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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로 푸는 조경 디테일] 보이지 않는 바람들
  • 환경과조경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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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 디지코 가든의 하늘정원은 바람이 부는 듯한 빛의 물결을 선보인다.

 

 

누구나 설계 과정에서 바람에 대해 한번쯤 고민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은유적 경관을 위한 소재로, 때로는 미세먼지, 미기후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바람은 보이지 않으며 끊임없이 변화하기 때문에 예측이 어렵다. 바람의 특성을 잘 아는 것이 필요하지만, 잘 파악한다고 해서 원하는 결과를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다.

 

2018년 72시간 도시생생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바람 때문에 난감했던 경험이 있다. 상가 일대에 위치한 면적 120m2의 작은 대상지는 요란한 간판들과 관리되지 않는 녹지와 포장 상태 때문에 편안하게 쉴 만한 공간이 아니었다. 중앙에 자리 잡은 느티나무 정자목 앞에는 눈꽃 조형물이 달린 조명 구조물이 계절과 동떨어진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주변의 어지러운 풍경을 가리기 위해 눈꽃 조형물을 철거하고 노란색 아크릴 소재의 블라인드 스크린을 달았다. 그런데 이 스크린이 바람이 세질 때마다 심하게 흔들려 대상지가 잘 보이는 카페에 앉아 계속 지켜보고 있어야 했다. 한번은 자리를 비운 사이 강한 바람으로 일부가 파손되기도 했다. 대상지를 관찰하며 바람의 세기에 따라 움직임의 정도를 파악하게 됐고, 이를 기록하면서 바람에도 다양한 명칭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골칫거리가 관심거리로 바뀌게 되었다.

 

바람을 표현하는 매체들

바람은 대기의 흐름이다. 대기의 흐름에 반응하는 매개체만 있다면 바람을 시각화할 수 있다. 그래서 매개체는 바람에 움직일 만큼 충분히 가벼워야 한다. KT 디지코 가든에 설치한 윈드 웨이브에는 3×5cm 알루미늄 소재의 작은 패널이 달려 있다. 패널의 무게는 매우 가벼웠고, 패널 상단에는 패널을 고정하면서도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고안한 장치를 설치했다. 3,000개 패널들이 움직이면서 바람의 흐름을 연출하는데, 다이내믹한 경관을 연출하기 위해서는 패널의 전체 흐름이 느껴질 수 있는 꽤 넓은 면적이 필요하다. 이 부분은 설계자의 의도에 의해 결정되기도 하지만 비용이 많이 드는 구조물이라 공사비 예산과도 밀접하게 관련된다. 초기 제안에서는 필로티 하부의 꽤 넓은 면적을 스크린으로 가리면서 내부에 시크릿가든을 제안했다. 높이 8m, 폭원 30m 정도였는데, 현재 조성된 규모와 비교할 때 4배 정도 많은 비용이 필요했다. 결국 공사비 여건을 반영하여 환기구 주변으로 규모를 축소해 설치했다.

 

또 매개체의 소재가 바람의 세기에 어느 정도 저항성을 가져야 한다. 너무 가볍거나 파손이 쉬운 소재는 바람이 많이 부는 지역에 적합지 않다. 2009년 반포한강공원을 조성하면서, 반포대교 교량 하부의 경관을 개선하기 위해 교각을 따라 곡선형 철판을 설치했다. 그런데 한강의 강한 바람으로 인해 철판이 결국 구겨져 못쓰게 됐다. 꽤 두꺼웠다고 생각했는데 한강의 거센 바람을 견디지 못했다. 그래서 작년 반포한강공원 내 물방울 놀이터를 조성할 때 침수와 바람 부분을 특히 많이 고민했다. 놀이 공간 중심에는 높이 3m의 7개 마법 지팡이(각주 1)가 있는데, 상부에는 각기 다른 모양의 철판에 글자들이 새겨져 있다. 풍향계처럼 돌아가는 7개 철판은 미스트와 함께 아이들의 흥미를 유발하는 요소로 연출했다. 그런데 어느 정도로 빠르게 회전하는 게 좋을지 고민이었다. 새겨진 글자를 읽을 수 있어야 했다. 그래서 어느 정도 무게가 있는 철판으로 디자인했다. 다행히 작년 겨울철 한강의 강한 바람에도 잘 버텼지만 생각만큼 많은 회전이 없어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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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드 웨이브는 3,000개 패널들이 각각 움직이면서 바람의 흐름을 만들어 낸다.

 

어두운 밤에도 바람을 표현할 수 있을까. 조명의 빛이 매개체가 되면 가능하다. KT 디지코 가든의 주차장 출입구 상부 하늘정원에는 초지 언덕 풍경의 그라스류를 식재했고, 그 사이사이에 갈대 조명들을 설치했다. 200개의 갈대 조명이 일정한 간격의 그리드 패턴으로 놓여 있어서 멀리서 보면 빛의 표면으로 읽힌다. 갈대 조명 빛의 세기를 조절할 수 있는데, 이를 이용해 바람이 부는 듯한 빛의 물결을 연출했다. 흔들리는 그라스와 함께 빛의 움직임으로 바람을 시각적으로 감지할 수 있다. 원 설계안에서는 바람을 측정하는 장치를 5개 정도 언덕 주변에 설치해 주변 바람 세기에 따라 조명이 반응해 빛의 세기가 조절되도록 설계했다. 하지만 시공 과정에서 다른 공정 비용 증가로 인해 바람 측정 장치와 시스템 비용이 축소되어 설계안이 변경됐다. 하지만 이 장치와 시스템에 큰 비용이 소요되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환경에 반응하는 특별한 야간 경관을 연출하고 싶다면 추천한다.

 

바람이 야기하는 문제들

겨울철 북서쪽에서 불어오는 찬바람과 도심 내 미기후 조절, 봄철마다 중국에서 불어오는 황사나 미세먼지 등 기후 이슈는 도시계획부터 규모가 작은 외부 공간 설계까지 최근 들어 조경가가 빈번히 접하는 문제다. 해결책으로 방풍림, 바람길 숲, 미세먼지 차단숲 등이 자주 언급된다. 새로운 광화문광장의 서측 편에는 그늘을 만들고 미세먼지를 저감하기 위한 다층 구조의 수목을 식재했다. 그런데 한 연구에서 광장의 수목들이 그늘을 만들어 표면 온도를 저감하기는 하지만 바람의 흐름을 막아 광장의 쾌적감을 오히려 떨어뜨린다는 결과가 발표됐다.

쾌적한 이용 환경을 고려해 현재 광장에 식재된 수목의 배치와는 다른 배식이 제안됐다. 이 논문 결과는 서울시와 설계사를 곤혹스럽게 했다. 나 역시 김유진 교수(강릉원주대학교) 연구팀과 광장 이전과 이후의 온도, 습도, 바람을 측정하고 시뮬레이션하며 연구를 진행했고, 결과는 앞선 연구와 달리 수목 식재 공간 및 식재 비율이 높아짐에 따라 쾌적감이 전반적으로 좋아지는 결과값이 도출됐다. 그런데 두 연구에서 의미 있게 볼 것은 일부 구간의 조밀하게 식재된 수목에 의해 바람이 정체되면서 시민들이 느끼는 쾌적감이 상대적으로 낮은 구간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이 사례로 볼 때 앞으로 도심에 숲들이 생겨나면서 새로운 문제들이 제기될 수 있다.

최근 DL이앤씨가 새만금 간척지에 국립새만금수목원을 짓고 있다는 기사를 접했다. 일 년 전 기본 및 실시설계를 진행하면서 대상지 중심에 위치한 주제 전시원 수목들의 생육을 고려해 북서풍의 찬바람을 막기 위한 거대한 마운딩과 방풍림을 계획했다. 대상지 북서측에 배치한 높이 11m의 언덕은 시뮬레이션 결과 주제 전시 지역(해양성 기후를 테마로 다양한 수종이 식재된 중심 전시 공간)으로 부는 북서풍을 약화시키는 역할을 했다.

덕분에 수목의 건조와 냉해 피해가 최소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방풍림 조성 시에 북사면 세 개의 단을 따라 방풍책을 설치했다. 새만금 지역에서 방풍책의 유무에 따른 방풍림의 성장 속도와 수목 생육 상태를 연구한 내용을 고려해 설계한 것이다. 바람으로 인한 문제를 지형과 숲을 활용해 해결하는 방식은 여전히 가장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보다 체계적이고 근거에 기반한 설계 접근이 필요하고, 좀 더 구체적인 방식이 개발되어야 한다. 우리가 바람과 관련된 환경 문제를 다룰 때 ‘숲’이라는 일반적 해결책만 안이하게 내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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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진 교수 연구팀과 광장 이전과 이후의 온도, 습도, 바람을 측정하고 시뮬레이션하며 연구를 진행했다.

 

풍백(각주 2)을 꿈꾸며 그린 계획들

모든 공항의 활주로에는 각기 다른 숫자가 새겨져 있다. 이 숫자는 방위각을 나타내는데, 바람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비행기가 이륙할 때 하늘로 떠오르는 양력을 얻을 수 있고, 착륙하면서 속도를 줄일 때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이 재미난 사실에서 영감 받은 콘셉트로 계획안을 만들어 오성공원 설계공모에 출품했다. 이 공모는 인천공항에 인접한 오성산이 공항 조성으로 인해 잘려나간 부지에 근린공원을 만드는 사업이다. 방위각 33 활주로와 평행한 열린 경관축과 서해와 공항의 풍경을 조망할 수 있는 방위각 01 축이 공원의 골격이 된다. 인천공항의 상징성을 담은 콘셉트와 계획안은 독창적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아쉽게 2등을 해 페이퍼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로 남게 됐다.

봄이면 중국으로부터 불어오는 미세먼지로 서울 도심에서 파란 하늘을 보기가 쉽지 않다. 아이들을 둔 부모들은 외부 활동을 하기에 앞서 미세먼지를 체크하는 것이 일상이 됐다. 2019년 서울형 저이용 도시공간 혁신 아이디어 공모전에 참여하면서 미세먼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늘공원 일대에 더스트캡처(Dust Capture)를 제안해 대상을 받았다. 거미 생태계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만든 미세먼지 채집망은 적정한 간격으로 배치된 클린 타워 기둥들에 의해 지탱된다. 아이디어 공모였기 때문에 현실성보다는 가능성에 무게를 둔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바람이라는 소재는 외부 공간을 다루는 조경가에게는 피해가기 어려운 설계 요소다. 적은 설계비와 한정된 시간으로 인해 보이지 않는 것을 고민하는 것이 사치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다른 방안을 두고 불필요한 고민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또한 불확실한 변수이기에 설계자의 의도와는 다른 결과를 맞이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조경설계가 완결된 작품을 만들기보다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고 지속하는 시스템과 관계를 만드는 작업이라면, 바람을 상상하는 일은 충분히 흥미롭고 의미 있는 일이 될 수 있다.

 

각주 정리

1. 여름철 더위를 식혀줄 목적으로 설치된 미스트 폴이다. 놀이 공간 특성을 고려해 마치 한강 설화 같은 이야기를 지어 한강 마법 지팡이로 명명했다

2. 바람을 다스리는 환웅의 신하

 

조용준은 서울시립대학교와 펜실베이니아대학교에서 조경을 공부했다. CA조경기술사사무소 소장으로 새로운 광화문광장 기본 및 실시설계를 이끌고, 워커힐 더글라스정원 기본 및 실시설계, 이스탄불 하천 회복 프로젝트, 종로구 통합청사 설계공모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개인 자격으로 즉흥적인 기획, 전시하지 않는 그래픽 작업 등을 즐기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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