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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불가능한 정원의 꿈, 콘크리트 공원과 텃밭
3인 3색 정원 단상
  • 환경과조경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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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바문의 정원. 이집트의 서기 출신 네바문의 무덤 안 벽화에는 정원이 묘사되어 있다. 직사각형 호수와 그 주변으로 가지런히 심은 수목들이 현대적 정원과 크게 다르지 않다.

 

현 시대 한국의 일상에서 정원이 차지하는 의미나 형식을 쉽게 떠올리기란 힘들다. 자연의 일부를 떼어 주거 공간 속에 조형적 모양새로 인위적으로 옮겨놓은 게 정원일 것이다. 정원은, 현실적으로 자연에서 격리된 동시대인에게 자연과 통하는 해방구를 제공했다.

하지만 필자가 동시대 한국의 시공간과 정원 사이에서 연결고리를 찾지 못한 건, 우리의 주거 문화를 지배하는 일반론이 정원의 자리를 허용하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한국 주거 문화의 토대를 이루는 아파트는 물론 이거니와 오피스텔과 원룸까지 무수한 거주 공간이 정원의 자리를 배려하지 않은 채 설계되기에, 몰개성한 복층 구조의 건축물이 일반적이다.

내가 거주하는 곳 인근에 보라매공원이 있다. 정원이 개인 거주지 안에 작은 녹지를 조성하는 것인데 반해, 공원은 정원이라는 개인 사유지를 공공 영역으로 확대한 버전일 것이다. 연못, 잔디 광장, 다목적 운동장 따위를 패키지로 묶어 시민들의 레크리에이션 활동을 보장하는 보라매공원의 원래 목적은 군사 교육 기관이었다. 과거 공군사관학교 터를 보수하면서 용도를 공원으로 변경시키고, 공군사관학교의 상징인 보라매를 공원 이름으로 따온 것이 현재 보라매공원으로 자리를 잡았다. 세계의 유수한 공원들 역시 처음부터 공공을 위한 놀이터로 설계된 건 아니었다. 왕족과 귀족을 위해 인위적으로 조성된 사냥터가 공화정이 들어서면 서 시민에게 공간을 내주게 된 것이 동서양 공원들의 일반적인 과거사인 점을 감안할 때, 공원은 소수 최고위급 인사들이 보유한 커다란 정원이었던 셈이다. 정원의 먼 선조로 흔히 예시되는 네바문 무덤 벽화도 마찬가지이다. 당대에 사회적 신분을 보장받은 이집트서기 출신 네바문의 무덤 안 벽화에는 정원이 묘사되어 있다. 이 벽화를 통해 기원전 정원의 윤곽을 추적할 수 있다. 직사각형 호수와 그 주변으로 가지런히 심은 수목들이 기원전 정원의 모습이었던 셈이다. 이는 현대적 정원과 큰 틀에서 차이가 적다.

가까운 중국이나 일본이 서구의 정원과 변별되는 바위 정원rock garden의 전통을 갖는데 반해, 한국 정원 문화에 관해 검색하면 복층 구조의 동시대 주거 문화 때문인지 윤보선 고택, 성락원, 운보의 집, 대원군의 별장이었으나 고급 한정식당으로 변형된 석파랑 정도만 간신히 잡힌다. 모두 동시대 현존 인물의 정원으로 규정하기 힘든 사적지이거나, 혹은 준 공공을 위한 장소들이다. 사유지 정원의 확대 버전인 공원이 동서 공히 왕족과 귀족의 놀이터를 위해서 녹지를 조성했다는 사실로부터, 현대적 미술관의 기원인 루브르 박물관의 경우를 떠올릴 수 있다. 1672년 루이 14세가 베르사유 궁전에 거주하면서 루브르 궁전을 왕실의 수집품을 전시하는 장소로 용도 변경해서 썼다. 



반이정은 미술평론가(원래 꿈은 배우)로 『중앙일보』, 『시사IN』, 『씨네21』, 『한겨레21』 등에 미술 평론을 연재했고, 『한겨레』, 『경향신문』에 시사 칼럼을 연재했다. 서울대학교, 홍익대학교, 세종대학교 등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 취미 이상의 애착을 지닌 자전거 마니아로도 알려져 있다. 쓴 책으로 『새빨간 미술의 고백』 외에 『아뿔싸, 난 성공하고 말았다』, 『책읽기의 달인, 호모부커스 2.0』, 『자전거, 도무지 헤어나올 수 없는 아홉가지 매력』, 『웃기는 레볼루션―‘무한도전’에 대한 몇 가지 진지한 이야기들』, 『나는 어떻게 쓰는가』, 『세상에게 어쩌면 스스로에게』등에 공저자로 참여했다. 네이버 파워블로거에 선정된 그의 거처는 dogstylis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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