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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과 조경이야기
  • 환경과조경 2010년 7월

A Story of Landscape Architecture and Fine Arts

흙먼지 날리는 평원에서 그래도 웃고 있을 K에게


오랜만에 타국에서 보낸 엽서를 받고 적잖이 놀랐네.

더구나 페루의 나스카평원1을 보러 떠난 자네가 부러우이.

우리 평소에 이야기하던 조경, 미술의 관계, 나스카평원의 미스터리한 작품들도 오랜 유적이지만 따지고 보면 Land Art의 개념이지. 물론 미술가나 조경가가 존재해서 이루어진 것은 아니지만.

그러고 보면 대지에 경관 변화를 주어 경이로운 크기나 형태의 모뉴멘트나 흔적을 남기는 것들은, 그 시작이 주술이나 기원 또는 영생을 추구하기 위해 만들어지거나 혹은 그렇지 않더라도 기원전 아니 더 오래전부터 있지 않았는가.

가까이는 세계에서 제일 많은 고인돌의 나라인 우리나라 고창 일원의 고인돌 군상도 그렇고 지난번 자네가 다녀온 영국의 거대한 백말그림, 스톤헨지 등이 그렇지 않은가.


물론 그것들이 조경과 미술의 만남이라고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미술사적으로 남겨져 있는 유적들을 대지예술의 측면으로 해석할 수 있고, 우리가 흔히 말하는 작은 규모의 미술이 아닌 대지와 융합한 경관적 처리방법으로 조경의 영역에서도 음미하고 생각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네.

정원에 준거한 조경사의 흐름만이 아닌 자연을 바탕으로 경관적 조형을 한 것도 조경의 흐름으로 이해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생각하네.

푼돈을 모아모아 지난 여름에 갔었던 남태평양 이스터섬의 모아이 석상에 대해 다른 관광객들은 거석문화의 경외를 느끼며 감탄했지만, 우리들은 석양빛에 물든 하늘을 배경으로 서있는 그 모자 쓴 석상을 산언덕에서 내려다

보며 경관성을 논하고, 자연 속 인공적인 석상의 군상들을 바라보며 거창하진 않지만 미적인 이야기들을 나누지 않았던가.

또 그 다음날 석상 곁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며 술에 취한 듯 남들과 다른 경관 경험을 하며 웃었고.

그렇게 보면 조경이란 것은 이미 오래전 학문적인 체계를 이루기 전부터 존재해 왔고 지금도 발전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네.

하긴 따지고 보면 우주공학이나 천문학이 생기기 아주 오래전부터 태양을 중심으로 지구가 돌고 있었고, 태양계는 은하계 속의 하나였으며, 우주는 수많은 은하계로 채워져 돌고 있었음을……

또 우리가 사는 이 지구가 최소한 2개 이상의 위성이 있는 행성이라는 것도 근래 들어서야 알게 되었지만.

근래에 들어 조경 디자인의 모티브를 다양한 것에서 접근하고 해석하면서 순수미술과 접목하는 시도도 많이 생겨나고 있고, 또 그런 디자인적인 것이 아니더라도 이미 우리들 주변에는 미술과 조경의 융합이랄까 그런 것들이 많이 있지 않은가.

노르웨이의 비겔란 조각공원의 경우 조각가 비겔란의 역작들을 모아서 조각공원이 조성되었지. 인간의 일생을 다룬 조각들로 이루어진 그 공원은 지금도 수많은 관광객, 미술애호가, 시민들의 이용으로 늘 붐비지 않는가.

비겔란 조각공원은 조각물로 이루어진 야외 미술관 역할을 하는 공원이지만, 이러한 조경과 미술이 만나는 의도적인 시도 이외에도 조경가들이 계획하는 많은 프로젝트들이 다양한 재료들을 이용하여 선적이거나 면적인 기하학적 도형들을 디자인화하고 조성하는 작업으로서, 이러한 옥외공간의 모든 것들이 미적인 내용을 도외시하고 무의미하게 작업을 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물론 미술가들 특히 설치미술가들이 경관을 화폭으로 삼고 대지예술을 전개하고 전시하는 것은 자주 시도되고, 미술사적으로 소개되고 평가되지만, 이슬람식 정형적 정원이나 잔디밭에 오브제가 놓여진 현대정원에 이르기까지 이미 조경과 미술은 만나고 있었고 융합되고 있지 않은가.


고대로부터 외부공간은 다양한 표현의 대상이었고, 이러한 표현의 대상으로서의 외부공간은 미술로부터 끊임없이 추구되어 온 것이지.

그 후 외부공간을 다루는 조경가가 외부공간을 해석하고, 식물을 주재로 공간을 조성하고, 점차 식물과 다른 재료의 융합을 시도하면서 미적인, 의도적인 디자인으로 조성되었다고 볼 수 있지.


미술가가 도로나 광장의 포장 패턴을 평소 그리던 그림 풍으로 장식한 남아메리카 해변의 거리나 옥상정원을 캔버스 삼아 그림을 그리듯 조성한 사례가 있지만, 이미 널리 이름이 알려진 미술가가 계획한 공간이라서 알려진 것이지 조경가들의 계획이 그보다 못해서 덜 알려진 것은 아니란 말이지.

지금은 조경가들이 미술가 아닌 미술가의 역할, 다양한 형태, 다양한 변모와 그에 대한 모색을 할 때라고 생각하네. 훌륭한 조경가, 디자이너임에도 불구하고 미술가가 아니라는 사회적인 편견으로 그 평가나 영향력이 매우 적은 편이지만 끊임없는 노력과 시도가 필요하다고 여겨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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