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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빌드 바이 컴피티션
re-VIEW 2014
  • 환경과조경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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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th Street Bridge Park Design Competition’ 당선작, OMA + OLIN

 

조경가에게 설계공모는 도전과 기회의 영토다. 잘 차려진 잔치판에서 자신의 아이디어를 실험하고 평가받을 수 있다. 신인이라면 디자인 능력만으로 등용의 문을 화려하게 통과할 수 있고, 기성의 조경가 역시 자신의 위상을 한 번에 끌어올릴 수 있다. 물론 설계공모가 좋은 설계를 보장하는 필요충분조건은 아니다. 그렇지만 조경 설계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새로운 공간에 대한 이념과 형태를 제시해 온 설계공모의 파급력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도시 공원의 대명사 센트럴 파크의 산파도 공모전이었고, 센트럴 파크에 반기를 든 혁신의 장 라빌레트 파크도 설계공모의 산물이었다. 공원과 도시의 대안적 관계 맺기를 주창한 다운스뷰 파크도 마찬가지다. 2000년대 중후반의 한국 조경은 “조경의 시대”라는 레토릭이 결코 과장이 아닐 만큼 호황을 구가했고, 그 배경에는 유례없는 설계공모의 풍년이 있었다.1 국내외의 경기 불황으로 설계공모의 양은 급감했지만, 2014년의 『환경과조경』 열두 권에 실린 공모전들은 새로운 경향과 쟁점들을 감지하게 해 준다.


진화하는 설계공모의 ‘과정’

무엇보다 주목할 만한 특징은 설계공모의 ‘과정’이 전통적인 방식을 탈피해 다각도로 진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경우가 당선작이 선정된 직후 특종 격으로 실은 8월호의 ‘리빌드 바이 디자인Rebuild by Design: Hurricane Sandy Regional Planning and Design Competition’이다. 이 공모전은 계획과 설계를 통해 재난 지역의 회복탄력성resilience을 향상시키고자 한 지향점에서도 큰 의의를 지니지만, 공모 과정 자체가 혁신적이었다. ‘리빌드 바이 디자인’은 정해진 사이트와 프로그램을 주고 참가자 각각이 제출한 제안 중에 가장 나은 안을 뽑는 관례화된 방식을 따르지 않았다. 1년에 걸친 긴 공모 과정을 통해 참가자들은 스스로 사이트의 이슈를 찾고 그 중요성을 입증해야 했다. 프로젝트 자체를 만들어나가는 공모였던 것이다. 설계공모 1단계에서는 참여 전문가의 구성, 역량, 간략 제안서를 바탕으로 5~10팀을 후보로 선정했다. 2단계는 장기간의 리서치를 통해 프로젝트를 발굴하고 팀별로 하나의 프로젝트를 결정하는 과정이었다. 3단계를 통해 각 프로젝트를 발전시켜 복수의 최종 프로젝트를 확정했고, 4단계는 계획의 실행 단계다. 이 공모전을 다룬 비평에서 적절히 진단되고 있듯, 이 복잡한 공모 과정의 가치는 “각 팀들이 단순한 경쟁 구도에서 벗어나 각자가 수행한 지역에 대한 분석과 그로부터 도출한 중요한 아이디어를 다른 모든 이들과 공유함으로써 지역 전체를 위한 더 나은 해법을 찾아내려는 공통의 목적에 기여”2 했다는 점에 있다. 특히 2단계인 리서치 과정은 전문가와 지역 사회가 함께 사이트의 조건을 충실히 이해하고 디자인 이슈를 발굴하는 긴 여정이었다는 점에서 눈여겨볼만하다.

좋은 설계공모가 되기 위해서는 대체로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우선, 우수한 디자이너들이 참여하여 경쟁하면서 실험적이고 창의적인 작품을 제출해야 한다. 뛰어난 작품을 정확하게 읽고 공정하게 가려낼 수 있는 역량을 갖춘 심사위원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조건이다. 이 두 가지 기본 조건의 전제가 되는 것이 설계지침이다. 설계공모의 성과는 설계지침의 수준에 의해 결정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라빌레트 파크를 공원 설계 역사의 전환점으로 평가하는 이면에는 혁신적이면서 동시에 내실을 갖춘 설계공모 지침서가 놓여 있다. 퐁피두센터 설계공모 지침서는 그 자체로서도 현대 건축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수 있는 자료라는 평가를 받는다. 설계지침은 곧 텍스트로 쓰는 설계이자 실천적 비평인 셈이다. 그러나 ‘리빌드 바이 디자인’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최근에는 디자이너, 심사위원, 설계지침 외에 ‘과정’이 부각되고 있는 추세다. 1단계 공개 공모와 자격이나 제안 심사(RFQ나 RFP)를 통한 2단계 초청 공모로 대별되는 전형적인 틀을 벗어나, 디자이너와 심사위원과 전문위원뿐만 아니라 주최자, 주민, 기업, 정부 등 다양한 주체가 다각적인 방식으로 다단계의 공모 과정에 참여하고 소통함으로써 그 과정 자체가 설계안에 대한 사회적 합의의 토대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양상은 『환경과조경』이 다룬 여타의 해외 설계공모에서도 공통적으로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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