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더관리
폴더명
스크랩

[시네마 스케이프] 인터스텔라
이상한 나라의 체험
  • 환경과조경 2014년 12월

INTERST01.jpg

 

스포일러가 지뢰밭이다. 글을 쓰는 현재 시점은 영화가 개봉한 지 이틀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잡지가 출간될 때쯤에는 아마도 관심 있는 이들의 상당수가 영화를 봤을 것이다. 그럼에도 미처 보지 못한 독자는 꼭 영화를 본 후에 읽기를 권한다. PC나 스마트폰으로 보려면 차라리 이 글을 읽고 상상으로만 그치는 편이 낫다. 반드시 극장에서 감상해야 하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인터스텔라Interstellar’는 위기에 빠진 지구를 대체할 행성을 찾기 위해 웜홀worm hole을 통해 시공간을 여행하는 탐험담이다. ‘웜홀’, 낯선 용어지만 어디선가 본듯하다. ‘이상한 나라의 폴’의 주인공 폴이 딱부리, 삐삐, 찌찌와 함께 힘을 모아 대마왕으로부터 니나를 구하기 위해 통과했던 시간의 문이 웜홀 아니었을까? 찌찌가 요상한 봉을 휘두르면 현실의 시간이 정지되고 시간의 문을 통해서 어른들은 모르는 4차원의 세계로 간다. 제한된 시간 동안 모험을 펼치다가 다시 현실 세계로 돌아오곤 하던 ‘이상한 나라의 폴’은 오래전에 좋아했던 애니메이션이다. 폴 일행은 4차원 마법 세계에서 한참을 헤매다 돌아오지만 현실의 시간은 그대로 멈추어 있다. 알지 못하는 사이 이미 상대성 이론을 예습했다니 놀랍다.

SF영화에서 위기에 빠진 지구를 ‘구하는’ 경우는 흔히 보았기에 ‘버리는’ 구상이 일단 신선하다. 과학의 발달과 지구 환경의 변화로 볼 때 미래의 시간대로 보이지만, 주인공 가족이 사는 집, 시내, 야구장의 풍경은 니나를 구하러 다니던 폴이 활약했던 20세기 중후반의 풍경과 다르지 않다. 웜홀을 통과해 새로운 땅을 찾으러 다닐 정도로 기술이 발달한 시대에 바람이 좀 많이 불고 산소가 부족하다고 지구를 버릴 구상을 하다니, 대마왕의 손아귀에서 니나를 구하는 일보다 더 무모한 일이 아닐까 싶다. 행성 집단 이주 계획이라는 어마무시한 계획을 세우면서 변변한 엔지니어 한 명 찾지 않고 남자 주인공이 제 발로 찾아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니, 차라리 찌찌의 요술봉을 찾으러 다니는 편이 빠르지 않았을까. 납득하기 힘든 부분이 있지만 인터스텔라는 상상의 한계를 뛰어넘는 경이의 세계를 체험하게 해주는 볼만한 영화다.

크리스토퍼 놀란Christopher Nolan 감독은 ‘메멘토Memento’에서는 기억을, ‘인셉션Inception’에서는 무의식과 꿈의 세계를 다루었다. 특히 인셉션에서는 무의식의 세계를 시각적인 상상력으로 빚어내 일찍이 이전에 볼 수 없었던 것을 보여준 바 있다. 인셉션의 복잡한 이야기 전개는 잊어버릴 수 있어도 도시의 풍경이 그대로 접혀 하늘로 이어지던 그 아찔한 장면은 절대 잊을 수 없다.

인터스텔라는 상상력에 과학을 접목해 감독의 전작을 뛰어넘는 그 이상을 표현하고 있다. 먼지로 뒤덮인 지구, 입체적인 웜홀, 파도가 산처럼 보이는 물로 뒤덮인 행성, 구름까지 꽁꽁 얼어붙어 하늘과 땅이 이어진 것 같은 얼음 행성, 그리고 그 문제적 장면인 블랙홀까지. 지구의 환경오염 때문에 다른 행성을 찾아다니지만, 그들에게 닥치는 시련이란 외계인과의 조우도 대마왕의 공격도 아닌 또 다른 이름의 환경 재앙이다.

 

 

서영애는 ‘영화 속 경관’을 주제로 석사 논문을 썼고, 한겨레 영화평론전문 과정을 수료했다. 조경을 전공으로 삼아 일하고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지만, 극장에 있을 때 가장 행복하다. 영화는 경관과 사람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관계 맺는지 보여주며 그것이 주는 감동과 함께 인문학적 상상력을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중요한 텍스트라 믿고 있다.

월간 환경과조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지합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