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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을 이야기하다 ; 용산을 이야기하자
  • 환경과조경 2007년 1월

용산 기지의 공원화를 놓고 다양한 의견이 쏟아지고 있다. 토론회도 이례적이다 싶을 만큼 빈번하게 열리고 있다. 2006년 9월 5일에는 서울YMCA에서 “용산기지 공원화,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토론회를 개최했고, 같은 달 7일에는 녹색연합, 문화연대, 환경연합을 비롯한 20여개 단체가 참여한 “용산기지 생태공원화 시민연대”가 발족식을 열었다. 10월 12일에 열린 136환경포럼 16차 정기모임 토론회는 “용산공원, 이렇게 만듭시다”를 주제로 올렸고, 역시 같은 달 25일에는 용산기지 생태공원화 시민연대가 주최한 “용산기지의 공원화, 어떻게 할 것인가” 토론회가 개최되었다. 11월 2일 창립기념식을 연 환경재단 도시환경연구소의 창립기념 세미나 주제도 “용산 생태공원 조성 및 주변지역 관리방안”이었다.

이런 일련의 토론회와 일간지상에 실리고 있는 의견들은 대략 4가지 정도의 쟁점을 생산해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첫 번째는 전면 공원화와 일부 복합개발의 첨예한 대립이다. 복합개발을 주장하는 측에서는 막대한 이전비용 문제의 해결을 위해 부분 개발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고, 전면 공원화를 주장하는 측에서는 정부에서 국채발행 등 다른 대안 모색을 꾀하지 않고, 그야말로 손 안대고 코 푸는 식으로 가장 손쉬운 방법만을 고집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두 번째는 용산기지 주변의 초고층 고밀도 개발의 부작용에 대한 문제를 꼽을 수 있다. 서울시가 용산기지의 전면 공원화를 주장하고는 있지만, 시티파크등의 사례에서 보듯이 기지 주변의 고밀도개발을 묵인 내지는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다. 부동산 투기 광풍 등의 폐해도 거론되고 있지만, 용산기지 주변의 경관보호를 위해서도 초고층 개발을 막아야 한다는 입장이 대두되고 있다. 세 번째는 추진 주체에 대한 문제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정부냐 서울시냐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폭넓은 의견 수렴 없이 정부 주도로만 진행되고 있다는 문제제기이다. 구체적으로 국무조정실 산하의 용산민족역사공원 건립추진위원회를 재구성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한편, 정부 내에서도 건교부 소관으로 추진할 것이 아니라 환경부에서 주도권을 맡아야 한다는 일부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네 번째 쟁점으로는 공원화의 과정과 방법, 큰 방향에 대한 각기 다른 의견들을 꼽을 수 있다. 누구는 용산기지 일대가 박물관벨트가 되었으면 좋겠다 하고, 어떤 이는 민족정신을 되살리는 시설을 넣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이나 예술의 전당, 국립극장 등 기존의 문화예술공간이 접근성이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므로, 용산에 누구나 부담 없이 찾을 수 있는 문화예술공간을 만들자는 의견도 있다. 생태공원은 가장 많은 지지를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 구체적인 생각들은 조금씩 달라 보이기도 한다. 이와 함께 미래세대를 위해 그대로 두자는 의견도 상당하고, 미군들이 사용했던 시설과 수목의 존치를 강력히 주장하는 목소리들도 들린다. 조성과정과 관련해서는, 몇 년 이상의 충분한 시간을 갖고 정말 다양한 마스터플랜들을 검토해보자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지금은 섣불리 마스터플랜을 이야기할 때가 아니고 일단은 원칙과 지침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이도 있다. 심지어 지침의 제시도 섣부르고, 토양 오염 정도를 비롯한 면밀한 부지 현황조사가 최우선적으로 선행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 모두가 풀어야 할 숙제다. 전면 공원화, 주변의 고밀도 개발 억제, 시민참여 방안 마련과 광범위한 여론 수렴,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문제가 없다. 다행히 용산기지의 공원화는 이제 많은 이들의 관심사가 되어, 다양한 전문지식과 열정을 갖고 있는 여러 단체와 전문가들이 지혜를 모아보자며 다투어 목소리를 내고 있다. 부디 좋은 결실이 맺어지기만을 바랄 뿐이다. 다만, 공원이 사회적 이슈로 대두되고 있음에도 공원 전문가라 할 수 있는 조경가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쉽게 들을 수 없다는 점은 아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가장 대표적인 공공공간인 공원을 다루는 조경가의 사회적 책임과 역할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는 이즈음이다.

일전에 어느 토론회에서 발제를 맡은 한 발표자는 용산기지의 공원화는 토목업자, 조경업자가 아니라 생태학자가 주도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또 하나의 조잡한 조경공원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런 의견이 나오게 된 배경으로는 두 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다. 하나는 조경이 지금껏 만들어온 공원이 정말 그 정도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을 정도로 수준 이하였거나, 아니면 조경과 조경가의 역량이 외부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첫 번째 경우여서 그런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면 조용히 한국 조경의 성장에만 집중해야겠지만, 만약 두 번째 경우라면 이제는 조경가들이 대외적인 활동을 보다 적극적으로 해야 할 시점에 이른 것이 아닌가 싶다.

다른 쟁점에 대해서는 각자의 판단에 따라 특정 의견과 주장을 소극적으로 지지하거나 비판하는데 그치더라도, 최소한 공원화의 과정과 방법, 큰 방향에 대해서만큼은 조경가들이 의견을 내야 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생명의 숲을 지지한다면 왜 지지하는지, 구체적 선례와 전문지식을 동원해 힘을 실어주기도 해야 할 것이고, 반대한다면 왜 비판적으로 생명의 숲 구상을 바라보아야 하는지 설득력 있는 의견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또 정부와 서울시, 여러 시민사회단체에서 미처 검토하지 못한 유용한 사례가 있다면 적극적으로 소개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사회문화적 패러다임의 변화에 따라 공원의 양상이 변해 왔다면, 21세기 한국적 상황에서 우리가 중시해야할 가치는 무엇이고, 그것이 어떻게 구체적 공원의 모습으로 구현될 수 있는지 실천적 해법도 내놓아야 할 것이다. 이도 저도 아니면 최소한 현재의 대세로 부각되고 있는 생태공원이 무엇이고 어떠해야 하는지 명확한 개념에 대한 합의만이라도 이끌어내려는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 여전히 하나의 유행처럼 떠돌아다니는 생태가 정말 만병통치약인지 아니면 치명적인 독이 될 수도 있는지를 면밀히 따져보기만 하더라도, 그 성과는 작지 않을 것이다.

현재 용산기지 공원화와 관련해서 대체적으로 합의되고 있는 점은 크게 세 가지인 것으로 보인다. 그 하나는 남산부터 한강까지 이어지는 녹지축의 복원이라는 관점에서 용산기지가 공원화되어야 한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이 땅이 가지고 있는 역사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녹지축 조성이라는 대원칙에는 큰 이견이 없어 보이지만, 어느 정도의 수준으로 녹지축을 복원할 것인가에 따라 의견이 나뉘기도 한다. 역사성의 존중 방식은 기념시설물 건립이라는 극단적 양상부터 역사성을 감안해 지금의 상태 그대로 두자는 의견까지 다양한 층위로 갈리고 있다. 마지막으로는 시민참여 부분인데, 정부에서는 전국민을 대상으로 한 용산공원 명칭 및 아이디어 공모와 같은 이벤트성 행사를 통해 시민참여를 유도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반해, 시민사회단체에서는 보다 광범위하고 체계적인 시민 참여방안이 제도적으로 마련되기를 요구하고 있다.

이 세 가지 이외에, 스무 개 단체가 모여 만든 “용산기지 생태공원화 시민연대”의 명칭에서도 엿볼 수 있듯 생태공원에 대한 바람이 가장 큰 것으로 생각되는데, 전술한 바와 같이 생태적인 공간으로 조성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그 생태공원’이 모두 같은 모습인지는 의문이다. 뉴욕의 센트럴파크를 기대했는데 그렇게 되지 않을 것 같아 안타깝다는 이가 있는가 하면, 인간의 간섭을 완전 배제하고 그야말로 자연스러운 생태적 천이가 일어날 수 있도록 하자는 주장도 있고, 민족 주체성의 의미를 우리의 자연을 통해 구현하는 취지에서 우리 산하에 자생하는 나무와 초화를 이식하자는 이도 있다. 그런가 하면 나무가 빽빽한 숲에서 새소리 듣고, 개울에 발도 담그고, 호수 옆 잔디밭에 눕기도 하고, 오솔길로 조깅도 해보고 싶은 것이 국민의 뜻이라는 의견도 있다.

한편 용산기지의 공원화 과정이 아주 긴 호흡으로 진행되어, 현대 도시를 살아가는 이들이 잊고 있는 느림의 가치를 배울 수 있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맥락에서 나온 “기존의 미군기지 시설은 적절히 손봐서 문화시설로 재활용하고 거대하고 ‘심심한’ 공원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나, “용산기지의 모든 바닥을 흙으로 전환시키고 정말로 필요한 나무만을 심은 후 지금부터 한세대 후 즉 30년간 출입금지 구역으로 설정했으면 좋겠다”는 주장, 또 생태적 천이과정을 통해 생명의 숲을 만들자는 이야기들은 모두 ‘금단의 땅’을 미래세대를 위해 ‘유보의 땅’으로 두자는 의견들이다.

그런데 과연 거대도시 서울의 중심부에 있는 80만평 이상의 땅을 그대로 둘 수 있을까? 만약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실험적인 도시 프로젝트는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다수 국민의 뜻이 그러한지는 아직은 알지 못한다. 또 80만평이라는 거대한 땅에 대한 스케일감이 없어서 나온 그야말로 이상적인 환상은 아닐까, 고심하게도 된다.

어쨌든 최종 결정은 최대한 유보하더라도 그 결정의 순간까지 우리는 가능한 모든 대안을 검토하고 논의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만약 몇 십년동안 유예하기로 결정이 되더라도, 지금 우리가 하는 논의들은 미래세대에게 도움이 될 것이고, 최소한 그들의 노력과 수고를 조금은 덜어줄 수 있을 것이다.

마스터플랜이 성급하다면 원칙과 지침과 방향만이라도 가능한 모든 경우의 수를 살피고 도마 위에 올려보자. 만약 기존의 방식대로 발주처의 설계지침 작성과 그에 따른 설계공모방식으로 사업이 진행된다면 결국 지침과 공모방식이 용산의 미래를 상당 부분 좌우할 터이니 이에 대한 논의는 지겹도록 많아도 좋을 것이다. 또 성급한 결정적 태도만 지양하기로 합의가 된다면, 마스터플랜을 이야기한들 무엇이 문제일까. 몇몇 시민사회단체의 활동적인 전문가들이 말과 글을 통해 내보이고 있는 구상 역시 하나의 그림에 불과할 수 있다. 어쩌면 그 글들이 다양한 가능성을 차단하는 견고한 말의 성채를 짓고 있는 것은 아닌지 비판적 검토도 이루어져야 한다. “기존의 공원처럼 전문가들이 디자인하고 공공기관이 도식적인 조경사업을 하는 식으로 조성되어선 안된다”는 주장도 나와 있는 만큼, 기존의 발주처에 의한 설계공모방식이 아닌 실현가능한 새로운 공원 조성 방식을 모색하고 실험해보는 시도도 필요할 것이다.

용산의 다른 이름은 이제 가능성의 땅이자 기회의 땅이 되어야 한다. 우리 삶의 터전, 도시와 환경을 바꿀 수 있는 기회의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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