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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광교의 호수공원에서
  • 환경과조경 2016년 10월

원주민도 아니고 현재의 신도시 주민도 아니고 자주 가볼 기회도 없지만 나는 광교라는 두 글자에 이상하리만치 친근감을 느낀다. 누군가 광교신도시가 참 살기 좋다는 평을 하면 이유 없이 뿌듯하다. 호수공원에서 주말 오후를 보내기 위해 일부러 광교를 자주 찾는다는 지인의 말을 들을 때면 내가 설계한 곳도 아닌데 괜히 우쭐한 마음이 든다. 다른 곳의 아파트 값은 계속 추락하지만 그래도 광교만은 오른다는 부동산 기사를 읽으면 마치 내 재산이 늘어나는 양 즐겁다. 사실 그럴 만한 특별한 인연은 없다. 근 삼십 년 전쯤에 광교호수공원의 전신인 원 천유원지로 몇 차례 MT를 가서 칠흑 같은 밤하늘, 그 침묵의 밤하늘보다 더 짙은 저수지 수면의 고요함을 깨며 부어라 마셔라 디오니소스를 친구 삼았던 게 전부일 뿐.

2008년, 까마득히 잊고 있던 원천저수지의 추억이 되살아난 적이 있다. 경기도시공사의 의뢰로 같은 과의 원로 교수님을 도와 ‘광교신도시 호수공원 국제설계공모’를 진행할 때였다. 이십 년 만에 다시 찾은 그곳의 풍경을 묘사하기엔 상전벽해(桑田碧海)만한 말이 없었다. 신도시의 바탕이 될 부지 토목 공사가 이미 끝나 어디가 어디인지 알아볼 길은 없었지만, 그래도 뽕나무밭이 푸른 바다로 변한 무상한 감정은 들지 않았다. 저수지만은 그대로였기 때문일까. 공모전의 전문위원을 맡은 그 교수님과 여러 차례 현장을 드나들다보니 대화의 소재가 떨어졌다. 멋쩍은 정적을 깰 겸 치기어린 MT 무용담 몇 가지를 들려드렸더니 교수님은 갑자기 짧은 한마디 추억담을 꺼내놓으셨다. “와이프랑 처음 데이트한 곳이 여긴데.” 왜 하필 이 시골 저수지를 산책하셨는지 그 사연은 기억나지 않지만, 평소의 표정과 달리 교수님의 입가엔 로맨틱한 미소가 살며시 번지고 있었다. 그 후로는 원천유원지나 광교호수공원이라는 말을 들으면 이상하게도 한 쌍의 남녀가 수변을 행복하게 걷는 영상이 떠오른다. 내가 데이트를 한 것도 아닌데, 매번 남자 주인공은 나다. 인연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만 생기는 게 아닌가 보다. 아주 짧은 시간이더라도, 아무리 이방인이더라도, 사람과 어느 장소 사이에는 인연이 싹튼다.

이번 달의 광교신도시 특집은 꽤 오래 전에 기획한 아이템이다. 몇 달 전 편집회의 때는 이번에야말로 발로 뛰며 생생하고 입체적인 취재를 바탕으로 지면을 꾸려보자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었다. 그러나 ‘플랜 B’ 카드를 뽑는다. 계획은 변화에 적응할 때 그 가치를 발휘하는 법, 유연한 계획이 좋은 계획이다. 초여름부터 지금까지 환경과조경은 유례없는 비상이다. 발행인과 편집장부터 편집부, 디자인팀, 마케팅팀 모두가 ‘2016 서울정원박람회’ 기획과 준비에 총력을 쏟아 붓고 있다. 광교 기획을 조금은 축소할 수밖에 없는 형편.

박람회 프로젝트로부터 ‘스스로’ 면제된 나는 그래도 한번은 현장을 가야겠다는 의무감에 침대만을 친구 삼는 일요일 오후의 소중한 루틴을 깨고 잠시 광교신도시를 걷기로 했다. 상전벽해가 따로 없는 새 도시의 낯선 풍경이지만, 원천저수지는 그대로다. 세련된 겉옷으로 갈아입긴 했지만, 깊고 짙은 수면의 고요함과 넉넉함은, 그곳을 거니는 연인들의 웃음은 예전과 다르지 않다. 여느 신도시와 달리 광교에는 생동과 활력이 넘친다는 평가를 받는 데에는 원천저수지의 잠재력을 잘 살린 호수공원이 큰 몫을 했을 것이다. 치열했던 국제설계공모를 거쳐 원천저수지에 새 옷을 입힌 신화컨설팅의 최원만소장과 동료 조경가들은 늘 자랑스러울 것 같다.

짧지만 즐거웠던 광교 산책에서 돌아와 책장 한구석에 처박아놓았던 8년 전 공모전의 설계 설명서들을 다시 펼쳐봤다. 신화컨설팅의 당선작뿐만 아니라 쟁쟁한 여러 국내외 조경가들의 다양한 디자인 해법을 꼼꼼히 다시 살펴봤다. 그때는 동시대 조경의 압축 파일이라 할 만한 그들의 설계 태도나 접근 방식에만 눈이 갔는데 이제야 원천저수지라는 조건 자체가, 장소의 힘이 눈에 들어온다. 이 공모전에 대한 비평문에 나는 어깨에 힘 잔뜩 주고 이런 결론을 적은 적이 있다. “공원에 대한 도시인의 욕망과 수동적…인 공원 사이에 존재하는 등식이 여전히 유효하다면, 그것은 빠져나오기 힘든 공원의 굴레일지도 모른다. 라빌레트 공원을 기점으로 지난 20여 년 동안 새로운 방식으로 공원을 설계하는 접근이 여러 프로젝트에서 실험되어 왔다. 그것은 설계 자체의 변신을 위한 기획이었다기보다는 ‘다른 공원’을 향한 대안적 시도와 노력이었다. 달라지기 위해서는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고 인식한 첫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지만, 광교에서 볼 수 있듯, … 다른 공원의 가치를 실천적으로 제시하는 두 번째 발걸음은 아직 힘들기만 하다.” 취소다. 다시 출판할 기회가 있다면 꼭 수정하기로 마음먹었다. 광교호수공원에는 ‘다른 공원’이 있었다.

 

중요한 광고 하나 덧붙인다. “정원을 만나면 일상이 자연입니다!” 10월 3일부터 9일까지 월드컵공원 안에 있는 평화의공원에서 ‘2016 서울정원박람회’가 열린다. 월간 환경과조경이 서울시, 환경조경나눔연구원과 함께 정성껏 준비한 이번 박람회에는 작가정원과 주제정원뿐만 아니라 팝업가든 콘테스트, 해설이 있는 정원 투어, 당신의 정원을 디자인해드립니다, 정원에 차린 식탁 등 다채롭고 알찬 프로그램이 풍성하게 마련된다. 많이 오셔서 ‘다른 정원’들을 경험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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