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더관리
폴더명
스크랩

[기웃거리는 편집자] 메타버스로 보고 듣고 즐기기
  • 환경과조경 2023년 06월

“I’m on the Next Level……” 케이팝을 자주 듣는 사람이라면 이 가사에 한쪽 팔을 꺾어 ㄷ자를 만들 것이다. 에스파의 ‘Next Level’로, ㄷ자 춤과 함께 유행을 선도했던 노래다. 에스파는 지금까지 의 아이돌과 다른 독특한 콘셉트와 차별성을 가지고 있다. 바로 메타버스를 결합한 아이돌이다. 그룹명 에스파(aespa)는 아바타(avatar)와 경험(experience)의 앞 글자를 딴 ae와 양면이라는 뜻의 aspect를 결합한 명칭이다. 3D를 기반으로 창조된 가상 세계인 플랫(FLAT)에서 또 다른 자아인 아바타 아이ae를 포함한 8인조(인간 멤버 4명+ 아바타 멤버 4명)로 활동하고 있다.

 

에스파의 데뷔 티저 영상은 꽤나 충격이었다. ‘아바타가 멤버라니, 메타버스가 콘셉트가 될 수 있구나’라고 생각하며 적잖이 놀랐다. 영화나 드라마에 실제와 혼동하기 어려울 정도의 컴퓨터 그래픽CG 기술이 적용되는 것에 적응하고 있던 찰나인데, 아이돌의 활동 방식에까지 기술의 여파가 미치다니, 심지어 아바타가 실제 사람과 대화하고 춤을 추다니. 이런 기술은 볼 때마다 놀랍다.

 

사실 메타버스를 처음 접한 건 중학생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때 가입자가 3,600만 명에 달할 정도로 인기가 있었던 플랫폼인 싸이월드다. 집에 돌아오면 컴퓨터를 켜 싸이월드에 접속했다. 내 취향을 엿볼 수 있는 1평도 안 되는 미니홈피와 아바타. 미니홈피에 들어가면 어젯밤에 누가 어떤 말을 남겼을까하는 기대감으로 먼저 방명록과 일촌평을 확인했다. 한 명도 방문하지 않은 날도 있었고, 꽤 많은 지인이 찾아온 적도 있었다. 방문자 수를 늘리기 위해 친구들과 서로의 미니홈피를 하루에 열 번씩 방문하자는 딜(?)을 하기도 했다. 싸이월드에선 현금 역할을 하는 도토리가 있었는데, 명절에 받은 용돈의 3분의 1로 이 견과 전자 화폐를 샀다. 배경음악BGM을 사는 데 대부분의 도토리를 투자해 내 심정을 보여줄 수 있는 음악으로 플레이리스트를 구성하곤 했다. BGM보다 공을 들인 부분은 일촌명이다. 일촌명은 일촌을 맺는 사람 이름 앞에 수식어처럼 적히는 것인데, 드립력(?), 창의력 혹은 그 사람과의 관계성을 엿볼 수 있었다. 새로 일촌을 맺는 사람과는 사전에 몇 가지 후보를 가지고 어떤 일촌명으로 설정할지 꽤 진지하게 토론을 펼치기도 했다.

 

싸이월드와 많은 시간도 보내고 추억도 쌓았는데, 이 미니홈피가 메타버스의 일종이라는 건 최근에 알았다. 당시는 메타버스라는 단어도 생소했고 대중화되어 있지 않았다. 나에겐 방과 아바타를 꾸미고 BGM을 고르는 하나의 재미였다. 그래서 인지를 못했던 것 같다. 최근에 들어서야 인공지능AI, CG, 메타버스 등이 다양한 곳에서 활용되고 자주 쓰는 용어가 됐다.

 

4월 1일, 2023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이하 순천만박람회)가 개최됐다. 취재 차 순천만박람회에 방문했다. 자료 조사하던 중 흥미로운 것을 발견했다. 바로 메타버스로 순천만박람회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신기해서 바로 메타버스 박람회에 접속했다. 아바타에 별명을 설정하면 입장 준비 완료. 그린아일랜드를 걸으며 박람회장인 순천만국가정원으로 들어간다. 박람회장 곳곳을 둘러봤는데, 여러 공간 중 경관정원과 노을정원에서 아바타를 조작하던 손가락을 멈췄다. 그래픽으로 구현된 노을과 화려한 꽃들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직접 가보니 오천그린광장과 그린아일랜드에 마음을 뺏겨 버렸다. 메타버스로 담지 못하는 광활함과 청량감이 나를 반겼다. 오천그린광장 잔디밭에 앉아 광장을 살펴보았다. 건물 속 꽉 막힌 풍경과 달리 뻥 뚫린 이곳은 편안해 보였다. 돗자리를 깔아 피크닉을 즐기고, 자전거로 동천을 내달리고, 그린아일랜드를 산책하는 모습들은 메타버스가 아닌 그곳에 직접 가야 만끽할 수 있는 풍경이란 걸 깨달았다.

 

수많은 메타버스가 쏟아져 나오는 지금, 가볼 수 없는 곳을 체험해보기도 만나기 어려운 이를 접하기도 한다. 『환경과조경』도 메타버스로 보는 상상을 해봤다. 소개되는 공간을 그래픽으로 구현해 둘러보고, 필자들을 화상으로 만나는 등 잡지의 색다른 매력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마음에 드는 구절을 형광펜으로 밑줄 긋는, 이미지를 오려 따로 보관하는, 종이를 넘기면서 읽는 그 특유의 책 맛을 메타버스로는 재현하긴 어렵지 않을까. 책으로 펼쳐보는 상상력은 무한하니깐.

월간 환경과조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지합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