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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 ; 사람과 땅이 어울린 이야기 (19) - 12월 ; 생태(生態), 가깝고도 먼 그대
  • 환경과조경 2003년 12월
하와이 섬의 생태계 옛날 옛적에 태평양의 어디에선가 바다화산이 폭발했다. 바다 속에서 분출된 마그마는 바닷물과 만나면서 급격히 굳어 바다 한가운데 봉긋한 모양의 섬으로 남았다. 섬에 고인 빗물은 이곳을 지나던 철새들을 쉬어 가게 했다. 이들 철새의 깃털 속에는 뭍에서 묻어 온 식물 씨들이 있는 법이어서 철새가 노닐던 섬 여기저기에 작은 풀과 나무들이 자라기 시작했다. 식물이 자라면서 곤충도 같이 자라기 시작했고 땅위를 기는 포유류도 여기 저기 생겨났다. 비록 뭍의 식물 씨로 시작되기는 했지만 바다로 고립된 탓에 뭍의 다른 지역과는 전혀 다른 이 섬만의 독특한 생태계가 오랜 시간에 걸쳐 진화되며 자리 잡았다. 이 모두가 하와이 섬이 생겨나고 하와이 섬의 생태계가 자리 잡은 과정이다. 누구의 상상이 아니라 물증에 충실한 디스커버리채널이 재작년 겨울 어느 프로그램에 소개했던 것이니 믿어도 좋을 것이다. 요약한다면, 바다로 격리된 구조 속에서 하와이 섬 태생 고유의 생태계가 진화하고 발전한다는 얘기였다. 단지 폴리네시아인들이 이 섬을 발견할 때까지 한정되었던 것이긴 하지만. 어느 날 바다를 표류하던 폴리네시아인들이 하와이 섬을 발견한다. 다른 곳에서 살 곳을 찾던 폴리네시아인들의 이주가 시작됐다. 더불어 갑작스런 생태계의 변화가 하와이 섬에서 시작됐다. 이주민을 따라온 여러 생물 종들이 기존의 생태계를 교란시켰기 때문이었다. 섬에 있던 기존 재래종과 이주민을 따라온 외래종과의 혹독한 전투가 시작되고 약한 재래종은 도태되고 사라졌다. 물론 재래종만 사라진 것은 아니다. 섬만의 독특한 자연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외래종들도 자취를 감췄다. 처음만큼이나 또 오랜 시간이 흘러 태생의 원래 생태계와는 다르지만 폴리네시안 생태계란 이름으로 새로운 생태계가 자리 잡고 나름대로의 질서와 규칙 속에서 다시 진화와 발전을 시작했다. 아직도 바다와 격리되어있는 구조는 여전했으므로 하와이 섬의 폴리네시안 생태계는 뭍의 다른 곳과는 전혀 다른 고유의 생태계로 발전했다. 이 폴리네시안 생태계도 매우 오랜 시간을 지속했다. 단지 전 세계의 관광객이 몰려들 때까지 한정된 것이기는 하지만. 청계천 하류부 - 콘크리트 위의 자연 물론 자연의 힘은 꼭 강원도나 옐로스톤에서만 발견되는 것은 아니다. 현재 복원되고 있는 청계천에는 종점부인 마장동의 신답철교에서 청계천이 중랑천으로 합류하는 지점(한양대 인근 살곶이다리가 있는 쪽) 까지 약 2킬로미터가 더 있다. 그러니까 청계천의 최종 하류부가 되는 구간인데, 이 구간은 워낙 복개된 적이 없이 원래부터 열려있었던 청계천의 일부였다. 하천의 제방은 통상 고수부지(高水敷地 ; 간혹 둔치라고도 표현하지만 둔치는 물과 만나는 경사면을 지칭하는 다른 말이라고 한다)를 사이에 두고 위쪽 제방과 아래쪽 제방으로 나뉜다. 위쪽 제방을 고수호안(高水護岸), 아래쪽 제방을 저수호안(低水護岸)이라 부르고 있는데 일본의 하천용어에서 온 듯한 느낌이 짙지만 친근한 우리말로 풀기가 어려워 그냥 적는다. 청계천 하류부의 고수호안이나 저수호안은 모두 콘크리트호안으로 조성되어있다. 보통 최근 조성되는 하천의 경우 저수호안 대부분 자연 친화의 성격이 강하도록 자연석 쌓음이 주로 적용되고 있다. 현재 청계천 하류부 호안의 재료는 콘크리트이고 그렇다면 분명 반(反)자연적인 것이다. 그런데 실제 그곳을 가보면 그게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일단 모든 고수호안이 녹지로 덮여 있다. 그래서 당연히 콘크리트호안이 아니겠지 하는 생각을 먼저 하게 된다. 가까이 다가서서 풀을 휘저으면 그제야 풀 밑으로 콘크리트 블록이 보인다. 풀만이 아니다. 가죽나무와 갯버들, 수양버들이 자연스레 날아와 자리 잡고 뿌리를 내린 다음 튼튼하게 자라고 있다. 콘크리트 호안블럭이 촘촘히 엮인 틈사이로 뿌리를 내리고 있는 저 강인한 힘. 콘크리트호안블럭을 비집고 줄기를 틔우고 있는 저 빛나는 생명력. 순간 이건 뭐지 하고 혼동이 온다. 이론대로라면 이건 자연이 아니고 잘못된, 즉 학술적인 용어로 비체계적인 생태계의 비틀린 상황이어야 하는 건데. 그렇지만 이리 보고 저리 보아도 이걸 자연이지 않다고 치부하기에는 너무 이것들이 ‘자연’스럽다는 느낌을 씻을 수가 없다. 어느 누가 이렇게 열심히 콘크리트 블록을 비집고 자라는 가죽나무와 잡풀을 자연이라고 하지 않을 수 있는지. 이들의 자리 잡음이 사람의 손길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순수하게 자연만이 묵묵히 작업한 결과에 의해서임을 알고 있는 우리로서는 더욱이나. 자연과 문화의 동질적 구조 지난달에 다룬 전통과 이번 달의 주제인 생태는 전혀 딴판의 다른 얘기이다. 그런대도 불구하고 어떤 면에선 둘 사이에 유사한 맥락이 존재한다는 것을 첨언해두자. 사투리의 분화가 그렇듯이 어떤 장소의 문화가 다른 장소의 문화와 달라지려고 일부러 노력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누가 여행을 통해 새로운 나라의 새로운 문화를 접했다고 치자. 자신의 문화와 다르기 때문에 신기해서든 또는 자신의 문화보다 더 발전된 까닭에 돈벌이가 될 것 같아서든 어떤 이유에서건 그 사람은 여행지의 문화를 자신의 고향으로 가져온다. 이때 백이면 백 틀림없이 오차가 발생한다(옛날의 교통수단과 통신수단을 생각해보라). 즉, 문화나 사투리의 차이는 의도된 것이라기보다 오히려 전달자의 실수에 의한 잘못된 전달에 가까울 수 있다는 얘기다. 설사 오차가 발생하지 않고 그대로 전달되었다하더라도 새로 가져온 문화는 현 장소의 주변 맥락 때문에 시간이 갈수록 변하게 된다. 이게 외국문화가 토속문화와 절충되고 정리되는 과정의 본질이다. 하와이 섬의 초기 생태계와 이후 폴리네시안 생태계으로의 발전, 그리고 최종적으로 현대의 하와이생태계로의 변화를 생각해 볼 때, 사실상 새로운 문화의 도입과 전통문화와의 협상 그리고 문화재정립과 발전의 과정은 생태계의 발전과정과 매우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내가 갖고 있는 얄팍한 전통과 생태계에 대한 지식으로 그런 결론을 단정적으로 내리기는 무리가 따르는 일이다. 따라서 전통문화와 자연생태에 관한 내 얘기는 그리 탄탄한 이론적 기초 하에 쓰인 것이 아니니 일종의 발제정도의 수준으로 생각하시라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다. 사실 나는 개인적으로 늘 일관된 소신으로 자신의 학문적 영역을 구축하고 있는 분들을 보면 참 좋다. 서울시립대의 이경재교수님에게서도 늘 그런 인상을 받는다. 그리고 그분의 입장과 논리가 그냥 자연을 그냥 버려두기보다는 사람의 개입으로(물론 학문적이고 체계적인 방법을 통해서) 빠르게 생태계를 복원시키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계신 것으로 안다. 나는 다른 생각을 이 지면에서 전하고 있지만 독자들은 꼭 균형을 가지고 이런 얘기들을 생각해 보시기를 부탁드린다. 진 양 교 Chin, Yang Kyo · (주) 토문엔지니어링 종합건축사무소 부소장 (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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