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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정원에서 조선의 500년을 엿보다
본지 주최, 독자 40여 명과 함께 한 조선왕릉 답사
  • 김휘림
  • 환경과조경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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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다빈, 이형주

 

‘각 왕릉별 순례 형식으로 서술하여 현장감을 더해주고 있다.’ 『세계문화유산, 신의 정원 조선왕릉』의 추천사다. 그러나 공간을 배경으로 두고 저자의 목소리와 손짓·발짓을 통해 직접적인 해설을 듣는 것만큼 현장감이 있을까. 책에는 서술하지 못한 연구와 저술 과정의 뒷이야기와 흥미로운 조선 왕들의 사랑과 야망을 담은 ‘야사’는 답사에 딸려오는 덤이다.

지난 5월 30일, ‘환경과조경’은 『테마가 있는 정원 식물』의 저자들이 몸담고 있는 춘천의 제이드 가든으로 정원 산책(2014.10.25)을 진행한 데 이어, 두 번째 ‘저자와 함께 떠나는 문화 산책’을 떠났다. 이번 저자와의 산책은 『세계문화유산, 신의 정원 조선왕릉』의 저자 이창환 교수(상지영서대학교)와 독자 40여 명이 함께했다. 『세계문화유산, 신의 정원 조선왕릉』은 환경과조경의 출판 브랜드인 ‘한숲’에서 펴낸 단행본으로 27대에 걸쳐 만들어진 조선시대 40기 능원의 조영적 특성과 역사적 배경을 집대성한 책이다. 이번 ‘저자와 함께 떠나는 문화 산책’은 이미 출간일로부터 1년 정도 흐른 시점이었음에도, 조선왕릉의 역사적 중요성과 더불어 지난 가을 진행된 제1회 저자와의 산책 이후 꾸준하게 이어진 독자들의 요청에 힘입어 추진되었다.


조선시대로의 시간 여행

이번 답사는 ‘조선의 시작부터 끝까지’라는 테마로 ‘동구릉(경기도 구리시)’, ‘사릉(경기도 남양주시)’, ‘홍·유릉(경기도 남양주시)’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왕릉이라는 상징적 공간을 통해 조선시대의 처음(건원릉)부터 끝(유릉)까지 돌아볼 수 있는 탐방 코스를 정했다”는 이창환 교수의 말처럼 짧은 일정 속에서도 왕릉의 시기별 변화를 살펴볼 수 있도록 기획되었다. 이날 동구릉 답사는 추존황제 문조와 신정왕후의 합장릉인 ‘수릉’에서 시작되어, 문종(제5대)과 현덕왕후의 ‘현릉’, 동구릉의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 선조(제14대)와 의인왕후, 계비 인목왕후의 ‘목릉’, 현종(제18대)과 원비 명성왕후의 ‘숭릉’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동구릉에서 자리를 옮겨 홍유릉에서 그리 멀지 않은 단종비 정순왕후의 ‘사릉’을 거쳐, 고종황제(제26대)와 명성황후의 ‘홍릉’, 그리고 조선 제27대 마지막 임금이자 대한제국의 2대 황제인 순종황제와 순명효황후, 순정효황후의 ‘유릉’까지 이어지며 마무리되었다.


비하인드 스토리와 왕실 제례 체험

이날 이창환 교수는 조선왕릉이 갖는 조영적 특성이나 세계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와 같은 전문적 내용은 물론 책에는 담지 못했거나 담을 수 없었던 이야기들을 전해주기도 했다. 2009년 조선왕릉 세계문화유산 등재 잠정목록 신청 당시의 급박한 상황(광해군의 폐위로 인한 왕릉과 왕의 수 불일치가 문서 오류로 오해됨),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위한 한·중·일 역사 전문가들의 눈치 싸움, 세계문화유산 등재에서 주도권을 뺏기지 않으려는 유럽 국가 간의 ‘물밑 작업’ 등의 경험담을 통해 세계문화유산등재의 이슈와 조선왕릉이 갖는 중요성을 쉽게 인지할 수 있도록 했다. 이창환 교수는 “전 세계적으로는 국가적 영향력과도 관계된 매우 중요한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관련 분야에 대한 관심과 투자는 충분하지 못하다”며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이날 답사에서는 이러한 숨겨진 이야기와 더불어 조선왕릉에서 이루어졌던 왕실 제례도 체험할 수 있었다. 2009년 6월 세계유산위원회WHC는 조선왕릉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면서 조선왕릉이 갖는 건축과 조경의 독특한 가치와 더불어 지금까지 600여 년을 이어온 제례 문화를 높이 평가한 바 있다. 이창환 교수는 “책을 열 번 읽는 것보다 오늘 한 번 체험하는 게 훨씬 기억에 잘 남을 것”이라며 대표적 제례인 기신제 체험시간을 준비한 이유를 밝혔다.

조선왕릉의 제향 공간은 홍전문부터 정자각 우(서북)측 뒷편의 예감까지 이어지는 공간을 의미하는데, 이 공간에는 제례를 위한 홍살문, 판위, 정자각, 향어로, 수복청, 수라청 등이 배치되어 있다. 참가자들은 이 교수의 말에 따라, 판위에서 두 번 선절을 하고 향어로의 오른쪽(진입 방향)의 길인 어도御道를 따라 걸어 정자각에 도착했다. 그리고 오른발을 시작으로 어계御階를 올라정전을 마주했다. 이렇게 제례 체험이 제향 공간으로의 진입 방향 및 이동시 자세, 선절의 횟수 등 간소화되어 진행되었지만, 참가자들은 “제례 체험을 통해 조선시대의 왕실 문화를 한결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주었다.


‘왕의 시점’에서 바라본 조선왕릉

조선왕릉의 능역에는 봉분과 능원, 정자각, 홍살문, 지당 등 다양한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 이 중 봉분과 능원이 제향 공간 너머의 능침 공간을 구성한다. 몇몇 왕릉에서는 이 모든 공간 요소를 눈앞에서 볼 수 있지만, 대부분 훼손을 막기 위해 봉분과 능원에 대한 접근을 제한하고 있다. 이날 답사를 진행한 동구릉과 홍·유릉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이날 답사에 참여한 독자들은 이들 왕릉의 능역 전체를 둘러볼 기회를 가졌으며, ‘왕의 시점’에서 안산과 능역 전체를 내려다 보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이는 봉분과 안산, 그리고 능역 전체의 구조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기회로 이어져 글과 도면보다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왔다. 이번 행사에는 조경 실무자나 조경학과 학생은 물론 건축가, 토목엔지니어, 일반 시민에 이르기까지 조경에 관심 있는 40여 명의 독자가 참여했다. 이들은 환경과 조경 블로그와 SNS를 통해 참가 신청을 했다. 이날 ‘왕릉답사’를 마치면서 한 건축가는 “많은 것을 보고 경험할 수 있는 하루였다”며 “내년에는 1박 2일 일정으로 진행되어 더욱 더 깊이 있는 이야기를 들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히기도 했다. 이창환 교수는 “조선왕릉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음에도 관련 전문가들의 역량 부족, 소홀한 관리 체계, 서비스 시설 부족 등 여전히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다. 아직 가야할 길이 멀지만 이러한 프로그램을 통해 대중의 관심을 키워나갈 수 있다면 모두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날 일정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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