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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수 화백
  • 환경과조경 2010년 7월

이번호 특별기획 “조경과 미술”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미술과 조경의 접목을 생각하다 문득 떠오른 사람이 있다. 바로 서양화가 정정수 선생. 화가인 그가 캔버스가 아닌 땅 위에 그려낸 작품을 보노라면 인공적이되 결코 작위적이지 않고, 마치 원래 처음부터 그곳에 있었던 듯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미술과 조경의 접점을 넘나들며 화가이자 동시에 조경가로서의 삶을 살고 있는 그를 만나 작품세계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정정수 선생을 인터뷰하기위해 찾아 간 곳은 ‘성남 금광 래미안.’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이곳은 지난 2008년 IFLA 세계대회에서 Award of Excellence를 수상해 그 작품성을 인정받은 곳이다. “별반 다를 게 없는데…, 화가가 조경한다고 하면 다들 의아해 하죠. 전 자연을 캔버스 삼아 그리는 화가입니다.” ‘조경을 하다’란 뜻의 단어 ‘랜드스케이프(landscape)’가 풍경화와 그 어원을 같이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조경가(Landscape Architect)’와 ‘풍경화가(Landscape Painter)’ 사이에는 ‘땅’과 ‘캔버스’라는 행위 대상이 다를 뿐 아름다운 풍경을 창조한다는 공통의 목표가 있다는 점에서는 분명 상통하는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리산에서 배운 자연의 섭리
평소 그는 ‘아름다운 것은 곧 자기다운 것’이라는 말을 즐겨 한다. 사람이나 동식물 모두 제 위치에서 제 모습을 갖추고 있을 때 비로소 아름답다는 것이다. 이 말은 곧 모든 것이 자연스러울 때 아름다울 수 있다는 말이다. 실제로 그의 작품 면면에는 이런 생각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가 이런 생각을 갖게 된 것은 수십 년 전 영재로 태어난 자녀의 교육을 위해 서울 생활을 접고 지리산으로 들어가면서 부터다. 거의 매일처럼 오른 지리산의 대자연은 그에게 모든 자연에는 오묘한 질서와 법칙이 있다는 깨달음을 주었다.
“아마도 미술인의 눈으로 자연을 바라본 것이 많이 작용한 듯해요. 계절별로 피어나는 꽃이 다르고, 저마다 모양과 색깔이 다르며, 절묘하게 놓인 바위의 모양이라든지, 또 그 바위 사이를 치고 꺾이며 휘돌아 흘러가는 계곡물의 모습이라든지, 계곡과 바위 사이에는 어떤 풀과 꽃과 나무가 살고 있는지, 자연스레 식물공부도 하게 되고…. 이렇게 관찰하기 시작한 것이 어디서도 배울 수 없는 자연의 섭리를 이해하게 된 게 아닌가 싶어요.”
이후 그는 자연스럽게 꽃과 나무, 풀들을 하나 둘 집안 뜰로 옮겨와 정성스럽게 정원을 가꾸기 시작했고, 이것이 서양화가 정정수가 캔버스가 아닌 땅 위에 그리는 그림, 즉 조경을 시작하게 된 계기이다. 그런 이유일까 그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말한다. “지리산이 바로 나의 스승”이라고.

원래 그대로의 자연을 그리다
“마치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화가 정정수가 조경가로서 실제 공간에 구현한 작품을 통해 일관되게 보여주고 있는 철학이다. 제아무리 건축이 아닌 조경공사라 하더라도 이제 막 완공된 조경공간에 가보면 어딘지 모를 어색함과 딱딱함이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거늘, 하지만 그의 작품에선 그런 어색함보다는 오히려 심신이 정화되는 것 같은 평온함이 느껴진다. 그건 바로 야생화와 수목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원생 자연의 모습 그 자체를 재현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곳이 파주에 위치한 벽초지문화수목원. 골재채취장으로 황무지나 다름없던 곳이 그의 손길을 통해 자연과 예술, 사람이 함께 머무르는 운치 있는 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더불어 각종 CF와 드라마 촬영장소로 각광받을 만큼 수려한 풍경을 자랑하는 것은 그의 예술가적 감각이 더해진 결과이다.
그림을 그릴 때 사용하는 팔레트와 물감은 이제 다양한 식물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아마도 제 작품이 호평을 듣는 부분은 ‘미술적구도’를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해요. 예를 들어 큰 나무와 작은 나무 사이의 거리라든지, 그리고 그 사이사이의 작은 꽃과 풀에 이르기까지 근경, 중경, 원경의 풍경을 고려하여 심는 것이지요. 마치 그림을 그릴 때 팔레트에 물감을 섞어 사용하듯 다양한 식물재료를 섞어서 그어느 곳을 바라보아도 한 폭의 그림이 되도록 연출하니까요.” 실제로 금광 래미안만 하더라도 교목과 관목을 제외하고도 250여 종에 이르는 지피식물들이 바위와 폭포 등과 어우러져 여기저기에서 저마다 그림 같은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자연에 대한 겸손, 조경을 말하다
그렇다면 그가 생각하는 ‘조경’이란 무엇일까. 그는 조경을 자연과 인간의 소통도구이자 문명과 이기를 추구해온 인간으로 부터 훼손된 자연에 대한 보상행위라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여기에서만 그칠게 아니라 치료하기 위한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특히 ‘자연보호’라는 구호 속에 내재된 인간중심의 사고가 잘못되었다고 말한다. “우리가 자연으로부터 보호를 받고 있는데 자연을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여긴다는 건 너무 인간중심적인 사고가 아닌가요? 이것은 곧 자연에 대한 경외심 없이 자연을 다루는 것이지요. 결국 자연은 파괴되고……” 이처럼 그는 자연지배적이고 인간중심적인 서양식 사고보다는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의 방식인 동양적 사고를 강조한다. 금광 래미안을 소개한 그의 글에서 이러한 사고가 깊게 베인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자연이 인간을 포용하며 그 속에서 현대적 삶의 여유와 풍요로움을 갖게 하는 것은 물론, 자연 속에 일상생활이 스며들되 그 자체가 일상이어서 감성적으로 느끼지 못할 정도가 되게 해야한다는 것이 목표였기에…’ -정정수, 환경과조경 2007년 1월호(통권225호) ‘성남 금광 래미안’ 중에서

또한 자연에 대한 겸손과 존중함의 태도는 최근 유행처럼 빈번히 사용되고 있는 ‘생태조경’이란 말에 대해서도 일침을 가한다. “생태는 곧 연결이에요. 미세한 부분까지 연결고리를 통해 이어주면 자연의 기작이 일어날 텐데, 콘크리트 포장 위에 조성한 연못처럼 모든 것을 단절해놓고 단순히 꾸며놓은 것을 생태적이라고 할 수 없죠. 그런데 요즘은 함께 살아가는 연결고리를 만들어주지 않고서도 생태라는 이름을 함부로 붙이는 것 같습니다.”라며 생태적 조경공간은 사람들보다는 식물, 곤충, 동물들이 먼저 알고 찾아와서 인정해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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