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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2010년02월 / 262
  • 2013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장 마스터플랜 공모 시상식 및 토론회
    지난해 12월 22일 서울교육문화회관 2층에서는 ‘2013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장 마스터플랜 공모 시상식 및 토론회’가 순천시(시장 노관규) 주최로 개최되었다. 행사는 윤상준 사무국장((재)환경조경발전재단)과 강재식 기획팀장(순천시청)의 사회로 공모 및 당선작 소개, 시상식, 토론회 순으로 진행되었다. 이번 공모전의 실무전반을 담당했던 조경진 전문위원(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은 공모지침 및 심사과정에 대해 설명하며, “패널과 설계설명서만을 제출했던 기존 공모전과 달리, 7~8분 정도의 프리젠테이션 영상을 제출하도록 한 것이 금번 공모전의 특징”이라 부연하였다. 이어서 양병이 심사위원장(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은 “수상작 뿐만 아니라 다수의 출품작도 비교적 고른 수준의 설계안이라 평가한다. 심사위원회는 당선작의 설계의도와 취지가 마스터플랜 발전과정에서 존중되기를 바라고, 여러 수상작의 좋은 아이디어가 정원박람회의 컨텐츠 개발에 좋은 참고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심사평을 밝혔다. “웰컴 투 정원골”로 최우수작 수상자로 선정된 이민우 소장((주)가원조경기술사사무소)은 작품설명에 앞서 “국내에서 최초로 개최되는 정원박람회에 설계자로 참여하게 되어 영광”이라고 소감을 전했다. 그는 “큰 틀에서 정원박람회는 정원이 모이는 것이 중요하고, 그것을 통해 정원문화를 선도하고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순천의 갯골, 습지, 갈대 등 자연적 경관요소를 배경으로 한 것이 박람회장 조성의 주안점”이라고 밝혔다. 더불어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전략으로 5개의 “정원 매니페스토”를 제시하였다. 정원 매니페스토는 ‘생태계와 공존하는 정원’, ‘가장 순천다운 경관’, ‘정원 네트워크를 순천의 공공녹지와 연결’, ‘쉽게 즐길 수 있는 도시정원’, ‘다양한 실험을 통한 새로운 정원문화 창출’의 내용을 담고 있다. 행사의 마지막에는 이상석 교수(서울시립대)를 좌장으로 작품에 대한 토론회가 진행되었다. 패널로는 온영태 교수(경희대), 최정권 교수(경원대), 정욱주 교수(서울대), 천의영 교수(경기대), 이재준 교수(협성대)가 참석하였으며, 토론 내용은 “지속가능한 디자인이 구현되기 위해서는 지형과 물을 다루는 전문기술의 도입, 클라이언트(공공기관, 민간기관, 시민)의 명확하고 일관된 의지, 박람회 이후까지 생각한 공간이용 등에 관한 요소를 충분히 고려해야 할 것” 등이 요지였다. 최정권 교수 _ 당선작들의 다수가 범람제방을 과감하게 허문 것과, 사행하역의 도입, 기수역에 대한 대체습지 조성 등을 제시하고 있는데 과연 실현가능성이 어느 정도인지 검토해야 하며, 물을 다루는데 있어서 보이는 수경관이 아닌 생태의 구조와 기저에 비중을 두어야 한다. 정욱주 교수 _ 다수의 설계경험을 비춰볼 때 현상공모안이 좋은 디자인으로 구체화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클라이언트의 뜻과 의지가 중요하며, 앞으로의 설계과정에서 설계가는 물론 관련 전문가 및 자문단, 발주처 등 관련된 모든 이들이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노력해야 한다. 천의영 교수 _ 지금도 아름다운 순천만에 손을 대는 것 자체가 대상지에 폭력을 가하는 것이 아닐지 생각해 본다. 그런 만큼 정원박람회장이 순천의 미래를 만들어가는 거점이 되어야하며 행사를 통해 도시가 재조직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이를 위해선 도시의 모든 조직들이 작동될 수 있어야 하며 박람회장이 도시중심축과 연결되어야 할 것다. 이재준 교수 _ 대한민국 생태수도를 표방하고 있는 순천시는 정원박람회를 계기로 국제적인 환경도시로 거듭날 수 있다. 최근 저탄소 녹색성장이 강조되고 있으나 아직까지 구체적 실천방법이 미비하므로 박람회 기간에 식생, 정화 등 관련 녹색기술을 발굴하여 전시하고 더불어 탄소가 얼마나 저감되는지 정량화해서 보여준다면 세계의 이목이 순천으로 집중될 수 있으며, 국제적인 저탄소 녹색도시로 부상할 수 있을 것이다.
  • 돈암서원
    Donam Seowon 立地돈암서원은 고정산 자락의 완만한 구릉지에 전학후묘前學後廟이며, 향은 해좌사향亥坐巳向인 동남향이다. 주변 환경으로는 논산저수지 북쪽에 2개의 산과 연접해 있는데, 하나는 고정산이고 다른 하나는 대명산이다. 이중 동쪽의 고정산 줄기가 서북으로 4.5km를 흘러 넓은 사갑들로 뻗어있는데, 돈암서원은 고정산 줄기가 이어지는 중간쯤에 위치해 있다. 전면으로 연산천이 흐르고 뒤로는 고정산 줄기가 배산을 형성하는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으로 완만한 구릉지에 위치하고 있다. 주변 환경으로는 관촉사, 개태사, 계백장군묘 및 백제군사박물관 등이 위치하고 있다. 空間構成돈암서원의 경우 고종 17년(1860)의 이건 이전6과 이후로 대별할 수 있는 바, 현재의 서원은 전학후묘이면서 동남향을 하고 있으며, 앞으로 펼쳐진 들판을 내려다보고 있고, 경내에는 사당인 숭례사, 신문, 강당인 양성당, 동재인 거경재, 서재인 정의재, 응도당, 장판각, 정회당, 경회당, 전사청, 외삼문인 입덕문 등과 하마비, 홍살문 등이 있다. 현재의 돈암서원은 고종 17년(1880) 이후 여러 차례 증·개축을 통해 강당이 중심축에 있지 않고 남측으로 비켜 직각으로 배치되어 있다. 공간구성은 4개로 구성되어 있는바, 진입공간으로는 홍살문과 하마비를 지나 왼쪽으로 최근 조성된 주차장이 있고, 정면에 최근 신축된 산앙루가 위치하고 있다. 산앙루 앞에는 황강 김선생 정회당사적비명과 현성사림비가 있고, 외삼문 우측으로 양성당중수비가 자리하고 있다. 강학공간으로는 외삼문인 입덕문을 통해 진입하면 동·서재를 지나 양성당이 자리하고 있으며 양성당의 뒤편으로 목판을 보관하고 있는 장판각이 있고, 양성당의 남쪽 측면으로 정회당이 위치하고 있다. 양성당과 정회당의 뒤편으로는 석축 위로 화계가 조성되어 있다. 양성당의 정면 좌·우측으로 1997년에 개축된 거경재와 정의재가 위치하고 있으며 강당인 응도당은 중심축에서 남측으로 비켜나 수직으로 자리하고 있다. 이들 강학공간은 평지에 입지한 까닭에 여유 있는 배치를 보여주고 있으나 입덕문 보다 동·서재가 위치한 강학공간이 1단 높게 올라있다. 강학공간의 동·서재는 1단의 기단 위에 세워져 있으며, 응도당을 이건하기 전 강당으로 이용되던 양성당은 2단의 기단 위에 자리하여 그 위계를 강조하였다. 전사청은 관리공간으로 막돌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어 독립된 공간을 확보하고 있으며, 양성당 뒤편으로 연결되는 협문을 통해 내삼문으로 진입 할 수 있는 동선을 확보하여 서원의 제향행사가 있을 시에 지원을 용이하게 하였다. 1997년에 동·서재와 함께 개축된 경회당은 응도당과 마주하고 있다. 제향공간은 꽃담으로 위요되었으며 내삼문은 3단의 기단 위에 세워져 있어 강학공간과 공간상 위계를 구분하고 있다. 사당인 숭례사는 4단의 기단 위에 겹처마 맞배지붕이며 전면 4곳에 계단이 설치되어있고 사괴석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다. 空間構成要素식물 _돈암서원 일원의 식생은 외삼문 안쪽 양측으로 배롱나무가 재식되어있고, 양성당의 우측 장판각의 정면에는 수령이 300여 년으로 추정되는 향나무가 식재되어 있다. 내삼문 양측으로 주목이 식재되어 있고 내삼문 안으로는 사당을 둘러싸고 있는 좌우측 담장 밑으로 화단이 조성되어 있다. 우측 화단에는 소나무와 옥향 그리고 배롱나무가 2주 식재되어 있으며, 좌측 화단에는 옥향 3주와 배롱나무가 식재되어 있다. 내삼문에서부터 장판각 뒤쪽, 정회당 우측면에 이르기까지 담장을 따라서 화계가 조성되어 있고 화계에는 영산홍이 식재되어 있다. 거경재 뒤편의 전사청으로 진입하는 출입구 좌측 담장에는 능소화가 식재되어 있으며 우측 담장 아래에는 화단이 조성되어 있고 화단에는 머위가 식재되어 있다. 원 외부에는 사당의 서측 즉 사당의 후면으로 소나무가 군식되어 있으며, 사당의 북측으로 대나무림이 조성되어 있다. 건조물 _1. 숭례사崇禮祠_ 사당인 숭례사는 4단의 장대석 기단 위에 정면 3칸, 측면 3칸의 겹처마 맞배지붕으로 전면 1열은 툇간이고 후면 2열은 내부공간으로 내부에는 김장생, 김집, 송준길, 송시열 네 분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2. 응도당凝道堂_ 강당인 응도당은 1자반 높이의 초석 위에 정면 5칸, 측면3칸으로 내부는 모두 마루를 깔았으며 측면에는 풍판을 달고 풍판 아래에는 눈썹지붕을 달아내었으며 지붕은 전후면 모두 겹처마 맞배지붕이다.3. 양성당養性堂_ 양성당은 2단의 장대석 기단 위에 정면 5칸, 측면 2칸에 홑처마 팔작지붕으로, 각 칸은 하나씩의 방을 꾸미고 가운데 3칸 전면에는 툇간을 만들어 마루를 깔았다. 1997년 거경재와 정의재가 개축되기 전에는 측면에 편액을 걸어 거경재라고 불리기도 하였다.4. 정회당靜會堂_ 장대석 외벌대로 기단 위에 정면 4칸, 측면 2칸으로 뒷열 가운데 2칸은 마루방을 두었고 툇칸은 마루를 깔아 건물의 3면이 마루로 되어있으며 홑처마 팔작지붕이다. 1956년 지금의 자리에 복원되었다.5. 장판각藏板閣_ 정면 3칸, 측면 2칸에 서고의 기능을 갖고 있으며, 내부는 모두 통풍이 잘되도록 마루를 설치하였다. 지붕은 홑처마 팔작지붕이다.6. 전사청典祀廳_ 장대석 외벌대 기단 위에‘ㄱ’자 형의 평면으로 가운데 3칸은 대청을 두고 양측에 방을 두었다. 지붕은 홑처마 팔작지붕이다. 전사청 주변은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응도당 뒤편으로 협문을 두었다.7. 거경재居敬齋, 정의재精義齋_ 거경재와 정의재는 1997년에 경회당과 함께 개축되었으며 장대석 기단 위에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홑처마 맞배지붕이다.8. 경회당 _ 1997년에 동·서재와 함께 개축된 경회당은 자연석 석축 외벌대에 정면 5칸, 측면 2칸의 홑처마 팔작지붕으로, 현재 문화유산해설사의 사무실로 사용되고 있다.9. 입덕문入德門_ 자연석을 2단으로 계단처럼 쌓아올린 기단 위에 정면 3칸, 측면 1칸의 솟을대문 형식으로 홑처마 맞배지붕이다. ‘돈암서원’편액을 걸어놓았으며, 안쪽으로‘입덕문’편액을 걸었다.10. 내삼문內三門_ 사당과 강학공간과의 높이 차를 장대석 세벌대로 높이고 사당 안쪽에서는 외벌대 기단이 설치되어 있다. 어칸과 양 협칸을 별도로 세우고 문과 문 사이와 양쪽으로 꽃담을 세웠다.11. 홍살문紅箭門_ 홍살문은 신성한 곳을 알리는 문으로 참도가 시작되는 곳에 각각의 둥근 주초석柱礎石에 2개의 기둥을 세워 붉은 칠을 하고 상단부의 기둥과 기둥 사이를 인방을 연결하여 살을 박아놓았다. 홍살중앙에는 오방색의 삼태극의 태극문양이 그려져 있다. 수공간 _양성당기에 의하면 서원이 구지舊址에 위치하였을 당시에 도랑물이 돌 사이로 흘러드는데 이를 이끌어 위 아래로 못을 만들고 연꽃을 심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현재 연지의 정확한 축조연대는 알 수 없으나, 1956년 정회당의 복원과정에서 축조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정회당의 전면에 위치하였던 연지는 4×7m의 크기였으나, 1997년 서원정비사업에서 매몰되어 없어져 현재는 남아있지 않다.점경물 _1. 돈암서원원정비遯岩書阮阮庭碑_ 연꽃무늬가 새겨진 방형의 받침위에 비석과 비 머리가 서있다. 1880년 이건 당시 함께 이전하였으며 현종10년(1669)에 세워졌다. 송시열이 짓고 송준길이 글씨를 쓰고 전서체 제목은 김만기가 썼다. 비신은 높이 173.8cm, 폭 75cm, 두께 33.3cm이다.2. 돈암서원지비書院之碑(양성당중수비) _ 외삼문 밖에 위치하며 돈암서원이 이건하게 된 연유와 이건 당시의 기록, 당시의 상황 등이 기록되어 있다. 송병선이 짓고 송도순이 글씨를 썼다. 비신은 높이129cm, 폭 49cm, 두께 18cm이다.3. 관세대 洗臺, 정료대庭燎臺_ 내삼문 안 묘당공간에 위치하고 있으며 제향의 동입서출하는 의식절차에 따라 우측에 관세대, 좌측에 정료대가 위치하고 있다. 結_ 본 고는 조선 중기 연산지역을 기반으로 성장하였던 기호학파 사림의 본거지라 할 수 있는 연산 돈암서원의 입지와 공간구성에 관해 기술한 것으로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첫째, 입지는 논산저수지의 북쪽 고정산 자락의 완만한 구릉지에 들을 가로질러 흐르는 연산천 너머로 계룡산 자락을 마주하여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의 배산임수 형국으로 자리하고 있다.둘째, 공간구성은 진입공간, 강학공간, 제향공간, 관리공간으로 구분되며, 축과 기단의 높이, 동선 등으로 각 공간의 위계가 설정되며, 고종 17년(1880)에 구지에서 이건하는 과정에서 함께 이건하지 못하고1971년 이건된 강당인 응도당은 중심축에서 우측으로 벗어나 수직으로 배치되었다.셋째, 공간구성요소로서 식생은 향나무 노거수를 비롯하여 배롱나무, 소나무 등의 교목과 옥향, 주목, 영산홍, 능소화 등이, 건조물로는 사당인 숭례사와 제향공간을 감싸고 있는 내삼문과 그 주변의 양성당과 장판각, 정회당, 응도당, 동·서재 그리고 전사청과 경회당, 내·외삼문 등의 건축물과 돈암서원원정비, 돈암서원지비(양성당 중수비), 제향공간의 정료대, 관세대 등의 점경물 등이 있다. 이로 인해 19세기 후반 이건된 강학과 제향의 기능을 담당하던 공간으로서 돈암서원은 조선시대의 여타의 서원과 비교하여 서원형식이 지니는 정형성을 잘 보여주면서 축선의 어긋남을 통해 구성의 변형을 꾀하고 있다. 차경을 이용해 건물과 자연의 연계된 경관구조를 이루며, 구성미가 뛰어남을 파악할 수 있었고, 이러한 경관건축은 해당지역의 지형조건 등의 자연적 요소와 당시의 성리학에 바탕을 둔 사상체계, 정치체계 등의 인문적 요소와 상호 밀접하게 관련된 것으로 사료된다.
  • 용산공원 정비구역 종합기본계획 수립을 위한 전문가 심포지엄
    용산공원의 사회문화적 의미를 비롯, 각계의 다양한 의견 개진지난달 줌인 코너를 통해 소개되었던 용산공원 아이디어공모 시상식 및 토론회(이하 용산 아이디어공모)에 이어, 지난 12월 23일에는 용산공원 정비구역 종합기본계획 수립을 위한 전문가 심포지엄(이하 용산 심포지엄)이 관련 전문가를 비롯 1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코엑스 컨퍼런스룸 317호에서 개최되었다. (사)한국조경학회, (사)대한국토·도시계획학회, 한국토지주택공사 토지주택연구원, (주)선진엔지니어링종합건축사사무소, (주)CA조경기술사사무소가 공동 주최하고, 국토해양부가 후원한 이날의 용산 심포지엄은 용산 아이디어공모에서 도출된 다양한 제안들을 바탕으로 조경, 도시, 건축, 문화, 역사 등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로부터 용산공원의 미래상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마련되었다.이에 앞서 이날 심포지엄을 주관한 5개 단체 및 회사들은 조경학회를 주축으로 컨소시엄을 구성하여 국토해양부에서 2009년 9월 공고한 “용산공원 종합정비계획”제안입찰에서 선정된 바 있어, 이날의 심포지엄은 제안입찰 선정 이후 첫 번째 의견 수렴의 장으로 마련된 것이다. 향후 조경학회 컨소시엄은 전문가 심포지엄, 설계전문가 워크숍, 시민공청회 등의 과정을 통해 용산공원과 그 일대의 미래상을 위한 쟁점 사항을 도출 및 검토하고, 그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용산공원 일대의 종합정비계획을 수립하게 된다. 조세환 회장((사)한국조경학회)의 환영사와 손태락 단장(국토해양부 용산공원조성추진기획단)의 축사에 이어 진행된 주제발표는 이유직 교수(부산대 조경학과)의 사회로, “용산공원의 사회 문화적 의미”(전상인 교수·서울대 환경대학원), “용산공원 조성계획의 과정과 아이디어공모 결과”(배정한 교수·서울대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용산공원의 현재와 미래”(박현찬 연구위원·서울시정개발연구원)순으로 발표되었다. 전상인 교수는 용산공원 조성은 도시공학적 혹은 건설산업적 시각에서 접근해서는 안되며, 무엇보다 인문사회학적 통찰력을 바탕으로 추진해야 하며, 역사적 화해, 사회적 배려, 문화적 해독과 같은 사회의식과 시대정신이 밑받침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즉, 용산공원의 역사적 의미는 단죄의 방식이나 청산의 형태가 아닌, 미래지향적 사회통합과 국민화합을 지향하는 “역사적 화해”에서 찾아야 하고, 새로 조성되는 용산공원은 결코 부자들의 공원 혹은 상류층들의 마당으로 전락되어서는 안되고, 보통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을 위해 제공되는 “사회적 배려”가 실현되어야 하며, 용산공원의 조성과정은 산업화와 민주화 등 경제와 정치에 몰두했었던 대한민국에 일종의 문화적 해독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이어서 배정한 교수는 용산공원 조성의 주요 경과, 용산공원 계획의 비전과 전략, 용산공원 아이디어공모 결과 분석에 대해 발표했으며, 기존의 “용산기지 공원화 구상연구”에서 제안되었던 “미래지향적 공원, 도시와 대화하는 공원, 성장하는 공원, 한국적 공원”이란 용산공원의 비전과 단계별 공원화 계획에 대해 소개한 후, “끊임없이 진화하고 성장하는 공원, 자연성을 회복하고 생태적으로 건강한 공원, 지역의 정체성을 담고 도시공원문화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공원, 국민이 함께 참여하여 조성하는 열린 공원의 지향”을 비전으로 내세웠던 용산 아이디어공모 수상작의 주요 경향을 종합적으로 분석하였다. 분석 결과 수상작들에서는 “단계별 전략의 사용, 주변 도시 구조 및 조직의 고려, 비확정적 프로그램, 생태의 고려, 부지의 역사적 조건 존중, 시민참여적 설계” 등의 특징이 엿보였으며, “부지 조건의 면밀한 분석과 해석, 단계별 계획과 과정적 설계, 탄력적 공원 프로그래밍, 주변 도시 구조 및 조직의 고려, 지혜로운 공원작동” 등이 핵심 경향으로 도출되었다고 밝혔다. 마지막 발표자로 나선 박현찬 연구위원은 용산공원 기본계획안, 용산공원 주변 관련계획, 용산공원 조성방향에 대해 발표하였는데, 조성 기본방향으로는 “역사와 문화를 경험하는 공원, 사람과 환경이 공존하는 공원, 주변 지역과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공원”이 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밝힌 후, 기본원칙으로 “역사·정체성 보존 및 시설물 활용, 남산-한강을 연결하는 남북녹지축의 중심, 용산부도심 및 주변 개발계획과의 유기적 연계”를 꼽았으며, 주변 산재부지에 대한 의견을 밝히기도 하였다.주제발표 후 양병이 교수(서울대 환경대학원)가 좌장을 맡은 가운데 진행된 토론은 이태진 명예교수(서울대, 한국사), 유하룡 기자(조선일보), 온영태 교수(경희대 토목·건축공학부), 안동만 교수(서울대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박은실 교수(추계예술대 문화예술경영대학원), 윤진환 과장(국토해양부 용산공원추진단 공원정책과)순으로 진행되었으며, 토론 말미에는 방청객의 의견을 듣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 영국 내셔널 트러스트의 역사정원 보전: 비덜프 그레인지 가든
    HISTORIC GARDENSThe Conservation of Historic Gardens in U.K.(2)비덜프 그레인지 가든스태퍼드셔(Staffordshire)의 비덜프 그레인지 가든(Biddulph Grange Gardens)은 1840년대에 제임스 베이트만(James Bateman, 1811-1897)이 그의 부인 마리아와 해양그림으로 유명한 화가 에드워드 윌리엄 쿡과 함께 만든 정원이다. 19세기 영국 빅토리안 시대의 특징이 잘 표현된 정원으로 현재 국가 지정문화재 등급 I로 지정되어 있다. 비덜프 그레인지 가든은 이탈리안 가든, 침상원 형태의 다알리아 워크, 중국정원, 이집트, 라임 애비뉴, 웰링토니아 애비뉴, 웨스턴 테라스 등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정원의 다양함과 풍부함을 알 수 있는 일련의 정원들이 벽, 생울타리 혹은 둑으로 나뉘어지고 소로, 터널 그리고 계단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 특히 다알리아 워크는 다알리아 마니아였던 베이트만이 정원의 중심에 조성한 공간으로 주목 생울타리로 칸을 나누는 형태로 조성하여 다알리아의 강렬한 색을 더욱 돋보이도록 의도하였다. 이곳의 가장 흥미로운 풍경이자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중국정원은 마치 비밀의 화원 같이 조성되었다. 중국의 만리장성이라고 명명된 담과 둑이 둘러싸여 있는 중국정원은 빅토리아 시대판 중국정원이라고 불리는 곳으로 어두운 터널을 통하여 정원으로 들어간다. 버들무늬, 금박을 입힌 용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중국정자와 다리 그리고 지그재그 형태로 만들어진 펜스는 로버트 포튠이라는 식물 사냥꾼이 우리나라가 위치한 극동지방에서 영국에 들여간 황금낙엽송을 비롯한 여러 종의 식물과 모란, 홍단풍 등과 함께 중국정원의 풍광을 자아내도록 하였다.이곳은 1871년 로버트 히스에게 그 소유권이 넘어 갔지만 20세기 초반까지 그 원형이 잘 유지되어 오다가 1923년에 저택이 병원으로 바뀌면서 정원 유지관리의 이유 때문에 다알리아 워크를 비롯한 여러 화단이 없어졌으며 1960년대 들어서 급속히 그 모습을 잃어갔다. 1988년 내셔널 트러스트가 이곳을 소유했을 때에는 잡초 제거나 잔디 다듬기 등 매일 어느 정도 관리는 되고 있었으나 식물들이 너무 웃자라 있었고 정원의 많은 부분이 훼손되어 있었다.내셔널 트러스트 측은 정원과 이곳의 식물을 광범위하게 조사하기 시작하였다. 다행히 비덜프 그레인지 가든은 상대적으로 매우 잘 기록된 정원이었다. 정원의 특징과 식물들이 묘사되어 있는 글들이 많았고 정원 곳곳이 찍힌 사진 또한 많았다. 이런 풍부한 기록으로 인하여 내셔널 트러스트는 이곳을 빅토리안 시대의 최고 상태로 복원을 하기로 결정을 하였다. 이러한 결정과 함께 바로 수행된 일은 고고학적 발굴이었다. 고고학적 조사는 정원 복원에 있어 기록을 통해서는 알 수 없는 많은 정보를 제공해 주는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우선적으로 복원에 착수한 부분은 관리에 대한 부담의 이유로 사라진 저택과 인접해 있는 정형식 화단과 다알리아 워크였다. 이 부분은 정원의 전체 면적에 비하면 작은 부분이었지만 베이트만이 조성한 정원에서 매우 인상적이며 핵심적인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정원의 중심인 중국 정원 또한 정자와 다리를 비롯하여 일련의 훼손된 부분들이 복원되었다. 정원의 복원은 장기 계획이 수립되어 진행되었다. 원래의 식물상에 대한 조사가 시행되어, 새로이 식물들이 식재되거나 재식재를 위하여 다른 곳에서 길러졌다. 1990년에는 이집트가 복원되었고, 1996년에는 웰링토니아 애비뉴가, 1998년에는 탑 테라스가 복원되었다. 2020년까지 내셔널 트러스트는 베이트만이 세계 도처에서 수집하여 식재한 식물을 원형에 가깝도록 복원하기 위한 식재계획을 세워놓고 하나씩 실행하고 있다.