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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인의 삶을 되새기며”
    지난(1988년) 7월 10일 급작스런 심장마비로 세상을 뜨신 고 조무연 실장(임업연구원 수목연구실)은 1936년 출생, 당년 53세로 1964년 서울대 임학과를 졸업 한국식물자원조사단에 근무하기 시작하면서 오직 수목에 대해 깊은 연구를 해왔다. 그간 업적이 널리 알려져 산림청장 표창 및 1975년 국가에서는 옥조근정상을 받기도 했다. 또 1987년 한국수목도감을 편찬하였으며, 본지에도 ‘조경용 수목’란에 연재로 기고한 바 있다. 고집스럽게 오직 한 길만을 위해 오늘에 이르렀던 고인에게 지면을 통해 고개숙여 명복을 빈다. ※ 키워드 : 조무연 실장 ※ 페이지 : p119
    • / 1988년09월 / 25
  • 지금은 뜻을 함께할 시기다
    그와 같은 와중에서도 조경계는 지난해, 건설업법개정안과 관련하여 자체 업역정비를 위하여 조경인 모두가 힘을 합하는 과정에서 약간의 이견조정이 필요하기는 했으나 하나의 목소리로 외부에 대하여 우리의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면허개방이라든가 특수면허 폐지와 관련하여 이해의 비중을 두고 잡음이 들려오는 것은 어찌된 일인가? 올림픽 이후의 건설경기는 불투명하고 실제 조경공사 수주량이 타 건설업에 비해 미약한데, 그나마 특수면허에서 전문면허 정도로 격하된다면 그 영역의 발전을 더 이상 기대하기 힘들다는 것은 자명한 일임을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 키워드 : 업역정비, 면허개방, 특수면허, 전문면허 ※ 페이지 : p22~23
    • / 1988년09월 / 25
  • 서울의 남산자연공원 ; 남산의 식물상과 식생
    남산의 남사면은 조리지가 많고 조림지외에는 대부분이 소나무림이며 북사면은 2차림 또는 극상림으로 덮혀 있는 곳이 많다. 일반적으로 수목의 성장에는 북사면이 건조하지 않아 남사면보다 좋다는 점과 현재 남사면의 파괴가 심한 점으로 보아 한양(서울)을 도읍지로 정할 무렵에는 아마 남산은 울창한 신갈나무 숲으로 덮혀 있었을 것이다. 남산의 식물군집을 크게 나누어보면 신갈나무-당단풍군집과 소나무군집으로 구분된다. 앞의 군집은 다시 신갈나무-진달래아군집과 서양등골나무아군집으로 갈라진다. 남산은 그동안 인간의 많은 간섭을 받아왔기 때문에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지 못하다. 남산의 원래의 모습에 대해 조사된 기록이 없으므로 확실히 알 수는 없으나 몇가지 과학적 사실들을 모아 생태하적 법칙에 근거하여 자연상태의 남산의 식생을 복원하여 볼 수 있다. ※ 키워드 : 남산의 식물상, 식생, 잠재자연식생, 남산의 생태학적 의미 ※ 페이지 : 60~65
    • / 1988년09월 / 25
  • 서울대공원 놀이동산(서울랜드) 개발계획
    위치 : 경기도 과천시 막계동 33 서울대공원 내 면적 -총 부지면적 : 830,000㎡(250,000평) -총 개발면적 : 280,000㎡(85,000평) -향후 개발면적 : 550,000㎡(165,000평) 시설 : 총 103종 254개소 설계 -기본계획 : EDAW(美)+J.L.A(美)+INTERPLAN(日) -기본/ 실시설계 기반시설 : 대림엔지니어링(주)-건축 : 진원+태림+이원건축 -조경 : 대림엔지니어링+(주)우림환경그룹 1. 계획의 목적 본 계획은 서울특별시에서 추진하고 있는 서울대공원 개발사업의 일환으로서 기존 개발계획이 갖는 목표체계를 기본으로 우리 민족의 얼을 개발하고 미래의 경이에 대한 개척의지를 창출하여, 모든 계층과 세대가 함께 참여할 수 있는 건전한 오락과 휴식기능을 갖춘 국제규모의 주제위락공원(Themed Amusement Park)을 개발함에 그 목적이 있다. ※ 키워드 : 서울랜드, 주제공원 ※ 페이지 : 128~135
    • / 1988년09월 / 25
  • 잡목정원의 사계
    저택은 오까야마시 중앙부 북측의 넓은 오까야마대학 연습림의 산기슭에 위치하여 평지보다 30m 정도 높고 특히 주위의 조망은 뛰어나다. 문은 그다지 눈에 띄지 않게끔 고성의 느낌을 같고 있으며, 풍부하고 신선한 녹음수 등으로 둘러싸여 있다. 문에서부터 소광장으로 나오는 판속의 호쾌한 길은 전사장의 열망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그 옆에는 지나치게 섬세하리 만큼의 작은 물줄기의 흐름도 역시 전사장의 주문이었다. 현관 앞에는 한국 고풍의 고탑이 설치되었다. 가는 줄기의 폭포는 현관에 닿기전 다리부근에서만 볼 수 있고 안쪽 객실로부터는 축지병(築地塀, 일종의 칸막이 용도로 쓰이는 울타리)내의 평로지(平露地)만 보인다. ※ 키워드: 잡목정원, 석탑, 평정, 축지병, 석교 ※ 페이지 : 38~46
    • / 1988년09월 / 25
  • 실내장식물
    1960년대 후반에는 여성이 점차로 사회에 진출함에 따라 공공건물이나 상업지역에도 실내식물이 등장하게 되었고 점차 실내장식물이 미적인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경제적, 사회적 측면에서도 그 중요성이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제한된 실내 장소에 적당한 식물을 선택하여 재배하는 데에 만족하지 않고 실내 어디에서나 식물을 재배할 수 있는 장치를 연구, 설치하게 되었다. 또 영국 등 일부 나라에서는 수시로 실내 조경 전시회를 가져 새로운 식물과 장식용 자재, 특이한 재배시설 등을 선보이면서 재배 시설적인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미적인 측면에서의 연구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 키워드: 실내조경의 역사 ※ 페이지 : p84~88
    • / 1988년09월 / 25
  • 세계의 국립공원 ; ACADIA 국립공원
    아케디아는 미국 메인주 대서양안의 아름다운 지역으로서 1916년에 국립기념물로 설정되었던 해안지대를 1919년에 부근에 있는 슈디크반도, 마운트 데저트, 데하우트 섬등을 포함시켜 국립공원으로 승격시킨 곳이다. 아케디아 국립공원의 지도를 보면 경계선이 수없이 많음을 알게 된다. Schoodic 반도위 프렌치맨만을 가로지른 한지역인 Some Sound의 동쪽에 위치한 공원의 커다란 구획, 그리고 개인소유의 땅 가운데 여기저기 널려있는 기타 소분절 등. 이렇게 경계선이 많이 생긴 것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서부국립공원이 내부에서 외부로 커온 반면 아케디아는 반대로 외부로부터 내부로 커왔다. 그러므로 전용될 연방토지가 없다. 하지만 이 공원은 이 지방의 아름다움과 환희를 경험한 바 있는 사람들, 이상주의자들의 돈과 사랑의 자비로 그 지역을 보호하고 사람들의 안식처로 만들기 위해 존재한 것이다. 그러한 방법으로 이 지역은 계속 확장돼 갈 것이다. ※ 키워드: 아케디아 국립공원, ※ 페이지 : 94~99
    • / 1988년09월 / 25
  • 전원에 묻힌 예술인의 전통정원, 운보의 집
    ‘운보의 집’은 본채인 한옥이 중심부에 자리하고 오른쪽엔 흰색 양옥의 운보도예방이, 위쪽엔 운향미술관이 자리한다. 전통조경의 미를 한껏 살려 꾸민 이 정원은 기능상 연못과 초정이 있는 전정, 화계가 조성된 후정, 그리고 사랑채 앞의 정원으로 나뉜다. 정자와 연결된 방지엔 커다란 부어들이 한가로히 놀고 있다. 마당앞에 놓인 석함과 단아래 조성된 화초, 정원에 장대하게 서있는 3백년딘 모과나무와 백년된 대추나무, 감나무 등은 정원에서 경이로움을 느끼게 한다. 화계의 조성, 굴뚝의 문양, 바다와 안동수몰지구에서 실어왔다는 괴석들은 정원을 한층 고풍스럽고 품위있게 높여준다. ※ 키워드 : 운보, 화계, 정자, 석함, 석상, 한국미 ※ 페이지 : 90~93
    • / 1988년09월 / 25
  • 사찰의 외부공간구성요소
    우리나라 사찰에는 일반적으로 약 1~3종의 대문이 있는데, 사찰의 외부영역과 내부영역을 구분하여 입구로서의 상징적 의미를 가진 일주문과 중심축선상의 각 소단위 공간의 결절점에 위치하는 천왕문(혹은 금강문), 불이문(해탈문), 그리고 중심공간과 전이공간의 접점에 위치하는 누문이 그것으로서 이 사문(寺門)들은 산지사찰이 형성되면서부터 뚜렷이 나타나게 된다. 사찰의 담장은 단순히 기능적 차원에서만 생각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경관 구조물로 처리하였다. 담의 높이는 궁궐의 그것처럼 높지 않고 민가에서처럼 낮지도 않으며, 공간의 성격과 지형에 따라 높이에 변화를 줌으로써 공간의 활력을 불어넣었다. 또한 상류주택이나 궁궐의 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문양은 찾아보기가 쉽지 않으며, 단지 기와편이나 돌을 쌓을때 나타나는 무늬는 간혹 볼 수 도 있다. ※ 키워드: 사찰, 일주문, 천왕문, 불이문, 담장, 굴뚝 ※ 페이지 : p106~113
    • / 1988년09월 / 25
  • 고려시대의 정원 -민간정원의 구조와 배식
    고려시대의 왕족과 귀족의 저택은 풍수지리라는 지상학적인 조건을 중시하여 대개 높은 곳에 웅대하고 화려하게 짓고 이에 어울리게 정원을 가꾸어 즐겼다. 고려시대에 나타난 정원의 유형은 동국이상국집의 「손비서냉저천정기」와 근재집의 「순흥봉서루중영기」에서 기술된 바로 알 수 있는데 경도를 중심으로 한 권신이나 귀족계급의 정원은 석가산이나 기화이목(奇花異木), 곡소(曲沼), 곡지(曲池) 등 인위적인 정원시설에 치중하여 만들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지나친 인공미에 싫증을 느낀 나머지 경도 교외나 전원지 등의 수려한 경승지에 수림, 계곡, 암석 등 자연요소들을 활용하여 자연과의 조화를 시도한 성격의 정원이 만들어지기도 하였다. 고려시대에는 후원이나 후정, 전정, 중정, 그리고 문정(門庭) 등 정원공간의 분할을 볼 수 있는데, 조선시대와 마찬가지로 후원을 중히 여겨 아름답게 꾸몄다. 특히 여말로 내려옴에 따라 숭유(崇儒)사상에 의한 남녀공간의 분리로 외정(外庭)이 생겨남으로써 정원공간의 확대를 가져옴을 알 수 있다. ※ 키워드: 고려정원, 모정, 원지, 석가산, 장리, 화오, 별서정원, 선정 ※ 페이지 : p100~105
    • / 1988년09월 /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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