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물을 비롯한 도시를 구성하는 공간 요소들은 새로 만들어지면 역사 유적이 아니어도 내구재로서 일반적으로는 수십 년에서 백 여 년, 꽤나 긴 수명을 갖는다. 그러나 물리적으로 노후하든 사회적으로 노후하든, 이런 저런 한계에 다다라 종국에는 해체되고 새로운 것으로 대체된다. 우리 몸의 세포가 우리가 태어나 수명이 다할 때까지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새로 만들어지고 죽는 것과 같다. 도시 공간 요소가 새로 태어나고 쓰이다 낡고 죽는 생로병사, 혹은 신진대사는 당연하고 자연스러우며, 그 도시의 긴 역사에서 끊임없이 일어난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가 건강한 도시 공간의 생로병사 주기일까. 즉, 건물이 어느 정도 노후했을 때 다시 새로 지어야 할까.
한국의 도시 건조 환경 생로병사 주기가 짧은 것은 분명하다. 아파트는 10여 년만 지나도 ‘구축’이라는 오명이 붙고, 30년도 지나지 않아 재건축이 거론된다. 아파트보다 시공 수준이 낮고 당연히 시공비도 낮은 저층 주거지 주택들은 대사주기가 더 짧아 20년도 안 되어 밭을 갈아엎고 새 작물을 심듯 새로운 주택 유형으로 재건축되곤 한다(그림2). 연말 예산 낭비의 대표격으로 공격받는 보도블록은 수년마다 한 번씩 파헤쳐진다.
왜 이렇게 짧은 것일까. 지난 반세기 급격한 경제 성장과 사회 변화의 궤적에서 우리 사회의 공간 수요도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빠르게 바뀌었기 때문이며, 동시에 공간을 만드는 계획 수준과 시공 수준 모두 급격히 발전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미 만들어진 공간을 고쳐 쓰는 정도로는 한계가 많다. 또한 새로 만드는 비용, 즉 공사비가 상대적으로 낮게 유지된 점도 생로병사 주기를 줄이는 요인이다.(각주 2) 돈과 시간을 더 들여 길게 쓰도록 만들지, 적게 들이고 자주 교체할지는 우리 사회가 공유하는 건조 환경의 적정 수명이라는 기준에 영향을 미친다.
도시 공간의 삶과 죽음, 그 임계점
도시 공간을 이루는 수많은 물적 요소들이 태어나고 죽는 생로병사가 반복되는 가운데, 어떤 한개체가 오랫동안 존재하다 해체되고 다시 짓기로 결정되는 때는 언제일까. 여러 연구자가 이를 수학적으로 또는 통계적으로 설명하고 확인하는 노력을 기울여왔다. 아주 간략하고 거칠게 표현하자면, 도시 공간의 삶과 죽음의 임계점은 현재 상태의 공간에서 얻는 수익이 (재개발에 들어가는 비용을 고려하고도) 재개발 후 기대되는 수익과 같아 질 때다.(각주 3)
여기서 수익은 현재의 사용 가치에 기반을 둔 임대료라고 볼 수 있다. 물론 현실에선 부동산 가치 상승에서 오는 수익이 더 클 수 있다. 비용은 기존 공간을 해체하고 새로운 공간을 만드는 건설비가 기본이지만, 재개발을 결정하고 진행하는 모든 단계의 지연에서 비롯되는 ‘전환 비용’(각주 4)을 무시할 수 없으며 예측하기도 어렵다. 결국 현재의 사용 가치가 공간의 노후로 인해 얼마나 감소하는지, 재개발 과정에 들어가는 직간접 비용이 얼마나 높은지, 그리고 새로 만들어진 공간이 창출하는 사용 가치가 얼마나 높은지가 도시 공간의 생로병사 속도를 결정하게 된다. 이러한 도시 공간의 삶과 죽음의 구조 안에 우리의 제도가 어떻게 개입해 도시의 생로병사를 조절하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 환경과조경 429호(2024년 1월호) 수록본 일부
**각주 정리
1. 제인 제이콥스, 유강은 역,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 그린비, 2010.
2. 최근 공사비 상승은 우리 도시의 생로병사와 신진대사가 일어나는 전제 조건을 바꾸고 있다.
3.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자율을 고려한 공간 운영 이익의 순현재 가치와 재개발하여 얻게 되는 이익의 순현재 가치가 같아질 때다. 브뤼크너(Brueckner, 1980), 휘턴(Wheaton, 1982) 등 도시 성장 모형 연구 이론에 기초한다. 또 다른 재개발 결정 이론인 닐 스미스(Neil Smith, 1979)의 지대차 이론(Rent-gap theory)에서도 현 지대와 재개발 후 잠재적 지대 간의 격차가 커질 때 젠트리피케이션을 촉발하는 도시 공간의 물리적 재투자가 발생하는 조건이 된다고 설명한다.
4. 박성식, 『공간의 가치』, 유룩출판, 2015.
유영수는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이로재와 기오헌에서 건축 실무를 경험했다. 런던 정치경제대학교에서 도시 디자인과 사회과학 석사과정을 마치고 돌아와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며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병행했다. 현재는 인천대학교 도시건축학부에서 법, 제도, 현대 도시설계 이론, 스튜디오를 가르치고 있다. 건축과 도시를 아우르는 스케일에서 개별적인 공간 현상과 법제 사이의 관계를 연구하고, 계획과 디자인의 역할을 확장하기 위한 이론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