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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웃거리는 편집자] 따릉이를 타며
  • 환경과조경 2023년 07월

좋은 문장이란 뭘까. 웅숭깊은 사유를 드러내는 문장? 적절한 재치와 비유를 담고 리듬감이 있는 문장? 아 마도 개인의 취향에 따라서 좋은 문장에 대한 정의나 선호가 달라질 것이다. 내 기준에 서 좋은 문장이란 마음을 동하게 하거나 몸을 움직이게 만드는 생생한 문장이다. 최근 나를 움직이게 했던 문장 하나를 꼽자면 소설가 김훈이 쓴 『자전거여행』의 첫 문장이다. ‘자전거를 타고 저어갈 때 세상의 길들은 몸속으로 흘러들어온다.’ 길 위에서 한번쯤 자전거 페달을 밟아본 이라면 무릎을 탁 치고 공감할 수밖에 없는 문장에 놀라며, 담백한 어조로 본질에 가닿는 그의 문장력이 부러웠다.

 

어느 시인이 질투는 나의 힘이라고 했던가. 김훈의 문장은 진짜로 나를 움직이게 했다. 그의 문장력은 훔칠 수 없지만, 자전거라도 열심히 타다 보면 어떤 영감이 깃들지 않을까 싶어 매일 자전거로 퇴근한다. 사실 그의 문장이 계기가 된 건 맞지만 비단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점점 몸에서 기습적으로 세력을 불리고(?) 있는 내장 지방과의 결별을 위한 것이 가장 큰 이유다. 헤어질 결심을 실천하기 위해 찾은 운동이 바로 따릉이 타기였다.

 

큰 무리 없이 할 수 있고, 회사에서 집까지 도착하는 데 걸리는 1시간 남짓의 시간은 운동 시간으로 아주 적당했다. 정기권을 구매하면 교통비도 아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 한강의 수변을 따라 탁 트인 전망을 감상하며 누빌 수 있는 것이 좋았다. 물론 운동의 측면에서 보면 헬스장에서 하는 쇠질에 비할 바는 안 되지만, 아예 안 하는 것보다는 낫겠다는 심정으로 시작했다.

 

공교롭게도 회사에서 집까지 가려면 한강변보행네트워크(2022년 12월호, 이하 보행네트워크)의 일부 구간을 반드시 거쳐야만 했다. 첨엔 이를 둘러볼 여유보다는 페달 밟기에 급급했다. 아무리 베테랑 운전자라도 초행길엔 긴장하는 것처럼 15년 차에 접어든 베테랑(?) 자전거 운전자인 나도 “지나가겠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쏜살 같이 지나가는 MTB 자전거 무리에게 길을 내주느라 바빴다. 괜히 앞을 지나가는 외제차를 보면 박을까 봐 덜컥 겁부터 나는 운전자의 심정이라고 할까.

 

어느 정도 적응이 된 후 미처 실현되지 못했던 설계안, 수해 입은 이야기 등 잡지에 실렸던 내용을 다시금 떠올리며 보행네트워크의 각 구간별 공간을 천천히 둘러봤다. 고요히 흘러가는 한강을 보며 물멍을 때리거나 벤치에 누워 하늘멍을 때리는 이들을 종종 볼 수 있었다. 공간의 틈마다 뿌리 내린 야생화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공간을 보며 시간이 갈수록 빛을 발하는 빈티지 물건처럼 자연스럽게 멋이 들어가는 공간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또한 다양한 높이에 조성된 공간 덕분에 한강을 다채로운 각도에서 즐길 수 있었다. 실개천을 유유자적 떠도는 오리부터 다리와 도로가 교차하는 한강 수면 위에 스며드는 노을과 반짝이는 윤슬, 저멀리 보이는 남산타워까지 한강을 둘러싼 풍경을 가까이서 또는 멀리서 구경할 수 있었다. 이따금 날씨가 좋은 날엔 따릉이를 세워두고 잠시나마 공간에 앉아 멍을 때리며 오랫동안 여유를 즐기기도 했다.

 

각 공간을 둘러보는 재미도 있었지만, 어쩌면 조금 지루할 수도 있는 따릉이 퇴근을 매일 지속할 수 있었던 건 강바람의 역할도 컸다. 특히 페달을 밟으며 힘겹게 가파른 언덕을 오른 후 내리막을 달릴 때 두피 사이를 시원하게 가로지르는 강바람은 가파른 오르막이 주는 허벅지 고통을 잊게 하는 고마운 존재였다. 생색내지 않고 조용히 무거운 짐을 기꺼이 덜어주려고 노력하는 사람처럼.

 

어느 건축가는 도시의 길을 걸을 때 비로소 삶과 도시를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소설가 김훈은 전국 방방곡곡을 자전거로 누비며 안장 위에서 바라본 삶과 도시를 기행문에 담아냈고, 바람 부는 해안 도시를 거닐던 프랑스 시인 폴 발레리는 생의 의지를 환기시키는 “바람이 분다. 살아야지”라는 문장을 시에 남겼다. 그들 모두 삶과 도시를 이해하기 위해서 기웃거렸던 플라뢰느(Flâneur)였다. 나 역시 플라뇌느로서 한 가지 소망이 있다면 무릎 관절이 허락하는 동안 따릉이를 타며 한강의 수변이 품은 고유한 아름다움을 잘 간직하고 싶다. 오늘도 안장 위에서 무거운 몸을 움직이며 이런 소박한 의지를 다진다. “바람이 분다. 다이어트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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