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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ㆍ녕릉
  • 환경과조경 2009년 11월
여주 영ㆍ녕릉(驪州 英ㆍ寧陵)은 경기도 여주군 능서면 왕대리 산 83-1번지 일원에 위치하고 있으며, 면적은 2,008,536㎡(약 602,560평)으로, 영릉(英陵)은 제4대 세종대왕(1397~1450)과 소헌왕후 심씨(1395~1446)의 능이고, 녕릉(寧陵)은 제17대 효종대왕(1619~1659)과 인선왕후 장씨(1618~1674)의 능으로 조성된 이후, 조선 전ㆍ후기 왕릉 조영의 전형으로서의 가치 및 봉분형식, 석물 등의 능의 상설 및 정자각, 비각, 수복방, 수라간, 지당 등이 자연과 인공이 화합하는 순응의 미학을 지형적, 공간적으로 연계시키고 있다. 1970년 5월 26일 사적 195호로 지정되었다.

造營 _ 세종이 1450년 영응대군(永膺大君)의 사제 동별궁에서 승하한 후, 문종 즉위년(1450) 5월 21일 묘호(廟號)를 세종으로 능호(陵號)를 영릉이라 하였으며, 이해 6월 12일 경기도 광주 대모산 아래 헌릉 서쪽 산줄기 소헌왕후 심씨의 영릉 서실에 합장하였다.1 녕릉의 경우 1659년 5월 효종이 창덕궁 대조전에서 승하한 후 현종 즉위년(1659) 5월 11일 묘호를 효종이라 하고 능호를 녕릉이라 하였으며, 이해 10월 29일 양주 건원릉(楊州 健元陵) 서측 산줄기에 예장하였다. 녕릉 석물에 틈이 생겨 능침의 누수우려로 인한 천릉론에 따라 현종 14년(1673) 10월 7일 여주 영릉 동측 언덕 자좌오향(子坐午向)에 천릉하였으며 이에 앞서 능역내의 민가와 총묘를 옮기게 하였다. 이후 현종 15년(1674) 2월 24일 경희궁 회상전에서 효종대왕의 비 인선왕후 장씨가 승하한 후, 이해 3월 2일 시호를 인선(仁宣)이라 하였으며 6월 4일 효종 능 아래 자좌오향에 예장하였다.

立地 _ 영릉은 주산인 칭성산을 배경으로 중허리 부분에 봉분을 이루고 있으며, 그 좌우측에는 청룡과 백호가 겹겹이 봉분을 감싸주는 형세를 취하고 멀리 남쪽으로는 조산인 북성산에서 떨어져나온 작은 산맥인 안산을 바라보게 조성되어 있다. 이러한 형세를 회룡고조형이라고 하고, 또한 모란반개형인 형국을 지닌 명당지라고 한다. 한편 녕릉은 영릉의 내청룡에 해당하는 구릉과 외청룡에 해당하는 구릉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 구릉들이 자연스레 좌청룡과 우백호가 되어 봉분을 감싸고 있으며, 영릉과는 달리 지세의 중허리 부분에 해당하는 곳에 상, 하 각각 두개의 봉분으로 조성되어 있다. 주변 환경으로는 북쪽으로는 구양리와 한강, 남쪽으로는 월송리, 동쪽으로는 하리, 서쪽으로는 번도리가 인접하고 있다.

空間構成 _ 1)配置形式

영릉은 조선 최초의 합장릉으로서 능상구역을 살펴보면 능침에 병석을 세우지 아니하였으며, 현궁의 석실은 회격(灰隔)인데, 이는 개천 영릉(改遷英陵)의 조영연대가 예종 원년(睿宗元年)으로서 예종의 부왕인 세조의 광릉 조영시(1468) 세조의 유명(遺命)으로 병풍석을 세우지 아니하고 석실을 회격으로 바꾼 뒤여서 이를 따랐다. 또한 능침 주위로 12간의 난간석을 둘렀으며 양석(羊石)과 호석(虎石)각 2쌍이 교호배치되고 능전에는 혼유석 2좌를 설치하였다. 혼유석 양측으로 망주석 1쌍이 위치하며 3면의 곡장이 있다. 한 단 아래에 문석인, 마석 각 1쌍이 마주보고 있으며, 그 중앙에 명등석(明燈石) 1좌로 중계(中階)가 이루어졌고 그 아래에 무석인, 마석 각 1쌍이 문석의 예와 같이 배열되어 하계를 이루었으며 능상 및 상설은 단릉의 형식이다. 능 언덕 아래에 능하구역은 정자각이, 동측엔 비각이 있으며, 비각 남측 아래로 수복방, 정자각 서측에는 수라간이 있다. 정자각 남측 참도가 시작되는 곳에 홍살문이 있으며 홍살문 서남쪽에 방형의 연지가 있는데 용두로 축조된 입수구로 맑은 물이 흘러 들어오게 하고 있다. 또한 남측으로 내려와 홍살문 밖의 진입공간에는 영릉 참배로 동쪽에 재실이 위치하는데, 이는 1972년에 복원된 것이다. 1977년도 대통령의 지시로 영릉 정화사업이 있었으며 훈민문, 세종대왕 동상, 세종전 등은 이때에 조영된 것이다.

한편 녕릉은 동원상하이봉릉(同原上下異封陵)으로서 왕과 비의 릉이 상하로 쌍릉 형식을 이룬 조선왕릉 중 최초의 형태이다. 능상구역을 살펴보면 왕릉엔 3면의 곡장을 설치하고 능침엔 병석을 세우지 아니하였으며 12간의 난간석을 설치하였고 난간석 밖으로 양석, 호석 각 2쌍이 외향 배치되었다. 능전에 혼유석이 1좌, 그 양측으로 망주석 1쌍이 설치되어 상계(上階)를 이루고, 한 단 아래 중계(中階)에는 문석인과 마석 각 1쌍과 중앙에 명등석 1좌가 있으며, 하계(下階)에는 무석인과 마석 각 1쌍이 위치하고 있다. 왕릉 아래의 비릉(妃陵)에는 곡장만 설치되어 있지 아니할 뿐, 능상 의물(陵上儀物)은 왕릉과 같이 되어 있으며, 단릉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정자각은 비릉 언덕 아래에 있고 비각은 정자각 동측에 있으며, 비각 아래에는 수복방이 배치되고 건너편에는 수라간이 배치되어 있다. 정자각 남측 참도 시작 부분에 홍살문이 있는데 홍살문과 정자각 사이에 삼도(三道)를 가로질러 금천(禁川)이 흐르고 있는 바, 금천은 홍살문 밖으로 흐름이 상례임인 것에 비하여 특이하다. 홍살문 밖의 진입공간에는 소로 동쪽에 재실이 위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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