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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을 이야기하다 ; 용산기지 공원화와 시민
  • 환경과조경 2007년 1월

1. ‘의사결정자’로서의 시민
‘시민 참여로 용산을 바꾸자’ 시민단체들이 발족한 ‘용산기지 생태공원화 시민연대’를 소개하는 신문기사 헤드라인이다. 용산기지 공원화에 대한 담론이 가시화되면서 ‘시민’, ‘시민참여’ 또한 중요한 키워드로 제시되고 있다. 용산기지의 성격상 더욱 그러하겠지만, 대표적 공공공간(public space)인 공원, 광장 조성과 관련해서 시민참여가 생태, 전통과 같이 피할 수 없는 가치로 다뤄지는 징후들은 이미 있어왔다. 월드컵 경기 응원이 광장화의 시발점이 되었던 “서울광장” 조성 당시 서울시 웹페이지에는 별도의 토론방이 개설되었었다. “서울숲”에서는 주민들이 직접 나무를 심었고, “청계천”에서는 시민들의 글과 그림이 벽화로 남겨졌다. 공원의 미래상과 이름에 대한 시민 아이디어 공모는 이제 의례적인 것이 되어서 용산기지 공원화에서도 이미 진행되었다.

물론 이러한 것들이 전혀 의미 없는 것은 아니다. 내가 제시한 의견이나 흔적이 공원 어딘가에 남겨진다는 것은 가슴 벅찬 일이 아닐 수 없다. 개인적인 경험으로, 2003년 옥수동 한평공원 사업을 진행할 때, 가난한 사람들한테 쌀이나 사주지 이런 데 돈을 쓰냐고 하시던 아주머니가 자신의 딸이 만든 그림타일이 공원 한쪽에 붙여지자 주변에 자랑도 하시고 혹시 타일이 깨지지 않을까 가끔 살피기도 하셨다. 공간에 대한 소속감과 애착심을 갖게 하는 이러한 장치는 분명 필요하다. 그리고 유명 정치인들의 이름을 공원 한쪽에 새기거나, 기념식수를 하는 것보다는 따뜻하고 정치적으로 올바르게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장치들은 자못 대다수의 대중적 지지를 얻은 양 보이게 할 수도 있고, 해당 프로젝트에 얽힌 사회적 모순과 불평등을 가리는 장치로 쓰일 수도 있다. 서울시는 서울광장 조성 당시, 인터넷 토론방과 신문이라는 공론장에서 제기된 시민들의 다양한 타당성 요구(예: 설계공모 당선안의 LCD설치가 기술적으로 불가능한가? 왜 당선안으로 시공을 하지 않는가?)에 성심성의껏 응대하지 않은 채, 자의적으로 잔디 광장을 조성해버렸다. 그리고 이는 여전히 시민사회와의 갈등의 씨앗이 되고 있다. 청계천을 따라 걸려있던 플랭카드 문구들(예: “준비되지 않은 청계천복원 10만 영세상인 다 죽인다”)에 있던 문제가 사회적으로 제대로 검토되었다고 할 수 없지 않은가?

시민참여란 의사결정과 관련된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시민은 ‘동원’되는 대상이 아닌 ‘의사결정자’로 대접 받아야 한다. 용산기지 공원화와 ‘시민’이라는 키워드를 엮는데 있어서도 이는 적용된다. 그런데 여기서 ‘시민’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답하기 어렵다. 선거철 자신들이 바로 서민이라고 주장하는 정치인들 중 누가 서민이냐는 질문만큼 복잡하다. 관(冠), 시장(市場)이 아닌 제3 부문(the third sector)인 시민단체의 목소리가 크고 의사결정 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한다고 해서 시민참여가 제대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없다. 그들의 대표성이나 그들 주장의 타당성 또한 의심되어야 한다. 그러나 명백한 것은 정치적 활동이나 특정 이해관계에서 비롯된 목소리만이 의사결정에 강하게 작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며, 특정 목소리가 배제되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즉, 대표적 공공공간인 공원은 결과물뿐만 아니라 의사결정 과정부터 공공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공공성은 익명적 공공성인 아닌 절차적이며 구체적인 공공성이고 이를 위해서는 서로 다른 배경을 갖는 시민들이 대화하고 다양한 가치들이 서로 경합(競合)되는 공론장(public sphere)이 필요하고 활성화되어야 한다.1) ‘전면 공원화와 일부 복합개발’을 둘러싼 서울시와 중앙정부와의 갈등, ‘용산기지 주변 초고층 고밀도 개발’을 둘러싼 서울시와 시민단체와의 갈등, 공원 성격에 대한 다양한 견해 등 의견차가 이미 드러나고 있는 용산기지 공원화의 경우 더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김영민의 비유처럼 텔레비전의 “명사와의 대담”같이 특정하게 통제되거나 조작된 대화 상황이 아니라 삶의 구체적 자리(sitz-im-leben) 속에서, 삶의 구체적 행위로 이루어지는 복잡다기한 대화는 우연성을 날실로 현장감 있는 순발력을 씨실로 해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2) 그래서 ‘어떻게 용산기지 공원화에 대한 대화를, 공론장을 이끌 것인가?’라는 질문 또한 어려운 질문이다. 다소 우회적인 대답으로 보일 수 있으나, ‘자신의 판단을 기꺼이 변경시킬 수 있는 성찰적(reflective)이고 개방적인 자세가 필요하고 이에 대한 믿음도 필요하다’고 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서로의 견해차를 확인하거나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한 대화3)가 아니라 상호이해와 새로운 의미 형성을 전제로 하는 대화여야 한다는 주장과 같은 맥락에 있다.4)


2. 행위자(agent)로서의 시민
공론장에서의 대화를 통해 새로운 의미와 관계를 만들 수 있다는 견해는 시민을 자신의 생활을 능동적으로 구성하는 행위자(agent)로 상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용산기지 공원을 계획하고 설계하는데 있어, 잠재적 이용자인 시민을 어떻게 볼 것인 가와도 관련된다. 지난 30년간 많은 환경-행태연구(environment-behavior studies) 분야에서는 디자인 특성과 이용 행태와의 관계를 과학적으로 분석한 정량적 정보를 설계가들에게 제공해왔다.5) 하지만 초콜릿 성분을 분석한다고 해서 초콜릿을 만들어낼 수는 없는 것처럼6), 그러한 연구 결과들이 이용자들의 욕구를 채우기 위한 충분조건이라고 할 수 없다. 또한, 놀이터에서 어린이들이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공간을 상상하고 이용한다거나, 공원의 램프와 계단을 자신들의 방식대로 이용하는 스케이트보더 등 설계가의 의도가 빗나가는 경우는 흔하다.


(김연금·인터조경기술사사무소)
(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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