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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 제대로 된 쇼를 하라
서울역 고가 공모, 진화인가 퇴보인가?
  • 환경과조경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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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민석(매스스터디스)의 ‘흐르는 랜드마크: 통합된 하이퍼 콜라주 도시’, 서울역 광장 구간

 

흔히 부정적으로 얘기할 때 쓰는 ‘쇼를 하고 있네’의 천박한 의미의 ‘쇼’가 아니다. 멋지고 유려하며 감동을 주는, 그래서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 브로드웨이의 공연과 같은 ‘쇼’. 뉴욕의 더 로케츠나 파리의 물랭루즈와 같은 볼거리가 화려한 ‘쇼’. 수를 부리고 허를 찌르는, 짜임새가 탄탄하고 반전에 반전을 거듭해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사극 드라마에 나오는 정치적 ‘쇼’. 무엇이든 간에 ‘쇼’의 핵심은 흡입력, 구성, 그리고 명분이다. 이 세 가지가 잘 갖춰지면 관객은 몰두한다. 그러나 서울역 고가는 흡입력도 없었고 구성도 빈약했으며 명분도 제대로 세우지 못했다.

물론 멋진 쇼를 하고 싶었을 것이다. 서울역 고가는 장소적 특성으로 인해 그 이전의 마포석유비축기지, 그리고 그 이후의 세운상가 공모전보다 훨씬 더 주목 받을 수 있는 곳이다. 서울의 대표 프로젝트로 청계천과 한강 르네상스가 있었다면 이번 시장에게 서울역 고가는 좋은 기회가 아닌가? 제대로 인정받는 쇼를 통해 명분도 얻고 무얼 하든 따라붙는 정치색도 지우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하이라인으로 갔다. 여러 가지 계산이 깔려 있었을 것이다. 먼저 하이라인은 서울역 고가처럼 철거 논의가 많았지만 결국 공공 공간으로 지켜낸 프로젝트다. 그리고 성공 사례다. 드러내 놓고 얘기할 순 없었겠지만, 서양의 것이라면 그저 좋다고 여기는 천박한 시민 의식도 살짝 건드릴 수 있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한국에서 해도 될 것을 굳이 멀리 뉴욕까지 갔다. 파란하늘, 선명한 색감, 하이라인의 시크하면서도 야생적인 느낌, 고풍스러워 보이면서도 현대미가 물씬 풍기는, 우리가 동경해 마지않는 뉴욕이라는 도시를 배경으로 서울역 고가 프로젝트의 시작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It’s show time! 여기까지만 보면 쇼의 시작은 성공적인 듯 보인다. 하지만 강력한 한 방을 선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하이라인이 발목을 잡았다. 아이러니하게도 하이라인의 빼어남이 서울역 고가의 잠재력을 잠식했다. 많은 논란 끝에 고가를 활용하기로 했다면 왜 그것이 하이라인과 같은 공간이 되어야 하는가? 우리만의 독특하고 창의적인 장소를 표방할 순 없었을까? 하이라인이 생기기 전의 성공 사례로 파리의 프롬나드 플랑테가 있었다. 그러나 하이라인은 자기만의 브랜드를 만들어 냈다. 정말 쇼를 제대로 하고 싶었다면 서울역 고가에 올라가서 해야 했다. 하이라인 위에 올라 서울역 고가를 얘기함으로써 이 프로젝트의 근본적인 정체성을 본편이 아닌, 성공하기 힘들다는 속편으로 만들어버렸다. 쇼를 보는 관객은 혼란스럽다. 하이라인이 좋은 건 알겠는데 그래서 서울역 고가는 어떻게 된다는 건가? 좋게 말하면 ‘벤치마킹’이지만 실상은 정체성의 ‘카피’와 무엇이 다른가? 관객은 본 공연을 보기도 전에 김이 샌다.


크레디트

그래도 스스로를 위로해 본다. 아직 공모전은 시작도 안 했다고. 재미있는 쇼는 이제부터 보여주겠지. 그런데 웬걸. 본격적인 쇼 타임이 시작되기도 전에 또 한 번 실망한다. 주최 측은 능력 있는 디자이너들을 심사숙고해 공정하게 뽑았다고 했다. 그런데 오디션이 없다. 오디션이 없었는데 어떻게 공정하게 뽑은 걸까? 어떤 방식으로든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디자이너들로 구성해 놓았으니 주최 측의 능력을 높이 평가해야 할까? 그런데 선발의 기준이 보이지 않는다. 

 

 

최혜영은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조경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뉴욕 AECOM(전 EDAW)을 거쳐 West 8 뉴욕 오피스에서 거버너스 아일랜드 프로젝트를 담당했다. 2012년 용산공원 설계 국제공모에서 West 8 + 이로재 팀의 당선을 이끌면서 현재 서울과 로테르담을 오가며 용산공원 기본설계 및 조성계획 수립 프로젝트 리더로 일하고 있다. 펜실베이니아 주 등록 미국 공인 조경가(RLA), 친환경건축물 인증제 공인 전문가(LEED AP)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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