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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조경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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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매거진 가격 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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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리스트

[에디토리얼] 그래서 노들섬은 어떻게 될까
글로벌 예술섬. 화려하면서도 모호한 이름을 달고 진행된 노들섬 설계공모의 당선작이 지난 5월 29일 선정됐다. 서울시 보도자료 첫 줄은 당선작 ‘소리 풍경(Soundscape)’을 출품한 디자이너 토머스 헤더윅을 ‘영국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라고 묘사한다. 보도자료에 따르면, 헤더윅의 당선작은 기존 건축물을 최대한 살려 주변부를 계획했으며 공중부에 다양한 곡선으로 한국의 산 이미지를 형상화한 특별하고 환상적인 풍경을 연출했다. 헤더윅(=다빈치), 곡선, 산, 환상. 이 네 가지 키워드만으로는 사업을 둘러싼 본질적인 의문이 여전히 해소되지 않는다. 무엇을/누구를 위한 글로벌 예술섬인가. 누가 원하는/누구를 위한 랜드마크인가. 가장 안타까운 건 이번 당선작 발표에 사회적 반응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보도자료를 받아쓴 몇몇 짧은 기사 외에는 별다른 해설, 비평, 토론, 반론을 찾아보기 어렵다. 강 한가운데 유기된 섬에서 유원지와 관광지로, 오페라하우스로, 예술섬으로, 텃밭으로, 예술창작기지로, 다시 글로벌 예술섬으로. 지난 50년간 노들섬에서 주기적으로 들끓었던 도시의 욕망에 이제 모두가 지친 것일까. ‘한강르네상스’나 ‘그레이트 한강’ 같은 슬로건은 이제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하는 것 같다. 기시감과 피로감 때문일까. 한강에 랜드마크‘들’을 만든다며 쏟아내고 있는 서울시의 화려한 구상‘들’에 눈길이 가지 않는다. 전문가 사회도 조용하다. 요악하자면 무관심이거나 냉소. 노들섬 공모와 당선작에 대한 건축, 조경, 도시계획 분야의 토론이나 비평을 거의 접할 수 없다. 그나마 소셜 미디어에 간혹 올라온 단편적인 반응을 간추려 보면 크게 세 가지 갈래다. 노들섬을 지금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게 최선이라는 주장, 헤더윅의 설계안이 뉴욕 리틀 아일랜드(본지 2022년 2월호)의 재탕 아니냐는 의구심, 서울시의 랜드마크병에 대한 피로감 호소. 이번 설계공모 출품작들의 게재 여부를 두고 본지 편집부의 의견은 다소 엇갈렸다. 다루지 않는 게 곧 비평이라는 의견과 설계안의 기본 정보라도 제공해야 그나마 추후의 토론을 낳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 후자로 결론 내고 촉박한 마감에 쫓기며 서둘러 지면을 꾸렸지만 그 과정은 녹록지 않았다. 특히 사회적 관심을 모으기 위해 공모전 성과를 적극 홍보해야 할 서울시가 의외로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토론의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 비평 필자를 팔방으로 찾던 중 페이스북에 올라온 건축 전문 번역가 조순익의 글을 발견했다. 급박한 원고 청탁에도 조순익 선생이 흔쾌히 수락해준 덕분에 포스팅 글을 확장한 평문을 지면에 실을 수 있게 됐다. 그의 글은 피로감을 주는 서울시 랜드마크 사업의 의도 자체를 다시 따져 묻는 피로를 행간에 감추고, 오히려 출품작들의 형태에 내재된 의미를 질문하고 탐사한다는 점에서 또 다른 토론의 방향을 제시한다. “헤더윅의 당선작은 서울시의 아이콘주의에 동원된다는 의심을 피해갈 수 없지만, 작품 자체는 단순한 아이콘을 넘어 사회적 자연의 매력을 보여준다”(94쪽)는 그의 관점은, “ ……헤더윅의 안은 자연과의 유비 속에 비교적 자유로운 인공을 녹여낸다. …… 인공이 자연을 모방하는 충동으로 나타난다. …… 이번 공모의 결과는 인간-자연 이분법에 기초한 자연중심주의보다 자연 속에서 공생하려는 인간의 유토피아적 충동, 말하자면 인간의 자유와 자연의 적극적인 어울림에 손을 들어준 것이다”(96쪽)라는 의견으로 이어진다. 독자 여러분의 다양한 피드백을 초대한다. 노들섬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영국의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이미지대로 한강대교 위에 한국의 산을 형상화한 환상적인 경관이 만들어질까. 우리는 그 위를 산책하며 한강의 매력적인 노을을 감상하게 될까. 서울시는 헤더윅 팀과 오는 7월 설계 계약을 체결하고 기본설계와 실시설계를 진행한 뒤, 내년 2월에 공사를 시작해 2025년까지 1차 조성(수변부 팝업 월, 수상 예술 무대, 생태 정원), 2027년까지 2차 조성(공중부=‘한국의 산’, 지상부 보행로와 라이프 가든) 완료를 목표로 사업을 추진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그간의 반복 경험에 비춰 예상해본다면 수변부 일부를 고치는 정도로 끝나지 않을까 하는 예감. 예감이 아닌 소망인가? 너무나 당연한 주장이라 독자들에게 피로감을 주겠지만 그래도 한번 더 반복하지 않을 수 없다. 더 오래, 계속, 많이 토론해야 한다. 조경가는 자신의 작업을 어떻게 정리하고 보관할까. 7월호 특집 ‘조경가의 기록법’에 열 명의 조경가를 초대했다. 소중한 글과 그림으로 기억과 기록의 켤레를 선보여준 조경가 김기천, 김지환, 박승진, 신영재, 안동혁, 이수학, 이홍인, 조용준, 최재혁 그리고 비평가 정평진에게 감사드린다.
[풍경감각] 힘을 내요, 보험이
지난 5월 말 나팔꽃을 심었다. 물에 적신 키친타월에 올려둔 씨앗 세 알은 이틀도 되지 않아 껍질을 채 벗지 못한 머리를 들어 올렸다. SNS 속 친구들의 정원에는 벌써 나팔꽃이 피었던데. 봄 한철인 프리지아와 수선화가 늦게까지 베란다 자리를 비워주지 않아서 여름 꽃 준비가 늦고 말았다. 벌써 반쯤 새싹이 된 씨앗을 보니 놓친 계절을 금방 따라잡을 수 있을 것 같았지만, 한편으론 서둘러야 할 것 같았다. 바로 플라스틱 포트로 옮겨주었다. 다시 이틀이 지나자 V자를 그리며(나팔꽃 떡잎은 V자 모양이다) 새싹 두 개가 불쑥 솟아올랐다. 역시 나팔꽃이라서, 그리고 더운 계절이 되어서 빠르구나. 그런데 돋아난 싹이 새잎을 펼치며 자라는 동안 나머지 하나가 감감무소식이었다. 기다리다가, 궁금해하다, 마침내 땅 속을 파헤쳐볼 결심이 섰을 때 막내가 돋아났다. 떡잎 대부분을 잃고 줄기만 남은 모습으로. 뿌리파리의 소행일까. 나팔꽃에는 수선화 화분의 흙을 재활용했는데, 지난 봄 수선화가 뿌리파리를 겪었다는 것이 뒤늦게 떠올랐다. 보드라운 떡잎과 연약한 새 뿌리를 갉으며 얼마나 신났을까. 어쨌든 불상사를 대비해 세 개나 심은 거니까 허름한 녀석은 솎아내고 튼튼한 녀석만 기르면 된다. 식물을 뽑아내는 일은 필요할 때마다 해왔고 어렵지도 않다. 식물에는 사람의 신경계나 뇌와 같은 부분이 없으며, 따라서 통증을 느끼거나 절망에 빠지지 않을 테니까.(각주 1) 그렇지만 올해는 막내를 끝까지 기르기로 했다. 나팔꽃은 잃어버린 떡잎에 아파하지 않는다. 작은 잎 조각으로도 다음을 준비하고 줄기를 뻗을 것이다. 다른 형제보다 느리고 작고 볼품없겠지만 그만두겠다는 생각도 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뽑아버리거나 또다시 실수하지 않으면 된다. 나팔꽃 덩굴을 시들게 하는 찬바람은 11월에야 불어온다. 꽃과 열매를 경험할 수 있을 만큼 아직 많은 날들이 남아있다고, 막내에게 응원을 보내고 있다. 나팔꽃에게는 응원도 무의미하겠지만. 참, 막내에게 이름도 붙여주었다. 보험을 들듯 여분으로 심었던 것이니 보험이라 부르기로 했다. 짓궂은가 싶지만 보험이는 모르니까 괜찮다. **각주 정리 1. “식물은 접촉을 느끼지만 통증을 느끼지는 않는다. 그리고 동물과 달리 식물의 반응은 주관적이지 않다 …… 식물은 뇌가 없기 때문에 주관적 제약에서 자유롭다.” 대니얼 샤모비츠, 『식물의 감각법』, 도서출판 다른, 2019, p.134
조경가의 기록법
기록하지 않은 것은 휘발되기 마련이다. 대상지 위에 처음 그렸던 선, 땅을 마주했을 때 떠올린 날 것의 첫인상을 온전히 기억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마스터플랜이 완성되기까지 수십 번 고쳐 그린 수많은 선은 그저 최종안이 되지 못해 버려지는 부산물에 불과한 것일까. 우리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 기록은 과거와 현재를 이어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게 하는 밑바탕이 된다. 어떤 프로젝트에서는 대안에 불과했던 아이디어가 다른 대상지에서 최적의 해결법으로 작동하고, 버려진 스케치와 도면에서 새로운 콘셉트를 건져 올리기도 한다. 모니터를 따라 붙인 포스트잇 메모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돕는 길잡이 역할을 한다. 조경가는 자신의 작업을 어떻게 아카이빙하고 있을까. 작업이 끝난 뒤 정리하는 걸 선호할까, 틈틈이 정리하는 걸 선호할까. 종이 문서, 도면, 영상, 사진, 낙서, 메모 등 그 종류와 방식은 어떠할까. 폴더와 파일을 어떤 방식으로 정리할까. 프로젝트별로 묶되 별도로 선별해 정리하는 자료는 없을까. 깨달은 점을 잊지 않기 위해 꾸준히 해오고 있는 기록법이 있다면 무엇일까. 홈페이지와 SNS는 기록에서 어떤 역할을 할까. 개개인의 아카이브 방식이 어쩌면 자질구레한 이야기로 들릴지 모른다. 하지만 작은 기록들은 조경가의 삶과 기억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개인의 기록을 넘어 시대의 아카이브가 된다. 특집은 ‘기록 작업’과 ‘기록 생활’로 구성된다. 기록 작업에서는 작업 일지, 그 과정에서 떠오른 사유, 낙서, 도면, 전시, 아카이브 홈페이지 등 다양한 방식으로 꾸준하게 기록해온 조경가의 이야기를 듣는다. 기록 생활은 여섯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통해 보통의 조경가들이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작업을 정리해 남기고 있는지 들여다본다. 진행 김모아, 금민수, 이수민 디자인 팽선민 기록 작업 기록하다_이수학 그리기, 기록하기, 엮기_박승진 장면의 기록, 기록의 공유_안동혁 지어지지 않은 계획들, 설계공모 기록의 목적_정평진 기록 생활 중앙 집중 아카이빙_김기천 과정의 기록, 재가공의 기록_조용준 백업으로부터의 자 유_이홍인 생존 기록_김지환 조경가의 드로잉, 설계적 상상과 탐험의 기록_최재혁 숨 쉬듯 관찰하고, 꾸준히 기록하기_신영재 기록 생활 필자에게 던진 여섯 개의 질문 1 기록 루틴을 알려주세요. 2 아카이브하고 있는 기록물의 종류를 알려주세요. 3 폴더와 파일을 어떻게 정리하나요. 4 자 신만의 기록법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5 회사 공용 폴더와 개인 폴더가 따로 구분되어 있나요? 구분하 는 기준은 무엇인가요. 6 SNS나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있나요? 운영한다면 그 역할은 무엇인가요.
[조경가의 기록법] 기록하다
시작하다 처음부터 그것이 그리 되리라 생각하고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1999년 ‘한국정원 톺아보기’와 2000년 ‘조경공방나무’ 두 개의 누리집을 꾸리면서 두 해 정도 지났을 때 이것을 묶어 책을 내면어떠한가 생각했다. 책 말미에 밝혔지만,(각주 1) 시작하는 사람의 ‘마음과 뜻을 굳게 가다듬어 정하는’ 다짐의 의미로 만든 것이었다. 세상에 내어놓는 작업이 쌓이고 무언가를 말할 수 있을 때 묶어 책을 내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없는 헛것을 엮어 미래를 담보해 보자는 심산으로 만든 책이었다. 그러한 까닭에 허공을 향한 날 선 비판과 자의식만 가득한 책이 됐지만, 그때 책을 묶으면서 앞으로 오 년에 한 권씩, 조경, 그중에서도 설계에 관한 책을 만들어보자 했다. 지금 보면 가당찮은 얘기였지만 그 취한 말醉言(취언)이 개인적인 기록의 시작이었다. 기록이란 무엇인가 기록의 한자를 살펴보면 마음 다듬어 쓰다 혹은 마음에 새기다의 ‘기(記)’와 중요한 일을 퍼 올려금속에 적다의 ‘록(錄)’을 합친 낱말이다.(각주 2) 그래서 다시 풀어보면 ‘수만 가닥의 말 중에서 마음에 담아 두어야 할 말을 지워지지 않는 금속에 새기듯 남겨 둔다’는 뜻이 된다. 뜻풀이를 들여다보면 기록을 위해 ‘내용’과 ‘방법’에 앞선 두 개의 전제 또는 문제가 있다. 그것은 무엇을 담아 둘 것인가 하는 내용에 대한 ‘가치 판단’의 문제와 어딘가에 그것을 어떠한 방법으로든 새기는 ‘실천 행위’를 전제로 한다. 가치를 판단하기 위해서 무엇에 가치를 두고 있는가 하는 자신의 지향점과 판단을 위한 기준이 필요하고, ‘새기다’라는 실천 행위는 꾸준한 마음과 부지런한 몸을 바탕으로 한다. 헛것을 엮어 미래를 담보했던 그 책은 자신을 향해 하나의 기준을 설정하는 행위였다. 그 기준은 앞으로 던져질 수많은 질문의 첫 번째 질문이고, 질문과 질문 사이의 간극이 큰 성긴 그물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성근 질문은 촘촘해지고 또한 정치(精緻)해지리라 생각했지만 오산이었다. 미로 같은 누리집에 남겨진 기록 혹은 질문은 이십여 년 시간의 중첩이 만든 착시다. 모두 육백여든한 쪽의 기록을 환산해 보면 달에 두 쪽 정도 글이나 그림을 남긴 것이 꾸준함은 인정하겠지만 부지런하다 할 수 없다. 꾸준함도 2021년부터 두 해 넘게 온전히 작파(作破)했다가 작년에 조금 보수 공사를 했다. 왜 기록하는가 작년 『ULC D: 도시경관 출판하기』가 던진 네 개의 질문에 답하면서 ‘누리집의 시작은 조경에 관한 이야기를 하자는 것이었다’고 얘기했다.(각주 3) 1999년, 척박한 조경 문화의 환경 속에서 누군가가 무언가를 해주리라 기다리지 말고 비판의 칼을 너 자신에게 돌려서 너부터 시작해라. 그 시작이 한국정원 톺아보기에 있는 ‘창덕궁 후원 산책하기’(각주 4)다. “창덕궁 후원의 경관에 관한 소고_정조의 상림십경(上林十景)을 중심으로”(각주 5)라는 짧은 글(小考)을 쓰고 이전에 답사하며 찍어둔 사진으로 산책하듯이 웹을 어슬렁거리자고 만들었다. 그때 후원은 부용지와 연경당이 있는 애련지 주변만 개방하고 나머지 구간은 허가받아야 들어 갈 수 있었다. 글을 쓰면서 기록의 대가들이 살던 조선시대와 만났다. ‘궁궐지宮闕志’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그리고 ‘홍재전서弘齋全書’를 만나고 ‘동궐도東闕圖’라 불리는 그림을 만났다. 당시와 달리 많이 변형되었지만, 땅에 각인된 후원의 흔적 사이를 걸으며 비로소 시간이 흐르고 그곳은 오백 년 동안 짓고 허물어지기를 반복하며 바뀌는 일상과 사건의 교직交織을 마주했다. 생각해 보면 그 모두가 그림과 글, 땅 위의 기록으로 인해 가능했다. 짧은 글에서 얘기했듯이 기록이 하나의 텍스트로 읽히고 각각의 텍스트는 상호 교차하면서 해석적 순환을 이룰 때 우리는 좀 더 풍부한 시선으로 사물을 인식할 수 있다. 이때 과거는 지나간 망각이 아니라 지금 여기 의식의 형태로 현존하는 감각적 인식이 된다. 이것이 우리가 무언가를 기록하는 하나의 이유다. *환경과조경435호(2024년 7월호)수록본 일부 **각주 정리 1. “그럼에도 이 이야기는 하나의 시작에 불과하다. 태도는 설계설명서도 아니고 이론도 아니고 비평도 아니지만 조경에 대해 특히 그 중에서도 설계에 대한 최저생계비가 되었으면 한다. 여기서부터 시작하자.” 이수학, 『태도_조경 | 행위 | 반성 | 시작』, 녹색나무, 2002, p.177. 2. “記(기)는 言(언)+己(기)가 합쳐진 형성 한자로 ‘己’는 실가닥을 가지런히 하는 실패의 형상으로 말을 다듬어 쓰다, 마음 새기다의 뜻을 나타나고, 錄(록)은 金(금)+록의 형성 한자로 ‘록’은 물을 퍼 올리다 그래서 중요한 일을 퍼 올려서 금속에 적다의 뜻을 나타낸다.” 민중서림 편집국 편, 『한한대자전』, 민중서림, 1998, pp.1900, 2134. 3. 이수학, “네 개의 질문에 답하다”, 『ULC D: 도시경관 출판하기』, 2024, pp.90~95. 4. www.ateliernamoo.xyz/jongwon_koreangarden/huwon/index.html 5. 이수학, “창덕궁 후원의 경관에 관한 소고_정조의 상림십경(上林十景)을 중심으로”, 『한국조경학회지』 28(1), 2000, pp.92~108. 이수학은 성균관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이원조경에서 4년동안 일했다. 프랑스 라빌레트 건축학교와 고등사회과학대학원이 공동 개설한 ‘정원·경관·지역’ 데으아(D.E.A.) 학위를 받았고, 2003년부터 아뜰리에나무를 꾸리고 있다. www.ateliernamoo.xyz
[조경가의 기록법] 그리기, 기록하기, 엮기
골든 레코드 “안녕하세요?” 한국인 신순희 씨의 목소리로 녹음된 이 짧은 인사말이 담긴 골든 레코드는 지금도 지구로부터 200억km 이상 떨어진 우주 공간을 비행하고 있다. 1977년 8월 발사된 보이저호는 예정된 임무인 태양계 탐사를 마치고도 47년째 현역으로 작동하고 있다. 여기에는 중요한 또 하나의 임무가 있었다. 비행 중 조우할지 모르는 외계 생명체에 지구의 문명을 알리는 것. 이 12인치 크기의 레코드판 이름은 지구의 소리(The Sound of Earth). 지구의 자연과 문명, 과학 기술, 문학 작품, 음악 등 여러 분야의 이미지와 소리 정보가 담겼고, 한국어를 포함한 55개국의 언어로 녹음된 인사말이 함께 실렸다. 알루미늄 보호 케이스에 재생기가 함께 보관되었는데 10억 년 이상의 견딜 수 있는 내구성을 지닌다고 한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과학자들은 실제로 이 레코드가 외계 생명체에 전달될 가능성보다는, 다가올 인류 멸망에 대비해서 지구의 마지막 기록을 영원히 남기는 것에 더 주목했다고 한다. 잊히는 것은 두려운 것이다. 책상 서랍 서랍은 늘 닫혀 있다. 무언가를 넣을 때 잠깐 열릴 뿐 대부분은 닫혀 있다. 서랍 속에 뭐가 있는지 정확히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2층 혹은 3층으로 된 서랍을 나름 용도를 구분해서 사용하기도 하지만, 쓰다 보면 잡동사니가 쌓이고 분류도 엉망이 된다. 그래서 서랍은 작은 창고가 되기 쉽다. 창고는 보관이라는 순기능을 유지하기 위해 선별하고 버리는 작업을 동반하는데, 가끔 이 창고 정리가 위로의 시간이 되기도 한다. 서랍 안쪽 깊숙한 곳에서 발견된 오래된 물건은 잊힌 기억들을 소환한다. 고장 나 멈춰진 손목시계, 닳아서 해진 지갑, 수십 년 전의 학생증, 쓰다만 메모장, 희미해진 영수증, 잘려진 비행기 탑승권, 정체불명의 USB. 그리고 지우기 설계 작업의 대부분은 생각을 확장하고 구체화하고 검증하는 것이다. 공간은 실존하고, 구현된 실체로 의미를 갖는다. 설계는 가상의 공간에서 진행된다. 빠르게 그리고 지울 수 있다. 지워지지 않는 펜과 잘 지워지는 연필의 궁합은 중요하다. 내가 바꿀 수 있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을 신속히 구분하는 행위는 설계 전략에 해당한다. 그리고 지우는 행위가 반복될수록 버려지는 종이의 무게도 증가한다. 살아남은 종이는 기록물의 지위를 획득한다. 책상 위에 놓이는 위치가 달라진다. 어제까지는 이면지였는데 오늘부터는 기록물이라니. 종이 드로잉의 힘은 강력하다. 생각이 실체적으로 구현된다. 대충, 빠르게, 정확히, 모호하게 그리는 것이 가능하다. 그려진 펜의 운행 궤적을 잘 보고 있으면 그린 사람의 마음이 읽히기도 한다. 종이 드로잉은 일종의 미니어처다. 높이 값을 생략한 모형이다. 고유의 스케일을 가지고 있으며 질감의 상상이 가능하다. 시선을 바꿈으로써 간단히 투시도 효과를 발휘할 수 있고 줌인과 줌아웃도 손쉽다. 무엇보다 종이 드로잉은 대체할 수 없는 원본이다. 일 또는 일상 집안에서 이 방 저 방을 다니며 걷는다. 팔을 움직여 허공을 휘젓는다. 급기야 중얼거리기 시작한다. 초기 설계안은 대부분 이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다. 결코, 책상머리에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일과 일상은 태생적으로 분리되지 않는다. 일은 일상의 일부분이다. 설계 작업자들한테는 더욱 그러하다. 일상을 기록하는 것은 일하는 것이다. 일의 순서를 정하고, 메모하고, 검색한다. 어떤 장소를 직접 찾아가 보고, 또 대상지를 답사한다.사람들을 만나 대화하고, 자료를 탐색한다. 밥을 먹다가, 잠을 자다가, 걷다가, 운전하다가 생각이 떠오르기도 한다. 일상은 총체적인 설계 과정이다. 기록의 환경은 획기적으로 좋아졌다. 손안의 스마트 기기는 유용한 도구가 되었다. 메모가 편리해졌고 검색도 빠르다. 손쉽게 이미지를 캡처하고, 저장하고, 불러올 수 있다. 위치와 시간 정보를 동시에 기록할 수 있다. 이미지의 변형과 편집, 공유가 자유롭다. 음성과 영상 같은 동적 정보를 실감 나게 저장할 수 있다. 스마트 기기는 우리 생활 대부분에 필수가 되었고, 설계 작업자들은 그것들을 효과적으로 사용한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늘 기록하고 있고 또 기록되고 있다. 도큐멘테이션 디지털 방식의 기록물은 관리하기가 쉽지 않다. 디지털적 사고가 필요하다. 체계적인 정리 방식을 요구한다. 창고에 쓸어 담기와 같은 아날로그적 행동은 훗날 기록물을 다시 불어올 때 험난한과정이 수반된다. 드로잉 원본은 보관 자체가 의미 있지만, 정리되지 않은 디지털 자료들은 나열된 숫자에 불과하다. 『도큐멘테이션Documentation』은 저장된 디지털 이미지를 책이라는 실체로 묶어내는 작업이었다.이제 기록물은 3가지 형태로 남게 되었다. 드로잉 원본과 디지털 이미지, 그리고 책. 책을 디자인하는 것은 공간을 설계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물건은 공간을 점유하는 실체다. 크기, 무게, 부피, 질감을 갖는다. 디자인은 각각의 디멘션을 정의하는 것이다. 유통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면, 무언가를 정의하는 작업은 순전히 작업자의 의지에 달려 있다. 가로 120mm, 세로 170mm, 두께 45mm는 공간 설계의 성과물이다. 효율적인 출판 규격을 벗어날 것, 크기에 비해 두께감이 있을 것, 책등의 제본 형식은 기록물임을 암시할 것, 몇 가지 설계 원칙을 더해 표지는 모호할 것, 직관적이지 않을 것. 책을 위한 평면도와 입면도, 투시도와 스케치, 스터디 모형과 실물 목업 작업이 이어졌다. 이미지들은 일과 일상을 넘나든다. 일목요연하게 보여주지 않는다. 작업하면서 버려지지 않고 살아남은 이미지들이다. 해상도가 좋지 않아도, 일부가 잘려 나가도 괜찮다. 어떤 순간을 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다. 모든 설계 작업을 마치고, 서문에 이렇게 썼다. “작업은 늘 조심스럽고 늘 흥미진진하다. 모든 작업은 땅 위에 구축되지만, 거기에 이르기까지 좌뇌와 우뇌, 양팔과 양손 그리고 두 다리의 끊임없는 구동을 요구한다. 긴장과 이완의 지속적인 반복, 불안과 안도의 이상한 동거, 진척과 되새김이 만들어내는 시간의 역행은 설계 작업자의 숙명이다. 여기에 더해 상습적 좌충우돌과 치명적 시행착오 또한 피해 갈 수 없다. 찢어진 메모지에, 혹은 값비싼 몰스킨에, 옐로 페이퍼의 구겨진 한 모서리에도 그 흔적은 남는다. 이제는 휴대 장치가 만들어내는 고해상도 이미지까지 가세하므로 기록들은 차고 넘친다.십 년의 작업 기록, 모든 순간을 기억할 수 있었으나, 모든 기록을 담을 수는 없었다. 500여장의 이미지를 따로 모아 묶는다. 작업과 일상은 뒤섞이기 마련이다. 구분하지 않았다. 친절하지 않다는 원망을 들을지도 모르겠다. 정리라는 행위는 가끔 무의미한 과장과 무책임한 소거를 동반하기 때문이다. 대신 책의 말미에 기록된 이미지들에 대한 설명을 덧붙인다.” 설계의 부산물 혹은 기록물 공간 설계의 종착지는 현장이다. 지구 위도와 경도, 고도의 교차점에 무언가를 만든다. 현장은 가시적이며 입체적이다. 모든 생각과 고민, 대화는 이 특정 지점을 향해 당당하게 출발하지만 모두 무사히 도달하지는 못한다. 그래도 기록은 남는다. 설계 작업은 많은 부산물을 남긴다. 부산물은 둘 중 하나의 운명을 맞는다. 버려지거나 남거나,정연한 형태로 제본된 결과물은 수많은 부산물의 결과다. 남겨진 기록물은 아카이브의 가치를 인정받는다. 설계의 결과물이 도착한 종착지가 전혀 다른 목적지였을 때, 보존된 아카이브는 작업의 원형이 된다. 현장의 변수는 무궁무진하다. 예측 불가의 좋음보다는 생각보다 더 나빠질 확률이 다소 높다. 결과에 승복했을 때, 살아남은 기록물은 위안이 된다. 가끔, 서랍을 열어보거나 모여진 디자인 노트, 쌓아 놓은 드로잉 더미를 들춰본다. 해지거나 변색된 물건들, 번진 잉크 자국, 쓰다가 멈춘 연필의 필적, 아직 끈기가 남아 있는 테이프 흔적.수많은 물음표와 느낌표 또는 별표. 누구에게는 의미 없는 이미지에 불과하지만, 설계 작업자에게는 생생한 삶의 증언이다. 박승진은 경관, 도시, 정원과 관련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디자인 스튜디오 loci 대표소장이다. 서울대학교 환경계획연구소를 거쳐 한국 1세대 조경설계사무소인 서안에서 설계 실무를 했다. 워커힐호텔, 서울아산병원, 삼성전자 화성사업장 등의 프로젝트를 수행했으며, 2007년에 현재의 사무실을 열어 풀무원 물의 정원, 남해 사우스케이프 오너스클럽, 강릉 시마크호텔, 아모레퍼시픽의 기술연구원 및 오산 뷰티캠퍼스, 제주 오설록 티하우스, 아모레퍼시픽 본사 사옥, 통의동 브릭웰정원, 대구 미래농원(mrnw) 등을 설계했다. 2018년에 10년의 작업 기록집 『도큐멘테이션』, 2021년에 글 모음집 『텍스트_북』을 독립출판으로 펴냈다.
[조경가의 기록법] 장면의 기록, 기록의 공유
우리가 여행지 같은 특별한 장소에서, 또는 일상적이지 않은 특별한 순간에 사진을 찍는 이유는 그 특별함을 기록하기 위해서다. 사진으로 남은 기록은 해당 장소나 시점의 독특한 분위기나 경험의 내러티브를 기억할 수 있게 도와주는, 일종의 기억의 보조 장치로 이용되기도 한다. 이 매체의 독특한 측면은 그 기록이 찰나의 순간에 존재하는 장면(scene)에 대한 시각적 데이터들을 기록한다는 점이다. 혹자는 이 같은 기록 방식이 시시각각 변화하는 대상의 일부만을 재현할 수 있고, 연속적인 시퀀스나 복잡한 서사를 담기에 제한적일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유튜브나 쇼츠 등 영상 미디어를 통한 정보의 공유가 대세인 현 시점에도, 순간의 장면에 대한 기록이 여전히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필름 카메라를 통한 (또는 필름 카메라 느낌의 사진 후보정을 통한) 아날로그 방식의 기록이 유행의 또 한 흐름에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도 이러한 가치를 방증하는 현상이지 않을까. 필자가 조경가로서 만들어내는 작업물을 기록하는 방식 또한 앞에서 언급한 장면의 기록 방식을 따르고 있다. 설계 프로세스를 진행하면서 마주하게 되는 대표적인 순간의 이미지나 중요한 장면 장면을 기록하는 것이다. 이 장면은 프로젝트 등의 진행 과정에서 거치는 주요한 지점을 의미하는 마일스톤(milestone)에 해당한다. 때로는 설계 최종안이 조경가 자신이 생각하는 최고의 설계안이 아닌 경우도 있다. 부지의 여건, 제반 상황의 변화나 클라이언트의 요청 등에 따라 설계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조정되기도 하는데, 이때 초기의 아이디어나 이전 단계의 설계 진행 내용 등을 남기기 위해 해당 장면을 기록하는 것이다. 장면의 기록은 아이디어 스케치, 해당 시점의 평면도 또는 단면도, 스터디 모형, 작업 과정에 대한 사진 등 다양한 방법과 매체를 활용하는 편이다. 지난 2022년 여름, 설계 과정에서 만들어진 중간 과정의 작업물, 주요 장면의 기록들을 모아 삼청동 가모갤러리에서 전시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이 전시에서 공유했던 장면의 기록들을 통해 필자의 기록 작업을 조금 더 상술하고자 한다. *환경과조경435호(2024년 7월호)수록본 일부 안동혁은 HLD에서 조경가, 도시설계가, 디자인 디렉터로 활동하고 있다. 뉴욕의 필드 오퍼레이션스(Field Operations)에서 9년간 근무하며 필라델피아 레이스 스트리트 피어, 부산시민공원, 퀸 엘리자베스 올림픽 파크, 홍콩 침사추이 워터프런트 등의 조경 계획 및 설계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후 한국으로 돌아와 DL E&C 상품개발팀에서 2년간 아크로, e편한세상 브랜드의 조경 상품을 총괄하는 디자인 디렉터로 일했다. 현재 HLD에서 한화리조트, 다동공원 등의 조경설계와 낙동강 하구 국가도시공원 기본구상 등의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조경가의 기록법] 지어지지 않은 계획들, 설계공모 기록의 목적
만평으로부터 2021년 5월 처음 작성한 ‘설계경기 기록원 스코어러(scorer)’의 사업 계획 발표 자료 첫 페이지는 『환경과조경』 2001년 6월호에 게재되었던 만평으로 시작한다. 그림 속 “○○총국 현상설계”라는 현수막이 걸린 건물 옆에는 제출된 계획안들이 건물 높이만큼 쌓여 있다. 등 뒤에 출력된 계획안을 지고서 땀 흘리며 걸어오는 응모자는 지친 표정으로 올려다보며 “프로젝트 규모가 적은데…”라고 말하지만, 건물 위에 선 사람은 웃는 얼굴로 “그래도 좀 더…”라며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킨다. 그림 아래에는 붉은 글씨로 “아무리 다다익선이 좋다지만…”이라고 쓰여 있다. 당시 스코어러의 기획 의도와 문제의식은 대략 사반세기 전에 그린 만평에서 매우 또렷하게 드러나 있었다. 간단히 말하자면, “전문가들의 지적 생산물들이 일회적으로 소모됨으로써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키고 있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이는 오로지 만평 속의 땀 흘리는 응모자와 같이 영세한 소규모 설계사무소의 비용 부담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 또한 달라지지 않는 사실이었다. 그동안 다소간의 제출물 간소화가 이루어졌음에도 오히려 문제는 더 심각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먼저 관련 법령의 개정에 따라 설계공모 시행 의무화 설계비 기준이 절반가량 하향되어 더 작은 규모의 공공 프로젝트까지 그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통계상으로 시행 건수는 약 2배 정도 증가했으며, 그렇게 늘어난 소규모 설계공모들은 경우에 따라 제출물을 쌓는 높이가 건물보다 높아지는 지점에 이르고 있다. 또 다른 원인은 심사의 표결 과정과 평가 사유서가 공개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설계공모에서 소모되는 지적 생산물은 응모 작품뿐 아니라 그에 대한 심사위원들의 평가를 포함한다. 공정성과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해 심사 과정 공개 규정이 마련되었으나, 평가 대상 없이 수기로 거칠게 작성되어 공개된 서류들은 그 제도의 취지를 충분히 구현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 같은 문제는 지난해 4월 설계공모 심사 과정 전체를 실시간 영상으로 송출할 것을 의무화함으로써 점차 심화되고 있다. 상당한 비용을 들여 심사 과정에 대한 방대한 영상, 음성 데이터를 생산하고 있음에도 그 가치가 온전히 발현되지 못하고 있다. 과거의 만평으로 시작한 발표를 통해 결국 개발 자금을 확보한 스코어러는, 이처럼 일회성 사회적 비용으로 소모되는 전문가들의 지적 생산물을 다가올 공공의 장소를 만들어가는 데 활용하기 위한 서비스를 제작하는 소셜 벤처로 설립됐다. *환경과조경435호(2024년 7월호)수록본 일부 정평진은 서울시립대학교에서 건축을 전공했다. 설계경기 기록원인 스코어러(www.scorer.co.kr)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2020 ‘사회적 건축: 포스트코로나 젊은건축가 공모’에서 대상을, 2022년 『환경과조경』 ‘조경비평상’에서 가작을 수상했다. 건축 디자인 전문지의 에디터로 일했으며, 여러 매체에 도시와 건축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조경가의 기록법] 중앙 집중 아카이빙
그룹한 어소시에이트에 입사한 후부터 회사 전체 데이터를 관리하고 있다. 개인 기록 생활보다는 다양성 측면에서 회사가 어떻게 설계 작업을 기록하고 있는지에 대해 적기로 한다. 참고로 그룹한의 설계 데이터는 40테라바이트 정도이며, 약 1,300개 프로젝트가 담겨 있다. 지원 팀을 포함한 9개 팀 50명 정도 인원이 서버로 연결되어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1중앙 집중 기록 체계 기록의 목표는 개인 저장으로 자료가 분산, 손실되는 것을 방지하고 자료 정리에 투입되는 시간과 에너지 최소화하는 데 있다. 그룹한은 중앙에 파일 서버를 두고 팀 폴더를 공유해서 작업한다. 한 폴더에서 함께 작업해 데이터 중복을 예방할 수 있고, 작업하면서 바로바로 정리된다. 전에는 윈도우 서버에 파일 관리 전용 솔루션을 별도 개발해서 사용했는데, 현재는 시놀로지(Nas) 파일 서버 9대를 연결해 활용하고 있다. 등록에서 보관까지 프로젝트를 수주하면 ‘프로젝트 관리대장’에 번호와 일반 개요를 등록하고 팀별로 프로젝트 폴더를 생성한다. 프로젝트 폴더는 연도별로 정리해 찾기 쉽게 하고, 프로젝트가 완료되면 납품한 최종 성과물(보고서, 도면, 내역 등)은 폴더 내 최상위에 별도 정리한다. 일정 기간(약 5년)이 지난 완료 프로젝트는 회사의 마감 프로젝트로 옮겨 회사 차원에서 데이터를 관리한다. 2 그룹한의 아카이브는 설계 업무 지원과 클라이언트 대응에 활용된다. 주요 기록물에는 1) 전략 프로젝트(설계공모, 제안설계 등)의 최종 결과물, 2) 사업 유형별(주거, 상업, 리조트, 공원 등) 대표 프로젝트 실적 자료, 3) 평면 및 투시컷 등 CG 자료, 4) 수상 실적 자료 등이 있다. 설계 데이터와 별도로 자주 찾는 정보(면적, 성격, 위치, 클라이언트 등)는 별도 기록하고 있다. 전체 프로젝트를 한눈에 파악하고 담당자, 실적, 사례 등을 빠르게 검색할 수 있다. 회사 캐드 도면(DWG)을 PDF로 전환하는 아카이브를 몇 년 전부터 진행 중이다. 1994년 이후의 설계 도면을 몇 달 동안 정리했는데 반 정도 진행한 듯하다. 조경설계 분야에 캐드가 도입된 이후 도면의 흐름을 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되리라 기대하고 있다. *환경과조경435호(2024년 7월호)수록본 일부 김기천은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2002년 월드컵 열기가 잦아질 즈음 그룹한 어소시에이트에 입사, 현재까지 근무 중이다. 이론과 담론이 풍부했던 2000년대 주요 조경 설계공모에 참여하며 다양한 스케일의 프로젝트를 통해 조경설계에 대해 깊이 고민할 수 있었다. 관습적 설계 접근을 경계하며 열린 시각에서 새로운 접근과 시도를 하는 데 관심이 많다.
[조경가의 기록법] 과정의 기록, 재가공의 기록
1 일정한 기록 습관을 갖게 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어린 시절 의무적으로 썼던 일기에는 흥미가 생기지 않았고, 중고등학교 시절 동창에게 보여주던 야한 소설은 관심을 받는 소소한 즐거움을 주었지만 성에 대한 호기심이 줄어들자 오래가지 않았다. 파란만장했던 이십 대에는 순간순간 북받치는 감정을 쏟아내기 위해 심경을 기록한 일기 형식의 글부터 여러 표현에 공들인 시까지 다양한 형식으로 생각과 감정을 적었다. 하지만 자취방을 자주 옮기면서 이러한 기록물을 챙길 여유는 없었다. 대학 시절에는 트레이싱지에 설계안과 도면을 그려 청사진을 만들고, 포토샵으로 졸업 작품 패널을 제작하면서 아날로그와 디지털 시대의 변화를 온몸으로 실감하며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한 ‘아카이빙 노마드(nomad)’로 살았다. 유학 직전, A3 파일철에 보관해온 드로잉들을 스캔해 데이터로 정리하는 것을 시작으로, 회사 서버에 흩어져 있던 수많은 설계 흔적을 모아 포트폴리오를 만들었다. 이렇게 디지털 아카이빙 생활이 시작됐다. 7년 동안의 프로젝트 폴더 속 먼지 쌓인 데이터를 다시 정리하면서 내 설계의 가능성을 발견했다. 부유하던 생각의 조각들이 관계를 맺기 시작했고, 하나의 흐름이 만들어지는 것을 경험했다. 기록은 갈 길 잃은 설계 방향을 제시하는 나침반이 되었고, 이를 계기로 나는 기록 정착민이 됐다. 유학길에 오르면서 많은 양의 데이터를 한번에 정리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프로젝트가 끝나거나 어떤 사건이 완료되면 그때그때 바로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0년 남짓한 기록 생활 속에서 두 번의 외장하드 고장으로 인해 기록물을 삼중으로 저장하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 1. 개인적인 프로젝트나 사건이 진행되는 동안 데스크톱 메인 드라이브와 외장하드(P)를 함께 사용하며, 작업된 파일을 두 공간에 동일하게 저장한다. 2. 매년 말, 작업을 완료한 폴더 속 불필요한 파일을 지워 용량을 가볍게 한 뒤 보관용 외장하드(S)에 저장한다. 3. 데스크톱 메인 드라이브(바탕화면)에서 자료를 지우고, 외장하드(P)에는 남겨둔다. 세 개의 저장 공간(데스크톱, 외장하드 P, 외장하드 S)을 활용하며, 컴퓨터 또는 외장하드 고장에 대 비해 모든 파일을 항상 두 공간에 저장하고 있다. 2 설계 결과물은 완결된 텍스트, 설계안, 이미지로 구성된다. 그런데 최종 설계안을 만드는 과정에서 수많은 사고의 전환이 일어나고 미완성의 드로잉이 생겨난다. 이러한 부산물은 최종 결과물만큼이나 중요하며, 이를 체계적으로 기록하고 보관하는 것은 설계의 질을 높이고 새로운 아이디어와 가능성을 탐구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따라서 나의 기록물은 결과물과 함께 과정에서 생겨난 부산물을 모두 포함한다. 초기에 트레이싱지에 그린 아이디어 스케치, 2D와 3D로 만든 여러 대안, 프로젝트의 특성에 맞춰 다양한 표현 방식을 시도한 이미지, 스케일을 확인하기 위한 모형 사진, 시공 과정의 사진, 준공 뒤 계절과 날씨의 변화에 따라 바뀌는 풍경을 찍은 사진 등 프로젝트의 시작부터 준공 뒤 모니터링까지 모든 것을 기록한다. *환경과조경435호(2024년 7월호)수록본 일부 조용준은 서울시립대학교와 펜실베이니아대학교에서 조경을 공부했다. CA조경기술사사무소 소장으로 새로운 광화문광장 기본 및 실시설계를 이끌고, 워커힐 더글라스정원 기본 및 실시설계, 이스탄불 하천 회복 프로젝트, 종로구 통합청사 설계공모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개인 자격으로 즉흥적 기획, 전시하지 않는 그래픽 작업 등을 즐기기도 한다.
[조경가의 기록법] 백업으로부터의 자유
1 한국, 호주, 미국의 다섯 개 회사에서 일한 이력이 있다. 현재 근무지인 필드 오퍼레이션스에 입사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기에, 특정 회사를 대변하기보다 BIM을 사용한 지난 7년간의 개인 경험을 토대로 글을 작성한다. 기록 루틴에는 여러 단계가 있다. 미시적 단계부터 시작하자면, 실무에 몸담은 지 13년 차가 되니 어느 시점에 프로그램 충돌이 일어나도 업무에 큰 지장이 없을 정도로 저장하는 게 몸에 뱄다. 갑자기 사무실 전기가 나가거나 프로그램이 꺼지면, 그 순간을 기지개를 펴고 동료와 담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로 삼을 정도다. 분명히 20분 이내에 나도 모르게 저장을 했을 테니까. 그 다음 단계는 날짜가 바뀔 때 파일을 새로 저장하는 것이다. 특히 프로젝트 초반에는 라이노를 통해 수많은 디자인 아이디어를 테스트해 보고 지우기를 반복하는데, 과거에 버린 옵션이 다시 거론되고 되살아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에 일단 보존해 놓는다. 디자인이 최종 확정되면 그동안 보존해 두었던 수많은 라이노 파일들을 정리한다. 가치가 없다고 생각되는 파일은 과감하게 지우려고 노력한다. 프로젝트 폴더를 간결하게 유지하는 동시에 서버의 메모리 용량도 줄이기 위함이다. 중요 설계 단계를 마칠 때는 납품한 파일과 도면집을 모두 모아서 특별히 지정된 폴더에 아카이브해 둔다. 프로젝트로서 작업물을 기념하기 위함인데, 유사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경우 “우리가 전에 어떻게 했었지?”하고 참고할 때 자주 찾는 폴더가 되기도 한다. 2 래빗을 이용한 3D 모델링과 도면 작업, 삽화 렌더링에 대부분의 업무 시간을 할애하다 보니 기록물의 종류가 래빗과 루미온에 치중되는 편이다. 래빗이라는 소프트웨어에 전반적인 3D 모델뿐 아니라 디테일, 도면집, 수량 산출, 협력사 3D 모델이 모두 내재되다 보니 래빗 파일만 주기적으로 백업해도 프로젝트의 핵심 디자인 정보를 보존하는 효과가 있다. 설계 세부 자료나 도면집을 보고 싶을 때 래빗 파일을 통해 열람할 수 있다. 필드 오퍼레이션스를 비롯한 많은 조경 회사가 루미온이라는 렌더링 프로그램을 쓴다. 루미온에 익숙해지면서 많은 사람이 실사에 가까운 삽화를 빠르게 생산할 수 있게 되었고, 이는 포토샵에 대한 의존도를 비약적으로 낮췄다. 루미온 파일만 있으면 수십 장의 삽화를 수십 분 내에 재생산할 수 있다. 이처럼 도면집과 삽화를 빠르게 재생산할 수 있게 하는 핵심 파일, 즉 래빗과 루미온을 중점적으로 아카이브한다. 라이노, 프레젠테이션, 보고서 등의 문서도 있는데, 이것들은 보통 작업했던 폴더 내에 그대로 남겨 보존한다. *환경과조경435호(2024년 7월호)수록본 일부 이홍인은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의 오피스박김, 호주의 맥그리거 콕샐(McGregor Coxall)과 하셀(Hassell), 미국의 하트 하워튼(Hart Howerton)에서 경력을 쌓은 뒤 필드 오퍼레이션스(Field Operations) 뉴욕 오피스에 입사해 BIM 전문가로서 래빗을 실무에 도입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역동적으로 발전하는 테크놀로지를 빠르게 접하고 이를 통해 어떻게 실무 효율과 완성도를 올릴 수 있을지 탐구하는 것이 삶의 즐거움이다.
[조경가의 기록법] 생존 기록
1나의 기록 생활과 기록 루틴 대부분은 과업 일정, 업무 내용, 아이디어, 개인 생활 등 조경 작업과 일상생활을 유지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반대로 말하면 기록하지 않으면 작업과 생활 유지가 어려울 만큼 건망과 망각이 심하다. 이를 보완하기 위한 필수 행동이 기록인 것이다. 즉, 기록은 나의 생존 또는 존재 그 자체다. 인문학적으로 가치 있는 시와 소설, 역사적 가치가 있는 사료, 우주의 원리를 밝히는 수학 공식과 같은 기록이 아니라 오래전 인류가 살기 위해했던 사냥, 채집, 은폐·엄폐, 이동, 수면 등과 맥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생존 그 자체로서 기록 루틴은 단순하다. 생각나는 그 즉시, 일정이 잡힌 바로 그때 그곳, 협의한 내용 그대로, 있는 그대로 전달하기 위해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이, 내용이 틀림이 없이 공유될 수 있을 만큼 정확하게 기록한다. 하지만 운전, 보고, 회의, 미팅, 협의, 현장, 통화 등 즉시 기록할 수 없을 때는 따로 시간을 내 기억을 더듬으며 정리한다. 그만큼 정확할 수 없으므로 운전, 미팅 중의 통화 내용은 상대방에게 메신저나 메일로 정리해 보내달라고 부탁한다. 다소 미안하더라도 부탁하는 편이다. 잘못 기억하거나 약속을 못 지키는 것보다는 낫다. 업무와 관련된 기록 루틴은 생존 기록과 다르게 복합적이다. 업무와 관련된 메일과 카카오톡 대화, 보고 자료, 설계 도면, 공사 내역서, 디자인 노트 등을 꼼꼼히 되새기면서 일정과 업무 내용을 정리해야 틀리지 않고 일을 진행할 수 있다. 업무 내용 크로스 체크를 위해 통화나 대화 등이 필요할 수 있으므로 사무실 가운데 회의용 테이블에서 수기로 번호를 매겨가며 기록한다. 하지만 이 루틴도 늘 지키기 쉽지 않다. 회사 운영과 개인 영달을 위해 다양한 성격의 일을 하다 보니 루틴이라는 안정 상태를 유지하는 행위가 사치일 만큼 바쁜 시기와 시점이 있기 때문이다. 디자인과 관련된 기록은 미루고 미루다 늘 막바지에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나름대로 늘 새롭고, 이전의 나와는 달라야 하고, 주어진 대상지는 어렵고, 기간은 늘 촉박하다. 그래서 최대한 최신 정보를 습득하고 더 이상 미룰 수 없게 된 상황에서 결정을 하다 보니 늘 막판에 가서야 개념에 맞는 디자인을 정하고 형태를 잡는다. 미리 잡고 나서도 막바지에 바뀌는 경우가 있다 보니 디자인 결정을 함부로 미리하지 않도록 루틴을 만든 것이다. 답변의 끝에서 질문에 대해 다시 생각해봤다. 기록과 루틴이란 단어가 불편하고, 흔쾌히 원고 청탁에 응했지만 몇 주 동안 글쓰기가 어려웠다. 그 이유를 답을 하면서 찾게 됐다. 나에게 기록이란 생존과 관련된 것이기에 다루기 어려웠던 것이다. 루틴이란 안정된 상태를 꾸준히 유지하기 위한 행동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늘 불안정한 상태와 관계를 이겨내야 하는 나에게는 아주 어려운 질문이었다. 2기록물을 아카이브한다는 개념을 가지고 한 건 아니지만 기록을 하다 보니 아카이빙된 것들이 생겨났다. 그러다 기록물의 가치를 알게 됐다. 별거 아니더라도 기록은 시간이 지나면서 설명되지 않는 무형의 가치를 가지게 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기록물 종류는 직접 만들어 쓰는 디자인 노트, 모든 일정이 담긴 종이 캘린더, 빠질 수 없는 인스타그램, 디자인 작업의 출발이자 끝인 옐로 페이퍼, 늘 지니고 있는 스마트폰의 메모장, 총 다섯 카테고리다. 첫 번째, 직접 만들어 쓰는 디자인 노트다. 회사 이름을 붙여 ‘라디오 노트’라고 부른다. 조경 생활 초기부터 수년간 사서 쓰던 다양한 노트들이 마음에 들지 않아 직접 만들어 쓰게 됐다. 원하는 노트 조건은 간단했는데, 선이 없고, 크기가 크지도 작지도 않고, 두께가 두꺼운 듯 안 두꺼워야 했다. 간단한 조건 같지만 이를 충족하는 노트가 어디에도 없었기에 회사 근처 제본 집에서 필요할 때마다 만들어 쓴다. 노란 빛 나는 미색 A4 용지 100장 정도를 레자크 재질의 표지로 열 제본하면 두께 1cm 정도가 되는데, 이를 B5 크기로 재단해달라고 한다. 이 노트는 각종 업무 와 업무 순서, 상세 스케치, 보고 내용 등 조경 업무 전반을 다 기록하는 아카이빙 자료다. 두 번째, 업무·개인 일정을 담은 종이 캘린더다. 스마트폰의 다양한 캘린더와 일정 관련 애플리케이션은 쓰지 않는다. 손과 펜으로 종이에 직접 적어야 그나마 그 상황이 이미지로 남아 기억되는 편이다. 애플리케이션에 쓰면 기억에 남지 않는다. 어느 순간부터 모든 일정을 종이 캘린더에 적기 시작했다. 스마트폰으로 옮겨가지 않은 유일한 기록이다. 덕분에 바쁜 삶이 시각적으로 그대로 인식돼 바쁜 삶이 말뿐 아니라 실제임을 주변에 쉽게 증명할 수 있기도 하다. *환경과조경435호(2024년 7월호)수록본 일부 김지환은 영남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씨토포스와 스튜디오 엘에서 실무 경험을 쌓았으며, 현재는 조경작업장 라디오의 대표다. 스스로를 작업반장, 설계공이라 칭하듯, 설계와 시공 사이의중재자(신호등) 역할의 중요성을 인지해 그 관계의 매커니즘을 이해하려 노력한다. 사회적 대기업을 만들어 도시 내 모든 디자인을 손대고 싶어 하는 야망과 유명 건축가와 조경가의 작업을 보며 절망과 환호를 즐기는 이상주의적 성향이 자신의 작품 세계를 더욱 견고하게 한다고 믿는다. 때론 못다 한 말을 해시태그로 덧붙이기도 한다. #라디오에이스 #정원작가 #은근히낯가려요 #조경뚱
[조경가의 기록법] 조경가의 드로잉, 설계적 상상과 탐험의 기록
‘조경가의 기록법’이란 특집 제목을 보고, 떠올린 이미지는 조경설계를 가르쳐 준 선생님의 낡은 수첩이었다. 정확히는 수첩이 아니라 수첩 커버인데, 선생님은 매년 속지를 교체하면서 계속 쓰는 가죽 수첩 커버를 사용했다. 군데군데 손때 묻고 세월의 흔적이 담긴 수첩. 지금도 선생님은 기억하고 싶은 것이 있을 때면 그 수첩을 꺼내서 한두 문장 짧게 메모하곤 한다. 부끄럽게도 제자인 나는 기록에 그다지 충실하지 못하다. 연초에 문득 드는 생각이나 기억하고 싶은 문구를 메모하고자 작은 수첩을 사곤 하는데, 연말에 펼쳐보면 깨끗한 백지가 절반이 넘는다. 하지만 텍스트 중심의 기록에 서툰 내게도 나름의 기록법은 있다. 바로 설계 작업의 중간적 기록인 드로잉이다. 이런 드로잉들은 좀처럼 다른 이들에게 드러나지 않는다. 대게 완성된 공간의 사진이나 정제된 도 면들이 먼저 외부에 공개되기 때문이다. 여섯 가지 질문에 답하기보다 자신만의 기록법을 묻는 4번 질문의 답인 드로잉에 대해 자세히 소개하고자 한다. 드로잉을 텍스트보다 많이 쓰는 편이며, 설계 초반 단계부터 완성 단계에 이르기까지 주로 사용하는 기록 매체다. 크로키-콘셉트 플랜-플랜팅 플랜-플랜팅 스케치로 이어지는 순차적인 설계 작업 기록이 그것이다. 4크로키, 대상지에서 이루어지는 첫 번째 상상의 기록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직접 해설하며 연주하는 영상 중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음악은 연주자가 연주를 시작하기 전에 이미 시작되었다(It’s already started)”라고 말하며, 공중에서 맴도는 선율을 살포시 끌어당기듯이 건반 연주를 시작하는 장면은 정말 아름다웠다. 나 또한 새로운 대상지를 만난 순간, 비슷한 맥락으로 혼자만의 상상에 빠지곤 한다. 대상지를 바라보며 그곳에 이미 어떤 장소가 펼쳐지고 있다고 상상한다. 이미 새로운 모습을 갖춘 공간 안에서 사람들이 모이고 흩어지며 시끌벅적한 소리가 나는 풍경을 상상한다. 그리고 이내 그 순간의 상상을 놓치지 않으려고 현장에서 빠르게 크로키로 그 장면을 기록한다. 크로키는 일반적으로 회화의 드로잉 기법 중 밑그림에 해당한다. 대강의 윤곽만 빠르게, 간결한 선으로 그려내는 기법인데 조경가에게도 매우 유용하다. 현장에서 느낀 감정을 글로 기록하기보다는 크로키 같은 빠른 스케치로 남기는 방식을 선호한다. 글로 적으려면 생각을 정제해 언어로 환원하는 과정을 거쳐야 해서 긴 시간이 소요되지만, 크로키는 더 직관적이고 빠르다. 또한 생생한 감정과 구체적인 상(像)을 기록하기 쉽다. 크로키는 이런 면에서 대상지에서 이루어지는 첫 번째 상상의 기록이다. 콘셉트 플랜, 다양한 대안을 탐색한 발자취로서의 기록 최근 지도하는 학생들에게 늘 이야기하는 말인데, 디자인은 결국 디자이너가 자기 이야기를 전달하는 행위이며, 그 이야기를 다른 이에게 얼마나 잘 전달하느냐가 중요하다. 디자이너가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사용하는 대표적 매체 중 하나가 플랜이다. 플랜은 공간의 전체 구성과 배치, 나아가 서사적 흐름까지도 하나의 이미지 내에 종합적 시각 정보로 함축한다. 그래서 어떤 프로젝트에서 플랜의 변화 과정만 훑어보더라도 전체 과정이 어떻게 진행됐는지 대략 유추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의 설계 스튜디오에서는 플랜의 기록을 중요하게 다룬다. 플랜은 프로젝트 초기부터 최종에 이르기까지, 컴퓨터로 작성한 것이든지 손으로 작성한 것이든지, 표현이 거칠든지 정교하든지 여부에 상관없이 가급적 모두 기록으로 남기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누군가에게 공개되는 최종 마스터 플랜이 나오기 전에 다양한 콘셉트 플랜이 작성된다. 콘셉트 플랜은 주요한 아이디어 중심으로 핵심 내용만 함축적으로 표현한다. 프로젝트 진행 과정에서 다수의 대안이 제시된 뒤 선택과 발전의 과정을 거친다. 마치 새로운 황야를 탐험하는 탐험가가 남긴 발자국처럼, 콘셉트 플랜은 설계가가 프로젝트라는 여정 동안 한 단계 한 단계 앞으로 나아간 흔적을 담은 기록물이다. *환경과조경435호(2024년 7월호)수록본 일부 최재혁은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조경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은 뒤, KnL 환경디자인 스튜디오에서 정원과 조경설계 실무를 익혔다. 2017년 오픈니스 스튜디오(Openness Studio)를 창업해 생태적 관점을 바탕으로 정원, 공공예술 분야에서 폭넓은 활동을 하고 있다.
[조경가의 기록법] 숨 쉬듯 관찰하고, 꾸준히 기록하기
1 사물이나 현상을 관찰하고 나름의 아름다움을 찾는 일은 나의 행복이며 오래된 습관이다. 어릴 적 살던 집 베란다 테이블 위에는 몇 가지 물풀이 사는 항아리 뚜껑이 있었는데 햇살이 드는 오후면 그 곁에 앉아 반짝이는 물 표면이나 송사리의 움직임, 생이가래 잎의 잔털을 오래도록 바라보곤 했다. 지금도 그때의 감각이 생생한데, 여전히 나는 물이 고인 곳이 있으면 가던 길을 멈추고 가만히 들여다보곤 한다. 관찰한 것을 기록하는 일은 나의 일상에 큰 즐거움이다. 군인 시절, 훈련과 행사의 사진을 찍는 일을 맡았던 나는 부대의 작은 초지에서 진행하는 훈련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봄, 가을이면 매주 같은 훈련장을 방문했었다. 그 당시 무엇보다도 눈에 띄었던 것은 작은 풀들의 변화였다. 민들레와 제비꽃으로 가득하다가도 한 주가 지나면 봄맞이꽃이 땅을 덮고, 여름 장맛비에 가끔 웅덩이가 생기다 가을이면 붉게 물든 띠가 들판을 뒤덮는 모습. 시기마다 풍경은 바뀌었지만, 이듬해가 되면 풀들의 돌림 노래가 반복됐다. 그 풍경을 관찰하고 기록할 수 있었기에 훈련장으로 가는 고된 발걸음에는 늘 약간의 기대가 묻어 있었다. 오늘은 어떤 풍경일지, 작년에 본 흰 솜털 같은 띠꽃을 올해는 언제 만날 수 있을지. 어쩌면 나는 일상에서 시간을 들여 관찰하고 돌볼 것이 필요한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관찰하고 기록하고 기억하며 다시 돌아올 무언가를 기다리는 일은 나의 일상을 더 풍요롭게 했다. 기록 행위는 나와 관찰 대상이 처한 상황에 따라 느슨해지기도 하고 중단되었다가 다시 시작되기도 했지만, 나의 일상에는 관찰하고 기록하는 무언가가 늘 있었다. 관찰을 통해 발견한 것은 손에 든 아이스크림 같아서 금방 녹아버렸다. 기억이 잊히지 않도록 바로 먹던지, 냉동실에 넣어두던지 해야 한다. 먹는 것이 기록물의 행태로 정리하는 행위라면 냉동실에 넣는 것은 정리를 미뤄두고 일단 기록한 것을 보존하는 행위 같다. 쉽게 말해 숙제를 미루는 것, 관찰할 때마다 미루지 않고 부지런히 기록하는 것을 목표로 삼지만, 일상이 너무 빠르게 흘러가다 보니 머릿속 냉장고에는 점점 먹지 못한 아이스크림이 늘고 있다. 2새, 나무, 풀꽃, 벌레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이들 삶의 꼴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일은 늘 즐겁다. 작은 생명들이 어떻게 서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지, 지구와 태양의 위치에 따라 어떻게 변화하는지, 또 사람은 어떻게 이들과 만나왔으며 오늘 이곳에서는 어떻게 자연과 만나고 있는지, 알면 알수록 경이롭고 아름답다. 오랫동안 잘 정리한 기록은 무심코 지나치던 현상을 새로운 관점에서 이해하게 도와주기 때문에 관찰한 것을 성실히 기록하고자 한다. 새의 경우 이버드(eBird)나 네이처링(Naturing) 애플리케이션을 활용해 관찰한 새의 종류와 개체 수를 사진과 함께 기록하는데, 더 알아낸 정보나 자세한 관찰 내용은 노션(Notion) 애플리케이션에 정리한다. 캘린더 기능을 활용하면 탐조한 날짜에 맞춰 계절별 도래 양상을 내가 찍은 사진과 함께 기록할 수 있어서 좋다. 식물 기록의 경우 조금 더 복잡한데, 직접 찍은 사진과 함께 속이나 과 수준에서 공통된 특성과 서식처별 특징, 분포, 기타 생물 분류군과의 관계, 발견한 관련 문헌이나 도감의 내용을 한 곳에정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고심 끝에 몇 년 전, 노션의 ‘데이터베이스’ 기능을 활용한 지금의 기록 플랫폼을 만들었다. 정원 만들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뒤로는 정기적 정원 기록 역시 중요한 기록물 중 하나가 됐다. 최지은과 함께 만든 제2회 서울식물원 식재 설계 공모전의 ‘37.5N 126.8E’가 그 시작이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한 달에 한 번은 꼭 방문했는데, 돌볼 곳이 늘다 보니 요즘은 계절에 한 번 가는 게 고작이다. 요즘은 집에서 가까운 광야숲1과 작년에 조성한 장안동 늘봄어린이공원의 작은 정원을 자주 찾는다. 바쁠 때는 겨우 몇 분, 여유 있을 때는 몇 시간을 어슬렁거리며 오늘은 어떤 변화가 있는지 관찰하고 사진이나 영상으로 기록한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잘못된 것과 잘된 것 무엇인지 파악하고 예상하지 못한 가능성을 발견하기도 한다. 찍은 사진은 프로젝트별 폴더에 날짜순으로 저장해두며 필요한 경우 노션의 기록 플랫폼에 정리한다. 3정리를 잘하는 편은 아니다. 작업물의 경우 많은 사람이 경험했듯 폴더나 파일명에 ‘최종’, ‘수정’을 우수수 덧붙이며 증식시킨다. 때로 어떤 게 ‘진짜 최종’인지 헷갈리기도 한다. 더군다나 요즘은 너무 바쁘다 보니 늘어나는 파일들을 제때 정리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모니터링이나 탐조하며 찍은 몇 백 장의 사진은 제때 정리하지 않으면 나중에 정작 필요한 사진을 찾기 정말 어려워진다. 노션에 깔끔하게 정리하기 어려울 때는 당일 찍은 사진을 넣은 폴더명에 날짜와 인상적인 관찰 내용을 적어 다시 찾을 때 도움이 되도록 한다. 4나만의 특별한 기록 방법은 없지만 좋아하는 방식은 있었다. 학생 때는 무엇이든 노트에 연필로 기록하는 것을 선호했다. 작은 노트 하나를 늘 가지고 다니며 아이디어든, 일기든, 짧은 글이나 낙서든, 뭐든 다 적었다. 카메라로 사진을 찍기 시작한 뒤로는 디지털 파일을 정리할 곳이 필요했다. 블로그, 구글 문서, 드라이브 등 몇 가지 매체를 경험했고 지금은 노션 애플리케이션에 안착했다. 언제 어디서든 핸드폰만 있으면 기록할 수 있고, 텍스트, 이미지, 영상, 음성 녹음, 인터넷 링크 등 다양한 형태로 정리할 수 있다. 서로 연결할 수도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더불어 인터넷만 연결되어 있다면 올린 파일을 원본으로 다운받을 수 있고 기록의 일부는 간편하게 웹 링크의 형태로 사람들에게 공유하거나 함께 편집할 수 있다. 5지금은 다양한 사람과 협업하고 개인 작업도 하다 보니 작업물의 경우 폴더를 구분하게 된다. 누구와 함께한 작업인지에 따라 크게 폴더를 구분하고, 그다음은 프로젝트 성격과 상관없이 시작된 날짜와 프로젝트 이름을 적은 폴더에 파일들을 넣어 정리한다. 6인스타그램은 많은 사람과 한번에 소통할 수 있는 창구다. 간편하게 소식을 전할 수 있고 내가 본 예쁜 것들을 자랑할 수 있어서 좋아한다. 2022년에 포트폴리오 삼아 개인 홈페이지를 만들어 작업물을 한 곳에 정리했다. 나를 잘 모르는 사람 입장에서 나를 파악하기 좋은 곳이지만 정리하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요즘은 거의 업데이트하지 않았다. 2년쯤 지났으니 새로 수행한 프로젝트를 올릴 시점일지도. *각주 1.SM엔터테인먼트의 후원으로 마인드풀가드너스 등 여러 주체와 협업해 조성한 서울숲 내 정원이다. 도심 생물 다양성 및 생태 감수성 증진을 목표로 삼은 곳이다. 역시 최지은과 함께 설계하고 여러사람과 협업해 만들었으며 올해 5월 확장 공사를 마쳤다. 신영재는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조경설계사무소 HLD에서 4년간 근무했다. 현재는 생태적 정원설계 및 시공 스튜디오 초신성과 디자인·아트 스튜디오 madswanattack(미친백조의공격)의 일원으로 활동 중이다. 심연 속에서 보이지 않는 것을 찾고 그들이 자리할 곳을 마련한다는 점에서 조경가와 시인은 닮았다고 생각한다. 작고 여린 것들이 쉬이 잊히는 옹색한 시대에 정의로운 인간이 되기 위해 고민해왔고 지금도 그러하다.
노들 글로벌 예술섬 조성 국제지명 설계공모
노들 글로벌 예술섬 조성 국제지명 설계공모 노들섬의 출발은 인공섬이었다. 1917년 용산 이촌동과 노량진을 잇는 철제 인도교를 놓는 과정에서 모래 언덕에 석축을 쌓아 인공섬을 만들었고 중지도라 명명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노들섬 동쪽의 고운 모래밭은 ‘한강 백사장’이라 불리며 여름엔 강수욕장으로, 겨울엔 스케이트장으로 이용됐다. 노들섬의 풍경이 변화하기 시작한 건 1970년대 한강 개발 사업이 시작되면서부터다. 한강대교 건설 및 한강종합개발을 통해 노들섬은 콘크리트 호안을 두른 또 다른 모습의 인공섬으로 변모하게 된다. 한강대교의 한중간에 자리 잡은 12만m2의 공유지는 풍부한 잠재력을 지닌 땅임이 분명했다. 이때 풍부한 잠재력은 노들섬 자체가 지닌 땅의 힘과 정체성이 다소 흐릿하다는 사실을 품은 표현이기도 하다. 그 사실을 보여주듯 빈 섬을 대상지로 다양한 개발 계획이 시도되고 무산되기를 반복했다. 2004년 이명박 서울시장의 ‘서울 오페라하우스’는 노들섬에 처음으로 ‘음악’을 들이려는 시도였다. 오페라라는 콘텐츠를 도출하게 된 과정은 알 수 없으나, 해외 유명 관광지에서 볼 수 있을 법한 물 위에 뜬 유선형의 건물이 청사진(장 누벨 설계)으로 제시됐다. 그 뒤 과도한 공사비로 첫 삽도 뜨지 못하던 사업은 2008년 오세훈 서울시장에 의해 ‘한강예술섬’으로 이름을 바꿔 재추진된다. 하지만 이 역시 큰 사업비와 그에 대한 경제적 타당성을 증명하지 못해 결국 무산된다. 2015년 노들섬은 조금 다른 국면을 맞는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이전의 노들섬 개발과는 다른 방식을 꾀하겠다는 듯 세 단계(1차 운영구상 공모, 2차 운영계획 및 시설구상 공모, 3차 공간 및 시설 조성 공모)에 걸친 공모를 계획했다. “노들섬 총괄계획가 서현 교수에 따르면 3차에 걸친 노들섬 공모는 시의 일방적인 사업 추진 관행에 대한 반성과 공모 과정 자체를 혁신하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 …… 엘리트가 나서서 어떤 종류의 건축물을 집어넣고 어떤 방식으로 활용하자고 주장한 후, 이를 통해 결과물을 결정하는 것은 구시대적 방식”(각주 1)이라는 것. 그 결과, 엠엠케이플러스(김지훈, 문동환)+맹필수(서울대학교)+오엠엠건축사사무소(박남규)+동심원조경기술사사무소(박경탁)의 설계안이 실현되어 복합문화공간 노들꿈섬이 완성됐다. 2023년 2월 오세훈 서울시장은 ‘도시·건축 디자인 혁신 방안’을 발표했다. 그는 “매력적인 서울시를 만들기 위해 도시·건축 분야의 디자인 혁신이 필요하다”며 노들섬 등 공공시설 네 곳을 디자인 건축물로 만들겠다고 선언한다. 노들꿈섬이 완공된 지 불과 5년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노들 글로벌 예술섬’이라 명명된 프로젝트는 사전공모 제도가 적용된 ‘선 디자인 후 사업 계획’ 방식이 도입됐다. 이에 따라 국내외 건축가 7명을 초청해 ‘노들 글로벌 예술섬 디자인 공모’(2023년 4월)가 우선 진행됐다. 서울시는 이 공모의 참여작을 대시민 포럼과 전시 등을 통해 공개해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한 뒤, 이를 바탕으로 다시 ‘노들 글로벌 예술섬 조성 국제지명 설계공모’(2024년 4월)를 추진했다. 공모 참가 자격은 국내 건축사로 한정됐다. 국내에 사무소를 개설하지 못하는 외국 건축사 면허 소지자의 경우, 한국 건축사사무소와 공동으로 응모해야 했다. 공모는 대상지를 공중부, 지상부, 기단부, 수변부로 나눴다. 공중부와 지상부는 공중 보행로를, 기단부와 수변부는 수변 문화 공원을 갖추어야 한다. 노들섬으로의 접근성을 높이고, 강변에서 보다 강을 적극적으로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을 발굴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또한 계획 방향에 담긴 네 가지 질문을 이번 공모의 핵심이라 볼 수 있다. 공중부어떻게 노들섬을 새로운 아이콘으로 만들 것인가. ‘아이콘’을 물리적 형태의 랜드마크로 볼 것인지, 강력한 문화 프로그램으로 볼 것인지 등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다른 해법이 도출되겠지만, 지침은 어찌되었든 공중부에서 노들섬 동쪽과 서쪽의 유기적 연결을 꾀할 것을 요구한다. 단순한 보행교를 놓는 것이 아닌 노들섬을 하나의 섬으로 인식시킬 수 있으며, 다양한 경험이 가능한 공중부를 계획해야 한다. 지상부어떻게 노들섬을 일상생활에서 시민이 즐길 수 있는 곳으로 만들 것인가. 동측은 보전과 이용을 함께 고려한 체험할 수 있는 자연과 어우러지는 정원(내추럴 가든)으로, 서측은 복합문화공간을 기본으로 하되 특별한 프로그램이 없더라도 다양한 일상 활동이 가능한 공간(라이프 가든)으로 계획해야 한다. 기존 건물, 맹꽁이 숲 등의 자연·생태 현황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기단부지상부-수변부를 오가며 어떻게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게 할 것인가. 계단, 엘리베이터보다 좀 더 자연스럽게 오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다양한 프로그램이 담긴 입체적 공간을 계획해야 한다. 특히 노들섬 수위 변화에 따라 대응할 수 있는 다층적 공간으로 계획해야 하는데, 그 예로 바운드리스 쇼어, 팝업월을 제시했다. 5~9m에 달하는 옹벽을 시각적 흥미를 유발하고 인지성을 향상시킬 수 있는 미디어 시설물로 활용해야 한다. 수변부물과 섬이 만나는 경계 부분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섬 가장자리를 수위 변동 또는 퇴적에 따라 자연적으로 변화하는 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 특히 노을을 배경으로 공연 감상이 가능한 수상 예술 무대를 포함해야 하고, 물을 적극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제시해야 했다. 서울시는 당선작으로 ‘소리 풍경(Soundscape)’을 선정했다. 소리 풍경은 노들섬이 가진 본질적인 장소성을 살려 기존 건축물을 최대한 존치해 주변부를 계획하고, 스테인리스 커브 메탈을 활용한 다양한 곡선으로 환상적인 풍경을 연출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심사위원장 톰 메인(Thom Mayne)은 “단순히 공모 자체뿐 아니라 더 큰 틀의 시각에서 노들섬의 지속가능성에 대해 작품마다 어떤 메시지를 전하려 했는지를 중점적으로 심사했다”고 말했다. 소리 풍경이 핀포인트 방식으로 기둥을 세우기 때문에 친환경적이며 최소한의 간섭만으로 공사가 가능할 것이라는 의견이다. 공모에 대한 종합의견서와 심사위원의 심사평은 프로젝트서울 누리집(project.seoul.g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서울시는 당선 팀과 오는 7월 설계 계약을 체결하고 기본·실시 설계를 진행한 뒤, 내년 2월에 공사를 시작해 2025년까지 1차 조성(수변부 팝업 월, 수상 예술 무대, 생태 정원), 2027년까지 2차 조성(공중부 및 지상부 보행로 및 라이프 가든) 완료를 목표로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 당선작소리 풍경(Soundscape)_토머스 헤더윅(Thomas Heatherwick)+헤더윅 스튜디오(Heatherwick Studio)+간삼건축종합건축사사무소 2등작구름_위르겐 마이어(Jürgen Mayer H.)+위르겐 마이어 운트 파트너 건축사무소(J. MAYER H. und Partner, Architekten)+토문건축사사무소 참가작 하나의 무대(The One Stage) _신승수+디자인그룹오즈건축사사무소 프롬나드 링(Promenade Ring) _강예린(서울대학교)+건축사사무소에스오에이+ 최영준(서울대학교) 더 리플즈(The Ripples) _비야케 잉겔스(Bjarke Ingels)+BIG(Bjarke Ingels Group)+정림건축종합건축사사무소 셰어링 노들(Sharing Nodeul) _김찬중+더시스템랩건축사사무소+정욱주(서울대학교)+제이더블유랜드스케이프 숨 _나은중+유소래+네임리스건축사사무소+오픈니스 스튜디오 주최 서울시 미래공간기획관 위치 서울시 용산구 양녕로 445, 446 일대 면적 119,854m2 (군사 시설 부지 740m2는 제외) - 상단부: 60,078m2, - 하단부: 59,036m2 공모 방식 국제지명공모 설계 범위 증축 설계 개요 상단부(공중 보행로): 공중부, 지상부 - 대지 면적: 60,078m2(도로 7,378.2m2 포함) - 증축 면적: 2,500m2 이내(기존 연면적 9,349m2) - 건폐율 60% 이하, 용적률 200% 이하, 층수 12층 이하 - 주차 대수: 법정 주차 대수 이상(기존 법정 주차대수 88대, 기존 주차 현황 99대) 하단부(수변 문화 공간): 기단부, 수변부 - 부지 면적: 59,036m2 예정 총공사비 2,557억원(제경비 및 부가세 포함) - 상단부: 2,310억원 - 하단부: 247억원(수상예술무대 특장공사비 5,368백만원 포함) 예정 설계용역비 13,966백만원(각종 인증 및 부가세 포함) 지명초청비 및 보상금 지명초청비: 8천만원(각 팀당) 당선작(1점): 기본 및 실시설계 계약체결 우선협상권 2등작(1점): 4천만원 참가작(5점): 지명초청비 운영위원 강병근(서울시 총괄건축가, 운영위원장, 공공건축관리자) 구자훈(한양대학교 교수, 도시설계) 윤세한(해안종합건축사사무소 대표, 건축) 임재용(OCA건축사사무소 대표, 건축) 진양교(홍익대학교 교수, 조경 및 경관 계획) 이승무(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사회·문화) 심사위원 톰 메인(모포시스 대표, 심사위원장) 김용화(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영화감독) 벤 반 베르켈(유엔스튜디오 대표, 건축) 이정훈(조호건축사사무소 대표, 건축) 정현태(뉴욕공과대학교 교수, 건축) 조용준(CA조경기술사사무소 소장, 조경) 최문규(연세대학교 교수, 건축) 진행 김모아, 금민수, 이수민 디자인 팽선민 자료제공 서울시, 참여 팀 **각주 정리 1. 김세훈, “노들섬, 공모 과정을 실험하다”, 『환경과조경』 2016년 8월호, p.91.
[노들 글로벌 예술섬] 소리 풍경
노들섬의 문화적 정체성을 강화하고 사람들을 풍부한 경관 경험으로 이끄는 노들섬의 비전을 제시한다. 소리 풍경은 모두를 위한 이벤트, 예술, 활동 프로그램을 통해 일 년 내내 도시가 내는 소리와 에너지를 대변하는 공간이 될 것이다. 접근 방식 중심부에만 집중하는 것을 넘어 섬 전체에 생동감을 불어넣고자 했다. 섬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노들섬의 공중부, 지상부, 기단부, 수변부 사이에 상호 작용을 만드는 법을 모색했다. 그 결과 섬의 가장자리를 부드럽게 만들고 조수의 변화에 따라 번성하며 생물 다양성이 풍성한 경관을 만드는 ‘워터 업(water up)’이라는 방식을 도출해냈다. 네 개 층의 상호 작용을 통해 섬 전체를 탐험할 수 있는 다양한 연결고리를 만들고, 예술적인 개입을 통해 섬을 활성화시켰다. 그 결과 수변에서는 더 부드럽고 차분한 자연적인 섬을, 하늘에서는 활기찬 섬을 만나게 된다. 부유하는 풍경 소리 풍경은 노들섬 위에 떠 있는 하나의 부유하는 풍경으로 구성됐다. 물결 치는 듯한 형태의 음파가 울려 퍼지며 서울의 스카이라인을 따라 펼쳐진 산의 형상에 반응한다. 이로써 산과 물, 섬이 한데 어우러져 시적 구도를 만들어낸다. 워터프런트에서 시작돼 스카이 워크 캐노피로 이어지는 하이킹 코스는 음악을 즐기며 독특한 관점에서 도시를 바라볼 수 있게 한다. 노들섬의 자산 노들섬은 다양한 경관을 제공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고 있다. 공중부, 지상부, 기단부, 수변부의 네 개 층으로 강을 탐험하고 보존하며 도시를 되돌아보는 등 자연을 포용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했다. 특히 잠재력에 비해 활용되지 못하고 있던 수변 공간을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으로 활성화시키고, 강과 부드럽게 연결하는 게 설계의 핵심이었다. 서울의 7개 산에 대응하는 7개의 부유하는 섬을 구성했다. 각 섬은 직교하는 꽃잎 형태의 여러 구조물로 이루어져 있으며, 꽃잎 구조물은 아래의 건물 그리드에 대응하는 중앙 기둥으로 지지된다. 작동하는 생태계 노들섬의 기능 향상을 넘어 새로운 기능과 기존 기능이 서로 소통하게 만들고자 했다. 노들섬은 섬 전체가 하나의 생태계, 즉 다양한 활동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공간 네트워크가 되어야 한다. 예술적 개입부터 즉흥 공연 공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높이의 공간을 연결해 다양한 활동을 강화하는 방법을 도출했다. 공중부: 섬에 왕관을 닮은 플랫폼을 씌우는 것이 아니라, 아래 공간과 본질적으로 연결되는 플랫폼을 만들고자 했다. 이를 위해 섬을 하나로 묶어 기능적인 이벤트 센터로 탈바꿈시킬 뿐만 아니라, 그 활동을 위쪽으로 확장하는 공중 플랫폼인 스카이 워크 캐노피를 구상했다. 지상부: 기존 인프라를 개선하고 현재의 노들섬을 존중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어떤 구체적인 개입이 기존 인프라를 활기찬 문화 커뮤니티로 변화시키고, 스카이 워크 캐노피가 어떻게 아래 공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지 분석했다. 기단부: 노들섬 둘레의 대부분은 거친 형태의 길이 차지하고 있다. 이곳을 날씨와 조수의 변화에 따라 모습을 바꾸며 필요에 따라 팝업 활동을 열 수 있는 매력적인 공간으로 바꾸었다. 수변부: 과거 한강에서 수영과 레크리에이션을 즐겼던 것처럼, 다시 도시와 시민이 강과 수변에서 즐길 수 있는 혜택을 되찾을 수 공간을 설계했다. 랜드마크가 아닌 목적지 스카이 워크 캐노피의 위뿐만 아니라 그 아래에서 일어나는 활동에도 주목했다. 이 캐노피는 노들섬을 새로운 이벤트 장소로 탈바꿈시키는 배경이 될 것이다. 아레나 규모의 이벤트를 열 수 있는 수변 원형 극장과 기단부의 광장은 활동적 테라스, 발코니 네트워크, 상단의 박스형 공간으로 둘러싸여 있다. 작고 친밀한 순간: 스카이 워크 캐노피의 공중 산책로에 마련된 전망대, 좌석, 예술 설치물은 길을 따라 거닐다 예상치 못한 발견의 순간을 마주하게 한다. 유연한 플랫폼: 서쪽 클러스터의 플랫폼 일부는 독립적이거나 문화적 여정의 일부로 작동하도록 설계됐다. 유연한 실내 환경과 결합된 야외 테라스는 일련의 실내 및 실외 전시 공간을 형성하며 아래 아트센터와 수직으로 연결된다. 야외 상영장: 기단부의 벽을 활용해 만든 통합 프로젝션 구역에서 낮 동안에는 예술 프로그램을 저녁에는 충분히 몰입할 수 있는 영상 상영을 즐길 수 있다. 길에서 뻗어 나와 강으로 이어지는 플랫폼에서 한강과 주변 경관을 배경 삼아 이 벽을 바라볼 수 있다. 일몰 공간: 부드러운 물결 모양의 지형으로 다듬어진 서쪽 잔디밭은 휴식할 수 있는 넓은 공간이다. 잔디밭 위를 가로지르는 캐노피는 사람들을 비바람으로부터 보호하고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공중 무대: 공중 무대는 주요 공연 공간과 연결하거나 독립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또 다른 이벤트 공간이다. 캐노피 형태에서 따온 독특한 무대 디자인은 필요에 따라 벗겨낼 수도 있다. 새로운 노들 사람들에게 기억에 남는 일련의 순간을 만드는 데 주목했다. 수변의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고, 강과 노들섬의 풍경을 반사하는 캐노피 아래를 거닐고, 서울 도심의 계곡을 하이킹하고, 유연한 음악 공연장에서 휴식하는 등 노들섬은 놀라운 경험의 장이 될 것이다. 섬세한 기반: 캐노피를 동쪽의 맹꽁이 숲 위에 배치해 하부 공간에 미치는 영향을 줄이고, 방문객이 기존 나무의 캐노피 사이를 거닐 수 있도록 설계했다. 휴식 공간과 전망대에서는 숨막히게 아름다운 경치와 아침 일출을 맛볼 수 있다. 지속가능한 표면: 자연주의적 접근 방식을 적용한 부드러운 조경 공간을 갖춘 공중 플랫폼은 유지 보수와 물 사용량 감소를 염두에 두고 설계했다. 이 야생 초원은 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경관을 보여줄 뿐 아니라 데크 포장과 비교했을 때 조성과 유지·관리가 훨씬 쉽다. 상호 연결된 네트워크: 대상지 전체의 높이를 신중하게 재조정했다. 더불어 타이들 브리지에서 출발해 기단부 계단, 기둥을 감싸는 나선형 계단, 내부에 숨겨진 승강기에 이르기까지 섬 전역을 탐험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만들었다. 캐노피와 기둥: 스카이 워크 캐노피의 기둥 크기와 캐노피 폭이 균형을 이루도록 설계하고, 기둥 가까운 곳에 나무를 심어 최적의 구조를 만들었다. 타설 콘크리트로 계획한 기둥 표면은 독특함 질감을 보여주는데, 아티스트와의 협업 등을 통해 이 벽면을 바꿈으로써 노들섬에 자신의 흔적을 남길 수 있다. 기단부 팝업 월: 팝업 월은 가장 눈에 띄지 않는 방식으로 기단부의 옹벽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기존 옹벽에 최소한의 개입을 통해, 유연하게 변화하며 계절적 요구 사항에 대응할 수 있는 통합적 장치를 삽입했다.
[노들 글로벌 예술섬] 구름
노들섬은 예술과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서울의 대표 공간으로 발돋움할 잠재력이 있는 땅이다. 한강의 품에 안긴 노들섬은 도시의 활기와 자연의 평온을 위한 사회적 장소로 다양한 경험을 제공한다. 자연과 문화를 융합하고 도시의 혁신적인 정신을 표현하기 위해 자유로운 형태의 구름 구조를 디자인하고, 대상지의 독특한 지형을 고려해 섬 가장자리의 형상을 반영한 곡선형 디자인을 시도했다. 대상지 전체를 아우르는 유동적이고 연속적인 디자인은 구름의 구조와 연계된다. 특히 복합문화센터 지붕 위에는 예술 산책로와 함께 새로운 예술 공간, 공연 및 야외 조각 전시 공간을 연출했다. 공중부에 조성한 구름 구조물 등은 서울의 혁신성과 미래지향성을 표현하는 상징이자 랜드마크 역할을 할 것이다. 도시와 자연을 잇는 태피스트리 섬의 지형에 단단히 고정된 수변부, 기단부, 지상부는 굽이치는 지형 윤곽과 매끄럽게 조화를 이룬다. 방문객들은 이곳에서 주변 환경과 소통하며 물과 육지의 역동적인 관계에 몰입하게 된다. 지형 윤곽은 강과 육지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고, 시민들이 주변 환경의 유동성을 받아들이게 유도한다. 섬의 독특한 지형에 맞춰 세심하게 설계된 이 곡선형 디자인은 다양한 프로그램을 매끄럽게 수용한다. 수상 무대에서는 강의 리듬과 공명하며 역동적인 문화 공연이 펼쳐지고, 인근의 전망대는 탁 트인 전망을 제공해 번잡한 도시에서 벗어나 자연과 교감하며 평온과 사색의 시간을 가질 수 있게 한다. 수변 지반을 확장시킨 수상 플로팅 플랫폼은 탐험 등을 통해 역동적인 수변 공간에 몰입할 수 있게 돕는다. 공공 수영장은 휴식과 활력을 되찾는 고요한 안식처로 기능한다. 이 혁신적 풍경의 중심에 위치한 작은 항구 데크는 미래 도시를 향한 관문으로서 교통 기술을 발달시키고, 도시 내 연결성을 높인다. 이를 통해 새로운 노들섬은 과거와 현재, 도시와 자연 사이를 잇는 연결고리로서 현대와 전통이 조화롭게 융합된 공간으로 거듭날 것이다. 전체적인 접근법은 섬의 기능을 향상시키고 강과 도시 사이의 고유한 연결성을 기념한다. 세심한 디테일 디자인을 통해 도시와 자연이 태피스트리(tapestry)처럼 직조된 새로운 노들섬에 일관성을 만든다. 이를 통해 물리적 경계를 뛰어넘어 인간과 자연의 공생을 실현하는 모델로 만들고자 했다. *환경과조경435호(2024년 7월호)수록본 일부
[노들 글로벌 예술섬] 하나의 무대
한강 최초의 인도교인 한강대교를 떠받치는 노들섬은 일평균 18만명 시민이 마주하는 서울의 중심 공간이다. 노들섬 반경 2km 안에는 여의도 국제금융중심지와 용산국제업무지구, 한강공원 및 용산공원이 있지만,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접근하기 쉽지 않아 머물기보다는 통과해 가는 교통섬이 됐다. 노들섬은 지난 10여 년 간 도시농업공원, 복합문화공간 등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했다. 노들섬의 역사를 관통하는 세 가지 키워드를 꼽으면 생태, 음악, 그리고 시민 참여가 아닐까. 세 개의 키워드를 토대로 새로운 노들섬을 연결된 섬이자 언제나 무대가 되는 곳으로, 시민이 만들어가는 정원으로 둘러싸인 하나의 무대로 만들고자 한다. 루프의 둥지 새로운 노들섬을 서울을 360도 전망할 수 있고 개인 이동 수단을 타고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무대로 조성하고자 했다. 1km 길이의 보행로 스카이 루프와 생태 루프를 엮어 만든 이 무대는 마치 수많은 브리지를 엮어 만든 커다란 둥지와 닮았다. 그늘을 만들고 비바람을 막는 동시에 빗물을 모아서 다양한 식물을 길러내는 생태 루프는 스카이 루프 안쪽에 미기후를 형성해 새와 나무, 사람을 모으고 연결한다. 18개의 수직 이동 코어로 지지되는 30m와 40m 높이의 스카이 루프 사이에는 다양한 형태의 공연장으로 기능하는 옥외 공간을 마련했다. 기존 건물 옥상에는 계단형 테라스, 잔디마당, 생태예술정원 등이 위치한 소셜 가드닝 플랫폼을 만들고, 이곳을 중심으로 스카이 루프, 기존 건물, 중앙 광장을 유기적으로 연결했다. 중앙 광장 아래에는 수변으로 열린 커다란 아트리움 라운지와 선큰 마당을 두어, 어느 곳에서나 강과 도시를 배경으로 만남과 놀이가 펼쳐지는 열린 공간을 조성했다. *환경과조경435호(2024년 7월호)수록본 일부
[노들 글로벌 예술섬] 프롬나드 링
단절된 순환, 고립된 장소들, 조각난 섬 노들섬은 동쪽과 서쪽이 단절된 두 개의 섬이다. 서측 문화 시설과 동측 자연 요소는 무관하게 존재한다. 동측 맹꽁이 숲은 섬에서 소외되어, 방문자는 시설이 집중된 서측 노들마당에만 머문다. 이는 노들섬을 통해 만나게 되는 한강의 경험을 제한하고 섬의 가능성을 축소시킨다. 2km에 달하는 노들섬 둘레에 지상부와 기단부를 연결하는 요소는 4개소에 불과하다. 이로 인해 옹벽 안쪽과 외부가 나뉘고 섬의 많은 부분이 수변 공간과 단절된다. 인공섬인 노들섬은 자연화된 영역의 범위가 얼마 되지 않는다. 특히 동측의 옹벽과 콘크리트 호안은 강의 경험을 삭막하게 한다. 프롬나드 링 ‘프롬나드 링(Promenade Ring)’은 노들섬에 이미 존재하는 자연 요소와 문화 시설을 이어주며, 조각난 섬을 하나의 섬으로 만드는 경관 경험의 루프다. 이 루프를 기반으로 하나의 노들섬을 만들기 위한 다섯 가지 전략을 세웠다. 하나의 섬을 위한 순환 고리, 프롬나드 링: 섬의 동서 양안을 강하게 묶어 통합하는 보행 체계인 프롬나드 링을 제안한다. 이 링은 섬의 모든 곳에 도달하며 고립을 해소하는 일종의 보행 고속도로다. 인공화된 섬의 재자연화, 자연의 후광: 낮은 제방을 기초로 삼아 섬 경계에 플랜터를 쌓는다. 이로써 선형 공원을 연장하고, 하안을 늘려 물을 담고, 수면 위 새로운 경계에 수생 비오톱을 품을 수 있다. 섬 안팎의 상호 전이되는 경험을 제공하는 프로그램 밴드: 섬의 경계를 보행로, 전망대, 전시장 등 다양한 건축 요소와 결합된 프로그램 밴드로 만든다. 밴드는 경험을 파편화하지 않으며 다양한 감각의 층위를 형성한다. 수변과 지상부의 수직적 연결, 링의 내외부를 수평 연결하는 총체적 매개 장치: 한강대교 남북단에서 건너 온 보행자가 섬 입구에서 바로 순환에 합류할 수 있게 한다. 4개소의 입체 교차로에서 노들섬 보행 체계에 바로 올라탈 수 있으며, 이곳에서 섬 곳곳으로 이어지는 다양한 경로를 선택할 수 있다. 링에서 지상부 및 옹벽 아래 자연형 순환 공원으로 이동할 수 있는 여러 수직 동선을 최소 100m마다 계획한다. 링과 기존 시설을 잇는 연결로를 계획하고, 체험형 가든(맹꽁이 숲)과 같은 레벨에서 언제든 숲으로 접근할 수 있는 확장된 판과 숲을 조망하며 머물 수 있는 좌석을 마련한다. 노들 프롬나드 링과 한강공원 노들지구: 노들섬의 위 아래를 연결하는 프롬나드 링은 한강을 새로운 방식으로 거닐게 한다. 한강 오픈스페이스의 선적 네트워크에서 노들 프롬나드는 잠수교, 한강연결공원과 함께 한강을 즐기는 입체적인 보행 명소가 된다. 노들섬 둘레를 따라 펼쳐지는 다채로운 소공원들의 집합은 한강공원 노들지구로서 한강공원의 새로운 목적지가 된다. 이는 노량~흑석 생활권에 한강변 공원을 제공하고 여의도와 반포를 잇는 구심 역할을 한다. *환경과조경435호(2024년 7월호)수록본 일부
[노들 글로벌 예술섬] 더 리플즈
서울 중심에 위치한 노들섬은 문화와 정원이 함께 어우러진 대표 명소다. 백로가 노닐던 징검돌을 뜻하는 ‘노돌’에서 유래된 노들섬의 이름에서 엿볼 수 있듯, 노들섬은 새가 자주 찾는 섬이었으며 생태 서식지이기도 하다. 지리적 이점에도 노들섬이 서울의 대표 정원이자 문화적 명소가 되지 못한 이유는, 섬이라는 대상지의 특성으로 인해 도시와 물리적으로 단절되어 있고 도시의 문화와도 연결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를 해결하고자 노들섬의 인프라를 재구상하고 지역 여건을 개선하며 주변 맥락과 환경을 활용하는 해결책을 제안한다. 세 가지 제안 첫째, 노들섬을 통합한다. 노들섬을 횡단하는 도로 위에 도로를 가로지르는 대담한 구조물을 놓아 분리된 섬을 다시 하나로 연결한다. 새롭게 놓일 이 구조물은 대로의 소음과 오염이 섬에 미치는 영향을 줄일 뿐 아니라 장애 요소를 진입 관문으로 탈바꿈시키는 통합적 디자인 요소가 된다. 둘째, 공간 활성화를 도모한다. 노들섬 중심에 위치한 캐노피는 다목적 중앙 허브로써 노들섬의 모든 방향으로 뻗어 있다. 이 구조물은 노들섬의 독특한 환경 조건에 적응하면서 다양한 문화 활동을 제공한다. 그늘을 제공하고 비를 막아주는 등 다양한 상황으로부터 방문객을 보호하는 쉼터로써 기능하고, 기존 건물들을 연결하면서 숲 꼭대기까지 이어지는 산책로가 되어준다. 건물과 캐노피가 유연하게 엮인 모습은 섬의 역동적 정신을 상징하며 다양한 상호 작용과 참여를 이끌어낸다. 셋째, 다양한 발견의 경험을 제공한다. 고립되었던 노들섬의 공간들을 수변부에서부터 숲 꼭대기까지 이르는 길과 조화롭게 연결해 하나의 탐험 경로를 만든다. 이러한 동선은 방문객이 다양한 야외 활동을 하도록 유도하고, 자연적인 휴식처로 사람들의 발길을 이끈다. 이는 서울의 스카이라인을 배경으로 펼쳐진 수상 예술 무대로 이어져 노들섬에서의 경험을 극대화한다. *환경과조경435호(2024년 7월호)수록본 일부
[노들 글로벌 예술섬] 셰어링 노들
다양한 예술 콘텐츠를 즐기기 위해 노들섬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꾸준히 많아지고 있다. 하지만 노들섬의 제한된 가용 면적은 늘어난 방문자를 수용하기엔 역부족이며, 강과 단절된 섬의 형태는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 불리하다. 이러한 노들섬의 표면을 입체적으로 확장해 사람들이 모이고 흩어지는 데 편리한 공간을 만들고자 한다. 이는 대규모 공연을 즐기는 사람과 산책을 즐기는 이들에게 노들섬을 자연스럽게 나누어 쓸 수 있는 새로운 환경을 제공할 것이다. 또한 표면 확장을 통해 증가한 흙의 양은 생물 다양성의 기반이 되어 다음 세대에게 풍성한 숲의 노들섬을 물려줄 수 있을 것이다. 입체적 표면 확장 노들섬은 가로지르는 도로를 기준으로 오른쪽 공간은 맹꽁이 숲과 헬기장으로, 왼쪽 공간은 노을마당으로 활용되고 있다. 반으로 나뉜 노들섬을 완만한 경사를 지닌 마운드로 연결해 하나의 섬으로 만들고자 한다. 기존 건물과의 관계를 고려한 마운드를 형성하기 위해 새로운 컨트롤 라인을 제안한다. 노들섬은 여름의 뜨거운 남동풍과 겨울철 매서운 북서풍 영향을 받는다. 마운드를 넓게 절개해 여름철에는 맹꽁이 숲을 지나며 차가워진 남동풍이 왼쪽 내부로 스며들도록 유도해 지면의 열기를 식힌다. 겨울철에는 차가운 북서풍이 사면을 넘어가게 되어 오른쪽 내부의 안정적인 환경 유지를 꾀할 수 있다. 정밀한 절개는 노들섬과 기존 건물을 연결해 섬의 활용도를 높이는 데도 효과적이다. 더불어 건물 주변에 계단형 옹벽을 조성함으로써 수변부와의 연결성을 강화했다. 노들섬의 공간 기존 엘리베이터를 수직으로 연장해 마운드 상부와 연결시켜 내부와 외부 공간을 유연하게 연결하고 공간의 쓰임새를 풍성하게 한다. 기존 잔디 광장을 입체적으로 확장해 잔디마당과 야외 무대, 생태로, 루프탑 등 여러 공간을 조성한다. 노들섬의 북쪽과 남쪽에 한강의 깊이와 유속 차이를 고려한 수변 공간을 조성한다. 기존 노을마당을 이용자의 밀도를 조절하기 위해 확장한다. 기존 라이브하우스 옥상은 마운드로 덮인 실내 데크 공간으로 만들어 카페와 레스토랑으로 활용한다. 완만한 경사의 상단부에서는 피크닉을 즐기고, 노을을 바라보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다. *환경과조경435호(2024년 7월호)수록본 일부
[노들 글로벌 예술섬] 숨
서울 한강의 중심에 위치한 노들섬은 단순한 섬이 아니다. 도심 속 섬이라는 특수성을 극복해야 하는 단점으로 여기기보다 장점으로 극대화해야 한다. 노들섬은 땅과 물, 자연과 도시, 일상과 비일상이 부딪히며 공존하는 살아 있는 지형 공간이다. 지형은 늘 변화한다. 살아 숨쉬는 한강 위의 플랫폼으로서 노들섬의 가능성을 바라본다. 도시의 허파 글로벌 예술섬 조성 전략으로 그리드 체계의 퓨처 인프라(future infra), 그물망 형태의 공중 보행로 지오웹(geo web), 작동하는 생태섬으로서 네이처 노드(nature node)를 제안한다. 퓨처 인프라는 노들섬과 미래 도시 서울을 상징하는 새로운 플랫폼으로서 유동하는 그리드 구조를 통해 랜드마크를 형성한다. 공중 보행로 지오웹은 낮은 언덕 같은 지형으로 도로로 인해 분절된 노들섬을 연결해 하나의 섬으로 인지하고 이동하게 한다. 공중 보행로 중간 중간에 놓은 징검돌은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문화·예술섬으로서의 상징성을 드러낸다. 섬 전체를 하나의 통합적인 생태계로 만들기 위해 지형과 수환경이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재구성하고 자연의 순환 체계를 적극적으로 도입해 지속가능한 장소를 만든다. 이를 통해 노들섬은 서울의 과거, 현재, 미래를 잇는 도시의 허파가 될 것이다. 한강의 자연을 감각하다 모두에게 열려 있고 접근이 용이한 수변 공간을 조성하기 위해 콘크리트 호안, 옹벽, 도로 등 인공 구조물로 분절된 영역들을 큰 지형의 흐름 속에 통합한다. 이를 통해 섬 전체를 통합 생태계로 만들어 지형과 수환경이 자연스럽게 연속되는 환경을 조성한다. 기존 잔디마당과 인공 호안은 생태 호안, 습지 등 수위 변화에 회복탄력성을 갖는 생태 공간으로 계획했다. 억새와 들풀을 심은 생태 호안은 사계절 변화하는 풍경을 선사하며, 호안부를 따라 섬을 둘러볼 수 있는 순환 산책로에서는 한강의 자연과 도시 경관을 입체적으로 느낄 수 있다. 계단식으로 나뉜 기단부와 호안부를 하나의 둔덕으로 연결하고, 습지 정원을 통해 지상부로부터 집수된 물을 단계적으로 저류해 자연 정화 과정을 거쳐서 한강으로 흘려보낸다. 이외에도 부유식 수상 무대 등을 통해 한강을 배경으로 다양한 연출이 가능한 수상 예술 무대를 만들고자 했다. *환경과조경435호(2024년 7월호)수록본 일부
[노들 글로벌 예술섬] 비평: 인간과 자연, 유토피아의 의미를 묻는 노들 예술섬 공모
2005년 오페라하우스 건립을 위해 시작됐던 노들섬 프로젝트는 수차례의 공모와 건설을 거친 뒤 지금에 이르렀다. 이번 공모에서는 국내 건축가 네 팀은 안타까운 고배를 마셨고, 떠오르는 논쟁적인 영국 디자이너 토머스 헤더윅(헤더윅 스튜디오)의 ‘소리 풍경(Soundscape)’이 당선작으로 결정되었다. 소셜 미디어에서는 이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발주처의 공모 의도와 절차에 대한 의구심부터 당선작에 대한 호불호 논란까지, 그야말로 건축계의 여러 관점을 한꺼번에 엿볼 수 있는 요즘이다. 공교롭게도 나는 작년에 헤더윅의 신간 『더 인간적인 건축(Humanize)』을 번역하고 올해 출간을 기다리던 참에 이 공모 결과를 접했고, 궁금한 마음에 너덧 시간에 걸친 공개 심사 영상을 찾아서 봤다. 여러 모로 한국 건축의 현 상황을 잘 보여준 의미 있는 발표회였다. 도시의 아이콘을 만들려는 발주처의 공모 의도가 확실히 공표되었고, 초대된 국내외 건축가들이 취한 접근도 인상적으로 대비되었다. 당선작은 공모의 의도에 가장 부합한 것으로 보이며, 당선작 선정에 관해 심사위원들 간의 이견은 없었다고 언론은 전한다. 하지만 건축계의 온라인 공론장에서는 여전히 당선작에 대한 불호가 상당해 보이고, 국내 건축계의 불황 속에서 용산 일대의 개발주의에 랜드마크 건축을 동원하려는 시 당국의 움직임은 당선작에 대한 불호를 더 부채질하는 느낌이다. 헤더윅의 당선작은 서울시의 아이콘주의에 동원된다는 의심을 피해 갈 수 없지만, 작품 자체는 단순한 아이콘을 넘어 사회적 자연의 매력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단지 지나가는 길이 아니라 대중이 머무를 객석의 용도로 공중 공간을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자연과의 조화를 꾀한 안이기 때문이다. 다만 헤더윅의 말대로 구조물을 떠받치는 기둥을 예술가와의 협업으로 얼마나 아름답게 장식할지, 그리고 얼마나 다채롭고 유기적인 조경이 이뤄질지가 관건일 것이다. 구조물과 유리된 채 모래알처럼 분산된 조경과 무표정한 고가도로 하부를 남긴 서울로7017을 재탕할 게 아니라면 말이다. 그의 실험 정신이 한국에서 얼마나 예산 초과를 하지 않고 제대로 실현될지 지켜볼 일이다. 그에 비해 위르겐 마이어는 구름을 개념으로 하여 전반적으로 더 시적이면서도 무난한 현실감이 느껴지는 매력적인 안을 발표했지만, 헤더윅의 더 극적이고 음악적인 제안에 심사위원단의 맘이 기운 듯하다. 해외 건축가 세 팀 가운데 작년 1차 대시민 포럼에서 발표된 디자인을 비교적 일관되게 유지한 경우는 헤더윅과 비야케 잉겔스(BIG)로 보이는데, 잔물결을 주제로 한 비야케의 안은 상징성이나 시학, 기능, 심지어 발표 면에서도 모두 기대를 채워주지 못했다. 아울러 국내 건축가들의 발표를 보면서 인상적으로 느낀 점 하나는, 노들섬의 윤곽과 둘레길의 유행 때문인지 몰라도 참여한 모든 국내 건축가의 안에서 중정형 회로 개념이 가족유사성처럼 발견된다는 사실이다. 강예린+SoA는 타원형 둘레길 자체가 주된 콘셉트고, 나은중+유소래(네임리스건축사사무소)는 비정형적으로 흘린 산책로를 두었음에도 그 위에 직사각형 회로를 덮었으며, 김찬중(더시스템랩건축사사무소)은 타원형 회로를 복수로 증식시켜 중간 중간 자르고 가지를 친 느낌이다. 신승수(디자인그룹오즈건축사사무소)는 길보다 벽의 객석에 가까워 보이지만 역시 길이 회로처럼 공간을 두르고 있다. 작년 1차 포럼에서는 이런 가족유사성이 발견되지 않았었다. 1년간 무 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공개된 1차 경쟁작들을 보면서 모두 이렇게 유사한 기하학에 이끌리게 된 계기라도 있었던 것일까? 경쟁의 압박 속에서 작위적인 선을 그리지 않겠다는 합리성에 대한 강박이 작동한 것이었을까? 뭐가 됐든 간에 노들섬처럼 그야말로 자연 속에 펼쳐질 공간에서도 자유로운 선을 느끼기 어렵다면, 도시의 격자에 매여 사는 대중은 어디서 인간의 자유로운 선을 느껴야 할까? 물론 자유에 대한 생각은 저마다 다를 것이다. 나은중+유소래는 강력한 직사각형 밑에 우연성에 입각한 듯 자유로운 곡선의 지오웹(geo web)을 대비시켰지만, 그 곡선 또한 마치 물감을 흘려 그린 듯한, 그러니까 역시 자연 법칙에 기대고서야 그릴 수 있었던 추상적 형상으로 보인다. 언뜻 나비의 날갯짓을 연상시키는 비야케의 안은 중심부에서 요동치는 휘황찬란한 곡선을 사용했지만, 사람들의 다채로운 경험을 반영하기에는 지나치게 자기만의 형태적 자유에 사로잡힌 모양새다. 반면에 헤더윅의 곡선은 사람들을 위요하고 떠받치는 사용성을 갖추면서도 인간의 손으로 그려낸 느낌을 준다. 숲 속에서 인간을 떠받쳐 주는 깔때기 식물 같은 곡선의 이미지는 초월적 자연의 무위성을 추상적으로 재현한게 아니라, 서울의 산세에 유기적으로 반응하는 인간적 공간을 구상적 으로 표현한 것이다. 여기서는 무위의 자연이나 개인적 표현의 자유보다 자연 속에서 여럿이 함께 경험하는 자유가 더 중시되고 있다. 헤더윅의 안은 인간적인 표현으로 자연을 유비하지만, 반대로 김찬중과 나은중+유소래의 안은 역시 인공적이면서도 외부의 패시브한 시스템보다 내부의 액티브한 시스템을 적극 활용하거나 미래 변화에 대비한 수직 격자 시스템을 덮어씌우는 식의 기계적 충동을 강력하게 드러낸다. ‘인공(人工)’이라는 한자말은 주로 부자연스럽고 작위적이라는 의미로 쓰여 기계적인 것과 혼동되곤 하지만, 사실 축자적 의미로는 그저 ‘인간이 만든’ 것을 뜻할 뿐이다. 기계적인 것은 인공의 일부일 뿐, 인공 자체가 기계적인 것은 아니다. 인공물의 부자연스러움을 극복하고자 더 ‘자연스러운’ 인공물을 원하는 것은 인간의 자연적 본성에 따른 욕망이지만, 그것을 기계적 충동으로 대체하려는 것은 인간을 자연으로부터 더 소외시키는 페티시즘이다. 이것은 분명 헤더윅의 안에 담긴 가우디적 영감과 반대되는 것이다. 물론 가우디의 구조는 매우 과학적이지만, 그의 조형은 자연을 유비하는 인간적인 손맛을 보여주기 때문에 대중의 사랑을 받고 오랫동안 기억되어 왔다. 헤더윅은 실제로 가우디 때문에 건축을 다시 공부하기로 마음먹은 사람이기도 하다. 자연에 대한 접근은 이번 참가작들의 성격을 가르는 중요한 논점이다. 김찬중과 나은중+유소래의 기계적 충동이 인공을 페티시화한다면, 강예린+SoA는 인공을 최소화하며 자연을 회복하려는 욕망을 드러낸다. 기존 노들섬의 자연을 최대한 건드리지 않는 방향을 취하면서 강과 면하는 외측 콘크리트 경계를 없애는 안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경계의 해체는 헤더윅의 안에서도 다른 방식으로 제시되고 있다. 강예린+SoA의 안은 자연을 가급적 건드리지 않기 위해 인공을 최소화하려 하지만, 그렇게 최소한으로 두른 타원형 공중 도로는 인공적인 기하학의 전형을 보여준다. 반면에 헤더윅의 안은 자연과의 유비 속에 비교적 자유로운 인공을 녹여낸다. 전자는 여전히 인공과 자연의 이분법에 기초하지만, 후자는 그렇지 않다. 오히려 인공이 자연을 모방하는 충동으로 나타난다. 이번 공모의 결과는 인간-자연의 이분법에 기초한 자연 중심주의보다 자연 속에서 공생하려는 인간의 유토피아적 충동, 말하자면 인간적 자유와 자연의 적극적인 어울림에 손을 들어준 것이다. 김찬중과 나은중+유소래의 기계적 충동, 그리고 강예린+SoA의 자연 회귀 욕망은 모두 인간 중심주의에서 벗어나려 한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한편 인간과 자연 모두를 기계적 합리화로 귀속시키려는 전자의 페티시즘은 인간-자연의 이분법에 사로잡힌 후자의 강박을 뒤집은 도착적인 충동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모두는 헤더윅의 인간-자연 공생주의와 대비를 이룬다. 그렇게 한국 팀들은 자연 속에서 사람들이 함께 음악을 즐기는 공간보다 보행자를 개별화시키는 길에 치중했다. 도시의 일상에서 벗어난 곳에서 대중이 누릴 자유를 맘껏 상상하지 못한 채 말이다. 그들의 자유로운 상상을 가로막은 것은 결국 이분법에 사로잡힌 윤리적 명령인 듯하다. 마치 ‘인간은 자연을 해치는 존재이니 가급적 자연을 멀리하고 자연에서는 자유를 자제해야 한다’는 식의 초자아적 명령 말이다. 하지만 그런 금지의 이분법에 빠질수록 인간은 자연과 접촉하지 못한 채 더 소외되고, 소외가 지나칠수록 더 기계화하기 마련이다. 산업 문명에 대한 비판적 사상가로 유명한 이반 일리치(Ivan Illich)는 ‘공생공락(共生共樂, conviviality)’의 윤리를 대안으로 제시했는데, 이는 사람과 사람 사이, 사람과 환경 사이의 창의적이고 조화로운 관계 맺기를 주문한 것이었다. 즉 인간은 자연을 멀리할 게 아니라, 자연과의 조화로운 관계 속에서 함께 하는 기쁨과 즐거움을 누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사회와 자연은 하나의 ‘사회적 자연’으로 만난다. 어쩌면 우리는 그간 자연과 동떨어진 콘크리트 환경 속 각자도생에 길들여진 나머지, 자연 속 공생공락에 대한 상상을 억압해왔던 것이 아닐까? 물론 헤더윅의 소리 풍경이 그런 공생공락의 기능을 잘 해낼 수 있을지는 더 두고 볼 일이다. 이 작품은 애초에 상류층을 위한 오페라하우스로 시작됐던 노들섬 기획을 대중을 위한 음악섬으로 바꾸는 사회적 자연의 유토피아를 지향하지만, 문제는 그런 충동에 찬물을 끼얹는 계획이 인근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유토피아’라는 말에 오해가 없기 바란다. 이는 현실과 동떨어진 공상적 형태의 세계가 아니라, 이데올로기적 현실을 바꾸려는 충동 자체를 말할 뿐이다. 서울시는 인근 용산 정비창 부지에 무려 100층 안팎에 이르는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 계획을 진행하고 있다. 그런 초고층 건물군이 들어설수록, 헤더윅이 설계한 공중 구조물의 율동적인 곡선들과 불협화음이 생길 것이다. 서울시는 ‘예술섬’과 용산 초고층 단지를 모두 ‘랜드마크’ 개발로 묶어 진행하고 있는 듯하지만, 정작 그 예술섬 랜드마크의 주된 특징인 ‘대중을 위한 랜드스케이프’를 초고층 랜드마크가 해치며 탈취한다는 사실에는 별 관심이 없는 듯하다. 우리는 이 모순적인 개발 이데올로기를 더 비판해야 하지 않을까? 경관을 사유화하는 기업 자본의 초고층 이데올 로기를 비판하고, 공공을 위한 유토피아적 충동은 방어해야 할 때가 아닌가. * 이 글은 필자가 페이스북에 올렸던 글을 수정·확장해 쓴 글이다. 조순익은 건축과 도시, 디자인, 비평 분야를 전문으로 작업해온 번역가로, 다수의 단행본과 간행물을 번역했다. 주로 정신 분석과 문화 비평의 관점에서 건축 현상을 해석하는 데 관심이 있으며, 저서로 『보는 기계와 읽는 인간: 건축문화 텍스트 읽기』가 있다.
[제도가 만든 도시] 도시의 기능
도시라고 부를 만한 맹아가 나타난 수천 년 전이나, 전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각주 1)이 도시에 살고 있는 공히 도시의 시대인 현재나, 우리는 도시의 어떤 곳에서는 생산하고 거래하며, 어떤 곳에서는 교류와 유흥을 즐기고, 어떤 곳에서는 쉬면서 사적인 시간을 보낸다. 이렇게 구분되는 서로 다른 활동, 즉 도시의 기능이 도시 내 특정 위치를 점한 모습은 당연히 사회적 결과물이며 임의적이거나 우연에 의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도시 기능의 특정한 공간 배열은 여러 곳에서 유사하게 반복된다. 버스정류장이나 지하철역 앞에는 달달한 냄새를 풍기는 빵집과 사은품을 쌓아둔 핸드폰 가게가 있고, 골목길 어귀 편의점에 꼬맹이와 편맥족(편의점 맥주+족)이 모여드는 저층 주거지의 흔한 풍경이 그런 예다. 도시 스케일에서도 마찬가지다. 구분되는 서로 다른 도시 기능의 배열을 ‘도시 공간 구조’라고 하며, 특정한 패턴이 다수의 도시에서 발견된다.(각주 2) 예를 들어 모든 도시 기능이 옅어지고 있는 구도심, 그에 인접한 기차역·버스터미널 주변으로 병원·상가·재래시장이 모여 있는 상업 지역, 그 밖으로는 1980~1990년대 구도심에서 옮겨온 시청과 금융·세무·법무 사무실 등이 모인 (이제는 오래된) 신시가지의 중심과 그 주변을 둘러싼 아파트 단지, 시가지에서 벗어나 고속도로 나들목 근처에 위치한 산업 단지와 그곳의 젊은 근로자가 사는 원룸촌 등은 한국 많은 지방 중소 도시에서 발견할 수 있는 전형적인 도시 기능의 배열이다. 도시에서 특정한 기능의 위치는 다수의 도시 구성원에 의해 긴 시간에 걸쳐 자연스레 결정되기도 하지만, 소수에 의해 매우 의도적으로 설정되기도 한다. 전자의 예로 세계의 오래된 많은 항구 도시는 항만을 바라보는 경사지에 형성된 주거지와 같은 전형적인 도시 경관을 공유한다(그림 2). 사람의 힘으로 바꾸기 어려운 지리·기후적 특성과 특정 도시 기능에 요구되는 사회·공간적 조건을 따르는 집합적 선택이라 할 수 있다. 후자는 비단 근대 이후 도시계획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세계의 여러 역사 도심에는 그 시대의 관념적 가치와 위정자의 정치적 의도가 투영되어 있고(그림 3), 왕조가 사라진 현대 도시 공간에서도 공간을 매개로 한 정치가여전히 시도된다.(각주 3) 현대 도시계획에서 도시 기능의 위치를 인위적으로 정하는 가장 중요한 목적은 물론 공적 이익이다. 산업 단지나 위락 시설로부터 주거와 교육 시설의 환경을 보호하고, 접근성이 높은 지역은 고밀도의 상업 및 업무 시설을 짓도록 하는 등 토지의 ‘합리적 이용’이 그 공적 이익에 해당한다. 공적 이익을 위해 특정 도시 기능이 도시 내 적정 위치에 들어서도록 하기 위한 대표적 제도가 제2종 일반주거지역, 근린상업지역 같은 용도 지역, 즉 조닝(zoning)이다. 한국 국토의 모든 부분은 예외 없이 9개 용도 지역(각주 4) 중 하나로 지정되어 있으며, 그 종류에 따라 어떤 용도의 건물을 지을 수 있는지 혹은 지을 수 없는지, 어떤 규모로 지어야 하는지가 규정되어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실제 도시 공간의 기능 배열은 용도 지역의 배열과 일치할까? 그림 3. 청의 수도였던 북경(베이징)은 무려 우주의 중심으로서 땅은 네모나고 하늘은 둥글다는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전통적 우주관을 따라 자금성을 중심에 두고 환이라 불리는 사각형의 위계 구조를 이룬다. 내부는 격자형 블록인 리방(里坊)과 일정한 간격의 내부 도로인 호동(胡同)으로 분할된다. 호동은 사회 통제의 공간 단위이며, 호동에 면한 획지의 너비는 곧 신분과 권력 혹은 부의 가늠자다. 전봉희, 『中國 北京 街家 風景: 2000년 북경 서구렴자호동 현장기록』, 서울:공간, 2003. *환경과조경435호(2024년 7월호)수록본 일부 **각주 정리 1. 2050년경에는 인류의 70%가 도시에서 살 것으로 예상된다. www.worldbank.org 2. 버제스(Burgess), 호이트(Hoyt)를 비롯한 여러 학자는 도시에서 나타나는 CBD와 사회경제적 계층에 따른 주거지 및 소비 공간, 산업 단지, 느슨한 교외 주거지 등이 이루는 특정한 배열을 유형화한 토지 이용 모델(land use model)을 제시했다. 3. 지금은 없어진 여의도광장, 서울 이곳저곳에 추진되고 있는 국가 상징공간이 그 예다. 4. 도시지역 4종(주거, 상업, 공업, 녹지)과 관리지역 3종(보전관리, 생산관리, 계획관리), 농림지역, 자연환경보전지역 유영수는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이로재와기오헌에서 건축 실무를 경험했다. 런던 정치경제대학교에서 도시 디자인과 사회과학 석사과정을 마치고 돌아와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며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병행했다. 현재는 인천대학교 도시건축학부에서 법, 제도, 현대 도시설계 이론, 스튜디오를 가르치고 있다. 건축과 도시를 아우르는 스케일에서 개별적인 공간 현상과 법제 사이의 관계를 연구하고, 계획과 디자인의 역할을 확장하기 위한 이론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어떤 디자인 오피스] 랩디에이치
조경에 대한 진심과 믿음으로 그래도 나름 (조경에) 진심입니다 조경을 한다는 것. 어느 일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아직 조경의 불모지라 불리는 한국에서 조경 그리고 조경 설계를 계속해 나간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일생 전부를 걸 정도의 투철한 사명감을 가지고 이 일에 임하는 건 아니지만, 어느 정도 조경을 향한 진심을 마음 한편에 품지 않으면 때로는 버티는 것조차 힘에 부칠 때가 있다. 랩디에이치 서울(Lab D+H Seoul)(이하 랩디에이치)은 조경에 진심을 품은 사람들이 모인 디자인 그룹이다. 물론 각자 마음에 품은 진심의 크기와 형태는 제각각일지 모른다. 하지만 일상 중에 그리고 프로젝트에 임할 때 틈틈이 같이 나누는 대화에서 우리가 각자 나름의 모양새로 진심으로 조경을 대하고 있음을 느끼곤 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서로에 대한 존중과 신뢰를 바탕으로 구성원 전체의 민주적 협력 과정을 통해 조경설계라는 방법으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가는 데 동참하고 있다. 진심은 믿음을 동반한다 조경에 진심인 우리는 함께 공유하는 몇 가지 믿음을 바탕으로 프로젝트에 임한다. 조경설계가 환경의 근간을 형성하고 도시의 작동을 돕는 적극적 역할을 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또한 조경의 업역이 물리적 공간의 설계와 단순한 구현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조경의 사회적·환경적 책무와 문화적 중요성을 믿는다. 조경설계라는 창조적 행위가 우리의 삶을 풍부하게 하고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가져오길 바란다. 랩디에이치는 조경에 대한 믿음을 구체화하는 방법으로 대상지의 고유한 맥락을 고려해 정교하고 결정적인 맞춤형 설계 해결책을 제시하려 한다. 이러한 접근을 통해 각 프로젝트는 대체 불가한 독창적인 의미를 가지며, 이용자에게 새로운 공간 경험을 제공하리라 기대한다. 우리가 만든 공간을 이용하는 시민들에게 지역과 사회, 자연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더 나은 생활 환경과 지속가능한 향상된 도시 기능을 제공하기를 바라며 매일 작업에 임한다. 랩디에이치의 랜드그라피(각주 1) 한강에 만든 456개의 앉는 쉼터 2020년 한강변 보행네크워크 설계공모 당선을 시작으로 다양한 성격과 규모의 한강변 프로젝트를 연속으로 진행했다. 일종의 프랜차이즈 시리즈 성격의 ‘한강변 공공 쉼터 만들기’의 일환으로 진행된 이들 프로젝트는 미시적이고 구체적인 접근을 통해 연속된 소규모 대상지 꾸러미에 적절한 창의적 해결책을 제시했다. 한강공원을 이용하는 서울 시민에게 한강의 자연과 교감할 수 있는 수많은 접점을 제공해 일상 속 삶의 질을 높이고 나아가 지역 사회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외부 공간 기획과 브랜딩으로서의 조경 개업 초창기 진행한 중국 대형 개발 사업은 한국과 달리 프로젝트의 색과 방향성을 정하는 기획 과정이 일반적으로 수반됐다. 그런데 최근 한국 시행사와 진행하는 개발 사업에서도 이러한 기획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외부 공간 브랜딩의 완성도와 개성에 따라 프로젝트의 생명력이 결정된다는 인식이 널리 퍼지고, 성공 사례의 힘을 함께 목도한 결과로 보인다. 우리도 과업의 기획이 결정된 뒤에 참여하는 것이 아닌, 설계 전 선행 작업이라 여겨지던 기획 및 브랜딩 과정부터 참여한 적이 있다. 지금부터 소개하는 프로젝트들은 이러한 참여 방식을 통해 조경적 관점을 기반으로 방문객을 끌어들이는 매력적인 요소를 발굴하고 프로젝트의 성격을 규정하는 앞 단계와 준공 후 이용 행태 예측까지를 포괄하는 전체 단계를 조화롭게 아우르려 노력한 결과물들이다. S사 복합상업시설은 새로 만들어질 대형 상업 공간 옥상 조경 프로젝트로 실내 리테일의 보조적 역할로만 규정된 기존 옥상 외부 공간을 하나의 매력적인 목적지로 재설정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고메 포레스트(Gourmet Forest)와 키즈 와일더니스(Kid’s Wilderness)라 명명하고 구성한 두 층의 옥상정원을 실내외와 두 층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고유한 장소성과 목적성을 가지는 입체적인 옥상 공간으로 기획 및 디자인했다. 평창 청옥산 지방정원은 만개한 샤스타데이지 군락이 매력적인 평창군 청옥산 정상부 고원 들녘에 새로운 지방정원을 기획·설계하는 프로젝트다. 현재의 고유한 경관의 조건과 매력을 면밀하게 존중하면서 다채로운 매력을 더하는 정원 브랜드와 공간 배치, 프로그램부터 제안했고 이를 바탕으로 현재 실시설계를 진행하고 있다. 공공 오픈스페이스의 질은 도시의 품격이다 낯선 도시를 여행할 때 그 도시의 품격을 빠르게 확인할 수 있는 팁은 가장 일상적 공간인 공공 오픈스페이스를 방문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실현의 완성도가 보장되지 않는 공공 공간을 다룰 때도 세심한 조경설계를 통해 완성도를 높이고 문화적으로 성숙한 장소를 만들고자 한다. 이를 위해 도시 속 공공 공간의 인접한 도시 맥락, 주변 경관과의 조화 등 거시적인 부분부터 손스침의 높이, 너비, 각도, 소재 및 마감의 부드러움 정도 등 디테일한 부분에 이르는 모든 사항을 고려하며 디자인한다. 제반 조건과 실익보다는 공공성에 의미를 두고 공공 프로젝트 설계공모 참여나 지자체의 요청 등에 호응해 왔고, 프로젝트에서 공개 공지의 완성도를 본 설계 영역에 못지 않게 신경써왔다. 석남완충녹지 도시바람길 숲 조성사업에서는 완충녹지의 기능에 충실하면서도 도시 바람길의 중심축을 형성하는 환경적 역할의 숲을 조성했다. 동시에 인접한 구도심의 고질적 문제였던 주차난을 해소하고 지역 주민의 일상 속 필요를 채우는 복합 커뮤니티 장소를 조성해 질 높은 도시 속 공공 공간으로서 기능하는 이용의 숲을 디자인했다. 성수동 오피스 타워 공개 공지 시리즈는 새로운 공개 공지에 성수동만의 고유한 특별함을 부여하는 프로젝트다. 성수동의 혼란한 변화 속에서 건물 외형의 독창성에만 매달리다 보면 자칫 공공 공간의 질은 뒷전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지역 주민의 일상을 뒷받침하는 열린 공공 공간의 완성도를 높이는 일은 건축의 특별함을 배가하는 중요한 무기가 된다. 이러한 인식을 토대로 각각에 걸맞은 고유한 특별함을 찾아가며 성수동에 위치한 일련의 오피스 타워 공개 공지와 조경 공간의 디자인을 제안했다. 6개월에 한 번은 호미를 들자 현장 연출이 중요한 프로젝트를 진행할 경우, 우리는 가능한 시공 현장을 찾아 도면 위 선들이 현실에 구현되는 과정을 눈으로 지켜본다. 단순히 지켜보는 것에만 머물지 않고 직접 현장을 뛰어다니며 현장 상황에 맞게 설계를 조정하기도 하고, 적극적으로 식물을 나르고 배열한 뒤 호미를 들고 손에 흙을 잔뜩 묻히며 땅에 심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느끼는 생생한 현장감과 설계안에 대한 반추의 경험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자산이다. 현장과 끊임없이 마주하는 경험. 이것이 우리가 추구하는 최저선의 태도다. 포옥 정원은 포천에 위치한 대형 카페의 정원을 만드는 디자인빌드 프로젝트였다. 카페 건물은 간선도로에서 꽤나 내측으로 깊숙이 감춰진 위치에 있었지만, 그만큼 앞산과 지천을 정면으로 가까이에서 마주하는 좋은 배경이 있었다. 건물 1층의 80% 이상을 필로티 구조로 수평적으로 열어놓았고, 하천변으로는 계단식 테라스를 내렸으며, 중정은 2층 위 옥상층까지 수직적으로 열려 있어 입체적 성격을 띤 여러 정원이 공간에서 주연과 조연 역할을 했다. 공간시공 에이원과 시공에 함께 참여하고 현장 식재를 주관하면서 서로 다른 자연 설정의 정원을 연출하는 경험은 책상 위에서의 설계만큼이나 즐거운 과정이었다. 노태우 대통령 메모리얼 파크는 서쪽 지근거리로 북한 지역이 보이는 파주 동화경모공원 내 위치한 고 노태우 대통령의 묘역이다. 이곳에서는 수시로 현장을 방문하여, 현장 사진과 현황 측량도만 계속 들여다보다 자칫 대상지가 위치한 주변의 맥락을 놓치게 되는 경우를 방지하고자 했다. 직접 현장에 가보지 않았으면 몰랐을 추모공원의 전경은 아직 진행되지 않은 메모리얼 파크 2단계 설계안의 방향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해 주었다. 동빙고동 옥상정원은 고급 빌라 개인 정원의 디자인빌드 프로젝트였다.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때론 오래 고민한 도면 위의 배열보다 감각에 의존한 현장에서의 직관적 결정이 더 아름다울 때가 있음을 다시금 느꼈다. 특히 소규모 정원에서 식물을 식재할 경우 직관은 더 큰 힘을 발휘한다. 수급 불가로 대신 들여 온 식물과 발주서와 너무 다른 크기의 식물을 마주하면 막막함이 앞서지만, 직관이 이끄는 대로 이리저리 배열하고 심다 보면 이윽고 새로운 아름다움과 마주하게 된다. 불경기에 표류하는 프로젝트 자재비 인상과 금리 불안정으로 건설 경기가 악화된 지 오래다. 지난 몇 년간 설계한 몇몇 프로젝트도 변화한 건설 시장의 상황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재작년에 설계한 오피스 프로젝트는 투자사의 사정으로 착공에 들어가지 못하고 프로젝트 자체가 대폭 축소되었으며, 작년 말 설계를 마친 또 다른 업무 시설은 공동 투자사의 경영 악화로 착공이 계속 미뤄지고 있다. 공공 프로젝트의 사정도 그리 나은 것은 아니라서 겨우 착공은 들어갔으나 원자재비 급상승 등의 이유로 설계안과는 많이 다른 모습으로 시공되는 경우도 늘어났다. 남산스퀘어 오피스 대수선 프로젝트는 충무로역(CBD)에 위치한 48년 된 오피스 빌딩을 재구성하는 프로젝트다. 리모델링되는 기존 건물과 수평 증축 신축동 사이 새롭게 만들어지는 아트리움 공간에 두터운 녹색의 실내형 공개 공지를 설계했고, 기존 동 옥상에 명동과 남산을 직접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 정원을 제안했다. 착공 직전 프로젝트가 축소되면서 아쉽게도 우리의 제안은 페이퍼 워크로만 남게 됐다. 수송동 도화서길 업무시설 개방형 녹지는 열린송현녹지광장 바로 맞은편 율곡로와 도화서길 가로에 연접하여 서울 중심부 랜드마크로서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다. 이곳에 지상층 공공 영역을 확장하는 넓은 폭의 생태적으로 건강한 시민 휴식 공간인 개방형 녹지를 제안했으며, 높은 공공성을 인정받아 작년 8월 서울시 도시건축 창의·혁신디자인 시범사업으로 선정됐다. 하지만 이후 답보 상태에 머물고 있다. 설계공모 폴더를 백업하며 우리에게 설계공모는 현실에서 꿈꿔오던 흐릿한 상상을 설계안으로 또렷하게 구체화하는 과정이다. 지난 한 공모의 과정을 거치며 또렷해진 설계안은 공모 마감에 맞춰 제출되고 심사를 거친다. 어떤 설계안은 당선되어 물리적 공간에 실체화될 기회를 얻게 된다. 하지만 대다수는 낙선의 아픔을 겪고, 잠시 세상의 빛을 본 것에 만족한 채 다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고 만다. 그럼에도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설계 공모에 도전한다. 언젠가는 또다시 당선의 영예를 안고 우리의 디자인을 현실 공간에 구현하리란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설계공모에 도전을 멈추지 않는 다른 이유도 있다. 공모를 준비하며 벼려지는 디자인 고민의 시간은 사라지지 않고 축적되어 우리를 발전시킬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렇게 축적되어 잘 숙성된 고민은 다른 공간을 설계할 때 불쑥불쑥 튀어나올 새로운 아이디어의 중요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대전아트파크 기획디자인 국제지명공모, 얼루비얼 아트 파크, 오픈 스레시홀드(Alluvial Art Park, Open Threshold) 삼면이 도로와 철도로 둘러싸인 한계를 가진 대지의 경계를 ‘다층적 통과’, ‘매개’, ‘중첩하는 면과 공간’으로 설정함으로써 새로운 아트파크와 공원의 외부가 다수의 관계를 맺게 하도록 제안했다. 다양한 연결 전략을 통해 고립된 부지의 조건을 도시에 기여하는 새로운 전이 공간으로 전환하는 계획을 제시했다. 노들 글로벌 예술섬 조성 국제지명 설계공모, 프롬나드 링(Promenade Ring) 노들섬이 한강공원의 새로운 지구로 작동할 수 있도록 노들섬의 단절된 순환과 고립된 장소, 조각난 섬을 하나의 섬으로 이어주는 프로그램의 순환 고리와 동선 전략을 설정했다. 인공화된 현재 노들섬 하단부의 재자연화를 제안했으며, 다양한 하천 전략과 이를 통한 섬 안팎의 상호 전이를 바탕으로 무수한 경험이 가능하도록 공간 프로그램들을 배치했다. 오목공원 맞춤형 리모델링 지명 설계공모, 둥그런 능선의 재탄생 오목공원의 둥그런 능선을 품은 나지막한 둔덕과 오목한 중앙부 광장은 우리가 기억해야 할 땅의 매무새와 분위기를 담는 공간이다. 이 원형의 능선을 평평하고 굴곡진 고리 형상의 광장으로 재탄생시켜 기존의 다단과 벽 중심 공간에서 무장애의 유려한 땅의 생김새로 조형했다. 말 안장 형상의 쌍곡포물면 광장의 높은 부분은 기존 지형의 높은 지대와 연결되고, 낮은 부분은 공원의 지면과 연결되어 입체적인 보행 경험과 개방감, 위요감을 제공하고 가로 경관에서 공원의 내부로 진출입을 자유롭게 하도록 제안했다. 당진종합체육관 및 반다비국민체육센터 건립사업 설계공모, 다섯 운동장과 여섯 공원 체육센터 외부 공간의 지형적 다양성을 야외 활동의 다채로움으로 승화시켜 하나의 체육공원이 아닌 여섯 개의 특징적 조경 영역인 ‘여섯 공원’으로 구분했다. 개별 공원은 이용 계층 간의 적절한 분리 및 교차를 유도하는 전략으로 두 가지 이상의 야외 활동 프로그램을 혼성시켰으며, 이를 통해 도시 중심에서 이격된 대상지를 방문하는 여러 계층 간의 통합 및 커뮤니티 형성을 촉진할 수 있도록 하였다. 안양천 목동교 하부 MZ스포츠플라자 조성 설계공모, 커플링 멀티-셰드(Coupling Multi-Sheds) 목동에 거주하는 다양한 세대의 도시·문화적 잠재력과 안양천을 따라 형성되는 자연의 생태적 잠재력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엮고 연결하는 제안을 했다. 젊은 세대와 다른 세대가 함께 어울리고 동시에 사람과 자연이 어울리도록 다양한 수변 프로그램 공간을 제안했다. 활기와 생기가 넘치는 장소이자 젊은 세대의 새로운 외부 공간 문화를 창출하는 그릇으로 기능하도록 세심하게 매만진 공간 프레임워크를 제시했다. 아웃트로 그래서 이렇게 쭉 간다면 앞으로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갑자기 20년이 늙는다면? 설계사무소를 못하게 된다면? 수많은 멀티버스의 가능성 중 하나를 살짝 들여다보자. 1,400만 605개의 가능성 중 하나. 아마도 그 안에는 조경문화재단 설립을 시작하고 부족한 기부금을 충당하기 위해 환갑이 넘은 나이에도 스케치를 그리고 광속 라이노 모델링 알바를 하는 파운더 YJ와 그 옆에서 일 좀 적당히 하라며 나무라는 BW, 자신이 모은 5만 권의 책을 돌보며 재단 도서관의 책을 또 주문하고 있는 84년생 사서 JH, 재단 건물 안팎에서 식물을 가꾸고 가든 클래스를 진행하고 있는 88년생 가드너 BG, 글로벌 답사 프로그램을 짜고 있는 99년생 해설가 JN이 있을 것이다. 긴 시간이 흐른 뒤에도 여전히 조경의 경계 안에서 느슨한 연대의 형태로 함께 하고 있을 우리의 모습을 상상하며 줄인다. 각주 1. 그간 『환경과조경』에 특집 등으로 이미 소개된 프로젝트를 제외한 최근 3~4년간의 근작 위주로 담았다. 랩디에이치(Lab D+H)는 2014년 로스앤젤레스에서 설립해 현재 서울과 상하이에 오피스를 두고 있다. 서울 오피스는 동시대 문화적 기반을 토대로 외부 공간 기획 및 리서치부터 실시설계 너머의 시공 및 완공 후 모니터링, 관리 및 운영에 이르기까지 외부 공간의 모든 영역을 아우르는 작업에 관심이 있다. 조경적 관점을 바탕으로 외부 공간의 지속적인 생명력을 책임지고 분명한 정체성으로 브랜딩하는 전문가 집단을 지향한다. 인스타그램 @labdh_seoul, 웹 포트폴리오 labdhseoul.kr
[밀레니얼의 도시공원 이야기] 알아서 척척척, 신도시 어린이
에피소드 1. 깨진 무릎 올림픽공원 앞에서 배운 두발 자전거는 일산신도시에서 내 두 발이 되어주었다. 집에서 학원으로 가는 길, 넓게 그려진 그리드가 아닌 하나로 쭉 뻗어나가며 광장과 육교가 사슬처럼 엮여 주요 공간을 잇는 근린 녹지대는 힘차게 굴리는 바퀴 소리와 땅에 무언가 부딪치는 소리가 교차하는, 그리고 어른들이 범접하기 어려운 어린이들의 공간이었다. 아직은 자전거가 익숙하지 않았지만 상당한 경사의 육교 램프를 타고 내려오는 도전을 즐겼다. 아주 가끔은 미처 정비되지 않아 옛 주택과 노출 콘크리트 시설물이 밀접해 있어 왠지 모르게 위험한 분위기를 풍겼던 일산역 일대도 슬그머니 가보곤 했다. 인터넷이 막 보급되고 있던 때, 바깥 공간이 집보다 즐거웠던 시절, 공원은 어른들의 묵인 아래 ‘위험한 놀이’를 할 수 있는 자유로운 실험장이었다. 공원에서 나는 총 세 번에 걸쳐 무릎이 깨졌다. 한 번은 조깅하다가, 두 번은 자전거를 타다가. 그 흔적은 희미하게나마 여전히 내 오른쪽 다리에 자리 잡고 있다. 일산의 대단지와 호수공원 1989년 4월 27일 「동아일보」 1면에 실린 ‘1기 신도시’ 두 군데에 관한 설명은 다음과 같다. “정부는 최근 폭등하고 있는 서울의 주택가격을 안정시키고 주택공급을 크게 확대하기 위해 경기 성남시 분당동 일대에 5백40만 평 규모, 고양군 일산읍 일대에 4백60만 평 규모의 주택도시 두 곳을 새로 건설, 총 18만 가구의 아파트 및 단독주택을 공급키로 했다. …… 일산 지구는 한수 이북 지역 개발이 그동안 지연돼온 점을 감안, 향후 수도권 개발의 우선순위를 강남에서 강북으로 전환해 수도권 인구를 재배치한다는 정부 의지를 보이기 위해 교육문화 교통시설을 고루 갖춘 한수 이북 지역의 중심도시로 건설키로 했다.”(각주 1) 같은 해 12월 13일 「조선일보」 기사는 “일산신도시 기본계획안을 보면 우선 서울 주변 어느 도시보다 면적에 비해 인구수가 단촐한 반면, 공원 호수 등 녹지 면적이 무척 넓다는 것이 눈에 띈다”며 일산을 “인구 28만 전원도시”로 설명하고 있다.(각주 2) 호수공원뿐 아니라 기타 녹지율에 대한 언급이 이곳저곳에서 발견되는데, 기존 도시 개발 방식에서 탈피해 산과 공원을 중심으로 한 높은 녹지율을 지닌 자급자족형 신도시라는 점이 일산의 마케팅 포인트가 되지 않았나 싶다.(각주 3) 앞의 기사처럼 일산신도시 개발 사업의 기본 계획은 기존 도시 개발 방식에 비해 매우 높은 녹지율뿐 아니라 녹지의 분산을 제시했다. 주요 생활권은 모두 고층 아파트로 개발됐지만 그 사이에는 공원과 광장이 거미줄처럼 엮어져 녹지 그리드가 형성되었다. 즉 자가용이 없는 사람이라도 비교적 안전하고 편안하게 도시 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계획되었다. 당시 서울의 빡빡한 주택난을 피해 일산신도시라는 새로운 주거지로 온 사람들의 결과 면면은 아마도 비슷했을 것이다. 넓은 녹지, 이제 막 새로 커지는 도시에 대한 낭만적 감상을 가진 3040 젊은 부부의 비율이 높지 않았을까. 간접적 증거도 있다. 1990년 24만 명이 조금 넘던 고양시 인구는 5년 후 50만 명을 넘어섰고, 2000년에는 80만 명으로 늘어났다. 10년 만에 3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이에 더해 1990년대 초중반에는 고양시 인구의 95% 이상이 유년과 청‧장년층이었던 것으로 확인된다.(각주 4)신도시 입주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던 시기였으니, 1990년대 인구 증가의 많은 부분이 일산의 개발과 유관할 것이다. 이곳에 터를 잡았던 ‘신도시 아파트 입주민’들은 새롭게 개발하는 도시가 가진 장단점을 함께 겪으며 어떤 공통된 정체성을 가지게 된 게 아닐까 싶다. 각주 3에 서술한 자급자족에 대한 불만도 있었지만, 일산신도시아파트입주민회가 1998년 창간한 잡지를 보면 의심이 확신으로 바뀐다. 1998년 3월 1일 첫 호를 발간하고 9월호까지 출간된 『월간 일산』에 수록된 글을 보면 ‘아파트 관리 기술’부터 ‘신도시의 소비 패턴’ 등 신도시 살이의 장단이 보이는데, 매 호 표지를 호수공원의 모습으로 꾸몄다는 점도 눈에 띈다. 짐작하건대 일산신도시에 대한 공통적인 어떤 이미지란 넓은 호수공원 뒤편으로 깨알처럼 펼쳐진 아파트 단지들이었음이 분명하다. *환경과조경435호(2024년 7월호)수록본 일부 **각주 정리 1. “분당 성남 일산 고양에 새 도시”, 「동아일보」 1989년 4월 27일, 1면. 2. “일산 인구 28만 전원도시로”, 「조선일보」 1989년 12월 13일, 7면. 3. 물론 그 이후 1990년대 중반에는 자급자족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이 불거지며 일산신도시 입주자대표협의회의 주도로 정부와 한국토지공사를 상대로 손해 배상 움직임이 있었던 적도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일산신도시의 이미지는 베드타운에 가까운데, 이 ‘자급자족 도시’가 계획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4. 윤신희, 김지훈, 이세훈, 『데이터로 본 고양 변천』, 고양시정연구원 데이터센터, 2022. 신명진은 뉴욕대학교에서 미술사를 공부한 뒤 서울대학교 대학원 생태조경학과와 협동과정 조경학전공에서 석사와 박사를 마친 문어발 도시 연구자다. 현재 예술, 경험, 진정성 등 손에 잡히지 않는 도시의 차원에 관심을 두고 서울대학교 환경계획연구소의 선임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도시경관 매거진 『ULC』의 편집진이기도 하며, 종종 갤러리와 미술관을 오가며 온갖 세상만사에 관심을 두고 있다. @jin.everywhere
같이 쓰는 농부사전
좋아하는 대상을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탐구하다 보면, 그 대상의 시선이 향하는 곳으로까지 관심이 확대되기 마련이다. 개관 이후 줄곧 정원을 좇던 블루메미술관의 눈길이 농부에 닿게 된 까닭도 같았다. 땅을 기반으로 한 노동을 펼친다는 점이 닮아서인지 많은 정원가가 농부의 일과 삶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정원사가 왜 그들을 관찰하는지 궁금했던 블루메미술관도 농부에게 주목하기 시작했고, 이는 ‘같이 쓰는 농부 사전’ 전시 기획에까지 이르게 했다. 5월 18일, 블루메미술관에서 개최된 ‘같이 쓰는 농부 사전’ 전시는 농부를 단순한 식량 생산자를 넘어 가치 생산자로서 바라보며, 농부의 일과 생각에 담긴 무형의 가치를 조명한다. 농업의 산업화를 위해 대량 생산에 몰두하는 대농 대신, 작은 농업을 실천하고 있는 소농 네 팀을 초대했다. 소농의 목소리를 듣는 데 그치지 않고, 이들이 추구하고 있는 가치를 작품으로 보여줄 네 명의 작가를 매칭해 컬래버레이션 작업을 선보였다. 이렇게 완성된 작품은 농사를 짓지 않아도 누구나 ‘농부적 삶’을 살 수 있다고 말한다. 다만, 그 삶의 방식이 아직 명확히 정의되지 않았기에 함께 고민할 수 있도록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던진다. 이번 전시의 제목에 ‘같이 쓰는’이라는 표현을 쓴 이유이기도 하다. 농부사 전을 관객과 함께 써가는 여정은 농업 안에만 갇혀 있던 여러 농부의 삶을 확장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다. *환경과조경435호(2024년 7월호)수록본 일부
보라매공원 풍경놀이터
지난 6월 6일 보라매공원 풍경놀이터(이하 풍경놀이터)가 개장했다. 서울시의 제2호 거점형 어린이 놀이터인 풍경놀이터는 서남권 보라매공원 테마놀이터 조성 설계공모(2022)의 당선작 ‘놀이풍경: 어린이 스스로 만드는 무한의 놀이 세상’(바이런+지엘에이디자인)을 기반으로 2년 여의 설계와 시공을 거쳐 탄생했다. 5,000m2가 넘는 대규모 어린이 모험 놀이터는 잔디마당과 놀이탑, 낙서 벽 등 다양한 놀이 시설과 정원이 어우러진 공간이다. 거점형 어린이 놀이터는 보통 주거 단지 내에 소규모로 조성되는 단편적 놀이 시설을 벗어나 대규모 공간에 어린이의 창의성 향상과 폭넓은 활동을 유도한다. 미끄럼틀, 그네, 시소 등 획일적인 시설보다는 자유로운 신체 활동이 가능한 공간을 확충하는 데 중점을 두고 조성된다. 서울시는 2026년까지 시내 5개 권역에 1개소씩 거점형 놀이터를 조성할 계획으로, 지난 2022년 광나루한강공원(동남권)에 제1호를 조성한 데 이어 현재 북서울꿈의숲(동북권), 용산가족공원(도심권) 놀이터를 설계 중이다. *환경과조경435호(2024년 7월호)수록본 일부
[기웃거리는 편집자] 느린 걸음의 풍경
아버지의 골방 서재는 일종의 분더카머(wunderkammer)였다. 그 방에는 집안 조상의 내력이 적힌 족보를 읽는 게 취미였던 아버지가 신줏단지 모시듯이 보관했던 족보부터 역사, 풍수지리학, 자서전 등 아버지의 취향이 담긴 헌책이 장르와 연도별로 구분돼 책장에 가지런히 꽂혀 있었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매해 쓰셨던 일기 노트들도 연도별로 정리되어 있었는데, 아버지는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일기를 적으셨다. 방학 숙제였던 일기와 독후감을 벼락치기로 쓰던 어린 시절의 나에게 그 모습은 고대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방대한 책을 관리하는 성실한 사서처럼 보였다. 아버지는 분더카머의 장인이었지만, 나는 중도 포기의 달인이었다. 절세 무공을 가진 고수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아버지의 실력에 미치지 못해 좌절하는 무협지 주인공들처럼 나도 분더카머를 만들기 위해서 부단히 무언가를 수집하고, 기록하며 나만의 취향을 만들어가려고 노력했지만 늘 실패했다. 해마다 문구 편집숍에서 새로 나온 노트와 필기구를 사며 필사 노트를 만들고, 일기도 꾸준하게 적어보려고 노력했지만, 세상에 큰 뜻을 펼치지 못한 채 초야에 묻힌 유배지의 선비처럼 모두들 쓰이지 못한 채 서랍 속에 고이 보관됐다. 읽는 책보다 읽지 않는 책이 너무 많아서 가스 검침하듯이 주기적으로 중고 서점에 책을 팔기 바빴다. 그래서 성실한 수집가의 기록에 괜히 한 번 더 눈길이 갔다. 잡문집 『무라카미 T』(2021)는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취향을 엿볼 수 있는 티셔츠 수집 무용담이다. 자신의 이름과 동명인 시에서 주최하는 마라톤에서 받은 티셔츠, 하루키의 소설에서 모티브를 얻은 팬이 디자인한 티셔츠 등 티셔츠에 얽힌 에피소드를 풀어내며 자신의 티셔츠 취향을 소개한다. 이러한 티셔츠 수집은 하루키에게 영감을 제공하기도 했다. 실제로 그는 마우이 섬에서 1달러 주고 산 토니 타키타니(Tony Takitani)라는 영문이 적힌 티셔츠에서 모티브를 얻어 동명의 단편 소설을 쓰기도 했다. 하루키처럼 이야기를 국수 가락 뽑듯이 솜씨 좋게 술술 풀어낼 수 있는 대단한 문학적 재능이나 통찰, 아름다움에 대한 명확한 기준과 특별한 미감은 없지만 소소하더라도 나의 일상과 삶에 조금이나 영감을 제공할 수 있는 수집은 없을지 궁리하다가 공간 일기를 써보겠다고 다짐하게 됐다. 이러한 다짐을 하게 된 건 『건축가의 공간 일기』(2024) 덕분이다. 이 책은 건축가의 시선으로 바라본 공간에 대한 기록이다. 저자가 30여 년간 공간을 둘러보며 일기처럼 남긴 글과 그림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엮어냈다. 그는 지난 세월 동안 펜을 바지런히 움직이며 손으로 그날의 감정을 기록하고 공간을 더 정확하게 묘사하고 그리기 위해서 유심히 관찰하는 행위를 꾸준히 해왔다. 또한 유명한 공간보다 제철 음식을 사러 가는 망원시장 등 자신의 일상과 생활에 스며들어 있는 공간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드러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생활 속 공간이 주는 위로와 소소한 행복이 무엇인지 들려주며 생활 속에서 좋은 공간을 발견하고, 일기로 남기는 일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한다. “좋은 공간에 나를 두고, 공간이 건네는 목소리를 들으면 우리의 삶은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다. …… 어쩌면 좋은 공간을 찾아가는 것도 수단에 불과할지 모른다. 인생 공간을 발견하는 것보다 중요한 일은 바쁜 시대에 무언가를 경험하며 우리의 감정을 풍요롭게 하는 일이다.” 결국 공간 일기란 삶이라는 사건을 이해하는 배경에 대한 기록인지도 모르겠다. 오롯이 그 사건 자체로만 바라보면 오해나 왜곡이 있을 수 있지만, 사건을 둘러싼 배경을 이해하고 바라보면 그 사건의 의미가 달라지는 것처럼 우리의 삶을 더 풍성하게 이해하려면 어쩌면 잠시 시간을 내 삶을 둘러싼 배경에 대해서 찬찬히 바라볼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앞으로 나의 생활 반경 속에서 잠시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아름다운 장면과 공간을 소소하게 기록하고 싶다. 먼 훗날 이 기록들이 모여 하나의 분더카머가 될 수 있다면 그 방 앞에 ‘느린 걸음의 풍경’ 이라는 명패를 가지런히 놓고 싶다. 중도 포기 달인의 소박한 소망이라고 할까.
[편집자가 만난 문장들] 지금 우리의 관심 영역은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참극을 배제하고 있지 않은가
또 정원 생각을 하게 된 건 한 영화 때문이었다. 스포일러를 좋아하지 않아, 미리 어떤 정보도 눈과 귀에 들이지 않으려 한 탓이다. 물론 영화 소개글 한가운데 정원이라는 단어가 떡하니 있기는 했다. “독일 장교 루돌프 회스의 가족이 사는 그들만의 꿈의 왕국 아우슈비츠. 아내 헤트비히가 정성스럽게 가꾼 꽃이 만발한 정원에는 재잘거리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하다.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은 집. 과연 악마는 다른 세상을 사는가?” (각주 1) ‘존 오브 인터레스트(The Zone of Interest)’(조나단 글 래이저, 2024).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공감할 거다. 제목을 한국어로 번역할 때 ‘존’을 영역(지역, 구역, 지대 등)으로 바꾼다면, ‘인터레스트’에 대응하는 단어로는 무엇을 고를 것인가. 우선 제목이 지칭하는 땅의 정체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곳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이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를 관리하기 위한 목적으로 격리한 땅이다. 수용소 주변 지역의 농지를 폴란드 지주에게서 몰수하고 그 빈 땅에 수용소의 포로들을 노역시켜 이득을 취득했다. 따라서 인터레스트를 나치 독일이 취한 금전적 ‘이익’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러닝 타임 내내 귓가를 울리는 굉음, 하늘로 솟는 연기, 늦은 밤에도 폭력적으로 이글거리는 시뻘건 불길을 없는 것처럼 여기며 관심 밖에 두(려)는 인물들을 보고 있으면 자연스레 인터레스트 위로 ‘관심’이라는 단어가 겹쳐진다. 회스는 실존 인물로, 4년간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 소장으로 일했다. 그의 가족은 수용소 인근 사택에서 삶을 꾸렸는데, 이 사택은 수용소와 담 하나를 두고 맞붙어 있었다. 영화는 수용소 내부의 모습을 한번도 보여주지 않지만,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상상하게 한다. 이는 헤트비히가 그 지옥의 땅 옆에서 낙원 같은 삶을 일구어 나가는 모습과 병치되며, 악이 얼마나 평범하고 그래서 더 끔찍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헤트비히는 이 사택에서 유토피아 같은 정원을 가꾼다. 고요에 빠질 수 있는 온실, 아이들은 물론 인근 이웃을 초청해 파티를 즐길 수 있을 만큼 넉넉한 수영장, 고즈넉한 분위기의 퍼걸러와 의자가 있다. 파스텔 톤과 원색의 식물이 넘실거리는 잔디를 배경으로 자란다. 그는 친정 엄마에게 이 정원을 완성하기까지의 여정을 무용담처럼 풀어놓으며, 담벼락 너머가 보이지 않도록 넝쿨 식물을 기르겠다고 말한다. 결국 이 정원은 자신의 관심 영역에서 수용소의 존재 자체를 밀어내기 위한 도구인 셈이다. 회스 역시 자연을 일종의 수단으로 사용한다. 수용소의 미관이 훼손되니 라일락 관목을 과도하게 꺾지 말라는 지시사항을 전달하는 그의 얼굴이 지극히 차분해서 끔찍했다. 하지만 정원은 결코 모든 참극을 가리지 못한다. 치솟는 연기와 불길을 틈 없이 가리고, 비명 소리를 완벽히 차단할 담과 넝쿨이 있을 리 없다. 강에서 자녀와 함께 물놀이를 즐기던 회스는 위쪽에서 잿빛 물이 내려오는 걸 발견하고는 기함한다. 강은 수영장 속 물과 달리 위에서 아래로 흐르며 이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보트에 아이를 태우고 돌아오는 회스의 표정은 드물게 초조하다. 비가 내려 분 강물이 거세게 그 보트를 떠밀며 묻는 것 같았다. “지금 우리의 관심 영역은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참극을 배제하고 있지 않은가?” (각주 2) 정원은 생활 영역에 자연을 들이려는 시도에서 출발한 공간이다. 자연을 닮았지만 아주 개인적인 공간이며, 대부분 외부로부터의 시선이나 간섭을 차단하고 아늑한 자신만의 영역을 만드는 데 집중 한다. 지난 2월, 김동훈과의 인터뷰(각주 3) 녹취록에서 삭제된 내용 중 하나는 ‘정원법’에 관한 것이었다. 그는 정원은 사적 녹지로 다루어지기에 경관법은 있지만 정원법이 따로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아파트로 점점 빼곡해지는 도시가 내세우는 정원도시라는 캐치프레이즈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자꾸 궁금해진다. 단순히 정원이 많은 도시를 말하는 것일까. 많은 시민이 개인 소유의 땅 중 일부를 정원으로 만들도록 독려하는 도시, 혹은 공공이 조성한 정원이 많은 도시를 추구하는 것일까. 만약 공공이 조성한 정원을 공공 정원이라 명명하려 한다면, 그 관리의 주체는 누가되어야 하며 공원과는 무엇이 어떻게 다를까.(각주 4) 오해를 불러일으킬까 싶어 덧붙이자면,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정원의 의미와 가치를 들여다보는 영화는 아니다. **각주 정리 1. 존 오브 인터레스트 시놉시스 2. 김혜리, “[김혜리의 두 영화 이야기] 관심영역”, 위버스매거진 2023년 7월 11일. 3. 김모아, “어제의 대화, 오늘의 재구성: 정원을 탐구하는 천착의 깊이 김동훈”, 『환경과조경』 2024년 2월호. 4. 이미 박희성 교수가 연재를 통해 공공의 정원을 다룬 적이 있다. “근대 초기, 공원은 파크와 퍼블릭 가든의 구분없이 모두를 아우르는 용어로 자리 잡게 되면서 퍼블릭 가든은 파크와 혼성되고 사라져버렸다.” 박희성, “모던스케이프: 공공의 정원”, 『환경과조경』 2023년 5월호.
[PRODUCT] 공간의 경계를 허무는 그늘 쉼터, 스마트 루프
야외에서도 실내 같은 아늑함을 느낄 수 있다면 어떨까. 예부터 건축물은 비바람과 외부의 위험 요소로부터 인간을 보호하는 역할을 했다. 그에 따라 외부 공간은 다양한 활동이 일어나는 곳, 내부 공간은 안락한 휴식을 할 수 있는 곳 등으로 쓰임새를 구분해왔다. 하지만 생활 수준 향상과 더불어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며 그 경계가 흐릿해지고 실내 같은 외부 공간, 외부 공간의 기능을 수용하는 실내 공간에 대한 수요가 생기고 있다. 외부 공간 디자인 브랜드 ‘차양과 공간(Shade&Space)’은 이러한 복합적 요구를 반영해 다양한 외부 공간을 디자인한다. 차양과 공간의 스마트 루프(smart roof)는 안정성과 다양한 기능성을 갖춘 그늘 쉼터다. 지붕 루버 패널은 폴리우레탄 충진를 통해 결로 방지와 열 차단 기능을 갖게 되어 사계절이 뚜렷한 한국 날씨에 적합하다. 유로(Euro) 품질 기준을 충족하는 크기와 두께의 구조용 알루미늄을 재료로 사용해 풍압 등 외부 충격에 강하다. 스마트 루프의 가장 큰 특징은 다양한 연출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완전한 지붕 개폐가 가능한 셀렉트(select), 힌지 틸팅 방식으로 개폐되는 프라임(prime) 등 용도나 취향에 따라 제품을 선택할 수 있다. 실내와 같은 아늑함을 제공하는 외부 공간이나 외부 공간의 느낌을 적절히 들여온 내부 공간을 위한 연출이 필요할 때 활용할 수 있다. TEL. 1533-0919 WEB. shadenspac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