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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omimicry
‘ICD/ITKE 리서치 파빌리온’, 자연의 건축 비법을 파헤치다
  • 양다빈
  • 환경과조경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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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D/ITKE University of Stuttgart

 

“저급한 자는 베끼고, 위대한 자는 훔친다.” 예술적 행위의 속성과 창의적 사고의 핵심을 지적하는 말로 자주 인용되는 피카소의 말이다. 전자와 후자의 차이가 어디서 오는걸까? 독일 슈트트가르트 대학교University of Stuttgart의 컴퓨터응용디자인연구소The Institute for Computational Design(ICD)와 동 대학 건축구조설계 연구소The Institute of Building Structures and Structural Design(ITKE)의 연구진으로 구성된 프로젝트 팀이 이러한 질문에 답하기 위한 노력을 올해로 6년 째 이어가고 있다. 이들은 생체모방biomimicry1 분야의 한 갈래를 지향하며 매년 ‘ICD/ITKE 리서치 파빌리온ICD/ITKE Research Pavilion’이라는 새로운 모습의 공공 공간을 만들어 내고 있다. ‘ICD/ITKE 리서치 파빌리온 2013-14’는 이 연구의 네 번째 결과물로 인간의 엄지손가락만한 ‘딱정벌레’의 건축 비법을 담고 있다.


의생학적 연구

이번 연구는 슈트트가르트 대학교의 건축가 및 공학자들과 튀빙겐 대학교University of Tübingen의 생물학자들의 학제 간 협업을 통해 진행되었으며, 올리베르 베츠Oliver Betz(생물학) 교수와 제임스 네벨시크James H. Nebelsick(지구과학) 교수(이상 튀빙겐 대학교)가 주도한 ‘생체공학과 건축적 모듈에 대한 연구the Module: Bionics of Animal Constructions’가 그 바탕이 되었다. 다양한 동식물에 대한 표본 연구가 이루어졌고, 그 과정에서 딱정벌레의 날개와 복부를 보호하는 껍질인 엘리트론elytron(키틴질 섬유 다발로 구성된 단백질 매트릭스 조직)이 건설 재료의 모델로써 고도의 효율을 낼 수 있을 것이라는 기초 자료가 확보되었다. 보다 구체적인 활용법을 고안해 내기 위해서 다양한 딱정벌레의 엘리트론에 대한 고해상도 3차원 모델이 필요했다. 카를스루에 공과대학교Karlsruhe Institute of Technology에 속한 ANKA 싱크로트론 방사광 시설ANKA Synchrotron Radiation Facility과 광양자·싱크로트론 방사광 연구소Institute for Photon Science and Synchrotron Radiation의 기술력이 결합된 컴퓨터 단층 촬영을 통해 여섯 가지 모델을 추출해냈다. 이렇게 추출된 모델은 튀빙겐 대학교에서 제공한 SEMscanning electron microscope 스캔본과 함께 조합되었고 딱정벌레 껍질의 내부 구조에 대한 분석을 가능하게 했다. 

건축 재료로서 엘리트론이 지닌 고효율성은 딱정벌레 껍질의 기하학적 형태와 각 껍질을 구성하는 천연 섬유 합성물natural fi ber composite의 기계적 특성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특성은 엘리트론 내 기둥 모양의 이중 곡선 지탱부, 즉 섬유주trabecula에 의해 연결된 이중층 구조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중층 구조를 이루는 껍질의 윗부분과 아랫부분은 끊임없이 이어진 섬유주를 통해 결합된다. 섬유주 다발의 분포 및 기하학적 결합 방식이 딱정벌레 껍질 전체에 걸쳐 상당한 정도의 변화무쌍함을 보이고 있었고, 이러한 비등방성anisotropic2은 껍질 전체에 걸쳐 부분마다 차별화된 소재적 특질이 나타날 수 있도록 하여 더욱 안정적으로 형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한다.


구조 논리 및 소재

이렇게 분석해낸 자료를 바탕으로 실제 건축 가능한 형태를 개발하기 위해 이중층 구조 모듈 시스템double layered modular system이 고안되었다. 이 시스템은 유전적으로 발현되는 생체 구조를 공학적 방식으로 재구성하는 데 사용된다. 추출된 유전 정보의 해석을 바탕으로 수차례의 컴퓨터 시뮬레이션 연구가 이루어졌고, 적합한 기계식 제작 방식이 마련되었다. 생성적 디자인generative design(컴퓨터를 활용한 디자인 개발 및 시뮬레이션 기법으로 기계화된 제작 방식에 필요한 알고리즘을 생성해낸다) 기법을 기반으로 이 기계식 제작 방식을 구동시키는 데 필요한 알고리즘을 생성해 냈다.

건축 재료로는 유리 및 탄소 섬유 강화 폴리머가 사용되었다. 이 소재는 중량 대비 강도가 높고 섬유질 배열방식에 따라 다양한 형태를 연출할 수 있다는 것이 강점으로 뽑혔다. 이러한 성형성moldability을 논외로 하더라도, 탄소 섬유 강화 폴리머는 딱정벌레에서 추출된 복잡한 기하학적 형태를 실현하기에 적합한 소재였다. 기존의 섬유 공학적 제조 방식에서는 형태를 만들기 위한 몰드mold가 반드시 요구된다. 몰딩molding 기법은 대개의 경우 지나치게 복잡한 틀과 그에 적합한 특정 소재를 사용해야 한다는 점에서 건축물에는 부적합한 방식이라고 판단되어 왔다. 또한 어떤 구조를 만드는 데 있어 다수의 몰드와 시간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는 구조적 문제도 안고 있었다. 반면에 이 이중층 구조 모듈 시스템은 하나의 기계 공정 안에서 다수의 모델을 구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로보틱 무심 곡선화 공정

이중층 구조 모듈 시스템을 구동시킬 수 있는 로보틱무심 곡선화 공정robotic coreless winding method 개발이 다음 단계에서 이루어졌다. 이중층 구조 모듈 시스템이 소프트웨어라면, 로보틱 무심 곡선화 공정은 하드웨어가 되는 것이다. 여섯 개의 축을 중심으로 작동하는 두 대의 산업용 로봇에 고정된 프레임 이펙터frame effector(이하 이펙터)가 회전하며 수지 함침 섬유 다발resin impregnated fiber bundles을 구부리며 조직하는 방식이다. 쉽게 말하자면, 두 개의 로봇 팔이 뜨개질을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처음 두 개의 이펙터에 엮이는 섬유 다발은 팽팽한 직선의 형태를 유지하며 층을 만들어 간다. 이후 일련의 섬유 층이 서로의 위아래에 놓이며 압박을 가하고 원형 방패와 같은 곡면을 이루게 된다. 이러한 섬유 곡선화 과정에서 로봇팔의 움직임에는 구체적인 순서가 정해져 있으며, 압력과 곡면기울기 등에 대한 데이터 분석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모든 개별적 섬유에 대한 디자인 통제가 가능하다.

이 한 쌍의 이펙터는 소재가 가진 다양한 기하학적 특성에 맞춰 움직임을 조정하며 초기 설정값 설정에 따라 36개의 부분을 모두 만들어낸다. 무심 곡선화 공정이 개발된 덕분에 여러 개의 개별 몰드를 만들 필요가 사라졌고, 이는 상당한 자원 절약 효과로 이어졌다. 뿐만 아니라 무심 곡선화 공정은 그 공정 자체에서도 매우 자재 효율성이 높은 제조 공법으로 폐기물을 거의 발생시키지 않는다. 기성 자재를 잘라낼 때 발생하는 폐기물이 거의 없는 것이다. 

유리 섬유 층 한 개(경우에 따라 섬유 층 두 개 필요)와 탄소 섬유 층 다섯 개가 하나의 부분을 구성한다. 이 중 첫 번째 유리 섬유 층이 재료의 기하학적 형태를 결정하게 되며, 이후의 탄소 섬유 층을 위한 일종의 거푸집으로 기능하게 된다. 탄소 섬유 층은 구조적 강도를 높이는 역할을 하며, 섬유들의 비등방적 배열을 통해 조금씩 다른 형태를 갖게 된다. 탄소 섬유의 개별적 구조는 각각의 구성 요소에 작용하는 힘에 의해 결정되는데, 이는 포괄적 구조에 대한 유한 요소 분석법finite element analysis(FEA)3을 통해 산출된다.

‘ICD/ITKE 리서치 파빌리온 2013-14’를 구성하는 36개의 부분은 딱정벌레의 엘리트론에서 추출한 기하학적 원리를 따르고 있으며, 전체 무게를 지지하는 데 있어 최소한의 자재를 사용하도록 각기 다른 레이아웃을 갖는다. 기계식 생산 방식을 사용한 덕분에 사람이 해야 할 일이 상당히 줄어든다. 처음 이펙터에 섬유 다발을 연결하고 알고리즘을 입력하는 것만으로 모든 구성요소가 생산되며, 이렇게 생산된 구성 요소를 블록을 쌓듯이 조립하면 파빌리온이 완성된다. 완성된 파빌리온이 차지하는 총 면적이 50m2, 부피는 122m3, 그리고 무게가 593kg으로 적지 않은 규모지만, 구성 요소 하나만을 보면 가장 큰 것도 지름 2.6m에 무게는 24.1kg밖에 나가지 않는다. 각 구성 요소가 다소 기괴한 모습을 갖고 있는 것에 비해 최종적으로 나타난 기하학적 형태는 대학교 건물은 물론 주변 공원 풍경에 상당히 잘 어울린다.


2010년 시작된 ‘ICD/ITKE 리서치 파빌리온’의 연구진은 섬유조직합성건축fiber composite construction methods이라는 혁신적인 분야를 이끌고 있다. 이들은 기존의 생체모방 기술이 벨크로velcro(일명 찍찍이)를 시작으로 웨일-파워wale-power(고래, 에너지), 신칸센 고속열차(물총새, 교통), 홍합 접착제(건축·의료) 등 인간의 효율적이고 안전한 삶을 위한 기술에 집중되었던 것을 넘어 이제는 내 뒷마당, 집 앞 공원 등에서도 그러한 기술의 혜택을 체감할 수 있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음을 알리고 있다.

생체모방 분야의 선구자, 제닌 베니어스Janine Benyus의 말처럼 “셀룰로오스를 처리하여 종이를 만든 것도, 최적화된 화물 배치를 시도한 것도, 방수 혹은 어떤 구조체의 가열 및 냉각을 시도한 것도, 누군가를 위해 집을 지은 최초의 존재도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지 한다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방식의 디자인이 가능할 것이다. 분명 우리 주위의 자연계는 인류가 해야할 일과 상당히 비슷한 종류의 일을 해내고 있다. 게다가 그들의 방법은 지난 수십억 년 동안 지구상에서 우아하고 안전하게 살아올 수 있게 한 보장된 비법이 숨겨져 있다. “당신이 무언가를 발명하고자 할 때마다, 우선 자연이라면 어떻게 할지 생각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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