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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마감
  • 환경과조경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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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달, 이번 호만큼은 여유 있게 인쇄소로 넘기고 편집부 식구들과 근사한 와인 파티를 즐겨야지 마음먹지만, 꿈은 역시 꿈일 뿐입니다. 마감을 몇 시간 앞둔 편집실의 새벽은 출품 전날 밤의 설계실못지않은 전쟁터 풍경입니다. 사흘째 이어지는 철야로 수염이 덥수룩해진 양다빈 기자, 아직 도착하지 않은 담당 필자의 연재 원고로 애를 태우다 드디어 국제전화를 겁니다. 담당 섹션의 완성도를 위해 방대한 사례를 연구하곤 하는 조한결 기자, 분초를 다투는 상황임에도 디자이너와 의견을 조율하는 침착함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벌써 나흘째 예비군 훈련과 철야 편집을 병행하고 있는 이형주 기자, 책상 위에 높이 쌓인 교정지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3차 교정지인데도 다시 레이아웃을 바꿔달라는 데스크의 뒤늦은 요청에 팽선민 디자이너는 빛의 속도로 모니터 두 대를 오가며 최종 버전을 빚어내고 있습니다. 윤주열 수석디자이너의 눈과 손은 마지막 순간까지 책 전체의 미려한 리듬과 세련된 디테일을 한층 더 끌어올리기 위해 쉴 새가 없습니다. 드디어 뒷머리를 질끈 동여매고 앞머리에 실핀을 꽂은 김정은 편집팀장, 기자들 원고 다시 손질하랴 자기 원고 마무리하랴 이 와중에 1월호 필자 섭외하랴 멀티태스킹에 여념이 없습니다.

부드럽지만 예리한 눈으로 3교에 ‘오케이’를 놓고 있는 남기준 편집장의 손에서 베테랑다운 마지막신의 한 수가 곧 생산될 것입니다. 일 년 만에 겨우 도비라, 세네카, 하시라 같은 일본식 편집 용어가 낯설지 않게 된 아마추어 편집주간은 폭풍 전야의 긴장을 풀어보려고 실없는 우스개를 던져보지만 연신 테라스를 들락거리며 연기를 뿜어대는 걸 보면 속이 꽤 타들어가나 봅니다.

리뉴얼을 준비하던 작년 이맘때의 열정과 흥분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찬바람 부는 겨울이 다시 왔습니다. ‘조경 문화 발전소’를 꿈꾸며 ‘새로운 시작’을 알렸던, 강렬한 노란색 표지의 1월호 에디토리얼을 다시 펼쳐봅니다. ‘한국 조경의 문화적 성숙을 이끄는 공론장’, ‘조경 담론과 비평을 생산하고 나누는 사회적 소통장’, ‘세계적 동시대성을 수용하고 발굴하는 전진기지’라는 세 가지 편집 방향이 호기롭게 적혀 있습니다. 지난 열두 권에서 이 세 가지 비전을 한결같이 담아내지는 못했습니다. 2월호 에디토리얼에서 약속드렸던 “학생에겐 지적 자극을, 실무조경가에겐 질투심을, 우연한 독자에겐 꿈을” 줄 수 있는 ‘재미있는 잡지’를 위해, 『환경과조경』은 실험 정신, 문제 의식, 비판 정신을 한층 더 다듬어가겠습니다.

어느 달이, 무슨 내용이 가장 기억에 남으셨는지요. 편집부가 체감하기로는 11월호에 대한 반응이 가장 컸던 것 같습니다. 서울역 고가가 사회적 이슈가 된 참에 때마침 하이라인 3구역이 개장해서 두 프로젝트를 엮은 특집 ‘하이라인의 교훈’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실은 다른 특집보다 기획과 진행에 든 시간은 오히려 짧았지만, 작품 섭외, 제임스 코너와 조슈아 데이비드의 인터뷰, 관련 외고, 11번가 브리지 파크 설계공모까지 모든 콘텐츠가 유기적으로 들어맞은 달이라고 자평하고 있습니다. ‘리빌드 바이 디자인’ 설계공모를 회복탄력성의 관점에서 조명한 8월호에도 독자들의 호응이 컸고, 30대 조경가 30인의 성장사를 다룬 7월호의 ‘조경가로 자라기’에도 피드백이 많았습니다. 그들의 이야기가 조경가를 꿈꾸면서도 늘 갈증과 허기를 느끼는 미래 세대에게 비전과 희망을 주었기를 기대합니다. 조경과 도시설계의 경계를 넘나드는 융합적 시선을 담고자 공들였던 기획물로는 5월호의 ‘서울의 오늘을 읽다’와 10월호의 ‘도시재생의 새로운 국면’이 있었습니다. 외고 없이 내부 원고만으로 구성했던 9월호의 책 특집 ‘활자 산책’은 그 이면의 갖가지 에피소드 덕에 지금까지도 편집부의 단골 안줏감입니다.

알찬 원고로 지면을 빛내준 필자들과 작품 게재를 허락해준 조경가들께 감사드립니다. 연재의 고통을 감내해준 필자들께는 어떤 감사의 말을 드려야할지 모르겠습니다. 매달 실시간으로 조언과 격려와 비평을 아끼지 않은 편집위원들의 수고에도 감사드립니다. 해외 작품 섭외에 애써준 해외리포터 여러분께도 감사드립니다. 독자 리뷰단의 피드백은 다음 호를 설계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여러 독자들의 격려와 비판은 편집진에게 에너지를 주는 가장 큰 동력이었습니다. 꼭 기억하고, 더 노력하겠습니다.

“아름다운 잡지”를 2015년 편집계획서의 제목으로 달까 합니다. 물론 화려한 스타일의 장식적인 편집 디자인을 말함이 아닙니다. 내용과 형식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텍스트의 메시지와 이미지의 효과가 하나로 움직이는, 스타일이 정보를 지배하지 않고 정보의 본질을 드러내는 아름다운 잡지를 만들기 위해 늘 연구하겠습니다. 아름다운 잡지 『환경과조경』이 조경 저널리즘의 오래된 미래를 열 수 있도록 매달 정성을 다하겠습니다.


12월호의 마감과 함께 『환경과조경』은 ‘파주시대’를 마감합니다. 마감은 늘 아쉬움을 남기지만 새로운 출발의 첫걸음이기도 합니다. ‘방배동시대’를 열며 2015년 1월호로 찾아뵙겠습니다. 1년간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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