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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공원 - 디자인을 넘어선 디자인
  • 환경과조경 2005년 1월

디자인을 넘어선 디자인

이름만큼 색다르다.
도시에서 하늘을 오른다는 것만큼 색다른 경험은 없을 것이다. 공원을 오르기 전 느낄 수 있는 쾌감은 도시의 번잡함을 느끼게 해주었던 모든 것들(아파트, 자동차, 도로, 스모그 등)이 발아래에 깔리며 그 위에 올라섰다는 우월감과 함께 수직적 이동에 따른 상승의 효과를 가지게 한다. 계단을 밟고 땅에서 멀어질수록, 가쁜 숨이 기도를 자극시킬수록, 일상에서 멀어지며 자아에 충실 하고픈 다분히 개인적이며 주관적인 자세로 바뀌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도시에서 발견한 헤게모니의 반전” 이것이 하늘공원을 접한 첫 느낌이다.

사건읽기와 관계적 공간을 되새기며
일반적으로 공원의 유형을 구분할 때 자원 가치의 정도, 입지의 유형 그리고 조성규모 등의 척도에 따라 구분 짓고 있다. 이러한 유형속에 도시공원(체육공원이든, 근린공원이든 도시자연공원이든 간에)의 이해는 -지극히 평범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지만- 도시와 관련되어진 맥락에 그 기반을 두며, 만들어지는 형태 또한 그것과 관련된 배경을 가지게 되는 것이 지극히 적합한 이야기이다.
한편 감상의 측면에서 도시조경을 바라보면, 그 공간은 2차원적으로 표출되는 시각예술과는 이해의 경로가 다른 환경과 어우러진 총체적 인식을 통하여 2차적 의미(작가의 의도를 고민하는 노력보다 결과물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파악하려는 노력)를 우선적으로 체험하게 된다. 또한 전자와 비교하여 그 경험의 배열이 다르게 나열되고 조합되는 이유로 인하여, 디자인의 형태에 대한 시각적인 눈요기보다 공간에 대한 경험적 접근이 특정한 공간에 대한 감상과 감성을 자극시키는 중요한 도구인 탓에 아마도 이러한 관계성에 대해 더 집착적인 생각을 가지는 지도 모르겠다. 이해를 위한 전제는 이쯤에서 접어두고 공간으로 들어가 보자.

일반인의 접근이 용이치 않았던 난지도의 형상과 기억을 이 땅의 어디에서 느낄 수 있을까, 그 흔적은 우리에게 숨기어 져야만 하는 도시인들의 어리석음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하는 생각을 돌이켜보게 한다. 하늘공원이 주는 독특한 경관에서 우리는 만족과 아름다움을 느끼지만 ‘아름다움’이란 단어의 판단은 그렇지 못한 것과의 대조를 통하여 인식하는 언어의 선택적 수용이란 것을 객석의 사람들은 알고 있는 것이다. 물론 설계자는 “완성되고 또 점차 성숙해가는 생태공간의 표출”이 아닌 “척박하고 버려진 환경 조건 속에서 자연이 어떻게 시작하는 지를 상징적으로 재현”하는 주제를 전개하여 형태를 만들었고 과거의 흔적을 표출하기 위한 방법으로 수직적 요소들을 이용하여 개념화 하였지만 주관적 해석에 의한 상징과 함축은 관객(일반적 대중)들로 하여금 작가의 의도와는 무관한 자칫 기형적인 오해를 일으킬 수 있는 충분한 이유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사실’이란 것은 충분히 쉬우며 순응적으로 읽혀지는 객관적 나레이션에 충실 하는 것이 공간의 흔적을 읽어나가기에 손쉬운 방법인 듯 하다.

‘공간적 질서’라는 것을 생각해 보자. 질서의 범위는 이해의 정도에 따라 물리적 영향의 범위를 벗어난 무한의 확장성을 가질 수도 있으며, 순열의 조합과 같은 논리의 알고리듬으로 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것처럼 다변성을 가지기도 하며, 한편으로 손쉽게 질서를 한정하는 방법으로 객관적 사실에 주관적 논리를 합하여 디자이너의 의도를 만들어가는 것이 될 수도 있다.

‘조경을 한다’는 것은 예술과 다른 디자인을 행한다는 의미이며 예술가가 하나의 독창적인 작업을 하며 결과물을 토해내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인지도 모른다. 이유인즉 조경이란 행위의 산물은 사회와 문화 그리고 환경을 아우르는 결과물로 인식되고 있으며, 자의든 타의든 디자인이라는 작업을 수행한 사람들이라면 한번쯤 그 대상지의 환경과 관련된 질서에 대해 고통을 겪어보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까지 대부분의 그들은 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심오한 이데올로기적인 사회˙문화적 변화 및 현상에 대하여 궁극적인 답변, 바꾸어 이야기하면 공간적 질서에 대하여 디자인을 빌어 제시하지 않았다. 그들은 디자인의 변형을 통하여 잠정적인 탐색을 감행하고 있을 뿐인 것이다.

권 진 욱 Kwon, Jin Wook
계원조형예술대학 화훼디자인과 교수

(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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