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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꿈꾼 도시, 우리가 사는 도시] 정의로운 도시, 차별의 도시
  • 환경과조경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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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들린의 건축가 알레한드로 에츠베리. 현재 EAFIT 대학에서 도 시환경연구센터를 이끌고 있으며 2004~2005년 메들린 도시 개발 공 사 팀장 및 2005~2008년 도시 프로젝트 총괄 디렉터를 역임하면서 사회적 도시론(Social Urbanism)의 실천에 힘썼다. (출처: http://www.shamengo.com/)

 

삼(오)포세대 도시론

연애, 결혼, 출산, 이 세 가지를 포기한 세대를 일컫는 삼포세대에 대한 사회적 우려를 처음 접했을 때만 해도 그렇게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러한 우려를 기성세대가 자신과는 다른 삶의 방식을 선택한 사람에게 갖는 정체 모를 불편함이라고 생각했다. 남녀가 건강하다면 만혼이면 어떻고 아이를 갖는 대신 부부만의 오롯한 삶을 꿈꾸는 것이 무슨 문제란 말인가? 하지만 이후 나는 적잖게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앞의 세 가지에서 더 나아가 ‘인간 관계’와 ‘내 집 장만’마저 포기한 오포세대를 접하게 된 것이다. 도시에서 사회적 관계와 주거 공간이 갖는 의미는 매우 특별하다. 나와 비슷하지만 또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며 기쁨과 슬픔, 보살핌과 따스함, 붐빔과 다양성의 감각을 만끽 할 기회를 넓혀가는 것, 나아가 적정 비용의 지불을 통해 소박하지만 깨끗한 집에서 거주하며 가족이나 이웃과 어울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도시설계가 추구해야 할 핵심 덕목이 아니었던가? 이에 대한 희망을 잃어가고 있는 세대에게 좋은 도시를 함께 만들어가자고 종용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도시에서의 삶, 특히 젊은 세대의 일상이 각박해지고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커질수록 이에 대한 두 가지 관점이 더욱 첨예하게 대립함을 확인할 수 있다. 하나는 사회·경제적 어려움은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주지만 특정한 사람들의 삶을 특히 더 힘들고 비참하게 만든다는 관점이다. 출발 자체가 남들과 다른 이들은 자유 시장 경제 안에서 빈곤의 대물림, 교육 기회 박탈, 체력 저하나 건강 문제로 인한 사회적 격차를 극복하기 어렵다. 따라서 정책적 배려와 함께 지금보다 더욱 정의로운 도시 공간을 제공해야 한다. ‘저소득층 주거권 보장’, ‘다민족·다인종 사회 만들기’, ‘청년 창업 지원 센터’, ‘공동 육아방’이나 ‘폭염 쉼터’ 운영이 여기에 해당한다. 다른 하나는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일이 중요한 만큼 지금의 도시를 더 혁신적이고 경쟁력 있는 곳으로 변화시키는 일이 시급하다고 보는 관점이다. 선택과 집중을 통해 ‘도시 경쟁력 강화’, ‘혁신 도시 건설’, ‘(전략적) 불균형 성장’을 이루어 전체 파이를 키운 후, 이를 적절히 나눠 가지면 궁극적으로 모두가 잘 살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와 같은 분배-성장, 정의-효율성 관점의 대립은 시설 투자에 대한 정부 예산 분배부터 도시 공간의 이용과 규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 삶에 영향을 준다.

파인스타인 교수의 ‘정의로운 도시론’ 하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다. 과연 도시 공간을 조금씩 바꾸어 가는 방식을 통해 효율성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보다 정의로운 도시just city를 구현할 수 있을까? 다시 말하자면 정의로운 도시를 만드는 일이 과연 얼마나 ‘공간’과 관련되어 있을까? 조경·도시설계의 결과는 결국 크고 작은 도시 개발(혹은 재개발)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토지 매입, 보상, 착공 및 준공, 분양을 포함한 도시 개발 과정은 매 순간 돈의 흐름에 매우 민감하기 때문에 정의나 분배와 관련된 이슈가 결정적인 영향을 주기 쉽지 않다. 나아가 개발 사업의 타당성 여부도 궁극적으로 지역 경제 성장이나 일자리 창출, 도시 경쟁력 강화나 기업 브랜딩 효과 같은 효율성의 지표에 따라 판단되는 경우가 많다. 물론 도시 개발로 인해 토지의 잠재된 가치가 발현됨으로써 공간을 직간접적으로 소비하는 사회 구성원 전체가 혜택을 볼 수 있지만, 결국 직접적인 개발 이익의 대부분은 투자의 불확실성을 감수한 개인이나 집단이 누리게 된다. 더욱이 이들의 이익 추구 행위를 공익이라는 이름으로 규제하기도 쉽지 않다. 개발 사업에서 정당한 이익 추구와 지나친 탐욕의 경계가 모호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하버드 대학교의 수잔 파인스타인Susan Fainstein 교수는 정의를 도시 공간과 이를 생산하는 과정 속에서 구현되어야 할 목표로 본다(그림1). 그는 정의로운 도시란 “공공 투자와 정책이 이미 부유한 사람뿐만 아니라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공정하게 혜택을 주는 도시”라고 정의한다.1 여기서 공정한 혜택이란 개발로 인해 도시민 전체가 골고루 부유해진다는 결과론적 해석이 아니다. 도시 개발 과정의 매 단계에서 어떤 목적으로 누구를 위해 부와 효율성을 추구하는가를 묻고, 나아가 최소한의 ‘민주적 참여,’ 사회·경제적 ‘다양성 추구,’ 개발 혜택에 대한 ‘공정한 분배’ 원칙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러한 원칙을 고려한 도시 개발의 결과가 전혀 고려 없이 진행된 결과보다 훨씬 더 공정한 도시 공간에 가깝다.

파인스타인 교수는 뉴욕 브롱크스Bronx 지역에 2009년 완공된 양키스 구단 야구장Yankee Stadium을 정의롭지 못한 개발 사례로 손꼽는다(그림3). 비교적 낙후되었을 뿐 아니라 총격 사건과 방화가 빈번하게 벌어지는 지역에 다수의 관중이 이용하는 스포츠 경기장을 개발함으로써 지역 이미지 개선을 기대하는 정책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더욱이 뉴욕 양키스라는 명망 있는 구단을 유치함으로써 지역 불균형 해소도 기대할 수 있다. 그럼에도 파인스타인 교수는 과연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의 연봉을 받고 있는 선수들과 부유한 구단주를 위해 뉴욕 시가 나서서 경기장 건립과 주차장 및 어메니티 시설 확보를 위한 대규모 공공 자금을 투자해야만 했는가, 그리고 야구장 부지 확보라는 명목으로 브롱크스 커뮤니티가 오랫동안 이용해 온 오픈스페이스를 잃게 되는 기회 비용이 과연 정당한 비용인가에 대해 묻는다. 나아가 다수의 야구 경기 관람객, 특히 값비싼 VIP 관람석 비용을 지출할 만큼 부유한 사람들이 과연 브롱크스라는 낙후된 지역 사회의 변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얼마나 줄 수 있는지 의문을 제기한다.2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양키스 야구장 개발 과정을 보다 정의롭게 하기 위해 민주성, 다양성, 공정성이라는 원칙이 중요하지만, 이 중 하나에 지나치게 집착할 경우 오히려 총체적인 의미의 정의가 구현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김세훈은 1978년생으로 서울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한 후 하버드GSD에서 도시계획학 석사와 박사 학위(DDes)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도시설계 이론과 스튜디오 수업을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 『신흥도시 개발 모델』, 『도시형태변화분석방법론노트』, 『도시와 물길(A City and Its Stream)』 등이 있으며, 한국, 중국, 동남아시아의 도시 연구와 설계를 함께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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