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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와 디테일] 잡초, 다르게 볼 줄 아는 자가 누리는 사치
  • 환경과조경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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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풀(잡초)을 옮겨 심었다. 대부분 흔히 보아왔지만 눈치채지 못했던 것들이다. 심지어 우리 같은 실무자조차 쉽게 구별하지 못하는 것도 있다. 어떻게 변해 갈지 알 수 없는 신비로운 기대감이 있다. ⓒ이대영

 

첫 번째 대화

얼마 전, 평소 알고 지내던 임 소장(건축가)이 설계와 시공을 담당하게 된 성북동 현장을 방문했다. 성북동이라는 말에 한껏 들떴다. ‘우리도 이제 부자 동네에 한건 하는구나!’ 이렇게 혼자 헛물을 켜며 도착한 곳은 건물이 7평, 그 앞 장방형 마당 또한 무려 7평이나 되는 대저택(?)이었다. 너무 넓어서 놀란 입을 다물 수 없었다. 건축주는 정원이 있는 집에서 살고 싶어서 아파트를 처분하고 단독 주택을 짓게 되었다며 이 대저택의 출생을 설명한다. 그 분의 꿈을 이루어내야 하는 중 대한 사명을 띠게 된 것이다. 예산은 얼마냐고 물었다.

“없다”는 답이 돌아온다. ‘그럼 어떻게’ 우린 고민하기 시작했다. 많은 아이디어가 오고가는 와중에 건축주가 한마디 거든다. “성북동 언덕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들풀을 써보면 어떨까요” 경비를 아끼자는 측면도 있지만 자신의 집에 들풀이 자라는 마당이 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처음엔 ‘과연 될까’하며 머뭇거렸지만, 현장을 나서면서 마주친 성북동의 오래된 담장 틈으로 자라고 있는 고들빼기와 민들레를 보는 순간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두 번째 대화

조경 회사에 다니는 친구가 놀러 왔다. 파주 근처에 지어지는 건물 중정에 식재 공사를 하고 있다며 현장 사진을 보여 준다. 강원도에서 멋지게 자란 흉고직경 20cm의 낙엽교목을 이식하는 이미지였다. 부러웠다. ‘우리가 만들 정원의 총공사비로는 저런 나무 한 주 밖에 못 사겠네’라는 씁쓸한 마음을 숨길 수 없었기에 에둘러 흠집을 잡기 시작했다. 물론 속으로만. ‘처음 태어난 땅에서 어렵사리 자리 잡고 살고 있던 나무였을 텐데…, 뿌리에 온통 칼질을 해대며 뽑아내 이 먼 거리를 싣고 와서 낯선 땅에 심는 게 마땅한 일인가…, 그것도 콘크리트 바닥 위에다가….’ 그러다가 나 역시 인간의 이기심을 채우기 위해 가만히 있는 식물에게 몹쓸 짓을 해오지는 않았나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대영은 여기저기 살피고 유심히 바라보기 좋아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려 노력하고 있다. 만드는 것에 관심이 많으며, 작고 검소하며 평범한 조경설계를 추구하고 있다. 영남대학교에서 공부했고 우대기술단과 씨토포스(CTOPOS)에서 조경의 기초를 배웠다. 조경설계사무소 스튜디오 엘(STUDIO L)을 시작하고 작은 작업들을 하고 있다. www.studio89.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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