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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경당
  • 환경과조경 2010년 9월

Yeongyeongdang

造營_ 연경당은 순조 28년(1828) 왕세자인 익종1의 청으로 사대부의 생활을 경험하고 이해하도록 하기 위하여 창덕궁의 후원인 금원禁苑내에 건립된 것으로, 연경당의 조영연대를 기록한 문헌으로는 한경지략漢京識略, 궁궐지宮闕志그리고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를 들 수 있는데, 한경지략에서는“연경당을 창건한 자조子朝27년은 순조 27년인 정해년丁亥年이며, 창건자는 섭정하는 왕세자인 소조小朝(후일 익종으로 추존) 였으며, 대조大朝인 순조가당호를 연경演慶이라 이름지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궁궐지와 증보문헌비고에서는 연경당이 진장각珍藏閣옛터에 후일 익종으로 추존된 왕세자가 세자시절인 순조 28년에 지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또한 건축의도에 있어 당시 규범적인 궁집宮家모습을 궁궐 안에 재현함으로써 궁궐 밖 민간생활을 알고자 한 것으로 판단되는 바, 이는 연경당이 당시의 궁집과 사대부의 모습과 유사한 모습을 가지고 있으며2, 서울의 팔대가의 하나였던 경운동의 부마도위駙馬都尉, 박영효의 초기 제택第宅3 이었던 이진승가李珍承家나, 관훈동의 민덕기가閔德基家(竹洞宮), 경운동의 민병도가閔炳道家등과 전체적인 구성이 유사하며, 특히 민병도가와는 안채와 사랑채가 하나의 채로 연속되어 건립된 점이 같다.

1. 익종은 순조 9년에 태어나 순조 27년 왕명으로 대리청정을 하다가 순조 30년(1830)에 세상을 떠났다. 그 뒤 아들이 헌종으로 즉위하자 왕으로 추종되어 익종으로 종묘에 봉향되었다.
2. 연경당은 안채, 사랑채, 안행랑채, 바깥 행랑채, 서재인 선향재, 반빗간, 농수정이라는 이름의 정자 등 여러 채(건물), 그리고 그것들과 각각 짝을 이루는 마당으로 구성되었으나, 궁궐 내에 위치한 이유로 인해 일반 사대부집과 달리 사당이 없으며, 안채의 부엌이 없는 대신 음식을 준비하고 빨래와 바느질 등 집안 안살림을 하는 반빗간이 별채로 있다.
3. 민가 중 공경대부의 집과 대군이나, 공주의 집인 궁집을 민가와 구별하여 제택(第宅)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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