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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재생’에 대해 생각해 볼 몇 가지
도시재생의 새로운 국면
  • 환경과조경 2014년 10월

지난 달 서울에서 교수 생활을 한 지 (벌써) 10년이 된 것을 ‘기념’하여 학생들과 함께 연구실에 쌓아 놓은 자료들을 다시 살펴보는 귀한 시간을 가졌다. 작게는 한 연구실의 10년 살림살이 기록이지만, 크게는 우리나라 도시ㆍ건축ㆍ조경 분야의 연구와 사업 생태계에 ‘적응’하며 쌓게 된 생존 노트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도시ㆍ건축ㆍ조경 분야의 연구나 사업의 진행 방식을 접하면서 귀국 초기에 내가 가졌던 가장 강한 느낌은, 내용 그 자체에 대한 어려움보다 이것이 생성되고 실행되는 구조에 대한 어리둥절함이었다. 도시ㆍ건축ㆍ조경 분야에 관련된 집단이나 개인이 국가 R&D를 대하는 태도와 참여 방식에 대해 나는 솔직히 경이로움과 불안감을 동시에 느꼈다.


연구와 사업의 생태계

초고층 건물 연구 사업, 경관법 관련 논의, U-city 연구개발, 그리고 오늘의 주제인 도시재생 사업 등 굵직굵직한 과제들이 끊이지 않고 있었는데, 주제가 그 무엇이든지 진행 구조와 프로세스는 유사했다. 해외의 트렌드를 빠르게 전도하는 것을 전문성으로 내세우는 교수나 연구원들이 뭔가 새로운 사업을 추진하려는 담당 공무원이 원하는 과업 내용을 아주 빠르고 유용하게 가공·정리해 제공하면, 이를 바탕으로 정부 주도의 시범 사업을 속히 실행해보고, 새로이 지원법도 만들면서 지속적 추진의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성과도 보인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공무원은 승진도 하고, 교수는 요약 보고서형 논문 편수도 늘린다. 그러면 이제 신속하게 새로운 과제로 넘어갈 차비를 하게 된다. 그 빠른 추진력과 속도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한편 시범 사업 이후 연구가 얼마나 지속·심화되고 있는지, 그래서 우리 도시ㆍ건축ㆍ조경 현실의 어느 부분이 어떻게 더 나아졌는지 얕게라도 추적해 보며 나는 불안감을 반복적으로 쌓아 왔다.

나의 불안감, 더 나아가 절망감의 근저가 되는 요인 중하나로, 현재 우리나라 도시ㆍ건축ㆍ조경 현실에서 우리가 무엇을 왜 절실하게 문제로 삼고 있는지, 그 문제에 대한 냉정한 진단을 회피한 채 성급하게 답을 찾아 적용해보려는 우리 전문가들의 부실한 ‘생각의 구조’를 먼저 지적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 스스로 우리 도시와 지역 현장의 본질적 특성이나 절박한 문제의 핵심을 시간과 노력을 들여 뽑아내지 않았는데(못했는데), 일본의 지구계획이나 경관법, 도시재생촉진특별법과 도시재생본부 구성 등 타지의 해법을 빠르게 수입해서, 공무원들이 진행하고자 하는 국가 사업의 구도에 맞게끔 우선 정리해주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 불안하다.

도시재생은 뭐가 좀 다를까? 뭐라도 빠르게 가공해내는 분들보다, 이리 삐딱하게 초를 치는 내가 더 게으른 것은 아닐까 반성도 하게 된다.


도시재생 사업에서 보이는 희망

생성 구조가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도시재생에 대해서는 그래도 조금 다른 희망을 갖고 있다. 기존의 정부 주도 시범 사업처럼 일단 한번 해보는 정도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은 여전히 들지만, 도시재생 사업은 이전의 재개발·재건축 사업, 그리고 그 이후의 재정비촉진 사업과는 분명 차별되는 구체적인 목표와 방법을 기반으로 한다. 물리적 환경의 측면은 물론, 주민 생활공동체를 중시하는 사회적 측면, 그리고 지역 문화와 산업에 기반을 두는 경제적 측면을 모두 균형 있게 고려하려는 목표와 전략을 새롭게 마련했다. 도시재생의 대표적 지향 중 하나인 소위 ‘자력수복형’ 도시재생, 즉 ‘시민 참여를 통해 지역 사회의 문제를 부분적·점진적으로 해결 한다’는 점에 특히 주목한다.1 ‘자력’과 ‘수복’이 각기 표방하는 내용에 희망을 갖기 때문이다. 레토릭으로 끝날지라도, 참여자들 간의 자발적인 협치에의해 갈등을 조정하며 지역활성화를 다양한 방식으로 모색한다는 점에 희망을 가져본다. 우리 사회 도처에서, 지역 주민은 전문가보다 훨씬 먼저, 이전 시대와는 사뭇 다른 도시 생활의 가치를 추구하며 현실적인 지역 공동체 운동을 전개해 왔다. 지역 주민의 주도로 이루어지는 주민자치 공동체 운동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이미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도시재생에 대한 문화적 공감대가 비교적 넓게 형성되어 있다. 주민 공동체 운동이 참여형 도시재생 계획의 지속적 주체로 보편화되기까지는 많은 난관이 있겠으나, 우리 사회는 시기적으로 그 어느 때보다 주민 주도, 주민참여형 계획과 사업을 일상적으로 진행할 준비가 되어있다. 이 점이 희망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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