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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조경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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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일 2015년 1월
이매거진 가격 9,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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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DA] 이사
단독 주택에 산 지 만 5년이 되어간다. 주변엔 논과 도라지 밭, 조경수 농장, 미군부대가 자리하고 있던 공터와 나지막한 산, 그리고 고만고만한 주택 몇십 채만이 자리하고 있다. 매달 관리비 고지서를 보내주는 관리사무소도 없고, 놀이터도 어린이집도 없다. 슈퍼, 세탁소, 부동산, 학원 등이 오밀조밀 모여 있는 상가 건물도 없다. 걸어 다닐 수 있는 반경 내에 무엇인가를 살 수 있는 곳이래야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반갑게 맞아주시는 구멍가게뿐이다. 앵글로 만들어진 진열대 안쪽에 있던 물건을 꺼낼라치면, 수건으로 먼지를 털어주신다. 물건을 들여 놓기 무섭게 팔려나가는 마트와는 달라도 한참 다른 곳이다. 그렇다고 그 먼지의 두께가 덕지덕지 들러붙은 정도는 아니다. 가볍게 후후 불면 날아갈 정도이니, 아주 시골은 아니란 이야기다. 아, 그러고 보니 몇 달 전에는 치킨 집이 하나 오픈했다. 장사가 될까 싶었는데, 여전히 늦은 귀가 시간에도 불을 밝히고 있다. 왠지 모르게 다행이다 싶다. 주말 아침이면 동네 이장님의 방송 소리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주로 경로당에서 무슨 모임이 있으니 참석하라는 멘트다. 아파트 거실 벽에 달린 스피커를 통해 관리사무소의 안내 방송만 듣다가, 단독 주택으로 이사한 후 처음으로 허공을 가르며 들려오는 “아~ 아~ ○○○ 4리에서 알려드립니다”란 메아리를 들었을 때의 생경함은 지금도 쉽게 잊히지 않는다. “역시 ‘읍’은 뭔가 달라!”라고 중얼거렸던 것도 같다. 그렇다. 행정구역상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읍’이다. 하지만 아주 시골은 아니다. 버스를 타고 두 정거장만 가면, 아내와 내가 농담 삼아 ‘읍내’라고 부르는 곳에 제법 규모 있는 마트를 비롯해서 웬만한 것들은 모두 있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도 있으니, 구체적으로 그곳에 있는 것들을 묘사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하지만 걸어서 가기에는 약간 망설여지는 거리다. 한 15분 정도 걸리려나? 그보다 조금 더 걸릴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자가용으로는 채 5분도 걸리지 않는 거리지만, 그 풍경은 사뭇 다르다. 5분을 경계로, 내가 살고 있는 곳에는 없는 것투성이다. 하지만, 이곳에만 있는 것들도 있다. 겨울이면 20분 가까이 눈을 치워야 하는 마당과 집 앞 도로(이걸 도로라고 표현해야 할지 한참을 망설였다. 교행은 엄두도 낼 수 없는, 차 한 대만 지나다닐 수 있는 시멘트 포장길이다)가 있고, 여름부터 늦가을까지 허리를 굽히게 만드는 잔디밭(사실 잔디‘밭’이라고 하기에는 옹색한 면적이다)도 있다. 이 잔디란 녀석은 제 때 깎아주지 않아 늘 아내의 핀잔을달고 살게 만드는 원흉이다. 정원 책을 만들며 부르짖던(?) ‘정원 일의 즐거움’을 직접 만끽할 때가 되었다며, 아내는 내 손에 기어이 제초가위를 들려 등을 떼민다. 물론 나의 극렬한 저항이 성공할 때가 많아, 그 횟수는 일 년에 채 몇 번 되지 않는다. “정글을 가꾸는 게 취미인가 봐요” 지나가는 말로 그녀가 툭 내뱉으면, 나는 “굉장히 생태적이지 않아요”라고 딴청을 핀다. 그래도 여름과 늦가을 사이, 두세 번 혹은 서너 번 잔디와 사투를 벌이고 나면 기분은 썩 괜찮다. 다음에 다시 단독 주택에 살게 되면 잔디밭이 아니라 클로버 밭을 꼭 만들겠다고 농담 아닌 진담처럼 말하곤 하지만 말이다. 참, 잔디밭은 내가 의도한 것이 아니다. 집과 세트로 딸려 있던 녀석이다. 제대로 정원을 가꾸게 되면 반드시 배제시키리라 다짐했던 3종 세트(잔디밭, 철쭉, 회양목) 중에 무려 두 가지가, 이사 왔을 당시에 (정원이 아닌) 마당의 기본 옵션으로 제공되었다. 엄살을 피웠지만, 단독 주택에서의 삶은 대체로 만족스럽다. 층간 소음에서 해방된 점도 그렇고, 2층 집이어서 구조가 입체적인 것도 마음에 든다. 여전히 불편한 점은 존재하지만…. 원래는 회사의 사무실 이전 소식을 다루려고 했는데, 딴소리만 잔뜩 늘어놓았다. 방배동으로 이사와 며칠을 다녀보니, 문득 단독 주택에서 아파트로 이사 온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집에서도 치우던 눈을 파주 사옥에서도 치워야 했고, 잔디밭은 없었지만 해마다 가을이 되면 적지 않은 양의 낙엽을 치워야 했다. 게다가 낙엽이란 녀석은 해마다 그 양이 엄청나게 늘어났다. 파주 사옥이 막 지어졌을 때, ‘이게 언제 자라서 벽면을 가득 채울까’하며 안쓰럽게 쳐다봤던 담쟁이덩굴은 이제 두려울 정도로 낙엽을 생산해내는 낙엽자판기가 되었다. 한 마디로 파주 사옥은 직장 판 단독 주택인 셈이었다. 창문만 열면 8차선 대로가 펼쳐지는 ‘따뜻한’ 방배동 사무실에서, 파주 시대를 개인적으로 정리해보다가 ‘지금 살고 있는 단독 주택에서 아파트로 이사하면 어떤 기분이 들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파트에서 아파트로 이사하는 것과는 그만큼 차원이 다른 이사일 테니까. 마지막으로 사과 말씀을 드려야겠다. 단순하지만 시선을 끄는 절제된 구도와 여백이 적절히 어우러진 담백함이 제 맛이었던 ‘유청오의 이 한 컷’이 이번 호에는 전혀 다른 성격과 소재의 사진으로 채워지게 되었으니 말이다. 2006년 2월부터 시작된 짧지 않았던 ‘파주 시대’를 마감하는 소회로 너그럽게 이해해주시길 부탁드린다. 독자 여러분께는 송구스러울 뿐이지만, 그 어느 때보다 사진 촬영에 공들인 유청오 작가에 대한 고마움은 빼놓을 수 없다. 무엇보다 그와의 촬영은 유쾌했다. 앵글 속에 포함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근육 경련을 일으키는 초보 모델들의 긴장감을 무장 해제시키는 그의 능수능란한 조크는 그 자체만으로도 추억할만한 것이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새빨간 넥타이를 매고 왔건만 지나치게 우측으로 몸을 튼탓에 전혀 빨간색이 보이지 않았음에도 그 사실을 일러주지 않은 점은 무척 서운하지만 말이다. 참, 김정은 편집팀장도 붉디붉은 치마를 차려 입고 왔는데, 외투에 가려 사진에서는 전혀 레드 컬러가 드러나지 않는다. 나는 왜 시뻘건 넥타이를, 김정은 팀장은 왜 곱디고운 붉은 치마를 입고 왔던 걸까?
[편집자의 서재]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묵은 해를 보내고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매년 이맘때쯤이면 기대보다는 후회가, 기쁨보다는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나보다. 특히 이제는 20대 중반이라고 우길 수 없는 명백한 20대 후반이 되는 나는 할 수만 있다면 2015년 1월이 다가오는 것을 온 몸으로 막고 싶은 심정이었다. 한창 일거리에 파묻혀 있던 1월호 마감 기간의 주말 저녁, 친한 친구들과 모여 송년회를 가졌다. 우리는 대학교 교내 방송부 활동을 같이 하며 친해졌는데 동기들 중에 유난히 감수성이 풍부한 친구가 많아 자칭 ‘낭만 20기’라 부르곤 했다. 이날도 우리의 공식 건배사인 ‘낭만을 위하여’를 외치고 공식 주제가 ‘낭만에 대하여’를 틀었는데, 이날은 장난같이 외치곤 하던 우리의 건배사가 특별한 느낌이었다. 친구 한 명이 “야, 우리도 나이 드는 것 같어”라고 했다. 남자 이야기, 연애 이야기로 대화의 반을 채웠던 20대 초반과는 달리 이제는 회사 생활이 우리의 주 관심사가 되었고, 온갖 술게임을 섭렵하며 떠들썩하게 밤을 새웠던 옛날처럼은 못하겠다며 우리는 맥주 몇 잔에 순순히 잠자리를 찾아 방구석을 파고들었다. 지금도 좋아하는 작가지만 프랑수아즈 사강은 20대 초반에 열광적으로 좋아하던 작가 중 한 명이었다. 줄곧 모범생(?)으로 말썽 없이 자라온 나는 이 시기에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이나 한강의 『채식주의자』 같은 유난히 과격한 소설을 좋아했다. 대학에 갓 입학했던 시절, 나는 사실 잔뜩 주눅들어 있었다. 시골에서 나름 ‘글 좀 쓴다’고 생각하며 국문과에 입학했는데 우리 과에는 주옥같은 문장을 쓰는 글쟁이들이 수두룩했다. 특이한 이력을 가진 개성 강한 친구도 많았다. 이 시절 나는 ‘평범함’에 대한 콤플렉스 때문에 과격하고 강렬한 내용의 소설을 좋아했던 것 같다. 특히 사강을 좋아했던 이유는 그녀가 묘사하는 주인공의 냉소적이면서도 변덕스러운 성격이나 아슬아슬하고 불안정한 청춘에 대한 예찬을 동경했기 때문이다. 또 사강의 실제 삶이 소설처럼 극적이었기에 인생과 사랑에 대한 그녀의 과장된 묘사는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시몽이 폴에게 고독 형을 선고하는 부분과 폴이 시몽에게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질문을 받고 자신의 삶에 대해 환기하는 부분이다. “그리고 당신, 저는 당신을 인간으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고발합니다. 이 죽음의 이름으로, 사랑을 스쳐 지나가게 한 죄, 행복해야 할 의무를 소홀히 한 죄, 핑계와 편법과 체념으로 살아온 죄로 당신을 고발합니다. 당신에게는 사형을 선고해야 마땅하지만, 고독 형을 선고 합니다.” 다소 연극조의, 손발이 구운 오징어마냥 오그라들게 하는 시몽의 이 대사를 다이어리 한 귀퉁이에 적어 놓기도 했다. ‘행복해야 할 의무를 소홀히 한 죄’에 대해 ‘고독 형’을 내리는 “무시무시한 선고”는 폴뿐만 아니라 독자에게 내리는 선고 같아 지금도 가슴이 뜨끔하다. 폴이 시몽의 질문에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부분도 마찬가지다. 로제를 사랑한다고 믿고 있지만 점점 자아를 잃어버리는 폴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고 묻는 시몽의 편지에 문득 자신의 삶에 눈을 뜬다. 하지만 프랑스 문단에서 ‘매력적인 작은 괴물’로 불릴 만큼 변덕스러운 악동이었던 사강은 폴에게 또다시 영원한 고독형을 선고한다. 작가는 결국 폴이 “시몽, 이제 난 늙었어. 늙은 것 같아”라고 고백하며 이전 삶에 굴복하게 만든다. 작가는 폴을 비롯해 그의 소설에서 매번 등장하는 성숙하고 진지한 여성 캐릭터에 대해 유독 매정하고 차가운 태도를 취한다. 그녀의 처녀작 『슬픔이여 안녕』에서 주인공 세실의 의붓어머니 안느는 총명하고 세련된 취향을 가진 성숙한 여자로 묘사되지만 동시에 세실에게 어떤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이다. 알코올, 코카인, 도박 중독자이자 스피드광이었던 사강은 평생을 청춘과 젊음의 아이콘으로 살았다. 그녀는 나이 드는 것이 두려웠던 것은 아닐까? 그녀의 젊음이 소진되고 재기발랄함을 잃어버리는 것에 대해. 대학교 1학년, 교양 국어 시간에 담당 교수님은 우리에게 이태준의 수필 ‘조숙早熟’을 필사하고 요약하는 숙제를 내주셨다. 한창 파릇파릇한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한 수업에 하필 이태준의 ‘조숙’을 과제로 낸 교수님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오래 살고 싶다. 좋은 글을 써보려면 공부도 공부려니와 오래 살아야 될 것 같다. 적어도 천명天命을 안다는 50에서부터 60, 70, 100에 이르기까지 그 총명, 그 고담古談의 노경老境 속에서 오래 살아보고 싶다. 그래서 인생의 깊은 가을을 지나 농익은 능금처럼 인생으로 한번 흠뻑 익어보고 싶은 것이다.” 젊음과 재기발랄함이 재능의 전부인 줄 알았던 21살의 나에게 적잖은 위로가 되었던 구절이다. 이제 나와 친구들은 억지로 취하지 않아도 즐겁기 시작했고 소소한 일상 이야기로도 울고 웃게 되었다. 인생으로 흠뻑 익어갈 나를 기대하며 두렵고 또 설레는 마음으로 2015년을 맞이한다. (P.S. 아직 어린 녀석이 청승 떤다고 분노하신 편집장님께 심심한 사과를 표합니다.)
식물 재료의 특별함
제일모직 건설사업부 조경디자인그룹(구 삼성에버랜드)은 2014년 한 해 동안 ‘조경 식재의 새로운 담론’이라는 주제로 렉처시리즈를 진행했다. 2014년 12월 17일, 그 마지막 주자로 정욱주 교수(서울대학교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가 나서 ‘식재 설계 고민’을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냈다. 조경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식재 설계에 대한 고민을 안고 있을 것이다. 조경 설계는 식재와 떨어져서 생각할 수 없음에도 실제로 식재 설계를 전문적으로 ‘잘’하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다보니 식재와 관련된 교재도 기능적 측면에 치중되어 있고, 실제 쓰임에 대한 고민은 부족한 실정이다. 이러한 여건 속에서 정욱주 교수는 조경 설계가로서 식물 재료 사용에 대한 갈증을 느꼈고, 수 년 전부터 정영선 대표(조경설계서안)를 따라다니며 직접 호미를 들고 식재에 대해서 공부하고 있다. 식물 재료만의 특별함, 느슨함과 감성 강연은 정욱주 교수가 고민했던 식물 재료에 대한 네가지 질문으로 구성되었다. 첫 번째 고민, “공간 구성에 있어 식재의 역할과 가치는 무엇인가” 이 고민은 ‘느슨함’과 ‘감성’이라는 두 가지 키워드로 대별된다. 정 교수는 “식재는 공간의 구축과 보완이 가능하다”며 식재가 갖고 있는 ‘느슨함’을 강조했다. “식재는 공간을 구분하는 동시에 열려 있고, 어느 방향으로도 갈 수 있지만 느슨하게 방향을 제시한다.” 건축 재료도 공간을 만들어 내지만, 식물 재료가 갖는 ‘느슨함’은 다른 재료와 분명히 구분되는 특성이라는 게 정 교수의 설명이다. 또한 그는 “식재의 특성에서 오는 작은 ‘감성’은 사람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식물 재료만의 장점”이라며, “식물 재료가 주는 감성은 스케일에 따라서 다른데, 사람들은 큰 스케일은 쉽게 인지하는 반면 작은 스케일의 감성까진 잘 알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이를 사람들에게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도 고민해야 할 숙제다.
민관협력에 의한 녹색복지향상과 국가도시공원 국회심포지엄
국가 도시 공원 입법화를 촉구하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2014년 12월 17일 국회 제9간담회의실에서는 한국조경학회(회장 김한배), 정의화 국회의장, 문병호 국회의원, 오병윤 국회의원 주최 국가도시공원 전국 민관네트워크, 전국시·도공원녹지협의회, 100만평문화공원조성범시민협의회 주관으로 ‘민관협력에 의한 녹색복지향상과 국가도시공원 국회심포지엄’이 개최되었다. 이번 심포지엄에는 여러 지자체의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많이 참석해 국가 도시 공원에 대한 지역의 관심을 보여주었다. 지방사무로 위임되어 있는 도시 공원 조성에 국비를 지원하는 내용을 담은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2011년 최초발의에 이어 2013년 8월 정의화 의원이 재발의하였으나 현재 국회 상임위에서 계류 중이다. 이번 심포지엄의 핵심 쟁점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국가 도시 공원의 정체성을 모색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국가 도시 공원을 실제 조성하기 위한 재정 조달에 관한 것이다. 새로운 모델, 국가 도시 공원의 정체성 우리나라에서 국가의 책임으로 공원을 조성하고 관리하는 경우는 ‘자연공원법’에 따라 지정되는 ‘국립공원’에 한정되어 있으며, 도시에 들어서는 공원은 각 지자체가 조성하고 관리하도록 되어 있다. 예외적으로 지난 2007년 ‘용산공원조성특별법’이 제정되면서 국가가 도시 공원을 조성하는 유일한 사례가 되었다. ‘국립 용산공원의 정책적 의미’를 주제로 발제를 한 안상욱 단장(LH 파주사업본부 건설사업단)은 용산공원이 “특수해이기는 하지만 도시 지역에서도 자연공원처럼 국가사무로 도시 공원을 만들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캐나다 루즈Rouge 국가도시공원 조성과 민관기관 역할’을 주제로 발제한 장병관 교수(대구대학교 조경학과)는 “캐나다의 경우 공원을 경관생태학적 관점에서 이해”하고 있다며, “다양한 경관 및 서식 환경을 연결하는 코리도 개념을 바탕으로 공원 규모를 설정했다. 우리의 경우도 기존 공원의 통합과 연결로 도시 공원을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시사점을 정리했다. 최근 녹색길이나 탐방길 등 녹지와 공원이 통합되고 대형화되는 경향에 주목하면서 국가 차원에서 도시 공원 시스템에 대한 접근이 필요함을 강조한 것이다. 김승환 상임대표(국가도시공원 전국 민관네트워크)는 “국회에서 벌써 네 번째 심포지엄을 개최하는 것이다. 처음 국가 도시 공원을 이야기했을 때는 많은 사람들이 대형 공원large park보다는 (생활권) 주변의 조그마한 공원이 중요하다고 말하곤 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대형 공원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분위기”라며 그간의 인식 변화를 짚기도 했다. 안상욱 단장은 국가 도시 공원의 도입 배경, 필요성, 효과에는 공감대가 형성되었지만 국가 도시 공원이 여타 도시 공원과 어떻게 차별화되는지 명확하게 규정할 필요가 있다고 일갈했다. 이에 양건석 사무처장(100만평문화공원조성범시민협의회)은 “국립공원의 주인이 자연과 경관이라면, 국가 도시 공원은 시민이 주인인 공원”이라며, 녹색복지의 개념으로 국가 도시 공원을 바라보아야 한다고 개념을 정리하기도 했다. 장병관 교수는 캐나다의 경우 공원 정책이 환경부 소관으로 12개의 정부 기관 그리고 자치시와 관련 기관으로부터 토지와 자금을 제공받아 민관파트너십 공원을 이루어가고 있는 반면, 우리의 경우 공원의 소관이 여러 곳으로 분산되어 있다고 제도의 개선이 필요함을 설명했다. 재정 조달의 문제 ‘용산공원조성특별법’이 만들어지면서, 도시 안 공원의 정체성 논의가 촉발되었다. ‘왜 국가가 수조 원에 달하는 비용을 감당해야 하는지’에 관한 당위성 논란이 일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김승환 상임대표는 “국가 도시 공원 논의는 시민참여나 거버넌스 등 새로운 도시공원의 모델을 만들고자 하는 근본적인 노력이지만, 결과적으로 예산이 필요하다”고 예산 확보의 중요성을 확인했다. 진승범 대표(이우환경디자인)는 국가 도시 공원신설의 비용추계 결과 1개소 조성비용이 토지매입비를 포함하여 3천억 원으로 산정되므로 15개소에 대한 총예산은 4조5천억 원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입법부에서 법과 제도를 만들더라도 실제 집행하기 위해서는 기획재정부의 승인을 받아 예산이 편성되어야 한다. 이날 토론에 참석한 강은미 공동대표(광주중앙공원 시민네트워크)는 광역시의 도시 공원 조성 비율이 낮은 반면 토지 보상비는 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라며 “2020년 장기미집행공원 일몰제 시행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공원) 조성비는 최소화하고 당장 토지 매입을 하는 것이 더 시급한 상황”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박흥렬 사무처장(인천의제21실천협의회)은 “일몰제가 시행되면 실제 토지 소유가 어떻게 변화하고, 공원 및 녹지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면밀한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막연한 두려움만 확산되는 것 같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전재경 대표이사(자연환경국민신탁)는 “지방자치단체들의 재정 자립도가 낮은 상황에서는 국가가 도시의 경계를 초월하는 도시 공원을 국가 관리 영역으로 설정할 수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더불어 “재정 분권의 관점에서 본다면 도시의 인구가 많아지는 상황에서 국가 재정법을 재정립할 것을 당당하게 요구하며 중앙정부와 협상해야한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현재 계류 중인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국가 도시 공원이 설치되는 광역지자체에 대하여 그 관리 시설의 관리에 소요되는 비용의 일부를 부담하게하는 경로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한계를 지적하며 중앙 정부의 부담을 줄일 수 있는 행정적 경로라도 마련되어야 한다고 법안의 보완을 제안했다. 안상욱 단장은 용산의 경우 공원 주변에 ‘복합시설조성지구’를 조성함으로써 재정적인 타개책을 마련하였는데, 다양한 도시계획적 수단으로 국가의 재정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더불어 국가가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는 틀에서 벗어나 지자체, 시민사회, 기업의 거버넌스 틀을 고민할 것을 요청했다. 국가 도시 공원은 재정적으로나 공원 시스템 측면에서나 결국 새로운 모델을 만드는 일이다. 법제도가 만들어 진다해도 예산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이 나오지 않는다면 실제 구현되기 어려운 일인 셈이다. 무엇보다국가 도시 공원의 정체성과 당위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선행되어야 지속적인 추진력이 담보될 것이다.
최초의 조경 법, 조경진흥법 제정안 국회 통과
지난 해 12월 9일 조경 분야의 진흥 및 활성화를 위한 지원 내용을 담은 ‘조경진흥법’ 제정안(이노근 의원 대표 발의)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조경’이란 두 글자가 포함된 국내 최초의 법이다. 이번에 국회를 통과한 조경진흥법 제정안의 주요 내용은 크게 세 가지다. 첫 번째는 ‘조경 진흥 및 기반 조성’과 관련된 것으로, 앞으로 국토교통부 장관은 기본적이고 종합적인 조경 분야의 진흥기본계획을 5년마다 수립·시행하고, 기본계획에 따라 연차별 시행계획을 수립 및 시행하게 된다. 조경 분야 전문 인력 양성을 위한 교육 훈련 및 전문 인력 양성 기관의 지정 및 지원도 포함되었다. 두 번째는 ‘조경 분야 활성화 도모’로, 조경 사업자의 토지, 건물 및 조경산업체의 기반시설 등을 진흥시설 및 진흥단지로 지정하여 조성할 수 있고, 조경 분야의 연구 개발 및 발전을 위한 조경지원센터 지정도 가능해졌다. 진흥시설 및 진흥단지로 지정되면 자금 및 설비 제공 등의 지원을 받을 수 있고, 조경지원센터는 국토교통부로부터 사업 수행에 필요한 비용의 전부 또는 일부를 지원 받을 수 있다. 또한 정부는 조경진흥법에 의거해 조경 분야의 해외 진출과 국제 교류를 지원하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법령에 근거해 조경 박람회 및 조경 전시회 등을 개최하거나 지원을 추진할 수 있게 된다. 세 번째는 ‘조경 공사 품질 관리’와 관련된 조항으로, 발주청에서는 조경 공사의 품질 저하 방지를 위해 설계 의도 구현, 공사의 시행 시기, 준공 후 관리 등에 대한 대책을 수립해야 하고, 조경 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우수 조경물 지정 및 지원도 가능해진다. 우수 조경물 지정은 지방 조례로도 지정할 수 있으며, 지정된 우수 조경물의 개보수시 비용 일부 또는 전부의 지원도 가능하다. 아울러 조경기술용역업의 경우, 적정한 조경 사업 대가를 지급받을 수 있는 대가 산정 기준을 국토부에서 고시하게 된다. 이중 조경진흥기본계획에도 많은 관심이 집중되고 있지만, 그에 못지않게 ‘조경기술용역업의 적정 대가에 대한 기준 고시’와 ‘조경지원센터 지정 및 지원’에도 시선이 쏠리고 있다. 특히 조경지원센터는 ①조경 발전을 위한 지방자치단체와의 협조, ②조경 관련 업체의 발전을 위한 상담 등 지원, ③조경 관련 정책 연구 및 정책 수립 지원, ④조경 전문 인력의 교육, ⑤조경 분야의 육성·발전 및 지원시설 등 기반 조성, ⑥조경사업자의 창업·성장 등의 지원, ⑦조경 분야의 동향 분석, 통계 작성, 정보 유통, 서비스 제공, ⑧조경 기술의 개발·융합·활용·교육, ⑨조경 관련 국제 교류·협력 및 해외시장 진출의 지원, ⑩그 밖에 지원센터의 설립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필요한 사업 등을 추진하게 되어 분야 발전에 기여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일례로, 건축 분야는 국가건축정책위원회와 건축도시연구소라는 국책 연구기관이 이론적 연구뿐만 아니라 건축관련 제도와 정책을 연구하여 건축 영역의 확장 및 발전을 지원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건축서비스산업진흥법이 제정되어 국가공공건축지원센터가 하부 연구기관으로 설립되었다. 또 성격은 다르지만, 출판문화산업진흥법에 의거해 설립된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경우는 진흥원의 정관 및 임원의 임기, 주요 직무까지 진흥법에 명기되어 있고, 출판 수요 창출 및 유통 선진화 사업, 우수 출판 콘텐츠 제작 활성화 사업, 전자출판 및 신 성장 동력 육성 사업, 출판문화산업 인프라구축 등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으며, 출판산업종합지원센터 운영을 비롯하여 적지 않은 예산이 소요되는 다양한 출판 진흥 사업을 전개해 나가고 있다. 관련법에 근거해 설립된 진흥원이나 연구기관이 실질적으로분야 발전에 도움이 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는 선례다. 지난해 12월 15일 개최된 ‘조경진흥법 제정 축하연’에서 김한배 회장(한국조경학회, 환경조경발전재단 이사장)도 ‘조경지원센터’에 거는 기대가 크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김한배 회장은 “조경의 역사는 ‘조경진흥법’ 제정 이전과 이후로 나뉘어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며 “제도적인 기반을 바탕으로 제2의 도약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고 전망한 후, ‘조경진흥법’을 기반으로 한 연구기관 설립이 가능해진 점을 무엇보다 고무적인 점으로 평가했다. 그동안 조경 분야는 국가적 지원을 받는 별도의 연구자가 없어 어려운 여건 속에서 교수와 전문가들이 자원하여 정책 연구를 진행해왔지만, “조경진흥법을 기반으로 설립될 연구소를 통해서 학술과 산업, 시민사회와의 관계 등 전 분야에서 정책 연구를 진행하여 이전 시대의 한계를 뛰어 넘는 한 단계 도약이 가능해질 것으로 기대된다”며 조경진흥법 제정 이후의 후속사업에 대한 관심을 당부했다. 한편, 5년마다 국토부 장관이 수립·시행해야 하는 조경진흥기본계획에는 ①조경 분야의 현황과 여건 분석, ②조경 분야의 진흥을 위한 기본방향, ③조경 분야의 부문별 진흥시책, ④조경 분야의 기반 조성, ⑤조경 분야의 활성화, ⑥조경 관련 기술의 발전·연구개발·보급, ⑦조경기술자 등 조경 분야와 관련된 전문 인력 양성, ⑧조경진흥시설 및 단지의 지정·조성, ⑨조경 분야의 진흥을 위한 재원 조달 및 확보, ⑩조경의 국제협력 및 해외시장 진출 지원, ⑪그 밖에 조경의 진흥을 위하여 필요한 사항 등이 담겨 있다. 애초 ‘조경산업진흥법’으로 추진되었지만 대한건설협회의 강력한 반발로 인해 ‘산업’이 빠져 ‘조경진흥법’으로 축소 제정된 점에 대한 아쉬움도 표출되고 있지만, 국내에 근대적인 의미의 조경이 도입된 지 41년 만에 처음으로 제정된 조경법이란 의미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대한민국 최초의 조경 관련법으로 기록될 ‘조경진흥법’은 시행령과 시행규칙 등하위 법령 마련 등의 절차를 거쳐 2016년 1월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될 예정이다. 조경진흥법이 실효성 있는 법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이전보다 더 큰 관심이 필요하다는 호소에 귀 기울여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정원 대중화’ 심포지엄
2014년 12월 11일, 서울시립대학교 자연과학관에서 ‘정원 대중화’ 심포지엄이 한국조경학회(회장 김한배)와 한국원예학회(회장 김기선) 공동 주최로 개최되었다. 이날심포지엄에서는 가드너, 조경 그리고 원예의 세 영역으로 나누어 각 분야의 전문가 세 명이 주제 발표를 진행했다. 가드너 영역의 김봉찬 대표(더가든)가 ‘정원 조성과 관리, 그리고 대중성 가치’를, 조경 영역에서는 최정민 교수(순천대학교 조경학과)가 ‘정원 대중화를 위한 조경의 역할’을, 그리고 원예 영역에서는 황환주 교수(신구대학교 원예학과)가 ‘정원 대중화를 위한 원예의 역할’을 주제로 정원의 대중화를 위해 각 분야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발표했다. 김봉찬 대표는 여러 정원 사례를 소개하며 정원 조성 및 관리법을 중점적으로 다뤘다. 먼저 정원 식물의 종수와 관련하여 “영국의 전문 컬렉터들은 오랜 기간에 걸쳐 전 세계의 식물을 수집하고 교잡종을 만들어 내는 노력을 했다”며, 우리나라의 정원 대중화를 위해 관련 전문가 육성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김 대표는 이어서 ‘암석원rock garden’이 한국의 정원 대중화에 기여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실제 시공 사례를 보여주는 과정에서 “암석원에 적합한 다양한 고산 식물을 도입하는 것에 앞서, 그 식물들의 기반이 되는 토양에 대한 지식을 먼저 알아야 한다”며 토양학적 지식이 정원 조성에 있어 갖는 중요성을 언급했다. 일단 잘 키울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야 식물을 키우고 디자인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정민 교수는 이번 주제 발표에서 순천만국제정원 박람회를 바라보는 일반인의 시각을 ‘블로그’에 게재된 내용을 중심으로 분석했다. 그 중 눈에 띄었던 것은 “전문가들이 최고의 작품으로 선정했던 작품이 조사했던 블로그에서는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며 전문가와 일반인의 정원에 대한 시각 차이가 생각보다 크다는 내용이었다. 정원의 대중화를 위해서 이러한 시각의 차이를 줄여가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었다. 황환주 교수는 정원 식물과 관련 자재의 수요 흐름과 같은 직·간접적 자료를 분석해 본 결과, 정원의 수요가 증가한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한국자원식물학회지』의 최근 연구 결과를 제시하며 “늘어나는 수요에 비교해 관련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정보망이나 전문 서적은 매우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현재 유통되는 서적들도 한국의 현 실정에는 맞지 않는다며 정원과 관련된 연구 및 저술 활동이 지속적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 교수는 정원대중화의 장으로 아파트를 지목하기도 했다. 주거의 중심에 공동체 정원을 도입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방안이라는 것이다. 주제 발표에 이어 진행된 토론회에는 조경진 교수(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를 좌장으로, 이종석 명예교수(서울여자대학교 원예조경학과), 안계동 대표(동심원조경기술사사무소) 등이 참여했다. 이종석 교수는 정원 산업의 발전과 대중화를 위해서는 우선 정원을 담당하는 부서의 확립과 정원 관련법 제정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는 의견을 전했다. “법제화가 되어야 국비 지원도 원활히 이루어지고, 국가 차원에서 담당 부서가 있어야 관련 사업을 추진력 있게 진행할 수 있다”며 도시농업법 제정과 관련 사업 진행 과정에 참여했던 경험에서 우러나온 조언을 했다. 안계동 대표는 현재 정원을 대하는 조경 설계가들의 태도와 준비 부족에 대해 쓴 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안대표는 “대규모의 대상지를 다루어 본 경험만으로,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의) 정원을 쉽게 다룰 수 있을 거라는 태도를 취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일갈했다. 덧붙여 “정원을 직접 다루어 본다면, 정원이 공원보다 훨씬 어렵다는 것을 단번에 깨닫는다”며 정원은 디테일과 정성적 측면이 더욱 강조되는 작업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이어서 학제적으로도 정원을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안 대표는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의 커리큘럼을 예로 들며, “현재의 커리큘럼에서는 정원이 공원이나 단지와 같은 대규모의 대상지를 다루기 위한 전 단계로서만 인식되고 있다”며 학교에서부터 정원에 대한인식 변화가 이루어져야 함을 촉구했다. 이날 참석한 각 분야의 전문가들은 모두 정원 소재의 대중화의 장으로 아파트를 지목하기도 했다. 주거의 중심에 공동체 정원을 도입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방안이라는 것이다. 주제 발표에 이어 진행된 토론회에는 조경진 교수(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를 좌장으로, 이종석 명예교수(서울여자대학교 원예조경학과), 안계동 대표(동심원조경기술사사무소) 등이 참여했다. 이종석 교수는 정원 산업의 발전과 대중화를 위해서는 우선 정원을 담당하는 부서의 확립과 정원 관련법 제정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는 의견을 전했다. “법제화가 되어야 국비 지원도 원활히 이루어지고, 국가 차원에서 담당 부서가 있어야 관련 사업을 추진력 있게 진행할 수 있다”며 도시농업법 제정과 관련 사업 진행 과정에 참여했던 경험에서 우러나온 조언을 했다. 안계동 대표는 현재 정원을 대하는 조경 설계가들의 태도와 준비 부족에 대해 쓴 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안대표는 “대규모의 대상지를 다루어 본 경험만으로,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의) 정원을 쉽게 다룰 수 있을 거라는 태도를 취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일갈했다. 덧붙여 “정원을 직접 다루어 본다면, 정원이 공원보다 훨씬 어렵다는 것을 단번에 깨닫는다”며 정원은 디테일과 정성적측면이 더욱 강조되는 작업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이어서 학제적으로도 정원을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안 대표는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의 커리큘럼을 예로 들며, “현재의 커리큘럼에서는 정원이 공원이나 단지와 같은 대규모의 대상지를 다루기 위한 전 단계로서만 인식되고 있다”며 학교에서부터 정원에 대한 인식 변화가 이루어져야 함을 촉구했다. 이날 참석한 각 분야의 전문가들은 모두 정원 소재의 다양성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의견에는 동의하는 분위기였다. 안계동 대표는 김봉찬 대표의 주제 발표 중에 소개된 외국 정원에 1만 5,000종이 넘는 정원 소재가 쓰인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현재 “한국 물가 자료에 나온 교목과 관목의 수는 150종에 불과하다. 더군다나조경 설계자들이 설계 시 사용하는 수종은 2~30종 밖에 되지 않는다”며 현재 식재 설계에 있어 교관목 소재와 활용법이 부재하다고 지적했다. 질의응답에 참여한 김동찬 국화농업시험장 재배팀장은 정원 시공 현장에서 쓸 수 있는 소재가 적은 이유로 소재 유통 과정의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현재 새로운 소재를 개발하는 업체는 여럿 있으나 상품화하고 유통할 수 있는 활로를 개척하지 못하고 있다”며 새로운 육종 방향뿐만 아니라 육종된 품종을 보급할 수 있는 유통망과 연결 주체도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정원 분야에 대한 관심이 확산됨에 따라, 조경과 원예분야의 전문가들은 정원을 각자의 산업 영역으로 표명해왔다. 이번 심포지엄은 그런 두 분야의 전문가들이 ‘정원의 대중화’라는 하나의 목표를 공유하고 협력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였다는 점에서 관련 분야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날 진행된 주제 발표와 토론에서 정원의 대중화를 위한 구체적인 방안이 도출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경과 원예가 서로의 분야별 특성을 이해하고 역할 분담의 필요성에 동의했다는 측면에서 이번 심포지엄의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정원학의 새로운 지평
국내 정원학 연구는 현재 어디까지 왔을까. 정원과 관련된 이론과 설계(실무), 그리고 이를 지원하는 시스템 등 다양한 부문의 연구와 과제의 스펙트럼을 한 자리에 펼쳐놓은 자리가 마련되었다. 지난 2014년 12월 5일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글로컬 홀GLocal Hall에서는 한국조경학회(회장 김한배)가 주최하고, 한국조경학회 정원학연구센터(센터장 조경진)가 주관하는 제2회 정원학 심포지엄이 ‘정원학의 새로운 지평’이란 제목으로 개최되었다. 정원학연구센터는 조경학의 모태인 정원 분야의 학술적 논의의 장을 마련하고, 문화 확산을 위한 싱크탱크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2014년 1월 출범했다. 네 가지 전략 과제―정원 관련 학술 활동 개최, 정원 문화 국제 교류, 한국 정원 문화 아카이빙, 정원 문화 대중화 사업―에 따라 지난해 두 번의 심포지엄이 마련되었다. 5월 개최된 첫 번째 심포지엄이 ‘Garden Talk 매혹의 공간, 정원을 디자인하다. 아홉 명의 디자이너의 정원이야기’란 제목으로 실무 디자이너들의 이야기를 듣는 자리였다면, 이번 심포지엄은 크게 이론, 실천, 시스템이라는 세 가지테마를 중심으로 국내 정원학 연구의 현재를 조명하고 미래를 모색하는 자리로 마련되었다. 정기호 교수(성균관대학교 조경학과)는 기조강연을 통해 “지금 우리가 갈망하는 정원은 ‘정원 아닌 정원’”이라는 문제제기를 하면서 심포지엄의 문을 열었다. 현재 우리의 정원 문화는 아파트에 살면서 ‘뜰이 있는 집’을 원하는 모순된 상황에 놓여있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정원은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며 전개되어 왔으므로 정원을 필요로 하는 트렌드 저변, 즉 사회적 요구를 볼 것을 주문했다. 이론, 실천, 시스템 1부 ‘이론’은 동서양 정원 관련 고전을 소개하는 자리였다. 박희성 교수(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가 중국 명대말기의 조원서인 계성計成의 『원야園冶』를, 김승윤 본부장(유네스코한국위원회)이 동서양을 통틀어 정원 만들기에 관한 가장 오래된 책인 일본의 『작정기作庭記』를, 황주영 박사가 베르나르 팔리시Bernard Palissy의 『르세트 베리타블Recepte veritable』에 나타난 종교적 정원에 관해 소개했다. 한국에서는 정원 관련 옛 기록을 찾기 힘들지만 성종상 교수(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가 고산 윤선도의 『금쇄동기金鎖洞記』를 ‘걷기’의 관점에서 소개하여 의미있는 자리가 되었다. 2부 ‘실천’은 20세기부터 현재에 활동하는 정원디자이너나 조경가들의 작품이나 작품론에 주목했다. 우선 권진욱 교수(영남대학교 조경학과)가 질 클레망Gilles Clément의 ‘움직임과 감성le mouvemet et la sensation’에 대하여 발제했다. 이어서 박은영 교수(중부대학교 환경조경학과)는‘색채의 조화’에 중점을 두고 재식 설계를 했던 거투르드 제킬Gertrude Jekyll에 관해 발표하며, 국내 조경 교육에서 수목뿐만 아니라 초본류에 대한 관심도 필요함을 환기했다. 김현 교수(단국대학교 녹지조경학과)는 ‘원풍경’과 ‘일본다움’을 회복하려는 일본 조경계의 새로운 움직임에 주목하며, ‘전통 정원’에 대한 재해석의 일환으로 저술된 『신 작정기新作庭記(신 사쿠테이키)』에 대해 소개했다. 더불어 현재 우리의 정원이 소규모이다보니 디자인의 발전이 없다며, 재료와 기술, 디자인이 함께 발전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박승진 대표(디자인 스튜디오 loci)는 조경가 정영선의 정원 미학을 ‘땅을 이해하는 태도’, ‘또다른 오너십ownership’, ‘공간을 구축하는 패턴pattern’, ‘경계 만들기 혹은 경계 흐리기’, ‘식물과 돌-정원의 자연 재료’, ‘한국정원의 실천’, ‘작가적 태도로서의 직접하기’, ‘설계시공 팀워크’, ‘사적 관계혹은 친밀함’, ‘정서적 자산’ 등 10가지 시선으로 정리했다. 정영선의 작업 방식은 제도권의 그것과는 다르다는 최정민 교수(순천대학교 조경학과)의 지적에 박승진 대표는 자신감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며, 이를 위해 설계자의 소위 ‘디자인 감리’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3부 ‘시스템’에서는 손용훈 교수(서울대학교 환경조경학과)가 상품화되어 있지만 생활문화 깊숙이 자리 잡은 일본의 정원 문화에 대해 발표했다. 윤상준 연구소장(이화원 정원문화연구소)은 영국 정원역사협회GHS, 왕립원예협회RHS, 내셔널 트러스트NT를 사례로 정원 문화에 대한 지원동향을 소개하며 정원의 일상성을 언급했다. 마지막으로 이유직 교수(부산대학교 조경학과)는 미국 하버드 대학교 이사회에서 운영하고 있는 연구소, 덤바턴 오크스Dumbarton Oaks의 정원 연구 지원 활동과 성과 그리고 그 이면까지 짚어보면서 연구자들의 관심을 요청했다. 정원학과 정원 현상 사이 최근 정원에 대한 사회의 큰 관심 속에서 조경계에는 정원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는 공감대 못지않게 여전히 정원을 만드는 데 이론이 어떤 효용이 있는지 의문을 표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번 심포지엄에서도 정원학과 정원 문화, 역사 속의 정원과 현재의 정원 양상사이의 간극에 대한 고민이 많이 드러났다. 이론이 어떻게 실천으로 이어질 수 있는가 하는 최종희 교수(배재대학교 원예조경학부)의 질문에 박희성 교수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전근대 사회에서 정원은 일반인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문화는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역사 속 정원에 대한 이해는 우리의 문화적 유전자 속에 녹아있는 자연에 대한 생각을 반추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실제 (정원)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교육을 통해 안목을 키워주는 등, 즉 비물질적인 측면에서 이론의 가치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유직 교수는 최근 역사 연구의 트렌드는 거대 담론에서 생활사 중심으로 전환되고 있는데 반해, 정원사 연구는 정원을 정치적인 결과물로서 이해하는 수준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즉 역사 정원에 대한 접근 역시 사람과 삶에초점이 맞춰져야 지금의 우리에게도 시사점이 있다는 이야기다. 최정민 교수는 순천국제정원박람회에 수많은 사람들이 방문한 현상 이면에는 사람들 마음속에 일종의 갈증이 있는 것 아니겠냐며, 이를 어떻게 끌어내어 체계화하고 어떻게 교육으로 연계시켜야 하는지 고민스럽다며 교육적 측면의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배정한 교수(서울대학교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는 ‘정원’으로 상징되는 ‘역사’와 조경의 정체성과의 관계, 혹은 과거 왕후장상의 정원과 최근 정원이라는 이름으로 일어나는 현상은 연속선상에 있다고 보기 어렵지 않은가 반문하기도 했다. 따라서 지금 일상에서 일어나는 정원현상을 개념적으로 진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개념적인 진단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현상도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이론과 실천, 정원학과 정원 실무 간만남의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개념을 통해 현상을 읽을 수 있을 때 새로운 지평도 모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술관에서 만나는 정원
당신은 정원이 있습니까? 조그만 밭 한 뙈기조차 귀한 요즘이지만 누구나 마음속에 정원이 있는 시대다. 마음속에 그려오던 저마다의 정원이 어느 시골의 한적한 곳이 아니라 미술관에서 펼쳐진다. 지난 2014년 10월 21일, 국립현대미술관서울관이 개관 1주년을 맞아 ‘정원’ 전을 개최했다. ‘도심 속 열린 문화 공간’을 지향하며 개관한 서울관이 앞으로 국민들에게 이상적인 ‘정원’으로 자리매김 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전시는 관람객에게 ‘당신의 정원’에 대해 물으며 상상력을 자극한다. “당신은 쓸모 있고 아름다울 뿐 아니라, 당신의 삶을 담아내며, 지친 일상의 호흡과는 다른 숨을 쉴 수 있게 하고, 당신 내면의 숭고함과 깊은 질문에 직면할 수 있게 하는 질문을 던지는, 또는 그 질문에 대답하는, 그래서 당신은 영혼과 정신이 고양되며 막힘없이 자유롭게 소요할 수 있는 그런 정원을 가지고 있습니까?” 현대인의 정원 ‘현대인의 정원’을 모티브로 한 전시는 자연과 예술에 대한 동양의 전통적인 철학과 사상을 토대로 구성되었다. 그래서인지 서울관이 보여주는 ‘정원’에 대한 다양한 해석은 새로운 것 같으면서도 친숙하고 추상적이면서도 어렵지 않게 다가온다. 전시는 ‘만남’, ‘쉼’, ‘문답’,‘소요유’ 등 네 개의 주제 공간으로 구성되었다. 관람객은 네 개의 주제 공간을 차례로 관람하면서 ‘자신의 정원’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가슴 속에 만 권의 책이 있고 눈으로는 전시대의 명전을 두루 보며, 또한 수레바퀴 자국과 말 발자국이 천하의 반은 되어야만 바야흐로 붓을 댈 수 있다.” 첫 번째 주제 공간 ‘만남’은 남송 대의 문인, 조희곡趙希鵠의 말로 전시를 연다. 삶에서 얻는 모든 경험이 예술의 근원이 된다는 이 말의 의미처럼 ‘만남’에서는 인생에서 경험하는 기쁨, 슬픔, 광란, 우울 등 다양한 감정이 승화된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자유분방한 필치로 환희의 순간을 거침없이 표현한 이두식의 ‘환희’는 짜릿한 해방감을 느끼게 한다. 이와 반대로 통일 전 독일의 세기말적 분위기를 기괴하고 그로테스크하게 표현한 요르그임멘도르프Jörg Immendorff의 ‘독일을 바로잡는 일’에서는 암울한 느낌이 그대로 전해진다. 다양한 감정과 인생의 굴곡진 경험을 표현한 작품이 전시된 ‘만남’을 관람하다 보면 마치 형형색색의 꽃으로 만개한 정원을걷는 느낌이다. ‘만남’과 연결된 두 번째 주제 공간 ‘쉼’은 산수화로 이름난 북송 대 화가 곽희의 산수론에서 영감을 받아 구성되었다. 그림을 통해 자연에서 느낄 수 있는 생명력과 운치를 표현한 옛 화가들처럼 자연의 장엄한 광경과 아름다움을 화폭에 담은 현대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되었다. ‘만남’에서 다양한 색의 향연을 즐겼다면‘쉼’의 흑백의 소나무 숲에서는 평화와 안식을 느낄 수있다. ‘문답’에서는 18세기 조선의 괘불과 21세기 미국의 미디어 작가, 빌 비올라Bill Viola의 작품이 서로 문답을 던지듯 마주보고 있다. 꽃비 속에서 연꽃을 들고 미소를 띤 석가모니는 21세기의 빌 비올라에게 삶과 죽음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괘불을 비추는 조명이 꺼지고 나면 비올라의 작품이 상영된다. 비올라가 바그너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위해 제작한 ‘트리스탄의 승천’과 ‘불의 여인’은 장엄한 사운드와 압도적인 비주얼이 인상적인 미디어 아트 작품이다. 한 마디의 대사도 없지만 우주의 비밀을 이야기 하고 있는 듯한 그의 작품을 통해 ‘염화시중’의 의미를 문득 깨닫는다. 마지막 전시 공간인 ‘소요유’에서는 영혼과 정신의 해방을 강조한 장자 미학을 보여주는 현대 미술 작품을 소개한다. 실험적이고 파격적인 미디어 작품을 선보여온 백남준의 ‘시바’, 전위적인 작품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했던 요셉 이스Joseph Beuys의 당당한 발걸음이 인상적인 ‘우리는 혁명이다’, 아름다운 제목처럼 따스하고 자유분방한 작품인 홍지윤의 ‘너에게 꽃을 꽂아줄게-인생은’ 등이 전시되었다. 당신에게는 그런 정원이 있습니다 밀란 쿤데라가 14년 만에 발표한 신작, 『무의미의 축제』의 판매 부수를 뛰어넘고, 전국의 미생들을 울린 윤태호 작가의 『미생 특별 보급판 세트』를 상대로 ‘완생’했으며, 일명 ‘요나손 신드롬’을 일으킨 요나스 요나손의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마저 넘어버린 책이 있다. 2014년 12월 셋째 주 종합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하며 4주째 1위를 지키고 있는 조해너 배스포드의 『비밀의 정원』이다.1 『비밀의 정원』은 소설이나 시집이 아니다. 『비밀의 정원』은 스트레스와 긴장 이완을 목적으로 하는 어른용 ‘색칠 그림책coloring book’이다. ‘도시 생활과 문명에 지친 현대인들이 ‘아날로그 방식’으로 정원을 그리면서 자신만의 정원을 완성하고 치유받는다’는 콘셉트의 책이 열풍처럼 유행하고 있다는 사실은 ‘정원’이 현대인에게 ‘노스탤지어’이자 ‘꿈’으로 다시 떠오르고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집 안에 있는 뜰이나 꽃밭’이라는 사전적 정의를 넘어도시 생활에 지친 현대인을 위로하는 하나의 심상으로 자리 잡은 정원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당신에게는 그런 정원이 있다.
서울 視·공간의 탄생: 한성, 경성, 서울
사진으로 보는 서울의 도시경관사 사진의 탄생은 근대적 시時·공간의 탄생과 궤를 함께 한다. 개항을 전후해 조선에 도입된 사진(술)은 근대성이 정초되기 시작한 ‘한성’에서 일제강점기의 ‘경성’, 광복 이후 전쟁의 폐허 속에서 재건한 현대의 ‘서울’에 이르기까지의 도시의 변화를 기록해왔다. 지금은 누구나 카메라 하나쯤 가지고 일상을 기록할 정도로 사진이 친근한 매체이지만, 여전히 사진은 도시와 사회의 역사를 탐색하는 중요한 사료이자 예술적 매체이기도 하다. 서울시는 2014년 11월 13일부터 한 달간 ‘서울 視·공간의 탄생: 한성, 경성, 서울’을 주제로 한 제5회 ‘서울사진축제’(총감독 이경민)를 개최했다. 이번 서울사진축제는 2012년부터 기획된 ‘서울 삼부작’의 마지막 전시로, 서울의 ‘기억’(2012), ‘사람’(2013)에 이어 ‘공간’을 키워드로 했다. 2014 서울사진축제는 서울 도시 경관의 변천사를 보여주는 본 전시(서울역사박물관 기획전시실)를 중심으로 시민참여형 전시로 기획된 특별전, 그리고 시민 강좌와 시민 워크숍을 비롯한 각종 시민 참여 프로그램으로 이루어졌다. 이번 전시는 외국인의 조선 여행기에서 시작해 국가기록원 등 정부와 서울시의 기록 사진 아카이브, 관변 간행물, 매체 사진, 사진가들의 작품 사진등 다양한 맥락에서 생산된 700여 점의 사진들이 망라되어 각 시대별 도시 이미지를 드러냈다. 동시에 도시경관 변화의 주요 원인인 도시계획, 근대 여가 문화, 전쟁, 근대화·산업화 정책 등을 키워드로 삼아 서울을 다층적으로 돌아볼 수 있었다. 한성에서 경성으로 본 전시 제1부 ‘한성에서 경성으로’는 1880년대의 사진을 시작으로 1945년 해방 이전까지 생산된 사진 자료를 다섯 개의 섹션으로 나누어 구성했다. 특히 개별사진들이 전달하는 물리적인 정보뿐만 아니라 각 사진이 생산되고 유통되는 방식을 통해 일제강점기 식민당국의 시각적 지배 방식을 살펴볼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소설이나 수필 등의 문학 작품과 영화 등을 통해 당시 경성 시민들의 도시에 대한 미적 감수성과 그에 대한 반응도 함께 살필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원형경관과 그 변동’을 주제로 마련된 섹션1에서는 1876년 개항 이후부터 1907년 고종이 강제 퇴위되기 전까지 조선을 방문한 서양인과 일본인이 남긴 여행기와 사진첩을 통해 서울의 원형 경관을 볼 수 있었다. 또한, 대한제국기의 주요 건축물과 정동을 중심으로 형성된 외교관 거리의 모습을 통해 점차 변모해가는 도시 경관의 변화상을 만나게 된다. 섹션2 ‘근대 건축의 각축장’에서는 1900년대부터 1940년대 사이 세워진 근대 건축 사진을 아카이빙하여 건축물의 성격과 용도에 따라 보여주었으며, 섹션3 ‘박람회, 건축양식의 실험장’에서는 1929년 개최된 조선박람회장에 세워진 주요 전시관의 외관 사진을 중심으로 식민지 건축 양 식의 이중적 성격을 살펴보았다. ‘식민지 수도의 탄생’을 주제로 전시된 섹션4에서는 조선이 강제 병합된 직후부터 실시된 경성시구개정사업의 결과를 보여주는, 사업 이전과 이후의 모습을 비교한 20곳의 사진을 통해 경성이 식민지 수도로 재편되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이러한 비교 방식의 사진 배치는 제국주의 시대에 고안된 시각적 설득 방안의 하나로, 시구개정사업으로 식민지 조선이 근대화, 문명화되었다는 착시 효과를 일으키게 하는 일제의 시각적 지배 방식의 하나였다. 섹션5 ‘식민지 관광과 경성의 표상’에서는 1930년을 전후해 운영된 경성유람버스의 주요 코스를 중심으로 경성의 이미지가 어떻게 생산되었으며 그 장소가 갖는 식민주의적 의미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번 사진축제에서는 연계 프로그램으로 당시 ‘경성유람버스’의 노선(조선호텔[황궁우]-남산분수대[조선신궁]-신라호텔[장충단]-경복궁)을 따라 버스를 운행해 시민들이 공간 변화를 직접 체험할수 있게 했다. 경성에서 서울로 본 전시 제2부 ‘경성에서 서울로’는 1945년 해방 이후 식민지 수도라는 한계를 안고 근대 도시로 변모한 경성이 한국 전쟁과 전후 재건 사업, 1960년대부터 본격화된 근대화 및 산업화 정책, 그리고 재개발 사업 등의 과정을 거치며 현재의 메가 시티로 변화해온 모습을다루었다. 전쟁과 폐허, 그리고 개발의 과정 속 도시를 바라보는 여러 사진가의 시선 변화를 쫒는 것도 이번 전시의 또 다른 흥미로움이었다. 섹션1 ‘전쟁과 도시’에서는 한국 전쟁 당시의 사진들을 통해 집단적 기억과 표상으로 반복되는 도시 공간의 파괴를 바라보는 사진의 시선들에 초점을 맞춘다. 섹션2의 ‘착실한 전진’에서는 해방부터 1970년대까지 재건과 경제 개발 당시 ‘근대화’를 추진하는 서울의 이미지를 정부 공식 기록물, 관변 간행물에 수록된 사진을 통해 바라본다. 1960년대 고속도로 건설 현장의 황량한 벌판에 나란히 앉아 구경하는 갓 쓴 이들을 찍은 전몽각의 사진은 당시 서울의 물리적 경관뿐만 아니라그 풍경을 바라보는 시민들이 느꼈을 시각적 충격 또한 고스란히 전달한다. 섹션3 ‘정치적 풍경’에서는 대한뉴스 속 표어들과 함께, 정부 수립, 대통령 취임, 국빈 방문 등을 기념해 거리에 세워졌던 아치, 애국선열조상건립위원회가 세운 ‘애국선열’ 15인의 동상, 대중동원 사진을 통해 한국의 ‘근대화’ 과정 속의 경관을 살펴본다. 섹션4에서는 ‘살기 좋은 서울’이라는 주제로 1970년대 이래 공공 기록으로서 촬영된 자료 사진을 통해 재개발의 시대별 경향과 현장을 누비며 재개발이전부터 이후까지 촬영해 온 작가들의 사진을 통해 서울의 경관 변화를 비교해 본다. 섹션5 ‘유동하는 시선’으로 넘어오면 현재 활동하고 있는 사진가들의 시선을 통해 ‘도시의 눈Urban Eye’으로서 사가는 지금이 시점 우리가 어떠한 이미지를 ‘도시’라고 인식하고 의미화 하는지에 대한 실마리를 주는 동시에 도시 너머의 도시에 대해 이야기한다. 개인적 기록의 아카이빙서울사진축제의 ‘서울 삼부작’은 일반인들의 사적인 기념 사진을 박물관에 전시하면서 민간 기록물의 사회적 역할과 가치를 고민하는 계기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또 다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이경민 총감독은 “아카이브는 권력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기 때문에 이를 보완하는 개인 기록물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권력의 필요에 의해 생산된 아카이브는 국민들에게 전파되는 과정에서 국가 이데올로기가 개입되고, 이를 바탕으로 공식 역사와 공식 기억이 재구성”1될 수 있기때문이다. 이번 사진 축제의 특별전인 ‘여가의 탄생’은 서울의 대표적인 나들이 공간이었던 창경원의 모습을 통해 여가 문화의 한 면을 살펴보는 ‘창경원의 추억’과시민들의 나들이 사진을 공모하여 구성한 ‘추억의 나들이를 떠나요’로 구성되었다. 시민들의 추억이 담긴사진 속에는 공식 기록에 미처 담기지 못한 다양한 단편들이 담겨있어 역사적 사료로서의 가능성 역시 보여주었다. 연대기순으로 배열된 사진들을 따라가다 보면, 시간이흐름에 따라 겉모습을 바꾸어가며 반복되는 도시의 여러 요소들을 볼 수 있으며,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들의문화적 관성도 끈질기게 이어지고 있음을 알아차릴 수있다. 이렇듯 우리가 계보를 짚어가며 기원의 현장을포착하려는 이유는 아마도 원형 속에 감춰진 사회적 의미를 파악하기 위함일 터이고, 이것이 아카이브 전시가 의미 있는 이유일 것이다.
하늘에서 본 지구Mind the Earth
벌목 패턴도 아름다울 수 있을까? 높은 곳에서 열대우림을 바라본 위성 사진은 땅에 그려진 정교한 패턴을 보여주지만 그 이면에는 거대한 면적의 열대 우림이 매일 사라지고 있다는 두려운 이야기가 깔려 있다. ‘마인드 디 어스Mind the Earth’ 전은 구글 어스Google Earth로 촬영한 위성 사진을 통해 지구가 얼마나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고 어떻게 변화했는지, 어느 정도로 회복탄력적resilient이고 동시에 얼마나 위험에 취약한지 보여준다. ‘마인드 디 어스’ 전은 리얼대니아Realdania와 램볼Ramboll의 후원으로 2014년 11월 20일부터 2015년 1월 11일까지 덴마크 건축 센터Danish Architecture Centre에서 전시된다. 지상을 줌 인, 줌 아웃한 구글 어스의 위성 사진을 통해 지구의 경관 이면에 담긴 제각각의 독특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하늘에서 바라본 바다 위에 흩뿌려진 섬 마을, 대도시, 식량을 생산하는 거대한 크기의 농지 등의 경관은 상당히 매혹적이다. 관람객은 이전에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지구의 모습에 주목하게 될 것이다. 지상 10km 높이에서 지구를 바라본 사진에서 산과 바다, 도로, 건물 등이 만든 여러 패턴을 볼 수 있다. 이러한 패턴들은 우리가 평소에는 짐작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바로 우리가 그 패턴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좀 더 확대해서 들여다보면 모든 장소와 지역이 제각기 독특한 특징과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덴마크 건축 센터의 홍보팀장 마틴 빈터Martin Winther는 “이 아름다운 사진들은 세계화, 도시화, 기후 변화와 같은 지구의 변화가 만들어내는 여러 가지 양상을 보여준다. 관람객은 지구의 다양한 모습에 전율을 느끼고 놀라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지구의 자원은 무한하지 않으며 우리가 가진 자원을 소중히 다루어야 할 공동 의무가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것이다”라고 전했다. 지구의 패턴이 보여주는 미래 이번 전시는 삶과 거주에 초점을 둔 4개의 주제―식량, 에너지, 교통, 수자원―에 대해 다루고 있다. 전시의 주제를 통해 사람, 도시, 경관을 위한 미래의 모습은 어떤 것인지, 우리의 삶의 기반은 무엇인지, 우리가 이용할 자원은 어디에서 얻게 될 것인지 살펴본다. 사진은 동일한 공간을 서로 다른 시간대에 촬영해 보여줌으로써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모습을 강조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램볼의 선임 건축가이자 도시계획가인 캐스퍼 브레인홀트 백Kasper Brejnholt Bak과 작가, 번역가, 소리 예술가로 활동하고 있는 모르텐 쇤더고르Morten Søndergaard의 합작 결과물로, 위성 사진에 대한 각자의 접근 방식과 해석을 보여준다. 캐스퍼가 건축적 관점에서 사실적으로 접근했다면 모르텐은 시적이고 철학적인 관점을 보여준다. 이들은 이미지에 대해 공감과 이해를 이끌어내고 우리가 사는 세계가 어느 특정한 순간에 어떻게 보이는지, 미래에는 결국 어떻게 보이게 될지 말하고자 한다. 본 전시를 계획하며 오랜 기간 동안 전시에 사용될 구글 어스의 위성 사진을 수집해 온 캐스퍼 브레인 홀트백은 “도시계획가로서 내가 흥미를 가지고 있는 것은 세계화와 도시화가 미래에 우리가 구상할 마을과 도시를 만드는 방식에 필요한 새로운 필수 전제 조건을 어떻게 만들어내는가이다. 나는 항공 사진을 통해 본 지구의 그래픽적 아름다움과 지구의 자원에 대한 지식의 병합이 우리 개개인과 전체가 구성하는 지구의 패턴에 관한 여러 생각을 자극하게 될 것이라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협력적 주거 공동체
현재 한국은 1인 가구가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으며, 저출산과 고령화 문제까지 더해져 가족 구조의 큰 변화를 겪고 있다. 더 이상 이웃과 공동체라는 말이 공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사회가 된 듯하다. 새로운 사회적 가족과 대안적 주거 공간의 등장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있지만, 그에 대한 답은 그리 쉽게 제시되지 않는 다. 지금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협력적 주거 공동체: Co-Living Scenarios’ 전은 이러한 주거와 공동체적 삶에 대해 조금 다른 시각을 가진 아홉 개의 시나리오를 제시한다. 미술관의 1층 플랫폼 지붕 상단에는, 건축가 유걸(iArc)의 ‘페블 앤드 버블Pebble & Bubble’이 설치되어 있다. 이 작품의 시나리오는 다음과 같다. ‘조그만 땅을 갖고 있던 누군가가 적은 예산으로 공용 공간을 만들려고 한다. 그는 동네의 3D 프린팅 숍에서 페블과 버블로 불리는 건축물을 출력하여 자신의 땅에 설치한다. 몇몇 사람에게 세를 내주며 공동체를 형성한다.’ 유걸은 “그동안의 건축은 너무 비싼 ‘특수해’였다”며, 저렴한 가격에 제공할 수 있는 소비자 중심의 ‘일반해’를 제안한다. 이 ‘일반해’는 3D 프린팅을 통해 쉽게 찍어낼 수 있으면서, 건축가의 도움이 필요 없는 구조를 취할 것이라 말한다. 본 전시장에 들어서면 입구 한구석에 ‘C BAR 일보’라는 제목이 붙은 신문 더미를 볼 수 있다. 작품의 형태에서 단지 건축적인 시나리오만을 얘기하지 않을 것이라 예상할 수 있다. C BARCo-working Bar Architecture Research는 이 신문을 만들어낸 공동체의 이름이기도하다. C BAR는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가상의 C형 바bar에 모여 생각을 나누는 일종의 협력적 사유 집단이다. 이들은 “물리적인 해결책만을 제시한다면 지금과 같은 주거 환경에 변화는 없을 것”이라며, 서울시 예산이 그들이 제안하는 ‘공유 부동산 개발 펀드 운용계획’에 투자되었을 때 어떠한 방식으로 새로운 공유 공간이 창출될 수 있을지 분석한다. 신문이 놓인 곳을 지나 녹색 플라스틱 골판지로 만들어진 책장 너머로 하얀색 건축 모형이 보인다. 건축가 신승수(디자인그룹오즈)와 조경과 건축을 함께 하고 있는 유승종(라이브스케이프)이 협업한 ‘Our Home / My City’다. 이들은 “공간의 공유에 앞서, 사용의 공유와 사용 가치의 공유”를 위한 시스템을 제안한다. 이 시스템은 나의 방과 ‘우리의 방(옥상)’이 수직적으로 결합하는 구조를 갖는다. 이러한 ‘우리의 방’들은 수평적으로 맞물려서 작동하면서 공유의 공간이 된다. 씨드머니seed money로 대표되는 사회-경제적인 운영 체제도 추가적으로 제공하여 자족적인 삶이 가능한 공동체를 지향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공유에 대한 생각이 변화하고, 실제 공유하는 삶을 살아가게 되면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공동 주거에 대한 공부와 작업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김경란Q(크크륵크득건축사사무소), 이진오J(SAAI), 김수영K(su:mvie) 3명으로 구성된 QJK는 ‘아파트멘트Apartment’라는 시나리오를 보여준다. 이 시나리오의 배경은 아파트다. 이들은 공유의 행위를 만드는 방법보다는, 공간이 공유된 ‘후’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이 작품은 아파트 내의 ‘가상의 공공 공간’의 운영 방식과 그 안에서 벌어질 수 있는 다양한 삶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이진오는 “어떤 공간에서의 삶은 거주자가 그 주거 공간을 대하는 태도에 따라 달라진다”고 말한다. 아파트에 (개인적인 삶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아닌) 공동의 삶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들이 살게 되었을 때, 아파트는 전혀 다른 주거 공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아파트멘트를 마주보는 벽에는 이번 전시에서 가장 건축적인 방식으로 공공 주거의 형태를 제안하는 작품, ‘수직마을입주기’가 있다. 건축가 조남호(솔토지빈건축사사무소)는 “그동안의 주거는 상품에 가까웠다”고 평가하며, 주민들이 직접 나서서 주택을 짓는 일에 참여하는방안을 제시한다. 그가 이 작품에서 제안한 주거 방안은 ‘조립식 모듈러 시스템’이다. 한 변이 6m로 이루어진 정육면체가 연속적으로 배치된 철골 구조 시스템에는 고층 주거의 구조와 설비 시스템이 내장되어 있다. 이 구조에 더해지는 ‘경골목구조 패널 시스템’은 주민들이 인테리어 수준의 작업만으로도 집을 지을 수 있게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하나의 건물 속에는 쓸모와 필요에 따라 자족적 주거 형태가 조직되고, 여러 주거가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수직적인 구조의 마을이 탄생한다. 전시 공간 한 구석에서 들리는 웃음소리를 따라가면, 하얀 플라스틱 골판지로 만들어진 공간 속에 놓인 브라운관 TV 하나를 발견할 수 있다. ‘피타집 다큐멘터리’는 실제 ‘수직마을입주기’에서 말하는 인테리어 수준(?)의 자재를 가지고 집을 지은 학생들(PaTI 한배곳 일학년)의 동영상 기록물이다. 이 다큐에는 파주의 타이포그래피 학교인 PaTI의 ‘공간 만들기’ 수업 과정(강의: 장영철_와이즈건축)이 담겨있다. 비록 한 달이라는 짧은 시간의 기록이지만, 그 어느 작품보다 현실적인 이야기가 많이 담겨있다. 각목과 플라베니아(플라스틱 재질의 골판지)로 만든 판잣집에서 학생들은 수업 이전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체감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기록한다. 한 학생은, “어른들은 ‘요즘 젊은이들은 이기주의적이고, 그들이 SNS를 통해 만드는 관계는 진정한 관계가 아니’라고 하지만, 마음 편히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장소가 없다”는 말로 ‘피타집에서의 한 달은 소중한 경험이었다’는 소감을 대신했다. 다큐의 마지막 부분의 “주거와 같이 당연히 필요한 것을 쉽게 얻기 힘든 사회가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다”는 인터뷰 내용도 다른 작품과는 다른 ‘실제’의 경험이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당신이 새로운 1인 주거의 형태를 찾고 있다면, 건축가 조재원(공일스튜디오)의 ‘우공집 복덕방’을 방문하길 바란다. ‘우연한 공동체의 집’을 줄인 우공집의 작품 설명은 “현대인이 필요한 공간, 필요한 쓸모 이상의 너무나 많은 것을 갖고 있다”는 말로 시작된다. 이 복덕방에서는 방, 서재, 사무 공간 등 하나의 기능만을 위한 공간을 제공한다. 시간 혹은 월 단위로 시간을 변경하며 사용할 수 있는 집도 제공한다. 전시장에 설치된 ‘팝업오피스’에서는 이와 관련된 정보를 제공한다. 우공집을 지나서 식물로 가득한 우편함과 선반이 창가에 놓여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설치 작품은, ‘녹색의 공극porosity: 입체적 도시 영농’이라는 실험의 일부다. 건축가 황두진(황두진건축사사무소)은 현재 아파트는 “공극률 0에 육박하는” 폐쇄적이고 획일화된 공간이라며, 이러한 공간에서 ‘농업의 행위’가 만들어낼 가능성을 얘기한다. 그는 “주거만 담당하는 건물은 필요 없어질 것”이라며, 기능과 용도에 따른 공간 분류가 아닌 인간의 행위에 따른 분류가 필요해질 것이라 말한다. 이 우편함과 공구함은 아파트의 남는 공간에서 ‘농업’의 행위가 만들어낼 변화를 미술관 곳곳의 자투리 공간을 통해 보여주려 한다. 3층 중앙의 ‘크리스탈 룸’에는 건축가 김영옥(Rodemn A. I)의 ‘3rd SCAPE’가 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녹색의) 우편함이 전시의 끝이라고 생각하며, 이 아홉 번째 작품의 존재를 모르고 지나치지 않았을까? 전시 공간의 이름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깜깜한 공간 한쪽 구석에 놓인 스포트라이트를 따라가면 책 하나를 발견할 수 있다. 책장 하나하나에는 더 나은 주거의 모습을 그려낸 수많은 스케치와 입단면도가 자리하고 있다. 수십·수백 개의 도면을 통해 “삶의 영역을 나누고 기억의 영역을 공유하는, 함께 나누면서 사는 집”을 상상하게 한다. 전시를 보고나면 마치 공유 주거가 행복과 더 나은 삶의 기반을 제공할 것만 같은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물론 형식이 도움이 될 수는 있겠지만, 건축이 삶을 바꾼다? 이것에는 동의하지 못하겠다. (어떤 공간에) 들어 오는 사람들의 인식이 변해야 한다”라는 한 건축가의말은 우리가 공동체적 삶에 대해 얼마나 준비되어 있는지 생각해 보게 한다. 전시장을 빠져나가기 전에 ‘건축가별 인터뷰’를 꼭 한번 들어보길 권한다. 아홉 개의 서로 다른 이야기가 하나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번 전시는 1월 25일까지 열린다.
[시네마 스케이프] 보이후드
‘비포 선라이즈(Before Sunrise)’(1995), ‘비포 선셋(Before Sunset)’(2004), ‘비포 미드나잇(Before Midnight)’(2013)은 리처드 링클레이터(Richard Linklater) 감독이 같은 배우들과 9년에 한 번씩 만든 세 편의 영화다. 주인공 제시와 셀린느는 기차에서 처음 만나 오스트리아 빈에서 하루를 보내고 9년 만에 프랑스 파리에서 재회하며, 다시 9년후엔 부부가 되어 그리스 카르다밀리(Kardamili)의 해변마을을 여행한다. 20대의 풋풋한 주인공들은 빈의 프라터(Prater) 공원의 대회전차에서 첫 키스와 함께 사랑을 확인한다. 정해진 여정을 깨고 그들이 찾는 놀이 공원은 어른도 아이가 되는 판타지의 장소다. 30대가 되어 다시 만난 그들은 파리의 오래된 골목과, 철로를 공원으로 조성한 프롬나드 플랑테를 걷는다. 그들이 걷는 긴 선형의 동선만큼 지나온 삶과 미래의 여정은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다. 다시 9년 후, 그들은 두 딸과 함께 그리스 해변 마을을 여행하며 폐허가 된 유적지인 메소니(Methoni) 성을 걷는다. 한때 찬란한 문화를 꽃피운 빛나던 장소는 이제 수많은 전쟁으로 폐허가 되었지만 시간의 흔적만으로도 가치를 지닌다. 그들은 20대처럼 풋풋한 사랑을 속삭이지 않고 30대처럼 꿈과 야망을 이야기하지 않지만, 그들의 긴 역사가 고스란히 쌓여서 젊음보다 더 빛나는 40대의 삶을 이야기한다. 비포 시리즈의 시간은 관객이 실제 체험하는 시간과 같다. 영화를 세 편 보는 동안 관객도 열여덟 살의 나이를 먹는다. 2014년,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은 시간을 모티브로 새로운 영화적 실험을 선보였다. 그의 신작 ‘보이후드Boyhood’는 12년 동안 같은 배우들과 매해 늦여름에 일주일씩 만나서 완성한 영화다. 관객이 영화를 보는 세 시간 동안 영화에서는 12년의 세월이 흐른다. 주인공 메이슨은 잔디밭에 드러누운 앳된 여섯 살 꼬마에서(첫 장면이자 포스터에 담긴 장면) 영화가 끝날 때는 열여덟살 청년이 되어 있다. 다음 해로 넘어갈 때는 특별한 메시지 없이 바로 그 다음 날처럼 부드럽게 연결된다. 2014년에서 하루 잤을 뿐인데 일어나보니 2015년이되는 것처럼 말이다. 배우들이 분장하지 않아도 되니 1년 후라는 메시지가 어쩌면 필요 없을지 모른다. 어느 해에는 여드름이 늘어난, 또 어느 해에는 중저음의 변성기가 온 메이슨이 등장한다. 감독의 실제 딸인 깍쟁이 누나는 통통한 귀염둥이에서 치아 교정기를 낀 사춘기 소녀로, 시니컬한 대학생으로 성장한다. 영화는 주인공 메이슨의 일상과 시선을 중심으로 그려진다. 일주일에 한 번 들리는 아버지와 엄마가 다투는 모습을 메이슨은 누나와 함께 2층 방에서 내려다본다. 두 아이를 맡아 키우는 엄마는 생계를 위해 공부하고 일하며, 두 번 더 결혼하지만 결국 혼자 남는다. 철없어 보이는 아버지는 매주 아이들과 캠핑을 가거나 볼링을 치러 간다. 아이들은 엄마의 생계형 돌봄과 아버지와의 위락 활동과 조언으로 성장한다. 영화를 보다보면 어릴 때 동생과 토닥거리며 지내던 영화 속 누나이기도 했다가 아이들 걱정에 잔소리를 늘어놓는 엄마가 되기도 하면서 그들과 함께 12년을 산 것처럼 느껴진다. 서영애는 ‘영화 속 경관’을 주제로 석사 학위를 받았고, 한겨레 영화 평론 전문 과정을 수료했다. 조경을 제목으로일하고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으며 영화를 삶의 또 다른 챕터로 여긴다. 영화는 경관과 사람이 구체적으로 어떻게관계 맺는지 보여주며 인문학적 상상력을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텍스트라 믿고 있다.
[100 장면으로 재구성한 조경사] 이탈리안 잡An Italian Job
#33 알렉산더 포프 - 고대 시에서 영감을 얻다 영국에서 마침내 ‘사라와지’를 찾았다고 해서 그 말이 곧 중국의 조원 양식을 본뜨는 데 성공했다는 뜻은 아니다. 사라와지는 본래 중국풍의 정원을 표현하기 위해 도입된 개념이지만 중국의 양식을 본뜨겠다는 의도는 처음부터 없었다. 그들은 ‘무질서한 아름다움’이라는 개념에 흥미를 느끼고 일종의 암호처럼 사라와지라는 개념을 차용했을 뿐이다. 실제로는 지난 9월호에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베르길리우스의 목가 등 고대 문학에서 해법을 구할 수 있으리라 여겼다.1 시인 알렉산더 포프(Alexander Pope)(1688~1744)의 행적을 살펴보면 그 사실이 입증된다. 포프의 행적을 따라가 봐야 하는 이유는 그가 1718년경부터 자신의 트위큰햄(Twickenham) 저택에 조성한 정원이 영국 풍경화식 정원의 출발로 여겨지고 있기 때문이다.2 그렇다면 포프야말로 사라와지를 발견한 사람이 아닐까. 그러니 그의 행적을 추적해야 우리도 사라와지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알렉산더 포프는 18세기 영국 최고의 고전주의 시인이었다고 평가되는 인물이다. 그는 호메로스, 베르길리우스, 호라티우스 등의 작품에서 큰 영향을 받아 고대 문화에 깊이 심취해서 살았다. 비단 포프뿐 아니라 그 시대의 엘리트들은 모두 고대 문화에 심취해 있었다. 문학도 고전주의, 건축도 고전주의 양식, 음악의 주제 역시 고대 신화나 역사에서 빌려 왔다. 당시는 헨델이 런던의 음악을 지배하던 시기였다. 그의 작품 중 가장 잘 알려진 ‘메시아’는 후기 작품이다. 초기에 그는 오페라만 작곡했는데 모두 고대 이야기였다. 당시의 분위기가 그랬다. 포프는 수많은 창작시를 남겼지만 그 외에도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를 영어로 번역하여 큰 성공을 거뒀다. 여러 정황으로 미뤄 보면 포프는 고전 작품들을 분석하며 그 안에서 정원에 대한 묘사를 찾고 있었던 것 같다. 베르길리우스의 ‘아르카디아’에 대한 묘사를 바탕으로 정원을 만들려고 보니 너무 막연했다. 좀 더 구체적인 정보가 필요했다. 베르길리우스는 그 외에도 올림포스에 사는 한 노인의 정원을 노래한 적이 있다.3 호메로스 역시 오디세이아에서 알키노오스(Alchinoos) 왕의 정원을 묘사했다. 포프는 1713년 『가디언』에 정원 칼럼을 쓰면서 정원이란 모름지기 호메로스와 베르길리우스가 노래한 것과 같아야 한다고 주장했다.4 올림포스 어느 노인의 정원이나 알키노오스 왕의 정원은 분위기가 비슷하다. 온갖 과실수가 자라고 허브원에는 화초가 흐드러지며 나무는 자유롭게 자라고그 사이로 계류가 자유롭게 흐른다. 분명 사람이 만든 정원이지만 자연과 같은 곳. 그런 정원이 알렉산더 포프를 매료시켰다. 그러나 이 정원들도 역시 막연했다. 과실나무, 계류, 꽃, 이들을 어떻게 배치해야 할지 베르길리우스도 호메로스도 말해주지 않았다. 방황 끝에 찾은 것이 호라티우스(Quintus Horatius Flaccus)(BC 65~8)의 별장 정원이었다. 베르길리우스와 쌍벽을 이루었던 고대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는 글 속에서 자신의 정원을 여러 번 상세히 묘사한 것으로 유명했다. 그의 별장은 사비나의 산 속에 있다고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별장에 사비눔(Sabinum)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기원전 30년 경에 지어진 별장이었다. 16세기에 호라티우스의 작품이 재발견되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을 때 많은 독자들이 사비눔을 직접 보고 싶어 했다. 그러나 천오백 년 전에 지은 빌라가 남아있을 리 없었다. 마치 오늘날 연개소문의 저택을 찾겠다는 것과 크게 다를 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한 결과, 1761년, 사비눔이 있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는 데 성공했고 건물의 기초도 발견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 기초 위에 중세의 수도원이 떡하니 지어져 있었던 것이다. 결국 20세기에 들어와서야 발굴 작업이 시작될 수 있었다. 수차례에 걸친 작업 끝에 현재는 집터 관람이 가능하다. 알렉산더 포프의 시대에는 아직 사비눔의 위치조차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는 오로지 호라티우스의 글에 의지하는 수밖에 없었다. 글에 따르면 사비눔은 산으로 둘러싸인 골짜기에 지어졌으며 소작인과 노예의 숫자 등으로 미루어 보아 순수한 주거형의 별장이 아니라 농장을 겸하고 있던 곳이었다. 대략 81헥타르 정도의 규모였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당시 로마의 농장 중에서는 중상급에 해당했다.5 집 뒤에는 숲이 있어 그늘지고 집 앞으로는 샘이 솟아 여름이면 서늘하고 겨울에는 온화했다. 집 근처에는 바쿠나 여신의 신전이 있었다. 베르길리우스나 호메로스의 묘사보다는 조금 더 구체적이었다. 포프의 시대에 또 하나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은 연극과 오페라였다. TV도 영화도 없던 세상이었으니 사람들은 친구들과 정기적으로 오페라 극장을 찾았다. 1705년 런던 헤이마켓 거리에 ‘여왕 폐하의 극장(Her Majesty’s Theatre)’이 세워졌고,6 1732년에는 로열 오페라 하우스가 개장했다. 모두 포프 시대의 일이었다. 더욱이 헨델이 런던에 나타난 이후로 오페라 계에 활기가 넘쳤고 헨델은 포프가 속했던 엘리트 계층이었으므로 그들은 극장에 거의 출근하다시피 했다. 오페라에서는 물론 음악이 중요하지만 포프의 경우 무대 장치를 유심히 관찰하며 자신의 풀리지 않는 숙제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문득 ‘정원 전체를 저렇게 연극 무대처럼 꾸밀 수 있지 않을까’라는 아이디어를 얻었던 것 같다. 포프의 저택은 템스 강가에 근사하게 자리 잡고 있었지만 햄프턴 궁전으로 가는 길이 집 바로 뒤로 지나갔다. 그 길을 건너 포프의 땅이 계속되었다. 그곳에 그는 베르길리우스가 노래한 것처럼 포도밭을 가꾸고 정원을 조성하고자했다. 그러자면 정원과 집 사이를 연결해야 했으므로 터널을 뚫었다. 집 앞마당 정원에서 지하로 내려가 한참을 걷다보면 지상으로 다시 나오게 된다(세를의 도면 3번). 이때 터널에서 지상으로 나오는 순간 문틀에 의해 템스 강변의 정경이 마치 액자 속의 그림처럼 담겨져 보였다. 그가 만든 첫 번째 무대 장치였다. 도로 우측에 있는 긴 형상의 정원은 제대로 된 풍경화식 정원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일단은 무질서해 보인다. 우선 기존 정원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인 중앙축이 사라졌다. 여기저기 언덕을 쌓았다거나 길의 흐름이 제멋대로라는 점등에서 나름 고심한 흔적이 보인다. 그럼에도 이후 풍경화식 정원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는 수목 배치를 통한 장면 연출과 공간 조성 기법은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이 정원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아마도 원형의 ‘조개껍질신전(Shell Temple)’일 것이다(세를의 도면 5번). 현재 포프의 정원은 그로토의 일부를 제외하곤 남아있는 것이 없어 확인할 수 없지만 아마도 조개껍질을 붙여 만든신전 모양의 소건축이었을 것이다. 비록 신전이라고 불리기는 하나 특별한 용도가 없는 건축물로서 종교적인 용도로 만든 것은 아니었다. 연극 무대 위의 장치처럼 배경을 연출하기 위해 세워졌을 뿐이다. 기존 바로크식 정원에도 물론 건축물과 조형물이 있지만 그들은 막중한 의미를 부여받았다. 뜻과 상징성이 강했다. 반면 포프의 정원에 세워진 신전은 뜻이 아니라 느낌을 담았다. 이런 건축물이나 조형물을 ‘스타파주(staffage)’라고 한다. 본래 스타파주는 미술에서 쓰는 용어였다. 클로드 로랭이나 카날레토 등의 풍경화가들이 쓰던 기법으로서 그림에 인물이나 동물, 건축물 등을 자그맣게 그려 넣어 장면에 생기를 불어넣고 그림에 깊이를 더했다. 그야말로 첨가물일 뿐 그 자체로 의미는 없다. 이로서 포프는 풍경화 기법과 무대 장치의 원칙을 정원에 적용한 최초의 인물이 되었다. 별 것 아닌 듯 보여도 큰 차이가 있다. 정원에 무대를 만든 것이 아니라 정원 그 자체가 무대가 된 것이다. 고정희는 1957년 서울에서 태어나 어머니가 손수 가꾼 아름다운 정원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어느 순간 그 정원은 사라지고 말았지만, 유년의경험이 인연이 되었는지 조경을 평생의 업으로 알고 살아가고 있다. 『식물, 세상의 은밀한 지배자』를 비롯 총 네 권의 정원·식물 책을 펴냈고,칼 푀르스터와 그의 외동딸 마리안네가 쓴 책을 동시에 번역 출간하기도 했다. 베를린 공과대학교 조경학과에서 ‘20세기 유럽 조경사’를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베를린에 거주하며 ‘써드스페이스 베를린 환경아카데미’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그들이 꿈꾼 도시, 우리가 사는 도시] 시작하며: 현대 도시설계의 규범 이론과 실천의 조각
프롤로그 칠흑같이 새까만 밤, 물과 뭍의 경계를 따라 펼쳐지는 빛의 향연을 하늘에서 내려다볼 때마다 나는 경이로움을 느낀다. 가장 밝게 빛나는 곳은 아마도 도시 중심에 해당할 것이다. 빛은 부챗살 모양의 궤적을 따라 중심에서 멀어질수록 희미해진다. 한참 후 날이 밝고 비행기가 착륙할 무렵, 어느 틈에 놀라울 만큼 다채로운 도시 풍경이 눈높이 아래에 펼쳐진다. 두근두근. 반짝이는 고층 빌딩이 우뚝 서 있는 업무 지구, 매끄러운 표면의 콘크리트와 거친 조적조 벽면의 질감이 섞여 있는 주거 단지, 쭉쭉 뻗은 고속도로를 따라 놓인 쇼핑몰과 구불거리는 가로를 바라보며 나의 궁금함은 참을 수 없을 만큼 커진다. 도대체 어떤 이유로, 누가 이런 모습의 도시를 만들었을까? 발을 내디딜 이곳은 나에게, 혹은 더 큰 사회 구성원들에게 과연 좋은 도시일까? 누구나 던질 수 있는 이러한 질문이 실은 도시설계라는분야가 성립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어느덧 도시는 우리에게 익숙한 장소가 되었다. 2007년을 기점으로 전 인류의 절반 이상이 도시에 거주하고 있다. 한국은 인구 10명 중 9명이 도시에 사는 도시 토박이의 천국이다. 그래서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더 좋은 도시 환경에서 거주하고 일하고 교육받고 삶을 즐길 수 있기를 원한다. 이러한 요구에 대응하여 합리적으로 도시를 기획하고, 갈등과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개발된 지역을 관리하는 전문 분야가 도시계획(urban planning)이다. 그렇다면 도시 설계는 무엇일까? 도시계획의 여러 단계 중 도시의 물리적 형태를 다루는 창조적이고 행위 지향적이고 가치 판단이 포함되는 단계가 도시설계(urban design)라 정의할 수 있다.1 설계는 물리적 환경을 다루지만, 형태를 직접 다루지 않는 분야와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도시설계는 도시계획, 건축, 조경, 교통, 토목 계획 분야와, 조경 설계는 도시설계, 사회학, 생태학, 수문학, 토질공학 같은 분야와 상호작용한다. 이러한 이유로 분야 간 경계와 업역의 차이를 쉽게 파악하기 어려운 —혹은 파악할 필요가 별로 없는—경우도 많다. 더욱이 도시의 물리적 환경에 직간접적 영향을 주는 도시 정책이나 개발 이해 당사자들의 의견을 다루는 일도 도시설계의 중요한 부분 중 하나다. 이러한 포괄성에도 불구하고 좋은 도시를 실현하는 방법으로서의 도시설계는 아직 현대 사회에서 흡족할 만한 역량을 발휘하고 있지 못하다. 설계가는 늘 눈앞의 과제를 해결하기 바쁘고 자본과 정치 논리 앞에서 종종 무기력하다. 때로는 추상적인 공공성이나 이상적인 미학을 궤변처럼 늘어놓는다는 비아냥거림을 감수해야 한다. 마이클 소킨(Michael Sorkin)과 같은 비평가는 “(현재의 도시설계는) 형태적, 기능적, 사회적 요구에 대해 독창적인 해법을 제시하지 못한채 … 막다른 길에 서 있다”고 주장한다.2 최근 국내에서 진행 중인 한국전력공사(이하 한전) 부지 개발 사례를 통해 이러한 무기력함과 함께 도시설계의 사회적 역할을 재조명해 보자. 2014년 9월 삼성동 한전 부지에 대한 입찰 결과가 발표되었다. 한 기업은 10조 원이 넘는 입찰액을 써서 세상을 놀라게 했다. 이에 대해 기업의 100년 비전을 담은 뚝심이라는 평가와 함께, 토지 감정가의 세 배가 넘는 과도하고 실패한 배팅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관심의 대부분은 과연 10조라는 입찰가가 적절했는지, 경쟁사는 얼마를 써냈는 지, 그리고 이 기업 총수는 왜 이런 천문학적 비용 지출을 감행했는지에 머물렀다. 하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훨씬 더 큰 질문이 남아 있다. 왜, 언제부터 우리는 좋은 도시 환경을 고민하기에 앞서 남의 땅값을 걱정하기 시작했을까? 왜 한전 부지 빅딜에 대한 관심 이전에 ‘코엑스-한전-탄천-잠실운동장’을 망라하는 강남 지역 도시설계 청사진이 무엇인지 궁금해 하지 않을까? 대규모 도심지에 잘못된 도시 개발이 이루어졌을 때의 뼈아픈 부작용을 이미 수차례 학습했음에도, 오늘날 한전 부지 주변의 이해 당사자도, 매일 삼성동으로 출퇴근하는 직장인도, 주말에 잠실운동장과 탄천 산책로를 즐기는 시민도 별로 생산적이지 않은 배팅 논쟁에 열을 올리고 있다. 거꾸로 이렇게 물어야 하지 않을까. 한전 부지라는 땅의 중요성과 예상되는 설계안에 비추어 볼 때 이 기업이 과연 개발권을 가질 자격과 역량이 있는가(없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3 이러한 불완전한 현실 속에서도 기존 도시 문제를 찾아내고 전문성을 바탕으로 이를 해결하는, 혹은 복수의 해결안을 조정하는 것이 도시설계의 사회적 책무다. 이때 고려해야 할 부분이 있다. 과연 어떤 도시가 더 좋은 도시인가? 이는 어떤 물리적 형태의 도시 환경이 오랫동안 사회적으로 더 가치 있게 이용될 것인가라는 판단과 선택의 문제다. 여기에는 개인적인 신념이나 소수의 사람이 공유하는 미학, 때로는 대중의 공감대와 사회적 감수성도 포함된다. 좀 더 크게 보면 도시 개발의 크고 작은 시행착오와 다양한 사회과학적 연구도 좋은 도시를 판단할 수 있는 잠재적 기준이다. 문제는 이러한 판단 기준이 집단적 슬로건이나 개인적 취향과 뒤범벅되어 있다는 점이다. 본 연재의 기획 의도가 여기에 있다. 우리는 도시의 시대에 살고 있다. 이와 함께 뉴어바니즘과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 나아가 지속가능한 도시론과 스마트한 성장론에 이르기까지 범람하는 도시론(urbanism)의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럼에도 정작 우리 도시는 어느 때보다도 빈곤한 도시론에 아찔하게 기대어 서 있다. 좋은 도시를 정의할 때 비교적 널리 알려진 판단 기준은 무엇일까? 이러한 기준은 어디까지 보편적일까? 김세훈은 1978년생으로, 서울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한 후 하버드 대학교 GSD에서 도시계획학 석사와 박사 학위(DDes)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협동과정 도시설계학전공에서 도시설계 이론과 스튜디오 수업을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 『신흥도시 개발 모델』, 『도시형태변화분석방법론노트』, 『도시와 물길(A City and Its Stream)』 등이 있으며, 한국, 중국, 동남아시아의 도시 연구와 설계를 함께 진행하고 있다.
[스튜디오 201, 설계를 다시 생각하다] 딴짓하기
딴짓하지마 상담 어땠냐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딴짓하지 말라고 하시네. 처음에는 훈훈한 분위기로 시작했지. 그러다 복수 전공 이야기를 꺼내니까 안색이 변하시면서 3학년이 되면 전공에 집중을 하는 것이 좋다, 요즘처럼 경기가 어려울 때일수록 전문적인 능력을 배양해야 한다고 하시더라고. 솔직히 말하자면 그럴 때라서 내가 복수 전공을 고민하는 것 아니냐? 요즈음 어디서나 융·복합에 크로스오버를 외치는 시대인데 전공에만 집중하라니. 물론 처음부터 이 전공이 좋아서 학교에 왔고, 설계가 특히 재미있었던 건 사실이야. 하지만 그렇다고 꼭 전공에 들어맞는 회사에 들어가서 전공과 관련된 일을 해야 하는 게 맞을까? 난 잘 모르겠다. 간추린 조경의 역사 1858년 옴스테드(Frederick Law Olmsted)는 센트럴 파크 공모전에서 근대적인 의미의 조경(landscape architecture)이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사용한다.1 그리고 5년 뒤 센트럴 파크의 책임자 지위에서 물러나면서 공식적으로 본인을 조경가(landscape architect)로 지칭한다.2 옴스테드가 스스로를 최초의 조경가로 선언한 이 날은 조경이 독립된 전문 분야로출발하게 되는 상징적인 날이기도 했다.3 물론 옴스테드 이전에도 정원, 공원, 광장, 가로 등 조경의 대상들은 존재했다. 그러나 조경의 개념이 제시되고 나서야 비로소 이들은 하나의 종합된 방법으로 다룰 수 있는 동일한 영역의 대상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19세기가 끝나고 현대가 시작되는 시점에서 옴스테드는 새로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조경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만들어냈다. 옴스테드는 조경을 개념적으로만 정의한 것이 아니다. 그는 과거의 정원술이나 건축과는 전혀 다른 방식의 실천을 보여주었다. 옴스테드는 단일한 공원의 개념에서 더 나아가 도시와 지역의 녹지 체계를 제시한다. 그는 수많은 계획안들을 제시했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많은 미국 도시의 광역적 녹지 체계를 완성한다.4 1865년 요세미티에 대한 보고서를 통해 옴스테드는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종류의 공원, 국립공원을 제안한다.5 그때까지만 해도 자연은 인간이 정복하고 이용할 대상이었지 그 어느 누구도 자연을 보존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옴스테드가 최초로 인공적 자연으로서의 공원이 아닌 자연 그대로의 공원을 만든 것이다.옴스테드가 조경이라는 분야를 만든 지 100년 후 조경은 환경 계획(environmental planning)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창조해낸다. 20세기 초 생태학이라는 학문 분야가 등장한 이후로 환경에 대한 이해와 관심은 나날이 증대되고 있었다. 그러나 1950년대까지도 생태학의 성과를 현실에 적용할 구체적인 대안은 마련되지 않았다.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의 조경학과 교수였던 맥하그(Ian L. McHarg)는 생태학을 접목한 과학적 조경 계획의 방법론을 제시한다.6 그가 제시한 이론을 바탕으로 GIS라는 프로그램이 개발되고, 이는 이후 인간이 다루는 모든 공간을 이해하고 연구하는 데 필수적인 도구가 된다. 맥하그를 통해서 이제 조경가의 역할은 공간과 관련된 인문적·자연적 시스템 전체를 다루는 범위로 넓어진다. 1980년대 조경은 예술이 되고자 한다. 20세기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일부 예술가의 정원을 제외하고 대다수의 조경작품은 제대로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다. 특히 맥하그가 조경의 과제를 과학적 계획으로 제시하면서 더더욱 조경은 예술과 멀어져가는 듯 보였다. 이러한 경향에 반기를 든 새로운 작가들이 등장한다. 피터 워커(Peter Walker)는 다양한 작품을 통해 조경이 공간에 새로운 예술적 가치를 부여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마사 슈왈츠(Martha Schwaltz)는 아방가르드적인 팝아트의 미학을 그대로 조경 작품으로 구현했으며, 마이클 반 발켄버그(Michael Van Valkenburgh)와 조지 하그리브스(George Hargreaves)는 자연과 야외 공간을 예술적 매체로 보고 조경과 환경 예술의 경계를 허문다.이러한 다양한 시도를 통해 조경의 범위는 예술과 문화의 영역으로 다시 한 번 넓어진다. 1990년대 말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landscape urbanism)은 건축이 아닌 조경이 도시를 주도적으로 다루어야 한다고 선언한다. 조경이 탄생했을 무렵부터 조경은 도시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왔다. 그러나 조경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조연 정도에 한정되어 있었다. 언제나 주연은 건축이나 토목, 행정이었지 조경은 한 번도 도시 만들기의 주체가 되었던 적이 없다. 그러나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이라는 새로운 사조는 지금까지의 건축과 도시의 이론과 실천을 비판하면서 경관이 도시를 만들어나가는 중심적 매체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대담한 선언은 10년 뒤 조경은 물론, 건축, 도시설계의 전 분야를 포섭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이론으로 발전한다.7 지금 이 순간에도 조경은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영역을 찾아내고 만들어나가며 끊임없이 내연과 외연을 확장해나가고 있다(그림1). 기반시설 vs 공원 스페인의 바르셀로나를 관통하는 B20 고속도로와 C58 고속도로는 도시의 북동부에서 교차한다. 바로셀로나의 가장 중요한 관문 중 하나인 인터체인지는 반경 200m의 거대한 원형의 모습이다. 그런데 이 인터체인지의 특별한 점은 형태뿐만이 아니다. 거대한 인터체인지 내부에는 각종 스포츠 시설을 갖춘 공원이 있다. 트리니타트 파크(TrinitatPark)는 기존의 도시 계획의 상식을 모두 깨트린다. 고속도로 인터체인지는 엄연히 교통 기반시설이다. 지금까지 교통기반시설과 공원의 영역은 엄격히 분리되어 왔고 이 두 가지 토지 이용은 양립할 수 없었다. 물론 도시계획 상에서 교통 기반시설과 공원을 분리시켜 구분했던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사방이 고속도로로 둘러싸인 인터체인지는 사람들의 접근이 매우 불편하다. 아이들이 뛰어노는 장소이니만큼 안전의 문제도 있다. 또한 자동차 소음과 매연으로 인해 교통 기반시설 주변은 공원의 부지로 부적격이라고 생각되어 왔다. 하지만 만약 설계를 통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어떨까(그림2)? 설계가는 공원으로의 접근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인터체인지의 서쪽 경계를 가로수가 늘어선 거대한 발코니 형태의 구조물로 덮는다. 덕분에 동쪽 주거지에서 공원으로 접근하면 이 공원의 경계가 인터체인지인지조차 알기 힘들다. 그런데 이 구조물의 역할은 단순히 고속도로를 가리는 데 한정되지 않는다. 구조물 내에는 지하철역이 있어 인근 주민들뿐 아니라 도시의 다른 지역에서도 쉽게 공원을 찾아올 수 있다(그림3, 4). 접근성의 문제를 해결한 뒤 설계가는 구조물의 위압감, 각종 소음, 매연 등 인터체인지의 성격상 나타날 수밖에 없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여기에서도 설계의 발상의 전환이 이루어진다. 우선 고속도로 구조물로 생기는 단 차이보다 더 높은 지형을 공원 내부에 만든다. 이로써 공원에서 동쪽의 고속도로는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그리고 다른 공원의 경계에는 물과 나무, 낮은 지형으로 이루어진 켜를 만든다. 이러한 설계 때문인지 일단 공원으로 들어오면 주변이 고속도로로 둘러싸여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게 된다. 오히려 다른 공원에서는 볼 수 없는 물과 숲으로 위요된 아늑함까지 느껴진다. 거대한 벽이 될 수밖에 없는 고속도로의 구조물을 역으로 이용하여 그 어디에도 없는 특별한 공원이 만들어진다. 설계를 통해 고속도로는 디자이너가 손댈 수 없는 까다로운 토목과 공학의 영역이라는 편견을 유쾌하게 무너뜨린다. 김영민은 1978년생으로, 서울대학교에서 조경과 건축을 함께 공부하였고 이후 하버드 대학교 GSD에서 조경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의SWA Group에서 6년간 다양한 조경 설계와 계획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USC 건축대학원의 교수진으로 강의를 하였다. 동시대 조경과 인접 분야의 흐름을 인문학적인 시각으로 읽어내는 데 관심이 있으며, 설계와 이론을 넘나드는 다양한 활동을 펴나가고 있다. 역서로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이 있으며, 『용산공원』 외에 다수의 공저가 있다.
[그들이 설계하는 법] 조경건축도 괜찮아
필자의 실무 경험이 아직 깊지 않아, ‘설계하는 법’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에는 매우 조심스럽다. 뿐만 아니라, 제목이 갖는 어감도, 설계 방식을 한정하는 뉘앙스를 띠고 있기 때문에 사용하기에 꺼려진다. 오피스박김은 그간 프로젝트에서 논할만한 것을 선정하여, 이를 박윤진, 김정윤 두 대표가 대화체로 반추하는, 즉 현재의 설계적 사유를 ‘드러내는’ 형식으로 진행하고자 한다. _ 글쓴이 주 서소문밖 역사유적지 설계경기 김정윤(이하 김)2006년 가을에 서울 들어와서 몇 년 동안 설계공모 참 많이 했었는데, 한동안 뜸하다가 2013년 가을부터 이듬해 여름까지 다시 전력투구했었죠. 서소문밖 설계공모에 참여하기로 했던 이유가 무엇이었죠? 박윤진(이하 박)첫째 이유는 ‘메모리얼’ 프로젝트였기 때문이죠. 우리가 사무실을 시작하게 된 계기도 메모리얼 프로젝트(타이완 치치 지진 메모리얼)였고, 그 후 계속 메모리얼에 관심을 갖고 있었잖아요. 메모리얼이라는 프로그램의 특성상 공간이 극화되고 타이폴로지상 새로운 언어를 개발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매혹적인 대상입니다. 김오히려 보통 메모리얼이라는 유형은 잘 변하지 않는, 즉 티피컬(typical, 전형적인)한 언어를 가지고 지속되는 속성이 있는데(예를 들어 수직적인 기념탑 혹은 베트남전쟁 메모리얼 후 유행처럼 사용되는 검은색 석벽 등), 그에 반해서 우리는 이러한 관행을 상대로 새로운 지적 게임을 하고 싶은 것이었죠? 박그렇습니다. 언어가 보수적이기 때문에, 기념하는 대상과 주변 맥락에 따라 새로운 관계를 설정해볼 수 있기 때문이죠. 또한 대상지 역시, 현재 주목받지 못하는 철길 옆의 땅이었기 때문에 더 흥미로웠죠. 둘째는, 건물과 외부 공간, 도시와 건축, 자연과 조경, 상부와 하부, 공원과 성당 등 많은 상대적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연계된, 혹은 연계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프로젝트였습니다. 때문에 우리 스스로를 테스트해보기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죠. 즉 이 모든 것들의 경계를 허물어 새로운 관계를 형성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인 것 이죠. 김건축과 조경간의 경계를 허문다. ‘이젠 좀 진부한 표현이긴 하지만, 실제로 이러한 기회가 참 드물다’, 그래서 해보고 싶었다는 것인가요? 박 그렇죠. ‘마포석유비축기지 국제설계경기’라든지 ‘서울역 고가 공원화 사업’, 모두 좋은 기회죠. 물론 누가 그 기회에 ‘초대받을 수 있느냐’는 우리의 힘이 닿지 않는 영역이지만. 어쨌든 이 프로젝트는 우리가 처음부터 끝까지 주도해서 만들었습니다. 비록 국내 건축사사무소가 등록해야 했지만, 이러한 정치적인 한계는 설계가의 의욕과 실력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우린 언제나 믿어왔습니다. 당선 여부를 떠나서 이 설계공모의 성과물이 그 의욕과 실력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오피스박김을 건축사사무소로 등록하면 쉬운 문제가 됩니다만. 마치 히데오 사사키(Hideo Sasaki)처럼 말입니다. (하하) 김 여기서 파생된 질문인데, 한국 도시에서 메모리얼은 무엇인가요? 박 우리나라에는 메모리얼이 너무 없습니다. 어떠한 사건을 ‘공간’으로 기억하는 데에 익숙지 않죠. 서울은, 그 상흔으로 본다면 ‘메모리얼의 도시’입니다. 아주 작은 공간 형식으로도 수많은 집합적 기억과 장소적 가치를 이끌어 낼 수 있는 곳이죠. 과장하자면, 동아시아의 예루살렘이라고 할까요? 김 우리는 이 성지를 천주교만을 위한 메모리얼로 생각치 않았잖아요? 오히려 천주교의 도입과 박해의 모든 과정이 우리나라의 근대화의 한 단면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보편적 추모를 불러일으키고 싶었죠. 지나고 보면 또 종교적으로 지나치게 너무 중립적이었던 것이 아니었나, 그런 생각도 들어요. 박 그러나 지나치게 종교적이라면 도시 프로그램으로서의 보편성을 확보하지 못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공공장소에 종교 시설이 들어가는 것에 대한 우려가 언제나 있죠. 그래서 우리는 성당을 비롯한 모든 종교 시설을 다 지하 공간 속에 제안했던 거죠. 사이트에 대한 인상 김 처음 사이트에 가보고 받은 인상은? 박 글쎄 … 난 별로 사이트에 대한 특별한 인상이 없었어요. 김 그래요? 난 너무 사이트가 복잡하고, 땅으로서의 존재감도 전혀 없었고 주변의 큰 건물과 도시 프로그램에 단지 스스로 흡수되어 있는 상태에서 양현탑과 같은 시설물이 산발적으로 존재했고, 그래서 ‘이곳의 바닥을 드러냄으로써 존재감을 만들자’, 이런 생각을 했죠. 박오히려 나는 사이트를 보기 전에 도면을 보면서 기존의 헤비(heavy)한 지하 주차장 구조가 흥미로웠죠. 이 기존 구조와 설계공모에서 요구된 프로그램 간에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이 실마리가 될 수 있을 것 같았죠. 그것을 통해 굉장히 독특한 기념 공간을 만들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철로를 지나가는 기차소리의 안락함, 그것이 장애물이 아니라 오히려 소리를 끌어들여서 사이트의 주요 요소로 삼고 싶었어요. 사이트에 가봤을 때 이걸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었죠. 김 어차피 완벽 차폐도 불가능한 것이었죠. 공개발표 때도 언급했지만, 난 약현성당 주임신부님의 말씀이 설계 과정 내내 뇌리에 남아있었어요. “쓰레기 냄새 올라오고, 기차 계속 지나다니고, 차 소리도 시끄럽고. 이런 와중에 드리는 서소문밖 성지에서의 금요일 오전10시 야외 미사가 난 제일 좋다. 왜냐면 현대인의 종교생활이란 바로 이런 혼잡 와중에 걸어야 하는 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박 그리고 사이트와 관련해서 또 중요한 것은 약현성당과의 관계죠. 새로운 건축 유형을 만들기보다는 기존의 약현성당과의 관계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또한, 고전적 성당이 지어지는 방식이나 구법을 이용하면 우리가 짓는 기념 공간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서바티칸을 시작으로 한 달여 동안 성당의 타이폴로지 리서치를 하게 되었습니다. 설계의 전제 김 약현성당도 사이트의 일부로 봤었죠? 약현성당이 본래 서소문밖 성지의 기념 성당으로 만들어진 건물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 성지를 기념하는, 땅 위로 올라와 있는 종교적 공간은 약현성당이면 충분하다고 본거죠. 그 건물을 이기려 하거나 전혀 다른 무언가가 또 생기는 것은 맞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박그래서 우리는 약현을 셀러브레이션(celebration, 존중하고 기념하는)하면서 거기에 가장 좋은 관계를 만들 수 있는 새로운 성당과 메모리얼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죠. 약현성당이 우리 사이트 안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믿었어요. 김 크게 보면, 지하 주차장 구조와 함께 기존 사이트에 있는 공간 언어로 약현성당을 봤다고도 할 수 있고, 더 나아가 이미 서소문밖 성지의 기념 성당으로 지어져 있었던 약현성당을 이 기념 공간에서 여전히 가장 중요한 존재로 존중하겠다는 의미였죠. 그리고 지하 스트럭처는, 현재의 프로그램으로만 보면 상당히 오버스트럭처였지만, 새로 들어올 프로그램의 규모와 성격을 보면 오히려 그 규모가 적당할 수 있다고 봤습니다. 박 좀 더 면밀히 보자면, 우리는 설계를 함에 있어서 항상 컨텍스트(context)를 의식하기는 하지만, 모든 설계어휘가 컨텍스트로부터 파생되는(context-driven)것은 아닙니다. 또한 우리에게 컨텍스트는 형태적으로 주어진 여건만을 의미하지는 않아요. 그것은 동시대의 개인상, 세대적 의식, 기술적 여건, 혹은 이데올로기까지 광범위합니다. 어쨌든 우리가 이 프로젝트에서 가장 중요했던 것은 약현성당이 보여주는 건축적 구법, 이것의 근대적 합일, 뭐 이런 이론적인 컨텍스트였죠. 예를 들어 ‘과거 지형이 이러했으니까 이를 되살리는 설계를 하자’, 이런 형태적 문맥주의는 오히려 위험하기까지 합니다. 이러한 접근은 형태(혹은 경험)의 다양한 발현을 위축시키고, 지나치게 단순한 설계 논리를 만들죠. 물론 대중을 현혹시키기에는 ‘그럴싸’하겠지만요. 우리는 본질적인 문맥 그리고 보다 확장된 문맥적 가능성을 찾고자 합니다. 리서치 김 성당의 ‘원형’에서부터 리서치를 시작했었어요. 우리가 어떤 프로젝트를 하든 간에 다루게 되는 프로그램의 ‘원형’에 항상 신경을 쓰지 않았나요? 박원형이라는 것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김여기서 말하는 원형이란, 형상이나 형태라기보다는 그 프로그램의 본래적 기능을 의미하는 것 같은데요. 박난 항상 그렇진 않다고 보는데요. 이번엔 오히려 여건이나 상황 자체가 가지는 의미가 더 중요했다고 봐요. 김 물론 그렇습니다만, 우리가 이번엔 천주교 신자도 아니고 성급히 설계에 뛰어들 수가 없었고, 성당의 원형에 대한 리서치부터 신중하게 시작했었던 것이 맞죠? 박그렇습니다. 한 한 달 정도 했죠? 먼저 바티칸에 대해 했습니다. 놀랍게도 바티칸은 수많은 건물들이 지어 지고 없어지는 과정이 쌓이면서 이뤄진 도시였습니다. 그러면서 새로운 형식과 구법들이 계속 등장했고, 이것들이 중첩되어 표현된, 이칭(itching)된 아름다운 도면을 기억합니다. 그래서 바티칸의 역사적 레이어가 굉장히 흥미로웠어요. 두 번째는 명동성당을 비롯하여 우리나라의 근현대 교회들을 들여다봤었는데, 특히 약현성당이 흥미로웠어요. 설계는 프랑스 신부가 했고, 당시 우리한테 조적 기술이 없었기 때문에 중국 기술자를 데려왔고 목조는 일본 기술자가 했습니다. 최근 서울에서 스위스 목수가 목구조를 세우고, 남미의 기술자가 노동요를 부르며 콘크리트 포장을 마감하듯 말입니다. 그리고 약현의 아치(arch)는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이런 리서치를 통해 약현성당의 아치에 자연스럽게 주목하게 되었는데 아치는 전통적으로 종교적 상징성을 가짐과 동시에 우리나라의 전근대 사회가 근대로 넘어 오는 과정도 건축적으로 의미한다고 봤습니다. 그래서 아치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죠. 항상 그랬듯이, 먼저 빈 종이를 펴놓고 손끝에서부터 바로 시작하는 것을 매우 경계합니다. 충분한 리서치와 생각을 통해 대상지와 프로그램에 익숙해 졌을 때 비로소 새로운 공간을 탐색하기 시작합니다. 김난 돌아보면 이번에 리서치 할 때 정말 좋았어요. 왜냐면 전혀 몰랐거나 관심 없던 것들을 알게 되었으니까. 그리고 그걸 가지고 뭔가를 만들어 내야 한다는 어떤 긴장감까지 더해져서, 바티칸 대성당의 가로, 세로, 높이의 비율도 재보면서 과연 어떤 공간이 사람들에게 경건함을 느끼게 하는지에 대해 토론하고, 현대의 성당들에서는 과연 이런 원형의 공간을 어떻게 발전시키거나 차용했는지 들여다보는 것도 정말 흥미로웠어요. 박맞아요. 예배할 땐 최소 어떤 공간이 필요한지, 동네 성당도 가보고 경동교회도 가보고. 새로운 공간을 학습하며 설계하는 것이 재미있었어요. 김 어찌 보면 우리가 천주교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대상과의 거리를 일정히 유지하며 접근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사실 리서치 중 가장 좋았던 건, 초기 순교자의 순교 과정을 다큐멘터리 방식으로 엮은 책을 읽었을 때에요. 과연 종교의 힘은 이렇게 양반 아녀자가 모든 것을 버리고 순교하는 날만 기다리며 살 정도로 대단했구나, 특히 그 시대의 서학(가톨릭)이라는 것의 존재가. 손에서 책을 놓기가 힘들었어요. 이런 과정을 통해 성지가 천주교에서 의미하는 바를 (특히 우리나라 천주교에 있어서) 절실히 느꼈습니다. 비단 천주교 신자들만이 감동을 느끼는 공간이 아니라, 1800년대 이후 우리나라가 서양 문물에 무방비로 노출되면서 겪었던 혼란스러운 근대화 과정의 중요한 단면을 보여주는 공간을 만들어 보편적인 기념 및 역사 공간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더 공고해졌죠. 이 모든 것을 돌이켜볼 때, 우리가 당선은 안됐지만 이러한 과정 자체에서 얻은 것이 정말 많아요. 박 여담이지만 난 당선되면 천주교 신자가 되려고 했었으니까. (하하) 그만큼 천주교 자체에 많은 애정을 가지게 되었어요. 종교적 공간들이 보편적으로 공유하는 형식이 있고, 그것들이 또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고, 우리가 설계를 하면서 차용과 변형을 시도하게 되고.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이 좋았죠. 설계를 하는 동안 주변의 성당과 천주교 신자 등 평소엔 신경 잘 안 쓰였던 사항들을 예민하게 보게 되었어요. 김그런 의미에서 다른 설계 과정과 달랐던 것은, 마감 전에 설계를 잘 모르는 주변 사람들에게 우리 설계를 굉장히 많이 보여준 거죠. 부모님, 우리 재인이 친구 엄마들, 내 친구들, 천주교 집안 며느리인 동생 등,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면서 혹시 우리가 설계한 공간이나 사용한 언어 등이 천주교 신자와 비신자 모두에게 어색한 부분이 있을까 상당히 조심했었어요. 성당이라면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하는 공간의 양식은 갖되, 보편적인 역사·기념 공간 또한 만들려던 마음에서 비롯된 것 같아요. 보는 사람마다 완전 극찬하여 기분이 좋았던 것 같아요. (하하) 설계 콘셉트 박콘셉트를 위해 제일 중요했던 건 리서치였고, 그 후엔 성당을 어떤 레벨에 위치시킬 것이냐가 가장 중요한 결정이었다고 봐요. 결국 요구된 건축 프로그램은 모두 지하로 넣기로 했는데, 그러면서 필연적으로 빛을 어떻게 불러들일 것인가에 대한 방법을 연구했죠. 더 넓은 스케일에서는, 공간 배치에 있어서 기념 성당과 소성당만을 약현성당과 같은 축에 위치시켜서 동질성을 유지하고 나머지 프로그램은 기존 지하 주자창이 지배하는 기존 그리드 위에 위치시켜서 공간의 위계를자연스럽게 보이도록 했고요. 김나중에 다른 엔트리와 비교했을 때 모든 건축 프로그램을 지하로 넣은 건 결국 우리 팀 밖에 없었죠? 근데 이걸 우리가 ‘조경’ 오피스라서 그렇다고 말하는 걸 몇 번 들었는데, 난 그 말을 그다지 부인하고 싶진 않은 것이, 꼭 뭔가 건축적 정면성이나 상징성을 만들어 넣고 싶은 압박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고 할까요? 박글쎄요. 저는 다른 생각입니다만. 만약 이 프로젝트가 건물 입면이 정말 중요한 경우였다면 그 누구보다 열심히 입면 설계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처음부터 이 땅이 가지는 가치와 힘을 드러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렇기 때문에 건축 프로그램은 다 지하로 넣기로 한 거죠, 도시에서 건축의 정면성(frontality)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여기’에서는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한 것이죠. 그리고 한 가지 덧붙이자면, 도시 공간에서 지나치게 대형화되고 상업화되는 종교 시설에 대 한 거부감이 있었어요. 특히 이 장소에 지나치게 종교적 상징이 땅 위에 만들어질 때 사회적 합의에 이르기 힘들 것이고 결국 우리가 원했던 보편적 역사 기념 공간으로 만들어지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였죠. 무엇보다 교회의 원형을 보면, 처음에 동굴에서 시작했잖아요. 박해받던 시대의 성당과 교회들은 말 할 것도 없고요. 그리고 마침 지하에 있던 구조물을 이용하면 공사비 절감과 함께 빛의 극적인 관입을 통해 정말 흥미롭고 아름다운 상하 관계를 만들 수 있었지요. 우리는 지난하게도 라이노를 통해 무수히 많은 입체적 모델을 만들어가며 건축 프로그램 배치 대안을 만들었죠. 그렇게 많은 아이디어 테스트를 통해 19세기 도시 구조와의 관계, 현재 도시와의 비례, 약현성당과의 균형 등 모든 것을 고려했었죠. 그래서 내가 제일 좋아했던 도면은 우리의 첫 번째 도판이었어요. 약현성당과의 관계, 주변 맥락과의 관계, 비워야 하는 당위성 등이 다 설명되고 있으니까요. 우리가 ‘조경’ 오피스라서 건물을 지하로 넣었다고 말한다면, 이 모든 노력에 대해 한 번에 눈감고 등 돌려 버리는 형국이에요. 조경건축도 괜찮아 박그런 의미에서 조경건축이란 표현도 괜찮다고 봅니다. 기존의 학제적 구분으로는 동시대의 새로운 설계 수요를 충족시키거나 창출하기 어렵다는 것이 저의 최근 소견이기도 합니다. 물론 각 분야의 가장 보수적인 영역은 살아남을 수 있겠지만요. 또한 서울에서의 랜드스케이프 아키텍트는 당연히 다분야적이어야 하고 멀티 포지셔닝 해야 한다고 봐요. 왜냐면 우리가 다룰수 있는 땅이나 지리학적 한계가 명확하기 때문에, 수평적이기보다 수직적이어야 하고, 낭만적이기보다 구축적이어야 해요. 또한 ‘잘 짓기’까지의 과정 중 돌출되는 변수가 너무나 많기 때문에, 구상적이기보다 시스템적이어야 합니다. 김‘조경가’라는 표현 대신 ‘랜드스케이프 아키텍트’라는 표현을 주로 사용하시는 것도 같은 이유인가요? 박물론 김대표께서는 ‘조경가’라는 표현을 거부하시지 않지만, 저는 그 말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왠지 조경가라는 표현은 ‘아키텍트’가 아닌 것처럼 들리니까요. 또한 너무 이데올로기적 입니다. 지금의 건축은 모든 아키텍처를 포괄할 수 있는 말이 아닙니다. 정치적으로 악용되지 않는다면, 조경건축이라는 경계적인 표현은 오피스박김의 작업을 설명하는 데 유용하다고 생각합니다. 김제가 여기에 반론을 위한 반론을 하자면, 물론 경계에 서있는 사람들이 새로운 가능성을 개척해왔던 것이 사실이죠. 그렇지만 반대로 한쪽 ‘편’에 확실히 속해 있음으로서 부여되는 ‘힘’을 무시할 수 없는데, 그런 힘을 받기가 힘들지 않을까요. 박어떤 집단이나 그룹에 귀속되는 건 설계가 혹은 아키텍트의 정치적인 선택인데, 우리 스타일은 아닌 것 같아요. 우리가 취할 수 있는 가장 이타적인 태도는 좋은 프로젝트를 해서 어려운 여건에서도 ‘잘 짓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봐요. 과연 정치적으로 특정 집단에 스스로 귀속되는 것이 좋을까요? 아마 앞으로 점점 이런 그룹핑은 느슨해질 것이고 새로운 시대에 전반적으로 어울리지 않을 거에요. 개개인과 각자의 선택이 훨씬 중요한 세상이 되어 가니까요. 김우리가 스스로 경계에 서 있다고 말함으로써 양쪽에서 받게 되는 견제라든지 편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박그건 그야말로 편견이죠. 우리가 ‘난 꼭 건축을 할꺼야’라고 선언했기 때문에 서소문밖 설계경기에 참여한 것이 아니잖아요. 대상지를 하나의 집합체로 인식하고 그 안에 흔히들 건축적 프로그램이라고 말하는 것이 필요했기 때문에 그 대상지와 프로그램에 가장 잘 맞는다고 생각되는 기둥과 지붕을 설계한 것이었으니까. 오히려 분야보다 중요한 건 ‘어떤 문화권과 관계하고 있는것인가’라고 생각해요. 인테리어 건축가 중에서 ‘조경’을 굉장히 잘하는 분들이 있어요. 이들의 정원은 도시의 입면과 가로를 바꿉니다. 인테리어 어바니즘이라고 할까요? (하하) 일단 재료와 식물 소재에 대해 박식하고 내·외부 공간의 연결에 대해 유연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지요. 마치 패션처럼, 인테리어라는 트렌디한 문화가 조경과 건축 그리고 도시를 넘나들게 만들어요. 물론 가볍지만 가벼운 것도 괜찮은 세상 아닌가요? 대안들 김무거운 이야기를 많이 해서, 각주가 본론이 된 것 같네요. (하하) 다시 서소문으로 돌아갑시다. 우리가 서소문에서 워낙 대안을 많이 만들었지요? 약현성당 축과의 관계, 대성당과 소성당의 관계, 상부 메모리얼들의 관계 등을 다양한 변수로 삼아서 말이에요. 나왔던 대안 중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박약현성당의 축과 지하 구조물 그리드가 어디서 어떻게 만나는지가 중요했었는데, 여러 부분이 선큰되며 뚫려있는 공간을 만드는 안을 담은 콜라주형 플랜이 참 좋았어요. 수많은 홀들이 지상과 지하를 만들고 그것이 곧 빛의 통로가 되며 지형을 이끌었고요. 거기서부터 최종 안이 정리되어 나왔죠. 수십 개의 대안과 도시 맥락에서 오는 데이터, 이런 것들이 층층이 쌓이며 나온 것이 바로 우리의 파이널 안이었죠. 결코 손끝에서 나온 선들이 아니라는 것이 우리 설계 과정에서 가장 강조하고 싶은 점이에요. 그리고 이러한 과정은 그동안 우리가 해온 모든 프로젝트에서도 마찬가지라는 것 역시 매우 중요하구요. 결국 우리가 설계하면서 가장 흥미로운 순간은 설계 시작 시점에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결과물을 얻었을 때의 그 흥분. 그거죠. 건축 프로그램간의 위계 김우리가 전제한 것은 건축 프로그램을 모두 지하로 넣고, 기존의 주차장 스트럭처는 모두 유지하는 대신 기념 성당과 소성당이 관입되는 부분만 약현성당의 축에 따라 달라지도록 한다는 것이었죠. 박기존 스트럭처가 갖는 그리드와 약현성당으로부터 오는 그리드를 중첩시킴으로써 구조적으로도 안정을 꾀하고 또한 두 개의 그리드가 틀어지면서 생기는 공간적 효과를 노렸죠. 제일 중요한 건 그런 관계를 만들되 지상으로부터 내려오는 동선을 설계함에 있어, 최대한 밀도 있게 공간을 이용하도록 한 거에요. 그리고 지하 공간에서는 전시 공간을 성당을 한 바퀴 돌며 배치함으로써 성당이 가장 중요한 공간이라는 것을 전달하고 싶었죠. 김평면적으로는 그렇고, 사실 단면에서 봤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빛’의 등장이 아니었나 싶어요. 박그렇죠. 평면적으로는 구조 그리드와 약현 그리드를 본 것이지만, 단면적으로 보면 가장 중요한 공간인 기념 성당이 가장 깊은 공간(3층 깊이, 약 14m)이고 소성당이 그 다음의 깊이(2층 깊이), 그리고 나머지 전시 등의 모든 공간은 1층 높이로 놓아서 층고에 따라 공간의 위계를 두었죠. 이러한 깊이와 층고는 빛과도 큰 연관이 있는데, 상부의 빛을 얼마나 드라마틱하게 끌어내릴 수 있느냐가 달려있었죠. 김빛으로 인해 위와 아래의 관계가 설정되기 시작하는 거였잖아요. 박그런 의미에서 보면, 건물을 밑으로 짓는 형식이 되는 거였죠. 김위아래의 관계라는 게, 사실은 굉장히 티피컬한 경우가 많잖아요? 땅과 건물의 관계, 건축과 조경의 관계라고도 보는데, 우리는 건물을 밑으로 지으며 위아래의 관계가 생겼다고 볼 수 있는데, 소성당의 일부를 제외한 모든 건축 프로그램은 지하에 있었고 윗공간은 메모리얼에 할애했죠. 여기에 덧붙여 ‘홍예’에 주목하게 되었던 과정을 좀 얘기해보죠. 홍예 박약현성당의 아치가 당시 서구의 것이었고 중국과 일본의 기술에 의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홍예는 사실 우리나라에서도 옛부터 성문이나 교량을 만들 때 썼던 형식이거든요. 위아래의 관계를 설정할 때 가장 중요했던 것은 이러한 아치가 우리에게 내재되어 있는 건축 양식이라 생각한 거예요. 우리의 근대가 꼭 서구나 외부로부터 들어온 것이 아니라 내재된 씨앗이 이미 있었다는 것을 환기시키는 ‘합일점’을 찾아낸 것이었다고 할까. 천주교 역시 선교사들로부터 먼저 소개된 것 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학문으로 공부하면서 시작되었다는 것과도 일맥상통하고요. 김우리가 아치나 홍예에 주목하게 된 것이 기존의 지하 주차장 기둥을 그대로 지키되 성지의 기념 공간이라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넣으려다 보니 자연히 ‘얹혀 지는 것’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던 거죠. 그렇게 찾아낸 것이 기둥에 아치를 얹는 거였고요. 박그렇죠, 지붕만 디자인 한 거였고, 그 지붕이 곧 메모리얼의 바닥이기도 했어요. 또 이 사이트와 연계해 보면 성인들이 처형장으로 향하며 지나갔을 때 서소문의 홍예를 분명히 쳐다보았을 거고요. 김자평한다면, 그 홍예 구조를 새로운 공간 언어로 불러와서 위아래 프로그램의 중추 역할이 되도록 했던 것이 상당히 적절하지 않았나 싶어요. 홍예가 랜드스케이프로 그대로 드러나고 있고, 이렇게 드러나게 된 과정을 다시 한 번 돌이켜 보면, 우리가 여러 유형의 홍예를 3D로 실험해보고 프로그램과의 관계를 살펴보던 중 마치 매트리스처럼 올록볼록한 형태가 굉장히 흥미로웠는데, ‘아 이게 그대로 지형으로 드러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박일반적으로 경관 설계는 그 속성상, 이미지에서 출발하지만, 우리는 구축적인 것이나 형식적인 것, 질서를 가지는 것 혹은 구조적인 것이라는 시스템에서 시작해서 랜드스케이프로 발현되도록 하는 방식을 매우 존중하는 편입니다. 즉, 자연의 현상을 모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보다 입체적이고 다변화된 랜드스케이프를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는 거예요. 이를 찾는 것 자체가 매우 도전적이지만. 우리는 이러한 설계 자세가 비단 서소문밖 설계공모 사이트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 라, 우리나라처럼 매우 밀도가 높아서 뭔가 새로운 자연 혹은 대체 자연을 만들어 내야하는 경우 의미 있는 랜드스케이프로 만드는 방식이라고 믿죠. 리프리젠테이션 김결국 우리 설계에서 가장 중요한 엘리먼트는 ‘홍예’와 ‘빛’이었고 제목과 부제목에도 그게 드러나게 되는데, 리프리젠테이션(representation)에서도 이를 가장 잘 드러내려고 노력했었죠? 박우리 사무실이 늘 해왔던 방식이지만, 우리가 임프레션(impression)을 만들 때는 가장 극적인 장면을 잡아 내려 하고, 공간을 잘 설명할 뿐 아니라 그 공간에서 일어날 수 있는 행위를 지시하려 하죠. 또한 임프레션 자체가 최종 성과물이 아니라, 그걸 만드는 과정이 설계를 계속 진행하는 매개이기 때문에, 실제 공간감을 봤을 때 어떤 일상적 혹은 찰나적인 경험을 하게 될까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죠. 그런 의미에서 가장 중요했던 것은 처음에 얘기한 것처럼 약현과 메모리얼의 관계를 보여주는 두 개의 단면과 평면이 가장 중요한 전달 방식이었다고 봐요. 도시 전체와 메모리얼의 관계를 보여주니까요. 그리고 아치가 동서양의 합일적 구조라는 것을 보여주기도 하고요. 결국 우리가 말해온 ‘산수전략(山水戰略)’을 통해서 추구하고 전달하려는 것은, 동양의 특이성이 아니에요. 그보다 서울의 정체성을 유지하되 동서구의 보편적인 정서에 호소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으려 하는, 쉽게 얘기하면 코스모폴리탄적 접근이라고 할까요? 우리는 좀 더 구축적이고 구조적이고 통합적인 면이 필요하다는 거죠. 잘 아시겠지만, 자연은 로맨틱한 것이 아닙니다. 역사적으로만 봐도 로맨티사이즈(romanticized)되는 것이지요. 김얘기한 것을 다시 생각해보면, 우리는 설계 과정에서 너무 천주교적 어휘라든지 종교적 색채가 강한 것은 쓰지 않으려고 했어요. 이런 것도 보편적 정서에의 호소나 도시 맥락에서의 메모리얼의 장소성 등을, 성인에 대한 추모 공간 못지않게 중요시했기 때문이죠. 그런데 좀 의외였던 것이, 우리 임프레션 중 가장 인상적이었다는 평을 들은 기념 성당의 임프레션을 두고 ‘모스크(mosque, 이슬람교의 예배당)같다’는 의견을 낸 분들이 있단 말이었어요. 박(하하) 재미있습니다. 서구의 역사를 보면 모스크가 성당으로 전용된 경우도 있었고, 돔과 서구 성당의 아치는 혼용될 수 있는 구조입니다. 하지만 정치적 코멘트로 해석하자면, 우리 설계를 우호적으로 보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나올 수 있는 반응인 것 같은데요. 아이러니 하게도 일반 대중이나 신자들이 봤을 때는 아주 훌륭한 성당으로 보이는데, 건축 전문가가 ‘모스크 같다’고 해버린다면… 마치 “저게 산이냐 신사냐”하는 경우와 같다고 할까. 사실 ‘○○처럼 보인다’는 코멘트는 비평에 있어서 가장 일차원적인 비평입니다. 일반 대중이 모르는 새로운 것을 봤을 때, 설명하기는 어렵고, 결국 본인이 이미 알고 있는 무엇과 일치시키려는 손쉬운 표현, ‘미메시스(mimesis)’의 수준이죠. 김그런 코멘트는 참, 설계자의 그동안의 수많은 리서치와 노력을 한방에 날려버리는 거죠. 대상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없이. 공간 경험 김 우리가 이 설계를 통해 정말 전달하고 싶었던 공간적 경험은 뭐였나요? 박 빛이 만들어내는 공간감, 의도하지 않았던 새로운 공간이 만들어질 수 있는 가능성, 아치가 주는 위아래 공간의 다양성 등등이라고 볼 수 있죠. 김 저 같은 경우는, 기념 성당의 상부가 지상에서는 다시 장방형으로 규정된 메모리얼 공간이에요. 같은 레벨의 도로와 철로, 인도로 여전히 분주하게 도시의 일상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 속에 야외 미사를 올리게 되면, 바로 드러나 있는 메모리얼 공간 자체가 우리 도시에 없는 장소가 될 것이라고 봤어요. 넓게 보면, 성지 순례의 루트상에서 북동쪽의 철로 변을 지나 공원으로 들어와 숲을 지나고 갑자기 확 열리며 홍예의 구조가 지형으로 드러나 있는 메모리얼을 만나게 되는데,이러한 시퀀스가 단순히 슬픔만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밝음, 기쁨, 존경 등을 느끼도록 할 것이라고 봤어요. 그리고 지상에서 시작해서 기념 성당의 윤곽을 돌아 지하 3층의 성당 입구까지 연결된 램프인 ‘십자가의 길’도 일반 신도들에게는 굉장히 의미 있는 길일 것이라고 믿었고요. 박 저도 역시, 성당의 지붕을 야외 미사나 행사시 개방해서 미사집전 제대로 쓰이게 하는 것이었어요. 마치 사직단처럼, 성당의 지붕이 곧 단이 되는 거죠. 보통 서구의 성당들에서 볼 수 있는 오브제로서의 성당과 열린 광장의 관계가 아닌, 성당의 지붕이 곧 광장의 역할을 하는, 새로운 수직적 관계를 만들었죠. 꼭 우리가 ‘서구와 달라야 해’라는 강박관념이 있었다기보다는, 이 사이트가 가지고 있는 특수성을 최대한 존중하다 보니 나오게 된 원형의 재해석이었어요. 끝내는 심정 김 이 설계공모 마감일이 6월 23일이었는데, 마침 그 새벽에 월드컵 2차전 경기가 있었죠. 그래서 사무실에서 다 같이 밤을 샜는데. 어떠셨어요. 끝냈을 때의 느낌은? 박 느낌은 딱 치치 메모리얼(Chichi Earthquake Memorial International Competition, Taiwan)을 끝냈을 때의 느낌? 김 우리가 된다? (하하) 박 뭐. 된다… 라기 보단 (하하) 되고 안 되고야 내 맘대로 되는 건 아니니깐. 그땐 되고 안 되고를 떠나 이미 굉장히 흐뭇했었죠. 이번에도 역시 ‘당선과 상관없이 꽤 훌륭한 프로젝트가 나왔다’라고 자평할 수 있을만큼 과정도 정말 좋았고요. 그 안에서 이미 많은 것을 얻었다, 그래서 심사위원들이 선입견 없이 봐주기만 한다면 결과가 좋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죠. 안되더라도 뭐 우리 자체의 의미 체계를 세운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죠. 치치-홀로코스트메모리얼-그리고 서소문밖으로 이어지는 우리의 메모리얼 계보라고 생각하는데…. 김 그 셋의 공통점을 찾는다면? 박 쉽지는 않지만, 단순하게 생각하자면, 역시 하나의 큰 할로우 스페이스(hollow space)가 아닐까요. 그리고 그 공간을 넘나드는 빛과의 관계. 거기서 오는 소피스티케이션(sophistication, 섬세하면서 정교하고 우아한). 우리가 그 계보를 의식하며 설계를 한 것은 아니지만, 세 프로젝트는 서로 비슷하지만 매번 다른 진전이 있지 않았나. 김 항상 우리는 그런 기념 공간을 만들 때 현상학적인(phenomenological)공간을 만들고 싶지 않았나 싶어요. 박맞아요. 김 규정하거나, 쉽게 연상하거나 연결시킬 수 있는 형상의 사용을 지양하면서, 시스템으로부터 도출된 최소한의 프레임 내에서 이용자가 빛, 소리, 새 등 찰나의 여러 현상을 통해 경험을 증폭시키기를 원했어요. 기회 되면 이걸 주제로 한 글을 써도 재밌겠네요. 김우리가 89개 팀 중 7팀의 파이널리스트 안에 포함되었잖아요. 그래서 공개 발표 전날 오후 늦게 연락을 받고 준비를 해서 다음날 발표를 했죠. 제가 했었는데 어떠셨어요? 박아 뭐, 발표는 잘 했고요. 다만 질의응답을 통해 우리 안의 또 다른 면들이 좀 더 노출되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은 해요. 발표에서 지붕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에 대해 굉장히 자세하게 설명을 했는데도 심사위원들로부터 지붕이 과연 ‘될’ 것인가에 대한 질문만 계속 받았죠. 우리가 구조 전문가와 협업을 통해 충분히 설계를 했고, 충분히 지을 자신도 있었고 무엇보다 그 지붕이 새로운 형태의 구조도 아니었잖아요. 개인적인 판단보다는 차라리 지붕에 대한 토론이 있었 다면 우리의 당선 여부를 떠나 뭔가 얘기거리가 남는 건강한 방식이 아니었겠나하는 아쉬움은 있어요. 설계공모에 있어서 당선의 의미(서소문밖의 경우) 김 우리에게 설계공모 당선의 의미는? 박 당선은 ‘또 다른 짐’입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설계공모란 새로운 어젠다를 만들고 클라이언트와 관계없이 우리 스스로 설계 조건을 해석하고 공간 어휘를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를 즐길 수 있는 기회인 거죠. 만약 금전적인 어려움만 없다면 난 당선이 되든, 되지 않든 상관은 정말 없어요. 다만 당선까지 된다면, 그 시대가 요구하는 바를 잘 반영해서 또 잘 만들어야죠. 갈수록 드는 생각은, 당선은 우리가 힘쓴다고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 당선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공모의 성격과심사위원, 진행 방식 등을 잘 살펴서 참여할 게임과 안 할 것을 잘 선택하는 일이지 않나 생각해요. 이것이 잘 준비된 공모인가. 클라이언트는 잘 지을 의지가 있는가. 그리고 심사위원과 진행 주체들은 비교적 공정한가. 혹은 우리한테 유리한지 등을 이제 고려하게 되었죠. 우리가 서울에 처음 들어와서 무작정 모든 공모에 달려들었던 것과 달리, 이제는 적어도 이러한 ‘판단’의 단계를 거쳐 참여 여부를 결정하게 되었다는 것이 지난 8년 동안의 성장이라고 할까요(하하). 박윤진은 하버드 대학교 GSD를 졸업하고 Sasaki Associates, West 8등에서 실무를 쌓고 치치 지진 메모리얼 국제설계공모 당선을 계기로김정윤과 함께 오피스박김을 설립하였다(2004). 미국 보스턴 건축대학교 등에 출강하였고 타이완 쉬이첸 대학교(2007), 미국 하버드 대학교(2008, 2010), 오하이오 주립대학교(2011), 호주 멜버른 대학교(2012)등에서 교육, 전시, 강연을 위해 초청되었다. 김정윤은 서울대학교와 하버드 대학교 GSD 졸업 후 네덜란드 West 8 등에서 실무를 쌓았다. 네덜란드 조경건축사이며 바허닝엔 대학교에 출강하였다. 차세대디자인리더(산업자원부 2007), 광교공원 디자인커미셔너(2008), 서울형공공건축가(2011)로 선정되었고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학교 놀튼 건축대학원이 선도적 조경가에게 수여해온 글림처특훈교수(2011)로 임명되어강의하였다.
[조경의 경계를 넘어, 조경 속으로] 길 페날로사
최근 FTA로 가까워지긴 했지만 콜롬비아는 여전히 우리에게 꽤나 생소한 나라다. 그러나 도시적 이노베이션에 있어 콜롬비아는 결코 변방의 소국이 아니다. 브라질의 꾸리찌바에 못지않은 21세기 도시형을 보여준 콜롬비아 보고타(Bogotá)의 리더십은 놀랍다. 그리고 그것을 이끈 주역은 탁월한 도시 행정이었다. 형은 시장으로, 동생은 공원 국장으로 재직하며 형제 콤비가 이끌어낸 혁명적 성취는 소득이 열 배, 스무 배인 선진국에 들불처럼 번져나갔고 수많은 서구 도시가 한때 마약과 폭력으로 얼룩졌던 보고타를 견학하며 그들의 도시 철학과, 노하우, 스토리를 배워 갔다. 부유한 도시만이 훌륭한 도시 공간을 만든다는 공식이 틀렸음을 증명한 계기였다. 뉴욕 시의 블룸버그 시장이 추진한 브로드웨이 보행몰 또한 보고타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엔리케 페날로사(Enrique Peñalosa)는 이렇게 말했다. “시장으로서 내가 보고타의 경제를 뜯어고칠 수는 없을 것이다. 아마도 우리 모두가 미국인만큼 부유해진다는 것은 영원히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도시를 다시 설계함으로써 비록 가난하지만 누구 못지않게 품위 있는 삶을 살 수있다. 사람들이 부유하다고 ‘느끼게’ 할 수 있다. 도시는 사람들을 보다 행복하게 하는 중요한 요소다.”1 엔리케 페날로사가 취임했을 때 콜롬비아는 언제나 그랬듯 미국식 풍요에 대한 열등감에 시달리고 있었으며 부에 대한 갈망에 허덕이고 있었다. 그러나 채워질 수 없는 욕구는 사람을 더욱 불행하게 만드는 조건일 뿐이다. 페날로사 형제는 GDP라는 잣대가 아니라 도시를 통해 사람들이 행복해질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엔리케가 시장으로 선출되기 전부터 보고타의 혁신은 사실 공원국의 방향타를 맡은 동생 길 페날로사(Gil Peñalosa)에 의해 본격적으로 현실화되기 시작했다. ‘시클로비아(ciclovía)(보고타에서 매주 일요일과 공휴일에 시행하는 자동차 없는 거리)’와 같이 차량 통행을 일시적으로 제한하고자전거와 보행자에게 도로를 개방하는 발상은 페날로사 형제가 고안해 낸 발명품은 아니다. 1960년대에도 광범위하게 유행하던 전략이었다. 뉴욕의 진보적 시장이었던 린지(John Vliet Lindsay) 또한 5번가에서 보행자 전용 도로를 실험한 적이 있다. 보고타에서도 이미 몇몇 선구적 시민들에 의해 시클로비아가 시행되고 있었다. 그러나 길 페날로사 이후, 시클로비아는 그저 상징적인 움직임으로서가 아니라 실질적인 도시 혁신의 수단으로 자리매김할 만큼 그 규모가 과감히 확대되었고 각종 페스티벌, 단체 춤 교실(Recrovia) 및 야간 자전거 도로(ciclovía nocturna)와 같은 창의적인 요소들을 추가해 보고타 시민의 생활에서 뗄 수 없는 부분이 되었다. 현재 시클로비아의 길이는 121km에 이른다. 한편, 새 자전거 도로는 가장 소득이 낮고 천대받는 지역부터 건설되기 시작했다. 자전거 외에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할 수 없는 저소득층이야말로 이러한 인프라가 가장 필요한 사람이라는 관점에 바탕을 둔 정책이 었다. 포장조차 되어 있지 않던 진흙탕 길에 가로수를심은 널찍한 길이 놓여졌다. 비록 값비싼 재료나 훌륭한 소재는 아니었지만, 네덜란드나 덴마크 등 유럽 선진국 못지않게 세심하게 설계된 자전거 도로는 빈민층 밀집 지역을 관통하며 곧 훌륭한 공원으로 변모했다. 보고타는 원래 높은 어린이 교통사고 사망률로 악명 높은 곳인데, 여기에서만큼은 아이들이 차에 대한 두려움 없이 안심하고 놀 수 있었다. 어른에게는 출퇴근길, 아이들에게는 통학로와 놀이터가 되면서, 주민들 사이에 생필품을 사고파는 시장이 서는가 하면 자전거 수리점, 인력거 등 새로운 경제 활동이 창출되었다. 또한 식료품 노점상이 늘어나 멀리 가지 않고도 먹거리를 살 수 있게 되었으며 생활비를 절약하고 시간을 아낄 수 있게 되었다. 그저 보기에 좋은 공원이 아니라 생계에 큰 도움을 주는 수단이 된 것이다. 교통 체증으로 유명한 보고타에서 자전거가 오히려 차보다 빠른 경우도 많았다. 과외 교육의 기회를 갖지 못한 어린이들을 위해 부모가 돌아올 때까지 노상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돌봐주는 방과 후 프로그램도 생겨났다. 차들이 쌩쌩 달리는 도로변에서라면 불가능한 이야기다. 또한 자전거 도로는 보고타의 혁신적인 급행 버스 체계와 연결되어 효율성이 극대화되었다. 페날로사 형제는 총 300km가 넘는 자전거 도로를 구축했다. 길 페날로사가 이끄는 공원국의 과감한 정책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페날로사 형제는 단기간에 200여 개가 넘는 근린 공원을 조성해 도시 어느 구역에 살든지 걸어서 이용할 수 있도록 공원 체계를 구축했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휴식이나 여가를 위해 투자할 여건이 되는 반면, 저소득층 노동자의 경우 이에 투자할 시간적·금전적 여유가 없다는 간단하고 명확한 철학에서였다. 따라서 경제적으로 하층 계급일수록 빠르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공원이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 일환으로 빈민가를 통과하는 24km의 선형 공원인 엘 포르베니르(El Porvenir), 빈민가와 부유층 지역을 잇는 후안 아마리요 그린웨이(Juan Amarillo greenway) 등이 건설되었다. 그는 도시 한가운데 버티고 있던 특권층의 전유물인 골프장을 지금은 보고타에서 가장 유명한 대형 공원인 시몬 볼리바르(Parque Simón Bolívar)로 바꾸기도 했다. 길 페날로사는 대한민국의 수원시를 비롯해, 세계 180여 개국의 정부와 민간 단체를 상대로 자문을 수행해왔다. 이 꼭지를 연재하고 있는 인터뷰어 최이규는 1976년 부산 생으로 그룹한 어소시에이트 뉴욕 오피스를 이끌며 10여 차례의 해외 공모전에서 우승했고, 주요 작업을 뉴욕시립미술관 및 소호, 센트럴파크, 두바이, 올랜도, 런던, 위니펙 등지의 갤러리에 전시해 왔다.
미국 덤바턴 오크스의 정원 연구 지원 활동과 성과
워싱턴 D.C.에 소재하는 덤바턴 오크스 리서치 라이브러리 앤드 컬렉션Dumbarton Oaks Research Library and Collection은 하버드 대학교 이사회에서 운영·관리하는 연구소다. 이 연구소는 비잔틴, 정원 및 경관, 콜럼버스의 미 대륙 발견 이전 시대 등 세 분야에 관한 연구와 학술 활동을 국제적으로 지원한다. 조경 분야를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미국 최고·최대의 연구소인 셈이다. 덤바턴 오크스는 밀드레드 블리스Mildred Barnes Bliss(1879~1969)와 로버트 우즈 블리스Robert Woods Bliss(1875~1962)에 의해 세워졌다. 남편인 로버트 블리스는 미국 외무성 대사를 지냈으며 남아프리카와 유럽등지에서 근무했다. 이들 부부는 문화·예술에 관심이 많아 예술품을 수집하고 인문학을 지원하는 후원자이기도 했다. 워싱턴에서 오랜 시간 동안 터전을 물색한끝에 1920년 6월, 현재의 저택과 넓은 토지를 구입하고 예술 작품과 서적을 수집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으며 음악과 미술 활동을 지원하는 데 헌신했다. 땅과 저택을 구입한 후 부부는 이곳을 새롭게 정비했다. 밀드레드는 저명한 조경가 베아트릭스 파란드Beatrix Farrand와 함께 1801년에 지어진 저택의 주변 토지를 테라스식 정원과 비스타로 바꾸었다. 1929년, 기존 저택을 확장해 음악실을 새롭게 지었고, 1940년에는 비잔틴 컬렉션을 위해 부속 건물을 증축했다. 블리스 부부는 1940년 연구소를 하버드대학교에 기증하고 1960년대 사망할 때까지 연구소와 컬렉션을 발전시키고 정원을 만들어나가는 활동을 꾸준히 전개했다. 앞서 언급했듯 덤바턴 오크스는 비잔틴, 콜럼버스 이전 시대, 정원 및 경관 등 세 분야에 집중한 연구를 전개하고 지원한다. 1940년부터 시작된 비잔틴 연구는 후기 로마 시대, 초기 기독교, 서양 중세, 슬라브 문화, 근동 지역 연구 등을 포함한다. 콜럼버스 이전 시대 연구는 1963년에 시작되었으며 멕시코, 중앙아메리카, 남아메리카 안데스 지역의 연구가 포함된다. 정원 및 경관 연구에는 정원사와 조경 및 관련 분야 연구가 포함된다. 1951년 블리스 부부에 의해 설립된 덤바턴오크스 기부 재단Dumbarton Oaks Garden Endowment Fund이 1956년 펠로우십fellowship을 처음으로 지원한 이래 1969년 정원 및 경관 연구 프로그램이 만들어졌으며 1972년부터 정원 및 조경사 연구에 대한 지원을 시작했다. 설립자인 블리스 부부는 덤바턴 오크스가 단순히 책과 예술품을 모아놓은 공간이 아니라 인문학의 고향으로 기억되기를 원했다. 그리고 저택과 정원은 그 자체로 교육적 중요성을 지니며 모든 공간이 인문학적 가치를 가지는 곳이 되기를 원했다. 이러한 열망은 오늘날에이르기까지 덤바턴 오크스를 견인해 왔으며 지속적인 환기를 통해 역동성을 유지하고 있다.유명 조경가가 디자인한 정원을 갖춘 저택은 관련 분야를 연구하는 학자들뿐만 아니라 대중에게도 열려 있다. 박물관에서는 세계적 수준의 컬렉션이 전시되고 음악실에서는 강연과 콘서트가 이어진다. 펠로우십, 인턴십, 학술회의, 전시회 등을 통해 다양한 경험을 하고학문적인 교류를 이어나간다. 아울러 연구소는 여러연구 결과물을 덤바턴 오크스 중세 도서관Dumbarton Oaks Medieval Library에서 논문과 책을 통해 전하고 있다. 또한 학자들이 수집하고 연구한 많은 내용을 온라인을 통해 자유롭게 접할 수 있도록 개방하고 있다. 덤바턴 오크스의 정원 연구 지원 프로그램 1969년에 설립된 정원 및 경관 연구 프로그램은 정원사, 조경, 고대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에 걸쳐 문화적·예술적으로 의미 있는 경관 등을 연구하고 지원하는데, 현재는 존 비어즐리John Beardsley가 디렉터로 있다. 이 프로그램은 경관을 지식과 연구의 장이자 조경가, 경관 예술가, 그리고 정원가에 의해 수행되는 실천의 터전으로서 그 이해를 깊게 하는데 초점을 두고 있다. 구체적인 지원 프로그램으로는 거주식 펠로우십, 단기 박사 준비 레지던시, 1개월짜리 박사후 과정 연구비 지원, 현장 조사를 위한 프로젝트 지원, 특강 및 심포지엄, 조경학 전공 학생을 위한 서머 인턴십, 새롭게 시작되는 컨템포러리 아트의 설치예술 작업 지원 등이 있다. 이유직은 부산대학교에서 조경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미군 기지 캠프 하야리아를 공원화하는 작업의 프로젝트 코디네이터로 활동했으며,경남 거창군 창조 도시 총괄계획가로 활동하고 있다. 마을 만들기와 농촌 조경에 관심을 두고 현장에서 지역재생과 커뮤니티 활성화를 위한조경학적 실천을 모색하고 있다.
광기의 시대, 지혜의 정원
서양 정원에 대한 이야기는 으레 이상 경관, 혹은 낙원에 대한 관념을 표출하는 장소로서의 정원으로 시작한다. 에덴동산Garden of Eden, 혹은 ‘아가’서에서 등장한 상징적 정원 등을 언급하며 이러한 정원을 구현하기위한 사람들의 노력이 정원의 역사라고 한다. 하지만 한편으로 정원은 혼란의 시기를 맞이할 때마다 일종의 도피처가 되었고, 동경과 상상, 적극적 실천의 대상이 되었다. ‘중세의 정원’이라고 하면 수도원 정원이 머릿속에 먼저 떠오를 테지만 16세기 후반 프랑스에 살던한 프로테스탄트가 꿈꾼 ‘피난처로서의 정원’도 흥미로운 사례가 될 수 있다. 신교와 구교 간의 종교 갈등과 국내외 전쟁, 경제 위기로 전 유럽이 어려움을 겪어 ‘철의 세기Iron Century’라고 평가되는 이 시기, 수십 년간 종교전쟁(1562~98)이 벌어진 프랑스에서는 프로테스탄트 박해가 극에 달했다(‘여왕 마고La Reine Margot’에서 수만 명의 개신교도가 학살당한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의 학살 장면의 예를 보자). 제1차 종교전쟁이 끝난 직후 한시적 평화의 시대 어느 날, 베르나르 팔리시Bernard Palissy라는 위그노(프랑스의 칼뱅파 교도)도공이자, 저술가, 측량가, 유리 화공, 그로토 제작인이 보르도의 감옥에서 석방되었다. 자유의 몸이 되어 가족과 교우들이 있는 생트Saintes로 돌아온 그는 강변을 거닐다가 소녀들이 ‘시편’ 104장에 곡을 붙인 노래를 부르는 것을 듣게 되었다. 풍요로운 자연 속에서 조물주의 신성한 힘을 발견하고 이를 찬미하는 성경구절에서 영감을 받은 그는 종교 박해를 피할 수 있는 도피처로서의 정원을 구상했고 이를 저서에 상세히 남겼다. 『르세트 베리타블』 팔리시는 1563년 출판한 『르세트 베리타블Recepte véritable(진정한 처방)』1의 두 번째 부분에서 정원 설계와 배치를 이야기했다. 그는 헌정문에서 “모든 프랑스인의 재산과 덕행을 늘리고자 이 책에 포함된 여러 비밀을 드러내어” 그를 석방시키는데 힘을 써준 모후 카트린느 드 메디시스Catherine de Médicis2에게 보은하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라고 밝혔는데, “하느님이 나에게 기꺼이 나누어준 달란트를 땅속에 숨겨두고 싶지 않다”고 하는 대목에서 프로테스탄트적 노동관이 나타난다. 즉 자연에 나타난 신의 신비를 해석하고 드러내는 것이 자신의 임무라고 본 것이다. 제도화된 교회를 지배하던 엄격한 위계질서로부터 자유를 추구하는 칼뱅파에 속한 위그노의 독실한 교인이던 그는 자신의 작업 방식과 사고방식이 신의 창조적인 성격과 교감할 진정한 통로를 재현한다고 보았다. 팔리시는 자신을 “그리스인도, 히브리인도, 시인도, 수사학자도 아닌 제대로 배우지 못한 보잘 것 없는 장인”이라고 지칭하고 지식인의 언어인 라틴어가 아니라 프랑스어로 책을 썼다. 이론적 학문보다 실천적 지식을 중시하는 그의 근대적 태도가 드러난다. 지상 낙원을 제외하면 이 세상에 없을 매우 아름다운 정원 팔리시는 “지상 낙원을 제외하면 이 세상에 없을 매우 아름다운 정원을 만들겠다”며 정원의 최고의 특징이 아름다움임을 언명한다. 이는 식재보다는 대상지와 구조,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가 ‘카비네cabinets’라고 부르는 구조물을 통해 나타난다. 그가 이상적이라고 본 ‘즐거움의 정원’에서는 실용성보다는 미적 요소가 강조되며 이는 신의 피조물에 대한 찬미가 된다. 그러나 이때의 즐거움은 세속적인 즐거움이 아니고 성경 말씀에 따라 다시 만들어진 근원적 순수함으로의 회귀를 의미한다. 『르세트 베리타블』은 그의 이상적 정원에 대해 같은 구절을 반복하며 장황할 만큼 설명하고 있지만 삽화가 전혀 없어 이해에 어려움을 주기도 한다. 그가 묘사한 정원은 산이나 높은 은둔지 아래의 평야에 위치한다. 북쪽과 서쪽은 바람을 막아주는 산으로 둘러싸여 사방으로 위요되어 있다. 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정원을 가로지르며 정원 곳곳에 있는 분수에 물을 댄다. 그는 이런 안락한 곳을 발견하면 “이제껏 사람들이 비슷한 것도 본 적이 없는 아주 창의적인 정원을 설계하여 구성할 것”이라고 한다. 그는 ‘시편’ 104장을 토대로 정원을 조성해 사람들이 정원에서 그 말씀을 겸손히 묵상하며 신이 만든 모든 경이로움을 예찬하기를 꿈꿨다. 황주영은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불문학과 영문학을 공부하고, 미술사학과에서 풍경화와 정원에 대한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서울대학교 협동과정 조경학전공에서 19세기 후반 도시 공원의 모더니티에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술과 조경의 경계 사이를 넘나들며문화사적 관점에서 정원과 공원을 보는 일에 관심이 많고, 관련된 책몇 권을 함께 쓰고 옮겼다.
고산 윤선도의 『금쇄동기』와 걷기의 정원
『금쇄동기』 이해 『금쇄동기金鎖洞記』는 고산 윤선도가 55세 때 지은 산문이다. 그가 조영한 여러 정원1 가운데 하나인 해남의 금쇄동을 발견하여 정원으로 만들어 즐긴 지 1년 만에 그곳의 풍광과 의미, 그리고 주요 경물에 대해 기술한 수필 형식의 기록이다. 정원에 관한 기록, 특히 작정자가 서술한 정원 관련 기록이 많지 않은 한국 조경사에서 『금쇄동기』는 의미 있는 사료라 할 만하다. 한국 최고의 정원가라 할 수 있는2 고산 자신이 만들어 즐긴 정원에 대해 직접 기술한 유일한 기록이라는 점3에서 조경사적 의미가 큰 것이다. 평생을 정치적 역경 속에 살았던 윤선도가 인간적 슬픔과 정치적 쓰라림을 잇달아 겪은 후 마침내 집안일과 제사를 큰 아들에게 맡기고 산속에서 살기로 마음먹고 실행에 옮긴 것은 그의 나이 53세 때였다. 보길도에 원림을 조영한 지 불과 2년 만에 수정동을 새롭게 찾아내어 본격적으로 산거 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아마도 보길도 부용동이 바다 한 가운데 있어 오가기가 수월치 않았던 터라 해남 종가에서 가까운 곳에 원림을 새로 만들 필요가 있었을 법하다.4 처음 그가 찾아 들어간 곳은 호남의 명산이라 불리던 병풍산 자락의 작은 계곡 수정동이었다. 그 직후 병풍산 너머 계곡에 문소동을 찾아 자신의 원림 영역을 확장했다가 우연히 맞은편 산 정상부에 있는 금쇄동을 발견하게 된다. 금쇄동金鎖洞(자물쇠가 잠긴 아름다운 궤짝처럼 생긴 곳)이라는 이름은 정상부가 오목하면서 찾아 오르기 힘든 지형적 특성에 무관한 바는 아니지만, 그 곳을 발견하기 며칠 전에 금궤를 발견하는 꿈을 꾼 사실에 직접적으로 연유되었다. 처음 수정동으로 들어간 지 1년 만에 우연히 금쇄동을 발견하여 정원을 만들었고, 다시 1년 후에 그간의 감회를 적은 것이 『금쇄동기』이다. 발견한 지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나서도 감회가 여전했을 만큼 금쇄동은 고산에게 각별한 곳이었던 것이다. 수정동이나 문소동에 비해 경치가 빼어나고 규모도 커서 금쇄동을 찾아 낸 이후로고산은 그 곳을 거점으로 삼았던 것으로 보인다.5 『금쇄동기』는 하늘이 준 비처秘處에서 발견한 자연 경물과 몇동의 건물, 그리고 여러 갈래의 길로 정원의 기본 골격을 완성하고서 쓴 금쇄동 원림 준공기라 할 수 있다. 6 걷기를 전제로 한 정원: 수정동, 문소동, 금쇄동 걷기란 경관 속에서 몸을 이동시키는 일이다. 걷기를 통해 우리는 세상과 만나고 풍경을 감상한다. 단어로 글을 써나가듯 우리는 걸음을 통해 공간을 읽는다.7 걷기를 건축의 한 형태로8 간주하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인간이 삶을 경험하고 주위 환경과의 관계를 규정하는것도 걷기를 통해서이며,9 정원에서도 걷기는 감상을 위한 기본 요건이다.10 걷지 않고 탐방할 수 있는 정원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존 딕슨 헌트John Dixon Hunt의 말은11 정원에서 걷기의 의미를 단적으로 드러내 준다. 특별히 걷기가 중시된 정원은 자연형 정원이다. 자연식 정원은 그 안에 “숨겨진 경이를 발로 찾아가 발견해 내기를 기다리는”12 정원이다. 비록 길들여진 곳이기는 하나 경이롭고 예측 불가능한 무언가가 끊임없이 일어나는 곳이라는 정원에 대한 정의는13 이를 잘 설명해준다. 걷기를 통해 주위 자연 경물이나 부단히 변화하는 무언가를 만남으로써 우리는 자칫 시각에 의존하기 쉬운 정원에서의 감상을 한층 심화시킬 수 있게 된다. 온 몸을 동원한 걷기를 통해 우리는 시각적 감각 세계 이상과 조우14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산수간에 조성된 조선 선비들의 원림에서는 대개 자연 산지 속에 있던 경물이나 자연계의 현상이 감상의 주요소이다. 원래 있던 자연 경물과 현상을 걸어 다니며 발견해내어 정원의 주요소로 편입시키고 걷기를 통해 심미적 만남을 즐기고자 한 것이다. 하루 동안 여덟 개의 산책로를 찾아낸 니체처럼15 고산도 수정동을 중심으로 주변 산길을 두루 찾아 다녔던 것으로 보인다. 고산이 수정동을 찾아 들어간 그 해에 문소동을, 그리고 그 다음 해에 금쇄동을 찾아내고 정원을 만들었다는 사실이 그 개연성을 잘 드러내 준다. 정원 내의 주요 지점과 경물만을 즐긴 것이 아니라 주변의 산지까지 두루 찾아 즐긴 것이다. 그가 수정동-문소동-금쇄동으로 자신의 정원을 확장시켜나간 것도 알고 보면 걷기를 통해 새로운 적지를 발견해낸 결과인 셈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거의 매일 이 정원들을 오가며 즐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금쇄동에서 각각 1리(400m)와 5리(2km) 밖에 안 되는 거리인 문소동과 수정동은 반나절 사이에도 오갈 수 있어 거의 매일 오가며 즐기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런 점에서 수정동, 문소동, 그리고 금쇄동은 걷기에 의한, 걷기를 위한 정원이라 할 만하다. 산지라는 지형 조건은 걷기를 통해서만 극복 가능하다. 정원의 주요 시설을 산꼭대기에 배치한 금쇄동은 산을 오르지 않고는 볼 수조차 없다. 구태여 산꼭대기에 자신의 거처와 정원을 마련한 것은 그곳의 풍광이 마음에 들었던 탓일 것이다. 하지만 그로 인해 매일 급경사와 절벽으로 이루어진 산길을 오르내려야 했으니 풍광의 대가치고는 결코 만만치 않다. 어쩌면 위태롭고 험난한 산길을 올라야만 비로소 맛볼 수 있다는 점에서 금쇄동은 더욱 각별한 곳일 수도 있다. 성종상은 서울대학교에서 조경학을 공부하고 조경설계 서안에서 조경설계 실무를 하다가 지금은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조경 및 생태디자인, 환경설계역사 등을 가르치고 있다. 대전세계박람회장, 인사동길,국립중앙박물관, 신라호텔 전정, 선유도공원, 용산공원, 순천국제정원박람회장 등의 작품과, 『한국의 전통생태학』(2004, 공저), 『LAnD: 조경·미학·디자인』(2006, 공저), 『텍스트로 만나는 조경』(2007, 공저), 『고산 윤선도 원림을 읽다』(2010), 『Historical Studies of Geomancy inKorea』(Cambridge University Press, 근간, 공저) 등의 저서가 있다.
동아시아 정원 문화와 『작정기』
『작정기作庭記』는 일본어 발음대로 표기한 ‘사쿠테이키sakuteiki’로 서양의 정원 관련 서적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또한 영어와 불어 같은 서양의 주류 언어로 이미 많이 번역되어 보급되었다. 그 이유는 동서양을 통틀어 정원 만들기에 관한 가장 오래된 책이고 일본의 정원 문화가 서구에 잘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작정기』는 저작 연도와 저자 이름, 그리고 책 제목도 없는 두루마리 형태의 비전서로 전해진 책이다. 에도 시대에 고전 총서群書類從를 편찬할 때 포함되어 목판으로 출판되면서 『작정기』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저작 연도는 헤이안 시대(794~1192) 후기인 11세기, 저자는 궁궐의 건축과 수리를 담당하는 수리대부를 역임했던 다치바나노 도시쓰나橘俊綱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작정기』는 헤이안 시대 건축 양식인 신덴즈쿠리(침전조寢殿造: 중국의 영향을 받은 일본의 귀족 주택 양식) 건물에 조성한 정원 양식을 다루고 있으나, 이후 일본 정원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오늘날까지도 일본의 전통 정원 작정가들에게는 바이블로 여겨지고 있다. 일본에는 『작정기』 외에도 『산수병야형도山水竝野形圖』, 『축산정조전築山庭造傳』 등 작정서가 많은데,1 중국의 경우 『작정기』보다 500년 이상 뒤인 명대에 『원야園冶』가 저술된 외에 별다른 전문 작정서가 없는 것에 비하면 매우 특별한 현상이다. 『원야』조차도 중국에서는 사본이 사라지고 일본에서 『탈천공奪天工』이라는 이름으로 전수되다가 300여년 뒤 중국에 역수입되어 복간되었다.2 특수한 한일 관계 탓이겠지만 한국에서는 일본의 정원문화, 그리고 고전인 『작정기』에 대해서도 연구가 매우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일본서기』에 백제에서 도래한 작정가 노자공路子工이 일본에 수미산과 오교吳橋 만드는 법을 전수했다는 기록을 보거나3 헤이죠쿄(평성경平城京, 나라) 동원東院 정원의 연못이 경주의 안압지와 유사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 일본의 정원 문화가 결코 한국의 그것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이 글에서는 『작정기』에 나타난 작정법에서 일본적 특수성을 찾기보다는 동아시아라는 지역의 보편성을 찾고자 하였다. 고대 중국으로부터 형성되어 한국과 일본으로 퍼진 동아시아 정원 문화의 DNA를 『작정기』라는 고대 문헌을 통해서 찾아보고자하는 것이다. 즉, 『작정기』라는 옛 문헌은 동아시아의 고대 정원 문화를 엿보는 창인 것이다. 중국학자짱스칭张十庆도 『작정기』가 “일본 내지 동아시아 조원사에서 초기 조원의 가장 중요하고도 진귀한 문헌”이라고 하고, “일본 초기 조원 기술 전문 서적인 『작정기』는 … 중국 원림사에 중요한 보충을 해줄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4 그는 중국에서 잃어버린 옛 정원 문화를 『작정기』를 통해 알 수 있다고 보고, 이를 고대 중국에서 예禮를 잃어버리면 주변의 변방국에서 구했다고 하는 이야기와 관련시킨다. 동아시아 정원사에서 이와 같이 중요한 위치를 갖는 『작정기』에 대해 이 글에서는 먼저 『작정기』의 주요 내용을 간략히 살펴본 후, 『작정기』의 내용을 동아시아의 일반적인 작정 원리와 연관시켜 그 의미를 해석하고자 한다. 동아시아 정원 문화와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는산수론(산수미학)과 풍수론이 그러한 해석의 중심이 될것이다. 『작정기』의 이해 『작정기』 원본으로 여겨지는 다니무라谷村본은 두 개의 두루마리로 되어 있고 장별 구분이 명확하지 않다. 문자는 한문이 아니라 한자가 섞여 있는 옛 일본어 가나로 쓰여 있다. 원문에 나와 있는 소제목과 내용을 기준으로 학자에 따라 8장에서 14장까지 장을 구분하고 있지만 내용 자체가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어떻게 나누어도 제목과 관련 없는 내용이 조금씩 포함될 수밖에 없다. 11장으로 나누는 경우가 가장 많은데, 폭포와 관련된 부분(폭포를 만드는 법, 떨어지는 모양)을 둘로 나누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를 하나로 합쳐서 10개의 장으로 나누는 방식이 간명하고 알기 쉽다고 생각한다. 『작정기』는 전체가 793행으로 되어 있고 글자 수는 14,000자 정도다. 장별로 할애된 분량을 보면 7장 금기와 5장 계류에 대한 기술이 가장 많은 편인데, 이 부분은 특히 풍수와 관련이 많다. 동양 정원의 요소는 대개 산, 물, 돌, 나무, 건축물 등으로 볼 수 있는데, 『작정기』는 주로 돌과 물을 다루고 있으며 나무나 식재에 대한 내용은 별로 없다. 1장 작정의 요지 『작정기』 1장에는 정원을 만들 때 심득해야 할 요지가 세 가지로 제시되어 있다. 첫째는 장소의 특성에 따르면서 자연 풍경을 모범으로 삼으라는 것, 둘째는 과거 명인들의 뛰어난 작품을 본받으며 의뢰자(집주인)의 뜻과 아울러 작정자 자신의 취향을 따르라는 것, 셋째는 실제 자연의 명소를 참고하되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현장에 맞게 잘 해석하여 정원을 조성하라는 것이다. 이 작정의 요지는 『작정기』의 정신을 대표하며 오늘날의 조경에도 많은 시사점을 준다. 김승윤은 1957년 전남 장흥군의 농촌 마을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인문대학에서 미학을 공부했고, 1984년 유네스코한국위원회에 입사하여 30년째 근무 중이다. 유네스코한국위원회에서 청년원 지도 교수, 문화과장, 과학커뮤니케이션팀장, 기획홍보실장, 정책사업본부장 등을 역임했으며, 지금은 브릿지사업본부장을 맡고 있다. 2002년 명동 유네스코회관 옥상생태공원 ‘작은누리’ 조성을 주관하면서 정원과 조경학에 관심을 갖게 되어 늦깎이로 서울대학교 협동과정 조경학 박사 과정에 진학, 10년 만에 정원학의 고전인 작정기(사쿠테이키)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지속가능발전의 전략과 실행』, 역서로 『예술과 과학』, 『사쿠테이키: 일본 정원의 미학』 등이 있다.
계성의 『원야』로 본 중국 정원의 가치
들어가며 오늘날 우리가 중국 현지에서 접할 수 있는 중국의 사가 원림은 대체로 근세 후기, 즉 명·청조에 조성된 것이고 1960~1970년대 문화대혁명 때 파괴되었던 것을 1980년대부터 대거 복원한 결과들이다. 시대의 한정, 가치의 변질, 원형 복원의 문제 등 여러 논란거리가 있는 강남 사가 원림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심상에 중국 전근대 원림으로 새겨져 있는 이유는 여럿 있다. 하나는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유적이 있다는 점이며, 또 하나는 원림의 역사를 알 수 있는 다양한 기록물이 있다는 점이다. 많은 기록 가운데 특히 원림을 만드는 데 필요한 이론서는 원림의 가치를 재현하고 계승할 수 있게 하는 근거가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계성計成의 『원야園冶』는 중국 정원의 가치를 존재하게 하는 중요한 자료로, 앞으로도 중국 원림의 정형적 형태를 끊임없이 복제할 수 있게 하는 힘이 있는 자산이다. 『원야』가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소개된 것은 김성우·안대회가 번역본을 소개하면서부터다. 건축과 한학을 전공한 두 학자는 『원야』에 조원의 기술적인 내용뿐만 아니라 이념적이거나 미학적인 내용도 광범위하게 포함되어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1 이후 『원야』는 황기원, 이유직 등에 의해 조경학계에서 연구되었다. 이들은 조경계획과 설계의 입장에서 『원야』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피상적으로 이해되어 온 중국 원림의 가치를 새롭게 조명했다.2 『원야』의 주요 조원 기술인 차경 이론을 바탕으로 우리 전통 조경을 연구한 성과도 있다.3 그밖에 미학계와 미술학계도 『원야』를 종종 연구의 대상으로 다루었다.4 조경학계 외의 다양한 분야가 『원야』를 주목하는 것은 이 책이 다루는 내용이 폭넓기도 하거니와 그만큼 중국 원림이 다양한 분야와 함께 발전해 온 융합적 대상임을 말해준다. 이론과 실천의 상호 작용이라는 관점에서 『원야』를 통해 읽을 수 있는 중국 원림의 쟁점은 두 가지다. 첫째, 자연 재현의 문제다. 계성은 원림 설계의 궁극적 목표를 자연에 두었다. 다음에서는 자연을 원림에 재현함에 있어 중요하게 생각한 바를 알아본다. 둘째, 차경借景으로 본 시정화의詩情畵意의 문제다. 다음에서는 계성이 경관을 다루는 이면에 있는 문학과 회화의 유사성을 살핀다. 자연의 근본을 이해하고 그 요소를 원림에 적절하게 구성하라 『원야』는 크게 ‘원림 조성의 시작 말[興造論]’과 ‘원림에 대한 견해[園說]’로 구성되어 있다. ‘원설’은 다시 ‘터 살피기’부터 ‘터 조성’, ‘옥우’, ‘장절’, ‘난간’, ‘문창’, ‘담장’, ‘포장’, ‘가산 쌓기’, ‘돌 고르기’, ‘차경’까지 모두 11항목으로 나뉜다. 그리고 이에 대한 모든 지침을 따르는 자는 주자主者, 즉 원림을 계획하고 설계하는 자이다. 계성은 글의 서론격인 ‘흥조론’에서, 원림을 조성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인因과 차借에 뛰어나야 하고 체體와 의宜가 정교해야 한다”고 했다.5 이는 곧 대지의 환경 조건에 원림을 부합할 수 있는 기술[因]과 경관을 빌리는 기술[借]에 뛰어나고 대상의 본질을 다루는 것[體]과 이들을 구성하는 바의 적절함[宜]이 정교해야 한다는 말이다. 원림에서 인, 차, 체, 의 네 가지는 서로 연관되어 있다. 경관을 빌리는 것은 환경 조건에 의지하여 이루어지고 외경의 본질은 경관을 빌리는 차경을 통해 얻어진다.6 그리고 외경의 본질들이 원림 안에서 적절히 이루어지는 것이다. 여기서 계성은 인의 궁극적 상태를 ‘정교하게 어울려 딱 들어맞는 것[精而合宜]’이라 하고 차의 궁극적인 상태를 ‘교묘하게 체를 얻는 것[巧而得體]’이라 하였으니, 결국 원림 조성의 정수는 ‘체’와 ‘의’로 얘기할 수 있다. ‘체’에는 여러 사전적 의미가 있지만 여기서 부합하는 뜻은 감상의 대상이 되는 사물의 본성, 혹은 본질이다. 계성의 말을 다시 정리하면, 원림의 주자는 사물의 본성을 정교하게 다뤄야 하고 차경으로부터 체를 얻어야 한다고 말하는데, 정작 『원야』에서는 ‘체’ 자체에 대한 내용은 자세히 다루지 않았다. 그렇다면 체는 무엇인가? 계성의 체는 당말 오대 화가였던 형호가 말하는 회화의 ‘참됨[眞]’으로부터 비롯된다. 박희성은 서울대학교에서 ‘당·송대 산수원림’에 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원림, 경계 없는 자연』이 있으며, 전근대 동아시아 도성과 원림, 근대기 동아시아 각국 조경의 영향 관계를 관심 있게 살피고 있다. 현재는 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하면서 동아시아의 수도를 연구하고 있다. 서울 한양도성 세계유산 등재 신청서 작업에도 참여 중이다.
우리 시대의 정원
우리 시대의 정원 요즘 ‘정원 시대’가 다시 돌아온 것 같다는 말들을 한다. 시대가 다시 정원을 원하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최근에 읽은 어느 정원 책에서 그런 취지로 쓴 듯이 보이는 부분을 인용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할까 한다. “언제부터인가 다시 정원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정원을 바라보는 시선도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21세기에 접어들면서 공공의 장소에 정원의 성장과정을 적용한 개념이 등장하게 된 것은 어쩌면 잃어버린 정체성에 대한 고민의 결과일 것이다. 정원을 가꾸는 즐거움이 가득했던 정원의 시대에서 공공성이 강조된 조경의 시대로 넘어오면서 우리는 직접 가꾸는 즐거움, 즉 정원의 정체성을 잊고 살았다. 18세기 이후 역사의 주인공이 지배층에서 시민계급으로 점차 바뀌게 되면서 사적인 정원에 대한 관심은 공적인 공간을 다루는 공원으로 옮겨갔고, 공공의 선을 추구하는 제도와 공공공간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가장 사적인 공간이었던 정원이 공원으로 탈바꿈한 것도, 조경을 태동시켰던 정원이 점차 주변부로 내몰리게 되었던 것도 그 즈음부터였을 것이다.”1 정원이 화두가 되고 있는 이즈음 너도나도 ‘정원’을 이야기하고 있다. 진정 정원을 필요로 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그래서 이제 정원의 논의에서 제일 먼저 챙겨봐야 할 것은 그간의 정원 관련 연구와 실무를 종합적으로 점검해 보는 일이다. 시각에 따라서 많은 성과가 있었다고 판단할 수도 있고 혹은 성과가 미미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만약 전자라면 지금까지의 성과를 바탕으로 정원의 시대를 맞으면 되겠지만, 후자의 경우로 지난 세월 동안 정원의 성과가 별반 없었다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그간 정원 관련 업적을 손에 꼽히는 대로 요약해보면 해외에 조성된 한국 정원들, 간간이 잡지에 소개된 정원들, 그리고 학회지에 실린 정원 관련 연구 논문들이 있을 것이다. 여기에 학회를 중심으로 진행된 해외 단체 답사에서 이루어졌던 정원 답사까지 포함하더라도 정원 관련 일 거의 모두가 전통 정원의 범주에 들고 현대 정원에 관한 실적은 거의 전무하다 싶을 만큼 미미했다. 따라서 정원학의 새로운 지평을 논의하는 일이 전통정원 연구를 보다 지속적으로 전개하자는 취지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정원학의 가능성을 논의하는 것 자체가 새삼스러운 일일 수 있다. 혹은 그간 못해온 현대정원을 시작하자는 취지의 암중모색이라고 한다면 앞으로 해야 할 일이 산더미다. 어느 경우든 정원학의 가능성 논의에는 현재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정원에 관한 관심사가 그 중심에 놓여있다. 만일 그 의견에 공감한다면 우리에게는 현재 사회적으로 널리 일기시작한 ‘정원’에 관한 담론이 필요하다. 과연 그 정원은 어떤 정원일까? 전통 정원과 현대 정원 세계의 정원, 역사적 개관 고대부터 전개되어 온 정원의 역사를 짚어보면 세계의 정원이 언제 어떻게 꽃피웠고 어떤 사회적 인식과 함께 전개되어갔는지 그 내력을 한 눈에 들여다 볼 수 있다. 앞서 잠시 인용했던 글은 정원의 역사를 일괄하며 사회적으로 정원이 가지고 있던 가치와 기능의 부침을 이야기한 것이지만 동시에 조경학의 태동 배경을 이야기한 것이기도 하다. 즉 역사적 흐름 속에서 보자면 정원과 공원(조경)은 사적인 공간과 공적인 공간에 관한 사회적 경향에 따라 서로 상반된 관계에서 전개되었다. 고대 정원 이래로 어느 시대 어느 지역을 막론하고 정원은 사회적 요인에 따라 전개되었다. 1970년대, 우리 사회에 조경학이 태동한 것도 어떤 필연적인 사회적 요인을 계기로 이루어졌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정원학을 사회적 요인과의 관계에서 논의해봐야 할지 모른다. 세계 정원의 역사는 몇 단계의 전개 과정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원초적으로 보자면 정원은 외부의 거친환경에 대응해 내부(생활 공간)에 순치된 환경을 만들어 온 결과물이었다. 특히 고대 사회의 정원이 그랬을 것이다. 이 단계를 나쁜 자연 가운데 좋은 자연을 만들어 간 단계, 간략히 줄여서 ‘좋은 자연’의 단계라고 해보자. 이후 중세 사회로 접어들면서 문화적 특징에 의해 종교적 색채가 더해진 이슬람, 기독교, 동아시아의 각 문화권별 정원이 형성되었던 때는 ‘상징 공간화’의 단계라고 명명해 볼 수 있다. 이슬람 정원, 동아시아 정원들은 최근까지 그들의 특성을 그대로 일관되게 유지해 왔다. 그들과는 달리 기독교 문화권의 유럽에서는 근대 이래로 다변화된 사회 구조의 부침에 따라 정원이 여러 양식으로 변화무쌍하게 전개되어 왔다. 상징적 공간화에 더해진 다른 결정 요인이 결부된 양상일 텐데, 르네상스-절대왕권 시대-시민사회 시대등 정치 체제나 사회 구조의 변화에 따른 특징에 주목하여 이를 ‘사회적 요인’의 단계라고 명명해 보면 어떨까 싶다. 정기호는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공업교육학과에서 건축을 전공했고,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조경학 석사 학위를, 독일 하노버 대학교에서 건축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한국정원 답사수첩』(공저, 2008), 『유럽, 정원을 거닐다』(공저, 2013), 『경관, 공간에 남은 삶의 흔적』(2014) 등이 있고, 최근에는 유럽의 유명 문인과 예술가들의 개인정원을 다루는 글을 구상하고 있다.
정원학의 오래된 미래
작년 4월, 본지는 ‘다시, 정원을 말하다’라는 제목의 특집을 내보냈다. 가히 정원 열풍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정원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뜨거웠던 때였다. 당시 특집은 그러한 사회 각 분야의 정원을 향한 애정에 대해 “이러한 들썩임은 정원 문화의 부활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런데 우리에게 서양에서 태동한 ‘정원’ 문화라는 것이 있기는 했던 것일까? 아니면, 또 다른 버전의 ‘자연’ 상품화일까?” 그리고 “트렌드라는 미명 하에 별다른 반성 없이 소비되기 시작하고 있는 동시대의 정원과 그 문화를 다시 독해할 필요가 있다. 정원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가치는 무엇인가? 우리가 정원을 요청하고 있는 현상의 이면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정원의 귀환’을 몇 가지 시선으로 바라보고, 정원의 정체성을 다시 새겨보고, 인접 분야의 전문가들에게 정원에 관한 단상을 묻고, 그간 출간되었던 정원 관련 서적들을 순례했다. 이번 특집 역시 이러한 화두의 연장선상에서 준비되었다. 2014년 12월 5일 한국조경학회(회장 김한배) 산하 정원학연구센터(센터장 조경진)는 ‘정원학의 새로운 지평’이란 제목으로 제2회 정원학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이 심포지엄에서는 정원을 단순히 ‘현상’으로 바라보기보다는 학술적 관점에서 국내 정원 이론 연구의 현재를 살펴볼 수 있는 여러 발제가 있었다. 이번 호 특집은 심포지엄의 여러 원고 중 특히 ‘이론’에 초점을 맞춘 내용을 독자들과 공유해 보고자 마련했다. 동서양의 고전적 정원 이론의 비교를 통해 우리 정원학 연구의 좌표를 가늠해보고 그 폭과 깊이를 넓히고 두텁게 하는 데 기여하는 자리가 되기를 기대한다. 1. 우리 시대의 정원 _ 정기호 2. 계성의 『원야』로 본 중국 정원의 가치 _ 박희성 3. 동아시아 정원 문화와 『작정기』 _ 김승윤 4. 고산 윤선도의 『금쇄동기』와 걷기의 정원 _ 성종상 5. 광기의 시대, 지혜의 정원: 베르나르 팔리시의 『르세트 베리타블』 _ 황주영 6. 미국 덤바턴 오크스의 정원 연구 지원 활동과 성과 _ 이유직
[공간 공감] 환경과조경 파주 사옥
첫 만남이 이별이었다. 지난 호에 기고한 파주출판단지의 웅진씽크빅 옥상 정원을 둘러보고 나서 근방에 있는 『환경과조경』의 사옥에 들렸었다. 원래는 이번 호에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이하 미메시스)에 대한 원고를 쓰기로 하고 답사까지 잘 마쳤고, 알바로 시자의 기 센건축과 대치 중인 나이브한 조경에 대해서 끼적이고 있던 참에 환경과조경이 서울로 이전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파주 시대’를 마감하는 사건이라서 특별히 환경과조경의 파주 사옥으로 주제를 선회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다. 미메시스를 답사하고 나서 오픈스페이스의 공간감에 대해 들었던 아쉬움의 이유를 환경과조경 사옥(이하 환경과조경)을 돌아보며 깨달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해서, 미메시스를 조연으로 돌리고 환경과조경을 이 글의 주인공으로 전격 발탁했다. 이 두 장소의 유사점이나 연계점은 그리 많지 않다. 한곳은 업무 공간이고 다른 곳은 문화 공간이다. 건축의 형태나 재질감도 전혀 다르고, 미메시스가 대지를 훨씬 넉넉하게 쓰고 있다는 점도 쉽게 드러나는 차이점이다. 미메시스는 초정밀 모던 건축과 대비되는 판에 박힌 외부 공간이 일차적으로 인지되는 장소다. 세련된 물체가 거친 배경을 만나 서로 보완되는 이미지를 구축할 때도 많지만 이 경우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조경 잡지에서 건축 칭찬, 조경 핀잔을 한다고 언짢게 생각하지 마시길. 객관적으로 체급에서부터 밀리는 게임이라는 결론이다. 결과는 그렇다 치더라도 의도 역시 형편없었다고 치부할 수는 없을 듯하다. 추측이지만, 이 극도의 기하적인 미술관은 잔디를 사이에 두고 숲과 대치를 이루는 형국을 의도한 것으로 보인다. 건물의 형태를 온전히 드러내기 위해 나무의 접근을 막았을 수도 있겠지만, 숲과 건축이 긴장감 있게 마주 대하는 외부 공간 콘셉트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기 위해서는 건축과 마주한 숲이 매우 선명한 이미지를 드러내는 것이어야 했다. 간결하고도 강한 군집의 이미지를 갖는 숲이나 야생미 흠씬 풍기는 거친 이미지의 숲도 나쁘지 않았을 것이다. 아쉽게도 결론은 이도저도 아닌, 판에 박힌 매너리즘 식재였다. 어쨌든 미메시스가 의도했거나 어쩌다 보니 도달한 공간의 콘셉트는 ‘얼짱각’ 스타일이다. 외부 공간은 건축을 여러 각도에서 감상하는 포토 존 역할을 한다. 따라서 미메시스의 외부 공간을 유영하고 있으면 공간의 경험이나 시퀀스가 크게 중요하지 않게 된다. 건축이 멋지게 보이는 자리, 나무를 액자삼아 건축을 돋보이게 하는 촬영 지점이 방문객들에게는 보다 의미 있는 곳이 된다. 따라서 건축과 외부 공간이 쉽게 분리되어 인지될 수 있다. 반드시 외부 공간이 건축과 긴밀한 관계를 맺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외부 공간이 포용할 수 있는 가치를 극대화하지 못한 점이 아쉽다. 정욱주는 이 연재를 위해 작은 모임을 구성했다. 글쓴이 외에 factory L의 이홍선 소장, KnL 환경디자인 스튜디오의 김용택 소장, 디자인 스튜디오 loci의 박승진 소장 그리고 서울시립대학교의 김아연 교수 등 다섯 명의 조경가가 의기투합했고, 새로운 대상지 선정을 위해 무심코 지나치던 작은 공간들을 세밀한 렌즈로 다시 들여다보고 있는 중이다.
최우수작: 봄·봄 春川을 보다
춘천은 계절의 변화가 뚜렷한 산과 강이 많아 ‘봄내’라 불리기도 한다. 문학과 예술, 레포츠와 볼거리 그리고 먹거리가 풍부한 지역인 우두는 소양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지점에 위치해 비옥한 땅을 자랑한다. 우리는 이러한 춘천우두지구에 물길의 켜와 지감地感 자원을 고스란히 담고 기존의 사람들과 새로 모이는 사람들을 서로 엮을 수 있는 공원을 만들고자 한다. 본 계획은 근린공원과 어린이 공원, 두 개의 공원으로 구성되며 크게 세 가지 전략을 제시한다. 전략 1. 대지를 보다 우두벌을 둘러싸고 있는 소양강과 북한강 물줄기는 지난 260여 년간, 옛 삶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아낸 물길이었다. 우리는 이 시간의 흔적을 공원에 담아 여러 갈래의 길을 만들고, 지금은 볼 수 없는 나루터를 현대적인 관점에서 담아내고자 했다. 우선 우두벌을 둘러싼 현재의 소양강과 북한강의 물길을 중첩시켜 공원의 골격을 도출해냈다. 큰 골격을 따라 과거 강이 형성 및 변형되는 과정을 투영시켜 세 가지 순환 동선을 계획했다. ‘여울길’은 언덕을 오르내리며 가벼운 운동을 할 수 있는 길이다. ‘개울길’은 레인 가든을 따라 걸으며아름다운 전원 풍경을 느낄 수 있는 길로 계획한다. 마지막으로 ‘봄내길’은 다양한 공원 이용 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도록 조성한다. 전략 2. 사람을 보다 다양한 층위의 입자가 쌓여 단단하고 비옥한 우두의 대지를 형성했듯이, 다양한 크기의 공간이 여러 갈래의 길을 통해 유기적으로 얽혀 건강한 공원을 만들어 낸다. 충적평야 퇴적층의 입자가 구성된 구조를 형상화해 다양한 스케일의 외부 공간을 조성한다. 이 공간을 따라 우두지구 주민의 세대별 요구를 모두 충족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배치한다. 각 프로그램이 공간과 유기적으로 연계되도록 하여 다양한 세대가 한데 어우러지는 커뮤니티를 만든다. 위치 강원도 춘천시 우두동, 사농동 일원 사업면적 426,049m2 조경면적 63,091m2 공모금액 207,000,000원 이하 추정공사비 약 7,900,000,000원 설계기간 2014.11.~2015.11.(13개월) 공모방식 설계공모(지정초청공모) 상금 최우수작(1점) 조경기본설계 및 실시설계권 우수작(1점) 1,000만원(부가세 포함) 장려작(3점) 각 500만원(부가세 포함) 심사위원 김동엽(성균관대학교 조경학과 교수) 안상욱·강찬수·임재철·김호겸(LH 조경) 배웅규(중앙대학교 도시공학과 교수) 한효덕(LH 도시계획) 최찬희(LH 토목설계) 지난 2014년 12월 9일, 제1회 LH 젊은조경가 조경설계공모(춘천우두지구)의 당선작이 발표되었다. 본 공모는 조경 설계 산업의 동반 성장과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젊은 조경가에게 참여 기회를 제공하여 역량 있는 조경가를 발굴 및 육성하려는 목적을 갖는다. 이번 공모는 춘천우두지구 내에 그린네트워크의 구축을 통해 쾌적한 주거 환경을 조성하고, 이 과정에서 더 나은 도시 조경 설계 모델을 제시할 수 있는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수용하고자 했다. 최우수작으로는 조경사무소 사람과나무(대표 오화식)의 ‘봄·봄 春川을 보다’가 선정되었다. 조경그룹 이작(대표 양태진)의 ‘세 겹의 공원’이 우수작으로 선정되었으며, 장려상은 우리엔디자인펌(대표 강연주)이 제출한 ‘우두常春島’, 조경설계 이화원(대표 김이식)이 제출한 ‘바리 ’, 그리고 서호엔지니어링(대표 윤성융)이 제출한 ‘낭만봄내’가 수상했다. 심사위원들은‘봄·봄 春川을 보다’가 대상지의 역사성을 공간 개념으로 활용하여 다양한 테마를 창출한 점이 우수했고, 세대별 요구에 따른 맞춤형 프로그램을 공간과 유기적으로 잘 연계했다고 평가했다. _ 편집자 주
최우수작: 전통과 문화를 산책하는 건강 도시
도시의 다양한 커뮤니티를 수용하고 토지 이용에 따른 기능을 반영하는, 도시와 공유하는 공원을 조성한다. 도시로부터 독립된 공원을 지양하고, 도시의 사회적·물리적 기반으로 작동 가능하며 다양한 이용 계층과 규모를 수용할 수 있는 통합된 오픈스페이스를 제시하고자 한다. 도시와 공원이 공유하는 공간을 덧대는 패치 전략과 이러한 패치들을 꿰매어 잇는 스티치 전략을 통해 도시, 공원, 이용자 간에 긴밀한 네트워크를 구축하게 된다. 두 가지 전략은 봉담이 가진 아름다운 자연 환경과 결합해 도시와 공원, 도시와 기존 지역의 경계를 부드럽게 함으로써 교류하고 소통하는 건강한 봉담2지구를 기대할 수 있게 한다. 봉담의 숲, 들, 물 그리고 길 화성 봉담 2지구는 오랜 시간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여있던 곳이다. 일부 토지 이용이 교란된 상태지만 숲과 들, 물과 길이 결합된 전형적인 생산 공간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광역적으로는 대상지 좌측에 위치한 삼봉산, 태행산의 흐름이 대상지 내부로 유입되고, 우측으로는 들판이 펼쳐지면서 도시화가 진행되고 있다. 숲과 들은 봉담의 환경적 요소와 기능적 부문을 담당하는 중요한 우세 경관 요소이며, 물과 길은 이 두 가지 경관에 환경, 문화 인자를 공급함으로써 봉담 2지구의 다양성과 지속가능성을 확보한다. 이에 새롭게 구획된 봉담 2지구의 땅이 숲, 들, 물, 길이 유기적으로 엮여있던 본래 땅의 환경적·문화적·역사적 맥락을 계승할 수 있는 설계 전략을 제시하고자 한다. 비전 공유하는 공원: 봉담의 공원은 산과 들로 이루어진 기존 자연 환경과 결합해 건강한 도시 환경을 조성한다. 동시에 토지를 다양하게 이용하고, 유기적인 대응을 통해 도시의 새로운 요구를 공유하는 공원을 실현하고자 한다. 건강한 보행 도시: 분산되어 있는 봉담 지구의 거점 녹지를 선형으로 연계해 지구 전체를 엮는 봉담 순환 건강길과 빗물 순환 체계를 구축한다. 이를 통해 문화와 생태가 공존하는 건강한 주거 단지를 구현하고자 한다. 패치patch 공유하는 공원: 숲과 들의 패치는 지역의 생태와 문화를 생산해 왔다. 도시가 필요로 하는 커뮤니티 공간과 오랜 시간 대상지를 점유해온 숲과 들의 패치를 결합해 도시와 공원을 공유하고자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대상지는 주변과 조화로운 경관을 형성하며 장소적 연속성을 확보할 수 있다. 공유를 위한 도시와 공원 경계 허물기: 봉담의 공원녹지는 경계 허물기를 통해 ‘도시와의 공유’라는 가치를 실현하고 다양한 기능을 공유하는 공원을 조성한다. 이러한 도시와 공원의 결합은 도시의 새로운 요구뿐만 아니라 다양한 계층과 규모의 커뮤니티를 수용한다. 이는 주민참여를 유도해 지역 커뮤니티를 활성화시킬 것이다. 발주 LH 위치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 상리, 수영리, 동화리 일원 사업면적 1,438,710m2 조경면적 326,308m2 공사비 26,200,000,000원 추정설계용역비 532,000,000원 상금 최우수작_ 조경(공원·녹지 등) 기본 및 실시설계권(1작품) 우수작_ 2,000만원(1작품) 장려작_ 1,000만원(1작품) 심사위원 김동엽(성균관대학교 조경학과 교수) 강찬수·이원재·임재철·김호겸(LH 조경) 배웅규(중앙대학교 도시공학과 교수) 최찬희(LH 토목설계) LH가 주최한 ‘화성 봉담2 공공주택지구 조경(공원·녹지 등) 기본 및 실시설계’ 공모전의 결과가 지난 2014년 10월 17일 발표되었다. 최우수작으로는 그룹한 어소시에이트가 제출한 ‘공유와 이음’이 선정되었다. 우수작에는 채움조경기술사사무소(대표 김병채)가 제출한 ‘봉담원행’이 선정되었으며, 씨엔케이(대표 최경환)가 제출한‘삼봉삼담’이 장려작으로 뽑혔다. 이번 공모전은 화성봉담2 공공주택지구 내에 그린네트워크를 구축함으로써 양호한 자연 경관을 유지하고, 환경 친화적인 주거환경을 형성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공유와 이음’은 도시와 공원이 공유하는 공간들을 덧대는 패치patch 전략과 이러한 패치들을 연결하는 스티치stitch 전략을 통해 도시와 공원을 유기적으로 연결했다. 심사위원들은 이 작품이 화성시의 상위계획을 충실히 반영하고, 봉담의 숲, 들, 물, 길에 대한 심층적인 분석을 바탕으로 접근한 점이 돋보인다고 평가했다. _ 편집자 주
3rd Prize: eMotions: Energy Motions and Art Emotions
이모션eMotions은 에너지를 생산하는 예술 작품이다. 덴마크의 자연을 상징하는 오브제로서 자연 환경으로부터 에너지를 얻어 코펜하겐에서 사용할 전기로 전환시킨다―코펜하겐은 2014 유럽 녹색 수도로 선정된 바 있다. 이모션은 재료, 에너지 기술, 규모, 질감 등을 다양하게 사용하여 덴마크의 생태계를 예술적으로 표현해냄으로써 덴마크의 생물다양성을 보여주고 도시의 서로 다른 공동체를 이상적으로 연계한다. 원통 볼륨cylindrical volume들은 재생 에너지의 생산원이다. 섬으로 이루어진 덴마크의 지형을 떠올릴 수 있도록 배치된 각각의 볼륨은 생태계를 구성하는 요소들의 고유한 활동과 정체성을 전달함으로써 자연을 예술적이고 다양한 방식으로 재현한다. 이모션의 구성 요소 리버River: 강을 상징하는 리버는 적층 세라믹 액추에이터stacked ceramic multilayer actuators(SCMA)로 만들어진 압전piezoelectric, 壓電층으로 된 연결 도로다. 리버는 그 위를 걸어 다니는 사람들의 움직임을 전기로 전환한다. 리버의 고가 도로는 방문객들이 코펜하겐 항구의 경관을 감상할 수 있는 독특한 조망점을 제공한다. 비치Beach: 비치는 목조 원형 극장이 있는 항구 수영장이다. 방문객들은 이곳에서 휴식을 취하거나 물놀이를 할 수 있다. 원통형 프레임에 있는 다양한 크기의 원에는 수평축 풍력 발전 장치horizontal axis wind turbine(HAWT)를 설치한다. 마린Marine: 마린에는 파란색 노선(코펜하겐 수상 버스 노선)의 새 정거장이 들어서며 이곳에서는 수영, 스쿠버 다이빙, 카약 등을 즐길 수 있다. 원통형 프레임에는 수직축 풍력 발전 장치vertical axis turbine(VAWT)가 설치된다. 샌드 듄Sand Dune: 샌드 듄 내부 정원의 둥근 판석은 덴마크 국경 지대의 모래 알갱이를 상징하며 풍화 작용에 의한 사구의 생성을 연상시킨다. 샌드 듄의 파사드는 반투명의 얇은 태양 전지판과 수평축 풍력 발전장치로 구성된다. Artist Location Padova, Italy Energy Technologies photovoltaic panels, micro-scale vertical axis wind turbines(VAWT) and horizontal axis windturbines(HAWT), stacked ceramic multilayer actuators, piezoelectric wind energy systems Annual Capacity 2,000MWh
2nd Prize: Quiver 2nd Prize
퀴버Quiver는 크게 정원과 타워로 구성된다. 험딩어Humdinger사의 윈드벨트Windbelt 기술을 이용한 타워형태의 랜드마크와 에너지 작물 정원을 연결하여 새로운 공공 공간을 창조한다. 유연하게 잘린 억새Miscanthus 초지가 에너지 작물 정원을 이룬다. 억새는 최대 4m까지 자라고 일 년에 두 번 수확할 수 있다. 억새 풀밭은 방문객과 시민들을 위해 다양한 기능을 하는 공간을 조성해낼 수 있다. 예를 들면 이벤트 공간, 놀이공원, 갤러리, 시장, 미로 혹은 수익을 얻을 수 있는 옥외 광고로 활용할 수도 있다. 억새는 지반이 얕고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난다. 이러한 특징은 대상지에서 중요한 사항이다. 대상지가 위치한 레프스하뢰엔Refshaleøen은 원래는 코펜하겐의 작은 섬이었지만 간척 사업으로 면적을 크게 확대해 아마게르 섬Amager과 연결하고 공업 지역을 조성했다. 따라서 대상지의 토양은 매우 척박하고 건조하다. 억새는 해안가와 같이 소금기가 있는 토양에서도 잘버티며 물도 많이 필요로 하지 않는다. 또한 코펜하겐에서는 해마다 비가 오고 타워 지하에도 빗물을 저장하기 위한 보조 물탱크가 있기 때문에 억새 풀밭 조성소 흡수율이 매우 높으며 뿌리 조직에 오염물질을 축적하므로 공업화로 인해 오염된 토양을 정화할 수 있다. 억새의 또 다른 이점은 기존 발전소에서 혼소掍燒(2종류 이상의 연료를 연소시키는 것) 물질로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27,000m2에 이르는 면적에서 생산된 작물은 223MWh의 전기를 생산할 수 있다. 넓은 면적의 억새 정원은 새나 그 외의 작은 동물들에게 좋은 서식처가 된다. 이 프로젝트에서 제시된 풍력 기술은 동물들에게도 전적으로 안전하다. Artist Location Warsaw, Poland Energy Technologies biofuel, aeroelastic flutter(WindbeltTM) Annual Capacity 550MWh(223MWh bio, 327MWh WindbeltTM)
1st Prize: The Solar Hourglass
솔라 아워글라스The Solar Hourglass는 말 그대로 태양의 모래시계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시간을 측정하는 대신에 태양열을 모아 에너지를 생산하고 흡수기에 그 열을 집적시킨다. 이 친환경적이며 지속가능한 태양열발전기는 모래시계의 형상과 유사할 뿐만 아니라 작동하는 방식도 비슷하다. 단지 흘러내리는 물질이 모래가 아니라 태양광일 뿐이다. 밤이 되어 빔이 발사되면 설치물을 뒤덮은 가느다란 유기 발광 다이오드OLED 층이 위아래의 구체 표면을 밝혀 주기 때문에, 모래시계가 우아한 한 쌍의 곡면으로 변형되어 레프스하뢰엔Refshaleøen 섬의 경계 부분을 밝힌다. 솔라 아워글라스는 에너지가 시간만큼이나 소중하고 순간적인 것이기에 소중히 다루고 절약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대지에 세워진 모래시계는 밝고 지속가능한 미래에 대한 희망의 빛줄기를 선사한다. 솔라 아워글라스는 작은 평면거울로 이루어진 집광식 태양열 시스템으로 작동한다. 이 거울은 태양 에너지를 반사해 전열매체heating medium가 내장된 탱크에 집적시킨다. 태양열 발전 분야의 세계적 선두주자인 아벤고아 솔라Abengoa Solar사에서 제조한 ‘일광 반사 장치heliostat’로 알려진 이 거울은 모래시계 상부 구체 위에 포물선 모양으로 배열되어 원뿔 모양의 좀 더 작은거울에 태양열을 반사시킨다. 이 거울은 반사열을 응축시켜 설치 오브제의 목 부분으로 쏘아내려 보낸다. 축열된 태양광은 흡수기나 집열기 구성체로 보내진다. 이 구성체는 흡수기 내에 장착된 열전달 유체로 태양열이 최대한 잘 전도될 수 있도록 표면이 특수한 흡수재로 마감된다. 용융염(용해된 소금)으로 구성된 이 열전달 유체heat transfer fluid(HTF)는 600°C 이상까지 가열된다. Artist Location Buenos Aires, Argentina Energy Technologies concentrated solar power (thermal beam-down tower with heliostats) Annual Capacity 7,500MWh
Land Art Generator Initiative 2014
아름다운 미래형 발전소, 랜드 아트 제너레이터 이니셔티브 재생 에너지는 아름다울 수 있다 “재생 에너지는 아름다울 수 있다Renewable energy can be beautiful.” 재생 에너지 발전소를 하나의 공공예술 작품으로 구상하는 아이디어 공모전인 ‘랜드 아트 제너레이터Land Art Generator Initiative(이하 LAGI)’의 표어다. 발전소는 생활에 꼭 필요한 시설이지만 그동안 대표적인 기피 시설로 인식되어 왔다. 지구 온난화, 대기 오염, 폐기물 처리 등의 문제를 안고 있는 화력·원자력 발전뿐만 아니라 댐 건설로 생태계 파괴 문제를 야기하는 수력 발전, 자연 경관을 해친다는 논란이 계속 불거지고 있는 풍력 발전, 거대한 면적을 차지해 경제성과 효율성 면에서 단점이 있는 태양광 발전 등 재생 에너지를 이용한 발전 방식 또한 기술적·미적·환경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를 안고 있다. 그동안 발전소가 ‘숨겨야 할 흉한 시설’로 인식되어 왔다면 LAGI가 제시하는 발전소는 주민들의 삶에 생기를 불어넣고 환경의 소중함을 환기하는 ‘예술 작품’이다. 재생 에너지 발전소를 단순한 ‘시설’이 아니라 ‘예술 작품’으로 디자인하기 위해서는 건축, 조경, 엔지니어링, 응용과학, 산업 디자인, 도시계획, 환경공학, 교육학 등 다양한 분야의 최신 기술과 지식이 요구된다. LAGI 2014의 수상작들은 최신 에너지 발전 기술을 디자인에 적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1등작 솔라 아워글라스Solar Hourglass는 스페인의 태양열 발전 분야 선두 업체인 아벤고아 솔라Abengoa Solar사의 ‘일광 반사 장치heliostat’를 이용한 집광식 태양열 발전 시스템을 응용해 디자인에 적용했다. 집광식 태양열 발전 시스템은 태양광 전지를 사용해 전력을 생산하는 것(태양광 발전)이 아니라 거울을 이용해 태양열을 한 곳에 집중시킨 후증기로 전환시켜 발전기를 작동하는 방식으로 태양광 발전보다 대규모 발전에 유리하다. 2등작 퀴버Quiver는 홍콩의 벤처기업 험딩어Humdinger사의 윈드벨트 기술을 응용했다. 윈드벨트는 팽팽하게 잡아당긴 얇은 막의 진동을 이용한 풍력 발전 기술로 바람개비를 이용한 일반적인 풍력 발전 방식보다 저렴하고 모듈화·소형화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3등작 이모션eMotions은 최근 다양한 분야에서 주목받고 있는 기술인 압전세라믹 엑추에이터를 이용한 보행로를 디자인했다. 운동 에너지를 전기 에너지로 변환하는 압전성이 뛰어난 세라믹을 여러 겹 쌓는 적층 세라믹 기술은 나노미터급 정밀도를 요구하는 최신 기술이다. 레프스하뢰엔이 그리는 지속 가능한 미래 2010년부터 2년에 한 번씩 공모전을 개최하고 있는 LAGI는 올해로 3회째를 맞이했다. 매회 공모전의 취지와 부합하는 대상지를 물색하기 위해 공을 들이고 있는 LAGI는 2010년 두바이와 아부다비, 2012년 뉴욕의 프레시킬스를 대상지로 선정한 데 이어 2014년에는 코펜하겐의 레프스하뢰엔Refshaleøen을 공모전의 대상지로 선정했다. ‘2014 유럽 녹색 수도’로 선정되기도 한 코펜하겐은 2025년까지 세계 최초로 탄소 중립도시를 달성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이를 위해 코펜하겐 정부는 자전거 이용을 유도하고 건물의 단열 효과를 개선하며 태양 전지를 설치하는 등 다각도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최근 프랑크 옌슨 코펜하겐 시장은 코펜하겐 시 곳곳에 총 100대의 풍력 터빈을 설치한다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1 코펜하겐은 이제 단순히 에너지를 생산하는 수준을 넘어서 미학적·사회적인 관점에서도 유익한 새로운 발전 방식을 모색하고 있는 시점이다. 코펜하겐의 레프스하뢰엔은 원래는 독립된 작은 섬이었으나 1870년대에 레프스하뢰엔 항구의 수로를 깊게 파내는 공사가 완공되면서 섬에 조선소가 들어섰고 덴마크의 대표적인 공업 지역으로 번창하게 되었다. 늘어나는 인구를 수용하기 위해 벌인 간척 사업으로 면적이 크게 확대되어 현재는 아마게르Amager 섬과 연결되어 있다. 1996년, 조선소의 파산으로 쇠락의 길을 걷던 레프스하뢰엔은 최근 도시재생의 상징으로 떠오르고 있다. 섬에 남겨진 폐건물에는 벤처 기업의 사무실, 소규모 공방, 벼룩시장 등이 들어섰으며 문화·예술 활동을 위한 공간으로도 이용되고 있다. 또한 레프스하뢰엔의 구항에는 덴마크 최초의 실내 요트 정박지가 세워져 해상 스포츠와 여가를 즐기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지난 2013년부터는 에너지 회사 SE 빅 블루SE Big Blue와 삼쇠Samsø 섬의 에너지 아카데미Energy Academy와 협력을 맺고 온실가스 감소 마을climatefriendly neighborhood을 계획하는 중이다. 이번 공모전에는 전 세계에서 수백 개의 팀이 지원해 탄소 중립 도시를 꿈꾸는 코펜하겐의 옛 공업 지역을 무대로 상상력을 펼쳤다. LAGI는 시공을 전제로 하지 않는 아이디어 공모전이기 때문에 제출된 작품 중에는 다소 현실성 없어 보이는 파격적인 아이디어도 종종눈에 띈다. 하지만 우리의 현재 또한 과거의 누군가가 꿈꾸었던 터무니없는 상상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LAGI가 그리는 아름다운 미래가 실현 불가능한 것은 아닐 것이다. LAGI는 수상식, 전시회, 출판 등을 통해 공모전이 추구하는 가치와 실현 가능성을 꾸준히 홍보하고 있다. 1st Prize The Solar Hourglass Santiago Muros Cortés 2nd Prize Quiver Mateusz Góra, Agata Gryszkiewicz 3rd Prize eMotions: Energy Motions and Art Emotions Antonio Maccà, Flavio Masi
MBC 상암 신사옥
세계로 열린 창, 자연의 감성을 담다 디지털미디어시티(이하 DMC) 내에 위치한 MBC 상암 신사옥은 여의도와 일산으로 이원화되어 있던 MBC를 통합하는 새로운 터전이다. 신사옥은 ‘세계로 열린 창’을 모티브로 하여 외부로 열린 형태로 설계되었다. 보행자전용도로Digital Media Street가 MBC 신사옥을 십자형으로 가로지르는데, 외부 공간을 이와 연계하여 계획함으로써 도심형의 복합 엔터테인먼트 센터Urban Entertainment Center로서 역할을 하도록 했다. DMC는 상암 새천년 신도시 개발을 목표로 방송, 영화·애니메이션, 게임, 음악, 디지털 교육 등 미디어 산업 및 엔터테인먼트 관련 기술을 연구 개발하거나 디지털 콘텐츠를 제작·유통하는 첨단 디지털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클러스터다. DMC가 위치한 상암동은 업무 중심 지구이기도 하지만, 한강의 강바람, 하늘공원의 억새, 평화공원의 숲, 매봉산, 봉산, 멀리 북한산에 이르기까지 서울에서 보기 드물게 풍성한 자연 요소와 접할 수 있는 명소이기도 하다. 최첨단과 풍부한 자연의 상충된 이미지를 공유하는 MBC 신사옥의 조경은 인간, 곧 사용자 중심으로 계획하고, 최첨단 디지털을 향유하는 인간이 섬세한 자연의 힘(바람에 흔들리는 대나무숲 등)을 발견하는 아날로그적 감성을 담고자 했다. 한류 열풍과 문화의 중심인 DMC 방송센터의 랜드마크로서의 상징성을 살리고, 방문객(관광객)을 위한 판매 공간과 야외 공간, 쾌적한 근무 환경 제공을 위한 옥상공간으로 구분되는 공간의 층위별로 각기 다른 테마를 적용하는 조경 계획을 수립했다. MBC 건물군은 방송 전반의 업무를 수행하는 공간과 라디오 스튜디오, 데이터 센터를 배치한 ‘경영센터’, 제작 스튜디오, 보도국, 판매 시설, MBC라운지(아트리움)가 있는 ‘방송센터’, 방송 통신 시설 및 다목적 공개홀로 구성된 ‘미디어센터’가 있으며, 야외 스튜디오를 중심으로 시카고의 클라우드 게이트Cloud Gate를 연상시키는 독립 판매 시설이 자리 잡고 있다. 건축설계 희림종합건축사사무소 조경설계 그룹한 어소시에이트 시공 현대산업개발 발주 MBC 위치 서울시 마포구 성암로 267 대지면적 34,270m2 건축면적 18,448m2 완공 2013 그룹한(대표 박명권)은 1994년 창립 이래, 경제 발전의 피로에 찌든 도시인에게 자연과 호흡하는 아름다운 삶의 방식을 제시해 왔다. 그룹한의 디자인은 삭막한 주거 환경의 한복판에 고향에 대한 향수와 어린 시절의 추억, 그리고 자연에 대한 그리움이라는 가치를 구현해 왔으며, 여유와 즐거움이 넘치는 문화 환경을 헌정해왔다. 글쓴이 하태우는 1975년생으로 전남대학교에서 조경학을 전공하고 동 대학원에서 조경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2002년에 그룹한에 입사하여 신도림 대림 한타 아파트를 시작으로 다양한 조경설계 및 계획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시샤네 파크
시샤네 파크는 이스탄불 중심의 공공 공간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베이올루Beyoglu 구역의 가장자리와 교통량이 많은 탈라바시 로드Tarlabasi Road의 중간에 위치한 이 공원은 이스탄불의 과거와 미래적 도시 문화를 파노라마로 바라볼 수 있는 지형에 세워졌다. 시샤네파크는 사람들이 도시 경관을 만끽할 수 있는 대안적 공공 공간으로서 지역민과 방문객 모두를 끌어들이기 위한 디자인을 채택하고 있다. 공원은 이스탄불의 내항인 할릭Halic―일명 골든혼(Golden Horn)이라고도 함―이 보여주는 아름다운 경치와 식생에 기반을 두고 설계되었다. 문화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는 대규모 공공 공간과 나무 그늘 아래 휴식을 취하며 지역민과 어울려 놀 수 있는 친밀한 공간을 마련했다. 시샤네 파크는 오랫동안 도시의 가장자리이자 구역과 구역 사이에 위치한 공간이었기에 이스탄불의 미래 가치를 담으면서도 정체성이 분명한 공간으로 설계될 필요가 있었다. 시샤네 파크의 특징으로 크게 세 가지 요소를 꼽을 수 있는데 조망대, 데크, 야외 공간이다. 사람을 즐겁고 편안하게 하는 이러한 요소들은 할릭만이 보여줄 수 있는 풍부한 경관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다. 시샤네 파크의 조형미와 테라스는 어둡고 음습한 지하 주차 공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바꾼다. 계절의 변화, 낮과 밤의 차이, 문화 행사, 공원 시설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자발적 참여 덕분에 공원은 친근하면서도 다채로운 경험을 제공하게 될 것이다. 도심의 겉모습에서 드러나는 경직성을 누그러뜨릴 수 있고 도시에 대한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도록 도심 외관 디자인에 내러티브를 불어넣을 수 있는 친숙한 소재를 선택했다. 시샤네 파크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는 것은 이스탄불의 다양한 대중 및 개인 교통 서비스다. 시샤네 지하철역과 직접 연결되고 버스·돌무스(미니버스) 승차장으로도 이어지는 보행로, 자동차 1,000대 규모의 주차장, 여행자를 위한 기타 교통 서비스 등을 갖추고 있는 시샤네파크는 도시를 가득 메운 사람들이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공간이다. Principal Design Architects Murat Şanal, AlexisŞanal Project Architects Begum Öner, Cibeles SanchezLlupart, Orkun Beydagi Project Management KARAKÖY GAYRİMENKULYATIRIMLARI Project Team Merve Akdag Öner, Hazar Arasan,Leo Pollock, Cristina Aleman Serrano Structural Engineer YBT Yapisal Tasarim Hizmetleri Mechanical Engineer/Contractor AKIMMühendislik Electrical Engineer ESAN Mühendislik Traffic HARTEK Harita Teknoloji Infrastructure FEM Insaat Mühendislik Zemin ve Çevre Survey GEOSAN, TESPİT Mühendislik Landscape Designer ARZU NUHOĞLU PEYZAJ TASARIM Graphic Designer Philippa Tamsin Client Istanbul Greater Municipality and KaraköyReal Estate Development PPP. Use Multimodal Transportation Hub, Urban Parkand Underground Car-parking Location Istanbul, Turkey Site Area 5,100m2 Completion 2014 Photographer olivve.com SANALarc는 이스탄불에 위치한 지식 기반의 실무 중심 스튜디오로서 건축 및 도시설계와 관련된 전문 지식을 보유하고 있다. 기술, 예술, 사회 생활과 긴밀히 연관된 특정한 장소가 지닌 독특한 개성이 창의적이고 의미심장한 환경을 만들어냄으로써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삶의 질을 높이게 되는 과정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최근 SANALarc는 이스탄불을 위한 가상의 디자인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는 데 관심을 두고 있다. 비판적이지만 동시에 낙관적인 시각을 바탕으로 도시를 위한 연구 및 건축에 매진하고 있다.
브래드포드 시티 파크
브래드포드 시티 파크Bradford’ City Park는 2003년 시의회에서 작성한 도심 마스터플랜에 따라 기획되었다. 이 계획은 보다 개방적인 도시 구조를 만들고 새로운 공공 공간을 창출하고자 하는 비전을 갖고 있다. 2007년에 이르러 길레스피에스는 아럽Arup, 스터전 노스Sturgeon North, 어톨Atoll, 그리고 파운틴 워크숍The Fountain Workshop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함께 시의회가 제시한 초기 구상을 발전시킨 설계안을 제출했다. 이 설계안을 바탕으로 2009년 후반 본격적인 공사에 착수하게 되었고, 2012년 3월 브래드포드 시의 랜드마크로 역할을 할 수 있는 공공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공원의 중심부에는 19세기에 지어진 브래드포드 시청사 건물이 있으며, 도심지 및 도시 내의 여러 관광지로 연결되는 교통 시설이 갖춰져 있다. 브래드포드 시는 이 공원을 통해 타 도시들과 차별되는 환경을 조성할 수 있었고, 더 나아가 시의 전반적인 이미지 상승 효과도 거두고 있다. 배후지, 물, 그리고 거울 길레스피에스가 제시한 계획은 배후지, 물, 거울이라는 세 가지 디자인 개념을 바탕으로 한다. 먼저 배후지hinterland는 공원의 전체적인 틀을 잡아주는 개념이다. 공원에 도시와 시골의 모습을 적절히 조화시켜 반영하고자 했다. 브래드포드가 언덕과 시골로 둘러싸인 곳에 위치해 있다는 점에서 착안한 것이다. 도시 외부의 마을 및 부락은 도시 안쪽을 들여다보고, 도시는 도시외곽을 향해 눈길을 돌리는 구조를 갖는다. 공원의 서쪽에 조성된 노포크 가든Norfolk Gardens과 공공 미술 작품의 형태와 배치 방식에서 그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물은 브래드포드 시티 파크 설계안을 전체적으로 아우르는 기본적이면서도 가장 중요한 조경 요소다. 완성된 설계안을 보면 2.4헥타르 규모의 역동적이면서도 유연한 공공 공간이 공원의 중심을 차지하는데, 그 공간은 물을 중심으로 한 프로그램으로 채워진다. 브래드포드 시티 파크는 물을 담아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거울이라는 개념을 추가해 주변 경관을 반영한다.이 거울 연못은 도심, 하늘, 날씨를 반사해 보여주는 건축적 요소가 된다. Project Manager and QS EC Harris Lead Consultant & Landscape Architect Gillespies Engineering Design Arup Building Architect Sturgeon North Architects Water Features The Fountain Workshop Lighting Design and Acoustics Consultancy Arup Lighting Columns and Sculpture Wolfgang Butress Interactive Public Art Usman Haque andJonathan Laventhol of Haque Design + Research Main Contractor Birse Civils Pre-Construction Team(as above plus)Public Art Advisors Atoll and Beam QS Davis Langdon Client Bradford Council Location Bradford, Yorkshire, UK Area 24,000m2 Completion 2012. 3. 길레스피에스(Gillespies)는 영국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조경 및 도시설계사무소다. 영국 내 여러 주요 공공 공간 설계를 진행했고, 유럽, 중동, 동남아시아, 그리고 호주까지 그 활동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마스터플랜부터 조경 및 도시계획, 교육 시설, 의료 시설 등 다양한 스케일과 유형의 설계를 한다. 모든 디자인은 미래의 새로운 유산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신념하에 지역 사회의 경제 및 문화적 환경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결과물을 만들어내고자 노력하고 있다.
퀸 엘리자베스 올림픽 파크, 사우스 파크 플레저 가든
2012 런던 올림픽 게임 부지에 조성된 퀸 엘리자베스 올림픽 파크 사우스 파크는 21세기의 플레저 가든Pleasure Garden으로 계획되었다. 퀸 엘리자베스 올림픽파크의 북쪽 절반이 방대한 녹지, 식재된 언덕과 언덕 위 평지, 자연형 산책로와 습지로 계획된 반면, 남쪽 절반(사우스 파크)은 다양한 이벤트, 창의적인 프로그래밍과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명소들로 계획되었다. 그 결과 사우스 파크는 복스홀Vauxhall과 매릴번Marylebone에서부터 랜레이Ranleigh 그리고 크레몬Cremorne으로 이어지는 런던 고유의 플레저 가든이라는 훌륭한 전통을 바탕으로 지어지게 되었다.1 한때 산업적인 발명과 혁신의 중심지였던 공원 부지는 먼저 2012년 런던 올림픽 게임의 중심부로 거듭났고, 최근 공원이자 도시의 유산으로 탈바꿈하였다. 공원의 스포츠, 문화, 교육, 환경은 새롭게 들어선 주변의 커뮤니티와 연결점을 제시했다. 올림픽 게임 당시 중앙 광장으로 기능하던 넓은 포장 부지는, 오늘날 강과 운하그리고 멋진 건축물들―자하 하디드(Zaha Hadid)의 수영 경기장, 아니쉬 카푸어(Anish Kapoor)의 전망 타워인 아르셀로미탈 오빗(ArcelorMittal Orbit) 등―로 둘러싸인 22헥타르(22만m2) 이상의 공원이 되었다. 경관의 네 가지 틀 퀸 엘리자베스 올림픽 파크가 제공하는 프로그램들의 중심지인 사우스 파크는 다음의 네 가지 경관 틀로 이해할 수 있는데, 이는 부지를 체계적으로 조직할 뿐 아니라, 매우 친밀하고 사교적인 공간인 일련의 ‘플레저가든’을 형성하는 틀로 작용한다. 원호형 산책로Arc Promenade는 사우스 파크의 새로운 중추이자 주요한 사교적 장치이다. 이 산책로는 전체공원의 남북을 대담하게 가로지르며, 공원의 주요 공간들과 명소들을 연결한다. 한가로이 거닐 수 있는 널찍한 산책로인 원호는 공원의 방문객들을 강력하게 유도하며 시각적으로 활짝 열린 시야를 제공한다. 정형적인 형태의 커다란 나무들이 열식된 산책로는 다양한 범위의 사교를 위한 가구를 제공하는 한편, 여러 가지종류의 파빌리온, 키오스크, 그리고 선형 마켓, 축제, 장터 등 이벤트 공간의 장이 된다. 식재 리본Planting Ribbon은 5m 너비의 어린 나무, 관목, 그리고 키 큰 풀섶과 다년생 초화류 등으로 구성된 식재 띠이다. 이는 원호형 산책로의 서쪽 경계를 극적인 형태로 구불구불 따라 올라가며, 사교 모임과 이벤트 프로그램을 위한 ‘외실rooms’과 공간을 효과적으로 구획한다.2 이들 공간으로 진입할 수 있는 식재 리본 사이의 열린 틈은 넉넉한 통행 공간과 부지 지하에 매설된 인프라스트럭처의 위치 등을 고려하여 세심하게 배치되었다. 이벤트 외실Event Rooms은 공연, 공공 예술, 이벤트 또는 볼거리 등을 제공하기 위해 가변적이고 융통성 있게 구성된 공간이다. 이벤트 외실들은 발주처에서 요구한 다양한 규모의 이벤트―대규모 콘서트와 축제부터 작은 그룹 모임, 전시, 공연 또는 연주회 등―를 수용할 수 있도록 매우 다양한 크기로 구성되었다. Urban Design & Landscape ArchitectureJames Corner Field Operations Prime Contractor Skanska Landscape Contractor Willerby Landscape Landscape Architect of Record LDA Design Engineering Services Arup Cost Estimating Deloitte Water Feature Design The Fountain Workshop Event Consultant Groundbreaking Architecture Make Architects Planting Design Piet Oudolf Playground Consultant Play Link Lighting Design Speirs+Major ART/Wayfinding Tomato Irrigation Design Waterwise Solutions Client London Legacy Development Company Location London, United Kingdom Area 22ha Completion 2014. 4. Photographs Courtesy of London Legacy DevelopmentCorporation, RobinForster(Courtesy of LDA Design), Courtesyof Make Architects, Piet Oudolf, James Corner Field Operations 제임스 코너 필드 오퍼레이션스(James Corner Field Operations)는 뉴욕에 기반을 둔 도시설계와 조경 설계를 전문으로 하는 디자인 오피스다. 대규모 도시설계 프로젝트나 포스트 인더스트리얼 사이트부터 작지만 섬세한 디테일을 요구하는 디자인까지 다양한 규모의 작업을 수행하고 있으며, 주요 작품으로 뉴욕 시의 하이라인과 프레시 킬스, 라스베이거스의 시티 센터, 중국 칭하이 지역의 도시설계 마스터플랜, 시애틀 워터프론트의 마스터플랜, 필라델피아의 레이스 스트리트 피어, 산타 모니카의 통바 파크, 홍콩의 침사추이 워터프론트 등이 있다. 모든 설계 실천에 있어서 사람과 자연의 생태를 연구하고, 생기 넘치고 역동적인 공공 영역 디자인을 구현하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칼럼] 포스트모던 경관론과 내외이원론
포스트모던 경관론 프랑스가 경관론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사실 중세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학문적으로 조경에 접근하며 개념을 정리하기 시작한 것은 20세기에 들어와서다. 물론 조경에 대한 학문적 접근의 토대는 그 이전에 마련되어 있었던 상태였다. 17세기의 조경가 브와소(Jacqures Boyceau)의 『정원기법서(Traite de jardinage)』에서 알 수 있듯이, 전문적인 조경 서적이 출간되고 조경 작업의 텍스트로 활용되는 전통은 이미 수세기에 걸쳐 프랑스 조경계에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여러 세기 동안 항상 기본적인 텍스트가 존재했고 조경에 대해 체계적이고 미학적으로 접근하려는 태도가 은연중에 정원사나 조경가 사이에서 당연시되고 있었다. 조경은 원예와 달리 녹색 공간에 시스템을 구축하고 광범위하게 적용하는 작업이었다. 바로크 시대의 조경 이론서는 이에 대한 구체적인 예를 잘 보여주며, 무엇보다도 르네상스 양식이 프랑스에 전파되며 프랑스 고전주의 양식으로 변화되는 과정은 이 시대의 조경이 단순한 원예 작업이 아니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역사적인 기록들에 비추어보더라도 정원이란 용어에 항상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며 조경 작업을 새로운 차원으로 발전시키고자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과정이 장기간 축적되며 정원의 협소한 의미는 희박해지고 좀 더 광범위한 경관의 개념으로 자연스럽게 전이되었던 것이고, 마침내 20세기에 들어 정원을 생각할 때 경관에서부터 생각하는 폭넓은 사고가 가능해졌던 것이다. 구체적으로 20세기에 일어난 ‘정원에서 경관으로의’ 개념 전이를 보면 모더니즘에서 포스터모더니즘으로 진행한 시류를 읽을 수 있다. 정원에서 경관으로, 모더니즘에서 포스트모더니즘으로 포레스티에(J. C. N. Forestier)는 1908년 『대도시와 공원의 시스템』이란 책을 발표했고, 몇 년 후인 1913년 앙드레아 베라(André Vera)는 『새로운 정원』을 출간했다. 여기서 말하는 도시의 개념은 프랑스 대혁명 이후 개혁 정부가 들어선 후 그리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와 같은 이상적 도시에 영감을 받은 것이었고 공원의 개념에도 아테네 학당과 같은 철학자들의 사유 공간 또는 학문과 문화의 전당으로서의 개념이 포함되어 있었다. 여기에 18세기 말부터 도입되기 시작한 영국 풍경화식 정원양식에 따라 고전주의 조경을 벗어나 자연으로 돌아가는 낭만주의 조경이 파리를 중심으로 유행하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공원은 19세기에 일반화된 문화 현상이자 20세기를 시작하는 시점에서는 대중문화의 장으로서 중요한 사회 변화의 한 획이되었다. 이 시기의 공원 문화는 고대 그리스의 아크로폴리스를 모델로 신전이나 폐허, 그리스 신화등을 소재로 가져왔고 그런 점에서 유럽의 고대문명에서 문화적 아이덴티티를 추구하는 19세기 모더니즘과 맥락을 같이 하는 발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영국 풍경화식 정원과 19세기 프랑스공원의 큰 차이점은 포레스티에의 책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공원을 시스템으로 파악하는 과학적 태도, 즉 고대 정원과 고전에 바탕을 둔 모더니즘과는 조금 다른 태도였다. 이런 신학문적 태도는 20세기 이후 포스트모던 경관론을 전개하게 되는 프랑스 조경의 특징이 되기도 하는데, 동시에 또한 19세기의 전체적인 유럽 사회 분위기에 기인하기도 하는 것이다. 19세기는 무엇보다도 과학이 예술을 앞서나가며 예술을 선도하기 시작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19세기 예술의 신경향들, 즉 사실주의, 자연주의, 인상주의, 오르피즘, 표현주의, 기하하적 추상주의 등의 전개가 과학에 의해 새롭게 눈을 뜬 예술의 경향들이다. 포레스티에는 그 동안 발전되어 온 공원과 도시를 시스템으로 정의하고 시스템의 체계를 정리하며 조경학의 방향을 제시했던 것이다. 조경학은 따라서 정원을 기반으로 하는 모더니즘에서 시스템과 경관을 기반으로 하는 포스터모더니즘으로 전이되는 과정에서 출발한 것이다. 여기서 경관은 새로 등장하는 공원문화를 과학적으로 정의하면서 발전한 추상적 관념이었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공원과는 다른 것이었다. 대안적 경관론: 포스트모던 경관과 한국식 내외이원론內外二元論 이처럼 새롭게 조명되기 시작한 조경학은 그 동안 전혀 경험해보지 않았던 새로운 조경에 대한 욕구로 발전될 수밖에 없었고, 앙드레아 베라의 ‘새로운 정원’을 비롯해 1925년 가브리엘 게브레키앙(Gabriel Guevrekian)의 유명한 ‘물과 빛의 정원’과 ‘빌라 노아이유 정원’ 등이 결과적으로 빛을 보게 되는 것은 자연스런 문화적 맥락이었다. 새로운 시도는 계속 나타났다. 포레스티에는 설계 노트를 책으로 묶어 내며 새로운 정원에 대한 구상을 발표했고, 아쉴 뒤센느(Achille Duchêne)는 『미래의 정원』을 출간하였다. 도시화와 함께 찾아온 사회 변화는 이 시대에 이미 환경에 대한 인식을 불러일으켰다. 1930년 통과된 경관 지구 보존법이 그 예이다.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옛 유산이 훼손되고 특히 과거로부터 보존되어 오던 경관이 파괴되는 것을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다고 판단했던 근저에는 당시 풍경화가들의 역할이 컸고 또한 문화가 사회 전반에서 가장 중요한 화두로 등장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경관을 인식하기 시작했고 경관에 대해 토론하고 경관을 사랑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개발을 저지하고 경관을 보존한다는 사고는 경관에 대한 이런 인문학적 의식 없이는 불가능하다. 포스트모던 경관론이란 이러한 모든 새로운 인식의 체계를 포함한다. 정원은 모던의 갑갑한, 어쩌면 구시대의 먼지가 가득한 개념이지만, 경관은 포스트모던의 시원하게 열린 개념이다. 이런 점에서 닫힌 공간에 기반을 둔 중국의 원림이나 일본의 정원보다는 외원과 내원의 소통을 통해 계속 변화해가는 경관 개념, 즉 내외이원론內外二元論으로 접근했던 한국 정원이 훨씬 더 유럽의 포스트모던적 경관 인식 체계와 가깝다. 한국정원은 21세기 이후 등장하는 경관의 신개념들을 이미 포함했던 매우 추상적인 정원이다. 전통적인 시경이나 관축론에서부터 포스트모던 경관론의 추상성을 충분히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일종의 대안적 경관이 될 수 있다. 박정욱은 파리 소르본느 4대학에서 고고미술사로 박사 학위를 받고 미술평론으로 고암논문대상을 받은 후 이응노 미술관 소장으로 일하며 ‘세브르도자기’전, ‘이응노 롤랑 바르트’전 등을 기획했다. 프랑스 국립사회고등과학원(EHESS, Paris)의 자크 레나르 교수, 장 폴 아고스티, 지아니 부라토니, 장 샤를 피조 등과 함께 Ars & Locus 연구원을 창설하여 연구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아세트 출판그룹, 쿠베르탱 재단, 파리한국문화원, 뉴욕 모마미술관, 필라델피아 미술관, 파리 루브르 미술관, 파리 시 시테 데 쟈르 등과 함께 전시 기획과 도시설계, 아트 프로젝트 등을 유럽 및 미국, 한국 등지에서 수행해 왔다.
[에디토리얼] 아름다운 잡지
2015년 편집 계획서의 표지에 ‘아름다운 잡지’라는 여섯 글자를 크게 써놓았다. ‘아름다운 잡지’는 『환경과조경』의 비전인 ‘조경 문화의 발전소’를 시각적으로 구체화할 지향점이다. 내용과 형식이 적절하게 호응하는, 텍스트의 메시지와 이미지의 효과가 하나로 움직이는, 디자인이 콘텐츠를 지배하지 않고 콘텐츠의 본질을 드러내는 ‘아름다운 잡지’에 한걸음씩 다가서기 위해 늘 연구하고 실험할 것임을 약속드린다. 아울러 올해에는 조경 담론과 사회적이슈의 생생한 교점을 찾고, 도시설계의 이론적·실천적 쟁점을 포괄하며, 신진 조경가와 필자를 발굴하는 일에 지면을 아끼지 않을 계획임을 알려드린다. 엄동설한은 게으른 발걸음을 모처럼 도서관으로 향하게 한다. 잡지 편집에 참여한 이후로는 도서관에 가면 무조건 한 잡지의 십 년 치 과월호를 훑어보는 습관이 생겼다. 근사하게 말하자면 사례 연구다. 디자인, 라이프스타일, 패션, 여행, 시사, 교양에 이르기까지 한 시절을 풍미했던 전문지와 대중지의 옛 지면을 다시 읽는 일이 생각보다 재미있다. 이번 겨울에는 어린 시절 아버지 책장에서 구경했던 기억이 어렴풋한 『뿌리깊은나무』를 다시 만났다. 1976년 3월 고 한창기 선생이 창간했고 1980년 8월호를 마지막으로 전두환 신군부에 의해 강제 폐간된 『뿌리깊은나무』는 한글 전용주의와 가로쓰기 편집의 시초이기도 하지만, 우리의 ‘토박이 문화’를 발굴하고 ‘민중’을 동시대 문화의 전면에 올려놓음으로써 한국(인)의 정체성에 질문을 제기한 잡지라는 점에서 더 큰 의미를 지닌다. 이 잡지가 4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감동을 주는 것은 지향하는 바를 계몽이나 설교의 방식으로 강요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뿌리깊은나무』는 도덕적 우월감을 앞세우는 대신 세련된 포장으로 지향하는 알맹이의 값어치를 높이는 방식을 택했다. ‘편집’과 ‘디자인’이 지니는 힘을 우리나라에서는 처음 보여준, 아름다운 잡지의 한 모델이라 할 만한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강준만은 “한국 잡지사는 뿌리깊은나무 이전과 이후로 구분된다”고 평가하기까지 한다. “편집은 … 원고를 분석하고 비판하는 눈으로 미리 읽어 저자나 필자나 역자의 눈에는 너무 가까이 있어서 안 보였던 원고의 흠을 그들과 의논하여 가려내서, 독자가 참된 뜻에서 ‘편집된’ 책을 읽도록 거드는 일이어야 합니다”(창간 1주년 발행인의 글)라는 구절에서 여실히 나타나듯, 『뿌리깊은나무』는 편집의 기능과 편집자의 역할에 대한 신념을 지닌 잡지였다. 당대의 석학이나 문인의 글이더라도 철저하게 손질했다고 한다. 말처럼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뿌리깊은나무』는 또한 그래픽 디자인의 역사에서도 전설로 남아 있다. 감각적인 스타일만을 추구하는 잡지에 익숙한 요즘 세대가 보면 이 잡지가 아무것도 디자인하지 않은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너무나 단순하고 정연하여 건조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뿌리깊은나무』는 논리적인 시각적 원칙으로 책 전체의 체계를 세운, 즉 아트 디렉션을 처음 시도한 ‘아름다운 잡지’다. 수작업의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활판과 사진 식자의 허술한 자간을 해결하기 위해 인화지 위의 글자를 칼로 한자씩 도려내고 조정해서 다시 붙이는 방법으로 가독성을 높인 것이다. 컴퓨터 모니터와 마우스만으로 모든 디자인 작업이 쉽게 조정되는 오늘날에도 『뿌리깊은나무』처럼 유려한 시각적 질서를 갖춘 잡지를 찾기 쉽지 않다. ‘아름다운 잡지’라는 『환경과조경』의 화두는 보기예쁘거나 화려한 스타일에 대한 갈망이 아니다. 콘텐츠를 적절한 틀에 담아낼 수 있을 때 그 콘텐츠의 가치가 올라갈 수 있으며 그러할 때 이 작은 잡지가 조경의 문화적 성장에 기여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다. 이제는 도서관에 파묻힌 오래된 미래 『뿌리깊은나무』의 창간사 끝 부분을 옮겨 적는다. “잡지의 구실은 작으나마 창조이겠습니다. 창조는 역사의 물줄기에 휘말려들지 않고 도랑을 파기도하고 보를 막기도 해서 그 흐름에 조금이라도 새로움을 주는 일이겠습니다. … 새로움의 가지를 뻗는 잡지가 되고자 합니다.” 새해부터는 에디토리얼을 한 달씩 번갈아가며 쓰자고 남기준 편집장과 두 달째 실랑이를 벌였지만 결국 지고 말았다. 민망하게도, 또 과분하게도, 1년은 더 잡지 첫 쪽에서 독자 여러분을 만나야 할 운명이다. 이 신년호가 과연 아름다운지, 마지막까지 망설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