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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꿈꾼 도시, 우리가 사는 도시] 과거의 도시, 미래의 도시
  • 환경과조경 2015년 4월
그림 3.JPG
도시 내의 한 장소는 개인이나 커뮤니티, 혹은 한 사회가 공유하는 기억의 저장소가 되기도 한다. 사진은 미국 워싱턴 D.C.에 있는 조지타운의 가로 경관이다.

 

이 장소의 시간은 언제입니까?

 

“이 장소의 시간은 언제입니까What Time is This Place?” 이는 규범적 도시론의 대부 케빈 린치Kevin Lynch가 1972년에 쓴 책의 제목이다.1 장소의 시간에 대해 묻다니, 곱씹을수록 재미있다. 하나의 장소, 하나의 공간은 특정 시간에 구현된 물리적 환경일 텐데, 그 안에서 또 다른 시간의 특질을 어찌 찾는다는 것일까? 만약 찾을 수 있다면 이러한 시간은 철저히 계획된 시간일까, 아니면 사회적 환경의 특성이나 인간 활동의 빈도로 결정된 시간일까(그림1)? 나아가 공간의 시간성이 아니라 시간의 공간성을 묻거나, 도시 환경 속에서 빅뱅 이론—시간에 따라 우주가 팽창하고 있으며 거꾸로 시간을 과거로 되돌렸을 때 우주라는 거대한 공간은 한 점으로 수축한다는 이론—처럼 시간에 따른 공간의 변화에서 특정한 패턴을 찾을 수 있을까?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이러한 의문이 단지 스쳐가는 호기심이라면 그리 심각해질 필요는 없다. 하지만 많은 설계가, 특히 조경·도시설계가에게 공간에 담긴 시간성은 단순한 호기심 이상의 문제다.

린치의 생각을 조금만 더 따라가 보자. 린치는 시간의 감각이 도시에 새겨지는 과정에서 시간이 의도적으로 선택·편집, 심지어는 왜곡될 수 있음을 다양한 예를 들어 설명했다. 이를테면 한 시점에 만들어진 공간이 서로 다른 시간성을 표현할 수 있으며, 이는 공간을 체험하는 사람에게 특정한 심리적 효과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도시 내 장소는 ‘기억의 저장소’”라는 말이 떠오른다(그림2).2 물론 이는 몇몇 이론가들만의 생각은 아니었다. 1970~1980년대 이후 시간의 흐름에 대한 지각이 —물리적 공백 속이 아닌—도시 환경의 변화나 연속된 이벤트를 어떻게 경험하는가에 따라 다르게 나타남을 보여주는 연구 결과가 다수 등장했다(그림3).3 나아가 좀 더 규범적인 관점도 있다. 오래된 도시 안에는 기나긴 시간의 시험을 거쳐 살아남게 된 좋은 도시의 DNA가 농축되어 있다. 따라서 유전자 게놈Genom 지도를 그리듯이 전통적인 공간의 특질을 재발견하여 현대 도시에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말 그럴까? 때로는 너무 빨리 변하는 도시 환경에 지친 —그러나 곧 그러한 새로운 환경에 익숙해져야 했던—현대인들이 좀처럼 변하지 않는 과거의 도시에서 큰 위안과 편안함을 느끼기도 한다.4

이렇게 시간이 공간에 기록되고 지각될 수 있는 대상이라고 했을 때 한 가지 의문이 든다. 과연 설계를 통해 도시에서 어떤 시간성을 드러내야 할까? 쉽게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특히 오늘날처럼 집단적 기억에 대한 공유가 퇴색하는 시점에서 불특정 다수의 사람에게 보편적으로 바람직한 시간성을 찾으려는 것이 무의미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린치는 이에 대해 명쾌한 입장을 보여준다. 그에 따르면 좋은 도시란 현재의 요구에 충실하면서 —즉 ‘현재성’을 강조하면서—과거 혹은 미래와 적절히 연계되어야 한다. 그가 현재성에 방점을 찍는 이유는 과거에 갇혀 있거나 혹은 반대로 예측하기 어려운 미래를 연상하게끔 하는 공간을 경계하기 때문이다. “(왜) 우리의 도시는 내가 아끼는 사람과 함께 있는 지금 이 순간에는 침묵하면서, 기억에서 희미해진 참전 영웅이나 정치인의 조각상에 집착하는가.”5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대목이다(그림4).


과거를 재현하기

린치가 도시설계 이론가로서 규범적 시간성을 탐구했다면, 일부 사회과학자들은 공간에 재현된 시간성에 담긴 의도를 파헤치고자 했다. 이들은 ‘어떤 시간을 표현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냐’는 질문보다 ‘특정 시간성이 왜 선택되고 표현되는가’에 더 큰 관심을 둔다. 한 예가 미국 MIT의 로렌스 베일Lawrence J. Vale 교수다. 그는 1999년 논문에서 건축과 도시설계를 통해 한 집단이 국가적 정체성을 형성하고 표현하는 것을 ‘매개된 기념비mediated monuments’라 일컬었다. 특히 시대 및 문맥과 무관한 상징보다는 특정 시간이나 주체와 연관된 상징에 주목했다. 이러한 예로 1980년대에 이라크 독재자 사담 후세인이 바그다드 남쪽 고대 바빌론 왕국의 궁궐터에 천문학적 비용을 들여 건설한 새로운 왕궁을 제시한다(그림5). 이는 단지 크고 화려한 장소를 통해 권력을 뽐내려는 것이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과거‘바빌론’ 왕궁의 재현이라는 점이다. 기억을 한번 더듬어 보자. 고대 바빌론은 인류 문명의 발원지 중 하나인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가장 크고 융성한 도시였다. 베일 교수는 후세인이 이렇게 특정 시대와 연관된 도시를 현대적으로 재현함으로써 독재자의 절대적 지위—과거 이집트, 시리아, 팔레스타인, 예루살렘을 정복한 고대 제국의 왕과 동일시되는—를 선언했을 뿐만 아니라, 당시 진행 중이던 이란·이라크 전쟁(1980~1988)을 마치 메소포타미아와 페르시아라는 고대 문명국들 간의 충돌로 과장하려 했다고 설명한다.6

 

 

김세훈은 1978년생으로 서울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한 후 하버드GSD에서 도시계획학 석사와 박사 학위(DDes)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도시설계 이론과 스튜디오 수업을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 『신흥도시 개발 모델』, 『도시형태변화분석방법론노트』, 『도시와 물길(A City and Its Stream)』 등이 있으며, 한국, 중국, 동남아시아의 도시 연구와 설계를 함께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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