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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감각] 이상하지만
  • 환경과조경 2023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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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에서 깨면 싱크대를 구경하러 주방으로 간다. 지난밤, 거품을 내서 닦은 접시와 행주가 건조대에 가지런히 놓여 있고, 텅 빈 싱크대는 물기 없이 깨끗하다. 기분이 좋다. 지금 충분히 봐두어야 한다. 밥상을 차리고 커피와 간식을 만들어야 하니, 텅 비고, 말랐으며, 가지런한 싱크대는 지금 뿐이니까.

설거지는 고약한 일이다. 만든 음식은 하나인데 생긴 설거짓거리는 여러 개다. 달걀 프라이 하나를 해도 프라이팬과 뒤집개, 담은 접시, 젓가락까지 네 개의 설거지 감이 나온다. 기름 묻은 그릇을 설거지통에 담그면 다른 그릇까지 자국이 남으니 따로 닦아줘야 한다. 구멍이 송송 뚫린 찜기와 채망은 사이사이 때가 남으니 구석구석 닦아야 하고, 수세미가 닿지 않는 깊은 물병은 청소 솔을 꺼내어 씻는다. 헹군 그릇은 카드로 성을 만들듯, 포개지 말고 공기가 통하도록 공간을 만들어 가며 쌓아줘야 잘 마른다.

깨끗하게 텅 빈 싱크대가 왜 좋을까. 바삭하게 마른 행주와 새것 같은 그릇, 물 자국 없이 매끄러운 싱크대 표면을 만져볼 때마다,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을 펼친 기분이 된다. 이상하다. 이해할 수 없지만 오늘 밤에도 설거지를 할 것이다. 내일 아침, 단정한 싱크대를 구경하고 싶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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