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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설계하는 법] Do you like it?
  • 환경과조경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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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버지니아 주 지형도의 일부분을 등고선(contour)과 입체법(relief)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묘사했다. 본격적인 설계에 앞서 실시하는 ‘나만의 방법으로 지형을 읽어내기’ 연습이다. 공간이나 랜드스케이프를 읽고 통역하는 눈이 남다르지 않다 면 디자인 역시 차별화되지 않는다. 그런 이유로 대학원 첫 학기 스튜 디오를 가르치면서 가장 먼저 내주는 과제가 이 ‘지도 다시 그리기’다. 각자 지도를 재해석하고 지형을 형태가 아닌 법칙과 관계로 표현한다. (좋은) 설계를 하기 위한 연습이다. (출처: UVA Landscape Architecture Foundation I Studio, co-coordinated with Teresa Gali-Izard, Fall 2014)

 

열세 살 때 집을 떠났고 미국 동부에서 오랜 시간 동안홀로 유학 생활을 했다. 유학 초기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문화적·언어적·지리적 혼돈 속에 사춘기를 보냈고, 낯선 것들 사이에서 나의 정체성을 찾으려 부단히 노력했다.

강원도 속초. 아니,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의 어느 작은 시골에 부모님의 집이 있었다. 지붕 넘어로 설악산 미시령과 울산바위가 보이는 작은 마을인데, 학창 시절 단기간 살았던 서울과는 또 너무나도 다른 육지 위의 섬 같은 이곳을 나는 ‘내 집’이라 부르며 자랐다. 막상 익숙해지려 하면 떠나게 되었고, 다시 돌아와 보면 너무 많이 변해 있었다. 이처럼 그곳이 어디가 되었든 간에 빨리 흘러가는 시간, 그리고 그 세월 속의 변화가 느껴지는 공간이라면 ‘장소’라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지난 이십 여 년 동안 항상 스쳐가는 방문객처럼 살다보니(뭐, 원래 다 그런 것이겠지만), 장소란 한 곳에 머무르는 게 아니라 나를 따라 어디든지 동행할 수 있는, 정신적이고 무형적인 요소로 이루어졌을 거라 믿게 되었나보다. 그래서인지 공간을 추상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다. 하나의 의도나 요지, 혹은 게임의 룰로서. 익숙한 것보다 생소한 것이 더 좋다. 아니, 좋다기보다는 생소해서 편하다는 것이 더 정확하겠다. 물질적인 창조와 공간의 생산을 목표로 하는 조경 디자인의 일반적인 접근법에 비교하면 조금 벗어난 방식일 수도 있겠지만, 이러한 추상성은 오히려 공간을 좀 더 자유롭게 해석하고 또 다르게 표현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사고방식이지 않을까. 어쨌든 조경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새내기의 눈으로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네 가지 설계 방식을 적어본다.


01 물어보기: Do I like it?

다루는 대상이 뭐든지 간에 조금이라도 다른 시각에서 보고 또 그러한 시각의 무언가를 만들어 내고자 하는 갈망과 의지가 설계하는 방법을 주도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그 방법은 항상 바뀌는 것 같다. 나라는 사람 자체가 변하기 때문일까. 매번 똑같지 않다. 사소한 설계 디테일이 바뀐다는 것이 아니라 디자인을 보는 시각과 디자인에 대한 패러다임이 변하고 자연스럽게 내가 설계하고 싶은 ‘이상’도 변화한다. 당연하겠지만 그 이상을 실현시키기 위해 시도하는 설계 방법도 같이 변하게 될 것이다.

큰 그림, 즉 추구하는 바가 같더라도 객관적인 디자인이란 있을 수 없다. 디자인은 절대적으로 주관적인 사고의 결과물이라는 것. 아무리 과학적인 접근을 취하더라도―하는 척만 해도!― 결국엔 개인의 취향을 반영한 결과가 생산된다. 같은 맥락에서 사이트의 모든 챌린지를 단번에 풀어주는 디자인 전략이 있다고 해도, 내가 신나지 않으면, 즉 자신의 설계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결국엔 망한 전략이다.

설계 대상의 수많은 디테일과 여러 가지 상황 안에 나를 집어넣고 그때마다 받는 느낌이 어떤지, 내가 그 속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상상해가며 설계한다. 디자인 안에 들어가서 디자인하기다. 따라서 설계 중 항상 점검해야 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나의 취향과 시각이다. 그것이 디자인에 있어 가장 중요한 도구이자 매체라고 생각한다. 사이트를 읽든 소재를 고르든 설계의 대부분을 좌우하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이다. 내가 정보를 선택하고 걸러내며 해석하기 때문이다. 

이런 도구―취향과 시각―가 빛바랬거나 너무 익숙하다거나 또는 저만의 특별함이 사라졌다면, 설계가 잘 된 것 같다는 착각에 빠질 수도 있다. 결국, 취향과 시각에는 좋고 싫음의 잣대가 적용되어 있다. 그런 익숙함에서 벗어나 정말 많은 것을 봐야 하고 접하고 또 물어봐야 한다. 또한 피하고 싶은 디자인 종류―나는 녹색만 입혀 놓았거나, 비전이 약하거나, 오버 엔지니어링된 건축이나 조경 사례를 좋아하지 않는다―도 잘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설계 스튜디오 때 학생들의 설계 안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나면 빼놓지 않고 그들에게 던지는 질문이 있다. “So, do YOU like it?”

다시 말하지만, 방금 설명 받은 그 학생의 설계 안을 놓고 묻는 말이다. 설계안을 논리정연하게 설명하던 학생들도 의외로 많이 머뭇거린다. 간단한 “Yes!”나 “No!”가 아니라, 대부분 한숨 섞인 미소로 답을 대신한다. 디자인하는 데 바빠 미처 생각해보지 못한 눈치다.

어떤 계기로 이 질문을 그들에게 그리고 나에게 처음으로 던지기 시작했는지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누군가가 대학원생 시절의 나에게 한번만이라도 물어봐 주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다. 그랬다면 좀 더 일찍 남의 눈에 들지는 못하더라도 나만의 것을 찾으려 의식하고 대화했을 것이다.

이렇게 ‘Do I like it?’이라는 질문을 수시로 던지며 설계하다 보면 데드라인에 쫓겨 허겁지겁 마무리하는 식의 설계안이나, 잘 마무리된 것 같으나 어딘지 특별함이 없는 설계안을 내놓는 일이 줄어든다. 보통, 내가 진행한 프로젝트는 대략 네 가지 레벨로 나뉜다. 1) 숨기고 싶을 정도로 부끄럽거나 “I didn’t do it”, 2) 다들 좋다고 하는데 내가 보기엔 부족하거나 “I don’t believe in this”, 3) 모두 별로라고 하지만 나에겐 좋아 보이거나 “I believe in it”, 4) 전체적으로 부족해도 어느 한 구석 잠재력이 보이는 “There’s something in there” 프로젝트로,언젠가 다시 제대로 써봐야 할 밑거름 같은 설계안들이다.

아직 경험해 보지 못한 설계와 감정이 많이 있겠지만, 어찌되었건 스스로 열심히 대화하며 설계하는 것, 나의 직감과 능력의 바로미터를 꾸준히 셀프 검진하는 것이 나의 설계 과정에 있어 가장 근본적이고 중요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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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스스로 만든 규칙으로 나무를 그린다. 나무에 대한 많은 양의 정보가 이 다이어그램 안에 들어 있다. 도시 수목을 관리 차원에서 정리할 때 반복적으로 ‘만들어지는’ 나무의 형태를 유형화한 것이다. (출처: UVA Landscape Architecture Option Studio, co-coordinated with Teresa Gali-Izard, Fall 2013)
 
 02 다시 그리기

사이트나 소재를 해석하는 것. 상당한 연습이 필요한 일이다. 대상지 분석(site analysis)은 설계 대상을 알아가는 과정인데, 지난 몇 년간 내가 지도하는 학생들에게서 대부분의 대상지 분석이 해석(interpretation)이 아닌 말 그대로 분석에서 끝난다는 점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이 둘의 가장 큰 차이점은, 분석은 서술(description)이고 해석은 프로포지션(proposition), 즉 논의가 있는 개인적 편향이라는 점이다. 물론 분석하는 과정에서 정보를 수집하고 맞춰보고 들어보면 어떤 개인의 견해가 생기겠지만, 설계 대상을 알아가는 과정이 분석에서 끝나면 자기 자신만의 유일한 디자인은 나오기 쉽지 않다. 해석은 분석된 내용이 디자이너를 통해 한 번 더 걸러진 정보다. 디자이너만의 시각으로 사이트나 소재를 소화하는 과정이다. 어떻게 보면 두 결과물이 비슷할 수 있으나, 창의적인 해석을 의도적으로 진행하면 설계 과정에 많은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이런 변화는 우선 드로잉에 나타난다.

가끔 나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조경을 하는 사람으로 나무의 생물학적 특징과 습관을 더 많이 알고 있으면서도 왜 나무를 평-단면 형태의 아웃라인으로 동그랗게만 그릴까. 물도 마찬가지다. 특유의 역동적인 성질이 모두 제외된 볼륨이나 덩어리, 물을 담고 있는 컨테이너로 대신 그린다.

조경에 가장 많이 쓰이는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습관적 묘사 기법(representational habit)때문에 보다 창의적이고 재미있는 해석이 나오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드로잉에 드러난 것처럼 조경다운 시각이 결여된, 어찌보면 너무나도 중립적이고 보편적인 태도로 설계하고 있는 것 같다.

2년 전 버지니아 대학교에서 진행한 디자인 스튜디오는 이런 고민에서 시작되었다. ‘막대 사탕 모양의 나무는 No’. 아이콘이 아닌, 나무의 아키텍처(architecture)를 구축하는 문화적·생물학적 과정을 이해하고 그리기, 즉 익숙하다고 생각했던 소재의 재해석을 바탕으로 설계할 것을 과제로 제시했다.

‘가지치기’ 같은 도시 행정 속의 문화적 의도가 살아있는 소재(living material)의 형태를 어떻게 구체화시키는지, 즉 어떤 방식으로 도시 수목의 관리 과정이 이루어져야 하는지가 스튜디오의 쟁점 중 하나였다. 나무의 캐노피를 생태적 산물이 아닌 변형 가능한 건축 구조물로 본 셈이다.

설계는 게임이나 놀이처럼 진행됐다. 우선 학생들은 자기만의 규칙으로 나무를 관찰하고 그려나가는 것 자체를 아주 재미있어 했고, 그래서인지 그 과정에서 생산된 그림들 역시 매우 신선했다. 물론 오차도 많았고, 개인적으로는 학생 14명의 14가지 규칙을 모두 기억해야 했던 부담감도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만들어진 개개인의 규칙을 바탕으로 ‘나무를 얼마만큼 언제 어디에 심으며 어느 부분을 관리해 주어야 원하는 형태의 도시 숲이 생성될 수 있을까’라는 렌즈를 통해, 익숙하다고 여겨왔지만 여전히 생소한 소재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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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노동하기

도면 없는 설계, 즉 노동도 설계 방법의 하나다. 물론 일시적인 설치 작품(temporary installation)이나 골목, 정원 등 작은 사이즈의 프로젝트에 해당되는 말이다.

대학원에서 건축 디자인을 가르치는 남편도 강의식 수업이 많다 보니 가끔 무작정 손으로 만들어 보고 싶을 때가 있다고 한다. 우선 시작하고 본다. 가벼운 스케치 몇 장과 250달러를 들고 바로 재료를 사러 나간다. 5일 만에 끝내겠다는 플랜도 짠다.

아침과 오후엔 수업과 미팅이 있어 밤 8시가 되어서야 이 게릴라 설계 노동이 시작되었다. 새벽 두세 시에 건축학교 빌딩 앞마당에서 뚝딱뚝딱 무언가를 만들고 있는(당시엔 아직 아이가 없을 때라 이런 스케줄을 소화할 수 있었다) 남편과 나를 발견한 학생들이 창문을 열고 뭐하냐고 물

어본다.

 

“We are just making! 그냥 만드는 중이야!”

“Making what?! 뭘 만드는 데요?!”

“We don’t know yet! I’m sorry! 우리도 아직 몰라! 미안해!”

 

그리고 5일 후, 안에선 사람들 머리만 보이고 밖에선 몸만 보이는 헤드 박스가 완성되었다. 이 해 10월, 할로윈 파티에 앞서 비가 너무 많이 온 것이 설계에 영향을 미쳤던 걸까. 박스 내부엔 마일라(Mylar)와 조명을 사용해 다들 물속에서 나오고 있는 듯한 (혹은 가라앉고 있는 듯한) ‘가짜 공간’을, 외부엔 본격적인 파티에 앞서 몸을 풀 수 있는 작은 에피타이저 같은 장소가 만들어졌다.

설계 과정에서 모델(physical model)을 활용해 아이디어를 실험해 보는 것처럼, 헤드 박스를 만드는 ‘노동’은 실시간 설계다. 비용과 시간에 제한을 두고 직접 지으면서 설계 결정을 해 나간다는 것은 그리면서 하는 설계와는 다른 종류의 설계법과 디테일을 배우게 한다. 심플한 구조에도 무게가 꽤 나갔던 박스의 나무 프레임이 1인치도 안 되는 가는 막대기 네 개에 의해 지탱될 수 있을지 처음엔 몰랐던 것처럼.

설계란 꾸준히 다양한 방법을 필요로 한다. 한 가지에 익숙해질 때 쯤 또 다른 설계 방법을 모색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도면 없는 설계를 한다. 헤드 박스는 한 예에 불과하다. 이런 과정을 거치는 이유를 찾는다면 도면 베이스의 설계 시 필요한 현실적 감각을 기르기 위함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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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시청 건물의 설계안 공모전 우승자가 처음 발표 되었을 때 사람들은 “What the hell is that?(아니 이게 뭐야?)”라며 속삭였다고 한다. 우리가 제안한 메이크오버(makeover) 캠페인 (2009)의 제목도 ‘What the hell is that?’이었다. 보스턴 시청 건물을 열쇠 고리로, 티셔츠로, 모자 로고로, 화장실의 벽지나 휴지 패턴으로, 그라피티나 약혼 반지로 둔갑시켰다. 어떤 용도로 쓰이든 ‘사적인 여성 핸드백 안에 자리 잡고 있을 정도가 되면 드디어 캠페인이 성공했다 볼 수 있겠지’라는 재미있는 상상을 해봤다.

 

04 설계 안하기

마지막으로 설계를 하지 않아도 좋다고 결정하는 자세도 중요한 설계 방법 중 하나다. 즉, ‘없음’이 도구다. 우리가 사이트나 소재를 알아야 하는 이유도, 클라이언트와 꾸준한 대화를 하는 이유도 모두 그 상황에서 가장 적합하고 훌륭한 설계안을 만들어내기 위함이다. 하지만 보편적으로 새로 짓거나 개조한다고 해서 어떤 공간이 반드시 나아지는 것은 아니다. 

몇 년 전 보스턴 시청 건물과 광장에 관한 공모를 준비하고 있었다. 공모 대상은 거대한 콘크리트 외부를 자랑하는 브루탈리즘(brutalism0 건축으로, 한 때 세계에서 가장 못 생긴 빌딩 중 하나로 뽑혔던 나름 역사적인 건물이다. 그만큼 이 건물을 재해석해보려는 시도가 많았다. 아직도 수많은 설계 회사와 건축 대학원에서 스튜디오 소재로 쓰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설계안이 나왔어도 아무런 변화가 없다니. 우린 또 다른 설계안을 제안하기보다 과대 선전을 통한 이미지 개선 캠페인을 전개하기로 했다. 이 시청 빌딩이 건축적으로 혹은 도시학적으로 좋다 나쁘다를 떠나서, 이렇게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빌딩을 또 다른 문화를 생산하는 촉매제로 사용하고 싶었기 때문이다(사실 이 건물을 좋아해 애초부터 별로 바꾸고 싶은 마음이 없기도 했다).

행정 건물과 대중문화가 서로 어우러진 시청의 미래는 연상(association), 모사(replication), 아이콘화(iconization), 그리고 전파(dissemination)라는 전략을 통한 물질적 개조가 아닌 대중 인식의 개조에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설계를 하지 않았다기보다 설계의 정의를 넓힌 것이다. 

이러한 예가 아니더라도 설계 도중 스스로 편집할 수 있는 능력, 상황에 따라 잠시 생략하고 전환시킬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한 프로젝트가 앞으로도 많을 것이다. 공간에 대한 다양한 이해와 아이디어가 곧 ‘설계’고 ‘방법’일 것이다. 


조리나는 1982년 생으로, 미국 웰슬리 칼리지(Wellesley College)에서 여성학을 전공한 후, 하버드 GSD에서 조경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의 마이클 반 발켄버그 어소시에이트(Michael Van Valkenburgh Associates)와 네덜란드 로테르담의 맥스완 아키텍트 + 어바니스트(Maxwan Architects + Urbanists)에서 다양한 도시 디자인과 조경 및 건축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현재 미국 버지니아대학교(University of Virginia) 조경학과 대학원 강사로 있으며 하버드 GSD에서 초청 강사로 가르친 바 있다. 건축가 매튜 줄(Matthew Jull)과 쿠토노톡(KUTONOTUK)의 공동 대표로서 구겐하임 헬싱키(Guggenheim Helsinki)와 헬싱키 공공 도서관(Helsinki Public Library), MoMA PS1 젊은 건축가(Young Architects Program), 유로판 등에서 주관한 디자인 프로젝트에서 수상한 바 있다. 또한 아크틱 디자인 그룹(Arctic Design Group)의 대표로서 미국 워싱턴D.C.의 정책 연구 기관과의 협력 아래 북극 도시와 극한 랜드스케이프(extreme landscapes)에 관한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www.kutonotuk .com | www.arcticdesigngroup.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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