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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조경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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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일 2015년 11월
이매거진 가격 9,000

기사리스트

[CODA] 엄살
“엄살이 심해도 너무 심해.” 내가 아플 때마다 이마를 짚어주던 그녀의 진단이다. 좀 억울한 점도 있지만, 수긍이 되기도 한다. 아무리 아파도 병원에 가지 않기 때문이다. 약국에서 약을 사 먹고는 계속 아프다고 징징거릴 뿐이다. 그러니 “심하게 아프지도 않으면서 엄살을 피우는 것”이라는 그녀의 진단에 고개를 주억거릴 수밖에…. 단, 투덜거리며 입술을 쭉 내민 채말이다. 그런데, 올해는 상황이 달랐다. 두 달이 멀다 하고 병원을 들락거렸다. 먼저, 허리에 이상 신호가 왔다. 정확히는 오른쪽 허벅지 부근이었다. 잠을 잘못 자서 그러려니 했는데, 하루 이틀 시간이 흘러도 통 나아지지 않고 오히려 심해졌다. 걷는 게 불편할 정도가 되니 병원을 안 갈 재간이 없었다. 병원 대기실 의자에 앉아서도 ‘그 가기 싫어하던 병원에 왔구나’라는 생각 따위를 할 여유가 없었다. 식은땀을 흘리며 그저 내 순서가 빨리 오기만을 바랐다. 앉거나 서기 힘들 정도로 몸이 아프니, 다른 생각은 모두 사치였다. 의사는 허리 디스크가 의심된다며 물리치료와 바른 자세, 스트레칭 등의 처방을 해주었다. 허리에 문제가 생기면 허벅지나 종아리 부근이 아프다는 점을 일러주었고, 상태가 더 나빠지면 수술을 할 수도 있다며 겁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물리치료를 받고 사무실로 돌아와 가장 먼저 푹신한 의자를 딱딱한 의자로 바꿨다. 1시간에 한 번 정도 잠깐이나마 일어서서 일을 보았고, 의자에 앉아 있을 때도 나름 자세에 신경을 썼다. 돌아가는 코스이지만 조금 더 걷는 쪽으로 출근길 노선도 바꿨다. 그렇게 허리는 안정을 찾아갔다. 두 번째 병원 방문은 예기치 않은 사고(?) 때문이었다. 여름 휴가를 맞아 물놀이를 할 때였는데, 젖은 슬리퍼를 신은 채 계단을 내려가다가 스텝이 꼬이면서 미끄러졌다. 넘어지는 그 찰나의 짧은 순간에 ‘아, 워터 슈즈를 신고 올 걸’이라는 후회를 했다. 이미 같은 장소에서 반나절 동안 한두 번 미끄러질 뻔한 경험을 했던 터였다. 슬리퍼를 벗고 일어나서 몸 상태를 확인하니, 다행히 크게 다친 곳은 없어 보였다. 오른손 네 번째와 다섯 번째 손가락에 약간 피가 나고 부은 정도였다. 별로 다치지 않았다는 걸 확인하자, 걱정이 썰물처럼 멀어져갔지만 부끄러움이 집채만한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래도 다행이다 싶었다. 쪽팔림은 순간일 뿐이니까. 모자를 푹 눌러 쓰고, 짐짓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주위를 휘휘 둘러보다가 파라솔 아래로 몸을 숨겼다. 그리곤 밴드를 붙이고 더 놀다가 숙소로 돌아갔다. 휴가가 끝나고도 병원에 갈 생각은 하지 않았다. 언제나처럼 약국에서 산 연고의 효능을 믿었고, 시간의 치유력을 신봉했다. 그런데 사흘이 지나도 붓기가 전혀 빠지지 않고 더 심해졌다. 게다가 손가락 마디 근처가 욱신욱신 아프기 시작했다. 결국 나흘 째 되는 날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인대 손상과 골절이라는 진단을 내린 후, 절대로 손가락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며 반 깁스를 해주고는 붕대로 칭칭 동여맸다. 태어나 처음 해 본 깁스였다. 그 이물감과 불편함이란 상상 이상이었다. 두 달이 흐른 지금 네 번째 손가락은 완치되었는데, 다섯 번째 손가락은 여전히 붓기와 통증이 남아 있다. 깁스를 한 상태에서는 키보드 타이핑을 도저히 할 수가 없어, 사무실에 있는 동안 깁스를 풀고 지낸 탓이다. 세 번째 병원 방문은 고열을 동반한 몸살, 네 번째는 심한 치통 때문이었다. 작년에도 몸살을 앓은 적은 있지만 고열이 난 적은 거의 없었다. 또, 가장 가기 싫어하는 병원이 치과이지만 치통이 심해지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치아의 신경을 강제로 긁어버리는 고문이 있다는 믿지 못할 이야기도 떠올랐다. 통증이 더 심해지자, 머리보다 빠르게 손가락이 움직여서 어느새 나는 치과에 전화를 걸어 예약을 하고 의사와 간호사 앞에서 입을 벌리고 있었다. 치과에는 앞으로 몇 번 더 가야 하지만 치통은 사라졌다. 열도 내렸고 몸살도 나았고 허리도 괜찮아졌다. 네 군데 병원을 찾은 덕분에, 지금은 다섯 번째 손가락에 만 통증이 남아 있을 뿐이다. 올해는 잔소리를 안 해도 알아서 병원을 찾자, 그녀가 한 마디 한다. “진짜 아프긴 아픈가 보네.” 물론 한 소리 덧붙이는 것도 빼놓지 않았다. “그러니까 건강할 때 운동을 하고, 좀 이상하다 싶으면 미리 미리 병원에도 가야지.” 결국, 엄살과 진짜 몸살의 차이는 아픈 ‘정도’에 있었다. “사람들을 만나면 으레 안부 인사로 이야기의 물꼬를 트게 된다. 그 날의 날씨가 가장 만만한 소재이기 마련이다. ‘요즘 갑자기 쌀쌀해졌죠? 작년부터는 가을이 사라진 것 같아요.’ 같은 업종이라면, 업계의 동향을 포괄적으로 언급하면서 동의를 구하기도 한다. ‘이쪽 경기는 왜 갈수록 어려워지죠’ 질문을 던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여전히 많이 바쁘시죠’ 내가 잡지사에 다니고 단행본도 만드는 걸 알고 있는 이들은 첫인사로 이런 말들을 건네곤 한다. ‘요즘 잡지사(혹은 출판사)는 사정이 좀 어때요? 아무래도 예전 같지는 않죠. 종이책 보는 사람들이 갈수록 줄어들어서 걱정이 많겠어요.’ 이런 염려를 접할 때마다, 나는 ‘종이책 시장은 해마다 단군 이래 최대의 불황을 경신하고 있다’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엄살을 떨곤 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처음엔 엄살이었지만 어느 시기부터는 엄살의 수준을 넘어섰다. 슬슬 정말로 불안해졌기 때문이다. 종이책의 쇠락에 대한 체감의 ‘정도’가 그만큼 달라진 것이다.” 이런 내용의 글을 써내려가다가, 우선 정확한 ‘진단’이 필요하다는 데에 생각이 미쳤다. 모든 종이 잡지가 동일하게 어려운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한 달 한 달 정해진 지면을 채우는 데에 급급한 나머지, 종이 잡지의 역할과 지향점에 대한 고민이 느슨해졌다는 생각도 들었다. 감정에 호소하는 읍소보다는 냉철한 ‘진단’이 먼저 이루어져야 효과적인 ‘처방’도 가능할 터. 독자가 원하는 콘텐츠를 얼마나 시의 적절하게 제공하고 있는지, 독자가 기꺼이 지갑을 열고 싶도록 매력적인 잡지를 만들고 있는지를 먼저 되돌아보아야 하지 않을까 등등의 고민이 이어졌다. 엄살로 치부하면 많이 억울하겠지만, 고열을 동반한 몸살과 극심한 치통이 마감 기간에 나란히 찾아왔기 때문이다. 이번 달 ‘코다’가 이렇게 뒤죽박죽이고, 지극히 개인적인 병원 방문기 내지는 질병 치유기로 점철된 까닭은…. 어디선가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하여튼 엄살이 심해도 너무 심해.”
[편집자의 서재] 맛
윗입술과 아랫입술을 가볍게 붙였다 떼고 혀를 천장에 갖다대며 “맛”이라고 발음하는 짧은 순간, 우리는 얼마나 많은 상상을 할 수 있는가. 쓴맛, 단맛, 신맛, 짠맛 등 네 가지 기본 맛에서부터 19금의 불온한 이미지까지. 고백하건대 이 책을 사게 된 건 순전히 제목 때문이었다. 이 책이 어떤 상을 받았는 지, 작가가 누구인지, 언제 나온 소설인지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표지의 덜 떨어져 보이는 인상의 젖소 쿠키가 잠깐 구입을 망설이게 했지만 결국 단순하면서도 함축적인 제목에 끌려 책을 계산대로 가져갔다. ‘146쪽 밖에 되지 않는 소설쯤이야 ‘호로록’ 읽어버려야지’하는 생각으로 야심차게 책의 첫 장을 폈지만 몇 장 넘기지 않아방구석 양지바른 한 편에 고이 모셔두게 되었다. 뮈리엘 바르베리의 『맛』은 시한부 선고를 받은 음식 평론가가 인생의 마지막 48시간 동안 그동안 경험했던 수많은 음식 중 최고의 맛을 찾는 미식 여정을 묘사한 소설이다. 책의 주인공이 음식 평론가이다 보니 원초적이고 간결한 제목과 달리 소설의 문장은 너무 길고 화려했다.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단어도 많이 등장해서 읽다보면 ‘내가 지금 같은 구간을 계속 읽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의심할 정도로 몽롱해지는 기분마저 들었다. “콩을 뿌려 장식한 수척한 마들렌 몇 개를 접시 위에 올려놓는 것으로 만족하고 끝날 거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마르케의 디저트에 대한 모욕이 될 것이다. 페이스트리는 하나의 구실, 즉 설탕과 꿀이 들어간 살살 녹고 크림이 발린 시편時篇을 위한 구실에 불과했다. 거기에는 케이크, 설탕에 절인 과일, 글라사주,1 크레프, 초콜릿, 사바용,2 붉은 열매, 아이스크림, 소르베에 대한 광기 속에서 뜨거움과 차가움의 점진적인 변화가 연주되고 있었고 내 숙련된 혀는 강박적인 만족으로 지친 채 엄청난 희열의 무도를, 격렬한 지그를 추고 있었다. 번역이 썩 매끄럽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아이스크림에 대한 위의 묘사는 화려한 수식어를 너무 진지하게 구사하는 바람에 우스꽝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아, 나는 성급하게 책을 집어 들기 전에 책의 프랑스어원제목 ‘Une Gourmandise’는 직역하면 ‘맛’보다는 ‘진미’라는 뜻에 가까운, 상당히 고급스럽고 까다로운 단어라는 것을 한 번 더 생각했어야 했다. 음식이든 책이든 음악이든 취향의 문제에 있어서는 이상하게 고집이 세서 조금 부끄럽지만 편식이 심한 편이다. 책이나 글을 읽을 땐 간결하고 담백한 문체를 사랑한다. 특히 화려한 수식어나 관념어가 많고 길게 늘어지는 문장은 싹둑 잘라 깔끔하게 다듬어주고 싶다. 확고했던 나의 취향이 조금 바뀌게 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편집 일을 하고부터다. 처음에는 마음에 들지 않는 문장을 가차 없이 재단하고 마름질해 ‘읽기 편하게’ 만들어 놓았지만 어쩐지 글을 고쳐놓고 읽어보면 입에 잘 붙지 않았고 개성 없는 문장이 되어 버렸다. 담당한 연재 원고를 매달 꼼꼼히 읽다보니 꼭지마다 필자의 특색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조금 읽기 불편하고 어딘가 투박하더라도 글쓴이의 개성이 묻어나는 글이 내가 고친 무미건조한 글보다 친근하게 읽혔다. 익숙한 ‘맛’에 길들여져서 시간을 들여 읽으면 발견할 수 있는 매력을 그동안 놓치고 있었던 것이다. 최근에 『맛』을 다시 읽었다. 처음 책을 읽을 땐 그토록 정신 사납게 느껴지던 문장이 이번에는 감칠맛 나게 느껴졌다. 질색을 했던 모호한 관념어와 화려한 수식어도 어느 정도 참을만 했다(솔직히 아직 극복하지는 못했다). 기억을 더듬으며 그동안 경험했던 황홀한 맛을 묘사할 때면 죽어가는 시한부임에도 과도(?)하게 흥분하는 주인공의 어투마저 왠지 모르게 유쾌하게 느껴졌다. 생야채를 마요네즈에 찍어먹는 행위의 관능성을 묘사하는 부분은 어찌나 아찔하던지!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소설 속에서 식탁 위의 군주로 군림하던 음식 평론가의 미식 여정은 슈퍼마켓의 싸구려 슈케트4를 맛보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어릴 적엔 몰랐던 양파의 달짝지근함, 가지의 고소함, 고추의 풋풋함을 나이가 들어가면서 조금씩 알게 되는 것처럼 확고하고 뚜렷했던 취향도 삶의 경험이 쌓이고 보는 시각이 넓어짐에 따라 조금씩 바뀌기 마련이다. 사실 편식은 편견과 무지로 비롯되는 것임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이번 호에는 조경, 도시, 건축계에서 이슈가 되었던 3개의 공모전이 연달아 실린다. 공모전이 많이 실린 잡지는 독자들에겐 다양한 유형의 설계 해법을 살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겠지만 편집자에겐 설계자의 의도와 전략을 이해하느라 머리를 싸매고 고민했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그동안 설계안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어려워서, 이미지가 별로라서 등 수많은 핑계를 대며 설계안과의 정면 승부를 피한적이 없었을까? 뒤돌아보니 성미가 급한 나는 맛을 보기도 전에 삼키려고 한 적이 너무 많다.
다음 세대의 도시를 위한 고민
지난 2013년 6월 쇠퇴하는 도시의 자생적 성장 기반을 확충하고 경쟁력을 제고하며 지역 공동체를 회복하기위해 ‘도시재생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면서 우리나라도 지속가능한 도시를 위한 본격적인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법이 제정된 지 2년이 넘은 지금, 한국의 도시는 다음 세대로 넘어가기 위한 준비가 되어있을까? 지난 10월 2일, 서울경제신문과 한국FM학회 더 나은 도시디자인 위원회(회장 김용수)가 주최하고 더 나은 도시디자인 연구소, 중앙대학교 예술문화연구원(원장 김영호), 한국공공디자인학회(회장 서혜옥), 수목건축(대표 서용식)이주관하는 ‘더 나은 도시디자인 포럼 2015’가 개최되었다. 지난 2014년 ‘지속가능한 도시재생의 미래’를 주제로 처음 개최된 ‘더 나은 도시디자인 포럼’은 우리의 도시를 인간 중심의 도시로 발전시키는 방안을 고민하는포럼이다. 올해에는 ‘From Europe-역사·문화에 기반한 도시재생의 교훈’을 주제로 논의의 장을 마련했다. 유럽 도시재생의 교훈 포럼은 총 2부로 나뉘어 1부에서는 유럽의 도시재생역사와 사례를 살펴보고 2부에서는 한국에서 시행되고 있는 도시재생 정책과 한국형 도시재생의 방향에 대해 고찰했다.1부 첫 발표를 맡은 폰타나 조경설계사무소Fontana Landschaftsarchitekten의 마시모 폰타나Massimo Fontana 대표는 ‘도시의 문맥에서 문맥까지 From Context to Context’라는 주제로 최근 바젤, 취리히, 루체른 등지에서 작업한 도시재생 프로젝트의 사례를 소개했다. 폰타나 조경설계사무소는 스위스 바젤에 기반을 두고 국내외에서 다양한 유형의 공간을 설계하는 설계사무소다. 그는 도시설계에서 가장 중요시 하는 세가지 요소로 환경, 시간, 인간을 꼽았다. 즉, 대상지의 생태, 역사, 문화를 분석해 도시적 맥락과 연속성 있는 설계를 해야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는 것. 그는 “설계자는 시간을 들여 장소의 혼을 존중하는 설계를 해야 한다. 하지만 대상지와 관계된 요소를 너무 많이 남용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조언했다. 민현식 교수(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과 명예교수, 건축사사무소 기오헌 대표)는 유럽의 도시설계 역사를 되짚어봤다. 그는 과거 르 코르뷔지에를 비롯한 건축가들이 ‘창조적 파괴’에 골몰하고 획기적인 것에만 가치를 두었다면 최근에는 기억의 축적 위에 새롭게 합의된 아이덴티티를 더하는 도시재생에 주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세운상가 활성화 프로젝트를 사례로 들며 1960년대 폭력적인 방식으로 지어졌던 세운상가 일대의 역사를 인정하면서도 주변의 도시 조직과 연계해 상처를 치유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형 도시재생 고주석 교수(바허닝엔 대학교 명예교수, 오이코스 디자인 대표)는 유럽의 어바니즘이 한국의 경관에 미친 영향과 한국형도시재생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그는 “우리는 도시의 일부이기 때문에 마치 항공사진을 찍듯이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관점에서 도시를 디자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도시를 보는 패러다임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는 브라질리아를 방문했던 경험을 예로 들며 “브라질리아를 사진으로 보았을 땐 거대하고 시원시원한 도시의 풍경이 멋있어 보였는데 실제로 잔디만 깔린 뜨겁고 광활한 대로를 걸어 건물 사이를 이동하려니 무척 고통스러웠다. 우리의 도시를 ‘건축 박람회장’이 아니라 ‘집’이라고 생각하고 따스한 시각으로 바라보기 시작하면 지역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정체성과 정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구자훈 교수(한양대학교 도시대학원)는 한국의 도시재생 정책의 현황을 소개하고 앞으로의 과제를 제시했다. 그는 특히 최대 35개소를 선정해 지원할 예정인 2016년 도시재생 일반지역 사업의 유형 중 최대 10개소에 100억 원 이내로 국비를 지원할 예정인 중심시가지형 도시재생사업에 주목했다. 그 대상지는 중심 상가, 공공 청사등의 기능이 밀집했던 원도심을 포함하는 지역으로 상권 활성화, 집객 시설 유치, 교통 체계 개편 등의 도시계획적 처방이 필요한 곳이다. 그는 사업 효과를 위해 선택과 집중 전략이 필요하며 전문성 있는 민간 조직을 길러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럽의 도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기존의 도시가 가진 역사성을 존중하면서도 새로운 개발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 왔다. 오랜 시간 천천히 쌓아 올린 유럽의 경험을 우리나라의 도시에 바로 대입할 수 있을까? 발표가 끝난 후 토론 시간에 한 참가자가 유럽의 경험이 한국형 도시재생을 논의하는 데 유의미한지 질문을 던졌다. 이에 대해 구자훈 교수는 “한국의 도시재생사업은 이제 시작 단계에 불과하다”며 “정부의 도시정책 사업을 통해 한국형 도시재생의 방향을 찾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답변했다.
‘곶자왈을 잃은, 그대에게’ 최우수작 선정
지난 10월 1일 산림청(청장 신원섭)은 ‘제7회 대한민국 도시숲 설계공모대전’ 수상작 11편을 선정ㆍ발표했다. 도시숲 설계공모는 ‘주변과 조화되고 다양한 동·식물이 공존하는 자연 생태적 역할을 수행하는 도시숲 표현’을 주제로, 산림·조경·건축·도시계획·디자인 등 관련 대학(원)생 및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다. 설계 대상지는 산림청에서 선정한 도시숲 설계 대상지 중 선택해 정할 수 있다. 올해 최우수작은 김수정·신혜인(서울여자대학교 원예생명조경학과)과 윤다운(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환경조경학과)이 함께 출품한 ‘곶자왈을 잃은, 그대에게’로 정부 포상과 함께 상금 500만 원이 수여된다. 최우수작은 쓰레기 매립 등으로 훼손된 곶자왈 지대를 주변 식생의 단계별 천이를 통해 복원한 작품으로, 국민 건강 증진 등 ‘도시 숲과 건강’이라는 주제를 효과적으로 표현해 높은 점수를 받았다. 우수작은 충남대학교 건축학과의 ‘이.끌림’, 가천대학교 조경학과의 ‘송우리에 숲을 태그하다’가 수상했으며 그 외 장려상 3점, 입선 5점이 각각 선정됐다. 이용석 과장(산림청 도시숲경관과)은 “기존 공원과는 차별화된 참신하고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발굴하여 도시숲 조성에 적극 반영할 계획”이라며 “참가자들의 높은 관심이 도시숲과 산림 정책 발전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곶자왈을 잃은, 그대에게 최우수작의 대상지는 용암이 만든 제주도의 대표적 자연 경관인 곶자왈 지대다. 곶자왈이란, 곶(숲)과 자왈(암석과 자갈)이 합쳐진 암석과 가시덤불이 뒤엉킨 숲을 말한다. 이곳은 과거 제주민들의 삶의 터전이 되기도 하였으며 제주의 허파, 생태계의 보고라고 불린다. 또한 높은 지하수 함량과 보온·보습 효과로 남방 한계 식물과 북방 한계 식물이 함께 공존하는 세계 유일의 독특한 숲이다. 그러나 이러한 가치가 조명되기 전에는 골프장이나 리조트 건설 등으로 파괴되는 일이 많았다. 이번 대상지 역시 쓰레기 매립, 초지를 위한 불 놓기 사업, 인위적인 해송 식재 등 사람의 손길로 인해 건강하지 못한 채로 남겨져 있다. 수상작은 곶자왈을 제주민들에게 다시 돌려주되, 지금의 곶자왈과는 다른 곶자왈을 제안한다. 기존의 곶자왈이 대부분 극상림 단계에 있다면, 수상작이 제안하는 곶자왈은 극상림으로 변화해 가는 천이 과정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2헥타르 안에서 곶자왈을 체험하고, 제주의 다른 파괴된 곶자왈 복원을 위한 시험림의 성격도 부여한다. 훼손된 식생 본래의 건강을 되찾아 주기 위해 첫째, 사람의 간섭에 의해 교란된 식생을 제거한다. 다음은 같은 해발의 선흘곶자왈 식생을 목표종으로 도입하고, 자연 스스로 천이가 시작될 수 있도록 한다. 이렇게 기반을 다져줌으로써 사람들은 공간별로 각기 다른 천이를 느낄 수 있게 된다. 또한 대상지 현황에 따라 3가지 종류의 곶자왈 공간을 만든다. 먼저 자갈과 암석이 드러나 요철 지형을 느낄 수 있는 공간에는 암석원을 계획했다. 이곳은 천이의 초기 형태를 띠는 곳으로서 보호 공간이기도 하며, 데크 길을 이용해 천이를 관찰할 수 있다. 또한 다져진 지반에 우수가 집수될 수 있도록 계획한 아아aa 못이 있다. 이곳도 암석원과 같은 용도의 데크 길이 사용되며 비보호시에는 억새 속을 걷는 동선으로도 사용된다. 그리고 덤불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지형인 함몰지가 드러나도록 했다. 햇빛에 노출되어 융기된 곳에는건조에 강한 식물이, 습도가 높은 아랫부분은 이끼류들이 살아 곶자왈의 다양한 생물종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그리고 대상지에는 기존의 근린공원과 연결되는 순환형 동선을 계획했으며, 보조 입구와 연결되는 보조 동선, 학술용으로 사용되는 세부 동선이 있다. 이렇게 열리고 닫히는 공간을 통해 오름 등 다양한 경관을 만날 수 있다. 또한 이 길은 1.5~2.5m의 좁은 폭으로 만들어져 천이를 통해 자연이 만들어내는 식생을 오감으로 느낄 수 있도록 한다. 더불어 천이 중인 식물을 보호하기 위한 구름다리, 팻말, 데크 길은 곶자왈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요소가 된다. ‘곶자왈을 잃은, 그대에게’는 공감하고 이해하는 과정속에서 힐링하며 곶자왈이 뿜어내는 가치를 새로운 눈으로 바라 볼 수 있는 기회를 제시하고 있다.
서울숲 10년의 의미와 과제
서울숲이 10주년을 맞았다. 2005년 6월 18일, 뉴욕의 센트럴파크 혹은 런던의 하이드파크와 같이 서울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도시숲’을 꿈꾸며 서울숲이 개장했다. 공원녹지를 통해 도시 공간 재편을 꾀했던 민선 3기 이명박 서울시장은 ‘생활권 녹지 100만평 늘리기’ 사업을 추진하면서, 주거·업무 지역으로 개발할 경우 4조원에 달하는 개발 이익이 예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문화관광 타운 등으로 구상했던 서울숲 부지를 공원화했다. 서울숲 뿐만 아니라 서울광장, 청계천 복원 등 같은 시기 조성된 공원녹지는 환경 가치를 중시하는 새로운도시 마케팅의 핵심 요소로 떠올랐다. 당시 서울숲은 앞으로 (용산 미군 기지를 제외하고) 확보하기 어려운 대규모 녹지를 서울 동북부 지역에 마련함으로써 균형 발전의 토대를 만들고, 도시의 생태적 네트워크 구축의 교두보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특히 공원을 만들고 관리하는 측면에서 볼 때, 서울그린트러스트와 같은 민간단체를 통해 시민이 직접 조성부터 관리까지 참여한다는 민관 협력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었다는 중요한 의의가 있다. 여러모로 서울숲은 새로운 공원 문화의 테스트베드이자 다른 공원들의 벤치마킹 사례가되어왔다. 2015년 10월 16일 서울시와 서울그린트러스트(이사장 양병이)는 서울시청 서소문별관 후생동에서 지난 10년을 되돌아보고 향후 10년을 고민하기 위한 ‘서울숲 10년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현재 서울숲을 관할하고 있는 서울시 동부공원녹지사업소의 이춘희 소장은 ‘서울숲의 조성과 운영이야기’를 주제로 첫 번째 주제발표를 했다. 그간 서울숲의 변화를 살펴보면, 수목은 22종 2만주가 늘었고(2015년 현재 109종 64만주), 초화류는 99종 3만본(2015년 현재 183종 49만본), 온실 식물은 23종 3천본(2015년 현재 254종 8천본)이 늘어나는 등 식물의 다양성이 증가했다. 반면 서울숲 개장 당시 서울시장의 요청으로 꽃사슴 104수와 고라니 7수가 사육되었는데 현재는 각각 59수와 5수로 줄어들었다. 과도한 수의 꽃사슴을 방사하면서 생태숲이 파괴된 결과 조정된 것이다. 그밖에 나비정원이 신설되었고, 어린이 시설이 확충되는 등 시설도 보완되었다. 서울숲 주변으로는 2011년 ‘갤러리아 포레’가 완공되었고 2012년에는 분당선 ‘서울숲역’ 개통, 성수동 뒷골목 상권 활성화 등의 변화가 있었다. 시민참여 현황을 보면 공원안내 30여 명, 청소년 자원봉사 연간 3천 여명, 대학생ㆍ기업자원봉사 8천4백여 명 등이 활동하고 있으며, 27개의 직영 프로그램과 30개의 위탁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서울숲의 미래를 위한 설계자의 제안 서울숲의 설계자인 안계동 대표(동심원 조경)는 ‘도시공원의 새로운 모델’을 지향했던 서울숲의 변화 10년을 되짚었다. 2003년 조경계의 큰 잔치였던 ‘뚝섬 숲(안) 조성 설계공모’(설계공모가 마감된 2003년 4월 4일 ‘뚝섬숲’의 명칭이 ‘서울숲’으로 공식 결정되었다)에서 ‘진화, 네트워크, 재생’을 핵심 전략으로 내세운 동심원의 ‘서울숲’이 당선되었다. 안계동 대표는 시공과 개원 이후 아쉬운 부분으로 숲의 기반인 토양 개량 미흡, 생태숲의 동물 방사, 이전 예정 시설의 존치 등을 꼽았다. 그 가운데 설계 당시 승마장, 정수장, 삼표 레미콘 공장 등의 이전을 전제로 문화예술 및 생태 프로그램을 계획하였으나 10년이 지난 지금도 이전이 이루어지지 않은 점을 지적했다. 정수장(뚝도아리수정수센터)은 오히려 시설을 고도화 했으며, 삼표레미콘 공장은 소음과 분진 때문에 지역 주민과 갈등 중이지만 언론 매체를 통해 이전 의사가 없음을 확인할 수 있다. 승마장 부지는 본래 사설 승마훈련원이 운영되고 있었으나 경영 악화로 작년 말 폐쇄된 상태다. 그간 승마가 귀족 스포츠라는 부정적인 인식과 더불어 악취나 먼지, 그리고 인접한 학교의 학습권 침해를 이유로 주민들의 불만이 커진 상태다. 현재 이 부지를 관리하고 있는 서울시 체육정책과는 앞으로 공공 승마장을 운영할 계획으로 현재 주민 의견 수렴 및 기본설계용역을 진행 중이라고 한다. 그간 주민들이 제기한 승마장에 대한 불만 사항을 리모델링을 통해 개선해 지역 주민들도 이용할 수 있는 공공 시설화한다는 계획이다. 반면 안 대표는 승마장 부지를 서울숲에서 직접관리하고, 당초 계획대로 문화예술 관련 프로그램을 도입하자는 제안을 했다. 정원이나 가드닝 스쿨을 넣기 좋은 위치라는 의견을 덧붙이기도 했다. 한편 정수장에 관해서는 이전 대신 서울숲과의 통합 운영을 제안했다. 10만 평 가까운 면적의 거대한 정수장은 현재 보안 시설로 두 겹의 철조망이 쳐져 서울숲과 격리되어 있다. 보안 구역을 조정해 견학 프로그램 등을 서울숲과 통합하고, 정수장의 전망대를 개방하면 서울숲을 시원하게 조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숲의 또 다른 문제는 공원 전면부 상업 용지와 주진입로 일대의 활용 계획에 관해 소통하지 못하고 있는 점이다. 서울숲 진입로 양편 부지는 공원 조성 당시부터 개발되지 않고 비어 있던 땅으로 장벽 같은 가림막이 서 있어 공원 입구를 답답하게 만들어 왔다. 그런데 최근 이 부지들의 개발 계획이 발표되고 있는데, 대림산업은 주상복합단지 ‘서울숲 e편한세상(가칭)’을 내년 상반기 분양할 예정이며, 부영은 49층짜리 관광호텔 3동 개발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들이 나오고 있다.1 개발이 예정대로 진행된다면 서울숲은 주상복합 아파트인 ‘갤러리아포레’와 현재 건설 중인 아파트‘트리마제’ 등을 포함해 40층 이상 고층 건물 최소 7개 이상에 둘러싸이게 된다. 이러한 개발은 서울숲과 인접한 점을 이점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정작 서울숲 운영자들과는 소통할 창구가 마련되지 않았다. 안 대표는 서울숲의 입구, 즉 대림산업과 부영의 토지사이의 도로를 공원으로 변경하자는 의견을 개진하기도 했다. 현재 도로로 지정되어 있는 이 토지는 서울 숲의 입장에서 보면 주 진입로인 셈인데 좁은 통로 외에는 막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토지를 성동구 관할에서 서울숲 관리 대상으로 변경해 공공 용도로 활용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생각이다. 그런데 이 토지 역시 최근 성동구(구청장 정원오)가 롯데면세점, 문화예술사회공헌네트워크와 함께 사회공헌 프로젝트 ‘언더 스탠드 에비뉴Under Stand Avenue’ 사업을 추진 중이다. 100여 개의 컨테이너 박스를 활용해 창조 공간으로 만든다는 구상인데 지난 8월 착공식을 거쳐 10월 말 완공 예정이다. 서울숲 안팎에서 공원에 영향을 미치는 부지의 활용 계획이 공원과 통합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는 안계동 대표의 바람은 공원 개장 후 10년이 지난 지금도각 부지의 관할 기관이나 부서가 다르거나 민간 소유의 토지인 상황으로 여전히 쉽지 않아 보인다. 서울숲 주변의 상업화 또는 공적 활용은 유동 인구를 늘려 이 지역을 활성화시킬 수도 있겠지만 주변 도시의 구조적 변화를 고려한 진화를 전략으로 삼는다는 서울숲의 설계의도가 온전히 구현되기는 어려운 셈이다. 시민참여의 새로운 패러다임 사실 그러한 통합적 계획에 국내 민관 파트너십의 선구적 모델인 서울숲사랑모임이 참여할 수 있다면 조금 더 적극적인 시민 참여를 유도할 수도 있다. 서울숲 운영을 위해 서울그린트러스트의 파견 부서 형태의 서울숲 운영팀이 서울숲사랑모임이다. 서울그린트러스트는 서울의 도시환경 개선 방안으로 상업개발 예정지였던 뚝섬을 도시숲으로 만들 것을 제안했던 사단법인 생명의 숲국민운동이 서울시와 ‘서울그린트러스트’ 협약을 체결하며 설립한 재단법인이다. 서울그린트러스트를 통해 2005년까지 약 50억 원의 기금 조성 및 나무심기에 70개의 기업과 5,000명의 시민이 참여했으며, 지난 10년 동안 서울숲사랑모임은 각종 공익 캠페인과 생태·문화 프로그램을 개발해왔다. 이러한 서울숲사랑모임은 공원 운영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제도적 장치가 미흡하다보니 그 참여에 난항을 겪고 있다. 서울숲사랑모임의 이민옥 국장은 서울숲 조성 초기에는 서울시와 파트너로 함께 운영하다가 어느 순간 갑을 관계가 되었다고 설명한다. 2009년부터는 공개경쟁에 의한 입찰을 통해 3년 단위 계약을 이어가고 있는 형편으로, 이러한 상황은 서울숲사랑모임의 활동을 위축시키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국장은 예전에는 손님 같던 시민들이 점점 주인의식을 가져가고 있다며, 작년부터는 ‘공원의 주인은 바로 우리다. 우리가 공원과 함께 커 가자. 공원을 함께 고민하자’는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고 전한다. 서울숲사랑모임은 공원에서 생태 프로그램이 생소했던 2005년부터 유아부터 노인까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생태·문화 프로그램을 개발해왔다. 이제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시민들에게 제공하는 방식은 지양하고 함께 만들어가는 프로그램을 고민중이다. 더불어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대안 공간으로서 어떤 역할을 해야하는가’, ‘사회적 자본을 어떻게 형성할 것인가’를 향후 과제로 설정하고 있다. 이어진 토론 시간, 이성환 서울숲관리사무소 초대 소장은 서울숲은 개원 당시 하루에 10만 명에 달하는 인파가 찾을 정도로 국민 공원으로 사랑받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특히 지방의 관광객들은 같은 해 10월 개장한 청계천과 서울숲을 코스로 묶어 방문하곤 했다고. 그런데 최근에는 이용자가 지역에 한정되었다며, 이용객이 줄어든 이유를 파악해 전 같은 인기를 찾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일갈했다. 이근향 전 서울숲사랑모임 국장(중부공원녹지사업소 공원여가과장)은 공원이 조성된 지 10년이 되니 새로운 사회의 트렌드에 발맞추기 위해 재원이 필요한 곳이 많이 생기는데, 이를 충당하기 위해서는 공원녹지 관련 행정력으로만은 역부족이라고 설명한다. 더불어 얼마 전 참석한 세계 공원 컨퍼런스에서 미국의 내무부 장관이 축사를 하고 아나운서나 의사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이 토론에 참석하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전했다. 공원의 모습을 쇄신하기 위해서 단순히 예산을 늘려달라는 요청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공원녹지 분야를 넘어서는 사회적 관심이 필요하고, 그래야 풍부한 재원이 마련될 수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정확한 데이터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즉, 사회의 각 분야에서 그 필요성을 이해할 수 있도록 공원의 경제적 가치를 계량화하는 다양한 연구와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제언이다.
당신의 청춘은 안녕하십니까?
공간마다 특유의 감수성이 있다면 서울특별시 신림 9동(현 대학동)의 감성은 묘한 애상감이라 할 수 있다. 머물기보다 떠남이 익숙한 장소. 어느 노랫말처럼 꼭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사라지는” 청춘과 같은 신림 9동 특유의 감수성에 주목한 전시가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다. 시대의 변화와 그만큼 다양한 사람들에게 적응하며 자신의 옷을 바꿔 입었던 신림동의모습을 만날 수 있는 기회다. 안녕, 신림동 전시장 입구를 들어서기도 전에 신림동으로 향하는 버스 정류소가 관람자보다 더 먼저 인사를 건넨다. 우뚝서 있는 표지판과 정류소 한쪽 벽면에 덕지덕지 달라붙은 전단지가 이목을 끌고, 중앙에 덩그러니 놓인 벤치는 여느 정류장과 다를 바 없다. 정류소 이름은 ‘신림동고시촌입구’. 이 표지판 하나로 전시 공간은 자연스레 신림동 고시촌이 된다. 그러고 보니 ‘빈방 있습니다’, ‘투룸’, ‘잠방(잠만 자는 방) 있습니다’, ‘민법 진도별 모의고사’ 등 벽면에 붙은 전단지들도 전부 고시생들을 겨냥한 것이다. 고시촌은 어떤 모습일까. 전시의 첫 번째 섹션은 ‘안녕, 신림동’하고 인사를 건네며 관람자를 맞이한다. ‘신림新林’이라는 지명은 관악산 아래 기슭에 위치한 탓에 나무가 많아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관악산이 입신을 용이하게 하는 ‘벼슬산’이라고도 불렸다는 설명을 보며 그 이름 덕에 고시생들이 신림동에 모이게 된 건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보기도 했지만 곧 그런고루한 이유가 아니라 도심과 멀어 조용하고, 도시에 팽배한 환락의 유혹을 떨쳐버릴 수 있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 때문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스스로 고립된 삶을 택한 청춘들은 대거 신림동으로 이주했고, 1990년부터 시작된 변화에 발맞춰 신림동은 고시생들의 생활에 적합한 모습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1인분씩 잘라 파는 과일가게가 생겼고, 여러 개월 치의 식권을 한꺼번에 판매하는 뷔페식 식당, 일명 ‘고시식당’이 생겼다. 닭장과 같은 독서실에서는 한 가지 목표를 향해 달리는 학생들이 하도 보아 너절해진 책에 열정을 쏟아 붓고, 독서실을 나가면 유일한 오락거리인 인형 뽑기 기계에 죽기 살기로 달려드는 고시생들이 가득하다. 거리에 버려진 담배꽁초가 유난히 많은 것도 신림동 고시촌의 일면이다. “빨리 이 지긋지긋한 곳을 벗어나고 싶다”란 말이 절로 나올 만큼 답답하고 어두운 공간에서 청춘을 지새우는 이들의 초상이 곳곳에 묻어있다. 오랜 시간 힘든 공부에 찌든 이들의 바람은 오직 한가지다. 서둘러 이 신림동 고시촌과 안녕을 고하는 것. ‘안녕 신림동’이라는 다소 명랑한 인사와 달리, 전시장에 펼쳐진 신림 9동의 모습은 헤어짐을 종용하는 기운으로 가득했다. 항상 손을 들고 서있다 고시촌이 들어서기 전부터 신림동은 작별의 기운이 맴돌던 곳이었다. ‘고시촌 너머 신림동’ 섹션은 고시촌이 형성되기 전 신림동에 머물렀던 사람들과 그를 둘러싼 환경을 시대별로 조명해 보여준다. 이 섹션을 천천히 둘러보며 신림동이란 공간에서 느껴지는 묘한 애상감이 비단 고시촌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본래 의성 김 씨의 집성촌이었던 신림동은 1960년대 중후반 서울시가 진행한 도심 불량주택 철거 정책과 개발에 삶의 터전을 잃은 난민들의 집결지가 되었다. 용산 해방촌, 청계천, 한강 주변, 이촌동, 공덕동 등 각지에서 떠나온 철거민들은 황량한 신림동 일대를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 삼았다. 그러나 구호 대책이 전혀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주가 진행되었기에 당시 신림동은 주거와 교통 등 생활 환경이 매우 열악했고, 마을 곳곳에선 삶의 몸부림같은 생계형 범죄들이 일어나게 되었다. 철거민들이 신림동에 자리 잡기 위해 애쓰는 마음과 별개로 그들의 삶은 녹록치 못했다. 주민들이 서울시장에게 대책을 촉구하는 청원서를 낼만큼 어려웠던 그 때를 좋은 시절로 기억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렇게 신림동은 철거민들에게 가난과 상실의 아픔이 떠오르는 장소가 되었고, 본의 아니게 서둘러 작별을 고하고 싶은 공간, 혹은 그곳에 머문 이들의 안녕을 바라며 항상 손을 들고 서 있어야 하는 공간이 되었다. 마주보고 서있다 신림동은 어떤 형태로든 청춘의 이면이 머물다 가는 공간이다. 전시 서문에 적힌 헤르만 헤세의 책 제목처럼 청춘은 아름답다. 그러나 미래를 준비해야 하기에 고달프고 불안한 시기이다. 좋을 때니 청춘을 즐기라는 말을 수시로 듣지만, 사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제가 지금 그럴 땐가요” 하는 말이 목 끝까지 올라온다. 이 경험을 어떤 청춘이든 해보았을 것이다. ‘신림동 청춘’을 보며 들었던 애상감은 청춘이라는 시기가 주는 동질감이 만들어낸 자기 연민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신림동 청춘’ 전에는 열정적이고 건강한 청춘의 모습도 소개되고 있다. 1975년 서울대학교가 신림동으로 완전히 이전되며 거리를 장악했던 당시 대학생들의 일상을 담은 것이다. 대학이 자리를 잡아가던 1980년, 학생들은 당시 독재 정권에 반기를 들고 민주화를 노래하며 신군부 집권에 반대하는 집회와 시위를 벌였다. 지식인으로서 분노를 참지 않고 발산했던 때, 서로의 연대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던 순수함이 존재했던 그 때, 신림동은 뜨거운 아우성을끊임없이 토로하는 청춘의 공간이었다. 그러나 현대의 청춘들은 고함을 치는 것보다 침묵하는 일에 익숙해져 있고, 연대보다 혼자가 되는 것에 더욱 익숙해져 있다. 삼포 세대(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세대)를 지나 오포 세대(삼포에 더하여 인간관계와 내 집 마련까지 포기한 세대)라고까지 일컬어지는 현대의 청춘들에게 이제 신림동 고시원은 고시생만의 거주지가 아닌 가난하고 몸둘 데 없는 1인 가구들의 안식처다. 2008년 로스쿨이 도입된 후, 2017년에는 사법고시를 폐지한다는 법안이통과되며 고시생들이 신림동 고시촌을 떠난 자리를 혈혈단신의 다양한 청춘들이 채우게 된 것이다. 신림동 뿐만이 아니다. 고시원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건물중 정말 사법고시 준비생들이 머무는 곳이 얼마나 있을까. 이제 곳곳의 고시원들은 거리로 내몰린 외로운 청춘들의 거주지가 되었다. 새로운 ‘신림동 청춘’들은 어디에나 있고, 신림동 고시촌의 일상은 다름 아닌 당신의 혹은 당신 다음 세대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리는 ‘신림동 청춘’ 전에서 당신이 마주보고 있는 현실을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보길 바란다. 전시는 11월 8일까지 진행된다.
어반 스파
2주 동안 ‘지역의 미래와 희망을 담은 임시 설치물’을 만들어야 한다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2주 만에 해결하기에는 다소 부담스럽고 거창한 과제를 스페인의 건축설계사무소 PKMN은 지역 주민들의 도움을 받아 단순하고 유쾌하게 풀어냈다. 고장이 나서 오랫동안 쓰지 않고 버려져 있던 분수가 모두를 위한 야외 풀장으로 재탄생했다. 불모지를 위한 워크숍 매년 여름, 멕시코 치와와 건축 대학교Instituto Superior de Arquitectura de Chihuahua는 ‘불모지를 위한 워크숍Taller del Desierto’을 조직한다. 국내외 디자이너를 초청해 이 지역의 낙후된 공간을 활성화시키는 임시 설치물을 짧은 시간 동안 조성하는 워크숍이다. 올해 워크숍의 과제는 치와와 시 중심에 있는 우루에타 공원Parque Urueta에 작은 시설물을 짓는 것이었다. PKMN을 주축으로 멕시코 디자이너 듀오 메멜라Memela, 지역 건축가 후안 카스틸로Juan Castillo, 미구엘 헤레디아Miguel Heredia, 디자이너 미구엘 가르시아Miguel García가 함께 설계팀을 이뤄 워크숍을 진행했다. 특히 이 프로젝트는 여러 대학과 치와와 시 노동자 밀집 구역에서 시민운동을 하고 있는 임풀산도 카파시다데Impulsando Capacidades, 지역 구호 단체 에이 플러스 비엔A+bien 등의 지역 시민 단체가 파트너십을 맺어 조성될 수 있었다. 임풀산도 카파시다데와 에이 플러스 비엔을 통해 비계飛階 40개와 팔레트 수십여 개, 그늘막을 만들기 위한 자투리 천을 빌리고 페인트 몇 통을 조달받았다. 뿐만 아니라 이번 워크숍에는 설계부터 시공까지 공원 근처 주민들을 포함한 다양한 구성원이 참여해 도움을 주었다. 공동의 희망을 위한 설계 과정 치와와 시 중심에 있는 우루에타 공원은 농구장, 축구장, 테니스장 등이 모여 있는 스포츠 구역과 큰 나무가 우거진 작은 숲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중앙 통로가 두 구역을 잇고 있다. 프로젝트의 대상지는 공원의 유동 인구가 가장 많은 이 중앙 통로에 위치한다. 워크숍의 목적은 지역의 미래를 위한 공동의 희망을 건설하는 것이었다. 설계팀은 공원 바로 옆에 위치한 학교의 학부모들이 아이들을 기다리면서 잠깐 쉴 수 있는 그늘진 공간, 스포츠 구역 및 휴식 공간의 계단과 점수판, 새로 디자인한 공공 벤치 등 공원에 부족한 편의시설을 고안하고 일련의 스케치를 그려 보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지역 주민들은 이러한 새로운 편의 시설보다는 공원 중심부에 있지만 고장이 나서 몇 년간 사용하지 못하고 있던 기존의 수경 시설을 고쳐서 다시 활용하기를 원했다. 워크숍 설계팀은 지역 주민의 바람에 따라 중앙의 수경 시설을 재활용하는 아이디어를 실행하기로 결정하고 공원에 대한 지역 주민들의 희망과 기대를 어떻게 하면 건축적 제안으로 충족시킬 수 있을지 궁리했다. 확정된 아이디어를 설계로 완성시키는 데 1주일, 설계안을 토대로 주민 및 자원 봉사자들과 함께 시공하는 데 1주일이 주어졌다. 워크숍은 대학과 시 정부 간의 소통 창구 역할을 담당했다. 시 의회는 워크숍에서 나온 시민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공원 중앙 수경 시설의 펌프를 고치고 분수에 다시 물을 채우는 데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어반 스파 어반 스파Urban Spa는 레크리에이션의 용도로 물을 활용하는 것을 가장 기본적인 목표로 삼은 임시 편의 시설이다. 설계팀은 나무 팔레트, 비계, 자투리 천 등의 재료를 재활용해서 최소의 비용으로 프로젝트를 완성했다. 나무 팔레트를 이용하여 분수 시설을 야외 목욕시설로 탈바꿈시켰으며 그 외에 계단, 선 배드, 작은 화단, 경사로 등의 부속 시설물도 만들었다. 비계 유닛은 나무 팔레트와 천막을 지지하는 기초 구조물로 이용되었고 휴식 공간과 작은 전망대를 제공한다. 임시 풀장으로 이용되는 분수는 주변의 큰 나무들이 드리우는 그늘과 끊임없이 쏟아지는 물로 인해서 주변지역보다 시원한 미기후를 조성해 주변 유동 인구를 풀장으로 끌어들인다. 또한 어반 스파는 이전부터 이 구역에서 주민들을 위해 진행되고 있던 줌바zumba 및 요가 수업의 장소로도 이용되며 우루에타 공원을 활성화시킨다. 어반 스파는 임시 가변 설치물로 곧 철거될 예정이지만 프로젝트를 완성하기 위해 설계팀과 지역 주민들이 함께 힘을 모으고 아이디어를 짜냈던 경험은 지역을 위한 새로운 희망을 움틔울 것이다. ‘불모지를 위한 워크숍’에 참여한 지역 시민 단체 임풀산도 카파시다데의 감독 가브리엘라 데라 크루즈 아르멘다리즈Gabriela de la Cruz Armendáriz는 “지역 주민들의 우려와 고민을 존중하고 공감의 디자인을 제안한 설계팀과 뜨거운 태양 아래 작업했던 학생 및 주민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앞으로 우리도 공공 공간을 개선시키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항상 최선을 다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클라우드 시딩’ 플라자 파빌리온
이스라엘의 국립 디자인 박물관인 홀론 디자인 박물관Design Museum Holon의 ‘클라우드 시딩Cloud Seeding’플라자 파빌리온은 디자인이 공공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것을 넘어 공공의 경험을 발전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클라우드 시딩’은 2015년 7월 4일부터 10월 31일까지 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이스라엘의 도시 그늘Urban Shade in Israel’ 전시의 일부다. 한여름, 이스라엘 도시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공공 공간에 그늘이 없다는 점이다. 열섬 현상 때문에 점점 뜨거워지는 도시의 더위를 거리, 광장, 혹은 공원이나 학교 운동장에서도 피할 수 없다. 전시를 기획한 큐레이터인 마틴 바일Martin Weyl은 적절한 기술을 활용해 공공 공간에 그늘을 만들어 좀더 나은 도시적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번 전시는 단순히 최근의 트렌드를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도시계획가,생태학자, 건축가, 조경가, 경제학자 등에게 도시 내 그늘을 만들 것을 촉구하는 선언과 다름없다. ‘클라우드 시딩’은 태양과 그늘 사이의 경계를 창조한다. 이 경계는 역동적이고 즉각적으로 반응하며 파편화되어 있다. 이러한 경계는 메시 생지mesh fabric 천장 위에서 움직이는 수천 개의 가벼운 공 혹은 ‘씨앗들’이 만들어 낸다. 이 ‘씨앗들’은 페트병을 재활용해 만들어졌다. 천장의 표면에 놓인 3만 개의 공들은 바람에 따라 자유롭게 움직인다. 이러한 머리 위의 움직임은 파빌리온의 각기 다른 영역에서 공공 이벤트가 일어나도록 유도한다. 문화적이고 레저와 관련된 프로그램이 보이지 않는 날씨의 힘과 연계되는 것이다. 박물관 플라자 주변에 부는 바람과 같은 미기후는 움직이는 천장이라는 물질적인 형태를 부여받고, 이는 그 아래에 있는 사람들을 매혹한다. 매일 매일 산들바람이 지중해로 부터 불어와 오후에는 네게브 사막Negev Desert으로 불어 가면서 대중들에게 핵심적인 경험을 선사한다. 이 구조물은 박물관의 어반 플라자에 위치하며, 박물관과 시가 주최하는 다양한 이벤트를 위해 이용된다. 대중들은 공연에 초대받고, 옥외 댄스 강습에 참여하고, 무료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혹은 그늘을 단순한 라운지로 이용하기도 한다. 해변 의자는 방문객들이 머리 위로 움직이는 천장을 바라보며 느긋한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한다. 다목적 플라자 파빌리온은 박물관 방문객과 일반적인 대중들 모두에게 열려 있는 공공 공간이다. ‘클라우드 시딩’은 온실과 같은 이스라엘의 농업 경관을 유비쿼터스 건물 유형으로 변환시킨다. 이때 온실이라는 구조적인 틀은 (벽과 지붕 패널 없이) 단순하게 유지된다. 농업 용도의 온실은 문화, 레저 그리고 공공 이벤트를 위한 플라자 파빌리온으로 재-전용되는 것이다. ‘클라우드 시딩’의 디자인은 모두MODU가 지오텍투라Geotectura와 함께 했다. 뉴욕에 기반을 두고 건축 실무를 하고 있는 모두는 사람을 환경과 연결해주는 스마트 디자인을 추구하며 대개 여러 분야와 함께 협업하며 작업한다. 건축가인 코리 박사Dr. Cory가 설립한 지오텍투라는 혁신적인 디자인과 지속가능성에 특화된 실무를 지향하고 있다.
[시네마 스케이프]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어느 봄날, 첫 아이 낳은 후 정신없이 살던 두 아줌마가 어렵사리 저녁 나들이를 하게 됐다. 홍상수라는 신인 감독의 영화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을 보기 위해서였다. 영화가 시작되기 전 짧은 시간을 알차게 보내기 위해 근처 맥줏집으로 향했다. 종로 연타운은 대학 시절과 변함없이 성업 중이었다. 마침 그날은 성년의 날이어서 그곳은 젊음의 열기로 가득했다. 대학 시절의 추억과 오랜만의 밤 문화에 살짝 들뜬 우리는 맥주를 빨리 많이 마셨다. 그것도 모자라 검정 봉지에 캔 맥주를 넣어 극장에 들어갔다. 시네코아라는 극장은 그런 짓이 살짝 용인되는(물론 근거 없는 주장이다), 소위 ‘아트 무비’로 분류되는 영화를 상영하는 곳이었다. 우리는 맥주를 몰래 마시기 위해 객석 가운데 있는 기둥 근처에 자리 잡았다. 관객은 몇 명 되지 않았고 영화는 소문대로 충분히 낯설었다. 맥주 탓에 둘 다 화장실을 들락거려서 가뜩이나 낯선 영화의 집중도는 현격히 떨어졌다. 영화가 끝날 때쯤 또 화장실에 다녀온 나는 갑작스러운 살인 사건 장면을 보고 누가 왜 죽인 거냐고 친구에게 물었다. 그녀는 심각한 얼굴로 이렇게 대답했다. “잘 모르겠는데.” 그 후 내게 홍상수의 영화는 얼마 동안 ‘잘 모르겠는’ 영화였다. 해외 영화제에서 상을 받고 국내외 비평가들은 엄청난 찬사를 보냈으며 논문 주제로도 심심치 않게 등장했다. 영화는 점점 단순해지는데 평론은 더 어려워지고 심오해졌다. 그럼에도 그의 영화가 개봉할 때마다 첫날 달려가서 봤다. 기존 상업 영화들이 식상해서였는지 ‘아트 무비보기’라는 허세였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여자에게 잘 보이고 싶어 안달이 난 찌질한 남자가 등장했고, 그들은 항상 술을 마시며 남자는 여자와 자거나 혹은 자고 싶어 했다. 더는 극장에서 맥주를 마시지 않았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소주가 마시고 싶었다. 서영애는 ‘영화 속 경관’을 주제로 석사 학위를 받았고, 한겨레 영화 평론 전문 과정을 수료했다. 조경을 제목으로일하고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으며 영화를 삶의 또 다른 챕터로 여긴다. 영화는 경관과 사람이 구체적으로 어떻게관계 맺는지 보여주며 인문학적 상상력을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텍스트라 믿고 있다.
[100 장면으로 재구성한 조경사] 로마, 헬레니즘을 만나다- 키케로의 증언
#63 농자 로마지 대본 중국 고사에 현인들이 농사를 짓다가 재상으로 등용된 사례가 종종 전해진다. 고대 로마에도 그런 고사가 있다. 로마의 군자軍者이자 농자였던 킨키나투스Cincinnatus(B.C. 519~430) 역시 밭을 갈던 중 로마 원로들이 모셔다가 독재관으로 임명했다고 한다. 독재관이란 외침 등으로 인해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임명되는 임시직으로서 절대적인 통수권이 주어졌지만 임기가 6개월로 제한되어 있었다. 킨키나투스 장군은 불과 16일 만에 외적을 물리쳐 임무를 완수했다. 시민들은 장군이 그대로 눌러앉아 권력을 휘두를까 은근히 걱정했으나 그는 곧바로 밭으로 돌아갔다. 이런 일이 두 번이나 있었다. 이후 킨키나투스는 로마의 덕목을 상징하는 인물로 길이 추앙되었다.1 킨키나투스 장군의 연대가 말해주듯 지금 우리는 시대를 좀 더 거슬러 올라가 로마가 시작되었던 무렵으로 더듬어 가고 있다. 기원전 753년 로물루스가 로마의 팔라티노 언덕에 도시 국가를 건설하고 왕이 되었을 때 그를 도왔던 건국 공신들이 있었다. 이들이 파트리키라는 귀족층을 형성하고 원로원이 되었으나 본업은 모두 농자였다. 로마인들은 천년의 역사가 흐르는 동안 로마가 농경 사회에서 출발했다는 사실을 잊은 적이 없다. 그뿐만 아니라 힘겹게 일하는 농자야말로 고귀한 로마인의 유일한 직업이라는 점을 누누이 강조했다. 이 사실은 우선 원로원을 비롯하여 모든 로마의 정치가, 법관들이 녹봉 없이 근무했다는 사실에서도 증명된다. 신흥 세력으로서 로마 토착 세력의 철통같은 방어선을 뚫고 마침내 성공한 키케로의 경우, 로마 근교 아르피눔―지금의 아르피노(Arpino)―에 있는 자신의 빌라를 찾을 때면 가슴에 뿌듯함이 가득했다고 증언하고 있다. “여기에 내 선조들의 근본이 있고 그들이 찾던 성소가 있으며 곳 곳에 그들의 자취가 가득하다.”2 거대한 제국의 건설, 전쟁과 뛰어난 군사력, 엔지니어 기술, 콜로세움의 전투사들, 웅장한 건축물 등 지금 우리가 로마에 대해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것들이 로마 문화의 꽃이라면 그 뿌리는 농업이었다. 이는 로마의 유력한 사상가들이 농업에 대한 저술을 적지 않게 남겼다는 사실에서도 증명된다. 그 중 네 명의 작가가 가장 주목받고 있다. 최초로농업서를 집필한 인물은 ‘대大 카토Marcus Porcius Cato(B.C. 234~149)’라고 불리는 인물이었다. 정확한 집필 연도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대개 기원전 170~60년경이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로부터 백 년도 넘게 지난 기원전 37년경, 마르쿠스 테렌티우스 바로Marcus Terentius Varro(B.C. 116~27)라는 인물이 농업론 혹은 농사론De re rustica을 집필했고 그로부터 또 다시 백 년가량이 흐른 뒤 콜루멜라Columella의 방대한 농사서De re rustica libri 13권이 발표되었으며, 서기 4세기에는 팔라디우스가 14권 분량의 ‘농가월령가’3를 지었다. 그 중 처음의 두 작가, 대 카토와 바로의 작품을 한번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 우선 대 카토의 농업론의 경우, 시대적으로 보아 로마의 토지 분배에 큰 변화가 있던 때에 집필되었다는 사실이 주목을 끈다. 전설에 의하면 처음 로물루스 왕이 국가를 세운 뒤 모든 로마인들에게 공평하게 농토를 나눠주었다고 한다. 가구당 약 1,700평 정도의 규모였다.4 온 가족을 먹여 살리기에는 작은 땅이었으나 공용지가 있어 모자라는 분량은 거기서 충당했다. 이렇게 소규모 의 농토를 나눠주던 전통은 꽤 오랫동안 유지되었다. 그러던 것이 기원전 3세기 무렵부터 시작된 영토 확장과 함께 소농 기본의 원칙이 무너지고 대지주 세력이 형성되었다. 점령한 땅은 일단 국유지5로 지정되었으나 이들을 효과적으로 관리·운영하기 위해서는 소규모 농지 시스템을 고수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영유지에 대한 처분 법을 제정하고 이 법을 집행하기 위해, 즉 땅을 분배하고 관리·감독하기 위해 ‘감찰관’이란 직분을 만들었다. 이 감찰관이 원로원들 사이에서 선발되었으므로 자기들끼리 토지를 나눠가졌던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대 카토는 재무관, 법무관, 원로원, 집정관을 거쳐 감찰관을 고루 지낸 정치가였다. 불어난 토지를 어떻게 경영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 결과 그의 농업론은 어떤 작물을 어떻게 심어야 최대의 이익을 얻을 수 있는가에 대한 제안으로 점철되어 있다. 결국 땅을 이용하여 수익을 올리자는 투자 제안서이기도 했다. 요즘 같으면 도시 개발로 한몫 챙겼을 터다. 서문에서 그는 농업이야말로 상업이나 금융업에 비해 유일하게 정직하고 명예로운 수입원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그 자신은 노예 매매와 무역업으로 큰돈을 벌었다. 여기서 얻은 수익을 다시 토지에 투자했으니 모순될 것 없다는 주장인 듯하다. 그러므로 카토가 농업서를 집필한 진정한 이유는 투자 사업으로 인해 실추된 명예를 만회하기 위해 자신을 농사꾼으로 포장한 것이라는 해석이 충분히 가능하다. 고정희는 1957년 서울에서 태어나 어머니가 손수 가꾼 아름다운 정원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어느 순간 그 정원은 사라지고 말았지만, 유년의경험이 인연이 되었는지 조경을 평생의 업으로 알고 살아가고 있다. 『식물, 세상의 은밀한 지배자』를 비롯 총 네 권의 정원·식물 책을 펴냈고,칼 푀르스터와 그의 외동딸 마리안네가 쓴 책을 동시에 번역 출간하기도 했다. 베를린 공과대학교 조경학과에서 ‘20세기 유럽 조경사’를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베를린에 거주하며 ‘써드스페이스 베를린 환경아카데미’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그들이 꿈꾼 도시, 우리가 사는 도시] 쾌락의 도시, 절제의 도시
도시와 쾌락 1990년대 대한민국은 여러 측면에서 돌이키기 어려운 변화를 겪었다. 나라 밖에서는 냉전과 이념 대립의 시대가 저물어 갔고, 안에서는 정치 민주화를 향한 힘겨운 발걸음이 시작되었다. 정치적으로는 체제의 정당성 확보보다는 폭등하는 집값 안정이, 사회적으로는 공동체 재건보다는 개인의 정체성 발견이 더 시급한 과제였다. 이와 함께 새로운 종류의 놀이 문화에 대한 갈망, 때로는 억눌린 욕망의 분출과 퇴폐적인 즐거움에 대한 추구가 도시 공간 깊숙이 파고들었다. 1990년대 초 부산에서 첫선을 보인 ‘노래방’이 짧은 시간에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국민 유흥의 장소로 자리매김했고, 마광수 교수의 『즐거운 사라』로 대표되는 야하거나 관능적인 여자(혹은 남자)―나아가 이들을 향한 시선―에 대한 재발견이 ‘압구정 오렌지족’으로 상징되는 젊은 세대의 거침없는 자기표현과 향락적 판타지 위에 묘하게 포개지곤했다. 그뿐인가. 각종 ‘러브 호텔’과 ‘변종 카페’가 우후죽순처럼 도시 경관을 잠식했고, 재벌 2세와 유명 연예인들이 환각 상태에서 벌인 ‘마약 파티’가 우리 사회를 충격에 빠뜨린 것도 1990년대에 일어난 현상이다.1 각종 즐거움에 대한 요구가 늘어나고 이에 따라 도시 공간이 끊임없이 바뀌는 것 자체가 이상할 까닭은 없다. 인간은 끊임없이 ‘쾌락의 쳇바퀴hedonic treadmill’를 도는 존재 아니었던가2 소득 수준이 높아지거나 과거 갈망했던 즐거움을 손쉽게 얻을 수 있다고 해도 사람들은 또다시 새로운 종류의 즐거움을 찾기 위해 계속 쳇바퀴를 돌리고, 때로는 사회적 금기로부터의 일탈과 탈주를 꿈꾼다. 이러한 일탈적 도시 경험에는 국경이 없다. 16세기 후반으로 그 기원이 거슬러 올라가는 쿠바 하바나의 칼레 오비스포Calle Obispo 거리에서 경험할 수 있는 라틴 음악과 술, 세계 엔터테인먼트의 수도이자 카지노의 본산인 라스베이거스의 쇼와 도박, 그리고 필리핀 앙헬레스와 같은 ‘죄악의 도시Sin City’에서 벌어지는 퇴폐적 밤 문화와 이를 향한 어른들의 낯뜨거운 호기심도 여기에 포함된다(그림1). 쾌락의 쳇바퀴가 굴러감에 따라 각종 유희는 때로는 합법적으로, 때로는 느슨한 규제를 틈타 도시 공간에 침투하게 되며, 익숙함과 일탈이라는 두 경험의 축은 도시 변화의 원동력이 된다. -방, -룸, -탕, -텔, -장 적어도 지난 20여 년간 각종 ‘-방’, ‘-룸’, ‘-탕’, ‘-텔’, ‘-장’은 한국 도시에서의 밤 문화를 바꾸는 데 공헌한 단역 배우들이다(그림2). 그 기원은 다르지만 이들 공간은 다양한 종류의 술과 음료, 음식과 노래, 춤과 휴식, 게임과 스포츠, 때로는 낯선 타인과의 교류 혹은 은밀한 만남의 기회를 제공한다. 물론 20세기 초 서울에 등장한 유곽이나 1960~70년대 무교동을 비롯한 각종 유흥가도 다양한 형태로 진화하며 오늘날에 이르고 있지만, ‘-방’, ‘-룸’, ‘-탕’, ‘-텔’, ‘-장’은 그 가벼운 몸집과 다채로운 서비스를 무기로 끈질긴 생명력을 보인다. 이들은 한때 심각한 사회적 유해성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터키탕’처럼 한 국가의 명예를 훼손시켰다는 항의가 제기될 만큼 불명예스러운 서비스 공간이기도 했다.3 그럼에도 적어도 일부 용도에 대해서는 그 규제가 완화되거나 때로는 적법한 시설로 전환되는 데 성공했다. 노래방이 그 좋은 예다. 등장과 동시에 빠른 속도로 퍼져나간 노래방의 인기에 다소 놀란 듯 정부는 1992년 ‘풍속영업의 규제에 관한 법률’에 따라 노래방 심야 영업과 미성년자 출입을 전면 금지했다.4 하지만 1990년대 후반 이 규제는 불필요하게 국민 생활을 구속하는 정책으로 낙인찍혔다. 곧이어 영업 시간 규제가 철폐되었고, 청소년 출입은 심야 이전에 한해 전면 허용되었다. 노래방에 대한 유해성 논란은 채 10년도 지속되지 못했다. 김세훈은 1978년생으로 서울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한 후 하버드GSD에서 도시계획학 석사와 박사 학위(DDes)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도시설계 이론과 스튜디오 수업을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 『신흥도시 개발 모델』, 『도시형태변화분석방법론노트』, 『도시와 물길(A City and Its Stream)』 등이 있으며, 한국, 중국, 동남아시아의 도시 연구와 설계를 함께 진행하고 있다.
[그들이 설계하는 법] 경관편집자는 발견하고 엮는다
2014년, 부천의 한 공단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경관에디터’라는 단어를 조어했다. 잡지 편집자가 여러 저자의 글로 하나의 잡지를 만들어내듯이 내 스스로 새로운 경관을 창조하기보다는 편집하는 역할이 필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 역할에 대한 설명을 위해 ‘경관(혹은 landscape)’이라는 단어와 ‘편집(혹은 editing)’이라는 두 가지 키워드를 놓고 경관편집자, 경관에디터, 랜드스케이프에디터 등 이런 저런 조합을 해보았는데 어떠한 것도 적당해 보이지 않았다. 주변에서도 어떤 의도인지는 알겠지만 어감이 좋지 않다고들 했다. 그러다 경관을 영어인 ‘랜드스케이프’로 쓰면 너무 길어 ‘경관’이라는 단어를 선택하니 뒤의 단어도 같은 한글인 ‘편집자’가 적당했다. 작가로서 작업해 주세요? 그리고 경관편집자 경관편집자라는 단어를 조어하도록 한 프로젝트의 명칭은 ‘예술이 흐르는 공단 공공미술(이하 예술 공단 프로젝트)’이다. 경기문화재단과 부천테크노파크가 3년 동안 함께 진행한 프로젝트로, 2014년이 마지막 해였다. 첫 해에는 최정화 작가와 조민석 건축가, 김형관 미술가가 참여했다. 최정화는 공단에서 나온 고철을 이어 붙여 ‘당신은 꽃입니다’라는 조형물을 만들었고, 조민석은 조형물이 놓이는 꽃방석을 만들어 공단 외부 공간한쪽에 설치했다. 김형관은 ‘달리는 파사드’라는 제목으로 건물 내부 공간을 벽화로 연출했다. 두 번째 해에는 박은선 작가가 참여했다. 그는 공단 내 건물 외벽을 대상으로 ‘유기적 공간’이라는 이름의 벽화 작업을 했다. 이 작품에는 ‘가로 24m, 높이 36m로, 작업 기간만약 2개월 이상 소요된 국내 최대의 공공미술 벽화’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마지막 해,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 내게 주어진 역할은 ‘작가’로서 그동안의 사업을 마무리하는 것이었다. 조경 분야에서의 작가라? 작가라는 단어에 대한 고민이 많았고 경기도 문화재단과도 이 작가라는 단어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에게 ‘조경’이라는 분야는 낯설었고, 특히나 나는 한평공원처럼 개인의 감성이나 조형적 감각을 표현하기보다는 주민들의 의견에 좌지우지 된다고 여겨지는 참여 디자인 작업을 많이 해왔기에 그들의 우려는 더욱 컸다. 조경 분야에서의 작가? 조경가? 작가의 자의식? 그리고 이용자? 같은 단어들 사이를 오고가다, 큰 개념 정리는 접어두기로 했다. 대신 이 프로젝트에서의 나의 역할을 앞서 언급한 ‘경관편집자’로 스스로 규정했다. 지난 2년 동안 조성된 조형물과 벽화, 광장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연못, 여러 조각상 등, 이미 많은 조형적 요소들로 꽉 차 있는 이곳에서 내가 할 일은 이 요소들을 엮어주는 역할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김연금은 조경작업소 울을 운영하고 있으며, 커뮤니티 디자인 센터의일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커뮤니티 디자인, 마을만들기를 일과 활동의 중심으로 삼고 있다. 박사 학위 논문을 발전시킨 『소통으로 장소 만들기』(한국학술정보, 2009), 일상의 경관에서 이루어지는 거시적 구조와 미시적 요소와의 상호 관계를 관찰하고 기록한 『우연한 풍경은 없다』(나무도시, 2011) 등의 저서가 있다.
[조경의 경계를 넘어, 조경 속으로] 무나 안드라오스
‘매일’이라는 뜻을 가진 ‘데일리 뚜레쥬르’(캐나다에서 영어와 불어를 병기하는 문화를 표현했다)는 캐나다 몬트리올에 위치한 별난 디자인 회사다. 특별히 어떤 일을 한다고 정의하기에는 너무나도 자유로운 작업을 해 온 집단. 굳이 말하자면 인터랙션interaction 디자인을 이용해 도시 공간(주로 외부 공간)에 공공 설치예술 작품을 해온 아티스트들이다. 그들의 작품은 부드러우면서도 감동적인 사회적 아젠다, 즉 ‘함께 사는 세상, 더불어 사는 우리’라는 메시지를 매우 세련되고 참신한 방식으로 전한다는 특징이 있다. 하나로서는 지극히 단순한 소리일 뿐이지만 여러 개가 어울렸을 때에는 형용할 수 없이 아름다운 화음을 연출해 내는 ‘21개의 그네21 Balançoires’, 한 명이 부르는 노래는 그저 음치일 뿐이지만 수십 명이 함께 부르면 그 어떤 합창보다도 멋진 감동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거대한 합동 노래방Giant Sing Along’ 프로젝트 등이 대표적이다. 공동의 삶, 타인과 함께 함으로써 평범함이 특별함으로 전이되는 놀라운 경험을 선사한다. 공감empathy이 화두가 되는 시대에 과연 조경과 도시설계가 만드는 공간은 충분한 역할을 해내고 있는 것 일까? 이용자의 마음과 시대적 성향, 사회적 요구를 과학적으로 충분히 검토하고 있는가? 우리의 디자인은 진정 창의적이라 말할 수 있을까? 멜리사 몽지아Melissa Mongiat와 함께 데일리 뚜레쥬르를 창립해 이끌어 온 공동 대표 무나 안드라오스를 만나 확인해 보자. Q. 데일리 뚜레쥬르의 작업 영역은 매우 넓은 것 같다. 여러 분야의 경계를 넘나드는 포괄적인 프로젝트를 해왔는데 당신의 일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는가? A. 우리 회사에서 주로 다루는 일은 인터랙션 디자인Interaction Design이라 할 수 있다. 즉, 사람들의 경험에 집중하며 사람들이 서로 소통하고 세상과 대화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있다. 따라서 중간에서 서로 다른 영역들을 이어주는 매체medium 자체가 우리의 프로젝트가 다루는 대상이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지난 수년간 대부분의 작업은 공적 장소나 대중과의 직접적인 상호 작용이 이루어질 수 있는 환경에 설치되었다. Q. 데일리 뚜레쥬르의 사명이 있는가? 그러한 작업을 하는 이유를 밝힌다면? A. 우리의 관심은 ‘대화’와 ‘교류’다. 우리 회사의 핵심 멤버들은 최근 몇 년간 건강한 시민 사회를 만드는 과정에서 공유 공간shared space과 공유하는 삶shared common life의 중요성과 그 역할에 대해 알려주는 여러글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았다. 우리 프로젝트를 통해좀 더 많은 사람들이 서로에게 마음의 문을 열고 서로의 삶에 관심을 가지며 궁극적으로 진심이 담긴 대화를 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개인이라는 경계를 넘어서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Q. 무척이나 도시적urbanistic이고 공적인 사업 목표인 듯하다. 이런 회사를 운영하게 된 개인적 배경과 회사를 설립할 당시의 상황에 대해 말한다면? A. 원래 전공은 인문학과 영화학이다. 2000년대 초반 학교를 졸업할 무렵에는 영화학의 연장선상에서 새로운 매체로서의 웹과 디자인에 관심이 많았다. 당시 인터넷엔 그 어떤 규율도 없었고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경험을 통해 인터랙션 디자인 회사를 설립했는데 초반에는 주로 사용자 경험user experience을 연구하다가 점차 물리적 형태를 가진 것들로 옮겨갔다. 가상 공간에서 실험한 아이디어를 현실의 3차원 공간에 적용하면서 공동 창업자인 멜리사를 만났다. 멜리사의 전공은 환경 그래픽 디자인이고 주로 전시 디자인narrative environments쪽의 일을 해왔다. 그녀는 런던에서, 나는 뉴욕에서 활동하다가 몬트리올로 돌아오게 되었는데 서로의 관심사가 비슷하다는 것을 알고 함께 회사를 창업하게 되었다. Q. 데일리 뚜레쥬르의 프로젝트는 음악, 무용, 시를 매우 빈번히 사용하는데, 이것은 개인적인 취향 때문인가 아니면 프로젝트를 위한 도구로 이용하는 것인가? A. 직원 중 아무도 직업적인 예술 교육을 받은 경우가 없다. 우리는 이용자와 좀 더 인간적인 관계를 맺기 위해 이러한 예술적 매체를 활용한다. 예술은 시공간과 언어를 초월해 모두를 묶을 수 있는 만국 공통어이기 때문이다. 최이규는 1976년 부산 생으로 뉴욕에 기반을 두고 실무와 실험적 작업을 병행해 왔다. 북미와 유럽의 공모전에서 수차례 우승했고, 주요 작품이 뉴욕시립미술관 및 소호, 센트럴 파크, 두바이, 올랜도, 런던, 위니펙 등지의 갤러리에 전시되었다. UNKNP.com의 공동 창업자이며, 저서로 『시티오브뉴욕』(공저)이 있다. 현재 계명대학교 도시학부에서 조경 설계를 연구하며 학생들이만드는 것의 기쁨을 알아가도록 돕고 있다.
[재료와 디테일] 속도를 만드는 경계석
도시의 가로를 걸으며 보게 되는 가장 흔한 풍경은 무엇일까. 가로수, 건물, 도로 등등 많은 것들이 있지만 개인적으로 바닥의 포장과 그 영역을 엄정하게 규정하는 경계석들이 눈에 쉽게 들어오는 경우가 많다. 직업의 특성도 있지만 늘 장소가 바뀔 때마다 바닥의 포장 재질이나 패턴은 변해도 경계석만은 고정된 모습으로 영역을 나누고 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도시를 논할때 늘 빼놓지 않고 회자되는 것 중 하나가 누적된 시간의 모습이다. 이때 시간의 적층은 단순히 옛것의 낡음이 겹쳐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살아온 삶의 모습이 다양한 방식으로 적층되며 표출되는 다양성의 아름다움이다. 때로는 세련된 모습으로 혹은 투박하지만 두텁고 견고한 모습으로 말이다. 이러한 다양한 표현의 양태야말로 열린 민주 도시가 갖는 참모습이라고 생각한다. 경계석은 근대 도시에 가로 경관을 형성하게 한 가장 대표적인 소재이며 명확하게 공간을 구분하는 가장 기능적인 재료다. 도시의 근간을 차지하는 도로의 기초가 되는 작업이고 각각의 소유 관계를 분명하게 하여 분쟁을 억제하는 자본주의 세상에 없어선 안 될 존재다. 또 그것은 속도와 관련이 있다. 속도는 우리가 빠르게 도시를 발전시키고 성장하게 만든 원동력이다. 경계석은 이를 가능하게 만든 기본 소재이며 흐름을 만드는 재료이기도 하다. 자동차를 통한 물류, 사람의 이동, 도시의 가로 구조를 형성하는 도로의 기본 골격을 형성하고 빗물의 운반로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물의 흐름을 통제하는 도시 인프라의 기능도 수행한다. 경계석의 모양을 보면 돌이 적층된 면적인 이미지보다 턱을 만들어 분리하고 개발을 촉진하는 가속도와 어울리는 선적인 이미지로 읽힌다. 자본주의의 급속한 팽창과 산업화는 세분화된 소유의 개념을 발생시켰고 그에 따라 도시는 폭발적으로 성장하였다. 이대영은 여기저기 살피고 유심히 바라보기 좋아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려 노력하고 있다. 만드는 것에 관심이 많으며, 작고 검소하며 평범한 조경설계를 추구하고 있다. 영남대학교에서 공부했고 우대기술단과 씨토포스(CTOPOS)에서 조경의 기초를 배웠다. 조경설계사무소 스튜디오엘(STUDIO L)을 시작하고 작은 작업들을 하고 있다. www.studio89.co.kr
[공간 공감] 홍익대학교 중앙광장
2006년 홍대 인근에 사무실을 연 후 점심시간이면 가끔 직원들과 함께 건축학과 졸업전시회나 강연을 보러 다니며 홍대 캠퍼스 진입 공간인 중앙광장을 만나게 되었다. 이곳은 폭이 30m쯤 되고 길이가 300m 정도인 좁고 긴 형태이지만 홍대 내에서는 가장 넓은 오픈스페이스다. 당시에는 지금과 달리 고목 플라타너스와 양버들 그리고 느티나무 몇 주가 광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다른 대학교 캠퍼스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2007년부터 이 공간의 리노베이션이 시작됐고 1년 후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중앙광장이 다시 태어났다. 변신과정 내내 이 광장의 새로운 모습에 대한 기대감이 컸지만 완공 후의 모습은 무척 실망스러웠다. 원래 있던 나무 사이에 1~3m 키의 갖가지 나무를 두서없이 식재하여 마치 서울 근교의 그렇고 그런 수목 농장에 와 있는 느낌이 들었다. 전체적인 공간의 스케일과 조화를 이루지 못해 마냥 어색하기만 했다. 한창 조경 설계에 대한 열정이 불타오르던 시절, 나는 왜 멀쩡한 광장을 이렇게 만들어버렸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 공간을 다른 시각으로 보게 된 계기가 몇 년 후 찾아왔다. 2010년부터 홍대 건축학과 4학년의 조경 과목을 맡게 되면서부터 나는 광장을 매주 자연스럽게 지나다니며 변신을 거듭하는 이 광장의 매력을 다시 발견할 수 있었다. 새로 심은 수목들이 성장을 거듭하면서 광장은 계속 변해갔다. 이 연재를 위해 factory L의 이홍선 소장, KnL 환경디자인 스튜디오의김용택 소장, 디자인 스튜디오 loci의 박승진 소장 그리고 서울대학교정욱주 교수와 서울시립대학교 김아연 교수 등 다섯 명의 조경가가 의기투합하여 작은 모임을 구성했다. 이들은 새로운 대상지 선정을 위해 무심코 지나치던 작은 공간들을 세밀한 렌즈로 다시 들여다보며, 2014년1월부터 한 달에 한 번씩 유쾌한 답사 모임을 이어가고 있다.
바르토브 스퀘어
바르토브 스퀘어는 2009년 국제 설계공모에서 당선되어 2013년 완공한 코펜하겐의 주요 공공 영역 개선 프로젝트 중 하나다. 처음 대상지를 답사했을 때 광장은 대형 주차장과 밀집한 택시로 들어차 있었으며 지역의 명물인 루어1 연주자Lure Players 동상은 자동차의 홍수속에서 고립된 채 빛이 바래고 있었다. 프로젝트의 전략은 덴마크 수도 중심에 있는 시청과 바르토브 스퀘어를 연결하는 시퀀스를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약 180만 리라를 코펜하겐 시의회로부터 지원받아 시청과 인접한 시내 중심과 주요 자동차 도로를 개선하는 공사에 착수했다. 시내 중심의 주요 자동차 도로와 교통 체계를 개선하는 작업은 시의 교통과 물류 이동에 많은 부담을 가져오기 때문에 신중하게 프로그램을 조직하고 이 구역에서 작동하고 있는 다른 인프라 시설(대상지와 인접한 곳에서 지어지고 있는 지하철역과 같은)과 협조 체계를 이뤄 프로젝트를 단계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었다. 프로젝트 공사로 인해 주요 택시 승차장과 관광버스 주차 구역은 일시적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ArchitectHall McKnight Architects Project DirectorAlastair Hall, Ian McKnight ContributorsNigel Murray, Matthew McCrum, Patrick Smyth,Susie Carson, Kate Doherty, Richard Dougherty Construction Site ManagementCopenhagen City Council,Katrine Olesen Planning Structural FrameworkGrontmij A/S(Ole Sørensen,Peter Grinsted, Tommy Søndergaard, Jesper Aarup) Landscape ArchitectGHB Landskabsarkitekter a/s(Morten Weeke Borup, Henrik Dixen Dausell, Trine Dybdal Emmersen,Marianne Rimer) ClientCopenhagen City Council LocationCopenhagen, Denmark Area8,800m2 Completion2013 PhotographsStamers Kontor, Hall McKnight 홀 맥나이트 아키텍츠(Hall McKnight Architects)는 2003년 설립된 건축설계사무소로 벨파스트에 기반을 두고 주로 영국과 유럽에서 활동하고 있다. 2008년 영국과 아일랜드의 ‘올해의 젊은 건축가’ 상을 수상했다. 맥 아트 센터(MAC Arts Centre), 킹스 칼리지 런던(King'sCollege London)의 쿼드랭글 빌딩 등의 작업을 했다.
텔레키 스퀘어
텔레키 스퀘어는 부다페스트 중심가에서 어느 곳보다 다양한 사회 구성원과 인종이 밀집한 곳에 있다. 이곳은 부다페스트에서 가장 소외된 사회적 취약 계층이 살고 있는 지역이다. 유럽연합으로부터 이 광장의 재조성 기금을 조달한 후부터 지역 주민이 주체가 된 포괄적인 계획 과정이 시작되었다. 야외 레크리에이션활동과 사회적 참여 활동이 거의 부재한 이 지역에서 범죄의 온상이자 기피 장소였던 이 남루한 공간은 생기 넘치는 근린 지구 센터로 탈바꿈했다. 지역 주민이 주체가 된 텔레키 스퀘어 재조성 사업에서 우리는 중재 과정이 오늘날의 사회에서 점점 더 중요한 역할을 하며 생명력 있고 살만한 도시를 만들어내는 데 일익을 담당한다는 점을 보여주고자 했다. 협동과 소통, 참여를 촉진해내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지역 공동체의 뚜렷한 정체성이 형성될 수 있다. 텔레키스퀘어 프로젝트의 전반적인 설계안을 만들면서 포괄적인 계획 과정이 중요한 지침이 되었다. 이제 이곳의 미래는 생기 넘치는 모습으로 그려지고 사람들의 소통을 촉진시킬 수 있는 다양한 활동들로 채워질 것이다. 포괄적인 설계 개념을 구체화시키는 것 외에 설계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성과 중 하나는 이 지역이 당면한 문제와 앞으로 요구되는 활동을 담당할 텔레키 스퀘어 조합이 설립되었다는 점이다. 이 지역 주민들은 이미 많은 공공 예술 행사를 조직하는 데 관여했으며 설계 과정이 마무리된 것을 축하하는 가든 파티와 같은 자체프로그램을 짜기도 했다. 심지어 대상지에서 크리스마스 파티를 열기도 했다. 이러한 활동은 문화적인 행사나 활동이 공간 조성의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 있고 지역 공동체가 꿈꾸어 나갈 전망을 바꾸고 발전시키는 데큰 기여를 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DesignUjirany Landscape Architect (Dominika Tihanyi,Orsolya B. Orosz, Arpad Kovacs, Gabor Szohr), Local Expert of Community-based PlanningKristin Faurest ClientMunicipality of Jozsefvaros, 8th district of Budapest LocationBudapest, Hungary Area14,000m2 Budget456,000€ Design2013 Completion2014 PhotographsUjirany Landscape Architect, Tamas Bujnovszky, Tibor Vermes, Gyula Nyari 우이라니 랜드스케이프 아키텍트(Ujirany Landscape Architect)는헝가리 부다페스트의 밀레너리 파크(Millenary Park)를 디자인하면서2000년에 설립되었다. 우이라니 그룹의 목표는 현대인이 직면한 새로운도시적 문제에 맞는 새로운 해결법과 방향을 설계로써 제시하는 것이다.조경은 디자인을 통해 통합적이고 열린 사회를 창조하는 학문이라는 믿음에 기반을 두고 활동하고 있다.
[디자인 노트] 국가라는 그릇 김영민
언제부턴가 나는 일을 시작하기에 앞서 의심하는 습관이 생겼다. 표면적인 요구사항들이 언제나 내가 진정 해주기를 바라는 일들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더 난감한 사실은 그들도 대부분 정확히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다는 점이다. 그래서 나는 나에게 요청된 다른 이의 욕망은 역설적으로 내가 그 욕망을 다시 정의해야만 충족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어차피 모든 욕망은 결국 타인의 욕망이기 때문에. 언제나 그렇듯 모호한 요구 사항들을 쏟아내지만 정작 본질은 어디론가 미끄러져서 혀끝에서만 맴도는 지침서를 두어 번 읽어보았다. 이 공모전이 요구하는 바는 세 가지라고 결론 내렸다. 광장, 상징, 현실. 그리고 실상 별다른 연관성도, 인과 관계도 없는 이 세 가지를 애초부터 하나였던 것처럼 엮을 것. 첫째, 광장을 만들어야 한다. 광장은 우리에게 낯설기 때문에 어려운 공간이다. 우리는 광장을 가져본 적이 없다. 서구의 전통에서 광장은 도시의 정체성, 또는 정치적, 경제적, 종교적 권력의 가장 설득력 있는 자기표현의 공간이었다.1 반면 수도 외에는 어떠한 도시적 정체성도 용납하지 않았던 우리의 중앙집권적 유교 문화에서는 광장은 존재할 필요가 없는, 아니 존재해서는 안 되는 공간이었다.2 그래서 우리의 도시에서 광장은 어색한 공간이며 끊임없이 우리에게 친숙한 다른 종류의 공간으로 대체되기를 요구받는 공간이다. 다른 한편으로 광장은 비어있는 공간이기 때문에 어려운 공간이다. 우리는 디자인이란 본질적으로 무엇인가를 채우는 행위라고 교육받고 그러한 실천을 해왔다. 공간을 채우는 일을 업으로 삼아온 사람에게 채우지 않아야 하는 공간을 만든다는 것은 일종의 자기모순이다. 그래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여러 팀이 모여 미팅을 했을 때 판이하게 다른 디자인과 생각들이 나왔지만 하나의 공통점은 있었다. 채워진 생각과 안. 그릇을 만들어야 하는 데 모두가 속이 꽉 찬 입방체를 만들고 있었다. 나는 광장의 본질은 비움이며, 채움의 논리가 비움을 압도하는 순간 더 이상 광장은 광장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에게 이 자명한 사실을 다른 이들에게도 자명하게 만드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김영민은 1978년생으로, 서울대학교에서 조경과 건축을 함께 공부하였고 이후 하버드 GSD에서 조경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의 SWA Group에서 6년간 다양한 조경 설계와 계획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USC건축대학원의 교수진으로 강의를 하였다. 동시대 조경과 인접 분야의 흐름을 인문학적인 시각으로 읽어내는데 관심이 있으며, 설계와 이론을 넘나드는 다양한 활동을 펴나가고 있다. 역서로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이있으며, 『용산공원』 외에 다수의 공저가 있다.
3등작: 안다미로
‘안다미로’는 담은 것이 그릇에 넘치도록 많다는 순 우리말이다. 그 말을 그대로 가져온 안다미로는 민주주의를 넘치도록 담는 그릇으로 광장을 상징화하여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머무는 장소로 만들고자 했다. 분절되고 긴 대지의 형태는 광장을 무심코 지나치게 만든다. 안다미로는 이를 방지하기 위해 중앙을 환상형의 오목한 형태로 만들어 국민의 의견을 담아내는 민주주의의 상징성을 부여했다. 이러한 상징성에 더하여 광장의 각각의 요소들이 연계성과 통합성을 가지도록 설계 전략을 짰다. ·상징성: 관통하여 지나가 버리는 광장이 아니라, 시민들에 의해 적극적으로 이용되고 머무는 장소로 만들고자 한다. 환상형의 오목한 형태는 다양한 국민의 의견을 담아내는 민주주의의 상징성을 지녀, 행복도시의 상징광장의 역할을 한다. ·연계성: 전체적인 마스터플랜에 따라 강쪽과 하늘로 열리는 공간을 만들어 주위 환경과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시각적으로도 연결성을 살린다. ·통합성: 5개의 분리된 공간을 레벨을 조절하여 분절되지 않는 하나의 표면으로 만든다. 차도와 분리하고 어반 아트리움, 주상복합·아트센터의 고밀도 보행로와 연결하여 광장의 활용도와 안전성을 높인다. 상징광장의 대상지 위치와 형태는 사람들을 모으는 광장보다는 도시의 여러 부분을 관통하는 코리더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광화문광장과 같이 차도와 광장이 같은 레벨로 연결되는 경우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교통통제다. 이벤트가 있을 때마다 교통의 원활한 운행과 시민의 안전을 위해 투여되는 인력과 설비에 따른 비용은 이벤트의 성격이나 규모에 따라 광장의 사용을 제한하기 때문에 오히려 광장의 활용도를 줄인다. 초기 비용의 상승을 감안하더라도 장기적으로는 차도와 분리하고 보도 전용 도로와 연결하여 광장이 항상 안전하게 시민들에 의해 사용되도록 함으로써 광장의 효용성을 높이는 것이 지속적 이용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판단했다.
2등작: 세종시민광장
세종시민광장은 6개의 시간의 탑folly과 녹음을 제공하는 식재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공간이 비워져 있다. 고정 시설물을 최소화하여 시민들의 다양한 활동을 더욱 효과적으로 담아내고, 여러 환경적 요인(계절 및 시간의 변화)에 대응하여 광장 자체의 형태보다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활동이 중심이 되는 소프트웨어 위주의 광장을 만들기 위함이다. 개념 광장의 상부를 균등한 그리드 시스템과 다원적 거점(시간의 탑)으로 조직하여 세종시 마스터플랜의 주개념인 탈중심적이고 비위계적인 도시 철학을 담아내도록 하였으며, 광장 인접 도시 조직으로의 수평적 확장과 순환적 관계를 형성하도록 지원하였다. 광장의 하부는최대한 주차 면적을 확보하면서도 일부를 지상과 연계한 문화 및 여가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하였다. 또한 채광 및 환기의 문제를 해결하여 쾌적하고 풍요로운 공간이 되도록 계획하였다.
1등작: 세종상징광장
설계 개념 오랫동안 국가는 곧 나라님을 의미했다. 나라님이 사라진 후에도 우리는 여전히 국가에게 나라님의 역할을 요구했다. 그래서 우리에게 국가는 국민을 보호하고 관리하는 덮개였다. 국가라는 덮개의 주인은 국민이 아닌 타자일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은 국가의 주인이 국민이라는 이념에서 만들어졌다. 그러한 국가는 국민이 균등한 기회를 얻고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그릇 같은 국가다. 그래서 이 광장이 상징하는 대한민국은 국민이 스스로를 담을 수 있는 국가라는 그릇이다. 이러한 개념을 바탕으로 세 가지 설계 전략을 수립했다. ① 경계: 경계를 만든다. ② 비움: 경계는 비움을 규정한다. ③ 채움: 비움은 채움으로 바뀐다. 설계 전략 1: 경계 첫 번째는 경계의 전략이다. 광장은 독립된 공간이라기보다는 인접된 크고 작은 공간들의 집합체의 일부다. 성공적인 광장은 주변의 도시적 프로그램들과 관계 맺기에 성공한 광장이다. 하지만 이 광장은 주변의 도시적 인자들의 영향력이 미치기 힘든 구조를 갖고있다. 활성화된 건축적 프로그램들은 8m의 공개공지에 흡수되어 버리며 차도로 광장과 단절된다. 따라서 광장의 경계에 광장과 주변을 매개할 수 있는 새로운 경계 조직을 도입한다. 경계 조직에는 기존의 도시적 프로그램과는 다른 다양한 프로그램을 담는다. 그리고 경계의 프로그램들은 광장과 주변으로 확장되어 광장을 활성화시키면서 동시에 도시와 광장의 밀접한 관계를 형성한다.
행정중심복합도시 도시상징광장 기본계획 설계공모
설계공모경과 및 심사평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과 한국토지주택공사 세종특별본부는 10월 8일 ‘행정중심복합도시 도시상징광장 기본계획 설계공모’의 최종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 6월 30일부터 9월 24일까지 약 3개월에 걸쳐 진행된 이번 공모전에는 총 7개의 작품이 출품되었으며, 심사 결과 ‘세종상징광장’(김영민 + 채움조경 컨소시엄)이 당선작으로 선정되었다. ‘경계, 비움, 채움’의 전략을 바탕으로 한 당선작은 다양한 용도로 광장이 활용될 수 있도록 중앙부를 비우고 주변부에 여러 프로그램을 담을 수 있는 설계안을 제시해 전체 광장의 통일성 측면에서 가장우수한 평가를 받았다. 또한 그늘과 휴식 공간이 부족한 기존 광장들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캐노피를 설치하고 중앙부를 낮춰 주민들이 자연스럽게 앉아서 머무를 수 있는 여가 휴식 공간을 형성한 점도 눈에 띄었다. 2등작에는 ‘세종시민광장’(우리동인건축 컨소시엄)이, 3등작에는 ‘안다미로’(‘그릇에 넘치도록 많은’이라는 순우리말, 아키플랜 컨소시엄)가, 가작에는 ‘멀티 그라운드’(세림이앤씨 컨소시엄)가 각각 선정됐다.이번 설계공모는 “국가 균형 발전 및 국가 경쟁력 강화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건설되는 행정중심복합도시의 중심에 대한민국의 대표 광장으로서 국가적 상징성과 민주적 가치, 그리고 시대적 비전을 담는 열린문화 공간인 도시상징광장을 조성”하기 위해 개최되었으며, “정체성 창출, 미래지향적 과제 해결, 새로운 공간 문화 모델”을 공모의 목적으로 강조했다. 특히 “보행이 삶의 문화가 되는 인간적 도시를 구현하기 위한 중심 거점, 건축물과 공공공간을 통합적으로 계획하여 시너지를 만드는 도시 공간, 행정중심복합도시 전체및 주변 도시 블록과 경관적·기능적으로 연결되는 다중 네트워크 도시의 허브 역할을 하는 광장” 조성을 목표로 했다. 1등작 세종상징광장 김영민 + 채움조경 + 매니페스토 디자인 + 동일건축 2등작 세종시민광장 우리동인건축 + 수성엔지니어링 3등작 안다미로 아키플랜 + 에스에스디 + 다인건축 + STUDIOKHK 가작 멀티 그라운드 세림이앤씨 + 예쓸디자인건축
[디자인 노트] 협업을 다시 생각하다
새로운 아이디어와 창의적인 디자인을 제안하기 위해서는 영역의 경계를 허물고 다양한 분야와의 협업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공모전 및 실무에서의 협업은 심사 기준의 충족이나 보고서 제출을 위한 형식에 그치는 경향이 있다. 이런 형식적인 협업이 아닌, 영역의 구분 없이 수평적 관계에서 세종대로 역사문화 공간 설계공모에 참여했던 플랫폼 형식의 프로젝트 팀 Terminal 7의 협업 과정을 소개한다. 이 협업에서 우리는 익숙한 사고와 디자인 방식을 확장시킬 수 있었고 객관적인 관점에서 스스로를 평가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5명의 구성원과 5명의 리더 공모전 규모와 결과물(도판 A0 2장, 설계설명서 A3 15매 이내, 법규 검토 및 추정 공사비 내역 포함)의 양으로 미루어, 다섯 명이라는 인원은 일반 설계사무소의 인력과 비교해 다소부족하다고 생각될지 모른다. 특히 작업을 진행하는 데 있어 기존의 설계사무소가 가지고 있는 축적된 노하우와 안정적 팀 구성은 매우 효율적이다. 우리 팀은 플랫폼 형식의 프로젝트 팀으로 5명의 전문가(뉴욕을 기반으로 한 건축가 2명, 조경가 2명, 도시설계가 1명)로 구성되어 있다. 구성원 간에 이력과 실무 경험의 차이가 존재한다. 그럼에도 경력이나 나이에 상관없이 수평적으로 협업을 진행했다. 수평적 관계 속에서 모든 구성원은 비판적이기보다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로 공모에 임했다. 이러한 접근 태도 덕택에 5명의 구성원은 자료 취합, 현황 분석, 브레인스토밍, 디자인, 프로덕션, 내러티브 구성 등 성격이 확연히 다른 디자인의 과정에서 각각 리더가 될 수 있었다. 프로젝트 초기, 대상지의 규모는 작아도 도시 맥락적으로 서울의 거대한 지하 공간의 시점이 될 수 있으며 그것이 하나의 유형typology이 되어 추후 서울의 도시개발 사업의 단초가 될 수 있다는 도시설계가의 거시적 안목을 바탕으로 아이디어가 전개되었고, 그 위에 조경가와 건축가의 생각이 더해졌다. 또한 디자인 과정에서 조경가는 협의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대략적인 형태의 디자인 대안들을 제안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건축가는 조금 더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디자인 형태를 조언하였다. 이후 구체적인 지하 공간의 건축 형태와 프로그램은 건축가들이 주도했고, 지하 공간의 정원과 벽면은 조경가와 도시설계가에 의해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또한 결과물을 만드는 과정에서 전반적인 그래픽 스타일과 결과물은 경험 많은 사람을 주축으로 각자 자신 있는 영역의 드로잉을 맡았다. 전반적인 과정에서, 마치 기러기의 비행과 같이 선두의 자리를 바꿔가며 모든 참여자가 유기적으로 리더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기존 설계사무소의 시스템이 아닌 수평적 관계의 상호보완적인 팀원 구성이 이번 협업의 바탕이 되었다. 각자의 영역이 아닌 통합된 장소의 디자인 이번 공모전은 국내외 건축사 자격을 요구하는 공모전이고, 일반적인 건물의 매스, 입면, 프로그램 등이 아닌, 역사문화 공간(지하 공간 포함)에 대한 설계를 요구하고 있다. 우리는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디자인보다는 그 복합적인 주변 맥락(성공회성당, 덕수궁, 세종대로, 서울시청, 세실극장 등)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담긴 공간을 제안해야 한다고 해석했다. 따라서 각자의 영역을 구분하여 디자인하기보다 하나의 장소로 대상지를 인식함으로써 초기 아이디어 협의에서부터 구체적인 디자인까지 건축가나 조경가가 아닌 통합적 디자이너로서 설계에 임했다. 브레인스토밍 과정에서 아이디어에 대한 비판적 자세와 구체적인 평가를 배제하면서 다양한 관점의 아이디어를 열거하였다. 서울의 수평적 경관, 현대 도시의 수직적 경관urban depth, 유형으로서 대상지의 가능성, 역사적 층위로서 지하 공간에 대한 재해석 등을 바탕으로 우리는 서울의 다층적 경관을 더 구체적으로 해석하였고, 두 가지의 디자인 원칙을 결정하였다. 첫째, 대상지의 상부는 비우고 간결한 형태의 표면을 만든다. 둘째, 서울의 수직ㆍ수평적 층위를 공간에 담는다. 이 두 가지 원칙으로부터 두 개의 다른 지붕 형태를 도출하였다. 장단점이 명확히 다른 이 두 개의 지붕 형태에 대해 많은 논쟁이 있었다. 조경가와 도시계획가는 연속적인 표면의 연결과 더불어 변화감 있는 지붕 쪽을 선호하였고, 건축가는 띄운 지붕의 형태를 선호했다. 이 과정에서 상부 공간과 지하 공간의 관계를 고려하여 띄운 지붕을 선택했다. 이는 팀 구성원 모두 띄워진 표면 틈 사이로 보이는 경관 및 자연환경의 유입이 지하 공간의 다양한 경험을 유도한다는 생각에 동의했기 때문이다. 이후 작업에는 공간별로 전문성이 필요했기 때문에 조경가와 건축가가 각 영역의 디자인 주체가 되었다. 조용준은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와 유펜 디자인 스쿨을 졸업하고, 현재 뉴욕 제임스 코너 필드 오퍼레이션스(James Corner Field Operations)의 프로젝트 디자이너로 근무하고 있다. Dubai Waterfront 설계에 참여하고 있으며, Milwaukee Lakefront Gateway Plaza Competition과 China DachongVillage 설계를 이끌었다. CA조경의 창립 멤버로 7년간 여러 공모전에서 당선을 이끌었으며, 올해 초 열렸던 서울역고가 국제지명 현상설계에 CA조경과 함께 참여했다. 최근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IDEAS(www.groupideas.org)라는 디자인 및 리서치 그룹을 만들어 다양한 전문가들과 협업하고 있다. 전진현은 현재 뉴욕 제임스 코너 필드 오퍼레이션스(James Corner Field Operations)에서 New YorkCiti Bank Plaza 설계에 참여하고 있으며, China International Garden EXPO 설계를 이끌었다. 하버드 GSD 졸업에 앞서 서울대학교 조소과 졸업 후 환경대학원에서 조경을 전공했으며, 신화컨설팅에서 디자이너로서 실무를 쌓았다. 그는 휴먼 스케일의 디자인이 어떠한 방식으로 이용자가 삼차원 공간을 지각하게하는지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3등작: Seoul Living Room
서울 리빙룸의 기본 개념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역사의 상징에서 문화의 체험으로’는 세종대로의 문화체험을 길과 골목으로 실어 나르고, 정동과 덕수궁 일대의 문화적 콘텐츠를 시민청을 거쳐서 세운상가까지 연계시키는 관문의 역할을 한다는 의미다. 둘째, ‘도시를 막는 벽에서 도시를 여는 방들의 집합으로’는 옛 건물과 역사적 사건의 흔적을, 지하와 지상을 잇고 정동과 명동을 잇는 방들의 입체적 연결로 전환하는 것을 의미한다. 셋째, ‘어둠의 통로에서 밝은 도시의 거실로’는 수직ㆍ수평의 경계 공간을 열어서 켜와 켜, 방과 방사이에 빛이 투과되는 밝고 투명한 지하 공간을 구성한다는 의미다. 광역적 네트워크 국세청 별관 부지는 세종대로가 을지로와 소공로로 분기되는 지점에 위치해 있다. 두 갈래 길 사이에 있는 커다란 오픈스페이스가 서울광장이다. 국세청 별관 부지 지하를 서울시청 지하의 시민청과 연결시키면 을지로를 따라서 멀리 세운상가를 거쳐서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 이르는 지하 보행로 네트워크의 새로운 입구가 근대역사문화 1번지 정동 초입에 마련된다. 이후에 지하 공간을 확장하여 남측으로는 1호선 시청역과 접속시키고, 북측으로는 5호선 광화문역과 연결한다면, 경복궁 광장으로부터 시작되는 지하 보행로를 따라서 청계천으로 바로 진입할 수 있고, 동화면세점, 코리아나호텔, 서울파이낸스센터, 한국프레스센터등 서울 한복판의 주요 건물 지하와 연결되는 업무 및 관광 지역으로의 관문 공간이 확보된다. 앞으로 광화문광장이 서측으로 확장되고 광화문역과 시청역이 국세청 별관 부지 지하 공간을 중심으로 연결된다면, 광역적으로는 두 역과 세운상가를 양측 거점으로 종로, 청계천, 을지로가 연결되는 네트워크가 완성될 것이고, 미시적으로는 서울도서관과 서울시청 시민청, 그리고 국세청 별관 부지 지하의 역사문화 아카이브, 도시극장, 미디어갤러리 등이 지하철 시청역을 중심으로 연계되어 구성되는 ‘시청역 미디어테크’가 완성된다. 정동 앞마당을 품고 있는 ‘서울 리빙룸’과 서울광장을 품고 있는 서울시청은 미래의 시청역 미디어테크의 관문이 될 것이다.
2등작: Time Connector
국세청 별관 대지는 서울의 역사, 도시 구조, 미래의 비전 사이에 놓인 하나의 장소다. 조선의 건국에서부터 대한제국의 출범, 그리고 현대에 이르기까지 시간을 관통하며 축적된 장소다. 경복궁에서 청계천으로 연속된 흐름을 받아 시청, 시청 광장, 덕수궁, 대한성공회 서울대성당, 서울시의회를 연결하는 결절점 역할을 수행하며 지상의 보행 공간과 지하의 보행 공간을 연결하는 ‘타임 커넥터Time Connector’를 제안한다. 타임커넥터는 단순히 물리적인 공간 구조만 연결하는 것이 아니라, 근대와 현재를 가로지르는 역사와 문화를 연결하는 정신적 연결체다. 수도의 도시 문화 중심에 있는 한 공간으로서 국가 상징 가로의 역사성과 미래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아이덴티티를 형성해야 한다. 타임 커넥터는 한국과 서울의 이미지를 강하게 인식시킬 수 있는 아이덴티티를 구성한다. 지상 보행 공간의 마스터플랜 계획 부지뿐만 아니라 광화문에서부터 세종대로까지 이어지는 전체적인 보행 공간을 조성하는 개념을 설정하고, 그러한 마스터플랜에서 계획 부지의 역할과 가능성을 제안한다. 도시 경관성과 실용성을 동시에 반영한 통합 디자인으로서의 환경 리노베이션 개념을 적용한다. 광화문에서 서울역까지 이어지는 광역적이고 종합적인 계획을 세워 과거, 현재, 미래를 담는 문화적 가로를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광화문 전면 광장 조성: 경복궁 월대, 동서 십자각 등을 복원하고 광화문 앞 녹지 광장을 조성한다. 광화문 광장 주변 보행로 확장: 중앙 광화문 광장을 활성화하기 위해 국립대한민국관 및 정부청사와 접한 보행 공간을 재구성한다. 계획 부지: 태평로 차로를 축소하고 문화 거리를 조성한다. 서울시 신청사 지상 및 지하 공간, 대한성공회 서울대성당, 덕수궁을 연결하는 입체 보행 광장을 구성한다. 덕수궁 보행 광장: 근대 한국의 중심 공간인 덕수궁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일반 보행로에서 전면 광장의 개념으로 확대하여 적용하고 원래 덕수궁터 영역을 시청광장으로 확대한다. 숭례문 가로 보행로: 덕수궁, 시청 광장과 연계된 상징적 가로 보행로를 확장한다.
1등작: Seoul Chronicle
‘서울 연대기’는 서울의 지나온 시간의 켜와 공간의 깊이에 대한 이야기다. 수많은 역사적 사건과 근·현대건축물로 얽힌 대상지에 과거, 현재, 미래를 담기 위해 우리는 두 가지 전제로부터 출발했다. 첫째는 서울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역사적 층위의 가치를 현재의시점에서 대상지에 구현하는 것이고, 둘째는 대상지를 중립적인 태도로 바라봄으로써 미래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 두는 것이다. 서울의 숨겨진 켜의 발굴 600년 넘는 오랜 시간 대한민국 수도로서 역사와 문화의 중심인 서울에는 산과 시내, 큰 지형차, 격동적인 역사적 사건, 근·현대에 만들어진 도시 구조가 축적되어 있다. 즉, 다양한 높이의 경관 켜와 수많은 역사적사건이 그 안에 존재한다. 또한 지상뿐만 아니라 우리가 인지하기 힘든 지하 공간에도 보이지 않는 많은 역사적 사건과 물리적 켜가 존재한다. 우리의 작업은 이러한 서울의 숨겨진, 또는 간과되었던 시간과 공간의 켜를 발견하고 보존하며 그것을 통해 과거를 이해하고 미래를 만들어 가는 데 그 의의가 있다.
세종대로 역사문화공간 설계공모
설계공모 경과 및 심사평 10월 8일 세종대로 역사문화공간 설계공모 당선작으로 Terminal 7 Architect 팀의 ‘서울 연대기Seoul Chronicle’가 선정되었다. 이번 공모는 구 국세청 별관지상ㆍ지하 공간을 포함해 이 일대 덕수궁~시청~서울광장~세종대로 지하 등을 아우르는 종합적ㆍ입체적 공간 구성 마스터플랜을 공모하기 위해 마련되었다. 서울시는 앞서 5~8월 국세청 별관을 철거하고, 78년간 가려져 있던 로마네스크 양식의 대한성공회 서울대성당 풍경을 공개한 바 있다. 현재 이곳에는 기둥 23개와 1937년 이래 부출입구로 이용되던 벽체 일부가 남아있다(공모지침에 따르면 남겨진 기둥과 지하 구조물은 설계자의 계획에 따라 설계에 반영한다). 1등작 Seoul Chronicle 서울 연대기 Terminal 7 Architect(조경찬, 지강일) + 조용준 + 전진현 + 송민경 2등작 Time Connector 타임 커넥터 운생동건축사사무소(신창훈) + 스튜디오101(김현민) + 로디자인(김동진) 3등작 Seoul Living Room 서울 리빙룸 디자인그룹오즈 건축사사무소(신승수) + 정재희(홍익대학교) + 이안디자인 건축사사무소(장성렬)
[비평] 계획가가 외면한 것
최근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에서 가장 주목받은 땅은 서울 테헤란로의 끝자락인 삼성역 주변일 것이다. 국제 수준의 복합단지인 무역센터(한국종합무역센터)는 쇼핑몰 리노베이션과 호텔 및 오피스 증축을 거듭하고 있고, 지하철 2호선과 9호선이 연결된 영동대로에는 KTX, GTX 등 광역 교통까지 추가될 예정이다. 게다가 한전 부지(구 한국전력본사)는 현대차와 삼성이라는 거대 기업의 매입 경쟁 끝에 과거 본 적이 없는 매매가를 기록하였다. 이러한 기세는 탄천 건너 잠실까지 뻗어가고 있다. 서울시가 무역센터, 한전 부지, 잠실종합운동장 및 주변 지역을 국제 업무와 MICE 산업1의 중심으로 키우는 국제교류복합지구 계획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2015년 5월 무역센터와 한전 부지만 포함하던 지구단위계획구역을 잠실종합운동장까지 확장함으로써 그 의지를 보다 구체화하였다. 국제교류복합지구는 지가 총액으로 따지면 아마도 우리나라 최대의 지구단위계획구역일 것이다. 무역센터와 한전 부지는 과거 봉은사에 속한 땅이었다. 포화 상태인 서울 도심의 문제를 강남 개발을 통해 해결하고자 한 정부의 정책에 조계종이 화답함으로써 1970년대 초 이들 땅은 절 문을 나서게 되었다. 영동대로를 사이에 둔 두 땅은 이후 다른 길을 가게 된다. 대로의 서편은 1979년 한국종합전시관으로 모습을 갖춘 후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컨벤션센터가 된다. ASEM 정상회의, G20 정상회의, 핵안보정상회의 등 그 이름을 들어봤음직한 국제회의들은 모두 여기서 개최되었다. 대로의 동편은 1986년 한국전력공사가 자리를 잡은 이후 2014년 나주로 이전할 때까지 우리나라 전력 공급의 중심지가 된다. 지금은 발전 기능이 여러 자회사로 분산되었지만 과거에는 전력의 생산에서 판매까지 모든 기능이 한국전력공사에 집중되어 있었다. 두 땅은 그러나 다시 비슷한 길을 가게 될 것 같다. 한전 부지를 매입한 현대차가 이곳을 단순한 통합 사옥이 아닌 회의장, 전시장, 공연장, 호텔 및 쇼핑몰로 구성된 복합 단지로 개발할 계획이기 때문이다. 이곳을 독일 자동차 회사들의 본사와 같이 테마 단지로 조성하는 것은 서울시의 국제교류복합지구 계획에도 잘 부합한다. 비록 운영 주체가 단일하고 자동차라는 주제를 가진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시설의 구색만 보면 대로 건너 무역센터와 매우 흡사하다. 한편 탄천 건너 잠실종합운동장은 전혀 다른 길을 걸었다. 원래 강이고 섬이던 잠실은 1970년대 초 한강공유수면매립사업에 의해 육지가 된다. 같이 매립된 반포나 압구정과 같이 잠실의 땅도 대부분 택지로 매각되어 정부의 빈약한 재정을 도왔는데, 탄천과 한강이 만나는 자리만은 운동장으로 남았다. 이에 대해서는 1960년대 말 국제 수준의 체육 시설이 없어 아시안게임을 반납한 아픈 기억이 크게 작용했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서울이 반납한 1970년 아시안게임은 방콕에서 열렸다.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하계 올림픽을 유치하면서 잠실종합운동장은 국제적인 체육 시설이 된다. 사실 두 행사는 우리나라를 세계에 알리는 역할도 했지만 우리 스스로 달라진 국가 위상을 만끽한 잔치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탄천 건너 두땅이 경제 성장을 견인한 곳이라면, 잠실종합운동장은 그 성과를 자랑한 곳이다. 하지만 잠실종합운동장도 앞으로 무역센터나 한전 부지와 비슷한 길을 가게 될 것 같다. 서울시의 국제교류복합지구 계획은 이곳에도 MICE 기능을 추가하고 있기때문이다. 구체적인 시설은 회의장, 전시장, 공연장, 호텔 및 쇼핑몰이 될 것이다. 여기서 몇 가지 질문이 생긴다. 서울에 국제 업무와 MICE 기능이 필요하다고 해서 비슷한 시설을 세 땅에서 세 번 반복해야만 하는지? 그래야 한다면 각 땅을 어떻게 차별화할 것인지? 그리고 도시 전략 측면에서 이 땅이 담당해야 하는 다른기능은 없는지? 이 외에도 서울시를 괴롭혔을 많은 질문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잠실종합운동장 일대 도시재생 구상 국제공모’가 기획되었을 것이다. 민성훈은 1994년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조경설계 서안에서2년간 일했다. 그 후 경영학(석사)과 부동산학(박사)을 공부하고 개발, 금융, 투자 등 부동산 분야에서 일했다. 2012년 수원대학교로 직장을 옮기기 전까지 가장 오래 가졌던 직업은 부동산 펀드매니저다.
우수작: SynchroniCity
싱크로니시티는 역사적이고 경제적으로 중요한 잠실의 심장부에 새로운 도시 복합 시설과 공원을 만들기 위한 전략이다. 잠실 도심 복합 시설은 시민들을 위한 체육, 문화, 레저, 그리고 국제 업무의 핵심 지역이 될 것이며 나아가 한강과 탄천의 교차점에 필요한 열린공간을 제공한다. 개념 싱크로니시티의 가장 핵심적인 개념은 기존의 도시 생성 방식과 달리 대지를 파내고 지하로 들어감으로써 밀도가 높은 도시 안에서 녹지, 공원, 숲, 정원을 제공하면서 생태를 중시하는 지속가능한 도시 성장을 가능케 하는 것이다. 올림픽 주경기장을 제외한 대부분의 시설을 지하화하고 기존 제방의 높이에 맞춰 부지 전체를 공원화함으로써 서울 도심에서 부족한 녹색 공간을, 또 서울에서 마주하기 힘든 커다란 평야를 제공한다. 여러 층위로 겹쳐진 지하 도시는 기존의 주변 지하시설과 연계되어 더 큰 네트워크를 형성하며 기존의 지하철과도 연결된다. 부지 전체를 관통하는 새로운 애비뉴는 강남의 업무 지구와 잠실을 잇는다. 새로 지어질 다리와 호텔은 레저, 스포츠, 그리고 문화를 모두 갖춘 새로운 도시로서의 구두점의 역할을 함과 동시에 입구의 역할을 한다. 공원과 녹지 잠실의 오픈스페이스는 두 가지 레벨, 즉 한강과 탄천의 수변과 +21m의 올림픽 레벨을 형성한다. 2m의 옥상 토양과 최신 녹화 기술을 적용한 21레벨은 잠실숲을 형성하고, 이곳에는 잔디광장Great Lawn, 어드벤처 파크Adventure Park, 식물원Botanical Garden, 남동쪽의 시민의 광장Citizen's Park이 들어선다.
우수작: Jamsil Ludens Park
개념 잠실 루덴스 파크는 ‘놀이하는 잠실 공원’이라는 뜻이다. ‘호모 루덴스’, 즉 ‘유희하는 인간’의 다양한 사회적 교류를 수행할 수 있는 곳으로 잠실종합운동장 일대를 기획했다. 놀이는 인간의 다양한 활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많은 언어에서 ‘놀다’라는 단어는 인간적 교감과 다양한 문화 활동을 총칭한다. 잠실 루덴스 파크는 다양한 정보와 참신한 아이디어가 교차하는 국제교류복합지구이며, 가족들과 같이 산책하고 공연, 스포츠, 전시 등을 관람하는 시민들의 휴식 공간이다. 잠실 루덴스 파크의 계획은 전체 대지를 자연과 호흡하는 한강 및 탄천 공원과 도시적 기능을 강화하는 복합 MICE 단지가 조우하는 접점으로 해석하는 것에서시작되었다. 이러한 다양한 사회적 교류를 통해 잠실종합운동장 일대가 신명나고 창조적이며 가족적인 공간으로 거듭나도록 설계했으며, 코엑스에서부터 종합운동장, 한강을 잇는 모노레일을 계획하여 시민의 접근성을 강화했다. 프로세스 오랜 시간 분리되어 있던 한강과 탄천이라는 자연 요소와 격자형으로 구획된 대도시를 만나게 하기 위해서는 네 가지 과정이 필요했다. ‘끈처럼 잇고lace’, ‘편으로 썰고hash’, ‘뭉치고scramble’, 마지막으로 이를 ‘고리로 잇는hook’ 과정이다. 한강과 탄천 변의 공원 산책로는 구불구불한 오솔길을 끈처럼 이어주어 사람들이 자유롭게 거닐 수 있게 하고, 편으로 썬 것처럼 구획된 복합 MICE 단지는 기존의 격자형 도시 공간을 다소변형시키며 삼성동 코엑스 주변과 잠실 지역을 연속된 도시적 흐름으로 이어준다. 이렇게 형성된 도시적 공간과 공원의 연결부에는 스포츠 및 문화 시설들을 배치하여 용도가 분리된 두 공간을 연결한다. 단지 전체가 다양한 형태의 공공성을 확보하는 것에 중점을 둔 것이다. 마지막으로 코엑스부터 종합운동장, 한강과 탄천을 이어주는 기다란 고리인 모노레일은 강남의 도시 단지와 주경기장 일대를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우수작: A Thousand City Plateaus
잠실종합운동장 도시재생 구상을 통해 문화와 일상의 이벤트를 담는 새로운 그릇과 같은 ‘도시 고원City Plateaus’을 만들고자 한다. 도시 고원은 길과 광장을 관통하며 도시 플랫폼을 창조하고 잠실 주경기장, 새로운 프로그램, 경관을 엮는 거대한 지도를 만든다. 도시 연결적 지형Urban Connective Topology 현재의 잠실종합운동장 지구는 시설이 노후화되었음은 물론 코엑스 지역 및 한강 변과 단절되어 도시의 활력이 떨어진 섬과 같은 장소가 되었다. 삼성역 코엑스 지역과 탄천 지역, 잠실종합운동장 지역, 한강 워터프런트 공원을 동시에 연결하는 도시적 지형을 재구축하고자 한다. 끊어지지 않는 하나의 수평적 고원을 구성하여 스포츠, 문화, 컨벤션, 엔터테인먼트의 복합 공간연속체를 구성한다. 도시를 가로지르는 일관된 어휘의 도시 개발 방식을 실현하기 위해 기존의 개발 방식을 버리고 인간이 산책할 수 있는 수평적인 도시를 만들필요가 있다. 도시 고원의 거대한 모뉴먼트는 가장 수평적이고도 지속적인 방식의 도시 개발을 실현할 것이다. 삼성 코엑스 지역에서부터 한강 변에 이르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담아내는 수평적인 매트로서의 도시를 재현하려 한다. 뿌리 구조의 인본 도시Rhizomorphous Human City 현대 도시의 데카르트적인 도시 개념은 도로와 고층 빌딩으로 이루어진 인간과 단절된 공간 구조와 스케일을 만들었다. ‘천 개의 도시 고원’은 과거의 근대적 도시 문법을 오늘날의 요구에 대응하는 이동적, 대안적, 일탈적인 영역을 만들어내는 유연한 문법의 도시를 구성해 내는 데 의의가 있다. 잠실종합운동장 도시재생을 통해서 도시의 도로, 보행로, 건축, 조경 등을 구분하지 않는 수평적 틀의 리좀적 인간 도시 구조를 구성하려 한다. 기존의 도시 구조를 변형하여 경관, 건축, 길, 광장, 공간 프로그램을 구분 없이 담아내는 시스템으로서 통합체와 같은 대지를 구성한다.
잠실종합운동장 일대 도시재생 구상 국제공모
설계공모 경과 및 심사평 9월 4일 서울시는 ‘잠실종합운동장 일대 도시재생 구상 국제공모’의 결과를 발표했다. 시는 지난 해 4월 ‘코엑스~잠실종합운동장 일대 종합발전계획’을 수립ㆍ발표한 이후, 올림픽대로 지하화 등 이 일대의 여건 변화를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으며, 두 차례에 걸친 시민 아이디어 공모, 이번 국제공모 등을 진행했다. 서울시는 이번 국제공모의 결과를 반영해 올해 말까지 국제교류 복합지구의 마스터플랜을 수립한다는 계획이다. 다음은 잠실종합운동장 일대 도시재생 구상 국제공모의 심사평 전문이다. 공모 및 심사 과정 이번 공모의 주된 목적은 서울시에서 구상하는 잠실종합운동장 일대에 대한 종합 마스터플랜에 반영할 참신하고 다양한 아이디어 콘셉트를 받고자 하는 것이다. 공모는 2015년 5월 7일 공고하고, 8월 12일까지 약 3개월여 동안 진행되었다. 최초 참가등록은 698개 팀이었고, 최종 제출된 작품은 98개였다. 작품은 총 23개 국가에서 제출되었으며, 국내 44개 팀, 국외 54개 팀이 제출해 국외의 관심과 참여가 많았다. 심사 기준은 실제 구상 계획에 반영할 것이므로 창의성(40점)과 경제성(30점)을 중시했고, 기타 공공성(15점), 국제성(15점)으로 배분되었다. 심사는 9월 1일과 2일, 이틀간 진행되었다. 첫 번째 날 심사는 오전에 공모 개요와 심사 기준에 대해서 논의하고 심사위원 전원이 잠실종합운동장 일대 사이트를 방문하였고, 오후에 1차 예비심사를 진행했다. 1차 심사는 심사위원들이 작품을 살펴본 후 탈락시킬 작품을 투표하는 방식으로 진행했고, 위원들의 투표 후에 내용에 대한 토론을 거쳐서 1차 예비심사를 통과할 40개의 작품을 선정했다.두 번째 날 2차 본 심사에서는 40개 작품을 대상으로 심사위원들이 작품의 내용을 다시 살펴보고 투표한 후 투표 결과에 대한 토론을 거쳐서 16개의 작품을 선정했다. 이어서 우수작 3점을 선정하기 위한 투표를 실시하고, 상위 작품에 대해서는 한 작품씩 장·단점을 토론하고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을 거쳐서 우수작 3점을 만장일치로 선정했다. 이어서 남은 작품을 대상으로 가작 후보에 대한 투표를 다시 실시하고, 이 결과를 종합하여 가작 5점을 선정했다. 우수작 A Thousand City Plateaus 천 개의 도시 고원 운생동건축사사무소 + 동해종합기술공사 우수작 Jamsil Ludens Park 잠실 루덴스 파크 종합건축사사무소 건원 우수작 SynchroniCity 싱크로니시티 우규승(Kyu Sung Woo Architects) + Vital Albuquerque(Kyu Sung Woo Architects) + 장광엽(다인건축) + Oswald Nagler(Oswald Nagler Consultant) + Paul Cattaneo(Kyu Sung Woo Architects) 가작 e[X] Sports City e[X] 스포츠 시티 Richard Plunz, Seiyong Kim, Viren Brahmbhatt(Columbia University) + 민승렬(한빛건축) + 손상혁(DH Asset) 가작 JAMS[H]ILLS JAMS[H]ILLS Caramel architeckten zt-gesellschaft m.b.h 가작 Polyculture 폴리컬처 Junkyeu Song, Blake Smith, Nnaemeka Mozie, Junyang Tang(POLYMASS) 가작 Seoul Culti-polis 서울 컬티폴리스 플래닝코리아 가작 Seoul EGG 서울 에그 나우동인건축사사무소 + 유승종(livescape 조경) + 양우현(중앙대학교 건축학부) + 한광야(동국대학교 건축공학부) + 김주석(이토플랜)
[칼럼] 녹색 강박증
재독 철학자 한병철은 그의 베스트셀러 『피로사회』에서 성과주의에 매몰된 현대 사회를 비판하면서, 긍정성의 과잉으로 인한 대표적인 질병으로 우울증,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경계성 성격장애 등을 꼽았다. 이러한 질병들은 과거 시대의 질병처럼 박테리아적이거나 바이러스적이지 않고 신경증적인 질병이라고 말한다. 현대 사회의 특징인 과잉 생산, 과잉 가동, 과잉 커뮤니케이션이 긍정성의 폭력을 낳았고, 이러한 유형의 폭력은 적대적인 상황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관용적이고 평화로운 사회에서 내밀하게 확산되기 때문에 바이러스성 폭력처럼 눈에 잘 띄지도 않는다고 한다. 짧은 에세이의 내용이 다소 무거워서 그 뜻을 잘 헤아렸는지 자신이 없지만, 무엇인가를 잘 해보려는 요즘 긍정적인 행동들이 오히려 과장되고 과잉의 양상으로 나타나면서 그것이 또 하나의 스트레스로 작용하는 것을 간간히 목격하면서, ‘피로사회’라는 개념으로 성과 주의 사회를 비판하는 그의 견해에 공감하게 된다. “강박장애는 불안장애의 하나로서, 반복적이고 원하지 않는 강박적 사고와 강박적 행동을 특징으로 하는 정신 질환이다. 잦은 손 씻기, 숫자 세기, 확인하기, 청소하기 등과 같은 행동을 반복적으로 함으로써 강박적 사고를 막거나 그 생각을 머리에서 지우려고 하는 경우가 흔하다. 그러나 이런 행동은 일시적인 편안함을 제공할 뿐 결과적으로 불안을증가시킨다.” 강박증이라는 병리적인 현상이 과거 농경 사회에서부터 존재했던 질병인지 혹은 근대 산업 사회를 거치면서 새롭게 등장한 것인지 잘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강박증으로 인해 고민하고 있는 것은 확실한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자신이 이 증세를 앓고 있다고 생각하지 못하고 오히려 더 과잉 행동을 일삼는 경우다. 어쩌면 한병철의 지적대로 강박증도 현대 사회의 병리적인 현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오세훈 시장의 ‘서울시’ 시절이 생각난다. 이명박시장의 ‘청계천’이 대중의 히트를 친직후라서 그런지 모든 행정에 ‘디자인’이라는 단어가 강박처럼 들어갔다. 조직이 만들어졌고, 대단한 ‘용역’이 발주되었다. 디자인을 문화적으로 차근차근 성숙시키기 이전에 홍보를 위한 전략으로 삼았다. 디자인이라는 말이 빠지면 마치 갑자기 구닥다리 꼰대가 되는 것 마냥 모든 종류의 미디어는 디자인이라는 화두를 쏟아내고 있었다. 지금도 논란이 되고 있는 한강의 세빛둥둥섬과 동대문의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는 그러한 ‘디자인 행정’의 대표적인 결과물들이다. 당시 모 교수는 ‘디자인’이라는 말 자체에 신경이 날카로워지는 현상을 ‘디자인 피로증’이라고 일갈하기도 했다. 아무리 의도가 좋다고 해도 그것이 과잉이 되면 사회구성원들은 피곤해지는 것이다. 하물며 진정성 없이 성과 위주로 추진되는 사업에어떤 행복과 가치가 담겨질 수 있을까. 요즘 서울시를 비롯하여 수도권, 지방의 많은 지자체에서 ‘조경’ 혹은 ‘정원’이라는 화두가 대세다. 수 많은 조경 관련 공모전이 성행하고, 박람회도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불과 몇 년 만에 분위기가 반전된 듯하다. 설계사무소나 일선 현장의 작업 여건과 경영 환경은 별반 나아진 것이 없는데, 외형적인 분위기만 봐서는 이미 조경 선진국의 대열에 오른 느낌이다. 이러한 분위기 때문인지 어느 조경전문가는 설익은 ‘조경대세론’을 펼치기까지 한다. 모든 도시 행정을 조경(혹은 정원)의 관점에서 해석하고, 도시 안에서 조경 공간을 극대화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예산 확보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식이다. 조경가 출신의 국회의원이 나와야 한다는 기대 섞인 주장도 덧붙인다. 그래야 ‘업계’와 ‘분야’가 살아나고 결과적으로 시민들의 행복지수도 수직상승한다는 것이다. 필자도 이십년 넘게 조경분야에서 일하고 있지만 이런 식의 강박이 정당한 것일까. 며칠 전 서울 외곽의 도시공원으로 산행을 가게 되었다. 시민들이 많이 이용하는 등산로인지라 최근에 계단을 보수하고 안전 펜스까지 정비한 모양이다. 그런데 등산로를 따라 나무 그늘에 야생초화를 잔뜩 심어놓았다. 공원의 양지바른 산책로도 아니고 숲이 우거진 등산로에까지 가로수를 심고 야생화를 줄지어 심어야 직성이 풀리는 강박은 애처롭기까지 하다. 그냥 놔두어야 더 좋은 자연을 왜 자꾸 조경이라는 이름으로 덧칠을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이처럼 조경 사업은 성과주의 사회에서 눈에 보이는 결과를 저렴한 예산으로 치장하는 효과적인 방법이 되었다. 녹색의 치장과 품격 있는 조경 행위는 당연히 구분되어야 할 것인데, 표피적인 것들만 난무한다. 자칫 ‘조경 피로증’이라는 말도 생겨날지 걱정이다. 조경은 근본적으로 치유하는 행위다. 과잉 진료와 과잉 처방은 환자에게 독이 된다. 진료와 처방 이전에 정말 중요한 것은 정서적인 연대감과 존중감이라고 한다. 녹색에 대한 강박은 자연에 대한 존중이라는 조경의 본질을 간과하고 현상에만 집착하는, 그래서 과잉 처방전만남발하고 있는 의료 행위와 다를 바 없다. 모든 것을 자기가 속한 전문 분야의 틀을 통해서만 해석하려는 강박증은 현대 사회의 공통적인 특징이다. 분야는 늘 대결하고 있으며, 이 살벌한 경쟁 구도를 곧바로 자신들의 이익과 연결시킨다. 여유와 관용, 깊이 있는 성찰과 소통은 사라지고 가장 익숙한 세계 속으로 스스로를 유배시킨다. 그리고 그 깊은 유배지에서 그들만의 왕국을 만들고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세상에 군림하려고 한다. 그러므로 나는 조경이 최고의 선이고, 어떤 것보다 높은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자신감에 선뜻 동의할 수 없다. 조경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을 다 품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화려한 녹색에 가려진 삶의 이면을 살펴야 한다. 비록 한그루의 나무를 포기하더라도 우리 주변에 더 이상 가난하다는 이유로 점심을 굶는 아이들이 있어서는 안 된다. 멋진 공원 몇 개를 만들지 못하더라도 힘없는 서민들의 소중한 주거 공간을 함부로 빼앗아서는 안 된다. 우리는 멋진 조경가이기 이전에 누군가와 마음을 나눠야 하는 평범한 시민이고 이웃이기 때문이다. 박승진은 아직까지 조경 설계라는 마당을 떠난 적이 없으며, 이 마당에 맞닿아 살고 있는 다양한 이웃들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기웃거리고 있다. 조경이라는 특징을 잘 보여줄 수 있는 가치 있고 정교한작업을 늘 꿈꾸지만 그것도 만만치가 않다. 그래도 읽고, 쓰고, 가르치며, 배우는 일상에 감사하고 있다. 1965년 서울생으로, 성균관대학교와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조경 디자인을 공부했고, 서울대학교 환경계획연구소, 조경설계 서안에서의 설계 실무를 거쳐,2007년에 디자인 스튜디오 loci를 열었다.
[에디토리얼] 설계공모의 맥도날드화 배정한
10월호 마감이 한창이던 9월 중하순, 유럽조경학교협의회ECLAS가 주최한 컨퍼런스에 다녀왔다. 목적지는 머릿속 지도에 위치가 쉽게 그려지지 않는 에스토니아의 타르투였지만, 내심 이 미지의 중세도시보다 더 궁금했던 곳은 경유지로 삼은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였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이름만 들어도 심장이 두근거리는 도시다. 러시아를 유럽의 제국으로 만들고자 야망에 불탄 표트르 대제의 계획 도시, 발트 해를 향한 연안의 늪지대와 네바 강 하구의 100개 섬을 365개의 다리로 이어 건설한 북쪽의 베니스다. 러시아의 심장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작곡가 차이콥스키, 극작가 안톤 체호프, 시인 푸슈킨, 대문호 도스토옙스키의 도시이기도 하다. 그뿐인가, 세계 최초로 공산주의 혁명이 성공한 레닌그라드가 아닌가. 굴절 많은 이 역사 도시의 2015년 풍경과 만나기 위해 목적지가 아니었음에도 닷새라는 넉넉한 일정을 잡았다. 낭만과 환상에 부푼 초행길 이방인의 기대와 달리, 표트르의 도시는 피로감과 불안감을 안겨주었다. 우중충한 잿빛 하늘 탓일까, 여느 유럽과는 다른 대규모 계획 도시의 웅장한 스케일 때문일까, 아니면 사회주의 도시 경관의 생경한 질서 탓일까. 일행은 여러 가지 진단을 내려 보았지만, 이틀째 여정이 끝나갈 무렵 시각적 당혹감의 가장 큰 원인은 아마 거리를 뒤덮고 있는 러시아어 알파벳에 있을 것 같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영어 알파벳을 마차에 싣고 가다가 떨어뜨려 뒤죽박죽이 된 문자라는 우스개가 있을 만큼 키릴 문자(러시아어 알파벳)는 형태뿐 아니라 발음에서도 상식을 초월했다. 낯선 글자의 정체를 스마트폰으로 수시로 대조하며 시내를 답사하던 중 우리는 뜻밖의 계기를 통해 긴장감을 풀게 되었다. MaKДoHaлдc라는 해독하기 힘든 간판을 단 매장, 그러나 누가 봐도 맥도날드였다. 늘어나는 뱃살의 주범으로 몰리고 있는 맥도날드이지만, 우리는 낯선 도시에서 M자의 익숙한 간판만 보고서도 무장 해제됐다. 눈앞의 경관이 편안해지기 시작했다. 바로크와 신고전주의 양식이 섞인 건물들의 1층에 서울 못지않게 자주 등장하는 CTAPБAKC KOФE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스타벅스 커피, 평소처럼 그란데 사이즈의 핫 아메리카노에 샷을 추가해서 들이켰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명소라는 다른 어떤 카페보다 만족스러웠다. 도시를 뒤덮고 있던 먹구름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독자 여러분도 대부분 비슷한 경험을 하신 적이 있을 것 같다. 낯선 외국 도시에서 낯익은 프랜차이즈 체인점을 마주하면 심지어 고향 사람을 만난 것 같은 반가움을 느낀다. 고민과 두려움이 한 번에 해결된다. 뉴욕의 빅맥은 서울이나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빅맥과 똑같다. 맛도 의외일리 없고 가격도 당황스러울 가능성이 없다고 믿기 때문에 편안함을 느낀다. 맥도날드는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현대도시에서 거의 유일하게 확실성을 보장해 주는 예측 가능한 장소인 셈이다. 우리는 맛도 뻔하고 건강에는 오히려 좋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자신의 선택이 매우 ‘합리적’이라고 굳게 믿으며 맥도날드를 주저함 없이 선택한다. 『맥도날드 그리고 맥도날드화The McDonaldization of Society』(시유시, 2003)의 저자인 사회학자 조지 리처George Ritzer는 현대 사회가 종교처럼 신봉하는 합리성의 이면을 맥도날드로 대표되는 프랜차이즈체인망에서 발견한다. 리처가 통찰하는 ‘맥도날드화’는 “패스트푸드점의 원리가 미국 사회와 그 밖의 세계의 더욱 더 많은 부문을 지배하게 되는 과정”을 의미한다. 맥도날드 모델이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건 합리성이라는 신화의 네 가지 매혹적 특성 때문이라고 그는 진단한다. 효율성, 계산 가능성, 예측 가능성, 통제라는 특성이 신뢰를 준다는 것이다. 맥도날드화는 “패스트푸드업뿐만 아니라 교육, 노동, 의료, 여행, 여가, 다이어트, 정치, 가정, 그리고 사회의 거의 모든 부문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러나 효율과 표준을 앞세운 합리성의 신화는 획일과 몰개성을 낳는다. 도시도, 경관도 마찬가지다. 상트페테르부르크만의 개성과 매력에 불안해하고 맥도날드와 스타벅스의 표준화된 예측 가능성에 안도한 앞의 사례는 합리성의 추구가 비합리성을 연출하는 모순을 예증해 준다. 도시의 다양성, 지역성, 장소성은 발붙일 곳이 없다. 11월호에는 서로 다른 성격의 주목할 만한 공모전세 편을 싣는다. 이번 기획과 편집 과정에서 금년에 실었던 다른 설계공모들을 새삼 들춰보았다. 지난 호까지 잡지에 다룬 열개의 국내 공모, 두 개의 국외 공모를 다시 넘기다보니 엉뚱하게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만난 맥도날드가 떠올랐다. 아마다수의 독자들은 (서울역 고가처럼 정치적·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었던 경우는 예외였겠지만) 설계공모를 다룬 페이지를 빠른 속도로 넘겨버렸을 것 같다. 낯익고 익숙한 이미지, 텍스트, 다이어그램으로 표준화된 작품들에서 적절하게 구운 패티, 얇은 토마토 한 장, 슬라이스 치즈, 약간의 오이 피클로 구성된 맥도날드 햄버거의 예측 가능한 맛을 느꼈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물론 제출작만의 문제는 아니다. 주최자의 의도를 대변하는 설계 지침서는 언제나 예외 없이 공모의 목적을 “ㅇㅇ를 ㅇㅇ할 수 있는 ‘독창적’인아이디어와 디자인을 구한다”고 밝히지만, 말 그대로 독창적인 작업은 당선되기 쉽지 않다. 최근의 설계공모 대부분은 계산 가능하고 예측 가능한 안을 뽑는 합리성의 경쟁 과정이기 때문이다. 표준화와 효율성의 상징 맥도날드를 선택하곤 하는 우리의 일상과 다를 바 없다. 맥도날드화에 비판적 거리를 두며 이번 호의 세 공모전을 꼼꼼히 살펴보시면 어떨까 한다. 기회와 쟁점이 교차하는 땅 잠실종합운동장에 던진 비전과 상상력에서, 근대 서울의 시간과 사건들이 묻힌 옛국세청 자리 작은 공간에 펼친 조경가와 건축가의 협력에서, 막막한 빈 땅에 무언가를 상징해야만 한 세종시의 백지 광장 프로젝트에서 ‘탈맥도날드화’의 일면을 발견하실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