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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디토리얼] 마감 날 읽은 식물 책 세 권
    원래는 이달 특집에 참여한 조경가 필자들과 똑같이 ‘나의 식물에게’를 주제로 에디토리얼을 써볼 생각이었다. 공간을 만드는 조경가에게 식물은 어떤 존재일까. 그들에게 던진 이 질문에 조경계의 소문난 ‘식물맹’인 나도 한번 응답해보리라. 그러나 진심과 고심을 담아 눌러쓴 그들의 이야기를 밑줄 쳐가며 곱씹다 보니 마감이 눈앞이다. 예컨대 허대영 소장(조경설계 힘)의 이런 문장들. “식물은, 특히 나무는 살아갈 자리를 정한 설계자보다도 이 땅에 더 오래 살아남을 존재이기도 하다.” “조경설계는 식물의 삶과 죽음, 그리고 공감하는 사람의 마음까지 염두에 두어야 하며, 이렇게 아름다움의 영역을 확장하는 것이 조경 일의 속 깊은 본질”이다. 금요일 퇴근 시간, 마침내 김모아 기자의 메시지가 왔다. ‘월요일 오전까지 주시면 됩니다.’ 정확하게 번역하면 이런 뜻이다. ‘아무리 늦어도 월요일 아침에는 제가 꼭 볼 수 있게 보내주셔야 해요. 주말에 파이팅!’ 급하거나 불안해지면 책에 기대는 버릇이 발동한다. 책장 구석구석을 침착하게 뒤져 나름 정성껏 식물 책 세 권을 골라 주말을 보냈다. 먼저 펼친 책은 파란색 무광 표지가 매혹적인 고다 아야(幸田文)의 『나무』(달팽이출판, 2017). 말년의 노작가가 십 년 넘게 일본 열도의 북쪽 홋카이도에서 남쪽 야쿠시마까지 전국의 나무를 찾아다니며 체험하고 성찰한 기록을 엮은 유작이다. 첫 장 ‘가문비나무의 생사윤회’를 쓴 때는 1971년 1월이고, 마지막 장 ‘포플러’는 1984년 6월의 글이다. 우리는 나무의 무엇을 알고 있을까. 나무를 안다는 건 과연 무슨 의미일까. 저자는 쓰러져 죽은 가문비나무 위에 새로운 가문비나무가 자라나는 현장을 목격하며 “생사의 경계, 윤회의 무참함”을 사유한다. 도심 한복판에 홀로 선 거목을 보며 나무가 거쳐 온 삶의 순간들을 읽어낸다. 나무를 만나 살피고 듣고 느끼며 빚어낸 진솔한 문장들이 나무를 안다는 건 나무의 삶을 나무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임을 깨닫게 해준다. 따뜻한 책 『나무』에 이어 고른 『오산천 자연도감』(디자인 스튜디오 loci, 2022)은 온기뿐만 아니라 현장성과 생동감이 느껴지는 책이다. 아모레퍼시픽이 지원하고 박승진 소장의 디자인 스튜디오 loci가 진행한 프로젝트의 성과물인 이 책은, 경기도 오산천에 서식하는 식물 112종과 조류, 어류, 곤충류, 포유류 등 동물 31종을 섬세하게 조사하고 관찰해 정성스레 담아낸 도감이다. 책 앞부분에는 서해에서 배가 올라오던 옛 오산천이 오염으로 몸살을 앓게 된 사연, 그리고 생명을 품은 건강한 하천으로 거듭난 이야기도 담겨 있다. 본지에 ‘풍경 감각’ 꼭지를 연재하고 있는 조현진 일러스트레이터가 생태 조사와 해설 글, 식물과 동물 도감의 세밀화를 맡았다. 오산천의 숨겨진 가치를 쉽게 전달해주는 세 장의 그림 지도도 흥미로운데, ‘오산천 자연 탐사 지도’에는 천변을 산책하며 비인간 생명체들을 관찰할 수 있는 28개 지점이 꼼꼼히 표현되어 있다. ‘오산천 정원 지도’는 2015년부터 2021년까지 시민들이 참여해 조성한 120개 정원의 위치를 보여준다. 1년 넘는 식생 조사를 바탕으로 작성한 ‘오산천 식생 지도’는 버드나무류와 물억새 군락지를 비롯해 관심을 더 기울여야 할 식물들의 위치를 알려준다. 마지막 책은 조금 어렵다. ‘식물 존재에 관한 두 철학자의 대화’라는 부제를 단 『식물의 사유』(알렙, 2020)는 식물성에 대한 사유에 기반해 인간과 식물의 창조적 만남을 확장하는 시도를 펼친다. 32편의 서신 교환으로 구성한 이 책에서 루스 이리가레(Luce Irigary)와 마이클 마더(Michael Marder)는 ‘식물 존재’를 통해 자연과 문화, 물질과 정신, 감각성과 초월성, 주체와 타자, 여성과 남성, 비인간과 인간 등 서구 근대 정신을 지배해온 이분법과 동일성의 교의를 넘어서고자 한다. 그들은 왜 자연과 생명이 처한 위기 진단과 대안 모색의 중심에 식물을 위치시키는 것일까. 인간 중심주의가 지구 행성의 존속 가능성을 위협하는 생태계 위기의 원인이라는 반성이 일면서 동물과 동물권에 대한 관심이 동시대 담론의 뜨거운 주제로 떠올랐지만, 식물(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논의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식물은 의지와 주체성을 지니지 못한 가장 미발달된 생명체이며 생산의 원자재나 바이오 연료 정도로 치부되어왔을 뿐, 인간이 그 일부를 이루는 생명의 토대로 이해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의 식물을 호명하지 못하고 식물 책들에 기대 지면을 채운 데 대한 변명 삼아, 마이클 마더가 전하는 나무 이야기 한 부분을 옮긴다. “한 그루 나무가 다양한 성장의 총체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여럿으로 갈라지면서 얽히는 나무의 몸통, 가지를 덮고 있는 이끼와 담쟁이, 가지 위를 기어오르는 다람쥐, 가지 위에 집을 짓고 있는 새들, 뿌리와 뿌리 근처에 살고 있는 미생물 등등 하나의 성장의 공동체로서 나무는 식물적일 뿐 아니라 원소들과 식물 형태들과 종들이 만나는 장소이자 생물의 왕국입니다. 나무는 그 위아래에 살고 있는 모든 존재들과 함께, 또 그것이 살고 있는 장소와 함께 자기 자신을 우리의 시각과 사유에 건네줍니다. 또한 나무는 분류를 알지 못하는 자연의 낯선 영역으로 열린 창문이 될 수 있습니다”(『식물의 사유』, 231쪽). 그가 뉴욕의 좁고 누추한 아파트 뒷마당에서 만난 한 그루 나무는 “더불어 자라는 공동체의 표상”이었다.
  • [풍경 감각] 정원 계획
    갑작스레 알보 몬스테라가 생겼다. 평소 관심을 두었던 식물이기에 길러보겠냐는 친구의 말에 가벼운 마음으로 좋다고 했다. 그런데 작업실에 나타난 친구의 손에는 길이가 1m는 족히 넘는, 친구네 정원 한 켠을 몇 년간 지키던 녀석이 들려 있었다. 요즘 무척 바빠진 탓에 잘 보살펴주지 못한다며 내가 길러주면 좋겠다고 했다. 몬스테라는 줄기 한 마디를 심어 새 포기로 키워낼 수 있으니 다시 여력이 될 때 조금 잘라 달라고만 부탁했다. 친구가 돌아간 뒤 뜻밖의 새 식구를 살펴보았다. 흰 물감이 튄 것 같은 불규칙한 무늬와 시원하게 갈라지고 구멍 뚫린 잎사귀. 친구는 꽤 어렵게 이 몬스테라를 데려왔다. 무늬가 좋은 새싹을 골라 심고 잎 한 장, 뿌리 한 가닥 나올 때마다 SNS에 사진을 올렸다. 돌돌 말려 올라온 뒤 하루하루 조금씩 펼쳐지는 새 잎을 기다리고, 잎사귀마다 뚫린 구멍과 찢어진 갈래를 헤아렸다. 시들할 땐 식물 카페에 도움을 구했고, 잎 끝에 맺힌 물방울마저 기록하곤 했다. 아쉽지만 작업실 공간이 넉넉하지 않아 친구의 몬스테라를 여러 마디로 나누었다. 모종이 필요하지 않을 땐 잘라낸 것들을 그냥 버리지만, 친구의 몬스테라는 모두 모아 물병에 꽂아 두었다. 뿌리가 내리고 싹이 트면 내가 기를 것 하나와 친구에게 돌려줄 것 하나를 골라야지. 그리고 다른 것들은 잎사귀 한 장 한 장 헤아려줄 사람을 찾아 건네야겠다. 우리 집 정원에는 당분간 어린 몬스테라가 가득할 것이다.
  • [어제의 대화, 오늘의 재구성] 김동훈 정원을 탐구하는 천착의 깊이
    『순수의 시대』를 쓴 이디스 워튼(Edith Wharton)이 정원에도 조예가 깊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가 몇이나 될까. 워튼이 쓴 『이탈리아 빌라와 그 정원(Italian Villas and Their Gardens)』은 잡지사의 의뢰를 받아 수개월 동안 이탈리아 현지를 눈으로 읽고 발로 걸으며 취재해 쓴 정원 안내서다. 출간된 지 120년이 지난 지금도 이탈리아 정원뿐 아니라 서양 정원에 관한 고전 중 하나로 손꼽히는 이 책이, 지난 2023년 11월 한국 최초로 완역됐다. 번역가는 헌법재판소에서 헌법연구관 겸 공보관으로 근무하고 있는 김동훈. 두 가지 의문이 들었다. 법률가가 정원 서적을 번역했다니, 보통 정원하면 꽃이 화려한 영국 정원에 관심을 둘 법한데 비교적 단조롭게 보일 수 있는 이탈리아 정원이라니. 의문을 품고 인터뷰 장소인 헌법재판소 공보관실에 들어섰다. 책장 위 줄지어 선 토기 골동품과 벽을 빼곡히 채운 (로마의 풍경을 담은 걸로 추정되는) 사진과 태피스트리가 눈에 띄었다. 책장 한 칸은 이탈리아를 비롯해 로마에 관한 책이, 냉장고 옆면은 해외여행을 다니며 모은 게 분명한 마그넷이 빼곡했다. 무언가에 관심이 생기면 그에 대한 역사, 예술, 문화를 깊게 탐구하는 사람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정원이 궁금하다면 무작정 식물을 사 심기보다는 정원의 뿌리를 파헤치고 이해하기를 원하는 사람. 어쭙잖은 짐작이었는데 빗나가지 않았다. “프랑스식 정원의 아버지가 이탈리아 정원이고, 영국식 정원은 프랑스식 정원에 대응하며 만들어졌죠. 결국 영국식 정원을 이해하려면 프랑스식 정원을 알아야 하고, 프랑스식 정원을 알려면 이탈리아식 정원을 알아야 해요. 이를 모르는 채로 정원을 탐구하려다 보니 자꾸 멈칫하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이 책을 만나는 순간 그 관계가 명쾌하게 이해됐어요.” 어제는 뭐했나요? 출근해서 여러 가지 업무를 했어요. 아마 자세한 얘기는 재미없을 겁니다. 퇴근 후에는 가족들과 늦은 저녁을 같이 먹고, 아이들과 살금살금 배구-탁구 게임을 했어요. 두 가지 종류의 귤을 먹으며 맛을 비교하고, 제주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고요. 헌법연구관, 공보관이라는 직업을 낯설어하는 독자가 많을 거예요. 평소에 어떤 일을 하나요. 같은 법조계에 있어도 헌법연구관이 무슨 일을 하는지 잘 모르는 사람이 대다수일 겁니다. 헌법연구관은 헌법재판소에 사건이 들어오면 헌법적 쟁점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고 판결문 초안을 쓰는 일을 합니다. 재판을 하는 헌법재판관을 뒤에서 보조하는 일을 하는 것이죠. 본래 헌법 연구관인데 지금은 공보관 보직을 맡고 있습니다. 공보관은 대언론 관계 일을 합니다. 헌재 결정이 나올 때 국민에게 그 내용과 취지가 잘 알려질 수 있도록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기자에게 설명하는 역할이 제일 큽니다. 그밖에도 헌재 관련 이슈가 있을 때 언론 대응을 하죠. 다른 기관에서는 이런 역할을 하는 사람을 보통 대변인이라고 부릅니다. 정원 가꾸기를 취미로 삼고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만 깊게 연구하는 일은 드물죠. 줄곧 법과 관련된 일만 해온 사람이 『이탈리아의 빌라와 그 정원』(글항아리, 2023)을 번역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신기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어요. 정원에 언제 어떻게 관심을 갖게 됐나요. 어렸을 때 주말마다 시골 할머니 댁에 갔어요. 냇가에서 놀고 농사일을 거들었는데, 그때부터 전원에 대한 사랑이 있었나 봐요. 결혼 후에는 꽤 큰 규모의 텃밭을 만들었어요. 처음에는 농사일만 하다가 점점 아름답게 꾸미고 싶은 욕구가 생겨서 텃밭 한편에 정원을 꾸렸죠. 몇 년 전에는 50년도 더 된 할머니 댁을 새로 짓게 됐는데, 그곳에 집과 정원을 나름대로 설계하고 직접 만들게 됐어요. 저뿐 아니라 가족 모두의 추억이 많은 곳이라 가능하면 집의 원 형태를 유지하고 옛 나무도 살리려 했습니다. 여의치 않으면 같은 자리에 같은 수종의 나무를 심었고요. 그 과정에서 정원에 대한 관심이 커졌습니다. 꽃나무를 적당히 심으면 예쁘기야 하겠지만 나만의 특색이 있는 정원을 만들고 싶었죠. 법을 전공해 업으로 삼고 있지만 직업이 그 사람의 전부는 아니잖아요. 일하는 틈틈이 여러 분야의 책을 읽고 여행도 하며 여러 취미를 즐겼는데, 그중 제게 지속적으로 즐거움을 준 게 정원이었어요. 로마대학의 방문학자 시절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로마대학은 어떤 이유로 선택하게 됐나요. 연구 주제도 궁금합니다. 어릴 적부터 그리스와 로마에 대한 사랑이 컸어요. 그리스 로마의 자유롭고 당당한 사람들의 생각과 활동이 아주 인상 깊었어요. 헌법학 박사 논문 주제가 ‘한국 헌법과 공화주의’였는데, 공화주의는 그리스와 로마에서 비롯했어요. 돌이켜 생각해보니 가장 관심 있는 분야와 관련한 내용으로 논문 주제를 정하게 된 것 같아요. 그래서 유학을 갈 때도 아무도 가지 않는 이탈리아를 선택했어요. 보통 법과 관련해 유학을 떠나면 미국이나 독일을 가거든요. 그 결과로 ‘이탈리아의 헌법과 헌법재판제도’라는 논문을 쓰게 됐습니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위대한 로마법의 후예라는 자부심이 엄청나요. 흔히 이탈리아 하면 예술, 관광, 패션의 나라라고 생각하지만, 법학에서도 상당한 수준의 국가입니다. 이탈리아 건축과 정원은 어떤 식으로 공부했나요. 무언가를연구하러 간 곳에서 또 다른 분야를 깊숙이 탐구하는 게 대단하게 느껴져요. 어디에서 원동력을 얻나요. 특별한 방법은 없었고, 관련 책을 폭넓게 깊이 읽었습니다. 이탈리아는 건축과 정원에 관심이 많은 나라이기에 관련 자료가 아주 풍부했습니다. 길가다 마주치는 서점에 들어가도 정원을 주제로 한 책이 가득했고, 아름답고 세련되기까지 해서 보기만 해도 좋았죠. 값이 비싸더라도 예쁜 책을 소장할 수 있다는 기쁨이 더 커서 구매를 망설이지 않았어요. 유럽에서 아름다운 책을 많이 본 경험 때문인지 『이탈리아의 빌라와 그 정원』 번역서도 가능한 아름답게 만들어 소장 욕구를 돋우는 책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다행히 출판사의 의견도 같았고요. 정원을 좋아하니 공부도 즐거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누가 시켜서 하거나 직업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라 순수한 관심으로 공부하는 것이었으니까요. 건축과 정원도 전체 사회의 한 부분이고 결국 사회 현상이 반영됩니다. 그래서 이탈리아의 역사와 문화를 공부하면 자연스럽게 건축과 정원 공부에 도움이 됐습니다. 이탈리아식 정원은 중세를 탈피해 새 시대를 연 르네상스의 정신적‧물질적 산물입니다. 르네상스에 대해 이해하면 이탈리아 르네상스 정원을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죠. 그러면 정원을 볼 때 단순한 감각적 아름다움을 넘어 지적 아름다움까지 느끼게 돼요. 저는 이탈리아 정원하면, 회백색의 건물과 진초록 수벽이 가장 먼저 떠올라요. 사실 저도 처음에 이탈리아 정원이 무엇인지 잘 몰랐습니다. 서양 정원의 양대 산맥이 프랑스식 정원과 영국식 정원이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이탈리아식 정원은 어디에 자리매김하면 되는 것인지, 또 이탈리아식과 프랑스식이 비슷해 보이는데 뭐가 다른 건지 몰랐죠. 그런데 『이탈리아의 빌라와 그 정원』의 원서를 읽으며 이탈리아 정원이 무엇인지 깨닫게 됐죠. 말씀한 것처럼 오래된 회백색 건물에 잘 깎은 초록 나무가 어우러진 모습이 이탈리아 정원의 이미지예요. 그 단순한 이미지 속에 엄청난 것들이 숨어 있습니다. 책에서 이디스 워튼은 이탈리아 정원은 대리석과 물, 상록 식물이라는 간단한 세 요소로 구성되어 있는데 어떻게 그런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지 미스터리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받은 감동과 깨달음을 설명하며 독자들과 나누고자 했던 것이죠. 정원은 태생적으로 건축과 밀접한 연관을 맺을 수밖에 없는 존재죠. 건축 양식과 주거 방식에 따라 변화해 왔으니까요. 이러한 관점에서 한국의 정원을 어떻게 느끼는지 궁금해요. 한국 사람도 이제 아름다움에 관심이 많이 생긴 것 같아요. 흔히 옛날에는 먹고 살기 급급해 정원 가꿀 여유가 없었다는 말을 하잖아요. 자투리땅이 있으면 채소를 키우고 콩을 심어야지 정원을 가꿀 상황은 아니었던 겁니다. 그래서 한국에는 정원이 별로 없어요. 서민은 물론이고 형편이 넉넉한 집이나 양반집에도 정원이 별로 없었는데, 그 이유를 세가지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첫째, 이탈리아 부유층이 빌라를 지을 만큼의 부富가 우리에겐 없었어요. 둘째는 유교적 금욕주의입니다. 조선시대에 이런 일이 있었어요. 왕이 창경궁 우물에서 흘러나오는 물길을 구리로 된 수로로 만들려고 하자 신하들이 반대합니다. 왕이 검소한 모범을 보이지 않으면 백성들이 사치에 빠진다는 거였죠. 즉 아름답게 꾸미고 즐기는 것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과 거부감이 있었어요. 현대에 들어 많이 약해졌지만, 여전히 마음 속 깊은 곳에 금욕주의가 자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셋째로, 과거 조선은 도시화가 안 된 국가였으며 자연과 전원을 가까이 두고 있었기에 정원의 필요성을 덜 느낀 것 같습니다. 한국의 자연이 상당히 아름다운 편이기에 굳이 정원을 가꿀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을 것 같아요. 이런 과거와 현재 상황을 냉정하게 직시하고 인정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야 나아갈 길이 보일 거예요. 옮긴이 해제에 썼듯이, 저는 우리 정원이 ‘한국 정원’ 또는 ‘한국식 정원’으로 재탄생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사람이 한국 땅에 만들었다고 다 한국 정원이 아닙니다. 정체성의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예컨대, 전원주택 마당에 까는 초록 잔디밭은 과연 우리 정원의 모습일까요? 아파트 단지에 흔히 보이는 가지런하고 둥글게 깎아 놓은 철쭉이나 회양목은 우리의 것일까요? 전통 정원에 없던 요소이니 배척하자는 말이 결코 아닙니다. 적어도 그런 요소의 뿌리가 무엇인지 알아야 활용할 때도 우리의 아름다움을 드러낼 수 있다는 뜻입니다. 언젠가 누가 봐도 한국적이면서 누군가에게 확연히 아름다운 한국식 정원이 탄생하기를 기대합니다. 수많은 책 중 『이탈리아의 빌라와 그 정원』을 번역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이유가 있나요? 유학 시절 이 책을 우연히 알게 됐어요. 다른 정원 서적에서 이 책이 종종 언급되기에 원서를 구해 읽었는데, 첫 문장을 보는 순간 바로 이거다 싶었습니다. “이탈리아 정원에는 꽃이 없다고 하면 과장이리라.” 대가만이 쓸 수 있는 첫 문장이었어요. 이탈리아 정원을 여러 곳 다니며 이상하게 느낀 점을 한방에 명쾌하게 해결해주는 문장이었습니다. 보통 유럽의 정원을 상상할 때 푸른 잔디밭이 드넓게 펼쳐지고 장미와 수선화가 만발한 장면을 떠올리잖아요. 그런데 그런 정원은 프랑스, 영국, 독일 등 북부 유럽의 것입니다. 제가 이탈리아에서 본 정원은 달랐어요. 잔디밭도 잘 없고, 꽃도 별로 없고, 한여름엔 얼마나 덥고 건조한지 나무가 다 말라죽을 것처럼 보였거든요. 당황했어요. 처음에는 제가 못 본 무언가가 숨어있는 건가, 다른 계절에 찾아오면 다르려나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책을 보니 이탈리아 정원에는 꽃이 없고 초록으로만 구상하는 게 기본이더라고요. 처음엔 번역까지 할 작정은 아니었는데, 나만 알고 있기에는 너무 아까운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거창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한국 독자에게도 알리면 우리 정원 문화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했죠. “우아한 문체와 절제된 감상, 그리고 공정한 평가”를 이 책의 강점으로 뽑았어요. 번역 작업이 굉장히 까다로웠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 책을 꼭 번역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이유이기도 해요. 정원에 관한 웬만한 책은 모두 읽었지만 정원에 대한 감상과 평가를 적절한 비율로 다룬 책을 보진 못했거든요. 정원 설명서는 무미건조한 해설만 있기 마련이고, 정원 에세이에는 저자의 감상이 지나치게 드러나는 경우가 많았어요.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 정원을 모두 넘나들면서 통찰력을 보여주는 서술을 하는 책도 드물었고요. 반면 이 책은 우아한 문체와 격조 높은 감성을 보여줍니다. 저자만의 개인적이고 가벼운 감성이 아닌 거죠. 이탈리아에 오래 머물며 살아온 사람만이 아는 애정도 살포시 깃들어 있었고요. 20세기 초를 전후한 구미 상류층만이 쓸 수 있는 내용도 많았습니다. 그만큼 마음의 부담이 컸습니다. 원전의 격을 훼손하지 않아야 하는데 제가 그 정도의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 고민했고 누가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습니다.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주석도 직접 달고 직접 찍은 사진도 넣었고요. 책의 모든 주석을 직접 달려면, 건축 양식, 주거 방식, 역사, 언어학까지 전부 파헤쳐야 했을 것 같더라고요. 이디스 워튼이 대작가이자 정원 전문가이기에 책 자체가 서양 문화, 건축, 정원에 대한 상당히 높은 수준의 지식을 이미 전제로 하고 있어요. 책을 풍요롭게 읽기 위해서는 주석이 반드시 필요했죠. 사실 책에 실린 주석은 준비한 내용의 3분의 2가량에 불과합니다. 출판사와 역자 주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오래 의견을 주고받았어요. 주석을 모두 달면 책이 너무 번잡해지고 원전을 훼손하는 느낌이 들 테고, 주석을 너무 줄이면 책을 이해하기 어려워지죠. 그 타협점이 지금의 형태입니다. 한 단락, 한 단어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며칠씩 공부해야 할 때도 있었어요. 뉴턴이 “내가 더 멀리 보았다면 이는 거인들의 어깨 위에 올라서 있었기 때문이다”라는 말을 했죠. 이처럼 독자들이 홀로 공부하느라 고생하지 않고 일단 먼저 공부를 시작한 제 어깨 위에 서서 더 멀리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번역 작업을 할 때 가장 유의했던 점과 그 과정에서 느낀 매력이 있다면요. 1904년 출간되어 저작권이 오래 전에 소멸된 이 책을 왜 아무도 번역하지 않았는지 궁금했는데, 번역을 하다 보니 그 이유를 알게 됐어요. 영어를 해야 하는 것은 기본이고, 이탈리아어도 어느 정도 알아야 하고, 이탈리아 정원들을 직접 가보고 또 정원을 직접 가꾸어본 경험이 있어야 제대로 번역할 수 있겠더라고요. 그래서 가보지 못한 정원에 관한 내용을 번역하는 게 쉽지 않았어요. 묘사와 서술을 대충 이해하는 건 어렵지 않았지만, 정확히 번역하는 건 다른 차원의 일이었습니다. 다행히 인터넷 시대이기에 구글 지도를 수없이 돌려보며 책에 묘사된 장면을 확인했지요. 역자 스스로 이해하지 못한 글은 생명력을 잃습니다. 물론 제가 원서의 깊이와 맛을 얼마나 잘 살렸는지 모르겠고 가끔 부끄럽기도 합니다. 번역을 하며 그리스 로마 고전을 줄기차게 번역해온 천병희 선생의 말을 떠올리곤 했습니다. 왜 그렇게 고집스럽게 번역을 하냐는 물음에 그는 번역도 창작 못지않게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아무리 외국어를 잘해도 우리말로 읽는 것이 열 배는 더 효율적이라고 답했어요. 번역은 새로운 문물을 가장 쉽고 직접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창구입니다. 충실한 번역이 있을 때 이를 바탕으로 고유의 문화도 꽃피울 수 있습니다. 저는 애매한 창작 논문 한 편보다 충실한 논문 번역 한 편이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한국은 번역의 가치를 상당히 저평가하고 교수의 실적으로도 인정해주지 않죠. 번역을 통해 더 실력을 쌓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번역의 가치가 더 인정받는 날이 빨리 오기를 바랍니다. 번역에서 가장 먼저 마주하는 건 다른 언어에요. 조경가 사이에서는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landscape architecture)’의 번역어로 ‘조경’이 적절한지에 대한 논의가 이어져왔어요. 책을 보니, 김동훈님은 조경가라는 단어를 기본으로 쓰되, 경관 건축가, 경관 정원가, 정원 건축가라는 단어를 적절히 섞어 사용했더라고요. 원칙적으로는 조경, 조경가란 단어를 채택했습니다. 가장 일반적으로 쓰이는 번역어이기 때문이죠. 필요한 경우에는 경관 건축가, 경관 정원가, 정원 건축가라는 말을 썼고요. 조경造景이라는 말을 그대로 풀면 경관을 만든다는 것인데, 의미와 간결성 측면에서 보면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의 최선의 번역어 같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흔히 조경가를 단순한 정원 관리사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죠. 조경이 대지를 다루고 설계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널리 알리거나 조경을 대체할 더 나은 용어가 나오기 전까지는 아쉬운 대로 쓸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오렌지나무 화분이 가득 놓인 이탈리아식 정원과 집, 빌라 카스텔로 사진을 인상 깊게 봤어요. 화분은 정원을 꾸릴 만한 땅이 없는 사람이 식물을 기르기 위해 사용하는 일종의 도구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거대한 화분을 꽤 큰 규모의 땅에 열 맞춰 놓으니 그럴듯해 보이더라고요. 이탈리아 정원을 상징하는 나무가 여럿 있지만 그중에서도 오렌지나무나 레몬나무는 이탈리아와 지중해를 떠올리게 만들죠. 그런데 오렌지나무는 따뜻한 곳에서만 살 수 있기 때문에, 나폴리 같은 이탈리아 남부라면 모를까 피렌체 같은 중북부에서는 겨울에 노지에서 살지 못합니다. 그래서 화분에 심어 봄이 되면 밖에 내놓았다가 늦가을이 되면 다시 레몬 하우스에 넣어 월동을 하게 하죠. 노지에서 자란 오렌지나무와 화분에 심은 오렌지나무의 느낌이 참 달라요. 화분을 활용한다는 발상 자체도 훌륭하고, 열 맞춰 질서정연하게 늘어놓은 것도 이탈리아인의 절묘한 감각인 것이죠. 게다가 이탈리아 토분의 질감과 색, 모양이 오렌지나무와 아주 잘 어울리죠. 토분의 경우 모두 수작업으로 만들었어요. 모두 조금씩 달라 변화가 보이면서도 가지런히 놓음으로써 전체적으로는 조화와 질서를 이루죠. 한 아름 크기의 큰 토분은 수십만 원이 넘습니다. 이탈리아 정원이 아름다운 이유 중 하나가 작은 소품에도 신경을 쓴다는 점이죠. 책에 소개된 정원 중 하나의 정원만 추천해야 한다면 어떤 정원을 뽑고 싶은가요. 빌라 란테(바냐이아)와 빌라 파르네세(카프라롤라)가 제일 인상 깊었어요. 로마 북쪽으로 고대 로마의 길을 따라 난 현대의 2차선 도로를 달리면 한 시간 만에 도착하는 곳인데, 빌라는 작은 마을 뒤편에 있습니다. 정원과 더불어 이탈리아의 숨은 매력인 소도시의 분위기도 잘 느낄 수 있는 곳이죠. “아 이게 이탈리아의 느낌이구나!” 하게 되는 곳입니다. 코모 호수의 빌라 발비아넬로도 좋았습니다. 코모 호수는 밀라노에서 차로 한 시간이면 가는 곳인데, 당일치기 하지 말고 꼭 2박 정도는 여유롭게 묵으며 아름다운 호수와 정원을 구경하길 바랍니다. 알프스 자락의 호수라 여름에는 아주 시원하고 쾌적한데, 아름다운 마을과 정원을 배를 타고 하나씩 찾아가는 재미가 있습니다. 이탈리아에 정원 문화가 발달한 만큼 관련한 법령이 있나요. 정원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법령이 상당히 발달되어 있고, 특히 경관에 관한 여러 법령이 자세하고 체계적입니다. 더구나 이탈리아 헌법은 “국가는 경관을 보호한다”는 조항을 명시적으로 두고 있죠. 정원은 혼자 존재할 수 없습니다. 정원은 주거와 함께하기에 인근에 마을이 있기 마련이고, 정원이 아름다우려면 짝을 이루는 주변의 경관이 아름답게 보존되어야 합니다. 정원이 아름다워도 눈을 들어 멀리 봤을 때 이를 해치는 경관이 있다면 정원의 가치가 확연히 낮아집니다. 한국도 2007년 ‘경관법’을 제정했지만 큰 실효성이 없는 상태입니다. 경관에 대한 인식이 더 높아지기를 바랍니다. 참고로 국제역사정원위원회가 1981년에 만든 ‘역사 정원에 관한 헌장(플로렌스 헌장)’이 있습니다. 서양 정원의 발원지라 할 수 있는 피렌체에서 만들어졌죠. 역사와 정원의 특질이 잘 보존된 정원을 ‘역사 정원’이라 부르고, 이를 보존하고 복원하는 방법이 상세하게 쓰여 있어요. 우리도 앞으로 정원을 복원해야 한다면 꼭 참고하면 좋겠습니다. 영화나 소설에서 아름다운 정원을 만난 적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탈리아 피렌체를 배경으로 한 영화 ‘전망 좋은 방’(1989)에 당시의 정원을 아주 아름답게 묘사한 부분이 나옵니다. 마음 가볍게 천천히 음미하면 정말 낙원 같은 정원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또 영상미의 절정을 보여주는 영화 ‘그레이트 뷰티’(2014)에서 스치듯 나오는 정원들이 긴 잔상을 남긴 기억이 있어요. “가장 행복한 삶은 ‘낮엔 밭에서 일하고, 저녁엔 책을 읽는 삶’이라고 생각한다”는 소개 문구가 굉장히 낭만적이에요. 어떤 미래를 꿈꾸고 있는지 궁금해요. 정원과 관련해 또 다른 도전을 해보고 싶지는 않나요. 마키아벨리는 정계에서 강제로 은퇴당한 뒤 자신의 시골 별장에 머물렀는데, 낮에는 잡다한 일을 하고 시골 사람들과 어울리다가 저녁이 되면 정복으로 갈아입고 책상에 앉아 옛 위인들과 마주했다고 해요. 그게 참 멋지게 느껴졌어요. 텃밭에서 가벼운 채소들은 다 키워봤고, 다음에 석류나무를 심어보고 싶어요. 어릴 적 마당 있는 집에 살았을 때 봤던 석류나무의 아름다운 꽃과 이파리, 몽글몽글 풍요롭게 맺히는 빨간 열매가 지금도 눈에 선하거든요. 더구나 석류는 페르시아에서 왔다지요. 그 옛날 페르시아에서 태어나 중국을 거쳐 한국에 자리 잡은 수목이라는 점이 참 매력적입니다. 몇 번 심어 봤는데 겨울이 지나면서 다 죽더라고요. 또 정말 꿈같은 이야기지만, 제 할아버지가 그랬듯 논에서 벼를 직접 키워보고 싶습니다. 내손으로 벼를 키워 밥을 지어먹어 보고 싶어요. 일과가 끝난 저녁에는 동서고금의 고전을 한 권 한 권 읽어나가고요. 논어, 한비자, 장자부터 아리스토텔레스, 단테까지 천천히 읽고 싶어요. 언젠가는 토스카나의 메디치 빌라에 관한 책을 쓰고 싶어요. 이미 메디치 가문에 관한 글이 많지만, 그들이 위대한 업적을 어떻게 만들어 나갔는지 알기 위해선 좀 더 내밀하게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피렌체라는 도시에서의 공적, 사적 활동과 시골 별장에서의 휴식이 적절히 조화를 이뤄 그런 업적을 만들어낼 수 있던 게 아닌가 짐작하고 있어요. 그리고 그 즈음이면 한국 정원에 대한 연구가 어느 정도 이루어져 있지 않을까요. 정립된 이론을 바탕으로 멋진 한국식 정원을 직접 만들고 싶은 꿈이 있습니다.
  • [어떤 디자인 오피스] 조경설계호원 삶과 장소에 자연의 평온을 담다
    자연의 평온 2023년 12월의 어느 날 사원 개별 면담 중 한 선임 디자이너가 물었다. “설계를 잘하고 싶은데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쉬운 물음이지만 쉽게 답하지 못했다. 일은 잘하고 못하고를 판단할 수 있겠지만, 설계를 잘하고 못하고의 판단 척도는 무엇인가. 근본적인 의문이 생겼다. 설계를 잘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우리의 디자인에 대해서 잘하고 못하고를 구분 지을 수 있을까. 목적 지향적인 단순한 가치를 오피스의 이상으로 두면 한계에 직면할 수 있다는 걸 지금까지의 경험을 통해 알고 있기에 모든 물음에 쉽게 답할 수 없었다. 대지의 선물 9년 전, 조경설계호원(HOWON)(이하 호원)은 호수(湖)와 동산(園)을 담은 자연의 평온한 공간 조성이라는 다소 진부한 이름으로 시작했다. 오랜 시간 동안 인간과 함께 한 자연 공간, 그리고 인간이 만들어 놓은 장소 사이에서 많은 영역을 차지했던 자연의 물과 녹음의 동산은 우리의 삶을 조금이나마 평온하게 하는 대지의 선물일 것이다. 호원은 이렇듯 세상의 선물과 같은 존재로 미약하나마 존재하려 한다. 한 개인의 시작에서 우리의 시작으로 변한 지는 오래됐다. 오피스의 이름은 이름일 뿐, 그냥 불리기 편한 이름이면 그뿐이다. 허울 좋은 이름 대신 그 안에 담긴 선물처럼 본질을 추구하는 집단이 되고 싶다. 잘하고 못하고를 조경설계의 잣대로 들이대는 게 불편하지만 우리는 잘하며, 잘하고자 한다. 공공의 가치를 구현하다 설계사무소의 철학은 한 개인의 산물이 될 수 없다. 다양한 사고의 흐름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집단의 대상지 해석은 그 대상이 요구하는 시대의 흐름과 장소가 가지는 정체성에서 출발한다. 프로젝트가 끝나면 최종적으로 결과물에 대한 가치 발견과 평가로서 공공 가치에 우리의 작업이 필요했는지, 장소에 대한 해석을 잘했는지 생각해 본다. 시대적 흐름에 맞추어 조경이 가지는 공공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는 지금 우리는 다양한 공공 프로젝트에 참여를 시도하며, 성과를 보이고 있다. 남산예장공원 2015년 호원 창립과 함께해 온 중요한 프로젝트다. 조경설계사무소로서 무한한 자긍심의 공간이기도 한 예장공원은 호원의 처음과도 같은 장소로 우리가 바라보는 공공 도시 공간에 대한 해석 방법을 잡아가는 시작이었다. 청주 충혼탑 추모공원 마스터플랜 국내 600여 개가 넘는 충혼탑의 엄숙한 추모 공간을 일상의 시민 공간으로 환원하고 추모의 기념적 공간과 도시의 상징 공간으로 장소의 가치를 재해석했다. 2023년 3월 공모에 당선됐으며 이제 설계 막바지를 바라보고 있다. 부산유엔평화공원 화합의 뜰 부산유엔평화공원 화합의 뜰은 메모리얼 공간의 정면성을 확보하며 공원의 사회적 공공 가치 구현을 위한 도시 인프라로서 기능을 수반하는 중첩의 공간으로 계획했다. 2023년 공모에 당선되어 설계의 끝을 바라보고 있다. 포기하지 않는 열정 우리는 모든 조경의 영역에서 활동한다. 다양한 공모에서 낙선의 쓴맛을 보고 있다. 당선안과 낙선안에 대한 해석과 가치를 논하자면 어려울 것이다. 낙선안에 우리가 부족했던 점이 보이기도 하며, 다른 사람과의 대상지 해석의 차이를 되새겨 보기도 한다. 사무실의 모든 구성원이 공모에 참여한다. 오피스 운영 차원에서 보면 비효율적인 측면이 있는 것을 인정한다. 공모 운영에 적합한 구성원이 한 팀이 되어 진행하는 것이 보편적 방법일 수 있지만, 설계를 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를 모두 가지고 있다는 것에 주목했다. 물론 미흡한 부분으로 인한 문제가 수시로 발생한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의 조직에서 집단 지성이 형성되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하며 즐겁게 그리고 열정적으로 모든 공모에 참여한다. 현장에서 시작하는 디자인 설계는 현장의 모습을 보는 것에서 시작한다. 무수히 많은 현장의 조건과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모든 구성원들이 함께하는 협의 과정이 조성될 공간의 잠재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공동주택 프로젝트에서부터 경험하기 어려운 골프 코스 경관 설계와 클럽하우스 등에서 수시로 진행되는 현장 답사를 통해 디자인과 시공의 간극을 좁히며, 조경가의 생각이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중요한 요소임을 피부로 접하며 깨닫고 있다. DMC SK 스카이 뷰 아이파크 공동주택 조경은 조경가의 능력과 의지의 많은 부분을 변화시킨다. 각종 규제와 많은 전문가 및 관계자의 다양한 의견은 디자인의 한계를 만들 수 있으나,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해석을 만들기도 한다. 이해 관계자를 설득하는 일련의 과정에는 어떠한 프로젝트와 비교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문제 해결 능력이 필요하다. 자칫 편향된 설계의 방향을 보일 수 있는 설계 대상인 공동주택은 조경가를 훈련시키는 최고의 수단이자 대상이다. 덕평 H1 클럽하우스 실시설계를 참여한 클럽하우스 진입 공간의 경관 구역이다. 레저 및 여가 공간 설계는 디자이너의 눈높이를 크게 변화시키는 기회가 된다. 단정한 디자인, 세심한 디테일, 재료의 통일성, 시퀀스의 변화 등 다양한 툴을 이용한 시뮬레이션이 클라이언트 설득과 대상지 해석에 도움을 주었다. 여주 루트 52 코스 및 클럽하우스 골프 코스 경관 설계와 클럽하우스 조경설계를 진행했다. 토목 공사의 공정률이 어느 정도 진행된 대지의 모습을 보며 조경이 이 세상에 필요한 이유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 미래를 함께 바라보며 호원의 구성원은 설계의 시작과 끝을 함께한다. 프로젝트 수행에서 업무의 편중이 발생하는 것이 국내 설계사무소의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공모, 계획, 실시설계, 각종 제안서, 시각화 작업 등 설계의 세부 업무에 모든 구성원이 자신의 디자인 역량을 시험해 볼 수 있고 도전과 협력이라는 가치를 기반으로 팀 조합이 자유로운 그룹 구조를 지향하고 있다. 우리는 독특한 조직 구조를 가지고 있다. 대표 소장 외 경력 15년 이상의 수석 디자이너 4명, 경력 3년 이상의 선임 디자이너 4명, 주임 디자이너로 이뤄진 원통형 구조다. 얼핏 보면 고인물이 모여 원통형 구조가 됐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처음부터 의도된 디자인 그룹의 조직 구성이다. 10명 이상의 국내 설계사무소 운영 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들과 디자인 인력과 규모의 확장성을 언제든 확보할 수 있는 방향으로 구성했다. 탄탄한 수석 디자이너 4명의 디자인 역량과 경험치는 프로젝트의 안정적 진행과 전문 기술을 담아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개별 디자이너와 일대일 그룹 구성으로 발전된 도제식 설계 교육을 운영한다. 설계사무소의 객관적 디자인 역량을 수치화하는 것은 불가능할 수 있으나, 의사 결정의 객관성과 미래의 가치를 함께 바라볼 수 있도록 체계적인 운영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운영과 관련해 동료들의 의견을 들어봤다. 이를 통해 회사의 지속적인 노력에 모든 구성원 또한 함께하고 있다는 걸 다시 깨달았다. 유연한 경계 그룹별 성과 경쟁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그룹 간 경계가 유연하게 구축되어 있어, 정보를 자유롭게 공유할 수 있다. 유연한 일정 조율은 휴식과 재충전의 시간을 제공하게 되고, 팀원들이 스트레스를 효과적으로 관리하게 된다. (곽민호 주임 디자이너) 우리의 프로젝트 우리가 진행하는 프로젝트의 결과물에는 구성원 모두의 고민과 노력이 들어있다. 다양한 프로젝트를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책임 디자이너를 정해 놓지만,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각 프로젝트 담당자는 최상의 결과물을 위해 수시로 의논하고 대화한다. 그렇기에 너희 팀, 나의 팀이 아닌 우리의 프로젝트다. (김재욱 수석 디자이너) 전문적인 배움 프로젝트 진행이 안정적이고 전문적이라 느껴지는 까닭은 네 명의 수석 덕분이다. 사원 입장에서는 수석과 거의 일 대 일 팀 구성으로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덕분에 알음알음이 아니라, 제대로 배울 수밖에 없다. 옆에서 보고 듣는 간접적인 배움도 많지만, OJT 같은 직원 교육 프로그램이나 질문과 답이 오가는 시간에서 여느 사설 강의와 과외 못지않은 배움을 얻을 수 있다. (임모니카 선임 디자이너) 모두의 발전 나 자신을 위한 것뿐만 아니라 모두를 위해 노력한다. 경력 디자이너로서 신입 디자이너가 업무 역량 및 경험의 부족으로 힘들어할 때 내가 가진 노하우를 알려줌으로써 모두의 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고 본다. 우리가 행하는 모든 프로젝트가 이 사회에 이바지하기를 기원한다. (차윤철 수석 디자이너) 주도적인 디자이너 호원의 사람들은 평범하지만 살아있다. 디자인 그룹에서 디자이너에게 기대하는 무한한 능력은 개개인의 역량과 잠재력에 기대어 운영될 수는 없다. 프로젝트 운영 외에 각자의 주도적 참여를 다양한 방향성을 가지고 이끌어 내고자 한다. 월간 세미나와 문화데이, 필드 트립, 리프레시 투어는 프로젝트 업무 외에 조경가의 다양한 사고와 경험을 위해 시행하고 있다. 수석 디자이너가 하는 톱다운 방식의 도제식 교육 외에 모든 구성원이 참여해 강의와 개별 사내 행사를 진행하는 것이 수동적 태도를 지양하는 우리의 방식이다. 월간 세미나 월간 세미나를 통해 조경설계의 프로젝트 진행 외 필요한 부분을 회사 구성원 각자의 시선으로 공부하고 정리해 그룹 모두에게 강의하고 있다. 강의 후 서로 의견을 나누고 그 내용을 정리해본다. 길지 않은 이 시간이 조경이란 일을 하며 부족했던 부분이나 잘 알지 못했던 내용을 조금 더 편하게 알 수 있도록 도와준다. 직급 제한 없이 모두가 강사라는 이름을 달고 진행하는 세미나가 우리를 조금 더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가게 해준다. (김승인 수석 디자이너) 서로의 발전을 위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누구나 자신의 무기를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특장점은 빛을 발하지만, 그 빛 뒤에 가려진 약점들이 더 많다. 매달 월간 세미나를 통해 본인의 장점과 약점을 공유하며 강의를 하는 사람이 되기도 하고, 배우는 사람이 되기도 한다. 프로그램 관련 세미나에서부터 재료, 시공 디테일, 식물 소재, 더 나아가 조경 트렌드와 미래의 조경 상에 대한 세미나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한자리에 모여 나누며 서로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김서하 선임 디자이너) 효율적 업무와 워라밸 네 개로 나누어진 팀은 각각 효율적인 일정 관리를 통해 합리적인 업무와 협업을 이루어 낸다. 더불어 유연근무제, 야근 사전 결제 시스템 도입은 실질적인 직원들의 워라밸 향상에 기여하며, 전반적인 직무 만족도를 높일 뿐 아니라 회사 내 탄력적이고 협력적인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김소라 선임 디자이너) 일과 삶을 공유하다 회사는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곳이다. 일해서 돈 버는 곳. 하지만 일하고 돈만 버는 회사는 미래가 없으며 함께 바라볼 비전이 없으면 발걸음에서 점점 힘이 빠지기 마련이다. 일하며 발전하고 놀며 삶을 공유하는 재밌고 편한 회사가 좋다. 그래서 업무 시간은 너무나도 바쁘지만 리프레시데이와 문화데이, 필드트립을 진행할 때는 열심히 놀며 배운다. 매달 행사가 있는 셈이다. 모든 행사에는 구성원들이 하고 싶었던 것을 하거나 가고 싶었던 곳에 간다. 좋은 장소를 보며 즐기며 경험한다. (홍지송 수석 디자이너) 조경설계호원(HOWON)은 사회적 공공 가치 구현을 위한 디자인을 추구한다. 이를 위해 모든 과정에서 도전과 협력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상적 디자인 스튜디오를 구성하고자 조직의 체계와 운영을 중시한다. 디자인 역량을 보여줄 수 있는 모든 활동을 섭렵하며 미래 지향적 디자인 오피스로 발돋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 [밀레니얼의 도시공원 이야기] 1857년 뉴욕, 어떤 30대
    에피소드 1 1857년, 35세(각주 1) 6월, 여름으로 넘어가는 문턱에 서서: 결국 잡지사가 문을 닫는다. 온갖 분야를 다 해보는 대책 없는 아들이 사업을 하겠다고 나서도 흔쾌히 지원해준 아버지께 죄송할 따름이다. 미국 사회에 의미 있는 이야기를 하겠다고 나선 출판사가 사업적으로 문제가 있었다는 점은 참 안타까운 현실이다. 실용주의에 미친 신사들(practical man) 속에서 실용성 아닌 의미를 찾는 이들의 자리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어쩔 수 있는가. 이제 다른 일을 찾아봐야지. 저번에 보니 시에서 추진하는 공원의 감독관을 찾고 있다고 하던데. 9월, 성공했다: 여름에 넣었던 감독관 지원 서류가 통과했다는 소식. 당파 싸움에 휘말리지 않고 공원에 집중할 수 있는 공화당의 인재임을 어필한 게 효과적이었다. 의원들의 의견을 모으기 위해 도움을 주신 아버지와 아버지 친구분들께 감사하다. 이제야 좀 안정적인 직업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일까. 걱정은 중요한 일에 손을 보탠다는 흥분감에 따라오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843에이커의 땅에 공화당과 민주당의 의견을 수렴해 뉴욕에 걸맞은 공원을 만드는 일이다. 수백의 사람들이 관리하는 일이다. 지금부터 할 일이 태산이다. 10월, 새로운 기회: 갑작스럽게 우리 곁을 떠난 다우닝 씨의 동료였던 캘버트 복스(Calvert Vaux) 씨의 연락을 받았다. 공원 설계 공모에 함께 나가보지 않겠냐고 한다. 어쩌면 1851년 런던에서 마주쳤던 그 그림 같은(picturesque) 공공 공원(public park)을 미국 땅에서 실현할 기회일지 모른다. 이 부지의 전체 지형을 조사했던 빅엘(Viele) 씨가 설계한다고 들었을 때는 나도 함께할 여지가 있을까 싶었지만, 딱히 말이 없는 것을 보아하니 복스 씨와 같이 하는 게 나을 것 같다. 감독관으로 있으면서 느낀 게 많다. 뉴욕 시민들은 미처 모르겠지만 이 공원은 우리의 가장 큰 유산이 될 것이 분명하다. 100년, 200년 뒤 뉴욕의 가장 중요한 장소, 뉴욕 시민들의 허파이자 정신적 지주가 될 것이다. 지난 세기 프라이스가 “픽처레스크에 대한 에세이”(1794)에서 말한 ‘그림 같은’ 경관에 관한 이야기와 기록은 영국에서 시작했을지 몰라도 그 이상에 가장 근접하게 존재하는 것은 분명히 19세기 미국 땅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11월, 결국: 있어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우리 가족의 자랑스러운 존, 내 사랑하는 동생이 끝내 영원히 눈을 감았다. 행복했던 뉴헤이븐의 나날들이여! 기억 속 젊음이 충만한 우리가 계속해서 살아가길. 1858년 4월, 드디어: 공모에 당선됐다는 소식이다. 감독관에서 책임 건축가로 승진했다. 33번째, 마지막으로 공모작을 접수했었는데, 지금 보니 다들 공원을 뭐라고 생각하고 있는지! 앞으로 계속해서 확장될 이 찬란한 대도시에 공원을 만든다는 대업을 자신의 허영을 채우기 위한 기회로 삼은 게 분명하다. 이런 허영 덩어리들이 만드는 공원이 아닌, 미국인의 영혼을 달래주는 진정한 의미의 ‘공공의 공원(public park)’을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2024년으로 빨리 감기 166년 전 중앙공원, 즉 센트럴파크가 처음 생겼다. 공원이라는 개념이 처음 생겼다고 할 수는 없 겠지만, 센트럴파크가 오늘날 한국 곳곳에 널리 조성된 ‘중앙공원’이라는 녹지 유형을 안착시키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음을 부인하기란 쉽지 않다. 이후 연재에서도 언급하겠지만, 한국의 도시민치 고 각 시군의 중앙공원을 안 가본 사람이 있을까. 참고로 한국의 도시화율은 8할이 넘는다. (각주 2) 공원에 주목하기 위해서는 먼저 분석가의 사고적 환기가 필요하다. 중앙공원이 빠르게 도시의 한 귀퉁이를 차지한 것처럼, 공원의 속성은 우리의 일상 배경으로 너무 쉽게 치고 들어왔다. 지난 달 글에 짧게 적었지만, 필자가 센트럴파크를 흥미로운 대상으로 인지한 것 역시 뉴욕살이 만 6년 이 지난 시점이었다. 조경을 전공하기 전이라고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이렇게 신기하고 재미있는 대형 주제를 왜 놓치고 살았는지 과거의 나 자신에게 되묻고 싶은 심정이다. 달리 말하자면, 그만 큼 옴스테드가 치밀하게 공원을 조성했다는 것이다. 한창 공원 공사가 진행 중이던 1859년에 그 려진 지형도에서 옴스테드의 집착에 가까운 면이 쉽게 포착된다. 온갖 공을 들여 식재를 하느라 공원 조성 예산을 훌쩍 넘겨버리는 바람에 위원회와 끝없는 마찰이 있었다는 것 역시 잘 알려진 사실이다. 언제나 그곳에 있었던 것인 마냥, 한 번의 의심조차 용납하지 않겠다는 마냥. 그렇다고 해서 옴스테드가 마냥 영국식 픽처레스크 정원을 미국에 옮겨오는 데 그쳤다면, 센트 럴파크 ‘공모전’에 당선될 수 없었을 것이다. 옴스테드와 복스의 설계안, ‘그린스워(Greensward)’는 어마어마한 토목 공사를 바탕으로 지어졌을 뿐 아니라 센트럴파크 공원위원회가 1857년 공모전 을 개최하며 내건 여덟 가지 필수 조건을 맞춘 결과다. 여덟 조건은 다음과 같다.(각주 3) 첫째, 공원법에 따라 정해진 약 1,500,000불의 공원 조성비에 대한 구체적 지출 계획 둘째, 59번가와 106번가 사이 동쪽과 서쪽을 연결하며 공원을 가로지르는 4개 이상의 도로 셋째, 20~40에이커 사이 규모의 연병장과 관객들이 편히 관람할 수 있는 편의시설 넷째, 각각 3~10에이커 규모의 놀이터 3개 다섯째, 전시, 콘서트 등 행사를 열 수 있는 건물을 위한 부지 여섯째, 대규모 분소 1개소와 전망대를 위한 부지 일곱째, 2~3에이커 규모의 화훼 정원을 위한 부지와 그것에 대한 설계 여덟째, 물이 흐르는 공간을 남겨두어 겨울에 스케이트를 탈 수 있게 만들 것 특히 흥미로운 지점은 온갖 ‘도로’의 얽힘이다. 21세기 현재의 대한민국에 사는 우리도 ‘교통’ 과 ‘체증’에는 한없이 민감하지 않는가. 마차가 대규모 보급되어 속도를 즐기는 방법을 깨우치고 있었던 옴스테드의 시대 역시 마찬가지였다. 실제로 숲속 산책로를 그대로 떠다 만든 듯 거미줄처 럼 얽혀 있는 램블스(Rambles)의 보행로 네트워크와 그것을 둘러싼 마차로(Carriage Road)를 보면, 센트럴파크에서 (적어도 옴스테드가 바라봤을 때) 가장 중요한 프로그램은 단연코 산책과 드라이브였다. 그리고 시야에서는 보이지 않도록 지형을 뚫고 만든 횡단로(Transverse Road)는 분명 공원 조성으로 인해 맨해튼의 동서가 나뉘는 사태를 걱정하고 있던 공원위원회의 마음에 쏙 들었을 것이다. 19세기 북미에서 옴스테드, 약간의 살 붙이기 사실 옴스테드의 ‘동화 같음’은 그의 정치사회적 사상과 태도에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는 자신의 신념을 위해 정말 많은 것―자기 자신뿐 아니라 가족의 희생도―을 희생하고 바친 사람이다. 이런 점은 그의 미국에 대한 애정과 민주주의에 대한 글에서 엿볼 수 있다. 사실 공원에 대한 수많은 글의 시작은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간다. 노예 제도에 대한 그의 글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북미의 19세기는 쳇바퀴 돌아가듯 새로운 문물과 발견이 연이어 이어지는 시기였다. 1840년 대에 텔레그램이 생겨났고, 1820년대 말부터 동부를 중심으로 시작된 철도 건설에 박차가 가해 져 1850년대에는 이미 9,000km 이상의 철로가 깔려 있었다. 철로가 깔리면서 산업이 급격히 발 전했고 남부와 북부의 갈등도 점차 커져 결국 남북전쟁(1861~1865)으로 이어졌다. 남북전쟁이 발발한 원인인 노예 제도에 대한 첨예한 대립은 옴스테드의 공원론에서 남다른 위치를 차지한다. 아직은 공원의 ‘공’ 자도 모르던 시절, 옴스테드는 남부를 여행하며 「뉴욕타임스」 에 이른바 ‘노예주(Slave States)’에 대한 글을 기고했다. 그는 노예 제도에 반대했지만, 동시에 남부가 반대하는 북부의 자본주의적 이기심과 도덕적 해이를 경계하기도 했다. “이처럼 저질스럽고 물질적이고 이기적인 목표를 지닌 정치가와 (남부의 가장 훌륭한 신사조차도 여기 포 함된다) 저질스럽고 편협하며 당에 종속된 물질적인 사람들로 (북부에서 흔히 보인다) 우리의 민주주의 국가관이 대체 어떤 성공을 거둘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우리는 어떤 사람들이 될 것이란 말인가 ……. 우리에게는 어렵고 낮은 계층에 있는 사람들이 스스로 자신의 위치를 높일 수 있도록 더욱 직접적으로 지원할 기관이 필요하다. 우리의 교육관은 확장되어야 하며 이런 비참하고 그저 평범 할 뿐인 교육 기관보다 훨씬 많은 것들을 포괄해야 한다. 힘들고 약한 자들을 그저 내버려 둘 수 만은 없다.”(각주 4) 옴스테드는 정부가 나서서 노예 제도를 근절시킬 것이 아니라 교육과 계몽을 통해 각 지주가 직접 노예를 해방해야 한다고 외쳤다. 즉, 개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되 올바른 해방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민주주의적 이상주의자를 그대로 본뜬 것 같은 사람이 공원의 아버지라 불리는 옴스테드이니, 우리가 무의식중에 공원을 무언가 ‘좋은 것’으로 생각하게 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에피소드 2 2024년 서울, 여기 30대 “뭐지?” 싶을 제목을 5초만 참고 넘어가 보자. 필자는 고등학교 2학년 수업 시간에 ‘나의 인생 그 래프 그리기’ 과제를 한 적이 있다. 고등학교 시절 기억이 거의 그렇듯 완전히 잊고 지냈다.몇 년전 분가를 핑계로 대대적인 짐 정리를 하다 이 그래프가 굴러 나왔다. 세상에나, 모든 것이 기억났다. 혹독한 청소년기를 보내서인지 냉소를 달고 살던 고등학생 필자는 10분 만에 뚝딱뚝딱 단순하 디 단순한 그래프를 완성했었다. (물론 혹독함은 나보다는 부모님에게 해당하는 표현일 것이다. 지면을 빌려 당시 부모 님의 고생에 고개를 숙인다) 만 18세에는 대학을 졸업하고, 24세에는 취직을 하며, 35세에는 박사학위 를 받고 본격적인 사회생활을 시작한다고 적었다. 70대 이후로는 ‘17세의 내가 결코 알지 못하는 단계니 적지 않겠다’라며 패기 넘치는 설명과 함께 수업 시간에 발표했었다. 자잘하게 삶의 크고 작은 목표 지점을 표시해가는 친구들을 보며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다 바뀔 걸 뭘 저렇게 귀찮게 하나하나 적고 앉았을까’하고 뚱하게 앉아 시간을 때운 기억도 난다. 박사 논문을 본격적으로 쓰 기 직전 ‘발굴된’ 이 그래프는 놀랍게도 내 인생이, 적어도 지금까지는, 어이없을 정도로 일관적으 로 진행되고 있음을 잘도 보여줬다. 말 그대로 18세에는 대학을 마쳤고, 24세에는 첫 직장에 들 어갔으며, 35세에는 박사학위를 받고 말았으니 점쟁이조차 혀를 내두를 계획 중심의 인간이 여기 있다. 지금, 이 순간 누군가 내게 존경하는 인물을 묻는다면 주저 없이 옴스테드가 튀어 나올 테다. 그는 조경의 아버지라서? 아니다. 그가 그린 인프라를 사실상 시작했기 때문에? 절대 아니다. 그 가 지금의 내 나이, 35세에 센트럴파크의 조경가가 됐기 때문이다. (물론 19세기 중반에 35세라는 나이는 지금의 헛-35세와는 결이 다르다. 1850년대 북미의 평균 수명이 35.1세였는데, 영유아 사망률이 워낙 높은 시기라고 해도 결코 젊 은 나이라고만 보기 힘들다)(각주 5)박사학위를 연구 분야의 ‘자격증’이라고 부른다면, 필자는 이제야 막 자격 증을 따냈으니 앞으로 갈 길만 구만리다. 옴스테드가 35세에 비로소 ‘자격’을 획득했다는 사실은 20~30대 대부분을 연구실에서 보내며 (물론 매우 즐겁게 보냈다) 연구자 자격을 따기 위해 노력한, 그리 고 노력하고 있는 나와 내 동료들에게 약간의 편안함을 준다. 당장 내년의 커리어를 고민하는 모 든 밀레니얼에게 똑같이 다가오는 사실 아닐까. 이것이 어른을 위한 동화가 아니면 무엇일까. 다만, 독자들을 위한 옴스테드의 경고문 다만,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 또 옴스테드가 쓴 다른 글을 읽으며 경탄을 금치 못하는 모두들, 경 계하시길. 그가 조경가이기 전에 작가였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옴스테드가 직접 쓴 1차 사료를 읽고 있노라면 그 유려한 문장에서 연상되는 꿈 빛 같은 민주주의 사상에 쉽게 빠져들게 되기 마련이다. 옴스테드가 뉴욕 시민의 미래를 위해 센트럴파크를 계획했다는 데 이견은 없다. 하지만 그 속 에는 엘리트주의적 속성, 교육과 계몽을 통해 바람직한 사고를 지닌 미국의 시민을 키워야 한다는 의지, 우수한 리더십을 통해 도시에서 시민의 행동을 제어하고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는 믿음이 존재하고 있다. 엘리트주의자의 전형 같은 모습이다. 실제 센트럴파크 조성 이후 공원에서 의 수많은 ‘규정’이 만들어졌던 것이 이 연장선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그랬기 때문에 이후 명상을 위한 센트럴파크가 아닌 화려하고 풀어지기 좋은 놀이공원 코니 아일랜드(Coney Island)가 훨씬 더 많은 인기를 누릴 수 있었겠지. 앞으로 몇 회에 걸쳐 옴스테드의 1차 사료가 여러 차례 등장할 예정이다. 날카롭고 뼈를 치는 비판적 사고 회로를 최대한 돌려 소개해드리니, 이 글을 읽는 분들 역시 예리하게 뒤통수를 노리 는 갈매기의 눈빛으로, 비판적으로 읽어주기를 바란다 *각주 정리 각주 1.혹시나 하는 마음에 짚고 넘어간다. 옴스테드 아카이브 내용을 바탕으로 필자가 상상력을 보탰다. 19세기 북미 신사인 옴스테드는 이렇게 경박한 말투를 쓰지 않았다. 각주 2. 국가통계포털 KOSIS “도시화율”, 2022년 9월 업데이트. kosis. kr/index/index.do. 각주 3. 센트럴파크 공원위원회, “Document No. 8, Friday, September 11, 1857”, Documents of the Board of Commissioners of the Central Park, for the Year ending April 30, 1858(1858년 4월 30일로 끝나는 회계 연도에 대한 센트럴파크 공원위원회 의 결 문서집), New York: New York City Central Park Board of Commissioners. 각주 4. Frederick Law Olmsted, “Letter to Charles Loring Brace”, in The Papers of Frederick Law Olmsted: Volume 2. Slaver y and the South, 1852~1857, Charles Capen McLaughlin and Charles E. Beveridge, eds., Baltimore: The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1981, p.234. 괄호는 옴스테드가 적은 그대로 옮겼다. 각주 5. Human Mortality Database, 2023. www.mortality.org/ Home/Index 신명진은 뉴욕대학교에서 미술사를 공부한 뒤 서울대학교 대학원 생태조경학과와 협동과정 조경학전공에서 석사와 박사를 마친 문어발 도시 연구자다. 현재 예술, 경험, 진정성 등 손에 잡히지 않는 도시의 차원에 관심을 두고 서울대학교 환경계획연구소의 선임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도시경관 매거진 『ULC』의 편집진이기도 하며, 종종 갤러리와 미술관을 오가며 온갖 세상만사에 관심을 두고 있다. @jin.everywhere
  • [에디토리얼] 열한 번째 1월호
    제가 쓰는 121번째 에디토리얼입니다. 편집주간이라는 과분한 역할을 맡은 지 작년 연말 호로 10년을 넘어선 것이죠. 이번 『환경과조경』이 2014년 리뉴얼 이후 열한 번째 1월호인 셈입니다. 매년 1월호를 마감하는 시점이 되면 여러 가지 감정이 교차합니다. 새해의 편집 방향을 세우고 새 콘텐츠를 기획하며 새로운 각오를 다지기도 하지만, 안개 자욱한 풍경 속을 걷는 막막한 느낌에 휩싸이기도 하죠. 그럴 때면 늘 샛노란 표지의 309호(2014년 1월호)를 펼칩니다. 박명권 발행인 체제로 옷을 갈아입고 『환경과조경』의 새로운 시작을 선언한 309호. 2024년을 열며 혁신의 열망 가득한 10년 전 잡지를 다시 꺼내 읽습니다. 『환경과조경』은 “조경에대한 사회적 관심과 대중적 수요가 증가하고 일상 속의 조경 문화는 풍요로워졌는데도 정작 제도권 조경은 위기인 역설적 풍경을 정면으로 마주해야” 하며, “조경 저널리즘의 지향과 좌표를 설정함으로써 부유하는 한국 조경을 교정해야 한다”는 10년 전 다짐을 다시 불러냅니다. 새 발행인과 편집진, 리뉴얼 T/F팀이 4개월간의 리뉴얼 프로젝트를 통해 세운 그때 그 지향과 좌표는 지금도 유효합니다. “『환경과조경』은 ‘조경 문화 발전소’를 꿈꾼다. ‘한국 조경의 문화적 성숙을 이끄는 공론장’, ‘조경 담론과 비평을 생산하고 나누는 사회적 소통장’, ‘동시대 세계 조경의 보편성과 지역성을 수용하고 발굴하는 전진기지’, 이 세 가지 비전을 지향한다.” “새로운 『환경과조경』은 ‘매달 첫날을 기다리게 하는 잡지, 받자마자 소중한 두 시간을 빼앗는 잡지, 한 달에 세 번은 다시 펼쳐보는 잡지, 과월호도 다시 뒤적이게 하는 잡지’가 되기 위해 매호, 늘, 새로운 출발점에 설 것이다.” 309호 에디토리얼의 마지막 문단입니다. 10년이 흘렀지만, 2024년의 모든 호 모두 그런 내용과 형식을 갖춘 잡지가 될 수 있도록 매달 힘써보겠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풍성한 피드백을 초대합니다. 2024년의 문을 여는 이번 호는 본지가 주최한 ‘제6회 젊은 조경가’ 수상자 김영민(서울시립대 조경학과 교수) 특집호입니다. 한국 조경계에서는 매우 드물게 교수와 실무 조경가를 겸업하고 있는 김영민은 설계와 이론을 병행해온 이채로운 이력의 소유자이기도 합니다. 이번 특집에는 그의 에세이 ‘모순지도’와 작품들, 김모아 기자의 인터뷰, 동료 김아연 교수와 이남진 소장의 글을 담았습니다. 여기저기 흩어진 김영민의 조경 작업과 조경에 대한 생각을 그러모아 한눈에 조감하는 기회가 되기를, 또 그의 작업을 더 조밀한 비평의 장으로 불러내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번 호부터 새 연재물 ‘밀레니얼의 도시공원 이야기’를 올립니다. 환경과조경 주최 ‘2016 조경비평상’ 수상자이자 본지 지면의 번역자로 활동해온 신명진 박사(서울대 환경계획연구소)가 매달 다채로운 공원 담론을 펼쳐갈 것입니다.
  • [풍경 감각] 새해 목표
    새로운 해가 돌아왔다. 달력을 걸고 올해 목표를 꾸린다. 우선 반쯤 써 둔 신간 원고를 완성할 것이다. 생각해 둔 차기작도 투고해야지. 재미있는 프로젝트 의뢰가 들어오면 좋겠고, 늘 미뤄두었던 두껍고 어려운 책도 완독하고 싶다. 수영은 연수반으로 올라갈 정도로 실력이 늘었으면 하고, 멍하니 유튜브 쇼츠와 인스타그램 릴스를 보며 시간을 보내지 않기로 다짐한다. 새로운 일 년이라는 시간이 두둑한 지갑처럼 든든해서, 정말 해낼 수 있는 목표와 실패할 게 뻔하지만 어쩐지 할 수 있다고 믿게 되는 희망사항의 경계가 흐려진다. 무엇이든 정말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 얼었던 땅이 풀리고 젖은 흙냄새가 나기 시작하면 지갑을 채웠던 이 기분도 모두 써버렸을 것이다. 그리고 올해도 또다시 같은 돌부리에 걸려 무릎이 깨지며 조금씩 낡아갈 것이다. 여태까지 보내온 수많은 새해들처럼. 희망에 부풀어 적었던 올해 목표들을 모두 지워버리고, 대신 한 줄을 적는다. 비슷하게 좋고 나빴던 여러 해 동안 곁에 있어 준 친구들을 닮아보자고. 지겹도록 같은 돌부리에 또다시 넘어진 친구를 울지 말라고 다그치거나 빨리 일어나라고 잡아서 끌지 않기로. 대신 그저 같은 자리에 털썩 앉아 같은 풍경을 바라볼 것. 친구들이 여러 번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이 또한 신년 기분에 취해 적은 희망사항일지도 모르지만 올해는 다르길 바란다.
  • [제도가 만든 도시] 도시 공간의 생로병사
    건축물을 비롯한 도시를 구성하는 공간 요소들은 새로 만들어지면 역사 유적이 아니어도 내구재로서 일반적으로는 수십 년에서 백 여 년, 꽤나 긴 수명을 갖는다. 그러나 물리적으로 노후하든 사회적으로 노후하든, 이런 저런 한계에 다다라 종국에는 해체되고 새로운 것으로 대체된다. 우리 몸의 세포가 우리가 태어나 수명이 다할 때까지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새로 만들어지고 죽는 것과 같다. 도시 공간 요소가 새로 태어나고 쓰이다 낡고 죽는 생로병사, 혹은 신진대사는 당연하고 자연스러우며, 그 도시의 긴 역사에서 끊임없이 일어난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가 건강한 도시 공간의 생로병사 주기일까. 즉, 건물이 어느 정도 노후했을 때 다시 새로 지어야 할까. 한국의 도시 건조 환경 생로병사 주기가 짧은 것은 분명하다. 아파트는 10여 년만 지나도 ‘구축’이라는 오명이 붙고, 30년도 지나지 않아 재건축이 거론된다. 아파트보다 시공 수준이 낮고 당연히 시공비도 낮은 저층 주거지 주택들은 대사주기가 더 짧아 20년도 안 되어 밭을 갈아엎고 새 작물을 심듯 새로운 주택 유형으로 재건축되곤 한다(그림2). 연말 예산 낭비의 대표격으로 공격받는 보도블록은 수년마다 한 번씩 파헤쳐진다. 왜 이렇게 짧은 것일까. 지난 반세기 급격한 경제 성장과 사회 변화의 궤적에서 우리 사회의 공간 수요도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빠르게 바뀌었기 때문이며, 동시에 공간을 만드는 계획 수준과 시공 수준 모두 급격히 발전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미 만들어진 공간을 고쳐 쓰는 정도로는 한계가 많다. 또한 새로 만드는 비용, 즉 공사비가 상대적으로 낮게 유지된 점도 생로병사 주기를 줄이는 요인이다.(각주 2) 돈과 시간을 더 들여 길게 쓰도록 만들지, 적게 들이고 자주 교체할지는 우리 사회가 공유하는 건조 환경의 적정 수명이라는 기준에 영향을 미친다. 도시 공간의 삶과 죽음, 그 임계점 도시 공간을 이루는 수많은 물적 요소들이 태어나고 죽는 생로병사가 반복되는 가운데, 어떤 한개체가 오랫동안 존재하다 해체되고 다시 짓기로 결정되는 때는 언제일까. 여러 연구자가 이를 수학적으로 또는 통계적으로 설명하고 확인하는 노력을 기울여왔다. 아주 간략하고 거칠게 표현하자면, 도시 공간의 삶과 죽음의 임계점은 현재 상태의 공간에서 얻는 수익이 (재개발에 들어가는 비용을 고려하고도) 재개발 후 기대되는 수익과 같아 질 때다.(각주 3) 여기서 수익은 현재의 사용 가치에 기반을 둔 임대료라고 볼 수 있다. 물론 현실에선 부동산 가치 상승에서 오는 수익이 더 클 수 있다. 비용은 기존 공간을 해체하고 새로운 공간을 만드는 건설비가 기본이지만, 재개발을 결정하고 진행하는 모든 단계의 지연에서 비롯되는 ‘전환 비용’(각주 4)을 무시할 수 없으며 예측하기도 어렵다. 결국 현재의 사용 가치가 공간의 노후로 인해 얼마나 감소하는지, 재개발 과정에 들어가는 직간접 비용이 얼마나 높은지, 그리고 새로 만들어진 공간이 창출하는 사용 가치가 얼마나 높은지가 도시 공간의 생로병사 속도를 결정하게 된다. 이러한 도시 공간의 삶과 죽음의 구조 안에 우리의 제도가 어떻게 개입해 도시의 생로병사를 조절하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환경과조경429호(2024년 1월호)수록본 일부 **각주 정리 1. 제인 제이콥스, 유강은 역,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 그린비, 2010. 2. 최근 공사비 상승은 우리 도시의 생로병사와 신진대사가 일어나는 전제 조건을 바꾸고 있다. 3.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자율을 고려한 공간 운영 이익의 순현재 가치와 재개발하여 얻게 되는 이익의 순현재 가치가 같아질 때다. 브뤼크너(Brueckner, 1980), 휘턴(Wheaton, 1982) 등 도시 성장 모형 연구 이론에 기초한다. 또 다른 재개발 결정 이론인 닐 스미스(Neil Smith, 1979)의 지대차 이론(Rent-gap theory)에서도 현 지대와 재개발 후 잠재적 지대 간의 격차가 커질 때 젠트리피케이션을 촉발하는 도시 공간의 물리적 재투자가 발생하는 조건이 된다고 설명한다. 4. 박성식, 『공간의 가치』, 유룩출판, 2015. 유영수는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이로재와 기오헌에서 건축 실무를 경험했다. 런던 정치경제대학교에서 도시 디자인과 사회과학 석사과정을 마치고 돌아와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며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병행했다. 현재는 인천대학교 도시건축학부에서 법, 제도, 현대 도시설계 이론, 스튜디오를 가르치고 있다. 건축과 도시를 아우르는 스케일에서 개별적인 공간 현상과 법제 사이의 관계를 연구하고, 계획과 디자인의 역할을 확장하기 위한 이론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 [어떤 디자인 오피스] 기술사사무소 예당 아름다운 이상을 꿈꾸며 마음으로 느끼는 공간을 만들다
    이런 오피스 예당(藝堂), 그 이름 18년 전 사무실을 열 때, 다들 그렇듯 회사 이름을 고민했다. 예당이라는 다소 전통 음식점 같은 분위기의 이름은 조금 구태의연해 보였지만, 예술의 전당의 약자로 재주藝를 가진 사람들이 꿈을 펼칠 수 있는 장堂이란 뜻을 담았다. 프로젝트마다 장인의 손길이 스미기를 기대하며 작은 시작을 알렸다. 초창기에는 디자인보다는 작품의 완성도를 지향했는데, 언제부턴가 먹고 살기 위한 설계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자문을 하게 된다. 사무실을 운영하면서 욕심과 현실의 사이에서 매번 고민하지만, 결국 생존이 앞선다. 잘한다는 소리보다 못한다는 소리는 절대 듣지 말자고 스스로 되뇌며 살아왔다. 클라이언트에 대한 책임과 신뢰에 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물론 확신할 수는 없겠지만 어느덧 중견이라는 말을 듣는 자리에 왔다. 나보다는 젊은 소장들이 자리를 이어주면서 조금 더 발전적인 모습으로 나아가리라 기대한다. 늘 그렇듯 초심을 잃지 않는 예당이기를 바라면서. (오두환 대표) 애증의 시간 조경설계를 시작한 지 벌써 20년이 다 되어간다. 그 시간 대부분을 예당에 머물렀다. 예당은 내게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준 곳이다. 조경설계를 처음 시작하고 컴퓨터 앞에서 열심히 도면 작업을 했던 나에게 종이와 펜을 주었다. 디자이너로 첫 발걸음을 뗄 수 있게 해줘서 고맙지만 때로는 너무 고통스럽고 힘든 시간이었다. 수많은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마다 디자인을 고민하느라 잠을 제대로 이룰 수 없었고, 때로는 무력감에 빠지기도 했다. 하지만 하나둘 프로젝트를 완성할 때마다 느끼는 행복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런 시간을 이겨내며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건 모두 곁에 있었던 동료들 덕분이었다. 오래도록 함께 일할 수 있는 오피스를 꿈꿔왔다. 한때 매일 반복되는 야근과 철야의 삶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일상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오피스를 만들고 싶었다. 다행히 대표님의 이해와 직원들의 노력으로 과거와 다르게 많은 것들이 변했고 지금도 변화하고 있다. 이제는 모든 직원의 출퇴근길 발걸음이 가볍고 즐거운 행복한 오피스를 꿈꾼다. 함께하는 대표님, 직원들에게 감사하고 새롭게 맞이할 미래의 직원들과 더 나은 행복한 오피스를 만들어 나가고 싶다. (김종민 소장) 예술의 전당 “예당 뭔가 설계 회사 이름치고는 촌스러운데, 무슨 뜻이죠? 진짜로 ‘예술의 전당’ 뭐 그런 건 아니죠?” 대표님은 맞다고 했다. 그렇구나! 예술의 전당이구나. 2013년에 입사해 10년 넘게 매일 예술의 전당에 다니고 있다. 턴키, 기술제안, BTL, CMR, 현상설계, 제안설계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치열하게 하다 보니 예술을 지향하는 줄은 뒤늦게 알았다. 턴키 위주로 하던 시절엔 별명이 합사돌이었다. 분명 기능에 충실한 설계를 주로 해왔는데 살다보니 자연스럽게 예술적 감각이 필요한 디자인까지 총괄하는 위치에 왔다. 머릿속에 쌓아놓은 폐품들을 꺼내 좋은 디자인이라 말할 때 지지해 주는 동료가 없었으면 아마 안됐겠지. 편한 분위기, 약간 느슨한 출근, 긴 점심시간, 하루 종일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 조잘조잘 나누는 잡담 등 예당을 소개할 수 있는 것이 여러 개 있지만 하나를 꼽자면 서로에 대한 강한 믿음이다. 물론 예술을 기반으로 하는. (박태윤 이사) 즐거운 출근길 누군가 나에게 ‘당신의 출근길은 행복한가요?’라고 묻는다면 당연히 즐겁다고 답할 것이다. 출근길에 오늘은 동료들과 어떤 이야기를 나눌지 혹은 어떤 재미있는 대화를 나눌지 생각하면 지루하고 힘든 출근길은 즐거운 시간이 된다. 물론 출근 후 힘든 일이 주어질 때도 있지만 나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일하는 동료들과 함께라면 오늘도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러한 생각을 할 수 있는 건 예당의 좋은 분위기와 좋은 팀워크가 있기 때문이다. (오재선 과장) 해피 해피 예당 신입 때부터 현재까지 모두가 즐겁게 일하는 곳이다. 예당은 내가 머무른 5년 동안 항상 웃음이 가득하고 서로 칭찬이 넘쳐나는 사무실이었다. 그래서 의견도 자유롭고 편하게 낼 수 있고 다양한 피드백이 돌아와 많이 배울 수 있었다. 매일 점심시간 다 같이 모여 보드게임도 하고 수다도 떨고 가끔은 각자 낮잠도 자고 그만큼 화기애애한 예당. 지금처럼 행복하고 재미있게 일하는 멋진 사람들이 되길 바라요. (유다성 과장) 시너지 무언가를 창조하는 직업 특성상 생각과 표현의 방식에 있어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이 예당의 가장 큰 장점이다. 동료들과 함께 대화하며 나누던 고민은 성취를 함께 기념할 수 있는 긍지를 주기도 한다.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나누는 대화는 즐거움과 에너지를 만드는 동시에 일할 때 시너지를 발휘한다. 이러한 시너지가 모여 우리가 만든 공간 속에 있는 모두가 또 다른 시너지를 만들어 삶에 활력을 불어넣기를 바란다. 예당에 새로운 시너지를 부여하는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다. (박채연 과장) 내가 좋아하는 우리의 바이브 사무실에 처음 들어서며 생각했던 건 ‘오 여기 분위기 좋은 걸’이었다. 회의실에 둘러앉아 웃고 있는 사람들과 면접 때 소장님의 재치 있고 진심 어린 상담(?)에 느낀 감정이랄까. 듣고 싶은 노래로 하루를 맞이하고, 편안한 분위기 속에 업무를 시작한다. 머리 식힐겸 산책이나 서점을 종종 가는데 서로의 일상과 사색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이다. 함께하는 영감의 답사, 국내외를 누비는 즐거운 워크숍은 자유로운 회사 분위기와 유연한 사고, 각자의 책임감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 편안함을 주는 분위기와 함께하는 어벤져스 동료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정예시 대리) 간식이 전부는 아니에요 예당으로 이직했을 때 첫인상은 ‘사람들 분위기가 참 밝다’였다. 어떤 일이든 반복되다 보면 지루해질 수 있지만 다양한 사람들과 밝은 분위기 속에서 일하다 보니 반복되는 일상에서도 틈틈이 재미를 찾아가고 있다. 느긋하게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시면서 다 같이 게임을 하고 웃다 보면 밝은 에너지가 생기는데 ‘그럼 오후에도 잘해보자’라는 마음이 든다. 일하면서 먹는 맛있는 간식들도 좋은 복지 중 하나다. 앞으로도 다양한 걸 배우고 함께 웃으면서 즐거운 날을 만들어 가고 싶다. (조혜빈 대리) 첫 번째 스테이지 올해 2월 대학 졸업 후 3월부터 예당과 함께하게 됐다. 예당에서의 시간이 누적되면서 조경설계를 즐겁게 배우는 지금, 하나둘 나만의 루틴이 생기고 있다. 매일 아침 프로젝트를 마주하고 어제 내가 못 했던 프로세스를 해결했을 때 얻는 소소한 만족과 성취에서 출발해 점심에는 무엇을 먹을지 고민한다. 이 루틴의 안정감 속에서 쌓이는 새로운 프로젝트 경험은 조경 디자이너라는 목표를 향한 좋은 양분이 된다. 반복되는 하루 속에 성공도 실패도 있지만 좋은 선임들 덕분에 ‘예술의 전당’이라는 스테이지에서 업무와 생활 전반에 걸친 값진 경험을 배워가고 있다. (김인 사원) 예당의 봄 입사할 당시만 해도 따뜻한 봄이었는데, 어느덧 추운 겨울이 성큼 다가왔다. 정신 차리고 보니 벌써 9개월을 보내고 한 해의 끝을 달려가고 있는 셈이다. 학부생활과 다른 새로운 실무 환경에서 모르는 것도 많았고 배워야 할 내용은 끝이 없기에 매일이 녹록치 않았지만, 다정하고 좋은 선임들 덕분에 차분히 적응해 나가고 있다. 점심시간에 같이 모여 즐겁게 보드게임을 하는 모습만 봐도 우리 회사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예당의 두 번째 봄을 맞이할 준비를 하려고 한다. (윤병훈 사원) 이런 프로젝트 디에이치 아너힐즈 디에이치 아너힐즈는 예당에서 진행해온 공동주택 설계의 틀을 깬 프로젝트다. 이전까지 공동주택 프로젝트는 작품으로서의 디자인 가치보다는 각종 법규와 주민들의 보편적인 니즈를 충족시키는 정도로 계획했다. 이와 달리 아너힐즈는 공동주택의 상품성과 디자인 가치를 함께 구현하기 위해 노력한 프로젝트다. 현대건설이 기존 브랜드 ‘힐스테이트’의 프리미엄 브랜드 ‘디에이치’를 새로 만들며 강남권 최고급 공동주택을 구현하기 위해 처음 진행한 프로젝트라 오랜 기간 협업했다. 단지 전체를 하나의 작품으로 생각한 ‘현대미술관’ 콘셉트를 통해 조경설계의 필수 요소인 수목, 시설, 공간을 명작으로 해석했으며, 대모산과 개포근린공원의 자연과 강남권 도시의 고급스러운 이미지의 조화를 꾀했다. 공동주택을 단순히 기능적, 이용적 측면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디자인의 미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콘셉트 정립부터 공간의 설계, 작은 디테일까지 설계사무소뿐만 아니라 시공사와 국내외 작가들의 도움과 노력으로 완성한 프로젝트라 더욱 기억에 남는다. 울산 남구 B-07 재개발정비사업 코로나19로 인한 변화를 겪던 2021년, 미 연준의 양적 완화를 계기로 세계적으로 유동성이 폭발하기 시작하고, 전국 각지의 재정비·재건축 사업이 활발히 이뤄졌다. 경남의 대표 부자 도시 중 하나인 울산의 남구도 예외일 수 없었고 우리도 재개발정비사업의 설계를 맡게 됐다. 도로로 분절된 두 개의 필지 중심에는 기부채납 예정인 공원이 위치해 있어, 크고 화려한 유선형 메인 동선으로 대단지를 하나로 통합해 기능적, 심미적 연출 효과를 강화하고자 했다. 태화강의 크게 굴곡진 물의 흐름을 디자인 모티브로 설정하고 다양하고 과감한 물의 사용과 공간의 비례를 강력하게 설계에 반영했다. 극단으로 치닫는 더운 여름에 설계해서 그랬을까. 물의 활용에 매우 집착했던 것 같다. 송도 마스터플랜 송도 프로젝트는 오랜 기간 전체 마스터플랜부터 단지별 설계, 완공(힐스테이트 레이크 송도 1~3차)까지 인연이 깊은 프로젝트 중 하나다. 기존 송도 신도시의 확장을 위한 송도 마스터플랜 프로젝트는 서해와 서해대교, 송도 워터프런트 호수와 이미 조성된 공동주택, 학교 등 주변의 다양한 경관 요소와 도시 인프라와 관계성 측면에서 건축 부문과 이견이 많았다. 결과적으로 서해 쪽 통경축 형성, 각 인프라와의 에지 프로그램 설정, 블록별 아이덴티티 등 보편적인 개념으로 정리됐다. 전체 마스터플랜을 완성하고 그 안에 단지를 설계하고 완공까지 하며 처음과 끝을 지켜본 프로젝트라 의미가 크다.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대규모가 아니라서 소개를 하는 것이 맞는지 고민한 프로젝트다. 기술제안으로 당선된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은 그동안 진행했던 기술제안 중 규모는 작지만 가슴이 뜨거워지는 프로젝트 중 하나다. 임시정부 설립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조성한 임시정부기념관에는 대단한 조경 공간이나 자랑할 만한 디자인 요소가 있지는 않다. 다만 역사적인 임시정부기념관 건립에 동료들과 함께했다는 것에 의의를 두고 싶다. 옥상, 벽면, 건축물 기둥, 포장 패턴 등 디테일에 집중할 수 있었고 애국심 가득한 동료들의 다양한 디자인을 볼 수 있었다. 시간적, 공간적 여유가 매우 부족해 많은 것이 반영되진 않았지만 진행하면서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국방대학교 이전 사업 국방대학교 이전 사업은 개교 60주년을 기념해 서울 은평구 수색동의 노후한 기존 학교를 논산으로 이전하는 턴키 프로젝트다. 국가적으로 의미 있는 사업이었기에 합동 사무실에서 계룡건설을 비롯해 모든 공종과 전 직원이 열심히 수행했다. 군 교육기관의 특성상 일반 학교와는 다르게 학교, 주거, 종교, 공원, 체육, 군사 시설 등 다양한 시설이 배치되기 때문에 각시설의 니즈를 충족시키고 시설 간 연계성을 찾기 위해 고민을 많이 했다. 다소 위압감이 느껴지는 장군들, 꼼꼼한 CM단, 동네 주민들의 텃세 등 여러 요구 사항을 수렴하느라 쉽지 않았다. 이전 부지의 개발로 인한 기존 자연의 훼손을 고려하고 기존 생태계 보존을 위해 낮에는 주변 숲, 기존 물길, 대상지 내 저류지 현장 조사를 수없이 하고, 밤에는 이러한 것들을 보존 및 활용하기 위한 친환경적 설계 기법을 공부하는 데 많은 시간을 들였다. 전 직원이 밤낮으로 열심히 한 결과로 다행히 당선돼 국가 사업에 작은 보탬이 될 수 있었던 의미 있는 프로젝트였다. 전남도립미술관 예당이 계획한 첫 미술관이자 현상설계부터 완공까지 참여한 프로젝트다. 전라남도 영산강과 섬진강 주변의 지문(地文)을 디자인 콘셉트로 남도의 예술과 문화를 담는 공방 개념을 적용했다. 독특한 형태의 건축물을 최대한 강조하고 이용자들의 다양한 행태를 수용하기 위해 중심 공간에 풍요로운 평야를 상징하는 뜰을 조성하고, 가로변으로 일반 시민들의 공공성 확보를 위한 가로공원을 계획했다. 흥미로웠던 점은 대상지 내에 철거 직전의 구 광양역과 연계한 창고를 재활용하는 것이었다. 항상 새로운 공간만 디자인하는 것에서 벗어나 다 쓰러져가는 건축물에 생기를 불어넣는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었다. 현재 광양예술창고라 불리는 이곳은 미술관의 특성을 고려해 공방 개념을 적용하여 리모델링했고 많은 사람이 이용하고 있다. 부산국제아트센터 땅의 에너지는 공원의 역사에서 비롯된다. 부산국제아트센터는 일제강점기 경마장에서 한국전쟁 이후 미군 부대가 점유하고 부산시민의 품으로 돌아오기까지 100년의 기다림 끝에 만들어진 프로젝트다. 기존에 해왔던 공간을 한정하는 디자인에서 벗어나 공간의 형태와 경계 없이 건축물과 하나 되는 디자인을 고민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부산시민공원에 오래도록 뿌리내릴 기억인 ‘어반 루트(Urban Root)’ 개념은 건축물이 한 그루의 나무처럼 도시와 공원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고 수많은 길은 주변의 자연과 시민들을 연결하고 흡수하며 다양한 크기의 프로그램 패치들은 새 로운 생장의 공간이 된다. 추상적 개념을 형태 디자인으로 변경하기 까다로운 프로젝트였지만 새로운 시도가 좋은 경험으로 자리 잡았다. 해비치호텔앤드리조트 제주 첫 번째 6성급 호텔을 지향하면서 지은 해비치호텔은 표선 해변 마을에 위치한다. 제주 중문과 달리 조용한 휴양과 힐링을 테마로 요란하지 않은 차분한 경관을 연출하고자 했다. 전체적으로 단순한 색상과 조형성을 기반으로 시각적 복잡성을 최소화하고 경계를 최소화해서 주변과의 경관적 연계를 도모했다. 호텔 전면 잔디마당과 표선의 바다를 시각적으로 연계하기 위해 전면부를 자동차 도로보다 1.5m 들어 올려 조성했다. 덕분에 도로에 의해서 경관이 단절되지 않고 자연스럽게 바다 풍경이 호텔 로비로 이어진다. 테니스 코트는 1.5m 낮게 조성해 펜스의 노출을 최소화했다. 국내 호텔 중 최대 규모인 아트리움은 규모에 걸맞게 제주 느낌을 살린 대형목을 심고자 했으나 생육 환경을 고려해 여우꼬리야자를 심었다. 다행히 풍부한 녹음을 연출할 수 있었다. 당초 하부에는 다양한 화목과 지피식물을 식재했으나 역시 단일 수종으로 교체해 단순한 경관으로 조성됐다. 내부의 시설은 조경과 인테리어의 협업으로 시설과 바닥 패턴까지 현장에서 도면 작성 및 샘플 시공을 통해 디테일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었다. 기술사사무소 예당(Yedang)은 조경설계를 통해 보다 나은 미래의 삶을 만들어가는 것을 목표로 2006년 설립됐다. 설계 구성원 개개인의 생각을 존중하고 타 분야와의 유기적인 관계를 지향하며 주거, 공공, 호텔, 리조트 등 공간 설계부터 경관 설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www.yedangla.com
  • [밀레니얼의 도시공원 이야기] 돌아보면 공원이 있었다
    에피소드 1 조경학 전공자가 아니고서야 도시 인프라의 일종이라 할 수 있는 ‘공원’을 그 자체로 들여다보는일은 거의 없다. 일상의 한 조각, 매일 지나가는 하루의 어떤 배경. 그래서인지 조경학과로 넘어오기 전 내가 공원을 특정한 공간이자 장소로 인지한 날은 매우 뚜렷하게 남아 있다. 2013년 봄, 뉴욕 하이라인으로 석사학위 논문을 쓰겠다고 마음먹은 뒤 계획서 초안을 들고 지도교수를 찾아간 어느 오후. 약 한 시간에 걸쳐 좀 더 재미있는 연구가 될 만한 주제로 다시 가져오라는 조언을 듣고 발걸음도 무겁게 학교 건물을 나왔다. 지난 두 달간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했건만, 한숨 가득 꿉꿉한 기분으로 집으로 향하던 발걸음을 일부러 센트럴파크로 돌렸다. 80번가 인근 게이트를 넘어 작은 소로를 따라 15분을 걷다 보면 터틀 연못(Turtle Pond)이 나온다. 허벅지까지 오는 낮은 펜스가 있는 명상 공간으로 그 용도가 명확히 정해져 있다. 센트럴파크에는 여덟 개 명상 공간이 있는데, 활동적인 프로그램으로 촘촘히 짜인 공원의 다른 지역과 달리 휴식을 취하며 주변 경관을 바라볼 수 있는, 공원 초창기 옴스테드의 의도가 남아 있는 지역이다. 펜스를 조심히 밀고 들어가 노트북으로 무거운 가방을 한쪽에 내려놓았다. 잔디밭에 주저앉아 무작정 연못을 한참 바라보다 잔잔한 수면이 지겨워 주변 사람들로 시선을 돌렸다. 사실 이곳은 명상의 공간이기보다는 ‘시끄러우면 안 되는’ 공간이다. 누군가는 책을 한 손에 쥐고 천천히 페이지를 넘기고, 그 옆에 드러누워 낮잠을 즐기는 사람도 있고, 조용히 자기만의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도 있다. 브라운 백에서 조심스레 음료를 꺼내 순식간에 마시고 다시 집어넣는 것을 보니 분명 술이다. 각자의 행동은 다르지만 공통점 한 가지가 있다. 집으로 가는 대신 공원의 이 조용한 공간에서 자신의 시간을 보내겠다고 결정했다는 점. 뒤편 낮은 둔덕 위 이리저리 겹치는 소로에는 사람들이 오가고, 그 사이사이에 깔린 잔디는 공원을 향유하겠다고 결정한 사람들의 임시 거처가 된다. 그 밑으로는 다리 아랫길이 있어 돌벽을 울림판 삼아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사람들을 발견할 수 있다. 오후 늦게 집에 돌아와 노트북을 펴 석사학위 논문 계획서 파일을 새로 열었다. 대단한 발견도, 의미심장한 마음가짐도 없이 무작정 센트럴파크를 주제로 잡았다. 그렇게 내 첫 석사논문을 썼다. 공원, 무엇이 떠오르는가? 이른 새벽 양팔을 열 맞춰 흔들며 공원을 거니는 어머니들, 점심시간 삼삼오오 회사 출입증을 목에 건 채 공원에서 커피를 마시는 회사원들, 자전거 타고 공원을 통해 학원으로 향하는 학생들, 주말이면 으레 손을 꼭 붙잡고 공원을 거니는 예쁘게 차려입은 연인들. 물론 종종 시끄럽고 환경에 저해되는 행동도 목격되지만, 그조차도 일상에서 벗어나 자유를 갈망하는 행위라고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목적이 무엇이든, 공원은 분명 바쁘고 정신없는 도시 일상에서 순간이나마 벗어날 수 있는 공간으로 우리 곁에 존재한다. 우리는 언제부터, 무슨 이유로 도시공원에서 여가를 보내는 것을 ‘자연스러운 행위’로 받아들이게 된 것일까? 그 전에, 도시공원이 대체 왜 우리에게 이렇게 의미 있는 곳이 되었을까? 일련의 질문 끝에 결국 답은 내 자신, 즉 나의 경험과 지금까지의 일상에 놓여 있다는 점을 깨닫는다. 그렇게 시작한 기획이 이 글, ‘밀레니얼의 도시공원 이야기’다. 아파트 공화국의 공원 1988년 9월 제24회 서울올림픽이 서울의 구석구석을 뒤집어 놓았다. 가장 중요한 사건을 꼽아보 자면, 올림픽대로가 뚫렸고, 한강 정비 사업이 진행됐으며, 잠실주경기장이 완공됐을 뿐 아니라 올 림픽공원이라는 대규모 기념 녹지가 문을 열었다. 대한민국에 ‘아파트 공화국’이라는 별명이 따라 오기 시작했고, 아파트 숲에서 태어나 아파트로 은퇴하는 라이프 사이클이 만들어지지 않았던가. 나 자신을 포함, 이 시기에 태어난 대한민국의 밀레니얼은 그 전의 세대와 분명 다른 도시를 경 험했다. 아파트 중심의 도시 구조에서 태어나 그 확장을 지켜보며 자랐고, 여러 신도시의 흥망성 쇠를 지켜보며 도시에 대한 어떤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 그러나 대중매체에서 말하는 대단지 아파 트의 부정적 측면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던 유년 시절을 다시금 생각해보면, 텔레비전 속 ‘아파트 112 perspective 공화국’과 내가 살았던 대단지 아파트 사이에는 분명한 구분이 있었다. 결국 이 아파트 공화국에 살아가던 내 어린 시절이 그렇게 나빴던 것만은 아니었다. ‘아파트 공화국’ 서울과 내가 설던 서울은 무엇이 달랐을까? 지금도 콘크리트 숲을 사랑하는 조경 이론 연구자로서 생각해 보건데, 그 간극에는 ‘조경’이 존재했다. 미디어에 노출되는 아파트 공화국은 직사각형 상자의 끝없는 연속으로만 존재하는 장면이었고, 내가 사는 아파트 도시는 공 원과 수공간, 광장이 연달아 이어지면서 그 사이를 채우는 아파트 단지들의 연속이었다. 땅에 발 을 딛고 천천히 ―물론 딴에는 재빠르다고 느낄 것이 분명하지만― 걸어 다니는 어린아이에게 아파트는 그저 집의 한 형태에 불과했고, 도시란 바깥의 공간, 즉 오픈스페이스였다. 단지 밖을 나가 중앙 길을 걷다 보면 동그란 소나무 조경 공간이 나오고, 거기서부터 큰 도로를 향해 걷다 보면 올림픽 광장 이 나왔으며, 또 한 번 큰 길을 건너면 올림픽공원에 도착했다. 내가 살던 동호수는 기억조차 나지 않는데 걸어 다니는 길과 공원은 기억하다니. 랜드마크라는 개념을 배우기 전이기에, 어떤 일상의 경험이 조합되어 공원을 도시의 방점으로 인지했을 것이라고 밖에는 생각되지 않는다. 공원, 어떤 목적을 지닌 땅 그래서일까. ‘자연’은 공원과 동의어였다. 아니, 적어도 그 당신의 나에게는 공원이 자연의 원형 (prototype)에 더 가까웠을지 모른다. 학교에 다니고 지역을 옮기며 점차 공원과 자연의 구분이 생겼 지만, 학교에서 배운 자연은 그림 속에 나오는 산이라는 것에 불과했고 공원의 자연은 내가 살아 가는 공간이었다. 학교에서 백일장을 여는 곳도 공원, 체육대회를 여는 곳도 공원, 교내 마라톤 대 회조차 공원에서 했으니 익숙함의 정도에서 차이를 보이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다. 대자연의 원형 을 실제 자연이 아닌 풍경화(landscape painting)에서 찾았던 18세기 영국의 정원가들처럼, 또는 자연 스러운(nature-like) 공원 형태를 미국의 황야가 아닌 영국 정원에서 찾은 미국의 조경가들처럼, 자 연의 원형을 심상image으로 존재할 수 있다. 오히려 실제가 아닌 심상에 기반했기에 공원은 도시 의 새로운 공간 유형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을 것이다. 자연을 닮기를 바라면서도 자연과 완전히 다른, 인간의 손에 길들여진 공간이 정원이라면, 공 원은 그 개념을 도시로 확장하는 동시에 ‘도시의 다른 곳과 구분되는 특정 기능’을 지는 곳으로 세부화 됐다. 공원(park)의 어원은 ‘위요된 일정 규격의 땅’을 의미하는 4세기 이전 옛 서부 게르만 어 ‘파루크(parruk)’로 거슬러 올라간다.1 이후 중세 프랑스어와 중세 영어로 발전하며 보다 주체적 으로 ‘왕의 숲royal forest 등에서 사냥에 쓰이기 위한 짐승을 키우는 곳’으로 의미하게 됐다. 여기서 분화해 군사적 목적을 위해 구획된 자연을 의미하는 곳으로 인식되기도 했는데, 여기서 나온 것 이 ‘주차하다’라는 의미의 ‘파킹parking’이다. 설핏 보면 굉장히 다른 의미 두 가지가 공존한다고 보이지만, 사실은 그 뿌리에 ‘어떤 특정한 목적을 지닌 땅’이라는 공통분모가 남아 있다. 공원 내부만을 본다면, 특정한 목적 없이 여가를 보내는 공간이라고 여겨진다. 하지만 서너 걸 음 뒤에서 시야를 넓혀 보면, 공원은 그것을 포괄하는 도시와 분명 다른 목적을 지니고 있다는 것 이 드러난다. 여기서 목적이란 ‘현대 도시의 생산적 기능과 다른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다. 즉, 공원 이란 가족과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이고, 강아지와 프리스비를 ‘던질 수 있는’ 공간이며, 돗자 리를 펴고 한강을 바라보며 뜨거운 라면을 ‘먹을 수 있는’ 공간이다. 생산적 효율성과 기능이 켜켜 이 쌓아 올라간 도시 한복판에서 이처럼 자유로움이 넘실거리는 공간이자 내가 하고 싶은 것 혹은 하고 싶지 않은 것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음을 매 순간 체험하게 만드는 도시의 고유한 공간이다. 에피소드 2 완성된 작품은 과연 작가의 것일까? 미술관 큐레이터가 되겠다며 한창 미술사 공부에 열을 올리 던 내게 울림처럼 다가온 어느 교수님의 화두였다. 작품을 만들어낸 작가에게 저작권이 있을지언 정, 그 작품은 작가의 손을 떠나는 순간 새로운 삶을 살게 되는 것이 아닐까? 이 때문에 작품은 여러 개의 삶(multiple lives of a work of art)을 살게 되는 것은 아닐까? 작품이 거쳐 가는 여러 삶은 과 연 작가의 것일까? 에피소드 3 1998년 겨울, 매주 토요일 오후는 스미스소니언 자연사 박물관에서 보내는 시간이었다. 워싱턴 DC 몰(The Mall)을 따라 걸으며 당시 내가 가장 좋아하던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신고전주의 특유의 하얗고 높은 계단을 뛰어 올라가면 고풍스러운 갈색 현관이 있었고, 로비에 들어서면 나를 반겨주던 공룡 뼈 전시가 있었다. 워싱턴 DC의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은 특별전을 제외하면 모두 무료로 입장할 수 있는데, 당시 언어조차 마음대로 되지 않었던 우리 가족에게 박 물관만큼 시간을 보내기 좋은 곳이 없었다. 박물관을 나와 워싱턴 기념비(Washington Monument)를 향해 천천히 걷곤 했다. 날이 좋으면 멀리 링컨 기념관(Lincoln Memorial)까지도 도전하곤 했다. 특히 날이 풀리기 시작하는 5월이면 잔디밭 광장에 피크닉 돗자리를 펴놓고 따스한 햇빛 아래서 시간을 보내는 인파가 몰렸는데, 햇빛은 무조건 피하라는 조언을 듣고 자란 내게 그렇게 신기한 광경이 없었다. 태양을 피하지 않는 사람들의 존 재란 태양볕을 쐬면 안 되는 사람의 존재만큼이나 놀라웠다. 그러니까, 먹물 뺀 공원 썰 여러 국가의 공원에서 일상을 보내던 것이 대학원에 가서야 어떤 구분할 수 있는 특정한 경험으로 인지됐다. 일상의 놀라움 혹은 무서움이 아닌가 싶다. 그 어떤 놀라운 스펙터클도 그것이 일반화 되어버리는 순간 아무 감흥도 일어나지 않는데, 공원이란 곳은 완전히 반대였다. 물론 그만큼 일 상에서 편하게 향유하던 공원이 더 이상 편안하지 않는 분석과 해석의 대상이 되었다는 점도 사 실이다. 필자는 공원이 일상의 한 부분이었던 예전의 관점과 공원이 연구의 대상인 현재 사이, 어느 중 간 지점에서 양쪽을 모두 살펴보고자 한다. 일상의 부분들이 모두 깨달음으로 다가오고 그 배경 에 공원이 있었던 개인적 기억과 연구자로서 공원을 살펴보는 층위적 시야가 합쳐지면 무언가 재 미있(을 수 있)는 것이 나오지 않을까. 소위 먹물을 뺀 이야기를 다시금 되새기면서 어떤 그림이 나타 날까. 공원이 일상의 장에서, 관심의 공간에서, 연구의 대상으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필자에게 의미 있었던 크고 작은 에피소드들이 누군가에게는 의미 있는 순간으로 다가가길 바란다. 각주 정리 1."Park”, Merriam-Webster Dictionary. 신명진은 뉴욕대학교에서 미술사를 공부한 뒤 서울대학교 대학원 생태조경학과와 협동과정 조경학전공에서 석사와 박사를 마친 문어발 도시 연구자다. 현재 예술, 경험, 진정성 등 손에 잡히지 않는 도시의 차원에 관심을 두고 서울대학교 환경계획연구소의 선임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도시경관 매거진 『ULC』의 편집진이기도 하며, 종종 갤러리와 미술관을 오가며 온갖 세상만사에 관심을 두고 있다. @jin.everywhere
    • 신명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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