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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따라 밟아본 삼국지 유적과 경관(5)
  • 환경과조경 2010년 8월

제갈량의 절묘한 계략으로 유비가 새장가 간 진강 감로사

유비가 국태부인에게 선보인 감로사(甘露寺)는 진강(鎭江)의 북고산(北古山)에 있다. 진강은 3천 년 역사를 가진 옛 도시로 ‘남경을 치려면 이곳을 치라’는 말이 있듯이 강소성 성도인 남경의 입구 같은 곳이다. 손권은 이곳에 성을 쌓고 경구라고 불렀는데 북송 때 진강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진강은 장강연안의 항구도시로 7세기 초 항주와 낙양을 있는 대운하를 완성한 후부터 강남운하의 중요거점이 되었다. 
북고산 입구에 들어서면 야트막한 북고산과 진강의 원경이 한꺼번에 들어와 북고산이 도시에 바로 접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유비와 손권이 칼 솜씨를 겨룬 시검석(試劍石)은 초입의 북고산 공원 입구에 있다. 십자로 난 돌이 있다고 했지만 여기서는 어디서 구해 놓았는지 갈라진 돌이 두 개 있고 약간 해학적인 모습의 두 영웅이 마주보는 석상이 서 있다. 원래 연못 속에 있던 것을 연못을 파내면서 설치했다고는 하나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 산 경사를 따라 올라가면 ‘천하제일강산’이라고 새긴 석판이 보이고 이어서 감로사 입구가 나타난다. 전장을 휩쓸고 다니느라고 경치다운 경치 구경을 못한 유비에게는 이 경치가 대단히 멋있어 보였을 것이다. 이어서 두 영웅이 말 타는 솜씨를 겨룬 ‘고주마간’이라고 쓴 정원 입구가 나타나고 들어서면 장강의 전망이 내다보이면서 강변으로 이어지는 길이 나온다. 감로사를 돌아 뒤쪽강변으로 내려가면 길옆에 ‘유마간’이라고 음각해 놓은 바위가 있어 여기까지 말을 타고 오르내렸을 것이다.
절로 들어가면 손권의 모친이 유비를 선보는 장면을 그대로 재현한 모형관이 있다(사진 7). 주유의 계책은 혼인을 빙자해 유비를 죽이든지 형주와 바꾸려고 했지만 국태부인이 용봉의 모습을 보이는 영웅 유비에게 반해 정식 결혼을 추진하기에 이른다. 모두 제갈량의 계략이다. 두 사람이 결혼할 때 유비의 나이는 49세이고 손부인의 나이는 19세 밖에 되지 않았다. 더구나 손부인은 천성이 매우 사나워서 시녀 백 명이 매양 칼을 차고 있으며 방안에는 병장기를 두루 벌려 놓고 있었다. 결혼 첫날밤에 유비가 신방으로 들어가는데 몹시 불안해 하니까 그제야 치웠다. 과연 결혼생활이 행복했을까?
손부인은 유비가 익주를 점령하고 그곳으로 들어갈 때 곧바로 손권에게로 돌아간다. 결국은 정략결혼을 한 것이니 부부간의 정도 돈독치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삼국지에는 유비가 이릉대전에 패해 죽은 후 손부인이 정자에서 장강에 몸을 던져 자살한 것으로 나온다. 감로사에는 손부인이 떨어져 죽었다는 제강정(祭江亭)도 만들어 놓았다. 그러나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보아 자살까지 할 정도로 유비를 그리워했는지는 의문이 간다.
지금까지 답사한 감로사 유적은 스토리에 따라 너무 완벽하게 만들었다. 역사적 사실과는 관계없이 소설에 따라 만든 것은 아닐까? 실제로 정사로서 진수의『삼국지』촉서 후한서에는 손권이 형주를 차지하고 있는 유비와 동맹을 강화하기 위해서 유비가 머물고 있는 호북성 공안에 자기의 누이동생을 ‘보내’ 결혼시켰다고 되어 있다. 유비가 감로사에 오지도 않았다면 이 모든 이야기와 유적은 어찌 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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