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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 9회 말 구원 투수의 딜레마
  • 환경과조경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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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룸비스타의 건물은 여타의 리조트와는 달리 무채색의 차갑고 각진 도심 속 오피스 건물의 모습을 하고 있다. 십 몇 층의 날카로운 매스가 남한강을 향해 쌍둥이처럼 서 있는 모습은 전원 풍경을 기대하며 도시를 떠났던 사람들에게는 뜻밖의 정경일 것이다. 이러한 조건 속에서 조경가는 외부 공간의 ‘대비’와 ‘중재’ 전략을 취했다. ⓒ유청오

 

여느 수도권의 교외와 마찬가지였다. 길 양옆으로 즐비한 짝퉁 르네상스 양식의 모텔, 빅토리아풍의 펜션, 촌스러운 대형 폰트로 붕어찜과 매운탕을 광고하는 원색의 요란한 간판들…. 그 어지러운 풍경에 눈이 쉬이 피로해지지만 그럼에도 양평으로 가는 길은 여전히 푸르렀다. 차창 밖으로는 굽이굽이 산과 강이 근경, 중경, 원경으로 계속 펼쳐졌다.

양평은 분명히 녹시율이 높다. 국내 최초의 ‘치유의 숲’이 들어설 만큼 산림 자원이 풍부하다. 한마디로 양평은 일상 탈출을 꿈꾸는 자의 안식처다. 서울 시민에게는 한 시간 안팎을 투자하면 고밀도 회색 도시에서 벗어나 풀과 흙 내음이 가득한 전원의 여유를 느낄 수 있는, 경제학적으로 말하자면 시간과 비용의 투자에 비해 꽤 큰 만족감을 얻을 수 있는 최적의 입지인 셈이다. 그래서인지 양평에는 전원주택, 레저 시설뿐만 아니라 기업의 연수원도 많이 자리 잡고 있다. 산 좋고 물 맑은 서울 교외에서 업무에 지친 직장인들에게 리프레시와 함께 각종 세미나와 워크숍을 진행하는 데는 안성맞춤이다. ‘Healing in Nature’라는 슬로건을 내세우고 있는 현대 블룸비스타 또한 그런 목적으로 계획된 기업 연수 전문 리조트(시공 중에 호텔로 변경)다.


마무리 투수와 조경가의 상관관계

흥미롭게도 블룸비스타의 건물은 여타의 리조트 같이 생기지 않았다. 오히려 남영동 대공분실의 외관을 설계 모티브로 삼은 듯한 무채색의 차갑고 각진 도심 속 오피스 건물의 모습을 하고 있다. 십 몇 층의 날카로운 매스가 남한강을 향해 쌍둥이처럼 서 있는 모습은 전원 풍경을 기대하며 도시를 떠났던 사람들에게는 뜻밖의 정경일 것이다. 게다가 가파른 기울기의 경사로 이루어진 땅에 지하 주차장을 끼워 넣고 그 자락에 건물과 시설을 앉히다 보니 수직의 높은 콘크리트 벽과 지하 주차장의 입구가 무엇보다 도드라지는데, 이 또한 사람들이 양평에서 기대하는 ‘양평’의 모습은 아님이 틀림없다. 왠지 첨단화된 신도시에서 볼 수 있는 오피스 건물 같기도 하고 최신식 아파트 단지의 입구 같기도 하다. 어쨌든 여기까지 와서 반가울 만한 얼굴은 아니다. 탈도시 아니 탈서울의 관점에서 보자면, 그다지 성공적이라고 보기 어려울 만큼 세련된 도회지풍의 분위기를 내뿜기 때문이다. 즉, 건축적 측면에서 블룸비스타는 ‘양평’하면 으레 연상되는 탈서울적 체험을 충분히 만족시키지도 못하고, 또 강렬하게 전달하지도 않는다.

외부 환경과 건축물의 조화를 통해 전체 경관의 완성도를 높여야만 하는 조경가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것만큼 어려운 과제도 없을 게다. 건축가로부터 구체적인 작업을 위해 캔버스를 넘겨받을 때 왠지 억울한 심정까지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젠장, 또 9회 말 구원 투수구나… 어떤 구속과 구질로 극적인 역전승을 이끌어내야 하나 고민스러울 만한 상황이다. 고심 끝에 찾은 해법이 바로 외부 공간의 ‘대비’와 ‘중재’다. 양평의 자연성을 극대화시켜 경험하게 하는 것과 동시에 건물의 인공미를 순화시키는 전략이었다.


전략과 전술에 관하여

먼저 대비를 위해서 크게 두 가지 다른 이미지의 공간을 엮었다. 이 두 가지는 다름 아닌 건물과 직접 맞닿아 있는 모던한 공간과 산과 이어진 자연적인 공간이다. 특별한 전이의 장치 없이 병치되어 연결된 이들 공간은 각 개별 공간의 체험을 더욱 강렬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예를 들어, 원래는 수영장으로 조성될 예정이 었던 건물에 접한 남서측 인공 지반의 공간은 도시적인 형태와 소재의 데크와 수경 시설로 이루어진 다목적 이벤트 공간이다. 반듯하게 잘 짜인 건축적인 벽으로 구획된 중정의 모습을 지닌 이 공간은 사실 서울 시내 고급 레스토랑의 앞마당과 같은 느낌이다. 특히, 야외 강연 등의 행사를 수용하기 위해 조성된 계단식 스탠드에서 느껴지는 세련된 조형미와 깔끔하게 다듬어진 재료의 물성은 - 비록 시점의 끝에는 자연스러운 배경으로 연출된 소나무 군식이 있을지라도 - 이곳이 산과 강으로 둘러싸인 ‘양평’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게끔 한다. 그런데 그 현대적인 스타일의 벽과 계단을 넘어가면 바로 산자락의 지형이 그대로 남아있는 소담한 수목원 형태의 후원을 만나게 되는데, 이러한 대비가 전해주는 느낌은 사뭇 강렬하다. 특히 그 ‘낭만의 공간’과도 같은 산책로를 걷다 보면, 사시사철 변하는 숲의 자연성이 이전의 정형성과 대비가 되어 더욱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뭐니 뭐니 해도 이런 이분법적인 이미지를 중재하는 가장 지배적인 조경 요소는 물이다. 조경 소재로서 물은 특별한 힘을 지녔다. 정靜과 동動, 규칙과 불규칙, 빛과 그림자 등 상반되는 특성이 함께 내재되어 있는 물은 아무리 정형적인 형태의 수반에 갇혀 있어도 잔잔한 움직임과 소리를 만들어내며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우리 마음을 편안하게 만드는 자연을 만나게 한다.

 

 

민병욱은 1975년생으로, 경희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과 네덜란드 바허닝헨 대학교(Wageningen University)에서 조경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미국 애리조나 주립대학(Arizona State University)에서 환경설계 및 계획에 관련된 이론으로 박사 학위를 받으면서 학제간 교육과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동심원과 오이코스 등에서 다양한 조경 및 도시 관련 실무 프로젝트를 수행한 바 있다. 얼마전까지 계명대학교 생태조경학과에서 교수로 지냈고, 현재는 경희대학교 환경조경디자인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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