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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조경의 페다고지를 논할 때다
Column: Pedagogy of Landscape Architecture
  • 환경과조경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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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신입생 시절, 영어 토론 서클의 첫 텍스트가 파울로 프레이리Paulo Freire의 『페다고지Pedagogy of the Oppressed』였다. 원서를 읽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내용에는 쉽게 공감이 갔다. 진정한 교육은 선생이 주입식으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과 대화하면서 그들의 주체적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라는 게 책의 메시지였다. 시간이 한참 흐른 요즘 나는 교수법이나 교육론으로 번역되는 페다고지에 다시 관심을 두고 있다.

올해로 조경학과에서 교수로 생활한 지 20년이 되는 나는 오는 가을 학기부터 1년간 연구년을 가질 참이다. 과연 내가 학생들과 함께 진행하는 수업방식이 최선인가? 매너리즘에 빠져 유사한 수업내용과 과제를 반복하지는 않았는가? 내 수업이 학생들에게 필요한 지식 체계를 완성하는 데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가? 이와 같은 교육 현장의 실존적 고민을 연구년 동안 풀어야 할 숙제로 삼았다.

최근에는 우리 학과 교수들과 학생 교육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했다. 교과 과정의 개편과 신규과목 개설에 관한 논의는 늘 있어 왔지만, 이번 논의는 보다 절박한 상황이 계기가 되었다. 세대 교체가 이루어진 시점에서 여러 교수가 지닌 역량을 어떻게 수렴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까, 점점 감소하는 대학원 입시 지원율에 어떻게 대처 할 것인가 등이 핵심 주제다. 교과 과정의 구성과 수업 간의 교육 내용 조정으로부터 논의를 시작하고 있지만, 교수 방법에 대한 문제까지도 함께 토론할 계획이다.

페다고지에 관한 논의는 교육 과정과 결부될 수밖에 없다. 나는 두 학교에서 학과장을 맡아 교육 과정을 계획하는 일을 경험했다. 조경학과의 교육 과정이 이론theory, 테크닉technique, 실기praxis의 세가지 틀로 구성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론은 역사와 비평, 인접 분야에 대한 지식을 다룬다. 테크닉은 생태나 공학적 지식과 커뮤니케이션 도구를 활용하는 능력을 기른다. 실기는 주로 스튜디오 과목으로 현장 중심의 프로젝트 수행 역량을 다룬다. 학교마다 어떠한 인재를 길러낼 것인가라는 교육의 비전이 다르기 때문에 상이한 교육 과정을 구성하게 된다.

내가 조경 교육 과정을 다룰 때 고민했던 점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이론, 테크닉, 실기 영역이 적절한 균형을 이루고 있는가? 교수를 처음 시작하던 무렵 한 선배 교수가 던진 질문은 늘 나를 고민하게 해왔다. 조경의 현실 상황이 열악한데 지나치게 추상적인 담론에 몰두하는 것이 타당한가? 너무 많은 이론적 지식만을 학생들에게 제공하고 실질적인 문제 해결 능력을 준비시키는 데 소홀하지 않는가를 늘 염두에 두곤 했다. 둘째는 조경 교육의 핵심 영역과 주변 영역을 어떻게 구성하고 배치할 것인가의 문제다. 전통적으로 조경가에게 요구되어 온 지식이나 기술과, 변화하는 상황 속에서 새롭게 요청되고 있는 것은 다르다. 예를 들어 전자는 생태적 지식과 땅을 다루는 기술이고, 후자는 지역 커뮤니티와 협력하고 소통하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이다. 한정된 시간의 교육 과정에서 역량을 어디에 집중할 것인가는 늘 선택의 문제로 남는다. 셋째는 한국적 상황에 적합한 교육 과정을 마련하는 것이다. 우리의 조경 교육은 해외 대학의 교육과정을 도입해 변용해 왔다. 그러나 사회적 배경이 다르고 졸업생이 취업하는 시장이 상이한 상황에서 유사한 교육 과정을 적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우리에게 적합한 조경 교육의 내용과 형식을 찾아내는 것이 절실히 필요하다. 이 세 가지 문제에 대한 해답을 쉽게 찾기는 어렵다. 공론의 장에서 함께 논의해야 할 내용이지만, 지금까지 내가 경험한 바에 의하면 테크닉이나 실기보다 이론이 과잉인 상황이다. 현장에서 요구되는 조경 고유의 지식 체계와 기술력이 빈곤하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최근 조경계 전반이 겪고 있는 어려움은 건설 경기의 위축 등 외부적 상황 때문이지만, 사회가 요구하는 기대에 질 높은 서비스로 대응하지 못한 내부적 상황에도 그 원인이 있을 것이다. 빈곤한 실무분야의 근원을 따지다 보면 조경 교육의 부실 문제로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교육 현장의 교수들은 교육에 관해 얼마나 치열한 고민을 했는가? 진지한 반성과 성찰이 필요하다.

우리 학계는 조경 교육에 관한 논의에 인색한 편이다. CELACouncil of Educators in Landscape Architecture를 비롯한 여러 외국 학회에서는 조경교육에 관한 다양한 발표와 토론이 전개되어 왔다. 우리나라의 경우 오히려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는 조경 교육 과정과 교육 방법론에 대한 논의가 있었지만, 2000년대 이후에는 찾아보기 힘들다. 최근 『한국조경학회지』(2015년 2월)에 실린 서울시립대학교 김아연 교수의 ‘조경 교육에 있어 학습자 중심 스튜디오 수업의 쟁점’이라는 깊이 있는 연구를 발견할 수 있어 반가웠다.

미래를 변화시키려면 교육에 주목해야 한다. 후속세대에게 좋은 조경 교육을 해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가 공감하는 일이다. 이제 조경 교육에 관한 논의의 장을 마련하자. 작은 일부터 시작할 수 있다.

서로 교육 현장의 고민을 나누자. 그리고 교육의 내용과 결과물을 공유하자. 좋은 시도와 성과는 많은데 서로 공유하고 있지 않을 뿐이다. 조경 교육, 서서히 변화의 바람을 일으켜야 한다. 그래야 대학정원이 축소되고 취업난이 가중되는 어려운 현실 속에서 조경을 공부하는 미래 세대에게 희망을 선사할 수 있을 것이다. 

 

 

조경진은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환경조경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현재 서울시 공원녹지 총감독, 서울그린트러스트 상임이사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서울 마곡지구에 본격적인 식물원을 도입하면서 공원과 결합하는 작업의 코디네이터인 마곡중앙공원 총괄계획가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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