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를 가지는 일, 언어를 부여하는 일, ‘명명’하는 일, ‘명명’되는 일은 그 자체로 희미하던 어떤 것이 드러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는 일이다. 동시에 임의적 구분과 분절이란 언어 자체의 특성으로 인해 그 자체로 폭력이 되기도 하고, 실상 단 한 번도 합의되거나 그 의미가 완연하게 공유된 적 없음에도 불구하고 암묵적 합의를 상정한다는 특성으로 인해 혼란을 야기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한 단어, 한 항목을 그 자체로서 논하고 규정하고자 하는 일에는 무수한 반론이 제기될 수밖에 없으며, 심지어 불가능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것은 ‘예술’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예술은 무엇이다’라고 언명하기 어려움은 물론이거니와, 19세기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는 기치 역시 어쩌면 자기 참조적 표현 때문에 ‘그럼 예술이란 대체 무엇이냐’ 하는 끝나지 않는 질문, 니체의 표현대로라면 ‘자기의 꼬리를 물고 있는 어떤 벌레’가 되는 문제를 안고 갈 수밖에 없다. 다만 후대의 우리는 이 명제가 도덕이라는 이름의 해당 시공간의 일상적 사회 가치를 기반으로 한 판단과 검열, 수단적 가치의 강요에 대한 반감에서 비롯한 것임을 고려하여, 시공간의 맥락을 상상하고 그려보며 왜 그런 표현을 하게 되었는지를 이해하려 노력할 수 있을 따름이다. 그러나 이조차도 예술을 예술로만 말할 수 없음을 증명할 뿐이다. 어떤 단어도 자기 참조만으로 정의될 수 없듯 삶도, 예술도, 예술가도, 어떤 존재도, 온전히 자기 스스로 설 수는 없다.
이 끝나지 않는 도돌이표 같은 논제를 시작으로 글을 여는 이유는 본 연재에 앞서 최근 몇 년간 맞닥뜨리게 되었던 몇몇 예술이란 이름 아래에 행해진 치명적인 독가스와 그에 대한 작가주의식 변명에 정신이 혼미해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한 마치 예술이 사회와 분리된 어떤 것이라는 믿음, 거기에서 비롯한 예술의 성역화 내지는 주변화, 그 변두리를 대충 묶어 퉁치듯 우리 사회가 ‘예체능’을 다루고 그마저도 ‘문화체육관광’으로 묶어버린 와중에 일부 세력이 호구 주머니 털듯 휘두르려 했던 것에 대한 분노, 블랙리스트로 대변되는 검열과 통제, 자의에 의해서든 타의에 의해서든 이미 예술계에 포지셔닝(positioning: 위치 짓기)하고 있는 활동임에도 불구하고 미학적 잣대로 모든 예술을 재단할 수 있는 듯이 사회 참여적 색이 있는 활동에 ‘그런 건 예술이 아니지’라며 단호하게 선을 그었던 일부 지인에 대한 반감 때문이기도 하다. 블랙리스트 사건의 경우, 예술과 사회가 분리되지 않음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분노 한편에 일정 부분 도리어 반가운 마음이 들기까지 한다.
건축 그리고 여느 장소-‘곳’이 맥락을 가지듯 우리의 모든 발화, 행위 그리고 그 행위의 산물은 시공간적 맥락과 위치에 따라 의미를 생성한다. 수신 대상자 혹은 관계되는 수많은 이들 그리고 발화-행위자 스스로의 시간적·공간적 맥락 및 위치, 즉 사회와 연계되어 의미가 생기는 것이다. 예술 역시 예외가 아니며 그렇기에 예술을 그것이 이루어지는 사회와 장소, 맥락과 함께 이야기하는 것은 중요하다. 이에 더해 예술은 사회를 소재로 하거나 보다 직접적으로 사회에 개입하기도 하고, 그 자체가 사회이자 삶의 실천일 수 있다. 곧 예술은 사회의 반영이자 사회를 보는 렌즈이기도 하며, 개입과 변화의 주체이기도 한 것이다. 11개월 동안 계속될 본 연재에서는 시각 예술 및 소위 다원 예술계를 중심으로 특히 예술의 정치적-비정치적 사회 개입 또는 반영을 보다 극명하게 드러내는 예술인의 활동을 조망한다. 우리 사회가 이루어지는 장으로서 도시와 지역에서 예술인이 어떻게 새로운 얼개를 엮어 내는지를 통해 도시와 지역, 장소를 바라보는 시각을 확장해보고자 한다. ...(중략)...
진나래는 미술과 사회학의 겉을 핥으며 다방면에 관심을 갖고 게으르게 활동하고 있다. 진실과 허구, 기억과 상상, 존재와 (비)존재 사이를 흐리고 편집과 쓰기를 통해 실재와 허상 사이 ‘이야기-네트워크-존재’를 형성하는 일을 하고자 하며, 사회와 예술, 도시와 판타지 등에 관심이 있다. 최근에는 기술의 변화가 만들어내는 지점에 매료되어 엿보기를 하고 있다. 2012년 ‘일시 합의 기업 ETC(Enterprise of Temporary Consensus)’를 공동 설립해 활동했으며, 2015년 ‘잠복자들’로 인천 동구의 공폐가 밀집 지역을 조사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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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경과조경 346호(2017년 2월호) 수록본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