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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 교육의 내일을 고민하다
설계 교육의 단면들
  • 김정은, 양다빈
  • 환경과조경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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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 교육은 단지 설계의 테크닉을 가르치는 수단이 아니다. 스튜디오 중심의 설계 교육은 미래의 조경가에게 비전을 심어주고 자기주도적 문제 해결 능력을 길러주기 위한 조경 교육의 핵심 과정이자 방법이다. 그러나 설계를 가르치고 배운다는 것은 설계 자체만큼이나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리나라 제도권 조경 교육의 역사는 이미 40년을 넘어섰지만 설계 스튜디오가 교육 과정에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은 10여 년에 불과하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본격화된 설계 교육은 예전과는 다른 지평을 열었지만, 여전히 많은 숙제를 안고 있다.

지난 6월 5일, 같은 학교에서 건축설계, 도시설계, 조경설계를 가르치고 있는 세 명의 설계 교수를 『환경과조경』의 회의 테이블로 초대했다. 설계 교수의 역할, 설계 교육의 목표, 건축·도시·조경의 통합적 설계교육과 분야 간의 왜곡된 협업 구도, 설계 교육의 과제등 설계 교육의 다층적 논점에 대한 토론이 자정을 넘겨 펼쳐졌다.


스튜디오 교육의 지향점과 설계 교수의 고민

배정한: 어려운 걸음, 감사드린다. 오늘 서울시립대학교(이하 시립대)에서만 세 교수님을 모신 이유는 이미 오래 전부터 도시과학대학이라는 같은 울타리 안에서 건축, 도시, 조경 교육의 시너지를 실험하고 있는 시립대 선생님들로부터 얻을 게 많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현재의 교육 구조와 설계 환경에서 설계 교육의 의미와 역할은 무엇인지, 학교의 설계 스튜디오는 교육 수요자의 요구에 답하고 있는지, 건축·도시·조경의 통합적·협력적 설계 교육은 가능한지 등 설계 교육을 둘러싸고 있는 다양한 쟁점을 짚어보고자 한다. 우선 설계 교육자의 역할과 태도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할까 한다. 설계 교육에서는 외적 환경도 중요한 이슈이지만 내적 구성원이라는 요인도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설계 교수로서 그간의 고민을 자유롭게 들려주시면 좋겠다. 김아연 교수는 최근에 설계 교육을 주제로 한 논문을 몇 편 발표하기도 했는데.


김아연: 늘 고민이다. 고민을 이론적으로 해소해 보고자 논문을 써보았다. 이번 좌담에 참여한 세 명 모두 실무 경험을 바탕으로 교수가 되었다. 설계 교수 이전에 설계가였다. 그런데 학교 밖에서 설계를 하는 것과 학교 안에서 설계를 가르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즉 설계를 잘 한다고 해서 반드시 설계를 잘 가르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실무의 복잡한 상황에는 그동안의 경험과 지식으로 대처할 수 있었지만, 학교 수업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일이기에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교육자로서 갖추어야 할 교육 방법론을 배우지 못한 상황에서 강단에 서게 되니 자연히 문제가 발생한다. 교수도 학생도 모두 불만족스럽다는 게 뻔히 보이지만, 그 원인에 대한 분석조차 쉽지 않다. 설계 교육의 문제점이 설계 그 자체에 있지 않다는 점이 분명했다. 그래서 겉핥기 수준으로라도 교육학을 새롭게 공부하며 설계 ‘교육’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일종의 자구책으로 설계 교육을 주제로 한 논문을 쓰기 시작한 셈이다.

우선 학생들이 설계 교육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부터 파악했다. 3~4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설계 교육의 의미가 무엇인지, 설계 교육이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는지 설문을 해보았다. 그 결과 대략 현상은 파악되었지만 개선할 방법이 딱히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워싱턴 대학교에서 연구년을 보내면서 유익한 자극을 받았다. 스튜디오 페다고지pedagogy를 고민하는 일군의 교수들과 가깝게 지냈는데, 그 과정에서 한 대학원생이 진행한 관찰 연구를 접했다. 교육대학원의 박사 과정 학생이 두 학기 동안 조경 설계 스튜디오에 참여해 내부자적 관점에서 수업 관찰을 시도한 것이다. 교육학 전공자들은 방법론적 관점에서 스튜디오 교육에 주목하고 연구하고 있는데, 정작 스튜디오 수업을 운영하는 우리는 교육학적 반성을 전혀 하지 않는다는 점을 깨달았다.


배정한: 논문을 쓰면서 파악한 설계 교육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인가?


김아연: 우선 설계를 근대적 패러다임의 이론 수업처럼 가르치는 점이다. 현대 교육학에서는 지식을 교수가 전수하는 것이 아니라 학습자가 구성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러한 구성주의적 교육 방법 중 스튜디오 수업은 최근 그 중요성을 주목받아 여러 분야에 도입되고 있다. 그런데 스튜디오라는 틀 속에서도 많은 설계 교수들은 일방적으로 지식이나 기법을 전달하려고만 한다. 학생들은 할 수 없이 교수가 시키는 대로 따라 하고 점검을 받고 교수가 원하는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스튜디오 고유의 특성을 살리지 못한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학생들이 스튜디오 수업을 이론 수업보다 더 무서워하고 폭력적이라고 느끼는 경우가 꽤 있다는 점이다. 강의식 수업은 그냥 앉아서 듣기만 하면 되지만, 스튜디오 수업은 대면 방식이어서 수업의 모든 과정이 개인적 차원으로 다가온다. 관계가 긴밀한 만큼, 위압적이고 권위적인 교수를 만나게 되면 적지 않은 부작용이 발생한다. 설계를 좋아하느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스튜디오 수업 자체에 대한 부담감이 진로 결정에까지 영향을 주는 것이다. 건축이나 도시 분야는 사정이 좀 나을 수도 있지만, 조경학과의 경우엔 스튜디오 교육을 받지 않았던 분들이 스튜디오 수업을 맡고 있는 경우도 적지 않고 스튜디오 교육을 받은 교수들도 자신들이 학생 때 받은 도제식 스튜디오 방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배정한: 건축학과는 건축학 인증제 도입 이후 설계 교육이 더욱 강화되는 동시에 이제 어느 정도 체계화·안정화된 것으로 보이는데.


김소라: 건축학과에서는 이제 스튜디오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이 스튜디오 수업을 담당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지속적으로 세대교체가 이루어졌고, 그에 따라 교육 방식의 트렌드도 바뀌어 왔다. 과거의 설계 교육은, 유명한 건축가가 가르치든 실무를 하는 교수가 가르치든, ‘이 방법을 따라 하라’는 식이었다. 검증된 방법을 그대로 따르는 도제식 교육이 과거 서양이나 우리나라 설계 스튜디오의 주를 이루었다. 그러다 설계 교수의 세대교체가 이루어지면서 스튜디오 담당 교수들이 교육자의 역할에 대해 본격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나 역시 실무를 하다가 강단에 서게 되면서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가를 무척 고심했다. 도제식의 강압적 방식이 아닌, 새로운 교육 방식이 무엇일까를 계속 모색했다. 건축 스튜디오를 맡고 있는 다른 설계 교수들과 이야기를 나눠 봐도 고민은 늘 비슷하다.

내 경우는, 나만의 방식을 일방적으로 전수하기보다, 학생 한 명 한 명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각자의 장점을 깨달을 수 있도록, 자신만의 디자인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하려고 한다. 그런데 이 방식에도 단점은 있다. 학생마다 코멘트를 달리하다 보니 오히려 아이들이 개별적인 코멘트에 의지하게 되는 역효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물론 ‘설계 스튜디오는 정답이 없는 선택의 문제’라고 늘 이야기해 준다. 내가 해주는 코멘트는 경험이 상대적으로 많은 사람으로서 어떤 선택이 옳을 것 같다는 조언일 뿐이므로 하나의 정답으로 무조건 받아들이지 않아야 한다고 말이다. 이러한 스튜디오의 특성과 틀을 이해하고 능동적으로 취사선택하는 태도를 보이는 학생들은 성공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반대로 개별적인 코멘트를 그대로 따르는 학생들은 결과물이 좋지 못한 경우가 많다. 극단적인 경우, “녹음해도 됩니까”라고 묻는 학생도 있다. 학생들의 만족도가 대체로 높다는 점은 나로서는 위안거리다.


배정한: 교수 입장에서는 에너지 소모가 무척 많을 것 같다.

 


김소라 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김아연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교수

유석연 서울시립대학교 도시공학과 교수 

사회 배정한 편집주간, 서울대학교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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