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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 접근방식을 통한 수목장림의 고려사항에 대하여
  • 환경과조경 2006년 4월

위 시조는 절대 불의(不義)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성삼문의 굳은 절개가 표현된 것으로, 세상을 굽어보는 늙은 소나무의 푸른 지조가 돋보인다. 전통 마을의 입구에는 대개 잡귀가 침범치 못하도록 당산(堂山)나무가 서 있고, 매년 정초에는 마을을 수호하는 당산 할아버지와 할머니께 마을의 안녕을 비는 동제를 이 나무 아래에서 지낸다. 또 마을의 대동단결을 위해 줄다리기를 하고, 줄다리기가 끝나면 줄을 나무에 둘둘 말아 돌려놓고는 접근을 금했다. 그러므로 노거수는 영물(靈物)로 보아 가지를 부러트리거나 낙엽만 긁어가도 재앙이 닥쳐 불행해진다며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위의 시조에서 낙락장송이 되겠다는 표현 역시 자기 영혼을 소나무에 의탁하겠다는 뜻 보다 소나무는 날씨가 추운 후에도 잎이 시들지 않으니 세상이 이롭지 못한 것들로(백설) 가득 차도 자기만은 홀로 절개를 지키겠다는 의지를 소나무를 빗대어 표현한 것뿐이다. 그 결과 노거수는 민간 신앙의 대상일 뿐 정작 사람의 영혼을 간직한다고 믿지는 않았다. 진안군 마령초등학교 내에 있는 천연기념물 제214호 이팝나무도 아기의 무덤에서 자랐다는 전설만 전할 뿐 아기의 혼이 자라 나무가 되었다는 이야기는 없다.

현재 한국에는 매년 25만 명 가까운 사람이 사망하는데, 이들의 사체를 처리하는 방법이 매장에서 화장으로 급속히 선회하더니 언제부터인가 수목장(樹木葬)이란 장묘 방식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수목장이란 사체를 일단 화장한 후 유골 분을 나무 밑에 파묻거나 주위에 뿌리는 방식으로 처리하는데, 유골분을 자양으로 흡수한 나무를 고인의 영혼을 간직한 것으로 생각하고 나무를 추모의 대상으로 삼는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새로운 장묘 방식이다. 매년 여의도만한 땅이 묘지로 잠식당하며 국토의 효율적 이용을 위해서는 하루빨리 매장 문화를 뿌리 뽑거나 축소해야 한다며 정부는 ‘장사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면서까지 앞장 서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자 사회 각층에서 많은 사람들이 자기 사후에는 화장을 하겠다며 서명했다. 하지만 문제는 계속 남아 있고, 오히려 환경오염이란 심각한 부작용이 대두되었다. 왜냐하면 산 속에 설치된 가족 혹은 문중의 납골시설은 또 다른 환경 파괴물로 전락되었기 때문이다. 그리자 환경운동가들은 산속에 석조물을 방치할 바에는 석물을 설치하지 않는 조건 하에서 전통적 매장이 더 환경친화적이란 주장까지 제기되어 일단의 혼란은 가중되었다.
이런 와중에 가장 친환경적 묘지라는 타이틀을 달고 수목장이 우리의 전면에 나타났고, 이것은 산림을 훼손하는 일이 없고, 벌초 등 무덤을 관리하는 노력도 비용도 필요 없으니 소비적이고 자연 파괴적인 우리의 장례문화를 혁신적으로 바꿀 수 있는 최적의 장례 방식이란 것이다. 물론 수목장은 국토 활용의 비효율을 해결하고 과소비를 막아주는 현실적인 효과는 크다. 그렇지만 선사시대부터 현재까지 전통으로 이어 온 매장 풍습이 효율성만을 강조한 수목장으로 바뀌려면 수목장에 대한 국민의 의식구조 특히 수목장으로 부모를 장사지내도 자손으로써 조상을 숭배하는 사상에 하등 잘못이 없다는 공감이 우선되어야 한다. 만약 공감 형성이 어렵다면 유교적 체면을 중시하는 우리의 국민성을 감안할 때 수목장은 몇 환경 단체의 메아리 없는 아우성에 그칠 수도 있다. 이에 본 원고는 장례에 대한 우리들의 전통 의식을 되짚어보고, 그 의식과 수목장이 서로 상충되는 점을 찾아내고, 그 다음에는 수목장이 새로운 장례 문화로 수용되려면 어떤 방식으로 접근해야 되는 가를 살피고자 한다.


장례에 대한 우리의 전통 의식

우리의 조상들은 혼비백산(魂飛魄散)이라 하여 사람이 죽으면 영혼은 하늘로 날아가고 땅 속에 매장된 신체는 바람에 흩어진다고 보았다. 즉 사람의 영혼은 주검에 머문다고 보지 않았으며, 오히려 고인의 관등성명을 적은 신주에 혼백이 머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제사를 지낼 때면 방안에 지방(紙榜)을 써 붙임으로써 영혼을 맞이하고, 상례에서 신주를 모신 장소에 따라 영혼도 그곳에 함께 머문다고 보았다. 그래서 장지에서 신주를 집으로 가져오는 반혼(反魂)을 집으로 혼백을 다시 모셔오는 행위라 생각했고, 만약 사찰에 신주를 모신다면 영혼 역시 그 사찰에 머문다고 보았다. 결국 사람이 죽으면 주검과 영혼이 서로 별개로 움직인다고 본 것이 전통 사상이다.
하지만 조상의 묘지를 길지에 두어야 한다는 사회적 통념은 유교의 효 사상에서 출발해 풍수 사상으로 정착되었다. 또한 ‘효는 만행의 근본’이라 여겨 살아 계실 때도 부모를 잘 모셔야 하지만 돌아가신 뒤에도 집 가까이에 묘를 두고 잘 돌보는 것이 자식의 도리라고 생각했다. 이것은 사체를 매장한 다음 무덤이 무너지거나 여우같은 산짐승이 사체를 위해하는 것을 막는 의도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죽은 부모에 대한 가장 효성스런 행위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부모의 상을 당하면 여막을 짓고 삼 년 동안 묘를 지키며 사는 시묘살이가 양반 계층의 일반적인 풍습으로 발전했다. 이것은 신주 제도가 확립되기 전 시신이 묻혀있는 무덤에 고인의 영혼도 함께 머물러 있다는 생각에서 나온 행위일 것이다. 그렇지만 한국의 상례에서 혼백은 무덤에 머물지 않고 신주에 머문다는 믿음이 가장 보편적인 생각이다. 제례에서 영혼의 강림을 청하는 강신(降神) 의식도 제주(祭主)가 신위 앞에 나아가 무릎을 꿇고 향을 피우는 것이 전부인데, 향을 피우는 것은 하늘에 계신 영혼에게 제사를 지낸다는 사실을 알리는 행위이다.

부모의 묘를 길지에 두어야 자식 된 도리를 다한다는 생각은 풍수의 발복 사상과 유교의 효 사상이 결합되어 나타났다. 본래 한국의 전통 장례는 복장제(復葬制)이다. 복장이란 임종에서 출상까진 유교식으로 하지만, 땅에 바로 매장하지 않고 1~3년 동안 나무판자 위나 평상 위에 관을 올려놓고 이엉을 덮은 뒤 살이 썩으면 뼈만 추려 무덤에 매장하는 방법이다. 구례의 운조루에는 사랑채의 한 편에 가빈터(광)가 있다. 사람이 죽으면 3일 후 입관하고 집안의 가빈터에 3개월 동안 안치했다가 출상했다고 한다. 관을 풀이나 짚으로 덮은 초분(草墳) 역시 복장의 한 예로 전국적으로 행해졌으며, 지석묘나 옹관묘도 구조로 보면 뼈만을 묻은 복장제였을 가능성이 높다.


고 제 희 Go, Jae Hee
대동풍수지리학회 원장

(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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