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다가오는 것들’을 보고 난 후 한동안 ‘사라지는 것들’로 제목을 기억했다. 사라지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려고 극장 옆 서점에 들러 제목이 가장 그럴 듯해 보이는 『이별한다는 것에 대하여』(채정호, 생각속의집, 2014)라는 책까지 샀다. 우리는 시련에 대처하는 여자 주인공의 패턴에 익숙하다. 지리멸렬한 일상에서 벗어나 여행을 떠나서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거나, 더 깊은 우울의 늪에 빠지기도 한다. 한국 드라마가 가장 사랑하는 공식은 젊고 능력 있고 게다가 잘생긴 실땅님(발음에 주의)을 만나 성공하는 것이다.
이 영화의 아름다운 포스터만 본다면 아침 드라마의 익숙한 장면을 떠올릴 수 있다. 기차역 플랫폼에서 중년 여자가 여행 가방을 든 채 잘생긴 남자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기차란 일상에서 떠남을 의미하는 대표적인 기표가 아닌가. 아! 젊은 남자와 새 출발하는 이야기구나. 그러나 영화의 해법은 예상을 벗어난다.
영화는 나탈리(이자벨 위페르 분)의 삶에서 중요한 존재나 의미들이 사라져 가는 상황을 그린다. 어머니는 죽고 남편은 떠나며 명예와 열정은 옅어진다. 종종걸음으로 바삐 걸어 다니는 그녀를 따라다니다 보면 사라져가는 것들만 보인다. 영화의 반어적 제목은 결국 무엇이 다가오는지를 관객 스스로 생각해보라는 의미인지도 모르겠다. 나탈리는 어딘가 떠나긴 하지만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며, 옛 제자 파비앵(로만 코린카 분)을 만나긴 하지만 관객이 상상하는 ‘그런 사랑’은 아니다.
나탈리는 파리의 한 고등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는 교사다. 같은 직업을 가진 남편과 두 자녀를 두었다. 우울증을 앓는 그녀의 어머니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하루에도 수없이 전화한다. 수업하던 중에도 자살 소동을 벌이고 있는 어머니에게 뛰어가야 한다.
남편은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고 고백한 후 그녀를 떠난다. 출판사로부터는 오랫동안 참여해 온 철학 교과서 공동 필자에서 배제된다는 통보를 받는다. 이와 같은 상황에 대처하는 그녀의 방식은 책임감과 솔직함으로 요약할 수 있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다. 최선을 다해 어머니를 돌보며, 남편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선을 긋고 정리한다. 출판사의 통보를 듣고도 제자의 책이 누락되었는지부터 챙긴다. 해마다 휴가를 보낸 남편의 여름 별장 정원을 손질하다 어머니가 위급하다는 소식을 듣고 요양원으로 허겁지겁 달려간다. 그 와중에도 꽃 몇 송이를 챙기며 추억이 쌓인 바다 풍경을 바라보면서 조용히 눈물짓는다. 인간이 힘든 상황에서도 얼마나 존엄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우아한 장면이다 ...(중략)...
* 환경과조경 344호(2016년 12월호) 수록본 일부
서영애는 조경을 전공했고, 일하고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다. 홍상수의 신작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을 보면서 등장인물보다 연남동과 경의선숲길에 더 눈길이 갔다. 오래된 골목과 새로운 공원, 그리고 그 사이를 메우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돋보이는 영화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은 어떻게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