종적으로 윈드 웨이브를 계획하게 됐다. KT 이스트 빌딩 일대에는 고층 빌딩이 많아 골바람이 자주 부는데, 윈드 웨이브를 이룬 3,054개의 패널들이 이 바람에 따라 움직이며 아름다운 물결을 만든다. 가로 7cm, 세로 12cm 크기의 알루미늄 패널 표면은 아노다이징(anodizing) 기법으로 마감했는데, 작은 바람에도 움직일 정도로 충분히 가볍다. 바람에 움직이는 패널이 듣기 좋은 청량한 소리를 만들어 청각적 즐거움을 더한다. 일부 패널에는 정원에 심은 식물에 관한 정보를 레이저 가공으로 기록했다. 지금 KT 디지코 가든을 방문하면 개장 이벤트로 윈드 웨이브에 새긴 고래를 만날 수 있다. 최근 흥행한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KT 스튜디오 지니가 지분을 투자해 만든 콘텐츠다. 이와 연계한 윈드 웨이브 활용 아이디어를 제안했고, 그 결과 숲 속에 사는 고래를 주제로 한 일시적 이벤트 경관을 연출할 수 있었다. 빛이 그린 수묵화 정원에 빛을 이용해 다양한 풍경을 만들었다. 공간마다 특징이 다른데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이 남측 하늘정원이다. 전망데크 주변 초지에 40여 개의 갈대 조명을 균등하게 배치하고 프로그래밍을 통해 빛의 흐름을 연출했다. 북측의 소셜 에지와 팽나무 플랜터, 플랫폼에 놓인 돌벤치 하부에는 선형 조명을 설치해 바닥 공간을 밝혔다. 자연스럽게 어두운 숲과 대비되어 공간의 깊이감이 생겨난다. 가장 특별한 야경은 의외의 공간에서 볼 수 있다. KT 이스트 빌딩 필로티의 거대한 천장과 벽면은 숲의 배경이다. 옆면이 뚫린 직육면체 구조 때문에 낮 동안은 그늘이 져 어둡지만 밤에는 빛이 반사되어 도화지처럼 하얀 면이 된다. 이런 특징을 활용해 바람정원 벽면에 그림자 정원을 만들었다. 잎 모양이 다양한 음지형 지피초화류를 심고 조명을 배치했다. 조명의 각도로 인해 커진 잎 모양의 그림자들이 겹쳐져 일러스트 같은 그림자 숲을 만든다. 필로티 천장에는 수목 가지와 투사등의 거리에 따라 그림자의 농담이 달라져 수묵화 같은 풍경이 연출된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으나 1차 시공을 마치고 조명 연출을 확인하다 발견했다. 뜻밖의 선물을 받은 아이처럼 행복했던 기억이 난다. 광화문광장 일대 변화의 프로토타입을 꿈꾸다 조용준 인터뷰 광화문광장의 숲과 KT 디지코 가든이 멀지 않은 곳에있다. 두 장소는 어떤 관계인가. 광화문광장에서 건널목 하나를 건너면 KT 웨스트 빌딩이 나타나고 이어 대상지인 이스트 빌딩이 나온다. 광화문광장의 의의는 광장 주변을 함께 바라볼 때 발견된다. 광장이 변하면 그 일대도 함께 변한다. 클라이언트인 KT도 이를 인지하고 있었고, 당시 개발 중이던 이스트 빌딩을 광화문광장 개장에 맞추어 함께 열고 싶어 했다. 마침 광화문광장을 만들며 주변 일대의 기본 구상도 진행한 상태라, KT 디지코 가든이 광장 일대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보여주는 프로토타입이 될 것이라 기대했다. KT 디지코 가든은 본래 KT 브랜드 강화를 위한 프로젝트에서 출발했다. 발주처도 ‘공공의 숲’이라는 개념이 홍보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데 동의했나. 좀 더 많은 사람들을 KT 디지코 가든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어떤 전략을 사용했나. 시작은 잭과 콩나무를 콘셉트로 한 뮤럴(mural, 벽화) 프로젝트였는데, 벽화 주변의 조경에 대해 논의하며 점차 조경 중심의 프로젝트로 바뀌게 되었다고 들었다. 단순히 보게 하는 공간보다 체험하는 공간이 사람들에게 더 크게 다가갈 수 있다고 설득했다. 아모레퍼시픽 사옥을 비롯해 오픈스페이스를 통해 브랜드를 강화한 프로젝트 사례를 많이 보여주었다. 또 광화문광장을 방문한 사람이 결국 식당을 찾아 빌딩가를 찾을 것이고, 숲이 매력적인 빌딩에 더 오래 시선을 둘 것이고, 밥을 먹은 사람이 숲을 거닐며 자연스럽게 KT에 대해 알게 될 것이라고 설득했다. 설득력을 높이기 위해 콘텐츠 요소도 넣었다. 대상지 모퉁이에 커다란 팽나무가 있는데, KT가 지분을 투자한 인기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이하 우영우)의 한 장면에서 따와 심은 것이다. 정자목을 넘어 팽나무가 KT의 콘텐츠를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대상지 내 윈드 웨이브에도 우영우를 상징하는 또 다른 요소인 고래 이미지를 삽입해 홍보 효과를 꾀했다. 광화문광장을 비롯해 주변을 거닐던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새로운 매력적인 숲이 필요했다. 우선 나무를 밀식해 도심에서 만나기 어려운 빽빽한 숲의 경험을 하게 해주고 싶었다. 지나는 사람의 호기심을 자극하도록 주변을 걸을 때 어디에서나 녹지를 발견할 수 있게 했다. 대상지 북쪽에 지하철역 입구가 있는데,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역을 빠져나올 때부터 숲으로 들어선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양 옆에 넉넉한 녹지를 조성했다. KT 이스트 빌딩 입구의 양쪽이 유리로 되어 있어 이곳에 근무하는 이들은 숲으로 출근해 숲에서 퇴근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렌조 피아노가 그린 녹지의 선형이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생각했는가. 기존 설계안에서 수용한 부분과 수용하지 않은 부분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과거 대상지는 언덕이 없는 평평한 관아 터였으므로, 과거의 지형에서 비롯된 선형은 아니다.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렌조 피아노의 인터뷰를 찾아봤는데, 내사산으로 둘러싸여 그 지형에 의해 만들어진 서울이라는 도시에 큰 감명을 받았다더라. 그 결과 KT 이스트 빌딩 하부의 거대한 언덕을 계획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언덕이라는 콘셉트가 굉장히 좋아 받아들이기로 마음 먹었으나 필로티 하부에 있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었다. 아마 계획 초기에 개입할 수 있었더라면 건물 바깥으로 언덕을 둘러 숲으로 만들고, 필로티 하부를 숲에 둘러싸인 오픈스페이스로 조성해 식물이 생육하기 좋은 환경을 마련했을 것이다. 우선 법적 기준에 맞춰 콘셉트 위주의 도면을 다듬었다. 렌조 피아노의 안에 따르면 지상층 전체가 숲과 같은 언덕으로 덮여 있고 가장자리가 자연스러운 녹지로 마무리되지만, 실제 부지는 콘크리트 포장 도로로 둘러싸여 있다. 최대한 원 계획과 가까운 공간을 만들기 위해 일부 가장자리를 허물어뜨리고 언덕이 이를 넘어오게 해 더 많은 자연을 만들고자 했다. 이미 완성된 외부 녹지 공간을 부수고 다시 대규모 언덕을 조성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 정해진 공사비 안에서 공간을 바꿔야 하는 게 쉽지 않았다. 구조를 바꿀 경우, 언덕 조성과 수목에 예산을 사용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따라서 전략적으로 구조는 최대한 그대로 유지했다. 또 다른 문제점은 이 언덕이 지하 공간 위에 만들어진다는 점이었다. 지하 공간 위의 녹지에 나무를 더 심을 경우 하중이 늘어나 구조적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따라서 토양을 적당히 걷어낸 뒤 식재를 진행했다. 정원 대신 숲, 산책 대신 등산이라는 단어와 콘셉트를 사용한 이유가 궁금하다. 렌조 피아노의 아이디어를 단순히 형태적으로 차용하고 싶지 않았다. 그가 내사산에 둘러싸인 풍경에 감동받아 언덕을 계획했으니, 이곳에서 작은 산을 경험하게 하고 싶었다. 평지를 걷다가 오르막을 오르기도 하고 높은 곳에 다다르면 전망을 즐길 수도 있는 등산 코스를 떠올렸다. 대상지에 처음 방문했을 때, 점심을 먹고 난 직장인들이 담배를 피우거나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모습을 목격했다. 건너편 커피숍에 앉아 수다를 떠는 게 휴식 활동의 전부였다. 단순히 쉬어가는 정원보다는 적극적으로 움직이며 자연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해 보였다. 공간에 깊이를 더하기 위해 언덕, 식물, 콘크리트 구조물을 사용해 높이를 만들었다. 어떤 원칙을 기준으로 삼았나. 대상지가 북측에 있는 데다 필로티 하부라 어두워 식물 생육이 어려운 조건이었다. 게다가 차량이 진입하는 곳의 경우 구조가 약해 상부에 나무를 많이 심어 숲과 같은 공간을 만들기 어려웠다. 이곳에 빽빽한 숲을 만드는 대신 올라서면 탁 트인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전망대를 만들어 임팩트를 주고자 했다. 폭원이 7m밖에 되지 않는 녹지에는 나무가 최대한 길과 밀착되도록 심고, 사이사이에 관목을 배치했다. 더욱 두꺼운 숲을 만들기 위해 키 큰 수목과 작은 수목을 다채롭게 심고, 되도록 줄기가 많은 수목을 사용했다. 이곳을 거닐다보면 잎사귀나 나뭇가지에 뺨을 맞는 경험을 할 수 있다. 그만큼 길 가까이에 나무를 심었다. 도시민들은 의도적으로 나무에 몸을 부딪치지 않는 이상 잎사귀와 나무를 몸으로 느끼는 경험을 할 수 없다. 하지만 KT 디지코 가든에서는 길을 오르려면 나뭇가지를 피해 고개를 숙여야 하고 수시로 온몸에 잎사귀가 닿는다. 대상지 가까이에 흐르는 중학천은 큰 기회 요소가 되었다. 이 작은 천이 산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실개천의 역할을 해준다. 천변을 따라 버드나무를 심었는데, 상위 계획에 따라 중학천이 복원되면 이 녹지가 도시 차원으로 확장될 것으로 보인다. 주요 소재로 콘크리트와 돌을 사용한 이유는? 렌조 피아노는 가볍고 건물이 공중에 떠 있는 듯한 느낌을 추구하고, 이를 위해 투명성을 사용하기도 한다. 이에 따라 난간 등 여러 시설물을 얇게 만들고 멀리서 보면 가는 선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노력했다. 콘크리트는 렌조 피아노가 선호하는 소재고, 건물과 잘 어울려 많이 사용했다. 콘크리트로 해결할 수 없을 때는 돌을 사용했다. 지면과 돌이 만나는 부분을 안쪽으로 들어가게 해 그늘에 숨긴 뒤 선형 조명을 설치했는데, 이렇게 하면 돌로 만든 시설물이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보여 돌의 무거운 느낌을 덜어낼 수 있다. 간혹 긴 선형의 홈이 파인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는 더글라스 정원에도 사용했던 나만의 디자인 시그니처로 수평성과 깊이를 강조하는 디테일이다. 소셜 에지는 본래 콘크리트 앉음벽만 있던 공간인데, 바로 뒤에 경사가 진 화단이 있어 비가 내리면 흙과 자갈이 계속 흘러내리는 문제가 있었다. 이 불편을 덜어내기 위해 화강석을 둥근 형태로 덧대 화단과 앉는 공간 사이에 자연스러운 턱이 생기게 했다. 본래는 하나의 조각을 길게 만들어 최대한 이음매를 적게 만들 계획이었으나, 도면과 실제 현장의 여건이 달라 시공을 진행하며 미리 제작한 조각을 잘라가며 이어 붙여야 했던 점이 조금 아쉽다. 주변 길과의 관계를 고려해 설계한 부분이 있다면? 도면에서 붉은색으로 표시된 부분이 실제 대상지인데, 선 안쪽만 설계할 경우 숲과 같은 공간을 만들기 어려웠다. KT와 종로구청의 협의를 통해 종로구 부지 일부도 함께 손을 볼 수 있었다. 일종의 기부채납을 한 셈이다. 부지를 두른 네 개의 길을 각기 다른 테마의 산책로로 만들었다. 전문가의 관점에서는 작은 부지에 너무 많은 요소가 있다고 느낄 수 있지만, 실제로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작은 공간에서 다채로운 경험을 하기를 원한다. 중학천변에는 천변 식물을 모티브로 삼아 숲을 만들고, 광화문광장에서 다가오는 사람들의 시선이 모이는 삼봉로 모퉁이에는 커다란 팽나무를 심었다. 북쪽 길에는 이팝나무 플랜터를 놓아 숲길을 만들었다. 남쪽의 경우, KT가 독특한 수목을 심기를 원했던 길이다. 본래 요구했던 수목은 동백나무였으나 서울에서 생육이 어렵기 때문에 동백 못지않게 화려한 꽃을 피우는 배롱나무를 심었다. 내년 여름이면 이 부근이 분홍빛으로 물들 것으로 기대된다. 보고 자료에서 ‘조경과 기술을 결합한 문화 공간’, ‘인식의 변화 X세대, 인식의 확산 MZ세대’ 등 고객 경험개선 전략을 설명하는 부분이 인상 깊었다. 현재 조경과 기술의 접목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나. MZ세대가 공간을 이용하는 방식이 조경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의견이 궁금하다.1 조경과 기술의 결합은 아직 풀기 어려운 문제다. 디지코(Digico)는 디지털과 텔레콤의 합성어로 KT가 통신 회사를 넘어 디지털 플랫폼 기업으로 변화했음을 보여주는 단어다. KT 디지코 가든에도 그 의미를 담고자 기술을 접목한 공간을 조성하려 노력했다. 천으로 된 미디어 스크린을 계획하기도 했다. 스크린이 자유롭게 여닫히고 안쪽에 가상현실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두어 가상과 진짜 자연의 경계를 넘나들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기술력의 문제로 실현할 수 없었다. 사물인터넷IoT을 이용한 식물 유지·관리 계획을 제안하기도 했는데 KT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MZ세대는 핫플레이스를 많이 찾아다니는 세대다. SNS에 그들이 올리는 콘텐츠 자체가 홍보 효과를 내기 때문에 외부 공간이 어떤 색다른 경험을 주느냐가 중요해진 것이다. KT를 비롯해 많은 클라이언트도 이러한 상황을 알고 있다. 김수린 작업 초기 워크숍 회의 중, KT의 통신 기술을 조경 공간에 도입하면 어떨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외국 사례도 찾고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검토도 해봤지만 실현하지는 못했다. 개인적으로 두 가지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첫째, 기술력이 부족하다. 둘째, 조경과 기술을 결합했을 때 효과가 부족하다. 결국 조경은 식물과 더불어 휴식하는 공간을 만드는 행위다. 휴식 공간에 어떤 기술이 필요할까? 필요하긴 한 걸까? 우리는 수많은 기술과 정보로 복잡한 시대에 살고 있다. 출근할 때도, 일할 때도, 쉴 때도, 잠들기 직전까지도 너무 많은 정보를 읽고 흡수한다. 우리 세대는 어쩌면 너무 많은 정보에 질려버린 세대가 될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조경 공간에도 기술이 도입된다면, ‘알아서 잘’ 해주는 기술이 나타났으면 좋겠다. 어떤 기술이 쓰였는지 알고 싶지 않다. 기술이 정보를 알아서 잘 해석하고 반영해 우리 세대를 편하게 해줬으면 좋겠다. 이지현 IoT를 공간 구성 요소로 더하면 사용자에게 감각적 경험을 선사할 수 있다. 이런 기술을 사용하려 한다면, 자신의 의도를 담은 공간이 시설물과 기술의 접목에 국한되어 보이지 않게 하는 세심한 계획이 필요하다. 더불어 적절한 기술을 제공할 수 있는 곳을 알아야 하고, 기술 제공자에게 기획 의도를 설명해 실현까지 이어갈 수 있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설계자는 다방면에 관심을 가지고 현상과 이치를 끊임없이 배워가야 한다는 걸 다시 깨닫는다. 오혜지 어떤 부분에 집중을 하느냐의 차이라 생각한다. 무엇을 보여줄 것인지에 대해 고민한 거라면 스마트 패널 정도에서 멈추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하지만 기후변화로 인한 불편함과 식물의 유지·관리 부분을 다루고 싶다면 기술력 향상이 필요할 것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로 넘어가며 활동의 제한이 풀린 최근, 시각적이고 동적인 콘텐츠에 대한 욕구가 강한 MZ세대의 경험과 관심을 끌 수 있는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내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숲이 인공지반 위에 만들어진 데다 필로티 하부에 놓여 식물이 생육하기 좋은 환경이 아니다. 유지·관리 계획을 어떻게 세웠나. 결국 환경에 맞는 식생을 선택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식물이 죽는다. 최대한 식물 생육이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관수 시스템을 체계적으로 구축했다. 유지·관리의 문제는 결국 돈의 문제이기도 하다. 식물을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인력과 시스템이 있다면 처음과 같은 모습을 유지할 수 있다. 식물 유지·관리에 대한 KT의 의지가 강해서 다양한 수목을 밀식할 수 있었다. 디지코 가든뿐만 아니라 기부채납한 부지까지 지속적으로 관리할 예정이다. 각주 1.KT 디지코 가든 프로젝트를 함께한 김수린, 이지현, 오혜지에게공통 질문을 던져 이메일로 답을 받았다. 글 조용준 CA조경기술사사무소 소장 설계 총괄 및 감리 CA조경기술사사무소(조용준) 설계 CA조경기술사사무소(김수린, 이지현, 오혜지) 시공 조경디자인 이레, 공간시공 에이원 발주 KT, 대홍기획 위치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3길 33 면적 5,620㎡ 완공 2022. 8. 사진 안상순 2004년 설립된 CA조경기술사사무소는 작은 공간의 설계부터 도시 스케일의 계획에 이르는 국내외의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해왔다. 창의적인 생각으로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며, 공공을 위한 의미 있는 장소를 만들고자 최선을 다하고 있다. www.cadesign.co.kr 조용준은 작은 공간부터 도시 스케일의 계획에 이르는 국내외의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해왔다. 창의적인 생각으로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며, 공공을 위한 의미 있는 장소를 만들고자 최선을 다하고 있다. www.cadesign.co.kr 김수린, 이지현, 오혜지는 CA조경기술사사무소의 일원이다. 김수린 팀장을 주축으로 이지현 대리와 오혜지 사원은 KT 디지코 가든에서 다양한 역할을 수행했다.
    • 조용준
  • 타이난 스프링 Tainan Spring
    도심의 호수 타이난 스프링은 타이난 도심의 주요 상업 공간이었던 차이나타운 몰과 그 일대에 조성된 녹음이 짙은 공원과 호수다. 주변 공간을 둘러싼 어린 식물들이 가까운 미래에 울창한 정글이 되도록 조성했고, 궁극적으로 기존의 쇼핑몰을 자연과 수공간을 연결하는 도심의 호수로 탈바꿈시키고자 했다. 타이난 시정부의 요청으로 타이난 수로 동쪽의 T자형 축을 부활시켜 기존 차이나타운 몰 부지와 1km에 달하는 하이안로Haian Road를 연결하는 새로운 경관 전략을 세웠다. 전략에 따라 자생 식물을 심었으며, 광장과 공공 물놀이장을 새로 조성했다. 또한 공공 보행로를 개선해 교통 체증을 완화했다. 차이나타운 몰 타이난의 수로는 17세기부터 해양업과 어업의 기반 시설이었으나, 1980년대에 들어서 도시는 이러한 역사적 도시 구성 방식과 궤를 달리하기 시작했다. 1983년 차이나타운 몰은 타이난 운하 옆 옛 항구 위에 세워졌다. 시간이 지나 대규모의 상업 공간이 더 이상 그 목적을 수행하지 못하면서 타이난 도심의 활력에 지장이 됐다. 타이난 스프링은 오프라인 매장을 온라인 쇼핑이 대체하고 있는 현시대에 더 이상 이용하지 않는 쇼핑몰의 문제를 해결하는 새로운 방식을 제시한다. 철거 자재를 세심하게 재활용한 덕분에 순환형 경제의 혁신적인 사례로 손꼽히기도 한다. 쇼핑몰의 지하 주차장은 도심 물놀이장과 우거진 자생종 식물이 어우러지고 그늘진 아케이드로 둘러싸인 선큰 광장으로 탈바꿈됐다. 물놀이장은 사계절 내내 만남의 장소가 되도록 만들었다. 수면 높이는 우기와 건기에 맞춰 조절되며, 더운 날씨에는 안개를 분사하여 지역 온도를 낮추는 동시에 방문객을 환영하는 역할을 한다. 또한 여름날 에어컨 사용을 줄이는 데 도움을 준다. 놀이터, 만남의 공간, 공연을 위한 무대 등이 복합적으로 모여 있으며 해체된 건물의 콘크리트 틀을 조형적으로 아름답게 보존해 이후 상점과 안내데스크 등 어메니티 공간으로 전환될 여지가 있는 폴리(folly)들을 남겼다. 현대판 포로 로마노 지하 2층의 구조를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유리 바닥재를 깔아 사람들에게 장소가 지닌 역사와 기존 쇼핑몰이 타이난의 역사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을 알게 했다. 문화유산을 보존하는 새로운 방식은 부지를 완전히 정리하고 재생시키는 타불라 라사(Tabula Rasa)와 같은 접근 방법이 아니다. 쇼핑몰 건물을 지탱하던 기둥을 그대로 활용해 현대판 포로 로마노(Roman Forum)처럼 보이게 만들었고, 이는 옛 항구를 폐쇄하고 쇼핑몰을 짓게된 역사를 보여주는 일종의 시각적 지표다. 도시의 녹지 설계의 중요한 열쇠는 도시에 녹지를 가져오는 것이었다. 공공 광장과 하이안로에 대규모 식재가 진행됐다. 교목, 관목과 그라스류 등 여러 켜의 초목이 펼쳐진 타이난 동쪽 자연 경관에서 영감을 받아 다양한 자생종을 복합적으로 활용했다. 식물 군집의 밀도는 도로 인근 매장의 주변 환경과 필요에 따라 시민들이 다닐 수 있는 공간을 더 만들거나 더 많은 식물을 심는 식으로 조절했다. 어린 식물들이 자라 우거진 정원을 형성하려면 시간이 더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지역 주민들은 쇼핑몰의 흔적 위에 자란 식물들 사이에서 물놀이를 즐길 수 있다. 어린이들에게는 과거의 폐허 사이에서 수영하는 흔치 않은 경험을 선사한다. MVRDV의 비니 마스Winy Maas는 “도시의 역사와 함께 기존의 정글과 수공간이 중요한 영감의 원천이 됐다”고 말했다. 타이난은 회색이 많은 도시다. 가능한 한 모든 장소에 정글을 다시 등장시킴으로써 도시는 주변 경관과 재통합된다. 이러한 녹지의 재도입은 마스터플랜에서 중요한 요소이며 하이안로의 식재 설계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하이안로 리노베이션 이 프로젝트는 하이안로 리노베이션의 일환으로서 진행되어, 타이난의 가장 활력 넘치는 도로에 새로운 생기를 불어넣었다. 교통 체증이 줄어들어 자동차는 이제 단지 양쪽으로 한 차선만을 사용하게 됐다. 지난 수년간 계획 없이 다양한 형태로 포장되어 누더기가 된 도로를 통일된 콘크리트 타일로 포장하고, 식재 전략은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자연스럽게 울창한 경관을 만드는 방법을 택했다. 지하에서 공공 공간으로 튀어나와 미관을 해치는 대형 환기구는 사회 기반 시설이라 제거는 불가능했다. 대신 시각적 존재감을 최소화 할 수 있도록 주변과 어우러지는 색으로 통일했다. 이후 타이난 시에서 여러 지역 예술가를 초청해 이 구조물을 아름답게 꾸몄다. Architect MVRDV Principal in Charge Winy Maas Partner Wenchian Shi, Jeroen Zuidgeest Project Coordinator Hui-Hsin Liao Design Team Hui-Hsin Liao, Angel Sanchez Navarro, Stephan Boon, Xiaoting Chen, Andrea Anselmo, Yi Chien Liao, Zuliandi Azli, Olivier Sobels, Dong Min Lee, Chi Yi Liao Visualization Antonio Luca Coco, Costanza Cuccato, Davide Calabro, Paolo Mossa Idra Copyright Winy Maas, Jacob van Rijs, Nathalie de Vries Partners Local Architects: LLJ Architects Sustainability/Landscape and Urban Designers: The Urbanists Collaborative Structural Engineers Consultant: Evergreat Associates, S.E. Transport Planners: THI Consultants Lighting Designer: LHLD Lighting Design MEP Engineers: Frontier Tech Institute General Contractor: Yong-Ji Construction Client Tainan City Government Location Tainan, Taiwan Area 54,600m2 Completion 2020 Photograph Daria Scagliola MVRDV는 1993년 비니 마스(Winy Maas), 야코프 판레이스(Jacob van Rijs), 나탈리 더프리스(Nathalie de Vries)가 네덜란드 로테르담에 설립한 회사다. 전 세계를 무대로 다양한 작업을 통해 도시, 건축, 인테리어, 조경 관련 문제에 해결책을 제시하고자 한다. 로테르담, 파리, 상하이에 지사를 두고 이해관계자, 다양한 전문가와 함께 리서치를 바탕으로 한 협업을 주로 하고 있다. 대표작으로 2000년 하노버 엑스포의 네덜란드 기념관, 암스테르담의 플래그십 매장 크리스탈 하우스와 로이드 호텔, 상하이의 홍차오 오피스 캠퍼스, 로테르담의 디든 빌리지(Didden Village) 옥상 증축, 스페이 케니서(Spijkenisse)의 북마운틴 공공 도서관, 서울 강남구의 청하빌딩 등이 있다.
    • MVRDV
  • 페이즈 시프트 공원 Phase Shifts Park
    페이지 시프트 공원(Phase Shifts Park)은 환경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의 역동적인 상호 작용을 일으킨다. 공원 시설은 주민들의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자원을 인지시키고 나아가 일상생활에서 그 가치를 향유하게 한다. 이곳에 적용한 디자인 언어는 다양한 차원에서 일상의 문제를 돌아볼 수 있는 보편적 접근 방식을 만들어낸다. 공원에는 공항을 도시 경관으로 변화시킨 지리학적 차원, 거대한 공공 지형에 고유의 문화 시설을 통합시킨 도시적 차원, 레크리에이션 시설을 공유함으로써 여러 도시 간의 투과성을 만든 도시 내부적 차원 등이 공존한다. 이 다양한 차원의 연계는 독특한 성공 사례를 만들어냈다. 공원의 다양한 지형 공원을 통해 거대하고 굽이치는 땅을 가로지르는 물, 바람, 사람과 사람이 아닌 모든 것을 탈바꿈하고자 했다. 언덕은 드넓은 지평선의 시각적 틀을 구축하고 북쪽에서 남쪽으로 이어진다. 그 앞에 서면 친밀하고 아늑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북쪽 라운지, 동쪽 나선형 도로, 중앙 잔디밭, 동쪽 스카이돔, 중앙 마당은 비바람을 피하고 문화 행사와 공연을 열기에 적당하다. 다양한 지형은 주민들이 일상에서 조금 멀어져 끊임없이 바뀌는 살아있는 환경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한다. 3km의 구불구불한 길은 차량과 보행자를 보호하고 사람과 동물이 오갈 수 있는 생태 통로 역할을 한다. 녹색 허파 지표면의 주름은 일상에 편의를 제공해주는 것을 넘어 투과성의 변화에 따른 파라미터(parameter)를 드러내는 기술적 도구이기도 하다. 바닥의 투수성은 집수 능력을 결정하고 그에 따라 생태계를 진작시킨다. 바닥의 작은 구멍은 물을 흡수하고, 이 물은 산소와 함께 씨앗을 발아시키며, 발아된 식물은 새로운 경관을 만들어낸다. 지표수의 층위는 형성된 식물층과 연관되며 빗물 유출수와 공기질에 대한 장기적 지표를 제공한다. 이렇게 모인 데이터는 공원 곳곳에 배치된 간이 시설에서 분석되어 지역 활동에 따른 환경의 변화를 보여준다. 공원을 수놓은 식재는 대만의 식물 군계가 지닌 다양성을 활용해 가장 덜 더운 지역부터 가장 덜 오염된 지역, 가장 습도가 낮은 지역을 보여준다. 식재 유형과 시설은 공원 내 정원을 구분한다. 공원은 도시에 거대한 ‘녹색 허파’를 제공해주고, 공원의 주요 흐름을 간간히 끊는 ‘만남의 구역’은 사람들이 길을 걷다 멈춰서 공공 공간을 이용하도록 유도한다. 해변, 정원 등 여러 공간에는 루돌프 슈타이너(Rudolf Steiner)의 감각 원리에 기초한 12가지(언어 감각, 미각, 청각, 평행 감각, 사고, 시각, 움직임, 자아, 촉각, 따뜻함, 후각, 삶) 요소를 놓아 감각을 자극하는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고자 했다. *환경과조경414호(2022년 10월호)수록본 일부 Design Team mosbach paysagistes(team head), Philippe Rahm architectes, Ricky Liu & Associates Architects and Planners Commissions By New Construction Office, Taichung City Government Location Taichung, Taiwan Area 67.4ha Design 2011~2013 Construction 2014~2020 Photograph Catherine Mosbach, Victor Chohao Wu 캐서린 모스바흐(Catherine Mosbach)가 이끄는 모스바흐 페이자지스트(mosbach paysagistes)는 역사·환경적 가치가 높은 도시 경관 설계, 대규모 프로젝트 등 과학, 역사, 문명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한 실험적 작업을 선보인다. 대표작으로 보르도 식물원(Botanical Garden of Bordeaux), 솔뤼트르 고고학 공원(Solutre Archaeological Park), 루브르 렌즈 박물관 공원(Louvre Lens Museum Park)이 있다.
    • mosbach paysagistes
  • 여주역 금호어울림 베르티스 Yeoju Station Kumho Oullim Vertice
    여주역 금호어울림 베르티스는 여주역세권 도시개발사업의 일환으로 교동2지구에 조성된 7개동 605세대 규모의 단지다. 조경 면적이 전체 면적의 39%에 달하며, 아파트 내 테마 공간이 조성될 만한 곳에 선호도가 높은 조경 요소를 적용하고 아이를 키우는 젊은 부부가 좋아하는 트렌드를 반영해 인근 아파트 단지와의 차별화를 꾀했다. 설명을 곁들여야 하는 과도한 공간 이름을 짓기보다 물리적인 형태나 질감, 분위기로 공간의 의미를 전달하고자 했다. 입주민들이 공간을 즐기면서 정서적인 위안과 교감을 얻도록 하는 데 설계 목표를 두었다. 주출입구 출입구 회전 교차로에는 수고가 높고 수형이 아름다운 대형 소나무를 심어 단지를 상징하는 인상을 주고자 했다. 여름부터 가을까지 분홍 꽃을 피우고 매끄러운 수피를 가진 아름드리 배롱나무를 소나무 사이에 심어 거칠게 갈라진 소나무 수피와의 대비 효과를 꾀했다. 삼각형의 띠녹지에는 시선을 끌 수 있는 조형 소나무를 단독으로 식재했고, 시선의 차단이 필요한 곳에는 소나무를 군식해 입구 공간을 완성했다. 주출입구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계단을 올라 고개를 들면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둔 소나무를 만날 수 있는데, 이 경관이 중앙광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에 기대감을 더한다. 정원을 품은 커뮤니티 공간 단지의 중심 공간에 단지를 상징하는 입주민 커뮤니티 장소를 계획했다. 개방적인 공간 구성, 요소 간의 연계와 균형감 있는 연출에 많은 공을 들였으며 적절한 여백을 두어 유연한 공간의 힘을 보여주고자 했다. 명쾌한 동선의 축을 중심으로 석가산과 생태연못, 팽나무 쉼터, 커뮤니티 하우스, 피크닉 테라스 등이 잔디마당 주변으로 펼쳐져 여유로움과 풍성함 사이에서 걷는 즐거움과 머무는 행복을 느끼게 해준다. 시선이 가장 먼저 머무는 석가산은 보행 동선의 이동 방향을 고려해 배치되어 주변 요소들과 어우러져 청량한 풍경을 선사한다. 소나무가 석가산을 병풍처럼 감싸 안아 시선이 닿는 곳마다 보이도록 했다. 수형이 아름다운 소나무는 방향과 간격에 따라 홀로 돋보이기도, 서로 조화를 이루기도 하여 아늑한 공간감을 구현해낸다. *환경과조경414호(2022년 10월호)수록본 일부 글 조재운 와이에스개발 대표 사진 유청오, 조재운 조경 기본설계 스케이프뷰 조경 특화설계 와이에스개발 시행 하일건설 건설 금호건설 시공 와이에스개발 시설물 미담, 플레이잼, 아우라이앤에이, 토인디자인 위치 경기도 여주시 교동 114 대지 면적 38,631m2 조경 면적 15,229m2 완공 2022. 8.
    • 조재운(와이에스개발)
  • 포스코 파크1538 POSCO Park1538
    포항의 시간 가을과 겨울 사이 어느 날, 포항을 방문했다. 우중충한 날씨 탓에 모든 것이 채도가 떨어진 채로 눈에 들어왔다. 가동 중인 제철소 시설이 내뿜는 압도적인 심상들도 한몫 했다. 곳곳에 산개된 수많은 기념식수들은 이곳에 축적된 깊은 시간을 암시했다. 버려졌다 싶을 정도로 방치된 연못과 숲의 우거짐은 심리적 감상을 더 가라앉혔다. 프로젝트를 대하는 마음에 무게감이 더해지는 하루였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설계의 단계들은 복잡했으며 시공의 과정 역시 녹록지만은 않았다. 그래도 완성이 됐다. 스치는 공기에 차가움이 채 가시지 않았지만 깨끗한 하늘 아래 벚꽃은 이미 만개해 있었다. 초봄이라는 계절과 공사 직후의 현장 특성상 아직 성긴 구석이 있었지만 신생 공원이 움틀 준비는 되어 있었다. 주변의 거친 산업 단지 경관과 묘하게 중첩되어 보이기도 했다. 아무래도 ‘끝났다’는 안도감이 크지 않았을까. 더 오랜 시간이 지난 현재 시점에서 파크Park1538과 그곳을 있게 한 네 가지의 방향성을 다시보자. 선형의 공원,시퀀스 파크1538은 총 연장 600m가량의 선형 공원이다. 즉 사람들의 행위와 동선을 강제할 수 없는 유형이다. 마련한 모든 공간을 경험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설계적 장치가 관건이었다. 방문자들의 경험이 하나의 장면에서 종결되지 않도록 하고 싶었으며, 유유히 다음 공간으로 향할 수 있도록 해야 했다. 다행히 각 구간이 놓인 상황과 맥락이 각기 달랐다. 방치된 수준이긴 했으나 연못 주변에는 물이라는 소재가 발하는 특유의 감상이 잔존하고 있었고, 그 너머로는 낮은 경사지와 깊은 숲이 이어졌다. 새로운 홍보관이 들어설 언덕 정상부에서는 오랜 시간 기업을 알려온 기존의 건축물 위로 트인 하늘을 시야에 담을 수 있었다. 다시 발길을 돌리면 또 한 번 두터운 숲이 우리를 맞이했고, 아래쪽으로 내려오면 웅장한 조형물과 임직원을 위한 휴게 정원이 조성되어 있었다. 지형과 식생의 양상, 지배적 분위기 모두 열림과 닫힘이 교차로 반복되는 흐름이었다. 주어진 리듬에 기대고 이를 더욱 더 강화하는 방식을 택했다. 열린 곳을 더 트고 닫힘을 더욱 깊게 하며 그들 사이의 전이감을 통해 공원 전체로의 걸음을 이끌고자 했다. 매개체는 식재 설계다. 운영 계획의 동선상 첫 번째 공간에 해당되는 수변공원에는 수생 식물과 초화류, 그래스류 위주의 수종으로 방문객을 환영하는 개방적 제스처를 연출했다. 또한 물이 가진 물성과 매력을 부각시킬 수 있도록 능수버들을 식재해 서정적 분위기를 자아내도록 했다. 길을 건넌 후 신축 홍보관을 바라보며 오르는 사면 진입부의 경우, 곧게 서 있던 장송을 다른 곳으로 옮겨 다음 공간으로의 시야와 이어질 방향에 대한 지시성을 확보했다. 테라스형 잔디구간을 정비해 단정하면서도 우아한 입구를 연출하고차오름길로 이어지는 전이감을 부여했다.차오름길은 기존의 숲 사이에 마련된 언덕길이다. 다시닫히는 전이감을 위해 기존 숲의 훼손을 최소화하고,길과 맞닿은 곳에는 다간형의 소교목을 도입해 아늑한위요감을 지닌 산책길을 조성했다. 다시 열 차례다. 홍보관의 옥상정원에서는 하늘로 트여 있는 공간 자체의물리적 특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싶었다. 다채로운 수종을 조합한 혼합 식재를 적용해 공원 전체 경험중 하이라이트가 되는 순간을 제공하고자 했다. 홍보관 옥상정원의 중정은 아니쉬 카푸어(Anish Kapoor) 작품의 배경이 될 수 있도록 구성했다. 홍보관을 빠져나와구름다리로 진입하면 또 다시 깊은 숲을 마주하게 된다. 기존 소나무 숲을 존치해 오랜 시간을 머금은 자연의 풍성함을 유지하되 대왕참나무로 보강하여 이후에도 수직적인 숲에 대한 새로운 시점의 매력이 도드라질 수 있도록 계획했다. 공원의 마지막은 명예의 전당이다. 구름다리 종단부와 일체화된 구조물에 포스코의상징적 인물들을 기억하는 전시적 장치가 구성되어 있다. 아니쉬 카푸어의 작품이 담긴 중정처럼, 설계 요소를 최대한 자제해 전시 내용물에 대한 집중도를 높였다. 또한 현장에 있던 팽나무를 남겨 명예의 전당이라는 공간에 부합하는 웅장함과 무게감을 싣고, 수종을간소화해 차분한 감정 속에서 공원의 여정을 마무리하도록 했다. 기업의 공간,브랜딩 공원의 이름이 직접적으로 지시하듯 파크1538은 포스코라는 기업이 내어 준 공공의 가치다. 더군다나 법적으로 강요된 기부 채납이나 공개 공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공공성을 창출하겠다는 기업 스스로의 자발적 판단으로 발로한 공간이다. 기업 홍보관을 신축하는 프로젝트로 시작했으나 홍보관을 중심으로 한 복합 문화 공간 조성으로 사업이 확대됐다. 일반인의 입장에서나 조경을 하는 설계가의 입장에서나 매우 감사한 땅인 것이다. 일련의 과정을 통해 담보된 공공적 가치를 실현하는 실재의 공간으로 구현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면 이 공원의 가치를 어떻게 다시 기업에게 돌려줄 것인가. 항상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기업의 공간은 그 기업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스토리텔러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 특정 기업 특유의 정체성이 조경과 자연이라는 선한 가치와 맞물렸을 때, 그 순간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방식을 고민한다. 당장의 경제적 보상은 아니지만, 오랜 시간을 두고서라도 기업 자체의 가치를 상승시키는 방법에 역량을 투여한다. 브랜딩 전략으로서의 조경에 대한 설득 과정을 필히 수반하는 편이다. 그럼 철을 다루는 기업이니 철 소재를 써보자. 일차원적 판단이었다기보다는 직설적인 방식을 통해 명료함을 구축하자는 판단이었고 과정 속 발주처의 창의적 의지도 큰 역할을 했다. 물론 ‘포스코니까 스틸이야’라는 단선의 논리가 지나치게 지배적이거나 과하게 소비되지 않도록 많은 토의가 있었다. 외부 공간의 시설물 설계를 이끈 씨에이플랜CA plan과 함께 공원 전반의 배치에 대한 얘기를 나누며 그들이 가진 삼차원적 조형의 힘이 발휘될 수 있도록 조율했다. 진행 과정 중 내후성 강판(코르텐 스틸)에 대한 제안이 있었고 여러 논의 끝에 주요 시설물의 최종 소재로 결정됐다. 자연적 소재와 강렬한 대비를 이루는 색채를 지니고 있어 방문객이 인상적인 순간을 경험케 할 수 있고, 누가 보아도 철 소재이기에 단숨에 포스코라는 기업을 인식시킨다. 식재나 자연 소재와의 대비에 의한 조화가 연출될 수 있도록 구성했으며, 식재와 더불어 시간을 타면서 더욱 더 성숙해 가는 공원을 만들어 가길 의도했다. 시민의 경험,퍼블릭 결국 파크1538은 공원이다. 홍보관 내부의 일부 프로그램을 제외하면 예약 절차를 밟지 않고서도 누구든 자유롭게 만끽할 수 있는 오픈스페이스다. 모든 공원 설계자가 꿈꾸는 바겠지만, 이 공원 역시 사람들의 일상 속에 녹아들고 그들 삶의 아름다운 순간이 되길 바란다. 이를 위해서는 ‘공원 문화’라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어 왔으며, 공원이라는 유형이 태생적으로 서양의 것이기에 우리의 체질에 녹아드는 시간이 쌓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난 수십 년간 한국 조경의 양적, 질적 성장에 의해 이 같은 문화적 양상은 많이 자리 잡았다. 음식을 포장해 공원으로 가서 먹는 피크닉 문화가 소위 ‘힙’한 활동 중 하나가 되었다. 유명 맛집은 돗자리까지 포함한 피크닉 세트를 판매할 정도다. 하고자 하는 말은, 오픈스페이스의 지역적 불균형 측면에서 이 프로젝트의 가치를 짚고 싶다는 것이다. 공공성을 확보하기 위한 설계 요소나 방법론을 논하기보다 그 존재 자체의 의미에 대한 언급이다. 조경가의 입장에서 양질의 공간을 제공해야 하는 책무와 동시에, 개별 시민들의 입장에서 공원을 진정으로 즐길 줄 아는 문화적 자세를 겸비함은 거의 등가의 중요도로 필수적이다. 그리고 공원에 대한 자연스러운 태도를 갖추기 위해서는 비슷한 유형의 공간에 대한 반복적인 경험과 지속적인 노출이 효과적이다. 이 사업을 통해 탄생한 포항의 새로운 공원이 해야 할 문화적 그릇으로서 역할이 바로 여기에 있다. 공원은 2021년 3월 개장 후 2주간의 시범 운영을 거친 뒤 일반 시민들에게 개장되었다. ‘철과 자연이 어우러진 친환경 힐링 공간을 포항 시민들에게 제공하고자 한다’는 발주처의 굳은 취지가 실현된 날이었다. 코로나19로 인한 상황에서도 5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방문했다. 하늘거리는 수변공원의 풍경과 차오름길이라는 여유로운 걸음의 언덕 산책로, 하늘과 맞닿은 옥상정원의 다채로운 계절감, 숲을 감상하는 새로운 시선의 구름다리와 단정한 감상의 명예의 전당. 제철소의 산업 단지 경관이 지배적인 포항이라는 도시 한편에 기다란 녹색의 선이 생겼다. 사람들의 다양한 감정을 엮어내는 선이 되길 바란다. 다자간 작업,컬래버레이션 대부분의 대규모 프로젝트가 그러하듯 파크1538도 다양한 주체의 힘이 모인 결과물이다. 그럼에도 유독 이 프로젝트에서의 협업을 유효하게 한 첫째 요소는 발주처와의 관계다. 안목과 취향을 공유할 수 있고, 설계사의 의도를 최대한 이해해주고자 하는 지지를 얻어 진행 과정이 매끄러웠다. 무엇보다도 주요 설계 요소인 소재에 대한 발주처의 이해도가 높았기에 실시설계와 시공 단계에서 의지가 됐다. 철이라는 소재를 가장 오래 다뤄왔던 그들의 노하우는 공사의 효율성과 공간의 완성도를 높인 결정적 요인 중 하나다. 또 다른 관계는 하나의 외부 공간 설계를 함께 진행한 두 개의 설계사다. 얼라이브어스와 씨에이플랜은 전체 공원의 배치와 구성을 다듬는 마스터플랜 작업이 마무리된 시점부터 각자의 특장점을 발휘할 수 있는 분야로 분업했다. 조경 설계의 큰 세 덩어리인 식재, 포장, 시설물 설계 사이에서 서로의 전문성을 신뢰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시설물에 대한 주목도를 높이기 위해 식재 방식을 결정하기도 하고, 좀 더 안정적이고 다채로운 식재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시설물의 위치나 방향성을 조정하기도 했다. 조건과 상황마다 주도권을 가져오기도 내어주기도 하는 영리함이 필요했다. 시공사와의 협업 역시 이 프로젝트의 핵심적인 지점이었다. 사실, 공사 기간과 공사 시점 측면에서 꽤나 불리한 조건이었다. 시공할 수 있는 개월 수가 한정적이었고 개장 시점이 3월로 확정되어 있어 겨울 공사가 불가피했다. 유독 혹독한 겨울이었다. 특히 차오름길은 시공 중간에 전면 재검토가 이루어지면서 모두에게 비상 사태가 도래했었다. 해당 구간의 공사는 한동안 멈춰 섰고 사면을 오르는 산책로의 선형과 골격부터 다시 보기 시작했다. 우리 역시 가능한 가장 빠른 속도로 새로운 대안들을 마련했지만 현장의 시간은 더욱 더 촉박했기에 애가 타는 며칠이 지나갔다. 최종안에 대한 발주처와의 협의가 끝났지만 앞서 말한 공사의 기간과 기상 조건으로 다시 어려움을 겪었다.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을 시공사와 강구했고 설계와 시공이 동시에 움직여 마무리했다. 현장의 도움을 받아가며 급박한 과정 속에서 긴 설계의 여정이 끝났다. 그렇게 훈훈한 봄을 맞이했다. 강한솔·김태경 인터뷰 작은 스케일의 완성도와 큰 스케일의 계획성을 가로지르다 글 김모아 기자 사진 유청오 공간의 이름 ‘파크park1538’에서 이곳이 공원이라는 점이 엿보인다. 초기 단계부터 홍보관을 둘러싼 외부 공간이 공원으로 기획되었나. 강한솔(이하 솔) 사실 사업의 초반부터 참여한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홍보관과 건물 주변으로 전시 콘텐츠를 지원하는 간략한 조경 설계 정도가 되어 있었다고들었다. 그런데 포스코의 최종 결정권자가 막상 마스터플랜을 보니 대상지가 지닌 자원이 아까웠던 모양이다. 홍보관 주변으로 낙후됐지만 잠재력이 큰 수변공원이있었고, 울창한 소나무 숲도 있었다. 이참에 전체를 리노베이션해 시민에게 공원으로서 이곳을 열어주자는판단을 했던 것 같다. 그때부터 공원 마스터플랜 수립이 시작됐고, 그 과정에서 우리에게 연락이 닿았다. 작업을 시작했을 당시에는 공원의 선형적 느낌만이 표현된, 개념적인 그림만이 있는 상태였다. 이를 공간화하고 다듬는 작업부터 시작했다. 씨에이플랜CA plan이 외부 공간 설계를 진행하고 있던 상황에서 참여하게 된프로젝트라 그만큼 설계사 사이의 구도가 굉장히 복잡하다. 일반 시민이 찾아오기에는 도심에서 꽤 거리가 있는곳에 공원이 있다. 실제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누가될 것이라 예상했나. 그들에게 이곳이 어떤 공간으로다가가기를 바랐나. 솔 파크1538은 포항 시내에서 떨어진 포스코 포항제철소 단지 옆에 있다. 접근성이 좋지 않다는 점은 발주처와 설계사 모두 알고 있는 사항이었다. 주요 이용자는 일반인과 학생이 될 것이다. 웰컴 센터에서 공원에대한 설명을 듣고 셔틀버스를 타고 홍보관으로 이동하는 프로그램도 다수 계획되어 있다. 이러한 학생들이홍보관의 주 타깃이겠지만, 공원 자체는 일반 시민에게모두 열린 공간이 되기를 바랐다. 발주처도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일반적인 공원을 원했다. 발주처가 강조했던 가치 중 하나가 포스코의 이념인 위드코스코with POSCO였다. 더불어 함께 발전하는 기업 시민을 뜻하는 말인데, 이처럼 시민과 함께 하는 공간을목표로 설계를 진행했다. 포스코를 홍보하는 공간인 만큼 기업 정체성을 드러내달라는 요구는 없었나. 사람들에게 쾌적한 쉼과 아름다운 경관을 선사하는 동시에 포스코의 특성을 보여주는 전략이 궁금하다. 솔 포스코가 철을 만들어내는 기업이니 소재를 통해그 정체성을 표현한 부분이 있다. 내후성 강판이 그 예인데, 직설적인 소재라 너무 돋보이거나 이질적으로 느껴지지 않게 하는 데 공을 들였다. 식재를 통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게 할 것인지, 강렬한 느낌의 소재를 들였으니 차라리 자연과 인공의 대비를 통해 조화를 이루게 할지 등을 고민했다. 김태경(이하 태) 포스코는 생산한 상품을 직접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기업이 아니다 보니 브랜딩 방식이 일반기업과 다를 수밖에 없다. 발주처는 적극적이고 직접적인 홍보를 통해 포스코 철의 인지도나 가치를 보여주고자 하지 않았다. 그보다 포스코가 한국의 중요한 기업이자 자산으로 자리 잡기까지 오랜 역사를 함께 해온 만큼 시민들에게 좋은 공간을 내주고 싶다는 마음이 더 강했다. 기업 홍보 공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스타그래머블 포토존도 요구하지 않았다. 시민들이 편안하게 들러 물을 감상하고 식물을 보는 공간이 되기를 바란 게 전부였다. 철이라는 소재의 사용에 있어서도, 방문객이 사용하기에 불편함이 있다면 사용하지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우리도 사람들이 공간 안에서하게 될 경험이 단계적으로 자연스럽게 느껴지게 하는데 더 집중했다. 콘셉트가 강한 공간이 아니다 보니 내러티브가 적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오히려 오랜 시간이 흐르면 공공성이 파크1538의 정체성으로 자리 잡게 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도심에서 조금 떨어진공간이지만, 여유가 있을 때 편안하게 들러 도시공원처럼 쉬었다 갈 수 있는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 마스터플랜을 보니 공간이 열리고 닫히는 모습이 또렷하게 보인다. 일종의 시퀀스처럼 느껴지기도 한다.구름다리가 통과하는 구간은 본래 숲이었는데 길고큰 구조물을 설치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 솔 처음에 현장에 방문했을 때 숲은 관리가 되지 않아잡목만 자라고 있는 산이었다. 수변공원도 오래 방치되어 자연적으로 발생한 수생 식물이 자라고 있었고, 수질 관리도 전혀 되어있지 않은 상황이었다. 공원 전체를 리노베이션 하기로 결정된 만큼 발주처는 과감하게숲을 들어내 새로운 공간으로 만들기를 요청했지만, 우리는 오히려 수변공원이나 언덕, 숲을 살리며 변신을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본래의 경관이 나쁘지 않기도 했다. 태 구름다리 아래에 본래 길고 가파른 계단이 있었다.대상지 내의 급한 경사를 극복하는 동선인데, 홍보관에서 빠져나와 명예의 전당으로 향하는 방문객에게 좋은 경험을 주지 못할 것이라 판단했다. 씨에이플랜이이 계단의 대안으로 구름다리를 제안했고, 우리는 구름다리를 걸으며 보게 될 숲의 경관을 만드는 작업을했다. 나무 사이를 떠다니며 통과한 구름다리는 명예의전당을 감고 내려오며 포스코의 상징적 인물을 전시해놓은 구조물 자체가 된다. 사실 숲뿐만 아니라 수변공원에서 홍보관으로 향하는 길을 비롯해 대상지 내에레벨 차이가 큰 곳이 많다. 이러한 경사를 해결하는 것이 프로젝트의 과제 중 하나였고, 구름다리는 문제를해결하는 방식 중 하나다. 솔 구름다리를 걷는 경험이 마냥 허공을 떠도는 데서그치지 않기를 바랐다. 숲이라는 공간을 다른 시점에서 바라보는 경험을 제대로 만들어주기 위해 어떤 수목을 존치하고 제거할지 결정하고, 계단을 철거한 자리에 수직적으로 잘 자라는 나무를 심었다. 물론 단기간에 나무들이 자라 구름다리 위로 잎과 나뭇가지를드리우지는 못할 테지만, 시간이 흐르며 서서히 다시숲의 경관이 만들어질 것이다. 공원은 언뜻 보면 면으로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입구부터 명예의 전당까지 하나의 긴 동선으로 연결된 선형 공원이다. 동선이 하나라는 점에서 자칫 오고 가는 이들이 지루함을 느낄 수도 있는데 어떻게 극복했나. 솔 투어 코스 자체는 길을 따라갔다가 돌아오도록 짜여있지만, 원한다면 명예의 전당에서 공원 밖으로 빠져나갈 수 있다. 하나의 동선이 주는 경험에 대해서 김태경 소장과 프로젝트 중간 단계에서 심도 있는 대화를나눴는데, 경험이 연속적으로 이어지도록 시퀀스를 잘조직해 보자는 결론을 내렸었다. 수변공원에서 출발해구릉지를 올라 정상에 머물렀다가 내려와야 하는 주어진 조건에서 느낄 수 있는 감각을 최대한 극대화하는게 중요했다. 더불어 길을 걷는 이들이 흥미를 잃지 않으려면 다른 공간이 계속해서 나타나야 한다. 씨에이플랜은 그 전략으로 구조물을 택했고, 우리는 식재 설계를 통해 공간마다 다른 분위기를 연출했다. 공간이열리는 곳에는 화사한 식재를 통해 사람들을 환영하는분위기를, 조금 닫아주는 경관에서는 차분한 느낌의식재로 고요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차오름길을 지나 홍보관의 옥상에 다다르면 다채로운 관목과 초화로 분위기가 정점에 치닫게 하고, 다시 구름다리를 단일 수종으로 잔잔한 분위기로 연출했다. 마지막 공간인 명예의 전당에는 조금은 무겁고 웅장한 분위기를 연출하는식재 설계를 했다. 사람들은 무언가가 보이면 흥미를 갖게 되기 마련이다.수변공원에 머무르던 사람들이 홍보관을 볼 수 있도록건물을 가리고 있던 언덕 위의 오래된 나무를 제거했다. 홍보관에 오르면 빛나는 소재로 만든 구름다리가 햇빛에 반짝이며 시선을 끌어 사람들이 다음 행선지로이동하도록 유도한다. 태 얼라이브어스의 장점 중 하나는 개인 주택부터 큰공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케일의 작업을 하고, 여러 분야의 전문가와 협업을 통해 디자인을 발전시킨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마스터플랜이라 불리는 최종 결과물을 만드는데, 이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시점의 계획안은 실제로 사람이 마주하는 경험을 담아내지 못하기도 한다. 마스터플랜에는 잘 보이지 않지만 하나의수종만을 사용해 형태적인 식재 설계를 한 곳이 있고,혼합 식재를 한 부분이 있다. 모든 공간의 분위기가 다다를 필요는 없지만, 파크1538의 경우 경험이 선적으로 이어지다보니 자칫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어 각 공간마다 식재로 다른 분위기를 연출하고자 했다. 공간을 크게 사용하는 조경(수변공원, 잔디테라스, 차오름길)과 바라보는 조경(홍보관 옥상정원, 명예의 전당)으로 나눌수 있다. 조경 공간의 성격에 따라 식재 설계 전략이바뀌기도 하나. 솔 공간의 특성을 잘 설정하는 것 자체가 중요한 작업이다. 상업 시설, 기업의 사옥, 리조트 등은 성격이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어 공간의 성격을 설정하기에도 좋다. 하지만 파크1538은 공원이고, 공원은 불특정 다수가 방문하는 곳이다. 누가 이용할지 특정할 수 없기에유연하게 열린 공간을 만드는 것이 안정한 방식이다. 잔디테라스는 이용하는 공간보다는 바라보는 경관에가깝다. 물론 누군가 앉아 휴식하고 이야기를 나눈다면 더욱 좋겠지만, 공간의 맥락상 이용성이 큰 공간으로 보지 않았다. 오히려 잔디테라스는 사람들의 시선을열어주는 조형적 공간으로 계획한 곳이다. 잔디테라스아래에 서면 포스코역사관이 보이고, 잔디테라스에 앉으면 자연스럽게 눈길이 홍보관을 향하게 된다. 태 콘셉트에 따라 바라만 보도록 계획된 공간이 있긴하지만, 사용하는 조경과 바라보는 조경을 분명히 나눠 계획하진 않았다. 예를 들어 수변공원의 경우 사용자 입장에서는 사용하는 공간이지만, 멀리서 바라봤을때는 바라보는 경관이 된다. 멀찍이서 바라볼 때는 큰공간을 눈으로 인지하지만, 수변공원으로 들어서면 감각할 수 있는 공간 스케일이 작아질 수밖에 없다. 이곳에 심기에 8m 높이의 소나무가 큰지 작은지 따질 때,나무 아래에서의 경험이 기준인지 전체적으로 바라봤을 때의 경험이 기준인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둘중 하나만을 추구할 수는 없으니, 전체적인 경관과의조화와 그 안에서의 경험 모두를 고려해 식재 설계를했다. 대교목의 수종과 높이는 수변공원 전체의 스케일을 고려해 결정했다. 물을 따라 걷는 사람들을 위해길 주변에는 관목과 지피 식물을 심었다.파크1538에서 가장 화사한 공간이 이곳이다. 공간 경험에 따라 식재 설계 패턴의 크기도 달라진다. 이곳을 바로 앞에서바라볼지 10m 뒤에서 바라볼지에 따라 크기를 조절해야 한다. 명예의 전당과 홍보관 옥상정원에서 조경 공간이 기념비적 조형물의 배경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 장식적녹지와 잔디에 대한 의견이 궁금하다. 기후위기 문제로 인해 잔디 사용을 지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는데, 잔디를 대체할 수 있는 조경 공간에는 무엇이있을까. 태 미국 서부에서 일할 때 대가뭄으로 인해 서부의 상징과 같은 정원과 잔디밭을 사용하는 프로젝트가 직격탄을 맞은 적이 있다. 이때 많은 정책적 변화가 시작됐다. 한국에서는 식재 설계 인허가에서 상록 비율, 종의 개수, 면적 당 몇 주의 식물을 심느냐 등을 따진다.서부에는 그런 기준이 없다. 대신 서부에 심을 수 있는모든 수종이 생육하는 데 필요한 물의 양을 기준으로상, 중, 하로 나뉘어 구분되어 있다. 이 자료는 관이 주도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조경가의 집단 지성 체제를통해 구축된 데이터베이스가 쌓이는 형식이다. 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설계된 공간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물의 양이 과하다고 판단되면, 일부 식물을 물을 덜 필요로 하는 수종으로 대체하기도 한다. 현재 미국 각 주는앞마당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 벌금을 물게 했던과거와 달리 물을 많이 먹는 잔디를 수자원 낭비의 주범으로 지목하며 잔디 퇴출 정책을 공격적으로 펼치고있다. 개인적으로 그라스가 잔디와는 다른 미학을 갖고 있고, 잔디를 충분히 대체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는 소재라 생각한다. 하지만 한국, 특히 공공 기관은 아직 잔디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골프장의 잘 정돈된 잔디밭이 지닌 상징성이 여전하고, 이를 잘 관리된 조경 공간의 기본으로 여기는 분위기다.거칠게 자란 식물, 야생적 아름다움이 돋보여 관리를덜 해도 되는 정원을 받아들일 수 있는 시대는 아직오지 않은 것 같다. 제도적 뒷받침 없이 조경가만의 노력으로 개선하기 힘든 부분이다. 솔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메모리얼 설계 패러다임이 상징적 오브제를 바라보는 장소에서 공간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치유하는 장소로 한 번 변화했다. 이처럼 기념공간도 전시 공간에서 경험하는 공간으로의 변화를 시도할 수 있지 않을까. 입구 공간의 자연석과 군데군데 군락으로 심은 그라스, 키가 작은 수목은 조금 이질적이고 거친 느낌을자아낸다. 매끈하게 다듬어진 잔디스탠드와 분위기가사뭇 다른데 의도한 것인가. 솔 입구 공간은 가장 큰 난점을 겪으며 완성한 곳이다.공사 중 갑작스럽게 설계안을 변경해야 하는 상황이발생했다. 발주처에게 새로운 설계안의 최종 확정은 받았으나, 공사 현장에서 즉각적인 대응을 하지 못한 게문제가 됐다. 본래 설계는 조형적 옹벽으로 최대한 깔끔한 경관을 만들고, 그 벽체가 보이지 않도록 그라스를 심는 것이었다. 하지만 설계 변경에 시간이 소요되는 바람에 옹벽을 양생하고 마감재를 붙일 공기가 충분하지 않았다. 결국 현장에서는 마감 기한을 맞추기위해 큰 자연석을 배치하는 방법을 대안으로 택했다. 반대했지만 현장에 도착하니 이미 자연석이 쌓이고 있었다. 아마 시공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밑바탕이 되는 공간이 달라졌는데 식재는 그대로라서 조금 어긋나는 부분이 생겼다. 태 재미 요소를 주고 분위기를 반전시켜주면 사람들이좀 더 경험을 길게 가져갈 수 있지 않을까 싶어 각 공간의 식재 전략을 다르게 세웠다. 단 여러 가지 전략을하나로 아우를 수 있는 공통적인 느낌이 있어야 했고,의도적으로 굉장히 다듬어진 식재 형태와 굉장히 와일드한 식재 형태를 섞어 사용했다. 입구 공간은 이 두가지 식재 형태가 함께 사용된 곳이다. 파크1538과 한동리 주택 정원(『환경과조경』 2018년 8월호)을 비교하니, 식재 전략이 사뭇 다르다는 게 느껴진다. 대상지 스케일에 따라 식재 계획의 순서 등에 차이를 두는지 궁금하다. 솔 스케일도 영향을 미치지만 설계 공간의 유형에 따라 접근법이 달라진다. 식재 설계에 국한된 이야기는아니다. 주택 정원의 경우 상업 공간이나 리조트, 공원과 달리 소유인이 매일 보는 공간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개인의 취향이 반영되는 곳이기도 하다. 이를 고려해 훨씬 세심한 배려를 녹인 설계를 해야 한다. 상업 공간의 경우, 콘텐츠를 드러내는 것은 물론 즉각적이지는 않더라도 방문자 수의 증가 등 장기적인 측면에서 수익을 발생시킬 수 있는 요소, 기업의 이미지를 드러내는 조형 요소 등을 고려해야 한다. 파크1538의 경우, 기업 소유의 공간이지만 불특정 다수가 사용하는공간이기에 범용성에 주목했고, 그에 맞춰 공간 설계와 식재 설계 계획을 세웠다. 태 강한솔 소장의 말처럼 공간 유형의 차이, 스케일의차이, 사용자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다름이 있다. 주택정원의 경우 365일 내내 보는 경관이기에 질릴 가능성이 높아서 튀지 않으면서도 어떻게 매일매일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게 할지에 대해 고민한다. 주택 정원 식재 설계를 할 때도 공원 식재 설계를 할때만큼이나 나무의 종류가 왜 그것이어야 하는지, 한주 한 주 위치가 왜 그곳이어야만 하는지, 공간 구조는왜 그래야 하는지 모두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공원식재 설계를 할 때도 전체적인 구성도 중요하지만 실제 사람이 경험하는 스케일에서 어떤 좋은 경험을 주거나 공간을 연출할 수 있을지 고려해야 한다. 공간 유형에 따라 하나의 방향성만을 취하기보다 작은 스케일에서의 완성도와 큰 스케일에서의 계획성 모두를 성취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점에서 형성된 공감대가강 소장과 내가 함께 일을 해올 수 있었던 근간이기도하다. 한국에서는 정원과 공원의 식재 설계를 조금 다르게다루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작은 정원에도 설계와 도면이 필요하다. 물론 적당한 이미지를 상상하고 그에맞는 식물을 구매해 현장에서의 감각에 따라 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이 눈에 담을수 있는 시야와 손이 닿을 수 있는 공간에는 한계가 있다. 계획 없이 정원을 만들면 내 눈과 두 팔 안에 담기는 공간 안에서 완성도를 높이게 되기 쉽다. 정원이 아니라 화단 같은 공간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이곳에서 어떤 경험을 주고 싶은지, 어떤 행동이 일어났으면 하는지 고민해 공간 구조를 계획하면, 식물을 심을 때는 느껴지지 않더라도 다 심고 공간을 멀찍이 떨어져 바라볼 때 머릿속에 그렸던 공간이 완성된 걸 확인할 수 있다. 개인 주택 정원과 큰 공원은 맥락이 매우 다른 공간이지만 동선 체계, 공간 구조 등의 가치를같은 무게로 다루며 완성해야 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상호 보완 가능한 탤런트의 조합이 새로운 스타 건축가를 만들어 내는 것보다 지금 시대에 더 어울리는 대응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따로 또 같이’ 특집(『환경과조경』 2018년 5월호)에서 얼라이브어스가 지금의 구성원들과 함께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내어놓은 답이다. 그로부터 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는데, 그간 변화한 점은 없는가. 태 특별히 달라진 점은 없다. 건축 팀과 조경 팀이 함께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물론 처음에 생각했던 건 더다양한 팀이 함께하는 공동체였지만, 일감이 풍족하지않다 보니 현실적으로 운영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판단이 들었다. 1년에 서너 건 정도는 조경과 건축이 함께 계약을 해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최근에는 발주처에서 요구하지는 않았지만 먼저 공간 브랜딩을 제안해스스로 일거리를 만들고 있다. 공간을 다루는 사무소의 브랜딩 전략이 일반적인 브랜딩 회사의 방식과 달라클라이언트에게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것으로 보인다. 건축 팀과 조경 팀이 같은 회사에 있어 서로에게 배우기도 한다. 예를 들어 캐노피를 설계할 때 도면을 그리는 방법과 사용하는 용어가 전혀 다르다. 조경이 캐노피를 시설물로 다룬다면 건축은 캐노피를 구조로 다룬다. 아직 새로운 변화를 꾀하기 보다는 조용히 작품 하나하나를 쌓아가며 기다리는 상황이다. 솔 처음에는 일거리가 많지 않아 작은 프로젝트가 들어오면 전 직원이 모두 뛰어들어 건축과 조경의 경계없이 일을 했었다. 이제는 규모도 좀 커졌고 일도 늘어난 편이라 건축과 조경이 독립적으로 일하는 프로젝트도 많아지고 있다. 다만 얼라이브어스 본연의 색을 잃지 않고 새로운 직원도 이를 경험할 수 있도록 1년에일정 개수의 프로젝트는 건축과 조경이 팀을 이뤄 함께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려고 배려하고 있다. ‘상호보완 가능한 탤런트의 조합’은 우리의 가장 큰 정체성이다. 독립적으로 모든 개인이 내부적인 양적, 질적인성장기를 가진 뒤 안정화가 되면 본격적으로 새로운것들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그 시기가언제 올지가 문제다(웃음). 조경 설계 얼라이브어스, 씨에이플랜 건축 설계 종합건축사사무소경암 발주 포스코 시공 포스코건설 위치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동해안로 6213번길 14 면적 20,026.8m2 완공 2021. 3. 얼라이브어스(ALIVEUS)는 현대 도시를 만들어가는 건축, 조경,도시재생, 문화 기획에 기반을 둔 디자이너 그룹이다. 평등한 커뮤니케이션과 유연한 관계를 바탕으로 이상적인 학제간 디자인을 추구하며, 이러한 방식이 도시의 다양한 문맥에 더 좋은 디자인 해법을 제시할 수 있다고 믿는다. 강한솔은 서울대학교와 하버드에서 조경을 공부했다. 미국과 한국에서 실무를 수행한 후 2017년 얼라이브어스(ALIVEUS)를 설립했다. 도시 내 공적인 공간에 초점을 두며 이성적이며 논리적인 설계를 추구한다. 김태경은 고려대학교에서 생태공학을, 하버드에서 조경학을 전공했다. 미국과 한국에서의 실무 경험을 바탕으로 2017년부터 얼라이브어스를 운영하고 있다. 디테일과 식재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섬세하게 다듬어진 공간의 미감에 주목한다.
    • 강한솔 / 얼라이브어스
  • 더 링 The Ring
    온라인 쇼핑 문화의 확산과 팬데믹의 영향으로 최근몇 년간 소매업의 매출이 크게 줄었다. 이에 홍콩 랜드(Hongkong Land)는 새로운 경험으로 기반으로 한 쇼핑몰더 링(The Ring)을 선보였다. 홍콩 충칭(Chongqing)의 중심에 위치한 이 쇼핑몰은 거래에 맞춰진 상업 공간의 패러다임을 사회적 교류, 자연과의 연결에 초점을 맞춘공간으로 전환하고자 했다. 접근성 높은 공공 공간, 다채로운 시설, 독특한 실내외 경험을 다양한 공동체 구성원이 즐길 수 있도록 맞춤식으로 구성했다. 이러한과정을 통해 완성된 쇼핑몰은 단순한 상업 공간을 넘어 커뮤니티를 지향하는 랜드마크로 자리 잡았다. 환상적 경험과 자연의 경이로움을 함께 체험할 수 있는더 링은 전통적 상업 환경의 경계를 확장하고 있다. 충칭처럼 밀집도가 높고 거대한 도심에 자연의 숨결을 불어넣기 위해서는 상상력 넘치는 해결책이 필요했다. 자연환경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내러티브를 더 링에 녹여냈고 덕분에 방문객들은 쇼핑몰에 도착하자마자 다차원적 모험 속으로 발을 내딛게 된다. 이 모험의여정은 해류의 물결을 형상화한 진입 공원에서 시작된다. 해양의 특성과 해류의 움직임을 나타내기 위해 인근 지역에서 수급한 재료를 사용했다. 지역 커뮤니티의 아이디어를 수용해 공간의 형태와 시설물, 전망대,경험, 좌석 겸 플랜터의 묶음으로 충칭 해안에서 볼 수있는 ‘열대산 큰가오리(manta rays)’의 모습을 은유하기도했다. 테라스와 계단의 높이, 색조의 변화를 통해 빛이바다 속 심연으로 사라지는 듯한 모습을 연출했는데,이를 통해 부지 내의 레벨차를 자연스럽게 해결할 수있었다. 이외에도 예술 활동, 전시회, 커뮤니티 모임, 그늘 속 휴식, 활발한 물놀이를 위한 공간이 곳곳에 마련됐다. 광장의 북쪽 가장자리에는 테라스 밖으로 뻗어나와 있는 전망대가 있는데, 이곳에서 사람들에게 피난처 역할을 하는 수목을 자세히 탐구할 수 있다. 진입 공원을 통과한 방문객들은 커뮤니티 광장에 들어서게 된다. 다양한 이벤트와 모임이 일어나는 광장은전망대와 예술 조각품, 테라스 좌석으로 둘러싸여 있다. 조개껍데기를 닮은 조각은 방문객이 동굴 같은 공간을 가로질러 낮은 층에 도달해 20m 높이의 물줄기를 내뿜는 분수가 연출하는 유쾌한 경관을 감상하도록이끈다. 여정의 끝에 자리한 공원은 5만 명이 넘는 지역 커뮤니티가 휴일과 축제를 위한 행사를 열 수 있는공간이다. *환경과조경413호(2022년 9월호)수록본 일부 Landscape Architect ASPECT Studios Principle Landscape Architect Stephen Buckle ASPECT Design Team Xu Sam, Lei Cherry, Ren Jenny, Chase Qiu,Chen Chiachi, Qian Eric, Yang Jay Hongkong Land Team Qian Ashley, Liu Qiuqi, Zheng Yu Architect PHA Client Hongkong Land Location Intersection of Hu Cai Road and Jin Zhou Avenue, YubeiDistrict, Chongqing, China Site Area 62,863m2 Landscape Area 50,000m2 Commencement 2017 Completion 2021 Photograph Wang Wenjie, xf Photography, Stephen Buckle,Hongkong Land ASPECT 스튜디오(ASPECT Studios)는 조경가, 도시 디자이너, 전략가,도시계획가로 구성된 팀으로, 전 세계 곳곳에 새로운 공공 공간을 창조해왔다. 사람들이 공공 공간을 사용하는 방식, 공간의 완성도에 영향을 미칠수 있는 외부 요인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기억에 남을만한 공공 공간의경험을 만들어나가고 있다. 호주 시드니, 멜버른, 애들레이드, 브리즈번, 퍼스, 중국 상하이와 광저우, 베트남 호치민,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 스튜디오를 두고 있다.
    • ASPECT Studios / ASPECT Studi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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