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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로 푸는 조경 디테일] 물의 모양 드러내기
  • 환경과조경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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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N+HLD, 화성 동탄 국제작가정원 워터리본 ⒸHLD

 

 

물은 상당히 동적이다. 조금만 기울어져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흘러가버리기 때문이다. 물은 스며들고 흐르기 마련이라서, 자연에서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는 물은 사실 멀리서 바라보는 바다와 호수가 아닌 이상 찾기 쉽지 않다. 그래서 고요한 리플렉션 폰드나 인피니티 풀은 우리에게 생경한 경관이고, 많은 조경가가 그 경관을 만들고 있다. 하지만 이는 물의 수평성만을 보여준다.

 

물의 동적 특성을 잘 볼 수 있는 곳은 계곡이다. 빠르게 흐르고 떨어지고 휘감아 돌아가고 바위에 부딪혀 부서지다가 어느새 느려지기도 하고 자갈 위를 스치듯 흐르는 다양한 물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계곡을 바라볼 때, 물 자체보다는 계곡을 이루는 지형, 암반, 식생 등 전체적인 공간과 경관으로서 인식한다. 그래서 아파트 조경으로 계류를 만들 때는 물의 다양한 동적 특성을 전달하기보다는 계곡의 바위와 식생같은 자연 요소를 미니어처로 구현해 경관 경험을 전달하게 된다.

 

HLD에서 최근 만든 몇 개 프로젝트는 물의 순수한 본연의 특성, 질감에 더 집중하려 했다. 전달하려 한 물의 경험은 계곡, 폭포, 연못 같은 자연을 재생하는 방식의 경관 경험과는 다른 것이었다. 이를테면 계곡의 경관을 떠올리게 하기보다는 물의 역동성을 느끼게 하는 데 중점을 뒀다.

 

직접 목격하며 좋다고 느꼈던 수경 시설을 몇 가지 이야기 해보자면, 미국 보스턴 노스엔드 공원과 뉴욕 하이라인에 흐르는 얕은 물이 있다. 2% 정도의 경사가 있는 포장면 위에 5~10mm 두께의 얇은 물이 요동치지 않고 깨끗하게 흐르는데, 손으로 만지거나 발을 담그면 바로 물이 갈라지면서 역동성을 드러낸다. 사람이 들어가지 않으면 정적으로 주변 경관을 거칠게 반사시키고, 사람이나 나뭇잎이 수면에 닿는 순간 동적인 속성을 보여준다. 도시 환경에서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쾌적함, 다양한 감정을 느끼게 한 성공적인 물의 설계다.

 

20년 전쯤 봤던 시드니 올림픽 공원의 대포 분수도 잊을 수 없다. 하그리브스가 설계한 이 물은 스펙터클하다고 할 만큼 강한 에너지를 보여준다. 자연에서 물은 낮은 곳으로 흘러가는데 그 모습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그냥 경관의 일부로 여겨진다. 이 대포 분수가 뿜은 물 역시 완벽하게 물리 법칙을 따르며 10m가 넘는 궤적을 따라 물방울을 흩뿌리지만, 짧은 순간 굉장한 재미를 준다.

 

뉴욕 그라운드 제로에 있는 메모리얼의 물도 감동적이다. 물의 소리, 시각뿐 아니라 가까이 다가가면 부서져 부유하고 있는 작은 물방울들이 몸에 닿으며 시원함을 느끼게 한다. 시각, 촉각, 청각을 다 자극한 공감각적인 물의 활용이다.

 

스위스에서 방문했던 프리트호프 회른을리(Friedhof Hörnli) 묘지의 물도 매우 인상적이었다. 계절은 낙엽이 모두 지고 황량함이 느껴지는 겨울이었다. 묘역으로 올라가는 경사진 길의 한쪽에 덮개가 없는 콘크리트 배수로를 따라 물이 졸졸 흘러 내려온다. 만약 그 물 요소가 없었다면 묘지라는 점 때문에 축 가라앉는 일관적인 감정밖에 들지 않았을 텐데, 계속 들려오는 물소리의 경쾌함이 공간의 감각적 균형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간 여러 설계 프로젝트에서 물을 다뤘다. 도쿄 오테마치원 정원에 있는 수경 시설처럼 디테일을 아주 치밀하게 고민해야 하는 훈련을 하기도 했다. 화성 동탄 국제작가정원인 워터리본은 캐서린 구스타프슨과 그가 이끄는 GGN과 함께한 작업으로, 그 과정에서 물의 강력한 잠재력을 구현하기 위한 다양한 기술적 측면을 배웠다. 특히 수로의 기울기 변화에 따른 물의 속도와 물결의 변화를 테스트하는 과정과 수로를 구성하는 수천 개의 석재 가공을 위한 스터디를 통해 새로운 노하우를 쌓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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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흔정원 ⒸH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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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기억의 큰 조개 폭포 ⒸHLD

 

 

환경과조경 433(2024년 5월호수록본 일부

 

이호영은 고려대학교에서 원예학을,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과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조경학을 전공했으며, 조경설계 서안, 미국 에이컴(AECOM), 오피스 ma(officema)에서 조경과 도시설계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조경설계사무소 HLD를 설립해 광범위한 분석과 접근 방법을 통해 대상지의 공간적 가치를 향상시키고, 그 장소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인문·사회적으로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해법을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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