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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조경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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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매거진 가격 9,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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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조경사 자격제 신설을 위한 첫걸음을 떼며
‘한국조경헌장’(한국조경학회 제정, 2013년)은 “아름답고 유용하고 건강한 환경을 형성하기 위해 인문적‧과학적 지식을 응용하여 토지와 경관을 계획, 설계, 조성, 관리하는 문화적 행위”라고 조경을 정의한다. 하지만 전문 직능(profession)으로서 조경가의 직무와 역할을 적확하게 규정하는 법적 장치와 자격 제도는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 조경의 태동기인 1970년대부터 이미 기술사법에 따른 조경‘기술사’와 조경‘기사’ 자격이 시행되어왔지만, 조경(가)을 기술(자)의 틀에 가두는 기술사-기사 자격제는 조경설계의 업역을 제한하고 조경가의 위상을 불안정하게 방치했다. 건축의 ‘건축사’에 해당하는 적절한 자격 (또는 면허) 제도를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어쩌면 한국 조경계는 지난 50년을 허비했다고 볼 수도 있다. 전문 직능으로서의 조경과 학문 분과로서의 조경학이 이 땅에 도입된 지 50년, 비로소 조경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대중적 수요가 증가하고 일상의 조경 문화가 풍요로워지고 있지만 정작 조경계는 위기를 호소하는 역설적 상황에 처했다. 새로운 자격 제도를 통해 한국 조경의 난맥을 풀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줄여 말하자면, 건축의 건축사처럼 조경에도 조경사가 필요하다는 것. 물론 ‘조경사’가 자격과 면허를 갖춘 ‘랜드스케이프 아키텍트’에 해당하는 명칭으로 적합한지에 대해서는 여러 다른 견해가 있겠지만, 그건 다른 논제다. 새로운 조경사 자격제는 조경의 전문성과 위상 재정립, 조경설계 업역의 보장과 확장, 합리적 설계 대가 실현, 조경설계 인력 양성, 대학 조경 교육의 정상화 등에 촉매로 작용하면서 한국 조경의 다음 50년을 이끄는 중요한 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때마침 지난 5월 13일 국토교통부가 고시한 ‘제2차 조경진흥기본계획’에 자격제 관련 내용이 들어가 ‘조경사’ 신설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번 계획의 추진 전략 중 하나인 ‘조경의 질 제고를 위한 조경 산업 기반 강화’ 항목에 ‘조경설계 자격 및 면허 제도’가 포함된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새로운 자격 제도를 모색하는 토론의 첫걸음을 떼고자 이번 호 특집 “조경설계 자격제의 문제와 대안”을 꾸렸다. 이상수(스튜디오201 소장)는 조경설계 스타트업의 장벽, 엔지니어링사업자 면허의 현황과 실태, 조경기술사사무소 자격 취득의 난맥 등에 초점을 두고 현행 자격 제도의 한계와 문제를 짚는다. 안세헌(가원조경 대표)은 조경설계업 시장의 난제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자격제 도입의 필요성과 추진 방향을 살핀다. 이윤주(엘피스케이프 소장)는 영국과 독일의 조경사 제도에 대한 정보를 소개하는데, 특히 현지의 조경사 인터뷰를 바탕으로 조경사 취득 절차를 상세하게 다룬다. 이해인(HLD 소장)은 미국의 조경사 제도를 명칭, 자격, 평가, 권한, 관리 등 다각적 측면에서 분석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한국과 미국의 제도를 비교함으로써 현행 한국 조경설계 자격 제도의 문제점을 도출하고 개선점을 제시한다. 이남진(바이런 소장)은 조경사 자격 신설을 위한 관련 법규를 살피고 ‘건축사법’과 같은 위상을 갖는 별도의 법령을 제정하는 방안을 검토한다. 특히 건축사법의 구조를 참고하여 총칙, 조경사의 자격, 조경사 자격시험, 조경사의 업무, 조경사무소, 조경사협회로 구성된 (가칭)‘조경사법’의 체계와 내용을 제안한다. 본지 발행인 박명권이 사회를 맡고 김선미(건화엔지니어링 부사장), 김태경(강릉원주대 교수), 서영애(기술사사무소 이수 대표), 이영주(국토교통부 사무관), 이정섭(국토교통부 주무관)이 참여한 좌담회에서는 조경사 제도의 필요성, 명칭과 위상, 조경설계사무소의 지속가능한 운영, 설계비와 계약서, 정책적 지원, 사회적 공감대 형성 등 조경사 신설과 관련된 다양한 의견이 펼쳐졌다. 새로운 자격 제도의 필요성은 이미 오래전부터 제기되곤 했지만 단발성 논의에 그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조경사 자격제에 대한 조경계 내부의 공감뿐 아니라 정부의 정책적 환경이 형성되고 있는 최근 상황을 어영부영 흘려보내서는 안 된다. 조경계 내부의 공감과 사회적 동의를 얻기 위해서는 제도의 체계와 내용을 뒷받침할 데이터 축적과 기초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 한국조경협회와 한국조경설계업협의회는 물론 한국조경학회가 함께 참여하는 기획‧연구팀을 가동할 필요가 있다. 아쉽게도 이번 특집에 포함하지 못했지만, 조경사 자격제와 하나로 연동될 (가칭)‘조경교육인증제’에 대한 연구와 공론화도 필수적이다. 전문 교육은 전문 자격의 필요조건이다. [email protected]
[풍경 감각] 창밖 풍경이 환해지고 있다
말하는 게 늘 부담스러웠다. 말투가 ‘여자 같다’며 놀림받은 어린 시절 기억을 떨쳐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씩씩하게 말을 잘하는 아이였다면 ‘여자 같다’의 의미가 무엇인지, 그게 놀릴 만한 이유인지를 따졌겠지만 그러지 못했다. 우습게도 이런 일들을 오랫동안 잊지 못해서, 발표를 최대한 피했고 꼭 해야 할 경우엔 훌륭하게 발표하는 것보다 사람들의 표정을 보지 않는 데 큰 노력을 들였다. 남들 앞에서 목소리 내기를 꺼려 왔음에도 라디오 출연 섭외를 승낙한 건 오래 전 친구가 했던 말 때문이었다. 언젠가 그 친구와 택시를 탄 적이 있다. 내가 행선지를 이야기했더니 택시 기사가 대뜸 사내자식 목소리가 계집애 같다며 웃었다. 인사보다도 먼저 훅 들어온 말에 제대로 항변도 못했는데 친구가 두둔해주었다. 다정하고 친절한 거라고. 그래서 좋은 거라고. (이 글에 쓰기 민망할 정도로) 칭찬을 쏟아내자 택시 기사는 당황했고, 난 조금 어리둥절했던 것 같다. 격주 목요일 새벽마다 라디오 방송을 하러 간다. 스튜디오에 앉은 뒤 PD가 이제 시작한다는 사인을 보내면 ‘목소리를 한 톤 낮춰 볼까?’ 생각하다가 그냥 평소처럼 DJ에게 인사를 건넨다. “2주 만에 뵈어요. 잘 지내셨죠?” 그 친구가 떠오르는 사연을 방송작가가 프롬프터에 띄워 줄 때도 있다. ‘조곤조곤 친절하게 설명해 주셔서 좋아요.’ 문득 거리 어딘가를 달리고 있을 그 택시에도 이 목소리가 가닿고 있을지 궁금하다. 창밖 풍경이 환해지고 있다.
광나루 모두의 놀이터
지명을 ‘당했다’ 어느 날 갑자기 현상설계에 참여하라는 지명을 당했다. 조경작업소 울이 인정받은 듯해 기뻤지만, 현상설계 공모와는 상관없이 살아왔기에 당황스럽기도 했다. 우선 개인적으로 현상설계 과정을 즐기지 못한다. 심사위원의 성향은 어떠하고 어떻게 평가할지, 다른 참여자들은 어떻게 접근할지 추측하는 일은 보이지 않는 상대와 체스를 두는 것과 같다. 상당히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결과를 기다릴 때는 과도하게 예민해져서, 떨어지고 나서 갖는 자평은 내 탓이나 남 탓으로 흘러 생산적이지 못하다. 그래서 웬만하면 현상설계는 피하려한다. 게다가 상상어린이공원 현상설계 당선으로 조경작업소 울을 시작할 수 있었지만, 그 이후로는 단독으로 현상설계에 참여한 적이 없어 자신이 없었다. 패널을 어떻게 구성해야 할지, 요즘의 그래픽 경향은 어떠한지 등 현상설계에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당선은커녕 망신이나 당하지 않을까 걱정됐다. 제출 전까지 영광스러움을 받아들일지 거절할지 사이에서 줄타기했다. 동료들과 어깨동무하며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생긴 어떤 흥이 없었다면 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열심히 준비하지 않은 건 아니다. 지명해준 사람과 함께 참여하는 사람에 대한 예의로, 언제라도 엎을 마음의 준비를 하면서 도 열심히 임했다. 적극적으로 주변의 자문도 구했다. 특히 스튜디오101의 김현민 소장의 도움이 컸다.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패를 다 깠다 심사위원의 성향이나 다른 참가자들의 설계 특성 등 다른 것을 신경 쓰지 않고 조경작업소 울의 노하우를 총동원해 ‘재미있는 놀이터’를 만드는 것으로 방향을 정했다. 장소성 반영에 있어서는 ‘한강’, ‘광나루’라는 단어를 만지작거리다, 대상지의 아주 기초적인 특성인 ‘넓게 트인 곳’에만 집중했다. 동네의 작은 놀이터에서 실컷 달리고, 오르고, 매달리기를 하지 못하는 어린이들에게 넓게 트인 장소는 그 자체로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확신하지 않으면 시도하지 않는 성향이 있어서 혁신적 접근을 잘 하지 않는다. 조심조심 실험하고 확인한 뒤, 확신이 생기면 설계 언어로 채택하고 조금씩 응용하면서 반복적으로 사용한다. 그렇게 쌓인 설계 언어를, 우리가 가진 패를 이번 현상에서 다 깠다. 조경작업소 울이 시도하는 실험의 중심은 수평적으로는 길게 이어지고, 수직적으로는 높아서 경험이 끊이지 않고 중력의 저항이 주는 짜릿함이 있는 놀이터, 장애 어린이와 비장애 어린이가 함께 노는 통합놀이터 구현이다. 어린이들에게 원하는 놀이터를 그려보라고 하면 태양보다 높은 구조물에서 시작하는 미끄럼틀을 그리고, 원하는 놀이터를 만들어보라고 하면 모든 놀이 요소가 끝없이 이어진다. 동네 놀이터에서 놀이는 뚝뚝 끊기고 모험하고 싶은 마음은 거절당하기 때문일 것이다. 통합놀이터 조성을 주장해오고 여러 시민 활동을 해오고 있는 터라 우리가 디자인하는 놀이터에서는 조금이라도 통합놀이터가 추구하는 가치를 구현하고자 한다. 잇고 모으기, 지형과 구조물의 결합, 모래놀이 공간 놀이터 디자인에서 동선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어린이들의 놀이 관찰 결과를 근거로 어린이들이 놀이터 입구에서 제일 처음 어디로 달려갈 것인지, 어떻게 동선이 연결될지 끊임없이 상상하며 가능한 한 동선이 끊이지 않고 연결되도록 한다. 또 어린이들은 외진 곳이나 다른 어린이들을 등지는 곳에서는 잘 놀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놀이 유발 요소를 배치한다. 어린이들은 그네를 좋아하지만 구석진 공간에 놓인 그네에서는 잘 놀지 않는다. 나도 다른 어린이들을 봐야 하고 다른 어린이들도 나를 봐야 한다. 또 어린이들은 어른들의 눈에는 산만하다 싶을 정도로 이렇게 놀다가 저렇게 놀기를 반복한다. 언덕에서 오르기를 하다 친구들이 모여 있는 미끄럼틀로 바로 옮긴다. 그래서 놀이 요소들은 가능한 모여 있고 서로 마주 봐야 한다. 대상지가 워낙 넓고 이용 밀도가 높을 거라 예상되어 이용을 분산시키되 외진 공간이 없고, 서로 등지지 않도록 큰 중심, 작은 중심을 두고 중심에서 놀이가 시작되어 퍼져나가도록 했다. 지형을 올려 언덕을 만들고 가장 높은 곳에서 놀이 구조물과 연결하는 설계 언어는 조경작업소 울의 시그니처다. 그간 통합놀이터를 디자인하면서 발전시켰다. 카브(Carve)가 디자인한 네덜란드 헤이그의 멜리스 스토크 파크(Melis Stokepark) 놀이터에서 힌트를 얻었다. 이 놀이터는 링 형태의 콘크리트 언덕으로 경사로를 만들고 경사로와 바닥을 다양한 각도의 경사면으로 연결했다. 휠체어를 타는 어린이들은 이 경사로를 한 바퀴 순환할 수 있고 다양한 각도의 경사면은 도전 의식을 불러일으킨다. 오늘은 완만한 경사면에서 오르기를 했다면 한 달 후에는 보다 가파른 경사면에서 오르기를 시도할 수 있다. 그런데 일반적인 한국 놀이터는 면적이 작아 멜리스 스토크 파크의 놀이터처럼 언덕 구조물을 높게 만들기 어렵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고안한 것이 언덕을 높은 놀이 구조물과 결합하는 방식이다. 언덕으로는 휠체어 이용 어린이들의 접근성과 이동성을 높이고, 놀이 구조물에서는 높이 오르고자 하는 어린이들의 욕구를 수용하는 것이다. 광나루 모두의 놀이터에서는 언덕의 경사로와 놀이 구조물을 놀이 네트로 연결했다. 놀이 구조물로 집중될 수 있는 이용을 분산시키려는 의도도 있었다. 다른 하나는 장애 어린이와 비장애 어린이가 함께 마주 보면서 놀 수 있는 공간이다. 휠체어를 탄 어린이에게는 모래테이블이 되고 그렇지 않은 어린이들에게는 모래밭이 되도록 디자인했다. 반원형의 구조물을 높여서 휠체어를 탄 어린이가 직선 구간에서는 모래놀이 공간을 모래테이블 삼아 놀 수 있고, 곡선을 따라서는 경사로를 두어 어린이들이 경사로를 따라 올라가 모래 놀이 공간에 접근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설계 언어는 대만과 스웨덴의 놀이터를 답사하며 힌트를 얻어 만든 것이다. 통합놀이터를 고민하는 이들 사이에 암암리에 공유되고 있는 설계 언어인 듯하다. 모래에 대한 부정적 반응이 많고 꽤 넓은 면적이 필요해 시도하지 못하다가 현상설계 바로 전 한 초등학교 외부 공간에 조성할 수 있었다. 이때 얻은 디테일에 대한 노하우를 모두의 놀이터에 적용했다. 설계 변경 그네 공간의 탄성 고무칩 포장뿐만 아니라 현상설계 당선 후 협의 과정과 실시설계를 거치며 빠진 것들, 수정된 것들이 조금 있다. 현상설계를 기획하고 수행한 곳과 공사를 집행하고 관리하는 곳이 달라 소통의 과정이 쉽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공원관리청과 감정적으로 각을 세우는 일도 있었다.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애쓰다 보니 생기는 일이다. 모두의 미끄럼틀이라는 이름으로 미끄럼틀 없이 어린이들이 여러 방향에서 자유자재로 미끄럼을 즐길 수 있는 언덕을 제안했다. 표면을 강화 콘크리트로 처리해 미끄럼을 탈 수 있도록 한 것인데 위험하다는 공원 관리청의 지적이 반복되다 결국은 시공 단계에서 잔디밭으로 변경됐다. 일본 놀이터를 답사하며 여러 곳에서 보았기에 확신했었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설계공모에서 제안했던 그네 공간을 야외 웨딩 공간으로 변경하자는 요구가 있어서 그네 공간을 옮기면서 그네의 수가 줄었다. 입구에 여름철 안개가 나오는 기둥을 여럿 세워 웰컴 놀이 공간을 만들었는데, 공사비 부족으로 빠졌다. 그 밖에 공사비 부족으로 휴식 공간도 변경이 있었다. 이용자의 반응과 놀이터 언어의 확장 광나루 모두의 놀이터는 1호 거점형 놀이터로 2022년 5월 5일 어린이날에 맞추어 개장했다. 서울시의 홍보도 한몫해 이용자가 많았다. 개장 후 열흘간 오천여 명이 다녀갔다고 한다. 블로그를 찾아보니 이용자들의 평가도 나쁘지 않았다. 미끄럼틀이 높아서 좋다는 평, 그물이 새롭다는 평, 모래 공간이 넓고 모래 공간에 물이 있어서 좋다는 평, 마음껏 뛸 수 있어서 좋다는 평이 주를 이루었고 가볼만 한 곳으로 추천하고 있었다. 현장에서도 긍정적 반응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물놀이대를 해먹 삼아 노는 어린이, 여러 번의 시도 끝에 그물놀이대 기둥 끝에 서는 어린이, 처음 만났지만 협력해서 모래밭에 물길을 내는 어린이, 마냥 오르락내리락 뛰는 어린이 등 예기치 못한 모습도 발견할 수 있었다. 반응이 좋아서인지 신문 기사가 많이 나왔다. 기사 내용에는 ‘정해진 형식이 없이’, ‘폭넓은 난이도’, ‘찾을 때마다 경험 쌓기’, ‘나이, 신체 발달 정도, 장애 유무와 관계없이’, ‘연령별 흥미 요소’, ‘행동 유도’ 같은 말이 담겨 있었다. 이용자들의 반응이 긍정적인 것도 기쁨이지만 이런 언어가 대중들에게 전달되는 것도 보람이 된다. ‘어린이가 디자인했다’, ‘다양한 놀이 기구가 있다’, 반대로 ‘놀이 기구 없는 놀이터’, ‘위험한 놀이터’ 같은 단편적이고 선정적 언어가 아니라 놀이의 본질을 담으면서도 실천적인 언어가 더 많이 회자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놀이터에 대한 대중적 인식이 높아지고, 궁극적으로는 놀이터의 질적 발전으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놀이도시를 꿈꾸며 김연금·기아미 인터뷰 통합놀이터 분야에 발을 들인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처음 관심을 가진 계기가 궁금하다. 그때와 지금 달라진 점이 있다면? 김연금(이하 연) 오래전부터 걷고싶은도시만들기시민연대(이하 도시연대)와 일을 많이 했었고, 도시연대는 장애물없는생활환경시민연대(이하 무장애연대)와 함께 장애 어린이의 놀이에 관심을 두고 연구를 해왔다. 그러다 우연한 계기로 2015년에 대웅제약과 아름다운재단의 후원을 받은 ‘무장애통합놀이터 지원사업’에 참여하면서 서울어린이대공원 내에 꿈틀꿈틀 놀이터를 조성하게 됐다. 배융호 전 사무총장(무장애연대)이 통합놀이터란 단어를 처음 쓰고 개념을 확립시켰지만 당시 연구 자료나 사회 전반적인 인식이 부족한 상태여서 스스로 공부를 많이 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개념이나 이론보다는 실제 설계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부분을 많이 탐구했다. 그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장애 어린이의 놀 권리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고, 통합놀이터라는 단어도 일반 명사로 쓰이고 있다. 통합놀이터의 경우 장애 어린이 부모와 비장애 어린이 부모 사이에서 갈등이 많이 발생할 것 같은데, 이들의 의견을 어떻게 조율하나? 연 갈등이 실질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장애인 시설이라는 점 때문에 통합놀이터 조성에 대한 우려를 표시하는 지자체가 더러 있었다. 하지만 현장에서 보면 주민들이 무조건 통합놀이터라고 해서 반대하는 건 아니다. 다만 장애 어린이 부모 사이에서 요구가 다른 경우는 있다. 휠체어를 타는 어린이, 몸을 가누기 힘든 어린이 등 접근성 중심으로 놀이터를 구성하다 보니 발달장애, 시각 장애나 청각 장애 어린이를 둔 부모의 경우, 본인의 자녀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다고 판단하기도 한다. 장애의 유형은 다양하지만, 아직 통합놀이터가 모두를 아우르고 있지 못한다. 놀이성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모든 장애 유형에 대응하기 어려운 점도 있다. 현재의 한계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는 여러 유형의 장애에 초점을 맞춘 다양한 통합놀이터가 등장하면 좋겠다. 3년 전 조성한 홍박공원 통합놀이터(『환경과조경』 2021년 3월호)와 비교했을 때, 달라졌거나 발전된 설계 요소가 있나? 기아미(이하 기) 둘 다 기본적으로 접근성을 최우선으로 했다. 지형을 올려 놀이 구조물과 연결하는 방식은 그때와 동일하다. 다만 홍박공원 통합놀이터는 공간이 작아 휠체어 이용자의 이동과 시설물 접근에 대한 고민이 많이 필요했다. 지형과 놀이 구조물을 정교하게 결합해 해결하려 했다. 큰 면적의 놀이터는 모두의 놀이터가 세 번째다. 2018년 뚝섬 한강공원 강가햇살놀이터 프로젝트 당시 큰 면적의 놀이터는 처음이라 어떻게 구현할지 고민이 참 많았다. 다음에 진행한 성동구 어린이꿈공원도 역시 면적이 컸지만, 앞선 경험 덕분에 좀 더 수월하게 진행했고 넓은 놀이터에 대한 감을 조금 익힐 수 있었다. 그때 깨달은 점을 광나루 모두의 놀이터(이하 모두의 놀이터) 에 반영하고자 했다. 면적이 넓은 만큼 난이도와 놀이 요소가 다양해질 수 있도록 만들었다. 연 사실 모두의 놀이터에서 대단한 설계 언어를 사용한 것은 아니다. 홍박공원 통합놀이터의 요소를 거의 다 적용했다. 다만 공간을 넓게 활용하며 뛸 수 있고 높이 올라갈 수 있는 등 난이도의 스펙트럼이 촘촘하고 넓어졌다. 장소가 광나루인 만큼 한강의 역사성을 드러내는 설계를 하려다가 그만뒀다. 어린이들에게는 한강의 역사를 아는 것보다 실컷 뛰어노는 게 최고다. 과거의 역사를 들여다보는 대신 드넓은 공간에서 맘껏 뛰어다니는 경험을 만들어 가는 것이 어린이들에게 더 어울리는 장소성이 아닐까. 놀이터 조성 시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사항이 있다면무엇인가? 반대로 가급적 쓰지 않는 요소가 있다면? 연 어린이의 이동과 놀이의 형태를 먼저 고려한다. 어린이들을 관찰할 때, 놀이터에 온 어린이들이 가장 처음 어디로 달려가는지, 어디서 무엇을 하고 노는지, 다른 놀이로 어떻게 넘어가는지 살펴본다. 가급적 기능이 정해진 놀이 기구는 안 쓰려고 한다. 예를 들어 시소는 어린이들이 응용할 수 없다. 어린이가 기계랑 노는 것이다. 그네나 트램펄린과 같이 몇 명이 점유하면 다른 어린이들은 기다려야 하는 놀이 시설도 안 놓으려고 한다. 하지만 어린이들이 공간에 익숙해지고 응용력이 생기기 전까지는 그네, 트램펄린과 같이 빠른 시간 내에 흥미를 유발하는 기구가 필요하다. 미끄럼틀, 시소, 그네는 놀이터의 필수 요건으로 이야기되다보니 어쩔 수 없이 놓아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 몇 년전 놀이터에 대한 담론이 적극적으로 생겨날 때는 이런 놀이 기구가 뻔한 놀이터를 만들어내는 원인으로 지목됐다. 부정적인 반응이 많았던 탓에 놓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 있었지만, 경험이 거듭되면서 적절한 타협점을 찾아가는 중이다. 조성 후 새롭게 발견한 어린이들의 활동이나 놀이가 있나? 기 모두의 놀이터가 조성된 뒤 딸과 함께 갔는데, 예상과 다르게 노는 모습을 보았다. 모두의 그물놀이에 그물을 이어주는 기둥이 있는데, 그 기둥을 목표 삼아서 올라가더라. 초반에는 올라갈까 말까 하다가, 소심하게 한 발짝 올라가고, 쭈그려 앉아보고, 괜찮으니 올라가 서 보고, 결국엔 기둥을 거점 삼아 오가며 새로운 놀이를 만들어나갔다. 의도치 않은 발견이었다. 어린이들은 뛰는 걸 진짜 좋아하는 것 같다. 접근성을 높이려고 만든 언덕을 수없이 오르락내리락하는 어린이들을 많이 봤다. 열심히 뛰어노는 딸에게 달리기를 좋아하는 이유를 물어봤더니 뛰고 나서 심장이 쿵덕쿵덕하는 느낌이 좋다고 하더라. 연 고등학생인 조카에게 ‘어린이들이 무작정 뛰는 이유가 무엇일까’라고 물으니, ‘뛰기 시작한 지 얼마 안돼서 신기한 걸까’라고 답했다. 그럴 수 있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어린이들이 맘껏 뛸 수 있는 공간이 그리 많지 않다. 모두의 놀이터에서는 맘껏 뛰어놀라는 마음으로 언덕길을 만들었는데 어린이들이 알아주었다. 모래놀이 공간에서 물을 쓸 수 있게 했는데, 그곳에서 처음 만난 어린이들끼리 서로 협력해 물길을 만들더라. 놀이터 설계 과정에서 어린이나 주민이 참여하는 워크숍을 중요하게 여기는 걸로 알고 있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워크숍이 비전문적 의견을 지나치게 많이 수집해 오히려 설계의 틀을 해치는 요소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기 조경작업소 울(이하 울)에서 주민 참여 워크숍을 처음 접했는데, 시간이 거듭될수록 설계 시 꼭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흔히 예술은 내가 하고 싶은 것과 표현하고 싶은 것을 하는 장르이고, 디자인은 대중의 생각을 반영하고 대중의 이용에 대해서 고민하는 장르라고 한다. 조경가도 디자이너로서 대중의 얘기를 듣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 과정 속에서 논리 구조가 잡힌다. 이용자의 패턴을 파악하고, 공간을 어떤 요소로 활용하고, 누가 쓰는지에 대해 알려면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과정이 필수다. 누군가를 설득할 때 워크숍의 내용이 합리적이고 정확한 근거가 될 수 있다. 발주처의 의도도 고려해야 하지만, 설계하는 입장에서 이용자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의견을 다 수용하기는 힘들다. 적절한 논의 과정을 통해 다양한 의견을 하나의 방향 으로 모아가는 과정도 필요하다. 연 워크숍 경험이 놀이터를 만들 때 큰 밑거름이 됐다. 물론 주민의 요구가 굉장히 다양해서 그 의견을 조율하고 새로운 시도를 설득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려 꺼리는 이들도 있지만 필요한 과정이라고 본다. 예전부터 주민 참여 커뮤니티 디자인이 중요하다고 주장해왔다. 디자이너가 이용 단계가 아닌 만드는 단계에서 설계안을 공개하는 것이 작품을 훼손시키는 일일까. 궁극적으로 공개를 목표로 하는 공공 공간이라면 만드는 단계에서 설계안을 공개하는 게 왜 어려운 일일까. 사회 적 인식을 바꾸고 서로 합의점을 만들어 나갈 필요가 있다. 우리의 설계를 남들이 이해하지 못 할 수도 있다. 주민들의 고정 관념이나 익숙한 경험 때문에 설계자의 의도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도 있다. 주민들이 받아들여서 실현했지만 의도한 대로 주민들에게 수용이 안되는 경우도 있다. 워크숍은 이러한 시행착오를 배우는 과정이다. 워크숍을 하다 보면 어린이들이 원하는 놀이터를 발견할 수 있을 것 같다. 기 현장에서 만난 어린이들이 원하는 놀이터에는 공통점이 있다. 신나게 뛸 수 있고 모험을 즐길 수 있는 놀이터다. 공놀이를 할 수 있고 자전거를 탈 수 있는 놀이터도 어린이들이 원하는 놀이터다. 이런 욕구를 반영하려고 한다. 하나의 요소로 어린이들의 재미를 충족시키기보다는 언제든 뛰어다닐 수 있고, 올라갈 수 있고, 끊기지 않고 놀이가 이어지게 하려고 노력한다. 연 어린이들은 무엇이든 수직적인 것에 기어오른다. 오르고 난 뒤에는 뛰어내리거나 시원하게 미끄럼을 타려한다. 또 모든 공중에 있는 것에는 매달려야 하고 모든 구멍은 통과해야 성이 찬다. 움직이는 것은 정지시키려하고 정지된 것은 움직이게 하려 한다. 이러한 기본적 요구를 놀이터에서 충족시켜줘야 한다. 또한 재미가 중요하다. 어린이들은 올라갈 때 화끈함을 느끼지 못하면 재미없어 한다. 미끄럼틀 타는 데 스릴이 없으면 안된다. 매일 왔을 때 다른 경험을 하게 해주는 요소도 있어야 한다. 오늘은 60cm 정도를 올라갔다면, 내일은 더 높이 올라가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양한 난이도의 구조물을 체험할 수 있게 공간을 만든다. 놀이터 설계 시 설문과 관찰을 많이 한다고 들었다. 연령과 특성이 다른 어린이들과 커뮤니케이션하는 요령이 있다면? 연 놀이터 워크숍을 많이 하는데 어린이들에게 원하는 놀이터 무엇이고 어떤 놀이터가 재밌는지 물어보면 ‘높은 미끄럼틀 넣어주세요’, ‘그네 탈 때 재밌어요’와 같이 대답한다. 어린이 각자가 가진 경험과 언어의 한계로 인해 시설물 중심의 답변이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물어볼 때 시설물이 아닌 경험 중심으로 답할 수 있도록 질문을 다듬는다. ‘무엇이 좋았니?’ 대신 ‘어떻게 놀았어?’, ‘어떻게 놀 때 재미있었어?’라고 물어본다. 원하는 놀이터에 대한 이미지가 궁금할 때도 ‘어떻게 놀고 싶어?’라고 질문을 던진다. 어린이들이 원하는 감정과 감각을 끌어내기 위해 의성어나 의태어도 많이 쓴다. 어린이한테 ‘그물놀이 넣을까?’, ‘미끄럼틀 넣을까?’가 아니라 ‘원하는 감각이나 느낌이 뭐야?’라고 물으며 다양한 의태어와 의성어를 제시하면, 점프점프, 아슬아슬 같이 역동적이고 위험을 동반하는 언어를 선택한다 좋은 놀이터를 판단하는 기준이 생겼을 것 같다. 기 고민이 보이는 놀이터가 좋은 놀이터라고 생각한다. 그저 단순히 시설물을 나열하는 게 아니라. 설계자 나름대로 고민한 흔적이 있어야 한다. 어린이 눈높이에서 어린이의 놀이를 들여다보고, 어린이들을 놀이터에서 어떻게 뛰게 만들지, 어떻게 재미있게 놀게 만들지 늘 고민할 필요가 있다. 당장 이용자의 요구를 완벽하게 맞추지 못한다 하더라도 계속해서 고민하고 여러 피드백을 통해 발전시켜 나가다 보면 놀 권리의 차원에서, 도시적·사회적 차원에서 좋은 놀이터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연 좋은 놀이터의 기준은 시대 흐름에 따라 바뀔 것이다. 지금 좋은 놀이터와 10년 뒤에 좋은 놀이터는 또 다를 것이다. 앞으로는 환경 문제가 더 중요해질 것이다. 재료도 자연 친화적으로 바꾸고 자연적 감수성을 키워주는 놀이터로 만들어 나갈 필요가 있다. 고무 포장을 대체할 재료가 나오고, 놀이 환경이 다양해지면 좋을 것 같다. 다만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어린이 놀이에 대한 이해와 어린이에 대한 관심은 기본적으로 필요하다. 놀이터 전문가로서 이루고 싶은 목표나 꿈이 있나? 기 놀이터라고 정확하게 구획된 공간도 중요하지만, 어린이들의 발길이 닿는 모든 곳에서 놀이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 흔히 우리가 앉을 때 사용하는 의자를 갖고도 어린이들은 놀 수 있다. 이처럼 어린이 친화 공간이라고 해서 놀이터만 만드는 게 아니라, 어린이의 놀이를 고민하고 어린이들이 맘껏 뛰어놀 수 있는 다양한 공간이 생겨야 한다. 더불어 울의 일원으로서 우리만의 결을 만들어 나가고 싶다. 우리가 설계한 여러 놀이터를 보고 같은 회사에서 한 것 같다고 소감을 남긴 블로그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놀이터 설계를 많이 하다 보니 우리만의 스타일이 생겼고, 그게 다른 이들에게도 느껴지는 것 같다. 물론 이러한 결을 언젠가 깨야 할 때도 오겠지만, 우리만의 정체성, 우리만의 결을 만들어가고 싶다. 연 놀이 공간을 도시 차원으로 확장할 필요가 있다. 이번에 출간한 책 『놀이, 놀이터, 놀이도시』(2022)에서도 다채로운 놀이도시 사례를 소개하며 놀이도시의 필요성에 관해 다뤘다. 어린이들에게 놀이터도 중요하지만, 결국 맘껏 놀 수 있는 좋은 환경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여러 단위에서 놀이환경계획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국가, 중앙정부, 지방정부 등 각각의 단위에서 고유한 놀이 철학을 담아 포괄적이고 체계적인 놀이환경계획을 세워야 한다. 단편적으로 놀이터 조성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도시 설계 차원에서 어린이들이 일상생활에서 좋은 놀이 환경을 만나게 해야 한다. 좋은 놀이터뿐만 아니라 좋은 놀이 환경 구축과 관련된 일을 해보고 싶다. 글 김연금 조경작업소 울 소장 사진 유청오 프로젝트 총괄 및 책임디자이너 김연금 조경 설계 조경작업소 울(김연금, 기아미, 신정우, 조성빈, 김다슬, 심규희) 조경 시공 티시스 모두의 그물놀이 스페이스톡 모두의 그네, 철봉, 미끄럼틀, 암벽오르기, 줄오르기 예건 발주 서울시 위치 서울시 강동구 천호동 351-1 일대 면적 5,777.23m2 완공 2022. 5. 조경작업소 울은 설계, 연구, 공유의 선순환 관계를 지향한다. 커뮤니티 디자인을 작업의 중심으로 삼고 있으며, 소외된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자 노력한다. 다양한 사람과의 네트워킹을 지향하며, 어린이 친화 도시, 걷고 싶은 도시, 살기 좋은 도시를 위한 실험을 기획하고 실천하고 있다. 김연금은 약수동에서 커뮤니티 디자인을 지향하는 조경작업소 울을 운영하고 있다. 처음에는 커뮤니티 공간으로서 어린이공원에 관심을 가졌으나, 조금씩 놀이, 어린이, 장애인으로 관심의 초점이 옮겨지고 있다. 어린이, 장애인 공간은 결국 인권의 문제임을 매일매일 깨닫고 있다. 기아미는 2013년부터 조경작업소 울에서 주민과 어린이를 만나며 조경 공간을 설계하고 있다. 디자인과 주민 의견, 개인과 공공, 공간과 활동의 균형을 중요시한다. 안전과 모험의 사이에서 모든 어린이가 즐거운 놀이 공간을 만드는 일은 어렵지만 의미 있는 일이다. 공간의 규모와 관계없이 가치 있는 공간을 설계하고자 한다.
조경설계 자격제의 문제와 대안
현행 조경설계 자격제의 한계와 문제_이상수 새로운 조경설계 자격제 도입의 필요성_안세헌 영국과 독일의 조경사 제도_이윤주 미국의 조경사 제도_이해인 조경사 자격 제도 제안_이남진 좌담: 미래 세대를 위한 조경사 제도를 전망하다_박명권‧김선미‧김태경‧서영애‧이영주‧이정섭 조경 분야는 조경기사와 조경기술사 중심의 자격 제도 속에서 난맥을 겪여왔다. 더불어 조경기본법 없이 건설기술진흥법과 엔지니어링산업진흥법에 의거해 수행되는 여러 사업에서 조경설계가는 여러 한계에 부딪치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지난 5월 13일 국토교통부는 ‘제2차 조경진흥기본계획’을 고시하면서 ‘조경설계 자격 및 면허 제도’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조경사 제도(가칭) 추진을 위한 연구 및 조경사 제도의 효과적 운영 관리와 자문을 위한 체계를 마련하고, 조경사 법령 제정에 따라 건설산업 및 설계업 등록 관련 제도에 대한 제도 개선 협의를 병행하며, 기존 조경기술사 개편안을 검토할 예정이다. 이에 앞서 본지는 새로운 조경사 제도를 모색하는 논의의 장을 열고자 한다.진행 김모아, 금민수, 이수민 디자인 팽선민
[조경설계 자격제의 문제와 대안] 현행 조경설계 자격제의 한계와 문제
조경설계 스타트업과 면허 대부분의 조경설계 스타트업은 비자발적 창업에 기인한다. 즉 조경설계 면허에 대한 준비가 부족한 상황에서 창업하는 것이다. 면허 없이 개인사업자로 영업하면서 다른 조경설계사무소, 엔지니어링 업체, 건축설계사무소의 하도급(?) 업체로 활동한다. 공공 발주 용역의 경우, 지인 혹은 발주처의 소개로 면허를 빌려 용역을 진행하는 게 일반적이다. 용역의 규모는 대개 2,000만 원 이하의 수의계약 범위에 있으며 대부분은 1,000만 원 내외다. 면허 대여료는 5~15% 정도다. 건축 하도급의 경우, 조경설계비는 건축 용역비의 5% 내외로, 건축의 외주 비율이 35% 내외임을 감안하면 사실상 건축이 1개의 용역을 진행할 때 조경은 12개의 용역을 진행해야 한다는 산술 계산이 나온다. 그렇기에 조경설계 창업은 쉽지 않은 도전이다. 조경설계 스타트업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한두 명의 소수 인원으로 시작하며, 연간 매출이 1억 원 내외다. 전체 매출 중 공공 발주 용역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아 면허를 갖추는 게 필수라기보다는 선택에 가깝다. 정상적으로 면허를 갖추기 위해서는 조경기술사를 취득하거나, 엔지니어링사업자(조경)로 신고하는 방법이 있다. 통상적으로 조경기술사를 취득하는 데 보통 2년이라는 준비 시간이 걸리고, 엔지니어링사업자로 신고하는 데는 대표의 특급기술자 경력과 초급이상기술자 2명이 필요하다. 조경기술사의 경우 설계업을 병행하며 자격증을 취득하기에 시간적 어려움이 따르며, 시험이라는 특성상 합격을 담보할 수 없기 때문에 대부분 엔지니어링사업자로 면허를 취득한다.1 또한 최근에는 건설엔지니어링 등록이 공공 발주 용역에 명시되어 있어 위의 두 개 면허를 가지고 있더라도 추가적으로 자격을 취득해야 해 최소 기술 인력 보유수가 5인으로 늘어났고, 사무실과 자본금 5,000만 원을 확보해야 하는 상황으로 바뀌어 조경설계 면허 취득의 진입 장벽이 더욱 높아졌다. 조경설계업은 시장 규모가 작고 사무소 또한 소규모라, 현재의 제도에서는 면허를 취득하기 어려우며 업체 상당수가 무면허 상태로 설계사무소를 운영할 수밖에 없는 상태다. 또한 개발 시대에서 저성장 시대로 넘어감에 따라 매출을 높이는 데 한계가 있고, 인구 감소와 업종 기피 현상으로 기술 인력을 갖추기가 상대적으로 어려우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어 무면허 기간이 자연스럽게 길어지게 된다. 엔지니어링사업자 면허의 현황과 실태 엔지니어링사업자(조경)로 면허를 내기 위한 기술 인력 신고 조건은 대표 전문 분야로 신고 시, 특급 1인과 초급이상 2인, 총 3인의 기술 인력을 확보해야 한다. 이미 같은 기술 부문(건설)으로 기입된 업체의 경우 전문 분야(조경)로 추가 시에는 고급 1인과 초급이상 2인, 총 3인의 기술 인력을 보유해야 한다. 대부분의 조경설계사무소는 전자의 대표 전문 분야로 신고하는 경우가 많으며, 이럴 경우 특급기술자의 보유 여부가 중요하다. 엔지니어링협회의 특급기술자 자격은 경력 10년으로 되어 있으나, 실제 프로젝트 참여 일수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근로일수(22일/월)를 기반으로 봤을 때 약 13~14년이 소요된다. 그러나 근무 회사가 한국엔지니어링협회에 등록된 업체가 아니라 기술사사무소나 개인사업자 사무소인 경우, 경력을 60% 정도 밖에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15년이 되어도 엔지니어링 특급 자격을 갖출 수가 없는 경우가 많다. 경력 관리는 한국엔지니어링협회와 한국건설기술인협회 2개 단체에서 이루어지는데, 자신이 근무하는 회사가 어디에서 경력 관리를 하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지며 본인이 특급 기술자인지 여부를 사실상 창업 준비 과정에 들어가게 돼서야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조경설계 스타트업의 대표조차 특급기술자가 아닌 경우가 많으며, 창업 시 특급기술 보유가 불가피해 면허를 취득하거나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후자인 건설 부문의 전문 분야(조경)로 신고하는 경우, 조경 분야가 없는 지역의 토목 또는 도로 엔지니어링 업체에 조경 분야로 들어가 등록하고 조경 면허를 취득하는 방법이 있다. 서류상 지역 업체의 직원으로 등록되어 있으면서 별도의 개인사업자를 내고 별채로 사무실을 운영하는 것이다. 그리고 면허가 필요한 용역을 수행할 때 소속 회사에 일정 비율의 수수료를 지불하고 용역을 수행한다. 이러한 방식은 대부분 수의계약이 지역 제한을 두기 때문에 사업 초기에 타 지역의 일을 안정적으로 수주할 수 있다는 장점과 지방의 경우 조경설계 업체가 없기에 상대적으로 수주 성공률이 높다는 점에서 긍정적일 수 있지만, 사실 편법에 가깝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서 지역 업체와 불건전한 관계가 형성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조경설계 스타트업의 경우 수익을 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본인과 직원의 4대 보험을 지역 업체가 부담하여 경비를 절감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기 때문에 관계를 지속할 수밖에 없다. 지역 업체의 경우 등록된 조경설계팀 직원은 정식 근로자가 아니기에 임금이 나가지 않고,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직원이기에 급여 신고를 통해 비자금 확보 및 절세를 할 수 있다. 또한 용역을 하도급으로 내보내는 과정에서 조경설계 업체에게 별도의 수수료(?)를 받을 수 있고, 발주처가 요청하는 소규모의 애매한 프로젝트를 처리하며 이를 통해 발주처와 관계를 좋게 가져갈 수 있다는 점에서 서로에게 윈윈인 상황이다. 발주처 입장에서는 지역 조경설계 업체가 없는 상황에서 지역 제한 제도로 인해 계약 업무 처리 시 어려움을 겪는 상황이 종종 있으며 지역 내 업체가 있더라도 한 사업자가 여러 개의 면허를 소지하거나 업체 간 경쟁이 없어 양질의 성과물을 얻기 어려운 상황이다 보니, 프로젝트 운영 과정에서 위와 같은 상황을 인지하더라도 문제 제기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하나의 조경설계 업체가 한 지역이 아닌 여러 지역에 동시 등록하는 경우가 많고, 이러한 과정에서 기술 경력 대여 등 면허 등록 과정에서 불법적인 행위가 발생한다. 사실상 편법이기에 일을 마친 후 지역 업체로부터 대금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또한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지는 문제가 일어날 수 있다. 극단적으로 현재의 엔지니어링사업자 제도에 의하면 특급 및 고급 면허만 빌리면 조경설계업을 시작할 수 있다. 조경기술사사사무소 또는 엔지니어링사업자 + @:계속되는 자격 취득 문제 면허를 취득한다 하더라도 실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데 또 다른 문제가 있다. 조경설계사무소의 발주처 다수는 공공 기관과 지방자치단체다. 그러다 보니 프로젝트의 성격이나 예산의 출처에 따라 별도의 추가 면허가 필요하게 된다. 국토교통부, 환경부, 산림청, 문화체육관광부 등 여러 부처에서 발주된 예산과 프로젝트 과업명에 따라 동일한 업무를 수행하더라도 필요 자격이 달라지는 것이다. ○○공원 현상공모의 경우, 단독 또는 공동으로 참여가 가능하다고 되어 있으나, 참가 자격이 “건설 기술 용역업을 갖추며, 조경기술사사무소 또는 엔지니어링활동주체(조경), 기술사(도시계획, 수자원개발, 상하수도, 토질‧지질 분야) 또는 엔지니어링활동주체(도시계획, 수자원개발, 상하수도, 토질‧지질 분야), 건축사, 자연환경보전사업 대행자의 자격, 방대 관리 대책 대행자”로, “모든 자격을 갖춘 업체”라 명시되어 있다. 사실상 공원 조성 사업임에도 불구하고, 환경부 예산이 일부 투입되어 자연환경보전사업 대행자의 자격이 포함된 경우다. ○○공원 현상공모의 경우, 공원 이름에 ‘문화’라는 단어가 들어간다는 이유로 공원 내 시설물은 예술적으로 조성해야 한다며, 참가 자격에 산업디자인 전문회사(환경디자인 분야) 면허를 추가한 사례다. 실제 당선 후 계약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조경이 산업디자인 전문분야(환경디자인 분야)에 속한다는 사실을 알고 면허 등록 절차를 진행했다. 무엇보다 산업디자인 전문회사 등록이 단 이틀 만에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다소 씁쓸했다. ○○공원의 경우, 계약 내용 중 건설엔지니어링업(설계 등 용역 일반)에 등록된 업체 규정으로 인해 계약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건설엔지니어링에 등록된 전기 업체를 찾아 공동 도급으로 계약한 사례도 있다. 특히 건설엔지니어링업은 최근 많은 용역에서 계약상 문제가 되는 주요 이슈 중 하나다. 이 제도로 인해 엔지니어링사업자 및 조경기술사사무소 면허를 소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추가적으로 자격을 취득해야 하며, 기준에도 엔지니어링사업자 및 조경기술사사무소도 가입이 가능하다고 되어 있다. 사실상 타 부처의 제도와 마찰을 피하기 위한 조치로 해석되는데, 실제 업체 입장에서는 두 개의 협회에 가입해 기술 인력 관리를 이중으로 해야 하는 어려움이 따르며 건설엔지니어링업이 두 개의 면허보다 상위의 개념으로 이해되고 있어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 그렇다고 건설엔지니어링업 자격만으로는 면허 취득도, 사업도 불가능하다. 큰 범주의 건설 용역에 있어서 갖춰야 할 최소한의 기준(?)이라는 점에서 제도의 의도는 이해할 수 있지만 소규모 회사가 많은 조경 업종에 있어서는 다소 불합리하게 느껴진다. 조경설계, 자격과 면허 국가기술자격은 국가기술자격법상의 국가자격과 개별법상의 자격으로 나뉜다. 현재의 기술사 제도는 국가기술자격법상의 자격으로 분류되는데, 전문 인력 개개인이 가져야 할 직무적 능력을 평가하여 등급을 정하고, 자격검증(시험)을 통해 등급 상향이 이뤄지며, 기술사 획득 시에 사업을 운영할 수 있는 면허를 부여하는 방식이다. 건설엔지니어링업, 엔지니어링사업자 등은 개별법이 추구하는 입법 목적을 달성하는 데 필요로 하는 전문 인력 및 업체를 확보하고자 시행되고 있는 제도다. 즉 산업 인력 확보를 위해 마련한 기준이지 개개인의 능력을 높이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지는 않다. ‘자격’이란 직무 수행에 필요한 지식, 기술, 소양 등의 습득 정도가 일정한 기준과 절차에 따라 평가 또는 인정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그에 따라 그 업을 수행할 수 있는 면허가 주어진다. 조경설계는 사람을 평가해야 하는 분야인지, 아니면 업체가 가진 능력을 평가해야 하는 분야인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실례로 엔지니어링 기술 건설 부문에는 건축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이러한 측면에서 조경 분야 또한 같은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 조경설계의 자격 및 면허는 단순히 사업을 영위하기 위한 수단을 넘어 조경계가 공감하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 더 나아가 조경계가 한 단계 발전할 수 있는 거시적 관점에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올바른 자격 검증을 통해 면허를 취득한 조경가가 만들어내는 좋은 공간이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사람들은 조경의 가치를 공감하며, 이러한 관심으로부터 조경이 다시 발전하게 되는 선순환 구조를 이룰 수 있다. 적절한 자격 및 면허 제도를 통해 검증된 조경가를 많이 배출한다면, 소수의 조경가들만이 만들어내는 양질의 공간을 더 많이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해마다 늘어나는 조경가들은 그 숫자에 비례해서 색다른 작품을 더 많이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 단순히 자격증, 면허를 넘어 자격제 신설이 가져올 수 있는 가능성과 비전을 더 큰 관점에서 모색할 필요가 있다. 각주 1. 엔지니어링사업자(조경) 등록 업체 수는 1,157개사(2022년도 엔지니어링 통계편람)며,조경기술사사무소 등록 수는 2022년 3월 기준, 67개사(한국기술사 홈페이지)다. 이상수는 서울시립대학교에서 건축학과 조경학을 복수 전공하고,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조경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신화컨설팅과 씨토포스를 거쳐 스튜디오101을 공동으로 창립했으며, 2016년에 스튜디오201을 설립했다. 서남권 국회대로 상부공원 설계공모, 구 진주역 복합문화공원, 목마·신트리 공원 리모델링에 공동 당선되며 조경가로서 자신만의 색깔을 찾고 있다.
[조경설계 자격제의 문제와 대안] 새로운 조경설계 자격제 도입의 필요성
현재 조경설계 자격제의 문제점 1974년 제정된 국가기술자격법에 의해 조경기사, 조경기술사 등 기술 인력이 배출되어 조경과 관련한 직종에서 현재까지 활발한 활동을 해왔다. 조경기술사 자격시험 평가 항목을 보면 계획과 설계, 시공, 역사 등을 포괄하고 있지만 조경설계의 경험과 지식, 자격에 대한 평가에는 높지 않은 비중을 두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조경설계를 전문적으로 경험해 보지 못한 시공사, 공공 기관, 공무원 중에서 배출되는 조경기술사가 상당수 존재한다. 다양한 업역에서 그들이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조경설계를 전문적으로 경험해 보지 못한 조경기술사가 조경기술사사무소를 개소해 설계사무소를 운영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 현행 제도는, 조경설계에 대한 전문가 집단의 양성과 정체성에 대한 문제점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조경기사 획득 후 4년의 조경 분야 근무 실적이 있어야 조경기술사 자격시험에 응시할 수 있다. 조경설계와 큰 관련이 없는 다양한 지식과 경험이 필요한 출제 경향으로 인해, 설계 업무 외의 다른 경험이 어려운 젊은 설계 종사자들이 조경기술사 응시 준비에 상대적 불리함을 가지고 있는 현실이다. 반면 ‘건축사법’에 의해 건축설계 업무의 권한이 있는 ‘건축사’ 자격 취득의 경우, 건축학 학위 교육 과정에서 해당 과정을 8학기 이상 이수한 사람과 이에 준하는 교육을 받은 사람으로서 건축사보로 3년 이상 실무 수련을 쌓은 사람에게 주어진다. 조경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에 건축설계 업무를 진행할 수 있는 주체가 될 기회를 얻고 있다. 많은 소규모의 조경설계사무소가 일반사업자로 등록되어 운영되고 건축물의 인허가 과정에서 조경설계 자격이 필요하지 않아 조경설계 도서가 건축사무소에 의해 일괄적으로 처리된다. 특별한 자격이 요구되지 않는 조경설계 시장이 형성되어 온 것이다. 조경이 건축법과 기타 법령에서 건축에 부속된 설비나 부대시설로 처리되고 있는 현상의 한 단면이다. 반면 건축의 경우 ‘건축사법’에 의한 건축사와 건축사가 속한 사무소만이 건축설계와 감리 업무, 건축 사업 기획, 인허가 등을 진행할 수 있도록 한정하고 있어 그 자격과 업무가 보장된다. 조경설계에 대한 전문성과 업역의 보호, 발전을 위해 현행 제도에 대한 정비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조경설계업 시장의 문제점 조경설계 용역 발주는 공공 영역과 민간 영역으로 나뉜다. 공공이 발주하는 조경설계 용역을 수행할 수 있는 자격은 조경기술사사무소 또는 엔지니어링활동주체로 등록된 조경설계사무소에게만 주어진다. 민간이 발주하는 조경설계 용역은 조경설계 주체에 대한 발주자의 제한 조건이 없는 한 특별한 자격 조건 없이 수행 가능하다. 공공 영역의 설계 활동에 참여하기 위해 조경기술사 자격을 획득하거나 엔지니어링활동주체 등록을 위해서는 일정 규모 이상의 기술 인력의 확보가 필요하다. 이로 인해 조경설계 분야에서 활동하는 젊은 조경가들에게는 공공 분야 조경설계의 진입 장벽이 높다. 현재 조경기술사사무소는 약 67개사(2022년 3월 기준, 한국기술사 홈페이지), 엔지니어링사업자는 1,157개사(2022년도 엔지니어링 통계편람)가 등록되어 있다. 조경기술사 자격을 획득하기 위해 기사 자격 획득 이후 4년 이상의 실무 경험과 통상 2년 이상의 시험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 게다가 조경설계 실무와 관련이 없는 다양한 관련 지식과 해결책을 제시하는 논술형 시험 및 면접 시험으로 이루어져 조경설계 업무만 수행한 사람으로서는 시험 준비를 위해 업무 관련성이 약한 부분 등 공부해야 할 분야가 광범위하고 준비에 할애할 시간 여유를 갖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특급기술자가 되기 위해선 통상 13~14년의 조경 분야 직무 경력이 필요하고, 15년 이상의 경력자도 직무 경력 산정 방식에 의해 특급기술자가 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공공 분야의 조경설계 업무를 진행하기 위해 조경기술사사무소나 엔지니어링사업자로 등록하려면 자격 요건이 까다롭고 준비에 장기간 소요되어 젊고 참신한 조경설계 인력을 배출하기 어려운 구조다. 또한 조경설계에 대한 자격 기준이 법적으로 정의되어 있지 않아 품질 저하로 인한 부실 시공 등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특히 민간 영역의 조경설계는 인허가 과정에서 조경설계 자격 요건 미비로 건축사무소에 종속되어 조경설계 과정이 진행된다. 따라서 설계 품질 확보와 자율성을 지니기 어려우며, 제대로 된 용역의 대가를 받기도 어렵다. 일부 건축사무소의 경우 건축가가 독자적으로 조경설계 업무를 진행하기도 해 조경설계의 품질 및 인식 저하도 일어나고 있다. 이처럼 기술 자격 제도 내에서 조경설계에 대한 전문성과 전문 인력 확보에 대한 배려의 부재는 조경설계사무소의 영세화로 이어지고 있다. 대학을 졸업한 젊은 조경 인력의 조경설계 참여가 점점 더 줄어들고, 조경설계에 참여한 젊은 인력들도 시간이 지날수록 조경설계 시장을 떠나고 있어, 경험을 쌓은 좋은 조경가들이 사라져가고 있다. *환경과조경412호(2022년 8월호)수록본 일부 안세헌은 가천대학교와 한양대학원에서 조경 계획 및 설계를 익혔다. 1999년에 가원조경설계사무소를 설립해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마스터플랜, 인천청라호수공원, 부천대장 공공주택지구 마스터플랜 등 많은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조경가의 위상 강화와 사회적 책임에 관심을 갖고 한국조경설계업협의회 초대회장과 한국조경가협회 추진위원장을 맡았으며, 2023년부터 한국조경협회를 이끌어갈 예정이다.
[조경설계 자격제의 문제와 대안] 영국과 독일의 조경사 제도
필자는 한국, 미국, 독일, 영국에서 수년간 실무 경험을 바탕으로 각기 다른 조경사 제도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했다. 이를 토대로 영국과 독일의 조경사 제도에 대한 정보를 정리했다. 한국과 미국의 경우와 다르게 영국과 독일에는 조경사 제도 필기 시험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전문 교육(조경학과)을 받은 실무자에게 요구되는 조건이나 조경사가 되기 위한 시간적 진입 장벽이 상대적으로 높지 않다. 두 나라 모두 교육과 실무를 중시하며 이를 바탕으로 조경사 자격이 주어진다. 영국과 독일에서 조경사 자격을 취득한 실무자들과의 서면 인터뷰를 통해 각 나라의 조경사가 되기 위한 절차를 알아보고 장단점을 공유하고자 한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해야 할 공통점은, 해당 과정은 조경사 자격증 취득만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며, 자격증을 취득하는 과정 자체가 본인의 커리어에 실질적인 도움이 됐다는 점이다. 영국 조경사 취득 절차 우선 영국의 조경사 제도인 CMLI(Chartered Membership of the Landscape Institute)는 교육과 실무 모두에서 높은 기준을 충족했음을 확인시켜주며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자격이다. 조경사가 되려면 구술 시험을 통과해야 하는데, 시험에 응시하기 위해서는 학교에서 전문 조경 교육을 마치고 조경협회의 어소시에이츠(Associate) 회원이 된 후 온라인 시스템 (P2C, Pathway to Chartership)에 등록해야 한다. 실무 시작 후 시험에 합격하는 데 평균 3년 정도 소요되고, 조경사 실라버스(Chartership Syllabus)에 대한 높은 수준의 지식과 이해가 있는 경우 훨씬 더 빨리 취득할 수 있다. 시험의 내용이 담긴 조경사 실라버스는 6개 요소(전문적 판단, 윤리 및 가치/조직 및 관리/평가/구현/옵션 및 전략/지속적인 전문성 개발)로 구성되어 있으며, 지식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그 지식을 실무에서 어떻게 적용하는지 이해하는 데 중점을 둔다. 지원자는 멘토를 필수적으로 선택해야 한다. 멘토는 지원자를 돕는 전문가로 최소 18개월 이상 CMLI의 공인 자격을 유지한 자들이다. 이들의 조언과 도움을 바탕으로 학습을 계획하고 검토하기 때문에 그 역할이 상당히 중요하다. 멘토는 비공식적 미팅과 공식적 분기별 검토 회의에서 진행 상황에 대한 피드백을 제공해야 한다. 멘토는 질문과 토론을 통해 지원자의 학습 목표와 관련된 이해도를 레벨0~레벨4로 구분하여 점검하고 공식적 평가를 제공해야 한다. 시험을 준비하려면 대부분의 실라버스에서 레벨2 수준을, 특정 경험과 지식에서는 레벨3 수준을 보유해야 하며, 테스트 결과에 레벨0이 있으면 시험 응시가 불가능하다. 매 분기 수행한 프로젝트와 지원자의 발전 사항이 기록된 개발로그(Development Logs) 등이 포함된 개발팩(Development Pack)을 제작해 제출해야 한다. 지원자가 구술 시험 응시 준비를 완료하면 멘토는 감독관에게 시험 통지서를 제출한다.1 감독관은 제출한 모든 개발팩과 멘토 리뷰 검토 후 시험을 승인할지 거부할지 결정한다. 구술 시험은 약 40~45분 동안 진행되며 두 명의 조경협회 전문 공인 회원이 실시한다. 시험관은 개발팩, 이력서, 멘토 리뷰 및 감독자 피드백 등 P2C 계정에 제출된 자료를 검토하고 조경사 실라버스를 기반으로 한 지식을 테스트한다. 지원자가 참여한 프로젝트를 참조하여 기본 원칙에 대한 지원자의 이해도를 평가한다. 세부적으로는 경관과 환경 실천에 대한 체계적이고 비판적인 이해, 영국 조경 전문가의 책임과 의무에 대한 이해, 개인적으로 참여한 프로젝트 분석, 전체 조경사 실라버스에 대한 지식과 이해와 이를 실제로 적용한 경험, 직업에 대한 관심과 열정, 미래 평생 학습을 관리하는 능력 등을 시험에서 점검한다. 시험에 통과한 조경사는 이름 뒤에 CMLI를 사용할 수 있다. *환경과조경412호(2022년 8월호)수록본 일부 각주 1.감독관은 조경사 경력 5년 이상인 전문가이며, 조경협회가 소정의 보수를 제공한다. 이윤주는 런던의 마샤 슈워츠(Martha Schwartz Partners)와 독일의 라이너 슈미트(Rainer Schmidt) 사무실에서 실무를 했고, 2018년 귀국해 박경의와 함께 엘피스케이프를 설립했다. 다양한 분야와 스케일의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며, 주변과 조화롭고 독창성 있는 디자인을 창출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조경설계 자격제의 문제와 대안] 미국의 조경사 제도
한국과 미국의 조경사 제도 비교를 통해 현재 한국 조경설계 자격제의 문제점과 개선점을 함께 살펴보려 한다. 좀 더 체계적인 분석과 검증이 필요하겠지만, 한국과 미국 두 곳에서의 조경설계 실무 경험을 바탕으로 몇 가지 이슈를 간략히 소개한다. 뭐라고 불리는가?이름의 문제 한국에는 ‘조경사’가 없고 조경기사와 조경기술사가 있다. 둘 다 영어로 번역하면 엔지니어(engineer)이고, 단어의 뒤에 분야를 수식하는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Landscape Architecture)가 붙는다. 본질적으로 조경 분야의 전문가를 ‘엔지니어’로 규정한다. 한자로 보아도 비슷하다. 기술사는 뭐고 기사는 뭐인지 의문이 들었는데 영어로 번역하니 오히려 명쾌하다. 하나는 ‘프로(pro)’고 다른 하나는 아니란다. 현재 ASLA(American Society of Landscape Architecture, 미국조경가협회)는 자격증이 있는 조경 전문가에 대한 명칭을 ‘프로페셔널 랜드스케이프 아키텍트(Professional Landscape Architect)’로 통일하기를 권장하고 있다.2 랜드스케이프 아키텍트는 랜드스케이프 디자이너(Landscape Designer)와 비교하여, 이미 자격증이 있어 아키텍트라는 명칭을 쓸 수 있는 사람3으로 구분되기도 한다. 본질적으로 조경사를 조경하는 설계사, 아키텍트인데 랜드스케이프를 하는 설계사(혹은 건축사)로 인지한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한국과 미국 모두 ‘자격증을 딴, 공인된, 등록된’ 보다는 ‘전문가(professional)’로 규정한 점은 비슷한 반면, 엔지니어냐 설계가냐가 다르다. 어느 쪽도 딱히 정답 같지 않다. 설계하는 전문가와 설계 이외의 전문가에게 요구되는 전문성도 그 성격이 상당히 다르고, 조경 내 모든 분야가 자격증을 필요로 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뒤에서 더 자세히 다루겠지만, 이 자격증이 조경설계사무소를 설립하는 데 필요하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일단 ‘설계사’라는 의미가 전문가의 명칭에도 담겨야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게다가 한국에서 대부분의 조경학과는 공과대학(school of engineering) 소속도 아니다. 기사 시험을 보거나 취직해서 엔지니어링협회의 경력 관리 시스템에 들어가기 전까지 스스로를 엔지니어라고 인식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이들을 엔지니어라 부르거나 엔지니어링 전문가로 관리하게 된 현 상황은, 단순히 제도상의 편의에서 발생한 문제가 당사자들(조경가)의 게으름으로 인해 오랜 시간 굳어지며 만들어진게 아닐까. 조경기사와 조경기술사가 설계를 전문으로 하는 조경 전문가 등 일부 주요 전문가를 대변하지 못하는 상황은 비단 명칭에서만 비롯된 것은 아니다. 누가 시험을 볼 수 있느냐, 어떤 필요에 의해서 보느냐만 살펴도 그 문제는 명확히 드러난다. 누가 딸 수 있는가?자격의 문제4 한국과 미국의 자격증 획득 또는 자격증 시험 응시 자격에 대한 개념이 여러 측면에서 다르다 보니, 표로 정리해도 일대일 비교가 쉽지는 않다. 두 나라의 다른 제도에 따른 결과를 다른 측면에서 살펴보면 표 2와 같다. 조경기술사가 되기까지 한국이 좀 더 오래 걸린다는 걸 알 수 있다.5 특히 표 3처럼 4년 만에 기술사를 취득하려면 기사 자격을 실무 시작 전에 딴 경우이므로, 일반적으로는 졸업 이후 6년이 최소 필요하기 때문에 미국과 비교해 훨씬 ‘세월’의 문턱이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에 한국 조경기술사 시험 합격률은 약 5%로 미국 조경사 시험 합격률 약 13%에 비해 현저하게 낮다는 점을 감안하면,6 조경기술사를 취득하는 데 필요한 시간은 많은 경우 6년보다 훨씬 길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7 ‘너무 쉽게 딸 수 있으면 안 되는 것 아닐까?’라는 생각은 여러 측면에서 합리적이지 않다. 쉽게 딸 수 없는 이유가 체계적이고 철저한 검증 때문이어야지, 응시 자격 획득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거나 응시 자격 부여의 논리가 일관적이지 않아서라면 더욱 그렇다. 한국에는 미국 조경학과 또는 한국 건축학과처럼 체계적인 인증제가 없어 정해진 기준 없이 조경학과라는 이름을 사용할 수 있는데, 시험 응시자격에서 요구하는 관련 학과 인정 기준이 학과의 ‘명칭’ 따위라는 것만 보더라도 제도의 허술함을 알 수 있다. 이 허술함 속에 학력과 경력, 시험 등 요건을 갖추는 순서는 딱딱하게 정해져 있다. 이러한 조건에서 조경을 공부하지도 않고 실무 경험도 없는 유사 분야 기술사가 시험만 잘 보면 조경기술사가 될 수 있다는 점은 제도의 큰 허점이다. 얼마나 되기 어렵냐는 기준 하나로 제도의 문제점을 판단할 수는 없기에, 어떤 시험을 보고 뽑는 것인가, 어떤 권리가 주어지는가, 무엇보다 이렇게 어렵게 만들어놓은 조경기술사의 자격 관리는 어떻게 되고 있는가가 궁금해진다. *환경과조경412호(2022년 8월호)수록본 일부 각주 정리 1. 공식 번역이 조경사일지 아닐지는 알 수 없으나. 본 특집 기사에서 ‘조경사’를 다루고 있으므로 조경사라 한다. 조경사라는 이름이 과연 조경 분야 외부에서도 오해 없이 잘 통용되고 인식될지는 미지수다. 뜻의 정확성만이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내 명함에 적힌 ‘미국조경사’라는 작은 글씨를 대충 본 친구 한 명은, “미국경조사? 이게 무슨 말이야?”라고 했고, 조경사라고 바로 읽고도 내가 뭘하는 사람인지 알지 못하는 듯했다. 2. LLA(Licensed Landscape Architect), RLA(Registered Landscape Architect) 등 비슷하지만 다른 표현이 있었으며, 다른 법규와의 혼돈이 가장 적고 유사 분야의 자격 호칭과 통일한다는 의미로 PLA로 결정했다. 여전히 주에 따라서 면허(licensure)와 등록(registration)을 별개로 보기도 한다. 3. 자격증이 없는 사람이 자신을 랜드스케이프 아키텍트라고 부르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 4. 한국 자격증의 경우, 응시 자격을 알아보는 데만 해도 상당한 애로사항이 있었다. 시험을 주관하고 있는 큐넷(Q-net)의 정보는 불완전하고, 최근 몇 년간 작성된 개인 블로그의 정보와 상호 비교하는 작업이 필요했다. 반면, 미국 조경 자격증 정보는 공인된 단일 채널(CLARB, 미국조경자격증관리위원회)을 통해 명확하게 제공받을 수 있다. 일일이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주마다 다른 점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안내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미국 지도가 나와 있고, 알고 싶은 주를 클릭하면 준비 과정부터 자주 묻는 질문(FAQ)까지 관련 내용을 볼 수 있다. 5. 조경기사는 사실 기사 자격증을 갖고 경력 관리를 통해 엔지니어링 기술등급 특급이 되어야 기술사와 동일한 자격으로 인정받기 때문에, 특급이 되기 이전 단계에서는 공공 입찰시 참여기술인력 점수에 반영되는 경우를 제외하면 독립된 ‘자격증’으로 기능한다고 볼 수 없다. 표 2와 표 3에서 한국의 조경기술사와 미국의 조경사 제도를 비교했다. 6. 이 합격률은 2021년에 시행된 시험의 평균을 기준으로 한다. 공식적으로 공표된 2021년의 1, 2차(한국) 또는 1, 2, 3, 4섹션(미국) 모두를 통과하는 합격률이 이와 같은 방식으로 공개된 정보는 없어 정확한 비교는 어려우나, 각 단계를 모두 통과하는 비율을 곱해 계산했다. 두 나라의 시험 출제 관리 기관이 공식적으로 제공하는 비율과 차이가 있을 수 있다. 7. 한국과 미국에서 각각 조경기술사와 조경사를 획득한 시점에서 평균 몇 년의 실무 경력을 가졌는지 자격증 신청을 위해서는 학력, 시험, 경력 세 분야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경력 조건이 채워지기 전에도 주에 따라 시험을 먼저 통과할 수 있다. 순서에 무관하게 모든 조건이 충족되어야 자격증을 받을 수 있다. (출처: www.clarb.org) 큰 줄기는 비슷하지만 시험이나 자격증 최종 검토 절차, 공식 명칭 등이 주마다 상이하기 때문에 지도에서 지역을 선택하면 해당 정보를 볼 수 있도록 제공하고 있다. (출처: www.clarb.org) 이해인은 조경설계사무소 HLD 소장이다. 디자인을 통한 주장과 혁신이라는 철학 아래, 공간적 문제와 도전 과제에 대한 핵심적 개입 제공을 목표로 한다.
[조경설계 자격제의 문제와 대안] 조경사 자격 제도 제안
조경가를 기술자 취급하는 현실 최근 어떤 지자체의 복합 문화 시설 조성 프로젝트에 조경 분야 자문위원으로 참여할 기회가 있었다. 대지 면적이 300평에서 조금 모자라는 작은 프로젝트지만, 도심의 역사적 의미가 있는 건물을 리모델링해 활용하는 중요한 프로젝트였고 건축 설계공모를 통해 당선작을 선정해 진행하고 있었다. 당선된 건축가는 유수의 당선 경험과 수상 경력을 자랑하는 실력 있는 건축가였다. 필자는 자문회의에 참여하면 디자이너의 성향을 존중하고 최소한의 의견을 내려고 하는 편이다. 이번에도 공모 당선작 본래의 설계 의도가 그대로 구현될 수 있도록 얌전한 자문을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발주처가 보내온 설계 자료를 받았을 때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별도의 조경 도면은 없었고, 단 한 장의 조경 도면이 건축 도면 사이에 끼여 있는데 그마저도 조경가가 아닌 비전문가가 작성한 것이 명확하게 드러날 정도로 수준 이하였다. 건축사사무소의 직원이 다른 조경 도면을 보면서 흉내 내듯 그린 것이 분명했다. 결국 평소와 다르게 장문의 의견서를 제출했고, 약 한 달 뒤 진행된 2차 자문회의에는 다행히도 실력 있는 조경가의 도면 한 꾸러미가 제출됐다. 보고 배워야겠다 싶을 정도로 수준이 높았고 그래서 검토하는 내내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자문회의 중 건축가가 조경가를 소개하며 사용한 단어 때문에 또다시 심기가 불편해졌다. “이번에는 조경기술자 분을 모셔 도면을 작성했습니다.” 그는 조경가를 조경기술자라고 표현했다. 조경가 호칭과 조경사 제도의 필요성 한편으로는 이해되기도 했다. 조경가라는 호칭이 조경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명확히 정립되지 않은 듯하고, ‘한국조경가협회’라는 이름의 정식 단체도 아직 없으니 말이다. 그리고 조경설계 관련 자격이 조경기술사 또는 조경 분야 특급기술자 등으로 되어 있으니, 조경설계 하는 사람을 기술자라고 부르는 것이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우리 스스로 별다른 저항 없이 그렇게 지내온 것이다. 그래서 최근의 여러 움직임은 아주 의미 있고 반갑다. 여러 선배의 의기투합을 통해 한국조경가협회의 설립과 법인화가 추진되고 있고, 올해 초에 고시된 제2차 조경진흥기본계획에 조경사 자격을 신설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강력한 추진 동력을 얻게 되었다. 한국조경가협회가 창립되면 조경계 내부뿐만 아니라 대외적으로도 조경가라는 이름을 널리 알릴 수 있을 것이고, 그에 더해 조경사 자격까지 만들어진다면 조경의 위상이 한 단계 격상되는 결정적 계기가 될 것이다. 건축설계는 건축사 자격을 가진 건축가가 하고, 조경설계는 조경사 자격을 가진 조경가가 하는 명확한 역할과 관계가 설정되는 것이다. 조경사 자격 신설을 위한 관련 법규의 제개정 조경사 자격을 새로 만들기 위한 본격적인 논의는 이제 시작됐다. 아마도 다양한 이해당사자 간의 수많은 의견 수렴 과정과 협의 절차가 필요할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조경사 제도를 구체화하기 위해서는 관련 법규의 제정 또는 개정이 필요하다. 첫 번째 대안은 새로운 법령 제정을 통해 조경사 제도를 신설하는 것이다. 건축 분야의 관련법을 찾아보면 건축사 자격과 관련하여 별도의 법령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데, 바로 ‘건축사법’이다. 조경사 자격과 관련해 건축사법과 유사한 성격의 ‘조경사법’을 제정함으로써 법률적 근거를 만드는 것이다. 두 번째 대안은 기존 법령을 개정해 조경사 제도를 신설하는 것이다. 조경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진 법은 2016년에 제정된 ‘조경진흥법’이 있으며 새로운 법령을 제정하는 것보다는 기존 법령을 활용해 개정하는 것이 용이할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건축사법과 같은 별도의 법령을 제정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대안이며, 이 글에서 제안하는 새로운 조경사 제도의 내용은 조경사법을 신규로 제정하는 것을 전제로 했다. *환경과조경412호(2022년 8월호)수록본 일부 이남진은 서울대학교 산림자원학과와 환경대학원 환경조경학과를 졸업하고, 동심원조경기술사사무소에서 실무 경험을 쌓았다. 현재 조경기술사사무소 바이런(VIRON)을 이끌고 있다. 좋은 설계는 좋은 회사에서 나온다는 생각으로 설계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함께 성장하는 환경을 만들고자 한다.
[조경설계 자격제의 문제와 대안] 좌담: 미래 세대를 위한 조경사 제도를 전망하다
2022년, 한국 조경(학)의 50주년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 조경은 학문적, 산업적 측면에서 크게 성장했고 지구적 기후변화로 조경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지만, 조경에 대한 대중의 인식은 여전히 미미하다. 조경설계 인력의 열악한 처우와 조경설계사무소의 고질적인 경영난도 여전하다. 여러 난맥이 복잡하게 얽힌 문제의 한복판에는 조경설계 인력에 관한 적절한 자격 제도의 부재가 놓여 있다는 의견이 많다. 지난 5월 13일 국토교통부가 고시한 제2차 조경진흥기본계획에 따라 ‘조경사’ 자격제가 신설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조경사 제도는 조경가의 위상 확립과 적확한 설계 대가 실현, 젊은 조경가 양성 등의 촉매가 되어 조경 전문업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자격 제도의 틀에 대한 구상이 시작되는 시점, 본지는 다양한 의견을 듣고자 토론회를 마련했다. 현재의 조경설계 관련 자격 제도는 어떤 문제점을 갖고있는가. 조경사 제도를 만들기 위한 기초 작업으로 무엇이 필요한가. 조경사 제도의 필요성이 제기되기까지 “국토교통부는 ‘조경진흥법’ 제5조에 따른 ‘제2차 조경진흥기본계획’을 고시했다. 조경진흥기본계획은 조경진흥법에 따라 2017년 처음 수립됐으며, 조경 분야의 진흥을 위해 5년마다 국가 조경 정책 비전과 기본 방향을 설정하는 법정 계획이다. 제2차 조경진흥기본계획은 2022년부터 2026년까지 5년간 조경 분야의 기반 조성 및 경쟁력 강화를 도모하기 위해 수립됐다. ‘기후위기 시대에 생태 문명을 선도하는 공간 복지 조경’ 이라는 비전 아래 네 가지 목표와 그에 따른 4대 추진 전략을 설정했다. 그중 ‘조경의 질 제고를 위한 조경 산업 기반 강화’의 일환으로 ‘조경설계 자격 및 면허 제도’ 신설이 추진될 예정이다.” _ 박명권 “우선 지금까지의 과정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제2차 조경진흥기본계획에 조경사 자격 제도에 관한 내용을 담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처음에는 한국조경학회 연구진도 고민이 깊었다. 새로운 조경설계 관련 자격제가 필요한 점에는 모두 공감했지만, 제도 마련 추진에 필요한 자료가 충분히 축적되지 않은 상태이다 보니 시기적으로 이르다는 의견도 있었다. 수차례의 토론 끝에 조경사 자격제 신설에 필요한 논의를 시작하고 끌어내자는 의미에서 제2차 조경진흥기본계획에 담고자 했고, 국토교통부도 이에 공감했다. 이후 다양한 이야기를 끌어내고자 특별 세미나, 좌담회와 같은 공론장을 열고 있다. 사실 10여년 전부터 조경사 제도의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되었다. 하지만 늘 크게 다르지 않은 이야기가 반복되는 실정이다. 조경인들의 관심이 모인 지금, 대화를 진전시켜야 한다.” _ 서영애 조경설계 인력을 위한 제도적 명칭과 위상 “‘한국조경헌장’에 따르면, ‘조경은 아름답고 유용하고 건강한 환경을 형성하기 위해 인문적‧과학적 지식을 응용하여 토지와 경관을 계획, 설계, 조성, 관리하는 문화적 행위’다. 하지만 현재 조경설계사무소 대부분은 ‘조경기술사’ 또는 ‘엔지니어링활동주체’라는 자격을 가지고 활동한다. 아무런 면허 없이 운영되는 사무소도 있다. 이러한 상황은 조경가를 기술자 또는 엔지니어의 틀 안에 가두어버리기도 한다. 조경가라는 이름은 제도적 받침이 없는 명칭이고, 기술사법에 의한 조경기술사와 조경기사, 조경기능사라는 명칭이 있을 뿐이다. 조경사 자격 제도는 전문가로서의 자긍심과 사회적 위상 확립을 위해 필요하다. 현재 조경설계 인력의 자격 등급을 나타내는 단어는 조경기술사와 조경기사다. 조경가라는 명칭을 쓰기도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사회적으로 통용되지 않는 자의적 용어에 불과하다. ‘건축사’는 ‘국토교통부 장관이 시행하는 자격시험에 합격한 사람’이라고 명확히 정의되어 있고, 건축사 자격증이 있어야만 건축사사무소를 개설‧신고해 운영할 수 있다. 반면 건축사와 다를 바 없이 창의적 디자인을 수행하는 조경설계자에게는 조경사라는 자격증이 없고, 면허가 없더라도 누구나 조경설계를 할 수 있는 게 현실이다.” _ 박명권 “현재 공부를 하고 있는 학생 입장에서는 조경사 자격제 신설이 새로운 관문처럼 보여 부담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전문가로서 자긍심을 갖고 전문성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탄탄한 자격 제도가 있어야 한다. 물론 사회가 이 자격제의 필요성에 동의할지는 미지수다. 사회적 공감을 얻지 못한다면 조경사 자격 제도 신설을 힘 있게 추진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_ 김태경 “30년가량 LH에서 일하며 사회에서 조경이 얼마나 미미한 분야로 여겨지는지 체감했다. 2009년 한국토지공사와 대한주택공사가 합병되며 조경 공사비가 다른 공종에 비해 적다는 이유로 등한시되는 모습을 많이 봤다. 조경은 바람길을 설정하고 물길을 만들고 대지를 조성하는 분야인데, 대부분 공사 마지막 단계에 나무 심고 휴게 시설 만들어 건물의 가격을 올려주는 장식술로 이해한다. 이러한 현상을 낳은 원인 중 하나는 완성도 낮은 설계 도면이라 할 수 있다. 조경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이 그린 전문성 없는 도면을 자주 접했다. 누구나 조경설계를 할 수 있으니 법적으로 제재할 방법이 없다. 조경 전문가가 아니면 도면의 문제점을 눈치채기 어려우니 조경 공간의 질이 점점 떨어지고, 그런 공간을 경험한 사람들이 조경은 그저 장식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지금 바로잡지 않는다면 우리가 겪은 일을 미래 세대가 또 다시 겪게 될 것이다.” _ 김선미 “여러 툴과 기술이 발전하면서 조경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조경설계 도면과 이미지 작업을 할 수 있게 됐다. 국가가 인정한 교육과 자격 제도를 통해 검증된 조경가가 설계하는 환경이 필요한 시점이다.” _ 서영애 건강한 조경설계사무소를 위하여 “현재 조경설계사무소는 과학정보통신부 기술사법에 따른 조경기술사와 산업통산자원부의 엔지니어링산업진흥법에 따른 엔지니어링활동주체를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조경의 주요 업역인 ‘대지 안의 조경’,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은 국토교통부가 제정한 법률을 따른다. 게다가 법적으로 보면 도시공원과 녹지를 설계하기 위한 자격이 제대로 규정되어 있지 않다. 조경기술사나 엔지니어링활동주체 자격이 없는 사람이 조경설계 도면을 작성해도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로 인해 조경설계와 시공의 품질이 저하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공공 기관이 발주하는 대부분의 조경 사업이나 조경설계 공모에는 조경기술사 혹은 엔지니어링활동주체 자격이 있어야만 참여할 수 있다. 조경기술사 자격은 시험에 합격하면 얻을 수 있다. 시험은 필기와 실기로 나눠 진행되며 매년 각각 2회 실시된다. 환경 보전, 산림 보전, 공원 녹지, 공지, 조경 및 도시 경관의 계획과 관리 등 광범위한 내용을 알아야 한다. 시험 문제는 단답형, 주관식, 논술형으로 구성된다. 정해진 시간 내에 설계를 하고 그 결과물을 도면으로 제출하는 건축사 시험과 크게 다르다. 조경기술사 면접은 구술로 진행되는데, 설계 능력을 파악하는 데 적절하지 않은 방식이라는 의견이 많다.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만큼, 응시자 수가 2012년 390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매년 줄어들고 있으며 2019년에는 132명으로 대폭 감소하기도 했다. 엔지니어링활동주체 자격 획득을 위해서는 요건에 맞는 인력(특급기술자 1명+초급이상기술자 2명)과 사무실을 갖추고 한국엔지니어링진흥협회에 등록 신청을 해야 한다. 조경설계사무소 소장급 직원이 조경기술사를 보유한 경우는 매우 드물다. 설계와 거리가 먼 환경론이나 법‧제도를 비롯해 공부를 해야 하는 양이 어마어마해 시험 준비에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특히 야근이 많은 조경설계사무소에 근무할 경우, 일과 공부를 병행하는 데 큰 무리가 따른다. 더불어 조경기술사 제도는 조경설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 않다. 창의적 설계 능력을 시험하고 이를 펼칠 수 있도록 돕는 제도적 기반이 필요하다. 조경사 자격제가 정착되고 모든 프로젝트에서 조경사가 조경설계를 하도록 제도적 장치가 마련된다면 일감이 늘어나고 많은 일거리가 창출될 것이다. 건축법 제42조에 따라 대지면적이 200㎡이상인 건축물은 해당 지자체 조례에 따라 대지 안의 조경을 해야 한다. 하지만 규모가 작은 프로젝트의 경우에는 여전히 건축가가 직접 어설픈 솜씨로 조경설계를 하는 일이 아무런 법적 제재 없이 벌어진다. 대지 안의 조경 규정에 따르는 프로젝트를 조경사 자격을 가진 조경설계사무소가 수행하게 되면, 그것만으로도 조경설계 일감이 충분히 늘어나는 효과를 볼 수 있다.” _ 박명권 “기존의 조경기술사 시험은 설계 능력과 상관없는 광범위한 과목을 다룬다. 설계 경력이 많고 누구보다 설계를 잘하는 조경가가 오랜 기간 준비하더라도 시험에서 떨어지는 경우를 많이 봤다. 설계 잘하는 사람이 설계 능력을 전문적으로 인정받으며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자격제가 필요하다.” _ 김선미 “조경설계사무소가 관 발주 일을 하려면 조경기술사사무소이거나 엔지니어링활동주체여야 한다. 갓 사업을 시작하는 조경설계 스타트업에게는 매우 버거운 조건이다. 결국 자격증을 빌려 사무소를 운영하는 상황이 발생하곤 한다. 건축과 비교하자면, 똑같이 교육 받고 실무 경력을 쌓았지만 시작부터 불공정한 일이 생기는 것이다. 그렇다보니 설계 크레디트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지 못하는 경우도 생긴다. 조경사 자격제의 긍정적 영향이 여러 가지겠지만, 무엇보다 설계하는 사람이 마땅히 가져야 할 기본 자격을 마련해줄 필요가 있다.” _ 서영애 조경설계비와 계약서의 문제 “조경설계는 조경 산업의 출발점이다. 하지만 조경설계사무소는 제대로 된 ‘조경설계 표준품셈’ 기준이 없어 불합리한 설계비를 받고, 불공정한 추가 업무에 시달리고 있다. 정당한 설계비를 책정하는 것은 건강한 조경설계 환경과 산업의 기반을 마련하는 일이다. 설계사무소의 경영과도 직결된 문제지만, 설계 품질, 직원 처우, 인재 영입 등 구조적인 측면에서도 개선이 반드시 필요한 사안이다. 기준의 부재는 저가 경쟁을 일으키고, 나아가 지금의 설계비면 충분하다는 사회적 몰이해를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과업의 종류, 면적, 절차, 수행 단계가 다양해 정확한 품셈 기준을 만드는 것이 쉽지는 않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지난 6월 29일 한국조경설계업협의회가 조경설계 분야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법률 자문을 받아 ‘조경설계 표준계약서’를 공표했다. 물론 아직 법적 지위를 가진 문서는 아니다. 건축 분야의 경우 ‘건축법’ 제15조 3항에 ‘국토교통부장관은 제2항에 따른 계약의 체결에 필요한 표준계약서를 작성하고 보급하고 활용하게 하거나, ‘건축사법’ 제31조에 따른 건축사협회, ‘건설산업기본법’ 제50조에 따른 건설사업자단체로 하여금 표준계약서를 작성하여 보급하고 활용하게 할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다. 이처럼 조경사 자격 제도를 만들고 조경사법에 조경설계 표준계약서에 대해 명시할 경우, 조경설계 분야도 법적 효력이 있는 조경설계 표준계약서를 갖게 된다.” _ 박명권 “조경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 중 하나가 ‘워라밸’이다. 어떻게 삶을 행복하게 꾸릴 것인지 고민하다 보면 업무 환경이 더 나은 다른 분야로 눈을 돌리기도 한다. 조경설계사무소가 제대로 된 설계비를 받고 있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아무리 설계를 잘하는 학생이라도 설계로 진출하는 걸 망설일 수밖에 없다. 실제로 최근 10년간 조경설계 분야로 진출하는 학생이 현저히 줄어든 걸 체감하고 있다. 설계비를 제대로 받을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지면 조경설계 인력의 자존감이 높아지고, 작은 스튜디오 형태의 조경설계사무소도 능력 있는 조경가를 육성할 수 있다. 열심히 조경가로 성장하던 학생들이 결국 조경과 아무 상관이 없는 직종으로 발길을 돌리는 걸 목격할 때마다 참 안타깝다.” _ 서영애 정부의 제도적‧정책적 지원을 받는 법정 단체로 “한국건축사협회처럼 조경설계 연력을 위한 법정 단체를 구성하고, 조경사 제도를 도입해 정책적, 제도적 지원을 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늘 염원하는 조경설계를 위한 교육과 연구를 할 수 있다. 늘 안타까운 점이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나면 조경설계를 배울 수 있는 제도화된 교육 시스템이 없다는 것이었다. 미국조경가협회(ASLA)의 교육 프로그램처럼 시대에 맞는 실무 교육을 계속해 조경설계 인력의 수준을 향상시킬 필요가 있다. 더불어 조경사 제도가 만들어지면 경력과 자격증을 관리하는 기관이 필요하다. 건축의 경우 대한건축사협회가 그 관리를 맡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협회 운영에 필요한 자금이 마련된다. 이 자금은 각종 교육과 연구 활동에 투입된다. 협회가 자생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질 뿐 아니라 설계의 질이 향상되는 선순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_박명권 “조경 전문 연구소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낀다. 현재 조경사 제도 추진에 필요한 기초 데이터가 턱 없이 부족한 이유 중 하나가 전문 연구 인력의 부재에 있다. 건축과 도시 공간에 관한 종합적 연구를 수행하는 정부 출연 연구 기관인 건축공간연구원(AURI)과 유사한 조경 전문 연구 기관이 꼭필요하다. 그런 연구소가 국토부와 산림청 등으로 분산된 공원‧녹지 정책을 연구해야 하고, 새로운 제도를 만들 때도 축적된 연구와 데이터베이스를 뒷받침해야 한다.” _ 서영애 사회적 공감대 형성과 앞으로의 과제 “이러한 논의가 단발성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주기적으로 이야기를 나누며 논의를 발전시킬 상설 위원회가 만들어졌으면 한다. 국토교통부와 조경계의 피드백이 계속 오가는 창구가 필요하다. 사회적 합의와 공감대를 만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이제 시작이니 학계와 산업계가 모두 함께 조경사 자격 제도 문제를 이슈화하고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일에 힘써야 한다.” _ 김선미 “국토교통부 산하에 조경 전문 연구 기관이 없어서 조경사 제도 신설을 준비할 경우 정부는 조경설계 전문가들에게 의견을 구할 수밖에 없다. 그만큼 여러분의 역할이 중요하다. 더불어 가장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부분은 조경사 자격제의 당위성을 입증하고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는 일이다. 상설 위원회 역시 사회적 요구에 따라 정부 조직이 그 필요성에 동의할 때 만들 수 있다. 현재는 조경사 제도 신설을 주장하기 위한 근거 자료가 충분하지 못한 상태다. 제도를 만들거나 개선할 때 제도를 만드는 주체와 과정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조경사는 물론 여러 관련 제도의 추진을 검토하는 사람이 조경에 대해 잘 모를 가능성이 높다. 그들도 조경사 제도의 필요성에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설득력 있는 자료가 필요하다. 제도가 만들어지는 방식과 사회적 합의 과정에 대한 이해 없이 구축한 자료는 큰 효과를 발휘하기 어렵다. 조경사 자격제를 추진하고자 한다면 꾸준한 논의가 필요하며 화제성도 키워야 한다. 어렵게 꺼낸 이야기가 물밑으로 가라앉아 버리면 다시 화두가 되기 매우 어렵다. 잔인한 말이겠지만, 현재 대중은 조경의 중요성을 잘 인식하지 못한다. 많은 사람이 선유도공원에 들러 일상을 보내지만 그곳을 조경가가 설계했는지는 모른다. 스타 조경가를 발굴하고 언론 매체를 이용해 조경의 중요성을 홍보하는 일도 하나의 방편이 될 수 있다. 좋은 조경 공간이 무엇인지, 잘못된 조경 공간이 만들어졌을 때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지 대중에게 보여주며 조경사 제도의 중요성에 공감하게 하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_ 이영주‧이정섭 “최근 국가정원과 지방정원 조성 사업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고, 관련 논의에 많은 청중이 주목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녹색 외부 공간을 향한 욕구가 늘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조경가의 사회적 역할은 앞으로 점점 더 커질 것이다. 사회적 공감대를 만들기 위해서는 이 러한 일을 조경가가 한다는 사실을 널리 알릴 필요가 있다.” _ 김태경 “지난날을 돌아보니 바쁘다는 이유로 조경설계 분야에 필요한 이슈의 공론화에 소홀했던 게 후회된다. 무엇보다 지속가능한 논의를 계속해야 할 것이다. 현재 한국조경학회는 한국조경헌장의 개정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조경진흥법은 조경 행위를 ‘토지나 시설물을 대상으로 인문적, 과학적 지식을 응용하여 경관을 생태적, 기능적, 심미적으로 조성하기 위하여 계획‧설계‧시공‧관리하는 것을 말한다’고 명시해놓았다. 광범위한 대상을 다룬다는 건 가능성이 무한함을 뜻하기도 하지만, 예산을 수립하고 일을 만들어내는 데 약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조경사 자격제의 신설을 위해 조경의 대상이 무엇인지, 어떤 일을 하는 분야인지 꼼꼼히 되짚을 필요가 있다.” _ 서영애 “기후변화 시대에 닥치자 많은 대중이 환경의 중요성을 깨닫고 있다. 정원박람회와 같은 대중성 있는 행사가 열려 녹지에 대한 수요도 늘었지만, 문제는 이러한 일을 조경가가 하는지 모른다는 점이다. 우리 스스로에 대한 홍보가 너무 부족하다. 사회적 공감대란 갑자기 만들어낼 수 있는 게 아니다. 연속적인 토론회 등을 통해 조경계가 공론화에 힘써야 할 시점이다.” _ 박명권 토론 김선미 건화엔지니어링 부사장 김태경 강릉원주대학교 교수 서영애 기술사사무소 이수 대표 이영주 국토교통부 녹색도시과 사무관 이정섭 국토교통부 녹색도시과 주무관 사회 박명권 『환경과조경』 발행인 정리 김모아 사진 유청오 일시 2022년 7월 7일 장소 환경과조경 회의실
대유평공원
허허벌판의 땅에서 공원이 되기까지 대유평공원은 수원시가 2014년 2월에 발표한 ‘2030 수원 도시기본계획’에 따라 옛 연초제조창 부지 일대를 상업, 주거, 공공·업무, 공원·녹지 등의 목적으로 개발해 조성한 근린공원이다. 수원시 장안구에 위치한 대유평의 시작은 1795년 정조가 농경 시설 확충과 화성 축조의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조성한 대유둔전이다. 200년에 가까운 시간이 흐르는 동안 대유평의 넓은 뜰은 조선 후기 농업 개혁의 중추적 역할을 하며 백성들의 삶의 터전이 됐다. 이후 대한민국의 활발한 산업화와 함께 1971년 KT&G(한국담배인삼공사)가 담배를 생산하는 연초제조창을 조성함에 따라 대유평 일대는 큰 변화를 맞이한다. 한때 1,500명의 노동자가 연간 1,100억 개비의 담배를 생산할 정도로 성업한 대유평은 근대화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었다. 하지만 담배 산업의 정체기와 해외 공장의 자동화 및 집적화로 인해 연초제조창이 2003년 가동을 중단했고, 폐쇄된 공장과 부지는 20년 가까이 방치되어 도시의 ‘골칫덩이’가 되어갔다. 그 사이 주변 화서역(1호선)을 중심으로 도시가 활성화되면서 부지에 대한 개발 요구가 이어졌다. 이에 따라 부지 정중앙에 자연을 접하는 동시에 문화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도시재생형 공원 모델을 구현하려는 수원시와 조경가, 건축가 등 전문가의 적극적인 참여로 2021년 대유평공원이 조성됐다. 남기고 연결하다, 그리고 주변을 살피다 설계 시작 당시, 방치된 연초제조창을 바라보는 시선은 여러 가지였다. ‘수원의 마지막 노른자 땅’이라 생각한 개발론자의 시선, 도시의 ‘흉물’을 없애고 생태적 공간 조성을 꿈꾸는 환경론자의 시선 등 여러 관점이 혼재된 상태에서 조경가로서 공원의 주요 쟁점과 이슈를 명확하게 설정하고, 최선의 대안을 제시하며 여러 이해 관계자들을 설득해갔다. 주요 쟁점 중 첫째는 무엇을 남길 것인가의 문제였다. 연초제조창의 역사·사회·건축적 가치를 세세하게 검토한 후 그중 일부를 남겨 지역 주민 또는 사회적 활동 주체들의 역량과 커뮤니티를 증진시킬 수 있는 복합 문화 공간인 111CM으로 재탄생시키는 안을 제안했다. 또한 ‘넓은 뜰’이라는 대유평의 의미를 재해석해 나들마당, 어린이마당, 원형광장의 서로 다른 성격의 오픈스페이스를 주요 거점으로 설정해 공원의 성격을 명확히 했다. 연초제조창 부지에 남아있던 수목은 전수 조사해 최대한 활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아 그 상태에 따라 독립수 또는 군락 식재로 활용될 수 있도록 구분했다. 이에 따라 소나무, 느릅나무, 느티나무, 백목련, 단풍나무, 청단풍, 회화나무, 대왕참나무, 산수유, 왕벚나무, 은행나무, 호두나무 등 662주의 나무를 존치하거나 공원의 적재적소로 이식해 활용했다. *환경과조경412호(2022년 8월호)수록본 일부 글 백종현 사진 유청오 조경 설계 HEA 조경 MP 김현(단국대학교 교수) 건축 설계 핸드플러스건축사사무소 건축 MP 김준성(건국대학교 교수) 시공 대우건설 위치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정자동 948 일원 면적 113,757m2 준공 2021. 11.(1차) 에이치이에이(HEA)는 도시 공간에서 자연을 다루는 창의적인 디자이너를 위한 디자인 회사다. 합리적이고 세심하며 감각적인 자연을 만들어가는 ‘자연감각’이라는 브랜드십을 공유하고 있다. 자연과 도시의 삶의 새로운 균형점을 모색하고 감각 차원의 자연 경험을 창출하기 위한 설계 및 디자인 과정에서 새로운 형식과 방법을 고민한다. 자연의 가치를 바탕으로 지속가능한 사회적 영향을 추구하며, 도시 자연의 핵심 가치를 발견하고 공유하는 일에 관심을 두고 있다.
제주 상예동 근린생활시설
답사 봐야 답이 나온다는 생각에 대상지를 찾았다. 부지는 약 700평가량의 덤불이 우거진 경사 지형이었다. 남쪽으로 멀리 중문의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바다를 향해 열린 대상지 뒤쪽으로는 인접 필지의 콘크리트 벽체 면에 쌓아올린 허름한 돌담이 있고, 덤불을 헤치고 경사를 따라 부지 경계까지 내려가면 대왕수천이 내려다 보이는 절벽 앞에 다다른다. 그 경계에 팽나무 몇 그루가 온몸에 덩굴을 휘감고 괴로운 듯 서 있었다. 팽나무 앞으로는 절벽이 있으니 조심하라고 경고하는 듯한 낮은 제주 돌담의 흔적이 보였다. 모든 조경가가 그렇듯 대상지에서 실마리를 찾고자 노력했다. 바다를 향한 경관이라는 강력한 단서가 있는가 하면, 동굴이 묻혀 제 모습을 보인 적 없는 팽나무, 스러져가는 제주 돌담 혹은 덤불에 가려진 지형의 굴곡처럼 지나치기 쉬운 희미한 시그널도 존재한다. 시그널을 잘 포착하고 증폭해 장면을 연출하고, 이 장면들을 모아 체계와 시퀀스를 구성하고, 다시 이를 강력한 단서인 커다란 경관에 편입시키는 작업이 앞으로의 숙제가 될 것임을 확인했다. 첫수 상예동에 위치한 근린생활시설은 더시스템랩건축사사무소가 설계한 연면적 1,213m2, 3층 규모의 조형미 넘치는 상징적 건물이다. 건물의 전체 이미지가 경쾌한 천막 구조를 연상시키지만, 실제는 곡면 거푸집을 이용해 정교하게 구축된 콘크리트 구조체다. 구조체의 기둥이 건물의 네 면을 둘러 회랑을 구성하며 건축 내외의 전이와 소통을 꾀하고 있다. 건물의 입지에 따라 외부 공간의 구성이 달라진다. 건물은 남쪽으로 가장 넓은 오픈스페이스를 확보할 수 있도록 북측 경계에 가깝게 배치됐다. 북측 경계로부터 활용 가능한 사이 공간을 확보할 수 있을 정도의 거리를 두고 건물이 정교하게 자리 잡았다.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서측 입구 공간, 남측 정면 공간, 동측 내부 공간이 구획됐다. 건축으로 구획된 사방에 각각의 특징을 부여하고 연출을 구상하는 것에서 조경 설계가 시작됐다. 입구 부지의 서측만 도로에 면해 있어 자연스럽게 입구와 주차장은 서측에 배치됐다. 정원과의 시각적 분리를 위해 주차장 테두리에 적정 높이의 담을 조성했다. 재료의 일관성을 위해 게비온 담을 선정하고 내부에 화산석을 채웠다. 주차장에서 건물 입구까지 이어지는 10m가량의 길에서 다른 성격의 공간으로 진입하고 있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전달하고 싶었다. 인상적인 입구의 핵심은 ‘다리를 건너는 것’이었다. 작은 계류와 수변 식생 공간으로 입구 정원을 구성하고, 이를 통과해 건너 들어오는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는 진입 환경을 구성하는 데도 유용했지만, 작은 계류를 대왕수천 방향으로 흐르게 함으로써 대상지 경관을 주변의 큰 경관에 접속시키는 두 가지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 *환경과조경412호(2022년 8월호)수록본 일부 글 정욱주 사진 유청오 설계 JWL 시공 JWL+서화+쌔즈믄 건축 더시스템랩건축사사무소 대지면적 2,287m2 위치 제주도 서귀포시 상예동 1156-2 완공 2020 제이더블유랜드스케이프(JWL)는 2014년에 설립되어 공원, 광장 등의 공공 공간과 주택, 오피스, 호텔, 연수원, 리조트의 오픈스페이스를 계획하고 설계한다. 뿐만 아니라 정원을 직접 구현하고 있다. 간결하고 심미적인 설계 언어를 통해 조성한 공간이 대상지의 문제 해결을 넘어 동시대의 격조 있는 문화적 산물로 인식되도록 합리적 경관 배치, 감각적 공간 연출을 함께 추구한다. 대표작으로 우란문화재단(2019), 디에이치 아너힐즈 헤리티지가든(2019), DWP 하늘정원(2017), 울릉도 힐링 스테이 코스모스(2017) 등이 있다.
헨드릭 스페이크버스트 성곽 공원
헨드릭 스페이크버스트(Hendrik Speecqvest) 재개발 프로젝트는 옴헤빙(OMGEVING)과 민트 랜드스케이핑(Mint Landscaping)이 2012년 도로교통국(AWV)의 요청을 받아 세운 개념을 기반으로 만든 성곽 공원(Vestenpark)이다. 새로운 공원은 성곽이 미래 메헬렌(Mechelen) 시에 어떤 의미가 될 수 있을지 미리 엿볼 수 있는 공간이다. 공원의 절반은 지하 주차장 옥상에 있으며, 독창적 지붕 구조와 세심한 식재 덕분에 하부와 상부 구조가 하나인 것처럼 조화를 이룬다. 성곽 공원과 성곽대로 설계 도시 동쪽에 새로운 도로인 탄젠트(Tangent)가 만들어지면서 메헬서 성곽(Mechelse Vesten)의 차도를 줄여 공원을 조성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할 수 있었다. 이로 인해 성곽은 도심대로의 성격을 지닌 북쪽과 성곽 공원으로 전환된 남쪽 부분으로 구분된다. 넓은 공간을 자전거와 대중교통을 위해 할애한 공원 구조는 도시에 새로운 정체성이 되어줄 것이다. 새롭고 견고한 녹색 구조는 도시 열섬 현상을 완화시키고 메헬렌의 기후 적응력을 높이는 데 활용된다. 헨드릭 스페이크버스트 헨드릭 스페이크버스트 재개발은 성곽의 지하 주차장 메헬렌 브륄(Mechelen Bruul)을 구현하면서 가속화됐다. 지하 주차장에는 자동차 352대가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1단계 프로젝트로 성곽 공원의 절반이 지하 건축물 위에 조성됐다. 경사로와 언덕으로 주차장 위 공간을 중앙 공원에 접속시켰다. 혁신적인 지하 구조 덕분에 옥상에 큰 나무를 심을 수 있었고, 하부 구조물이 녹음에 자연스럽게 가려졌다. *환경과조경412호(2022년 8월호)수록본 일부 글 OMGEVING Design OMGEVING Project Team Kevin Favere, Luc Wallays, Maarten Moers Partnership D+A Consult Client City Of Mechelen Location Mechelen, Belgium Area 1.67ha Construction 2015~2019 옴헤빙(OMGEVING)은 벨기에에 위치해 있으며 건축가, 조경가, 엔지니어, 도시 계획 및 환경 계획 전문가로 구성된 디자인 사무소다. 주변을 뜻하는 플라망어 ‘omgeving’를 사명으로 삼아, 우리를 둘러싼 주변 공간의 중요성을 말하고자 힘쓰고 있다. 다양한 규모의 중첩을 모색하면서 문화·사회·환경적 차원에서 공간의 연결 고리를 탐구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한다.
포레스티아스 포레스트 파빌리온
포레스티아스(The Forestias)는 태국의 대규모 부동산 개발 프로젝트 중 하나다. 이 프로젝트의 핵심은 포레스티아스의 중앙에 위치한 4만8천m2 규모의 도시 숲으로, 부지 내의 모든 개발 사업들을 연결하여 모든 주민에게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포레스트 파빌리온(The Forest Pavilion)(이하 파빌리온)은 판매 갤러리로 사용되고 있지만, 향후 산림 생태계에 대한 지식을 공유할 수 있는 포레스티아스 생태계 학습 센터로 탈바꿈할 예정이다. 앞으로 자연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주거 공동체의 허브로 거듭날 것이다. 파빌리온은 포레스티아스의 숲 구역으로 인도하는 입구이자 자연과 함께하는 삶의 유형으로 안내하는 관문이다. 자연과의 공생 이 프로젝트의 목적은 설계를 통해 이용자의 행복과 건강을 지원하고, 자연에 몰입할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파빌리온의 어떤 각도에서든 다양한 숲의 장면을 볼 수 있도록 녹지 공간을 만드는 데 대부분의 면적을 할애했다. 이로써 이용자는 자연에 쉽게 접근해 언제든 자연과 상호 작용할 수 있다. 기본 콘셉트는 자연과의 공생이었다. 자연과 공생하는 미래를 위한 식재, 야생 자연에서의 몰입, 도시 숲의 성장과 인간 사이의 균형이란 세 가지 목표를 추구했다. 곡선 형태로 파빌리온 건물을 둘러싸고 있는 산책로와 스카이워크를 통해 건물의 경직된 격자 형태를 상쇄시켰다. 울창한 초목을 촘촘하게 식재해 사용자와 거주자의 사생활을 최대한 보호하고, 숲에서의 독특한 경험을 제공해 자연과 함께하는 삶의 행복을 느끼게 만들고자 했다. 파빌리온은 자연과 공생을 위한 실험실이기도 하다. 자연의 정수와 조경 설계가 하나로 통합된 파빌리온에서 이용자들은 도시화된 형태의 독특한 자연을 경험할 수 있다. 또한 쾌적한 산책로와 스카이워크는 주민들이 야외로 나가도록 유도하고, 동시에 평온하고 픽처레스크한 풍경을 선사한다. 파빌리온은 일반적인 도시에서 찾아보기 힘든 규모의 자연환경을 갖추고 있다. 183종의 자생종과 23,258그루의 묘목이 혼합된 미야와키 에코 포레스트(Miyawaki Eco Forest)를 조성했다. 숲과 같은 이곳의 역동적 경관은 현세대 및 미래 세대와 함께 성장하고 진화할 생물 다양성이 살아있는 낙원을 보여준다. 또한 SITES, WELL, LEED 등의 국제 인증을 받을 만큼 친환경적이다. 지속가능한 디자인과 높은 수준의 현대적 라이프 스타일을 접목한 도시적인 환경 속에서 입주민들은 자연과 함께 상쾌한 생활을 만끽하게 될 것이다. 도심의 숲과 행복 포레스티아스가 하나의 선언처럼 지지했던 가치는 행복이었다. 이곳은 도심의 숲 속에서 살아가는 삶의 행복을 보여주는 이상적인 안식처다. 좋은 환경은 거주자의 건강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친절하고 따뜻한 공동체를 만드는 데 도움을 준다. 주민들은 자연과 조화롭게 서로의 이익을 공유하면서 자연의 일부가 되는 법을 배우고, 지속가능한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인식을 기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인식의 전환이 태국 내 주택 개발 사업의 전환점이 되어 일련의 완성도 높은 주택 프로젝트로 이어질 수 있기를 희망한다. 글 TK Studio Landscape Architect TK Studio Chief Designer Tawatchai Kobkaikit Designers Nantawan Sirisup, Punyada Klinpaka, Passaporn Shompoopun, Nottaporn Gatewattanatorn Horticulturist Patcharanat Phokhinthanasiri Construction Design Nikom Mangiew, Sirikun Thirawatthanaset, Tummanoon Jaitheing, Wasin Somsak Architect Foster and Partners Local Architect DT Design Interior Designer BUG & DT Design Structural and Civil Engineer EEC Lincolne Scott MEP Engineer EEC Engineering Network Lighting Specialist APLD Hardscape Contractor Christiani & Nielsen(Thailand) Softscape Contractor CPS Quantity Surveyor AECOM(Thailand) Sustainability Consultant Atelier Ten Client Magnolia Quality Development Total Area 14,605m2 Landscape Area 11,435m2 Location Samut Prakan, Thailand Completion 2020. 8. Photographs Rungkit Charoenwat, Weerapol Singnoi, Anong Chanamool, Research and Innovation for Sustainability Center(RISC) TK 스튜디오(TK Studio)는 삶의 질을 높이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조경 설계, 기획, 컨설팅 서비스 제공에 주력하고 있다. 대상지의 위치, 주변 지역과 환경, 사용자의 문화 등 여러 현상과 깊게 관련된 다채로운 야외 경험을 만드는 데 중점을 둔다. 자연과 인간의 필요 사이의 조화로운 균형을 보존, 복원 및 생성하는 데 도움이 되는 대상지 연구, 설계, 계획에 관심이 많다. 다양한 전문가와의 협력을 통해 디자인 솔루션 제공하며, 조경 설계를 통해서 자연의 외재적·내재적 가치를 강조한다.
[어떤 디자인 오피스] 얼라이브어스
디자인 ‘그룹’으로서의 지향 얼라이브어스(ALIVEUS)라는 사무실명은 구성원 그 누구의 이름도 지칭하지 않는다. 회사라는 것이 누군가의 소유물이 아닐 것, 같은 이름 아래의 디자인 작업이 다음 세대까지 연속될 것, 내부적으로 일정 수준 이상의 수평적 관계를 유지할 것을 바라는 의도다. 설계 지향점과 취향을 공유한 집단으로서의 의미가 지속되길 바라며, 동시에 개개인의 삶을 마모시키지 않으면서 성취감과 만족도, 성장력을 높이려 한다. 완성도 있는 옴니버스가 탄탄한 개별 플롯으로부터 연유하는 것처럼, 결국 좋은 집단은 좋은 개인으로부터 출발한다. 그런 의미에서 구성원 몇몇이 바라보는 각자의 시선으로 글을 채워보려 한다. 우리가 만들어 가는 공간 강한솔(이하 강)서플러스글로벌 용인클러스터는 사옥과 공장이 결합된 단지다. 직선적 조형을 통해 단지의 입체적 인상을 만들어내고 싶었다. 클라이언트의 지지를 등에 업고 평소 해보고 싶었던 요소를 적극 시도했다. 플랜터와 다단형 구조물에 많은 공을 들였다. 반면 시공사와의 관계에서는 난점을 경험했다. 공간 배치와 자재 선정, 지정 소재의 반입 여부 등 여러 지점에서 감리권이 부재한 상황이 어려움을 만들었다. 많은 조경가가 디자인 빌드를 지향하는 데는 이유가 있나 보다. 알투마마 스타디움(Al Thumama Stadium)이 드디어 완공됐다. 3년여의 시간, 다양한 주체 사이에서의 균형 유지 등 난이도가 상당했던 프로젝트지만 월드컵이라는 전 세계적 이벤트에 설계가로 참여한 묘한 감정이 배어 있다. 의미 있는 여행 목적지가 하나 추가됐다. 권예린(이하 권) 카페 겸 레스토랑 모쿠슈라(MOCHUISLE) 2호점 시공을 준비하는 중이다. 파주에 위치한 4층 규모의 대형 카페로, 외부 공간을 설계하면서 공간 경험의 시퀀스와 건축의 조화를 오래 고민했다. 주로 차량으로 방문하는 위치임을 고려해 도로와 맞닿은 전면부는 화려한 식재가 반기도록 구성했고, 테라스와 실내에서는 식재 영역이 배경이 되어 아늑하고 풍성한 공간이 되도록 설계했다. 실제 공간으로 잘 구현되도록 세세한 부분들을 다듬어가는 중이고, 건축 및 인테리어와 소통하며 더 많은 고민을 녹여내고 있다. 머릿속의 설계가 실재하는 공간이 되기까지의 과정이 얼마나 어려운지 매순간 느끼고, 완성될 공간에 대한 더 큰 책임감과 기대를 갖게 된다. 김연정(이하 연) 입사한 지 반년 남짓 시간을 보낸 신입이 바라본 얼라이브어스가 만들어 온, 만들어 갈 공간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각 공간이 가진 이슈에 어떤 대안을 내놓아야 할까, 클라이언트의 의견은 어떻게 반영해야 할까, 사람들은 이 공간을 어떻게 이용할까, 어떤 시점에서 바라볼까 등 수없이 고민하고 질문한다. 결정된 디자인에 공간을 향해 던졌던 질문의 답들이 가득 채워져 있으면 뿌듯함을 느낀다. 김태경(이하 태) 제주 롯데호텔 리노베이션 프로젝트는 오래전부터 기회만 주어진다면 꼭 해보리라고 마음속에 담아 두었던 많은 디자인을 풀어낸 뜻깊은 프로젝트였다. 제주도 곶자왈에서 느껴지는 야생성, 깊이, 밀도, 색채, 경험의 흐름 등 추상적 공간감을 재해석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했다. 다량의 곡간형 대교목 나뭇가지들이 겹쳐져 공간의 깊이를 만들어 내고, 관목과 지피의 수종 변화로 점점 깊어지는 숲을 표현했으며, 공간을 거닐다 보면 작은 정자들을 만나도록 구성했다. 부산 롯데호텔 수영장은 조경가로서 매우 도전적인 콘셉트로 출발했다. 호텔의 야외 수영장을 산책하는 정원 공간으로 해석했다. 수영장 자체는 물 속 산책로가 되었고, 수영장 주변 공간은 정원 산책로로 연출했다. 생소하고 시도해보지 않은 콘셉트의 수영장이었지만, 발주처와 운영사, 시공사 모두 전폭적으로 지지해주었기에 가능한 프로젝트였다. 두 프로젝트 모두 올해 완공과 개장을 앞두고 있어 기대감과 두려움 속에서 한 해를 보내는 중이다. 이향지(이하 향) 한국의 실리콘밸리라 불리는 판교에 N기업의 신사옥 설계를 진행 중이다. 사옥 디자인은 기업이 지향하는 철학과 가치를 드러내는 매개체이며, 기업과 지역 사회가 함께 공존하는 모습을 주민들에게 보여 줄 수 있는 수단이다. 기업이 본질적으로 추구하는 것과 현재 진행형의 변모를 드러내야 하고 기업의 미래를 나타내는 요소로 무장해야 한다. 애플, 구글, 아마존 등과 같은 세계적인 기업도 스타 디자이너들을 앞세워 그 지역의 랜드마크 건축물로 전 세계 사람들의 이목을 끈다. 이번 프로젝트도 판교의 새로운 랜드마크를 기대하며 국내외 대형 설계 사무소들과 함께 협업하는 중이다. 실험적이나 기능적이고, 아름답지만 친환경적이며, 추상적이면서도 견고한 아이디어를 실현하기 위해 함께 질문하고 답을 찾는 과정에 있다. 장기간 긴 호흡으로 진행해야 하는 프로젝트이기에 세상에 공개되기까지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았지만, 이 프로젝트를 끝낼 시점에는 수없이 던진 심도 있는 질문에 대한 답에 가까워진 조경가가 되어있길. 우리가 생활하는 공간 강 내가 가진 모든 관계 중 어쩌면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있는 사람들과의 소통이 즐겁다. 얼라이브어스가 내게 주는 매우 큰 행운이다. 업무 관계에서의 전문성은 당연하고,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호감과 신뢰 역시 못지않게 중요하다. 그러면서도 서로에게 그어놓은 암묵적인 선을 민감하게 파악해야 하며, 놓인 그 선의 위치가 인원마다 모두 다르다는 것을 항상 인지해야 한다. 인원수가 늘어감에 따라 전원이 만족하는 상황이 줄어들 수 있다는 점도 조심한다. 모든 것이 다 사람이 하는 일이니 모든 개인이 중요하다. 현재를 대처하고 미리 걱정은 말자. 권 파티션 없는 공간에서 매일 책상을 넘어 가벼운 이야기들이 오고 간다. 실없는 농담으로 그칠 때가 대부분이지만 이런 가벼움이 디자인 그룹으로서의 정체성이자 설계의 방식이 되기도 한다. 디자인 미팅에 모두가 참여하고 편안하게 짧은 아이디어와 단편적인 생각을 던지는 과정에서 설계의 중요한 지점을 찾아 나간다. 혼자 고심하는 것만이 집요한 디자인의 과정이라고 생각할 때도 있었지만, 옆 사람이 툭툭 내뱉는 한마디로 다른 차원의 고민을 하게 되고 가려진 것들을 보게 되면서 새로운 방식을 믿게 되었다. 독립적이고 내향적인 사람이지만 얼라이브어스와 함께하는 여정에서 일과 생활 전반에 걸친 ‘어스(us)’의 힘을 배워가고 있다. 연 공간을 설계하는 사람은 자신의 주변 공간부터 잘 만들어야 한다. 물리적인 공간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내 주변 환경에 가치를 잘 부여하는 일들을 포함한다. 서울의 한 작은 사무실에서 함께 만들어 가는, 우리가 생활하는 이 공간은 좋은 시너지로 가득 차 있다. 우리가 생활하는 곳이 가진 특유의 분위기는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프로젝트에 나비효과를 일으켜 좋은 영향을 미친다고 확신한다. 태 재미가 없었으면 디자인을 하지 않았을 것이고, 재미가 없었으면 창업을 하지 않았을 것이며, 재미가 없었으면 지금의 사람들과 일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의 회사 생활에 재미가 없어진다면 언제든 조경 디자인 분야를 떠나 제2의 꿈을 찾아 떠날 생각이다. 그렇지만 현재는 동네 친구를 만나서 노는 것보다도, 그 어떠한 취미 활동보다도 디자인하는 과정이 제일 재미있다. 회사 사람들과 농담하고 노는 것이 제일 재미있다. 그래서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여기 회사에 있다. 나의 재미를 위해 고단한 사회생활을 해주는 모든 이에게 무한한 감사를 전한다. 하지만 어찌하겠는가, 난 너무 재미있는 걸. 아, 이 막연한 글 다 썼으니 이제 놀아보자. 향 좋아하는 일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즐겁게 하고 싶다는 것, 그 바람은 그저 낭만적이고 추상적인 허상일까 걱정하던 때도 있었다. 이제는 소년 만화 ‘원피스’의 주인공 루피가 “너, 내 동료가 돼라” 라고 말하는 장면에서나 가능할 것 같던 그 이상이 우리가 함께하는 이 공간에서 ‘살아있다(alive)’고 느낀다. 의식적으로 선택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함께 노력하면서도, 균형 있는 관계를 유지하고 공동의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을 배운다. 이는 구성원 모두가 소통과 관계를 우선시하고 성취와 상실, 성공과 실패, 이기주의와 희생, 질투와 존중, 다름과 인정과 같은 끊임없는 경험의 축적 속에서, 거듭되는 좌절이 있겠지만 겸손함과 우정을 쌓으며 우리가 함께하는 이 공간을 의미 있는 시간으로 채우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 그룹의 이름처럼. 건강한 ‘그룹’으로의 지향 글을 쓰는 것은 소중한 기회다. 우리를 보여줄 수 있는 방편이기도 하지만, 일상에 무뎌져 흘려보내는 생각과 감정을 잡아두고 살펴볼 수 있기에 더욱 그렇다. 이번 글은 개별 인원들의 사고들로 엮은 그룹으로서의 판단을 공유할 수 있었기에 특별한 가치가 있다. 모두의 이야기를 텍스트로 담아낸 것은 아니지만 과정에서 나눴던 대화들 역시 같은 비중으로 남을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결국 더 중요한 것은 앞으로다.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글을 통해 조금은 더 명료하게 보게 된 각 입장 사이의 균형감이 관건일지도 모른다. 앞으로 늘어날 수 있는 내부적 시선과 새로운 외부와의 관계를 고려하면 더욱 더 그럴 수도 있다. 그룹으로서의 고유한 분위기와 디자이너로서의 시선을 잃지 않으려 할것이다. 여러모로 총괄적 시나리오와 각 장면의 미학적 미장센 모두 필수적이다[email protected] 얼라이브어스(ALIVEUS)는 현대 도시를 만들어가는 건축, 조경, 도시재생, 문화 기획에 기반을 둔 디자이너 그룹이다. 평등한 커뮤니케이션과 유연한 관계를 바탕으로 이상적인 학제간 디자인을 추구하며, 이러한 방식이 도시의 다양한 문맥에 더 좋은 디자인 솔루션을 제시할 수 있다고 믿는다.
[모던스케이프] 방사형 가로, 근대 도시의 아이콘
19세기 조르주 외젠 오스만(Georges-Eugène Haussmann, 1809~1891)의 파리 대개조 사업이 지금까지 거론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인구 폭증으로 생긴 여러 사회 문제를 도시 설계로 풀고자 했다는 점에 있다. 당시 파리에는 전염병의 위협, 불량한 주거 환경, 도시 폭동 등 각종 도시 문제가 산적해 있었다. 오스만은 상하수도망 설치와 녹지 공간 계획, 공공 건물 건설과 확충 등 도시 기반 시설을 체계화해 문제를 극복하려 했다. 그가 시도한 가장 인상적인 방법은 도시 인프라로서 가로망 구축이다. 대로를 신설해 구도심과 파리의 인접 도시를 연결했고, 센 강을 따라 동서와 남북에 축을 만들어 주요 교차점마다 방사형 가로를 연결했다. 확산과 집중, 연결이 반복되는 파리의 도시 가로 체계는 바로크 양식의 전형을 계승한 것으로, 베르사유 궁에서 태양의 빛처럼 무한히 뻗어나가는 알레(allée)를 연상시킨다. 파리 대개조보다 더 이른 시기부터 논의된 미국 워싱턴 D.C. 도시계획에서도 방사형 가로가 도시 경관의 중요한 요소였다. 워싱턴 도시계획을 주도한 피에르 샤를 랑팡(Pierre Charles L'Enfant, 1754~1825)은 프랑스 바로크 양식에 영향을 받아 가로망을 설계했다. 그러나 워싱턴이 파리와 다른 점은 북미의 위대한 국가 수도 이미지를 표현하고 대통령의 권위와 위상을 드러내기 위해 가로망을 사용했다는 점이다. 예컨대 방사형 도로의 15개 교차점은 미국 15개 연방주를 상징하며 국회의사당의 정서쪽에 내셔널몰을 두고 북서쪽 사선으로 뻗은 펜실베이니아 대로 끝에 백악관을 위치시켜 강렬한 시각 축을 만들어냈다. 당시 워싱턴은 신생 독립국의 수도였기 때문에 제국으로서의 면모를 수도에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파리와 워싱턴이 방사형 가로를 취했다고 해서 근대 도시의 필수 요건에 방사형 가로가 포함되는 건 아니겠지만, 근대 초기에 논의된 서울 도시계획안들을 들여다보면 방사형 가로가 확실히 근대 도시의 표상으로 영향을 미쳤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우선 서울에 방사형 가로가 있는가 하는 질문에는 몇 가지 다른 의견이 있다. 가장 쟁점이 되는 장소는 지금의 서울광장 일대로, 경운궁과 환구단 사이의 태평로와 서소문로, 을지로, 정동길과 소공로 등이 연결되는 지점이다. 역사학자 이태진을 비롯해 한국 근대 도시사를 전공한 몇몇 학자는 서울광장 일대의 공간 가로 형태가 워싱턴 D.C.의 도시 형태를 모방한 흔적이라고 주장한다. 아관파천 전후로 활약한 내부대신 박정양과 한성부 판윤 이채연은 한성부 도로의 확장과 신설 등 정비 사업을 주도했다. 이들은 모두 워싱턴에 체류한 경험이 있는 친미파로 워싱턴의 방사형 구조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도로 개수 사업을 하면서 자연히 방사형 도로 구조를 의식했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도시, 건축, 조경 분야 연구자들은 비판적 시선을 보내는 경우도 있다. 이 일대 도로 체계가 T자형의 전통적 가로 형식을 따르고 있지 않음은 확실하지만 방사형이라고 하기에는 그 형태가 애매하기 때문이다. 가로가 교차하는 결절점의 처리도 어색할 뿐 아니라 환구단과 경운궁 등 주요 국가 시설이 있지만 가로 체계와 맞물려 있는 것도 아니다. 스케일 면에서도 도로와 교차점의 균형이 맞지 않아 도시의 핵으로 간주하기도 애매하다. 무엇보다 이 일대를 다니면서 방사형 도로 구조를 인식하는 게 쉽지 않다. *환경과조경412호(2022년 8월호)수록본 일부 참고문헌 徐東帝 외, “京城都市構想図」に関する研究”,『 日本建築學會設計系論文集』 687, 2013, pp.1179~1186. 민유기, “파리, 혁명과 예술의 도시”, 『도시는 역사다』, 서해문집, 2011, pp.170~196. 유치선·이수기, “대한제국 한성 도시개조사업의 재평가: 근대도시계획의 보편적 특성을 중심으로”, 『국토계획』 50(3), 2015, pp.5~22. 이예림, “워싱턴 D.C. 도시계획과 시각 이미지 연구”, 『한국예술연구』 28, 2020, pp.93~112. 박희성은 대구가톨릭대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한중 문인정원과 자연미의 관계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에서 건축과 도시, 역사 연구자들과 학제간 연구를 수행하면서 근현대 조경으로 연구의 범위를 확장했다. 대표 저서로 『원림, 경계없는 자연』이 있으며, 최근에는 도시 공원과 근대 정원 아카이빙, 세계유산 제도와 운영에 관한 일을 하고 있다.
탄천 공공정원
천변의 사계절은 보통 연녹색과 짙은 초록을 띠다 갈색 빛으로 저문다. 잘 정비된 산책로가 있다 하더라도 무릎 높이까지 자란 수변 식생과 큰 나무 정도가 서 있는 곳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성남시 탄천 변에서는 이국적인 분위기의 정원을 만나볼 수 있다. 지난 6월 탄천 공공정원이 개장했다. 성남시는 탄천 금곡교와 신기교 사이 고수부지의 1만2천m2 규모의 땅에 지지력이 있는 그라스와 사초를 기본 틀로 삼아 매년 꽃을 피우는 숙근초화로 조성한 정원형 공간을 만들었다. 오래 머물고 싶은 천변 금곡교와 신기교 사이의 고수부지는 정자역과 가까워 진입이 편하고, 업무 단지와 주택 단지, 5개의 초등·중학교에 둘러싸인 인구 밀도가 높은 분당의 중심지로 잠재적 활용도가 높은 곳이다. 탄천 공공정원이 조성되기 전에도 많은 사람이 걷기 좋은 산책로와 잘 다듬어진 자전거길을 찾아 이곳을 방문했다. 하지만 식생이 단조롭고 노후화된 보도블록과 잡초가 우점한 잔디밭과 쉴 자리 한 곳 없는 천변은 시민들에게 위안이 되어 주지 못했다. 스치듯 식물과 강변 풍경을 바라보며 길을 지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잔잔하게 흐르는 하천과 울창하게 자라 주변 풍경을 가리는 나무가 가득한 고수부지는 도시의 바쁜 삶을 잠시 잊을 수 있는, 도심 휴게 공간의 잠재력을 가진 곳이다. 시는 코로나로 인해 내 집 앞도 편히 산책할 수 없는 시민들에게 위로가 되어줄 정원형 공간을 선사하고자 했다. 씨앗을 품은 식물을 형상화한 정원 일렁이는 하천의 물결과 닮은 부드러운 산책로와 그 옆을 따라 흐르는 정원은 긴 선형 공원을 이룬다. 공공정원 설계 및 계획에 자문으로 참여한 김승민(더봄 대표)은 탄천의 물줄기에서 영감을 받아 곡선형의 정원과 산책로를 디자인했다. 곳곳에 놓인 둥근 화단은 풀잎에 맺힌 물방울을 떠올리게 한다. 유속이 빠른 탄천의 범람을 고려해 언덕을 만들고 흙을 잡아줄 그라스와 사초 사이사이에 다년생 초화를 식재했다. 특히 중부 지역에서 잘 생육하며 향과 밀원이 풍부해 곤충을 유인할 수 있는 초화를 선정했다. 먹이를 찾아 날아든 나비와 벌은 정원에 생동감을 더하고 아이들이 자연 생태에 흥미를 갖게 한다. 정원에 대한 고정관념 중 하나는 꽃이 피어 있는 기간은 매우 짧으며 꽃이 지면 단조로운 풍경만이 남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탄천 공공정원에는 초장(지표에서 잎의 선단까지의 길이)이 길고, 각기 다른 시기에 꽃을 피우는 식물이 적절히 섞여 자란다. 꽃이 다 진 겨울에도 다채로운 질감의 잎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따스한 모습을 연출한다. 부드러운 곡선형 동선은 자연스러운 보행감을 느낄 수 있으며 침수에도 대비할 수 있는 견고한 황토콘크리트로 포장했다. 데크에는 벤치를 비롯해 주변 유치원생이 산책하고 자연을 공부하다 쉬어갈 수 있도록 파라솔을 설치할 예정이다. 넓은 그늘을 드리우는 대형목은 하천 범람 시 위험할 수 있어 식재하지 않았다. 금곡교 부근에 다다르면 크고 붉은 잎이 가득한 색다른 정원이 나타난다. 본래 빈 공간이었으나 김승민 대표가 대도심 아열대 기후에 적용 가능한 여름철 식재 모델을 제안하며, 묘종 종자칸나 15종 1,000본을 기증 받아 시민들과 식재해 만든 정원이다. 시원시원하게 하늘로 높이 뻗은 줄기와 커다란 잎사귀는 이국적인 풍경을 만들 뿐 아니라 청량한 분위기를 자아내 여름의 뜨거운 햇빛을 잊게 한다. 칸나 정원 주변에 만든 조형 언덕은 성남시의 지방정원 조성에 대한 염원을 담은 ‘볼수록 탄천’ 로고를 꽃봉오리로 형상화한 곳이다. 작은 공간이지만 홀로 산책을 즐기기 좋은 길이 언덕 사이로 이어지며, 동선과 잔디가 만나는 지점에서 정원이 끝나고 울퉁불퉁 잡초가 무성해 걷기 불편한 불정교로 이어진다. *환경과조경412호(2022년 8월호)수록본 일부
전시의 여운을 누리는 쉼의 장소
갑갑한 건물 틈바구니에서 벗어나 자연을 가까이 느낄 수 있는 미술관이 있다. 바로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이다. 1986년 완공된 과천관은 너른 대지 위에 펼쳐진 산세와 조화를 이루도록 설계됐다. 과천관을 설계한 김태수(TSKP 스튜디오 파트너)는 능선 위에 단과 3개의 둥근 기하학적 요소를 놓아 산과 조화를 추구한 건축물의 구조뿐 아니라 미술관 진입로에서 건물 입구까지 걸어가는 과정에서 자연과 마주하는 경험을 중시했다. 이러한 경험은 미술관의 최고층인 옥상에서 절정에 이른다. 과천관 옥상은 미술관 내외부 공간을 연결하고 확장하는 장소다. 중심부에서 2층의 원형정원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며, 탁 트인 외곽부로 과천의 수려한 자연 풍광이 펼쳐진다. MMCA 과천프로젝트는 자연 속에 자리한 과천관의 특수성을 살리고 야외 공간 활성화를 위한 중장기 공간 재생 프로젝트다. 2021년 과천관 세 곳의 순환 버스 정류장에 조성된 ‘예술버스쉼터’에 이은 두 번째 프로젝트인 ‘MMCA 과천프로젝트 2022: 옥상정원’은 미술관의 옥상정원을 새로운 경험의 공간으로 재탄생시켰다. 옥상 공간을 예술·생태적으로 재생해 주변 자연을 즐기고, 미술관에서의 미적 경험을 야외 공간의 자연 속 다양한 감각으로 확장하는 새로운 예술적 장소로 탈바꿈시켰다. 시간의 정원 국내 디자인 및 건축, 미술 관련 학계 등을 통해 18팀의 작가를 추천받아 1차 심사를 거쳐 정해진 다섯 팀 중 이정훈(조호건축)의 ‘시간의 정원(Garden in Time)’이 옥상정원 프로젝트 설치작으로 선정됐다. 시간의 정원은 직경이 39m에 이르는 열린 캐노피 구조의 대형 설치 작품이다. 지붕과 옆면의 경계에 위치한 4개의 원형링이 서로 다른 각도로 교차하며, 입구에서 멀어질수록 자연 풍광이 오롯이 드러난다. 일정 간격으로 늘어선 수많은 파이프의 배열은 공간에 리듬감을 더하며, 점점 높아지는 구조물이 만든 공간감을 따라 관람객을 가장 아름다운 풍광이 펼쳐지는 곳으로 유도한다. 이 곳까지 걸어가는 과정에서 관람객은 다양한 조각적 풍경을 마주하게 된다. 시간의 정원은 과천관을 둘러싼 드넓은 자연을 더욱 극적으로 감상할 수 있도록 관람객의 시야를 조율하는 시각적 장치로 작동한다. 계절과 날씨에 따라 정원에 투영되는 빛과 그림자의 변화는 ‘자연의 순환’, ‘순간의 연속성’, ‘시간의 흐름’ 등을 시각화하며 자연의 감각과 예술이 공명하는 시공간을 펼쳐낸다. 작가는 최소한의 물리적 구조물로써 비물질적인 자연의 감각을 현현하는 방식으로 공간을 새롭게 빚어냈다. 자연을 눈으로 감상하는 것에서 나아가 빛, 바람 등을 통해 입체적으로 감상할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을 제시했다. 정원은 빛, 그림자, 바람 등 공감각적 요소의 변화가 관람객과 조우하여 만들어내는 다채로운 리듬을 담은 공간화된 시간이자 시간을 품은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이곳에는 공간을 걸어 다니는 관람객 행위의 시간도 더해진다. 이러한 상호작용을 통해 옥상정원은 의미와 가치를 지닌 경험의 장소로 변모한다. 미술관 초입부에서 입구까지 이르는 길의 감각, 작품 감상 후의 여운, 좁은 나선형의 램프 길을 돌아 마주하는 탁 트인 전경의 느낌 등이 옥상정원을 거니는 동안 총체적으로 어우러져 미술관에 머물었던 시간의 층위가 쌓이고, 장소의 경험이 겹쳐진다. *환경과조경412호(2022년 8월호)수록본 일부
[기웃거리는 편집자] 일곱 빛깔의 무지개를 향하여
인터뷰란 장르를 좋아한다. 상대를 칼 없이 칼자루만으로 손쉽게 제압하는 무사처럼 내공을 갖춘 인터뷰어의 질문과 눈을 감은 채로 상대를 감지하고 급소를 찌르듯 깊은 철학과 사유가 돋보이는 인터뷰이의 대답이 오가는 인터뷰는 그 어떤 영화보다 재밌다. 사무라이 영화에서 서로에게 칼을 겨눌 때 미묘한 긴장감을 불어넣는 느린 화면처럼 마음이 동해 잠시 읽는 것을 멈추게 만드는 문장은 일종의 화룡점정에 가깝다. 독자로서의 즐거움도 있지만 때때로 활자(?) 노동자로서 인터뷰하고 싶은 사람을 찜해두는데, 최근 발견한 인물은(가상 인물이라서 불가능하겠지만) 바로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주인공 ‘우영우’다. 똑바로 읽어도 거꾸로 읽어도 이름이 같은 우영우 변호사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인물로서 서울대학교와 로스쿨을 수석 졸업했으며, 현재는 대형 로펌 한바다에서 변호사로 일하는 중이다. 읽었던 모든 것을 기억할 정도로 영민하고, 하루 종일 고래에 관해서 얘기할 수 있을 정도로 고래를 좋아한다. 쌩쌩 돌아가는 회전문을 통과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혼자서 생수병의 병뚜껑 따는 것을 어려워한다. 다소 엉뚱하고 조금 부족한 면도 있지만 변호사로서의 태도는 누구보다 진지하다. 돈보다는 법 앞에서 진실을 규명하고자 노력하고 의뢰인의 심정과 상황에 진심으로 귀 기울이는 변호사다. 이런 인물이 실존한다면 ‘자폐 스펙트럼’이라는 서사보다 그가 직업인으로서 가진 귀한 마음가짐에 주목하는 인터뷰를 하고 싶다. 우연히 유튜브에서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채널 ‘미션잇(Missionit)’을 알게 됐다. 이 채널의 미션잇 인사이트 인터뷰 시리즈는 휠체어 댄서, 역사 교사, 발레리나, 유튜버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장애인을 인터뷰한다. 영상을 통해 그들의 직업에 대한 관점과 철학을 비롯해 장애에 관한 통찰을 잠시나마 엿볼 수 있었다. 짧은 인터뷰로 모든 것을 판단할 수는 없지만, 인터뷰이들은 공통적으로 장애라는 특성에 주목하는 대신 자신에 가진 강점에 집중하고, 업에 대해서 누구보다 진지하고 성실한 자세로 임하고 있었다. 인터뷰이 중 한 명인 유튜브 채널 ‘함박TV’ 운영자 함정균은 휠체어 이용자로서 직접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환승하는 모습을 촬영해서 보여줌으로써, 장애인이 처한 열악한 현실을 알려주는 동시에 같은 상황에 놓인 이들에게는 환승역 엘리베이터 위치 등 유용한 정보를 전달한다. 시각 장애인 역사 교사 류창동의 장애에 대한 명쾌한 해석도 인상적이었다. “장애인을 낯선 사람, 나와 다른 세계, 다른 생각, 다른 이상을 사는 사람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알고 보면 장애로 인해 방법이 다를 뿐 결국 방향은 똑같은 사람이다.” 이번 호에 소개한 모두의 놀이터 원고를 읽으며 저 문장을 떠올렸다. 결국 통합놀이터의 본질은 다른 방법을 가진 이들을 같은 방향으로 모으는 일인지도 모른다. 물론 여전히 한계도 있다. 현실적으로 아직 모든 장애 유형의 어린이가 놀기에 부족한 면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손을 놓고만 있을 수는 없는 것도 사실이다. 김연금 소장이 주장했던 것처럼 아이들이 맘껏 뛰어놀 수 있는 놀이 환경을 도시적으로 구축하는 일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다양한 놀이터가 조성되고, 이를 뒷받침하는 놀이 환경을 만드는 동시에 놀이터의 본질을 바라보는 다양한 언어가 생겨난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그런 세상이 온다면 굳이 통합이란 단어를 쓰지 않아도 놀이터에서 장애 어린이와 비장애 어린이가 함께 노는 게 낯선 게 아니라 일상적인 일이 될 것이다. 비 온 후 모습을 드러내는 무지개가 가장 아름다울 때는 한 가지 색깔만이 빛날 때가 아니라 일곱 가지 색깔 모두가 함께 빛날 때다. 무지개 끝에 도달하면 보물이 있다는 전설처럼 부디 미래에는 어린이들이 차별 없이 뛰어놀 수 있는 아름다운 무지개 같은 놀이터에서 재미라는 보물을 찾을 수 있기를 꿈꿔본다. [email protected]
[편집자가 만난 문장들] 사람들은 혼자 보는 일기장에도 거짓말을 씁니다
L과 함께한 3일 중 반나절을 질문과 답을 주고받는 데 썼다. 사실 거짓말이다. 실제로 문답을 나눈 건 세 시간이 채 못 된다. 적확한 사실을 전달해야 하는 글이 아닌 경우, 이런 식으로 약간의 부풀림과 허영을 섞어 쓰곤 한다. 더 극적이고 흥미롭게 읽히니 말이다. 늘 완전한 거짓말은 아니라고, 풍미를 더하는 조미료 같은 거라고 스스로를 설득한다. 이날의 대화도 비슷했다. 우리 회사에 지원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자신의 장점과 단점이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실패를 이겨낸 경험이 있나요. L의 답변은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교묘히 오갔다. 면접 준비를 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이 평범해 보이는 일련의 물음에 답할 때는 몇 가지 규칙을 지켜야 한다. 두 번째 질문을 예시로 들면, 장점은 무엇이든 상관없다. 하지만 단점은 신중히 골라야 하고 어떤 점이 부족한지 설명하는 데서 그치면 안 된다. 어떻게 극복하려고 애쓰는지가 핵심이다. 일을 마감까지 미루다 한꺼번에 해치우는 습관을 고치기 위해 계획표를 짜고 그 과정을 주기적으로 확인하고 있습니다, 같은 식으로. 실패를 이겨낸 경험담은 더 복잡한 과정을 거쳐 탄생한다. 넓지 않은 세월의 밭에서 적당한 소재를 골라 도마 위에 올려놓지만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재미없어 보이는 부분을 자르고 양념해 조리하다 보면, 조별 과제 분투기가 건국 신화처럼 거창해지기 일쑤다. 공장처럼 자기소개서를 찍어내던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다. 열 편 정도는 회사 특성에 맞춰 공을 들여 썼지만, 낙방이 거듭되니 계속 이 작업을 반복하다간 정신이 고장나겠구나 싶었다. 취업 시장에서 높게 평가하는 틀에 맞추어 내 이야기를 다듬고 깎아내다 보면 어느새 나와 닮았지만 똑같진 않은 제2의 인물이 글 속에서 활보하고 있었다. 그는 드라마나 영화 속 인물처럼 직업의식이 투철하고 매력적이었지만, 들여다보고 있자면 발가벗겨진 채 길 위에 서 있는 기분에 빠지게 했다. 그 수치심에서 벗어나기 위해 결국 만능 ‘자소설’(자기소개서와 소설의 합성어)을 하나 만들고, 때에 따라 조금씩 바꿔 썼다. 좋은 해결책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마음은 덜고됐고, 90퍼센트의 진실에 10퍼센트의 거짓을 더한 글은 나를 지금 이곳으로 데려다주었다. 자소설은 이제 포털사이트 국어사전에도 등재된, 뜻을 설명할 필요도 없는 익숙한 단어가 된 지 오래다. A4 한 장 반도 채 안 되는 이 지면을 채우려고 추악한 옛 자기소개서를 꺼내 봤다. 얼굴이 홧홧해지겠지 싶어 열을 식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사와 심호흡을 두어 번 한 후 글을 읽어 내려가는데 생각보다 덤덤했다. 거기에는 완벽하지는 않지만 조금은 더 나은 나, 언젠가 꼭 닿고 싶은 이상적인 나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었다. 거짓의 농도를 조절하려 애쓴 흔적을 발견하면 좀 창피하기는 했지만 웃음이 났다. 영화 ‘만추’의 대사 “왜 남의 포크를 써요?”를 인용하며 사람들이 오랫동안 가슴 속에 묻어온 외침을 터트리게 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말하는 구절에서는 이때가 좀 그립다고 생각했다. 마지막 문장의 마침표에 다다르자 조금 씁쓸했다. 자소설 속 나의 모습은 아무 의미 없는 가짜일 뿐인가. 며칠 뒤 TV에서 흘러나온 대사 때문에 휴대폰 액정에 머무르던 시선을 브라운관에 빼앗겼다. “사람들은 혼자 보는 일기장에도 거짓말을 씁니다.”(드라마 ‘안나’) 마음속에 적어둔 질문에 대한 마땅한 답은 아니지만, 이 문장이 위로처럼 다가왔다. 자전적 소설을 써온 필립 로스의 책을 다수 번역한 정영목은 “그는 자기에게 일어난 일을 이해하려고 소설을 쓴다. 뒤집어 말하면, 소설로 쓰지 못한 일은 아직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1이라고 말한다. 자소설 쓰는 일 역시 자기 성찰과 맞닿아 있는 지점이 있다. 늘 부족하고 초라하게 느껴지는 나의 행동에서 의미를 찾고 서사를 부여하는 일은 내가 추구하고 싶었던 가치를 되돌아보게 하고 잊고 있던 바른 방향으로 걸어갈 수 있도록 휘청거리는 나를 바로 세워준다. 또 가끔 허상에 기대는 일은 지친 몸을 일으키는 힘이 되어주기도 하니까.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골똘히 들여다본 내 안의 이야기와 이를 정리한 글이 서류 탈락의 고배에도 나를 성장시키는 작은 발판이 되었다고 믿기로 한다. 마지막으로 고백하자면, 이 글에도 90퍼센트의 진실과 10퍼센트의 거짓이 섞여 있다[email protected] 각주 1. 정영목, 『소설이 국경을 건너는 방법』, 문학동네, 2018, p.25.
[COMPANY] 다원녹화건설
다원녹화건설은 1992년 설립되어 비탈면 녹화 공사, 보강토 옹벽 공사 등 생태 환경 복원을 통해 건강하고 아름다운 국토를 만드는 데 힘써왔다. 특히 2007년 개발한 ‘코매트(Co-mat)’는 성토와 절토로 인해 생긴 비탈면을 친환경적 방식으로 녹화하는 법을 제시했다. 자연 분해성 섬유를 이용해 기반재의 응집력과 근계 발달을 유도하는 이 공법은 건설신기술 제461호, 환경신기술 제158호에 등록되어 다원녹화건설의 기술력과 가치를 인정받는 계기가 되었고, 수익성이 높아 회사를 성장시키는 동력이 되어주었다. 하지만 녹화 사업은 조경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크지 않은 편이다. 김용각 회장(다원녹화건설)은 현재에 안주하기보다는 새로운 돌파구를 찾고자 했고, 미국에서 경영학을 공부한 뒤 경영 컨설팅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김대중 대표를 불러들였다.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전략기획실을 꾸려 현재를 점검하고 새로운 미래를 그리는 일이었다. 다원녹화건설의 역량과 강점, 시장 환경 등을 분석해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모색했다. 조경을 전공하지 않았다는 점이 오히려 객관적인 눈으로 회사를 바라보게 했다. 6개월에 걸친 수차례의 검토 끝에 내놓은 답은 신사업으로의 확장이었다. 김대중 대표는 “기존의 환경 복원 사업이 조경과 맥이 닿아 있는 부분이 많아 확장을 결심했다. 더불어 기존 시공 중심의 사업 영역에서 밸류체인(value chain)을 어떻게 넓힐지 고민했다. 방법은 크게 조경 시공의 전 단계로의 확장과 후 단계로의 확장으로 나뉜다. 특히 전 단계로의 확장은 원자재 생산에 해당된다. 그런데 조경은 살아 있는 식물을 다루는 분야다. 식물이 정해진 규격에 맞춰 찍어내는 공산품이 아니다 보니 농작물처럼 수요와 공급에 따른 가격 변동이 심하다. 넓은 수목 농장과 수목을 관리하는 시스템, 노하우를 보유한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수목을 직접 생산하기보다는 합리적인 가격에 살 수 있는 구매력을 갖추는 편이 효율적이라 판단했다. 매출 규모 자체를 키워 ‘규모의 경제’를 꾀하고, 구매 협상권을 갖추는 전략을 세웠다”고 설명했다. 사업 확장 이후 다원녹화건설은 매출과 규모 면에서 급격한 성장을 이뤘다. 이에 주변에서 우려의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특히 수목 하자에 대한 염려가 많았다. 김대중 대표는 “보통 완공 뒤 2~3년 지난 시점까지 하자에 대한 의무가 주어진다. 2018년에 본격적으로 주택 프로젝트를 많이 진행했는데, 2020년부터 하자가 발생한 현장이 누적되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현장 수가 상당히 많이 늘어났다. 하지만 유지·관리에 미리 신경을 써둔 덕분에 그 피해가 크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현재 다원녹화건설에는 나무의사와 경력이 많은 소장급의 직원 8명으로 구성된 CS팀이 있다. 이들은 건설사, 관리사무소와 커뮤니케이션을 할 뿐 아니라 하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데 힘쓴다. 현장을 직접 오가며 하자율을 낮출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직원들을 훈련시키고, 이를 매뉴얼로 만들고 있다. “이러한 시스템을 구축하고 운영하는 데 드는 비용이 적지 않지만, 하자가 발생한 후 수습하는 것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다. 사업을 확장하고 급격하게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인 운영이 가능했던 이유는 낮은 하자율 덕분이다.” 김대중 대표는 다원녹화건설의 가장 큰 강점으로 ‘사람’을 뽑는다. 그는 “최근 조경학과를 졸업한 학생도 조경 일을 하지 않으려하고, 조경으로 진로를 결정한 사람들도 시공 회사를 제일 후순위에 두곤 한다. 그런 상황에서도 다원녹화건설을 택한 직원들을 귀하게 여기고, 열심히 훈련시켜 우리만의 색을 입히고자 노력한다. 좋은 조직 문화를 만들어 성장하는 회사에서 일하는 즐거움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그는 직원 개개인의 특성을 깊이 파악하고, 어떤 면이 장점이고 어떤 점이 부족한지 정확히 지시해주려고 노력한다. 더불어 고정된 팀을 운영하는 대신 서로 부족한 면을 보완할 수 있는 직원들로 구성된 팀을 짜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게 한다. “책이나 매뉴얼로는 공부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프레젠테이션 능력, 현장에서의 지휘력, 건설사와의 커뮤니케이션 등을 다른 직원들과 함께 일하며 체득할 수 있도록 팀구성을 조율하고 있다.” 지난 7월 15일 다원녹화건설은 창립 30주년을 맞이해 뜻깊은 시간을 보냈다. 창립 30주년 기념식을 열어 다원녹화건설을 함께 만들어 온 임직원과 그 걸음에 함께해준 협력 업체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성공을 거둔 만큼 쉬어가는 시간을 가질 수 있지만, 김대중 대표는 또 한 번의 도약을 준비 중이다. 그는 “틀을 깨는 것을 좋아한다. 세상에 나를 맞추기 보다는 세상을 바꾸는 데 더 쾌감을 느낀다. 그만큼 어려운 일들을 겪기도 하지만 그로 인해 얻는 성취감이 더 크다. 아직은 미미하지만 개발 사업을 차츰 진행하고 있다. 늘 건설업에서 맨 마지막 단계에 진행되는 조경 시공을 하며 겪은 직원들의 스트레스를 이 사업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발주처가 무시할 수 없는 기술력과 경쟁력을 갖추고자 한다. 현재 신사업을 기획 중인데, 조경뿐 아니라 더 넓은 범위에서 그 대상을 찾고 있다. 업의 영역과 틀을 깨는 회사가 되고자 한다”고 포부를 내비쳤다. 글 김모아 사진 다원녹화건설 TEL. 02-539-8344 WEB. dawonland.co.kr
[PRODUCT] 무장애 통합형 야외 운동 기구
비장애인에 초점을 맞춘 야외 운동 기구는 장애인들이 이용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디자인파크의 무장애 통합형 야외 운동 기구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모두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공원 BF인증 기준에 부합해 야외 운동 기구에 소외됐던 장애인에게 운동의 기회를 제공한다. 비장애인도 함께 이용할 수 있으며 장애인용 운동 기구와 함께 일반형 운동 기구를 조합해 설치하는 것도 가능하다. 무장애 통합형 야외 운동 기구는 휠체어 규격에 맞춘 설계로 장애인뿐 아니라 노인, 재활자 등 휠체어 이용자가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주요 색인 파란색은 물체를 가볍게 인식하게 만들어 운동의 부담을 덜어주고 스트레스를 완화하는 효과가 있다. 운동 기구와 연결된 포스트 양쪽에는 안내판이 부착되며, 포스트 측면의 PC패널에 다양한 문양, 로고 등의 이미지를 삽입할 수 있다. 안내판의 경우 휠체어 사용자의 눈높이에 맞춰서 위치와 문구를 설정했다. 또한 태양광 패널을 설치해, 주변이 어두워지면 포스트 상부의 LED가 점등되도록 했다. TEL. 1577-0343 WEB. www.designpark.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