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더관리
폴더명
스크랩

[에디토리얼] 가을 잡지
  • 환경과조경 2023년 09월

가을을 여는 9월호에선 뭔가 가을 냄새가 나야 할 것만 같다. 서걱한 바람에 흔들리는 풀밭 같은 느낌을 지면에 담을 방법이 없을까. 책장 구석에서 김수영을 꺼내 그의 ‘풀’을 다시 읽어본다. 알랭 코르뱅의 아름다운 역사책 『풀의 향기: 싱그러움에 대한 우아한 욕망의 역사』(2020)도 들춰본다. 이리저리 궁리해보지만 뾰족한 아이디어가 없다. 가을 잡지를 마감하는 시점이 무더운 8월 하순이라 그런 거라고 핑계를 찾는다. 입추도, 처서도 지났는데 정말 더워도 너무 덥다. 돌이켜보니 매년 9월호 만들던 때엔 늘 숨이 막혔다. 급기야 2014년 리뉴얼 이후에 나온 『환경과조경』 9월호 아홉 권을 쌓아놓고 짧은 시간 여행에 나선다.

 

2014년 9월호(317호) 특집은 ‘활자 산책’이다. 책으로 가을을 열자는 호기로운 기획. 네 명의 기자, 편집장과 편집주간, 여름방학 인턴까지 편집부 일곱 명이 출동했다. 9년 만에 다시 읽으니 뜨거웠던 그 여름의 파주가 떠오른다. 당시의 인기 연재물, 고정희의 ‘100장면으로 재구성한 조경사’의 제목은 ‘풍경의 발견’이고, 서영애의 ‘시네마 스케이프’에서 다룬 영화는 ‘프란시스 하’다. 세 달씩 이어가던 ‘그들이 설계하는 법’의 필자는 김아연. 이달의 눈에 띄는 작품은 거버넌스 아일랜드.

 

예외 없이 더웠던 2015년 9월에는 그해 6월 완공된 경의선숲길 2구간의 설계 과정과 성과를 담았다. 설계자 안계동과 이남진의 원고에 유현준, 조동범, 조한결, 최정한의 글을 함께 실었다. 최이규의 인터뷰 ‘조경의 경계를 넘어, 조경 속으로’에는 로리 올린이 등장한다. 2016년 9월호 표지는 오피스박김의 CJ 블러썸 파크다. 비평문을 쓰기 위해 광교 사이트 답사에 나섰던 그해 8월의 폭염이 아직도 생생하다. CJ 블러썸 파크 외에 오피스박김의 와이시티 공원과 한화데이터센터도 함께 실었고, 이화원의 국립세종도서관, 대통령기록관, GS SHOP 강서타워 옥상정원도 담았다. 당시에는 매달 외고 칼럼이 나갔다는 걸 새삼 깨달았는데, 이 341호의 칼럼은 허대영의 ‘랜드스케이프, 더 비기닝’이다.

 

잠시 시애틀에 체류하면서 밤낮 바꿔가며 편집자들과 소통하던 2017년 9월, 이달의 지면을 가장 많이 차지하고 있는 건 제14회 대한민국 환경조경대전에서 수상한 학생 작품들이다. 그래서인지 잡지 느낌이 젊다. 꼭 6년이 지난 지금, 그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잊고 있던 연재물, 설계 디테일을 꼼꼼히 짚는 안동혁의 ‘가까이 보기, 다시 읽기’를 다시 만난다. 2018년 9월호(365호) 주신하의 ‘이미지 스케이프’ 사진은 ‘칠면초의 숲’이다. 이 사진은 후에 두 권의 책 표지에 쓰였다. 그해 여름 화제와 논란을 함께 낳았던 패트릭 블랑의 부산현대미술관 수직 정원도 볼 수 있다.

 

2014년 리뉴얼부터 2018년까지 유지하던 표지 디자인을 2019년부터 변경했는데, 이 해 9월호 표지는 그룹한의 시흥 배곧한울공원이다. 전속 사진가 유청오가 조감으로 클로즈업한 갯벌 풍경에서 가을 냄새가 물씬 난다. 이달에는 그룹한뿐 아니라 이수, KnL, CA, JWL, 자연감각, 호원 등 여러 국내 조경설계사무소의 근작을 실었다. 후에 단행본으로 출판된 이명준의 ‘그리는, 조경’과 곧 출간될 김충호의 ‘공간의 탄생’이 2019년 가을에 연재되고 있었다.

 

2020년 9월호(389호)에서 눈을 사로잡는 작품은 요즘 전 세계 조경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태국 조경가 꼿차꼰 보라콤(Kotchakorn Voraakhom)(Landprocess)의 탐마삿 대학교 옥상 농장과 쭐랄롱꼰 대학교 백주년 공원이다. 그녀가 이렇게 핫한 스타 조경가로 뜰 거라는 걸 그때는 정말 몰랐다. 학생들 열독율이 높았던 나성진의 연재 ‘비트로 상상하기, 픽셀로 그리기’는 그래스호퍼 연대기를 다룬다.

 

2021년 9월호(401호) 표지는 세월호의 상처를 치유하는 416 생명안전공원 설계공모 당선작의 평면도다. 표지 오른쪽 윗부분 통권 숫자에 401이 선명하게 찍혀 있다. 전 달 8월호가 『환경과조경』 400호 기념호였던 것. 코로나 시대의 한복판, 2021년 봄과 여름의 지면에는 400호를 맞는 흥분과 부담이 가득했었다. 매달 책 한 권을 소개하는 연재, 황주영의 ‘북 스케이프’는 ‘옴스테드의 첫 영국 여행’을 다룬다. 2022년 9월호(413호) 에디토리얼은 한국 조경 50주년과 세계조경가대회IFLA 2022 광주 개최를 맞아 펴낸 『한국 조경 50년을 읽는 열다섯 가지 시선』(한숲)을 소개한다. 2022년부터 새로 기획한 권두의 작품 소개 및 인터뷰 지면에는 얼라이브어스의 포스코 파크 1538을 담았다. 박희성의 연재 ‘모던스케이프’는 근대기의 동물원으로 독자들을 초대한다.

 

더위를 핑계 삼아 과월호 삼매경에 빠진 사이, 편집부 기자들이 이번 호 마무리 작업을 마쳤나 보다. 김모아 기자의 메시지가 들어왔다. 주간님, 에디토리얼 언제 끝나세요? 열 번째 9월호, 2023년 9월호와 함께 즐거운 가을 맞이하시길.

월간 환경과조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지합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